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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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연구소에서 시작한 두 건의 프로젝트가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이름하여 사자와 호랑이! 호랑이처럼 창의적인 1인으로 우뚝 서되, 어울림에서만 얻을 수 있는 환희와 경지를 누리기 위해 뜻이 맞는 사자의 무리를 찾아가는 두 개의 프로젝트는 나를 위한 맞춤 같았다. 연구원을 수료한 뒤 2년간의 각고 끝에 완성한 첫 책이 곧 출간될 예정이었고, 나는 일이 하고 싶어 몸살 날 지경이었다. 그런 시점에 선생님께서 공지하신 두 개의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절묘한 ‘동시성’이었다.
혼자 일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하는데 조직생활 경험이 없고 지방생활을 오래 해서 어리버리한 내게 그 두 권의 공저를 쓰는 과정은 알짜배기 경험이 되어 주었다. 프로젝트는 물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몇 건의 모임을 이끌어내며, 관계성과 주도성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수용능력에 집중적인 훈련을 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책쓰기와 강연으로 먹고 살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이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책쓰기’와 ‘강연’이라는 두 개의 topic으로 접근할 수 있는 small biz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하고 실험했다. 그 결과 각자의 영역을 가진 1인기업들이 사안에 따라 자유롭게 이합집산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 우리는 각자 특화된 영역을 갖고 따로 일하다가, 일 년에 두 세 번 대형 프로젝트를 엮어 함께 뭉친다.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꾸준히 독서토론과 세미나를 계속 하며, 팀블로그를 통해 세상과 소통의 끈을 놓지 않고 도전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개별적인 독립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가지고 공통의 비전을 추구한다. 호랑이의 야성을 가지고 사자의 무리성을 배척하지 않은 외유내강의 화신들이다.^^
나는 주로 오전에는 사이트 관리를 하고 글을 쓴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생각을 구체화시켜 볼수록 나의 필살기가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가령 임현지의 ‘고등어를 금하노라’ 같은 책을 볼 때 나는 내가 부끄러웠다. 별도의 직업도 없이 프리랜서가 되고 싶다면서 이토록 게으르고 전문성이 약한 내가 끔찍했다.^^ 내가 택한 분야에서 자유자재로 노닐 수 있는 내공을 쌓기 위한 훈련은 끝이 없으리라. 평생현역을 꿈꾼다면 평생학습 또한 당연한 일, 나는 가장 머리가 맑은 오전을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준비에 할애하기로 했다.
오후에는 일 주일에 세 번 강의를 간다. 문화센터와 도서관에서 ‘중년의 글쓰기’나 ‘인생을 열어주는 글쓰기, 미스토리’를 주제로 강의를 한다. 강의가 없는 날은 도서관에 갔다가 산책을 한다. 나는 생각하는 것이 좋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곰곰이 반추하여 의미를 이끌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게으르게 웅크리고 앉아 생각에 몰두하는 것도 좋고, 산책하면서 생각하는 것도 좋다.
도서관에 가는 것도 좋다. 코드에 맞는 책을 발견하면 빨려 들어가서 읽는다. 단 한 줄이라도 나의 내면을 건드리는 것을 만나면 등줄기를 타고 전신으로 찌르르 전류가 흐른다. 사진작가 조선희가 사진만이 자신을 정점에 이르게 한다더니, 나를 정점에 이르게 하는 것은 책이다.
오늘은 강의를 마치고 저녁에 와인모임이 있다. 새로 시작한 ‘카페+학습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모임’ 정모이다. 언제고 배움과 이야기와 풍류가 있는 ‘제3의 공간’에 대해 실험해 보고 싶어서 준비하는 중이다. 우리는 공간론, 평생학습, 차와 음악, 마케팅과 회계에 대해 골고루 공부하고 있는데 요즘의 주제는 와인이다. 소주는 쓰고 맥주는 무거워서 와인에 꽂히기 시작한 내게 최고의 시간이다. 아주 천천히 와인을 마시며 사람에 취하고 대화에 취하고 싶다. 하루의 노동을 치하하며, 오늘도 무사한 하루에 감사하며 나와 사람들을 소중하게 감싸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