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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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현실주의 그 자체이니까 아무도 나를 쫓아내지 못한다"
앙드레 부르통과의 불화로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제명당하자 살바도르 달리가 한 말이다.
그 누구보다 자신이 천재임을 당당히 내세운 스페인이 나은 또 하나의 초현실주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이다.
영화는 그가 파리로 건너가기 이전, 1922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대학생활을 그리고 있다.
거기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천재임을 알아보는 친구이자 연인인 시인 "로르카"를 만나 서서히 그 천재성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스페인 내전의 정치적 희생양이 된 로르카는 달리의 천재성을 단박에 알아보고 친구로 다가가게 된다. 하지만 역시나 토탈이클립스에서처럼 천재들은 성별을 넘어 자신들의 천재성을 알아봐주고 이해해주는 이들에게 심하게 끌리고 빠져드는 걸까. 이들 역시 어느 날 밤 호숫가에서 드디어 우정의 경계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그런데 난 문득 이 장면을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랭보의 영화에서도 그러하지만, 천재성이란 참 무서운거구나...하는 생각말이다. 그 광기는 때로 인간의 본성까지도 넘어서니 말이다. 랭보도 그러하고, 달리도 훗날 갈라라는 여성과 사랑을 나누니, 이들은 동성애자들이라기 보다는 양성적 삶을 살게 된다. 결국 어느 모로보나 이들에게 사랑은 인간 사회가 만들어놓은 규범적 사랑이 아닌 자신들의 천재성 (그들의 입장에선 그저 자신들의 본질이 될 것 같다)을 알아봐주고 이해해주는 누군가가 가장 중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세상을 향해 한 점의 쭈삣거림이 없이 삶에서도 지독한 초현실주의적 삶을 살다간 달리.
동성애에 이어 자신보다 10년이나 연상의 여인 갈라, 단 두 사람만을 자신의 삶 깊숙이 끌어들여 사랑했던 달리. 어느모로보나 일반적인 범주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천재의 사랑이다.
솔직히 영화는 기대만큼 달리의 삶을 담아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천재들의 영화를 대할 때마다 늘 느끼는거지만, 천재들의 삶을 단 2시간정도의 영화에 담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시도가 아닐까 싶다. 더군다나 자신의 태아적 기억마저 지니고 있다고 큰소리치는 달리와 같은 천재의 삶이란..
그렇다면 나는 왜 천재들의 삶을 다룬 영화를 쫓고 있는걸까. 물어보지 않을수 없다.
영화로만 놓고 본다면 그보다 훨씬 더 작품의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닿으면 늘 천재들의 삶을 그린 영화를 보곤 한다. 왜일까..
작가라면 책으로, 화가라면 그림으로 다가가야 할 그들의 삶이지만
이렇게 영화라는 시각화된 흐름으로 보면서 한 걸음 물러나 그들의 삶을 음미해볼 수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자서전까지는 아닐지라도 대개 천재들의 삶을 다루는 영화감독들은 그 자신들의 심미안도 예술가의 그것과 닮아있는 감독들이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천재들의 삶을 그들 역시 뒤쫓지 않을테니 말이다.
이 영화 "리틀 애쉬, 달리" 역시 그러하다.
상업성은 애시당초 시나리오때부터 배제되었고, 그의 천재성의 발현에만 초점이 맞혀져있다.
파리로 건너 간 이후의 달리는 이미 천재였다.
감독은 그 이전, 어떻게 그가 천재로서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할 수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흥미로운건 로르카라는 동성연인에 의해 활짝 피어오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마치 골드문트가 나르치스에 의해 자기 안의 본질을 깨닫기 시작하고 예술가의 긴 봥황의 여정을 떠나듯이, 로르카를 통해 비로소 세상은 달리를 만날 수 있었다고나 할까.
그래서인것 같다. 우주는 천재를 이 행성에 보내지만, 천재가 수천개의 꽃잎을 헤쳐내고 피어오르기 위해선 때론 조력자들의 애정어린 손길이 필요한건지도 모르겠다. 우린 그들은 때로는 스승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때론 친구로 때론 연인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걸 느꼈다. 사람은 누구라도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선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침묵의 그 시간동안 천재라면 누구라도 끊임없이 자기안의 힘을 기르고 있다. 언젠가 세상으로 향한 문이 열릴 그 날을 기다리며 말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어느 날 그를 알아본다. 누군가를 통해서 혹은 무언가를 통해서. 그러면 그는 세상과 접점을 만들어 조우하는 날이 오는게다.
얼마나 세상과 아름다운 접점을 만들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침묵의 시간에 달린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달리는 처음부터 세상을 뛰어넘어버린 천재였다.
천재로 태어났고, 천재로 살았으며, 천재로 죽었다고나 할까.
삶 전반에 광기가 흐르고, 그 광기 그대로 작품세계를 이어갔던 살바도르 달리.
어딘가 평범한 이들과는 다른 세계에 머물렀던 그를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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