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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2008년 7월 19일 16시 10분 등록
일상에 대한 진부한 노트_10


무언가 흐트러지고 형편없는 상황은 오히려 쓸 거리를 내어준다. 이성적이고 청아한 순간은 그저 흘러가는 것을 제3자처럼 바라볼 수 있게 할 뿐이다. 늘 그랬다. 이성은 감성의 작동을 막았다. 가만히 보면 그처럼 돼 먹지 못한 반향이 없다. 모든 행의 뿌리는 녀석의 구역질 나는 위선에 철저히 가려졌다.

가령 햇살이 얄밉게 들이친다. 이따금은 우중충한 구름의 잿빛이 성난 불의 노래를 가만히 안아주지만, 이내 틈을 찾아 찢어낸 빛이 비추이고 어두움은 도무지 소용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사물이 맑게 빛난다. 늦은 오전의 활기참에, 세상은 계곡을 굴러 떨어지는 많은 물소리처럼 반짝인다. 안정적이다. 감성의 요동은 이성의 정적에 초토화됐다. 위선이 잡초처럼 살아난다. 이대로…… 도무지 쓸 수가 없다.

그래도 굳이 쓰려면, 무얼 쓸까? 행인들을 묘사할까? 사물에 떨어지는 빛의 표정들에 대해서? 차가운 물컵에 곰보처럼 돋아 오른 방울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지난다.
넘어져라. 싸워라.
구두굽이 무너지던가,
거리의 실갱이를 벌이던가.
무엇이든 터져봐라.
감성은 우는 사자처럼 먹이 감을 노리고,
이성은 철저한 조련사처럼 사유에 족쇄를 채운다.
아! 버려진 노트
죽어가는 안개처럼 투명해진,
차갑고 딱딱한, 그대 사유함의 절망.

그러다가 불현듯 껍질 밖으로 빠져 나온다. 희미한 벽이 생기면서 해파리처럼 흐느적대며 유연하게 분리된다. 이제는 자유롭게 유영하며 인형극을 이끄는 절대자의 손가락처럼 멋대로 춤을 춘다. 어느새 스스로가 사건의 중심이 되었다. 이내 감성의 총탄이 촉발되고, 주인공은 결국 안으로 해법을 찾았다. 이름하여 명랑자작활극.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했다. 백지는 불공평한 시간들처럼 날렵하게 기록됐고, 초점 없는 눈으로 그걸 보는 주인공은 나를 쏙 빼 닮았다. 곧 뚫어지게 쳐다본다. 시침, 분침, 초침은 삼 방향으로 날아가 박히는 화살촉 같다. 시간과 공간이 빛의 속도로 휘어나가고, 만상의 꼴은 조물주가 가만히 비틀어 쥔 듯, 보기 좋게 구부러졌다.

어느덧 이성과 감성은 동시에 터져나갔다. 마치 트렁크가 열린 채로 질주하는 고급 세단처럼, 쌍둥이 유모차에 가득 실린 폐지, 깡통, 호리병처럼, 구멍 난 스타킹과 삐뚤어진 가발, 그리고 모든 형형색색의 현실들과 느낌들의 징검다리처럼. 그래. 퍽 유쾌했다. 사나이는 오래된 작업복의 노린 맛이 나는 주머닛담배를, 블루베리 머핀에 생크림을 얹은 듯이 음미했고, 아가씨는 허벅다리의 절반 이상이 드러난 미니 스커트와, 몸을 숙이면 가슴이 그대로 드러나는 상당한 V넥을 입고 나와서는, 연신 핸드백으로는 다리를, 손바닥으로는 가슴을 가려댔다. 그러나. 이해할 수 있다. 삶은? 코미디니까.

추억하면, 우리 유년의 꿈은 어느덧 터널의 외로움처럼 버려졌다. 널 부러진 건설장비들처럼, 전에는 소녀였을 처녀 된 어른의 헤진 밀랍인형들처럼, 썩은 과일들과 수술실의 핏빛 고름과 취조실의 고문기구들과, 혹은 사랑이 끝난 연인들의 다감한 표정들과 땀의 채취들처럼…… 난센스처럼, 조롱처럼, 기롱과 행음의 기억치 못하는 수많은 잔상들처럼. 그렇게 유년은 소름 돋는 쇳소리를 내며 성년의 누추한 터널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이해할 수 있다. 삶은? 비극이니까.

