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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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변화경영연구소 1기 연구원 오병곤 님의 글입니다
그림자
- 서유석
그림자 내 모습은
거리를 헤매인다
그림자 내 영혼은
허공에 흩어지네
어둠이 내리는
길목에 서성이며
불 켜진 창들을
바라보면서 아 외로운 나
달랠 길 없네
그림자 내 이름은
하얀 그림자
[노래 듣기]
http://blog.daum.net/honjaa/8005413
1993년 겨울, 명동 한 복판에는 흰 눈이 속절없이 내리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가려는 종종 걸음을 명동성당 옆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 나오는 신곡이 붙잡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그댈 멀게 느낀 건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는 걸 본 후 하얀 눈이 내린 겨울 밤에 그의 품에 안긴 모습이 나의 가슴속엔 너무 깊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 날 오후에도 어김없이 ‘5천원 빵’(각자 5천원씩 걷어서 술 한잔 하자는 건전한 회합의 자리)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 날 회합을 주도한 이는 35살 대머리 노총각 박대리. 오후 5시, 졸음이 막 달아날 무렵의 그의 제안은 다급한 선약이 아니면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무교동 호프집에서 계란말이와 골뱅이보다 더 입맛을 당기는 안주는 그의 구수한 입담이었다. 술자리에서 그의 입담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의 구성진 육두문자는 내 영혼을 각성시킨 성경말씀과도 같았으며 그의 유머는 삶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할 정도로 강력했다. 술자리는 유쾌, 상쾌, 통쾌를 넘어서 일종의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실현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유토피아 바로 그것이었다. 단돈 5천원을 내고 이런 황홀한 체험을 할 수 있기에, 이 맛을 본 사람은 한 두 번이라도 거르게 되면 참을 수 없는, 마약보다 더 센 금단현상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술자리를 가질 정도로 워낙 술을 좋아하는지라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1차를 시작하는 자리에서 무언의 압력을 가하곤 했다.
“오늘은 딱 1차만 하는 거야. 2차 얘기 꺼내는 사람 있으면 그 사람이 2차 전부 사.”라고 말한 날은 어김없이 2차를 갔다. 약간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삼삼오오 모여 노래방을 갔다. 박대리는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부친 후 서유석의 ‘그림자’라는 노래를 진지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리는 길목에 서성이며 불 켜진 창들을 바라보면서 아 외로운 나 달랠 길 없네’
첫 눈 내리는 밤,
골목의 등불은 하나씩 꺼지고,
지금쯤 그리운 사람은 혼자 기대어 잘까,
어느 후미진 뒷골목길 창가에 기대어,
행여 그녀 발자국 소리 한번 들을 수 있을까,
왔다 갔다 서성대는 그의 모습이 눈 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젊은 날 방황하던 그 영혼은 얼마나 가슴이 시렸을까? 그의 이 노래는 내가 퇴사할 때까지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다. 왜 이 노래에 대한 집착이 많았을까? 아마도 깊숙이 자리 잡은 외로운 내면에게 위로해주려는 마음이 크지 않았을까라고 짐작해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보여주고 싶지 않은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과거의 아픈 경험, 억눌린 욕망, 답답한 현실 등의 이유로 생겨난 그림자는 대부분 꼭 숨겨져 있거나, 이따금 상대방에게 투사되어 나타난다. 그렇지만 부정하고 싶은 그림자는 분명 나의 일부분이다. 그것도 나의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아수라백작 같은 흉측한 반쪽의 모습은 아니리. 나의 어두운 면마저 사랑할 수 있다면 그 때의 그림자는 더 이상 ‘검은 그림자’가 아니리. 그것은 ‘하얀 그림자’.
- 오병곤, kksob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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