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뫼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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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무원에 대한 인사 청문회가 진행되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런데, ‘별장파티’니 ‘동영상’이니, 옮기기에도 민만한 내용들이 요즘 뉴스를 도배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들으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내용들이 뉴스를 타고 흘러나와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뉴스를 보다가 언뜻 보이는 동영상에는 가면을 쓴 사람들이 정신을 놓고 흔들어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의 이면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무언가 과감한 시도를 하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이러한 인간 내면의 성적 욕망과 세기말의 인간의 불안한 심리를 잘 묘사한 작가로 알려져있습니다. 그가 쓴 작품들은 정신분석학을 창조해 낸 프로이드마저 칭송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의사가 되었으나, 극작가와 소설가의 길을 걸어갔으며,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상류사회의 적나라함은 그가 실제로 경험한 것들 것 토대로 형상화했다고 밝혀 더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책 <꿈의 노벨레>는 한때 부부였던 영화배우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이 동시에 출연하였으며,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이 되어 커다란 화제를 몰고 온 영화, <아이즈 와이드 샷>의 원작이 된 소설입니다. 세세한 부분에서는 원작과는 약간 거리가 있긴는 하지만, 원작이 가지고 전반적인 분위기인 죽음, 섹슈얼리티, 상류사회의 욕정, 섹스에 대한 거짓된 환상에서 오는 병적인 정신세계의 쓸쓸함은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겨있습니다.
프리돌린과 알베르티네는 모범적이고 행복해 보이는 부부입니다. 그들은 휴가 때 각자 겪은 심리적 일탈의 체험을 서로에게 고백합니다. 아내인 알베르티네는 덴마크 장교에게 성적으로 끌린 경험을 이야기하고, 남편인 프리돌린은 산책 도중 알몸의 소녀에게 매혹당한 경험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그 둘의 성적인 체험을 이야기 한 후의 행동이 재미있습니다. 알베르티네는 결혼과 가정과 미래를 포기하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보이는 반면에, 남편 프리돌린은 이도 저도 아닌, 무력감을 느끼며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에 아내는 남편의 무기력한 태도를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상처를 입은 남편은 자신의 남성성을 시험하기 시작하죠.
이때부터 그에게 꿈같은 현실이 전개됩니다. 환자의 딸에게 사랑을 고백받기도 하고, 대학생들과 싸우기도 합니다. 또, 창녀의 유혹을 받는 등의 단계를 거친 뒤, 그는 마지막으로 '꿈'의 노벨레를 향해 나아갑니다. 즉,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가장무도회에 몰래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최근 언론에서 문제가 된 동영상에서 ‘가면’을 쓰고 파티를 벌이는 것과 마찬가지인 '묻지마 파티'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적인 일탈의 상징인 가장무도회에서 프리돌린은 회원이 아닌 사실이 들통 나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다른 사람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프리돌린만이 가면을 공개적으로 벗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런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생면부지의 여자가 그를 대신해 희생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반면에 아내 알베르티네는 꿈속에서 남성성을 보여주지 못한 프리돌린을 겁쟁이라고 조롱하고 그를 죽게 내버려두며 자신은 에로스적 판타지를 충족시킵니다.
책 말미에 나오는 번역가 모명숙의 설명을 보면, ‘노벨레(Novelle)는 하나의 갈등 구조를 정점까지 고조시키는 드라마적 구조를 갖는 산문이나 운문'을 말한다고 합니다. ‘노벨레’라는 명칭이 제목에 붙은 것은 이 작품이 극적인 단일 구조를 갖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소설은 남편이 자신의 남성성을 실험하기 위해 찾아가는 가면무도회라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현실’과, 아내가 장교에서 느낀 감정을 실현시키기위해 가정을 포기하겠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비현실성’이 주는 갈등이 정점까지 고조되는 상황을 긴박하게 보여줍니다.
슈니츨러는 19세기 말의 불안과 20세기 초 자본과 민주주의라는 가치관의 붕괴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인간 내면을 통찰합니다. 이 작품은 겉으로는 화목해 보이는 가정이지만, 남편과 아내가 가지는 심리적 위기를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줍니다. ‘결혼’ 이라는 ‘제도’에 기반을 둔 부부관계가 사랑의 내적 결속에 이르지 못하고 붕괴되기 쉬운지를 보여주지만, 실제로 우리가 지니고 있는 여러가지 제도들- ‘국가’ ‘사회’ 그리고 ‘가정’들도 얼마나 심각한 심리적 위기상태에 놓여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빈에서 영위되는 세기말적인 애욕의 세계를 정신분석을 통해 탁월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비단, 빈의 상류 사회의 부분간의 문제가 아닌, 2013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벌어지는 고위 공직자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을 보여주는 것 같아 놀라움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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