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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 26일 22시 50분 등록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 조금 도움이 될까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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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상인의 최고는 아마 ‘경영의 신’으로 불리우는 마쓰시다 고노스케일 것이다. 그는 오사카 상인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마쓰시타가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쌀투기에서 실패하고 사업에 망했다. 아홉 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3년 동안 잔심부름을 하고 애를 돌보는 보모 역할을 했다. 그것이 그의 첫 직장이었다.

그의 두 번째 직장은 자전거포였다. 1905년의 일이다. 지금과 달리 그 당시 자전거는 첨단 이기물이었다. 보통사람은 만져보지도 못할 자전거를 직접 닦고 고치며 판매하는 일을 즐겁게 했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길에 물을 뿌리고, 밤 늦게까지 점포를 지켰다. 손님이 없는 동안 끊임없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5년 후 열 일곱 살이 되던 1910년 세 번 째 직장인 오사카 전등회사직공으로 입사했다. 당시 전등 역시 신문명의 상징이었다. 이윽고 스물 세 살 때, 창업하여 마쓰시다 전기기구 제작사를 차리게 되었다. 그에게 커다란 부를 가져다 준 것은 ‘쌍소켓’이었다. 두 개의 전구를 꽂을 수 있는 이 전구는 엄청나게 팔려 거금을 모았다. 다음에는 자전거의 전조등을 개발하여 커다란 호응을 얻으며 20대 후반에 이미 청년 실업가로 떠오르는 별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운좋고 노력하는 젊은이들이면 얻을 수 있는 성공담과 별로 다르지 않았을 지 모른다.

그러나 마쓰시다의 진면목, 절대로 놓쳐서는 안되는 일면을 보게 한 것은 불행한 시절이닥친 이후였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이 오고, 일본 역시 은행들이 도산하고 많은 기업들이 종업원을 해고했다. 그러나 마쓰시타는 다르게 대응했다. 주 2일 휴무를 정해 생산량을 줄였지만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았다. 공장은 반나절만 가동했지만, 직원의 급료는 깍지 않았다. 대신 휴일을 반납하게 하고 전 직원이 재고품 판매에 총력을 기울이게 했다. 두 달만에 재고품은 소진되고, 공장은 재가동에 들어갔다. 그는 ‘불황이야 말로 발전의 기회’로 생각한 인물이다.

현재 마쓰시타 그룹은 내셔날 파나소닉을 비롯하여 570여개의 계열사 25만명의 종업원을 가지고 있다. 그 창업주 마쓰시타는 자신의 성공 비법을 이렇게 말한다.

“ 하느님은 내게 3가지를 은총을 주었다. 첫째는 나를 가난하게 하셨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보모와 공장 직공으로 경험을 쌓도록 하셨다. 둘째는 병약한 몸을 주셨다. 늘 운동에 힘써 건강할 수 있게 해주셨다. 마지막으로 내가 못 배우게 하셨다. 초등학교도 못나왔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을 모두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늘 배우는 자세를 가지게 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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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후에 생각해 보고 , 홀로 서 1인 기업을 운영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말들은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늘 고객의 입장에 서라. 아는 장사를 하라. 두 개의 화살을 가지고 다니지 마라. 두 번째 화살이 있기 때문에 첫 번째 화살에 집중할 수 없다. 돈이 없으면 지혜를 보이고, 지혜가 없으면 노력을 보여라. 해보지 않고 인생을 끝내지 마라. "

그리고 마쓰시타가 한 유명한 말 “지금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 ” 라는 말을 기억하라.

마지막으로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는 이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 서른이 끝나기 전에 돈을 모아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그 대신 모든 돈과 시간을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십시요. 마흔이 넘어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뿐입니다. 돈은 사라질 수도 있지만 그대는 남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인적 자본주의의 번영의 원칙입니다. ”
IP *.229.1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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