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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3일 17시 15분 등록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JPG

 

대학교 2학년의 시간을 마치고 다양한 경험을 맛보기위해서 휴학을 할 때였다.

혼돈의 저울질속에서 주변에 종교를 권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그냥 나의 주관대로 택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이라는 곳을 가보고 싶었다.

그냥 문득.

수요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룹 다섯 손가락의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이라는 노래가 연상되는 그런 날이었다.

성당 외벽을 타고 흐르는 빗줄기를 뚫고 실내 안으로 들어갔다. 캄캄한 암흑속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잠시 익숙함에 몸이 적응이 될쯤 내부 한가운데 희뿌연한게 무언가 달려 있었다. 번개가 내려치는 잠깐의 빛속에 언뜻 보니 십자가 모양 같았다. 그런데 그 위에 누군가가 매달려 있다. 일반 교회에서 보던 형태와는 다른 모습에 나는 절로 몸이 움찔거려지며, 갑자기 중세시대때 음산한 수도원 영화장면이 그려졌다.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지 무서워진다. 더 이상 그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뒷걸음질 쳐 도망을 나왔다.

뭐야. 마음이 동해서온 이곳이지만 갈등이 생겼다.

그러는 가운데 마당 입구 쪽에 동상 하나가 서있다. 저건 뭐야. 웃긴다. 이곳엔 희한한 조각품들이 많구나.

성당 안에서 보던 인물과는 다른 인간 어머니의 형상을 닮고 있었는데 품안에는 아이 하나가 안겨져 있었다.

 

무언의 이미지.

빗방울을 헤치고 흘러들어온다.

순박한 농촌 아낙네를 닮은 형상.

그곳에 품고 있는 아기는 자궁속의 태아처럼 한없는 평화로움과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맡기는 신뢰로움으로 가득해 보였다.

어둠의 점에서 비는 계속 내리는 가운데 우산 하나를 받쳐 든 이십대 초반의 남자는 한참이나 그곳을 무던히 지키고 있었다.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로 인해 나는 부정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었다. 게다가 여성의 모성 성을 제대로 겪은 것도 아니었다. 여인 혼자 생계를 꾸려나가고 자식들 공부 시켜야 했던 당신이었기에,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가면 혼자서 집을 지키고 오후 늦게나 돌아오시는 어머니를 마냥 기다려야만 하였다.

“엄마, 배고파.”

그래서인가. 나에게는 항상 사랑이라는 욕망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외로움을 채워줄 목마름을 끊임없이 갈구하였었다.

그런데 그날 그곳에 그녀가 있었고 가슴에 품고 있는 아이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반달 같은 이미지의 그녀.

한없는 자애로움으로 내려다보는 시선에 사랑의 움틈이 불끈한다.

 

또 다른 시간의 너울을 한참이나 돌아 오월 햇살 그 자리에 다시 섰다. 주변 환경은 세상의 시류에 변해갔지만 그녀는 그대로였다. 바뀐 것이라곤 비가 내리는 어둠이 아닌 초록색 수채화 가득한 한낮이라는 점.

한결같은 올곧음으로 서있는 그녀 앞에 나는 그날 그때처럼 바라보았다.

바라봄은 똑같은데 보는 대상자가 달라진 현재.

이젠 과욕의 뱃살이 부풀어 오르는 나이가 되었다.

바라봄으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어디까지일지.

 

시간은 지났어도 사람은 변했어도 세상은 달라가도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돌아온 탕자가 되던, 성공의 카퍼레이드를 펼치든, 시련과 삶의 버거움에 상처입고 찾아와 목마른 샘물을 찾는 그 누군가가 되든 상관이 없다.

그대상이 혈육의 어머니로 불리든 불가의 지장보살이든 무슨 상관이랴.

그냥 누군가의 품에 안겨 울 곳이 있다는 점.

그냥 누군가의 가슴에 기대어 새큰새큰 잠자는 어린왕자가 된다는 점.

그것이 마냥 좋은 이유이다.

밝음이 들어앉는 가운데 이제 다시 돌아갈 채비를 차려야할 때.

나는 꾸벅 절을 올린다.

다음에 또 오리다.

올려다보니 그녀는 한결같은 고요함속에 살포시 미소를 띤다.

그리고 나의 마음이 된다.

IP *.130.104.63

프로필 이미지
2012.05.18 15:31:31 *.114.49.161

100번째 칼럼 축하드립니다^^

 

과욕의 뱃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날씬하십니다.!

저는 성당 성모님과 절의 관세음보살님의 느낌이 아주 비슷해요. 

강남성모병원에 갈 일이 있을 때 일부러 성당 안에 들어가 한참 앉아있다 오곤 했어요.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바쁜 어머니...부분을 읽다가 말이 줄어들게 됩니다.

축하드립니다.^^ 100! 100! 100! 100! 짝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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