과연 퍼즐이 완성되듯 비극과 희극은 맞대고 섰다. 오늘은 벌써 내일이 왔다. 그래서 어제가 됐고, 다 지워갔다. 또 하루. 명멸하며 푸드득댄다. 다 된 전등 갓이 노란 눈을 껌뻑이며, 어디선가 몰아온 바람의 아우성에 좌충우돌 흔들리듯이. 그러다가 지지직 외마디 비명과 함께 정전 횡사하듯이, 의당 끊어지고 깨어지고 약속대로 버려진다. 왜 꼭 삶이 그럴까? 수수께끼처럼 달콤하고, 동화처럼 아련하고, (그래서 그런가? 방만과 애착이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그저 희미한 반짝임과 애매한 파닥거림, 매양 그런 조각 맞추기라니.

요사이는 꾸준히 찾아오는 오늘들에 면역이 생긴 것 같다. 마치 여분의 스물 네 시간을 얻은 양으로, 늘 그 싱거움과 무료함을 뽐내는 오늘의 천재성 앞에 아무런 감흥이 없다. 일평생이라는 거인의 심장은 결국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늘들의 차분한 박동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큼성큼 걸어나가야 할 자리에는, 어느덧 세련된 소피스트들의 헛된 속임수와 초등학문을 닮는 일만이 한창이다. 참 무모하다.

이를 테면 아침마다 화창한 햇살이 키스해주는 곳에 대한 환상을 품은 영국인들처럼,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양과 훈육의 휘장 막을 걷어내는 일이라 꿈꾸는 천진한 아이들처럼, 이미 그곳에 있어 매양 받는 일에 지친 사람일지라도, 이미 그리 되어 책임과 의무의 철창에 구류된 어른일지라도, 한 번도 키스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처럼, 한 번도 어른이지 못했던 어른들처럼; 영국인들처럼, 아이들처럼, 그렇게 오늘의 얼굴에 환상과 꿈의 메스를 댈 수 있을까? 단지 미인이 되기 위해서. 익숙함과 지난함과, 때론 산만하고 재기 발랄한 조각 망상들까지도 쓱싹쓱싹하며 툭툭툭 털어낼 수 있겠느냐 말이다. 천천히.

전에는 상념이 교통사고 같은 줄은 미처 몰랐다. 질서 정연한 망각의 하이웨이에서 온갖 것들은 쏜살같이 내달리는데, 불현듯 그 중앙을 가로막아 기억, 추억, 반추, 변형, 모집, 조합 따위의 작당을 하려 하니…… 곧이어 쿵쾅쾅쾅! 브레이크를 세차게 밟았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 곧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남은 것은 누더기처럼 헤진 상실의 편린들.
그 상실의 야생 귀퉁이에서 모조模造의 하이에나 떼가 뜯어 먹다 만 죽어 썩은 고기들.
그 시체더미 위로 손을 비비는 파리떼들.
그 파리가 밟고 문질러 왔던 모든 먼지더미들.
그 먼지더미의 한 올, 한 올들이
내가 누운 창가로 떨어지는 로맨틱한 햇살에 놀라 비스듬히 터져나가네.
아! 아름다운 망각의 하이웨이,
거기서 일어나는 몇 가지 충돌과,
상실과 먹이사슬과 먼지더미의 불꽃놀이와,
햇살의 어리숙한 잔치라네. 상념은.


IP *.230.1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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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7.21 06:32:02 *.36.210.11
놀랐어요.

당신이에요? 그대 글이냐구요.

놀라워요.


가슴이 뛰어서 읽지 못하겠군요.

밤을 재워 다시 읽었는데 또 그렇군요.

어디에 갔다 온 거죠?


지난 번 글들을 몇 개 찾아 다시 읽었어요.

이런 덧글이 달려 있더라고요.

{{{...

그 일관성이
노력이라는 것으로도
재능이라는 것으로도
천재라는 것으로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은 눈치채셨겠죠?

<< 객관적인 우주 즉 물리자연에 대해 우리가 그것의
실체를 이해하고 통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진보하고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것은 발전이나 변화
없이 일관성 있게 존재해 왔다. >>
- 차머스 - }}}

이 글도 그리고 어느 날의 덧글도

놀라움과 또 일깨움에 벅찬 감동이네요.


서두르지 마시고 혼자서 책이 나오더라도

연구원에 지원하면 어떨까요?

난 왜 그 마음이 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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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7.22 23:33:16 *.179.68.77
글 잘 쓰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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