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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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인간이 만든 작품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다. 자신을 변용시켜 정말 바라는 인생을 살고 있는 자신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여러 개의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존 F. 케네디는 어려서부터 잔병치레가 많았고 병원에서 보낸 많은 세월이 어른이 되어서도 그를 병약한 청년으로 만들었다. 연약하고 무력한 사람이라는 타인의 과소평가와 무시가 늘 그를 괴롭혔다. 케네디는 평생동안 자신을 바꾸어 재창조해 나가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위대한 여정에 올랐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신체적 약점이 있었지만 해군에 입대했다. 초계 어뢰정에서 대위로 복무하는 동안, 그의 배가 일본군의 구축함에 받쳐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그는 냉담하리만큼 죽음을 초월하듯 용감하게 행동했다. 자신이 남자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 용감한 군인, 이것이 그때 그가 원한 삶이었다. '영향력 있는 아버지가 뒤를 봐주는 병약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자신에게서 떼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는 이 성공을 발판으로 상원의원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전쟁터에서 부하를 구하는 영웅이듯, 유권자들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젊은 리더라는 이미지를 구축해 내는데 성공했다. 몇 년 후 그는 상원위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검증되지 않은 풋내기'라는 이미지를 지울 수 없었다. 케네디는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재창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전통과 인습에 도전하여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상원위원들의 이야기를 모아 '용기있는 사람들' Profiles in Courge 라는 책을 공동집필했고, 퓰리처상을 얻어냈다. 그는 이 책 속의 인물들의 정신과 행적을 따르는 젊고 용감한 정치적 후계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드디어 역사적인 1960년이 되었다. 그는 또 한 번 위대한 변신을 추구했다. 대통령에 출마했다. 젊은 자유주의 상원의원인 그는 아이젠하워 시대의 침체를 벗어나 미국의 위대한 유산인 개척자의 정신으로 무장된 선각자로서 다시 한 번 자신을 재창조해 내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활력과 젊음은 대중을 사로잡았고, 그는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 중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병약한 청년에서 전쟁 영웅으로, 전쟁영웅에서 상원위원으로, 풋내기 정치가에서 젊고 용감한 정치적 후계자로, 이윽고 미국이 가장 사랑한 대통령으로 자신을 재창조했다. 죽을 때 까지 그는 미완성이었다. 죽음 까지도 가장 극적인 최후였다.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홀로 살고 있는 자연인으로서의 자신을 상상했다. ‘느릿느릿 걷는 자가 되어 일출과 일몰을 관찰하는 것, 바람 속에 들어 있는 소식을 듣고 표현하는 것, 눈보라와 폭풍우의 관찰자가 되는 것”이 인생의 바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일정한 직업이 있을 리 없었다. 45년이라는 길지 않은 삶을 사는 동안 열 개가 넘는 직업을 가졌다. 가정교사, 학교교사였으며, 측량기사였고, 정원사, 농부, 목수였는가 하면, 연필 제조업자, 작가, 강연가이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자연주의자이며 사회 비평가였다. 그리고 죽어서는 ’19세기에 이미 21세기적 환경 감각을 지닌 선각자’ 로 평가 받기도 했다. 어쩌면 그는 이 모든 것이기도 하고 이 모든 것이 아니기도 했다. 실제로 소로는 때때로 몇 가지 직업을 동시에 수행하기도 했다. 그 러나 어떤 일을 하든 빼놓지 않은 일은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직업이란 껍데기일 뿐이었다. 본질적으로 그는 자연인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야생자연을 탐구하고 인간의 언어로 옮겨 놓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소로는 늘 ‘땅에 탯줄을 댄 자’처럼 자연을 그리워했다. 이런 바람은 그가 인생을 시작할 때부터 인생을 마칠 때 까지 지속되었다.
오랫동안의 아름다운 꿈은 실제로 소로를 월든 호숫가로 불러들였다. 1845년, 28살의 젊은 소로는 이곳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정착했다. 이 기간 동안 소로는 새로운 역사를 살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자신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자신의 인생에게 준 가장 훌륭한 선물이었다. 소로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침대 안에서 잠시 머물며 다음과 같은 기원을 했다. “나의 몸이 건강하다. 나의 정신은 깨어 있다. 내 일이 즐겁고, 사람들은 나를 믿어 주고, 나의 미래는 찬란하다." 그리고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았다. 이것이 그가 하루종일 생의 열정을 유지하는 주술이었다. 주술이 매일의 기원을 현실로 만들어 주었다. 소로는 자신의 주술의 힘을 믿은 사람이었다. 창조적 자연인이었고 사회와 생태의 경계인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소로의 이야기를 인용하고 그를 기억한다. 앞으로도 기억할 것이다. 월든 호반에서의 2년 남짓한 세월을 통해, 마음대로 살아 볼 수 있는 제국, '월든' 이라는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낸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이다.소로가 인생을 살아간 길과 케네디가 인생을 살아간 길은 극단적 대비를 이룬다. 한 사람은 자연인으로 시민 불복종을 주장했고, 또 한 사람은 세속의 정치인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들은 전혀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가치관도 다르고, 꿈도 달랐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가장 바라는 삶을 스스로에게 선물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것을 그저 꿈으로 남겨 놓지 않았다. 그들은 꿈 속으로 들어갔고, 이 그 꿈을 현실로 데리고 왔다. 그들 모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갔으며, 솟구치는 상상력으로, 현실의 저지선을 뚫고,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삶아 볼 기회를 허락했다. 그 기회는 인생을 바꿀 위대한 전환점을 제공했고, 그들은 과거와 다른 삶, 자신의 생각대로 작동하는 자신만의 세상을 살아 볼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성장과 변화를 다루는 모든 책은 시시한 자기 계발서에서부터 위대한 고전에 이르기 까지 꿈을 다룬다. 꿈이야말로 내가 상상하고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나의 이야기다.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 왔던, 인생이란 한 번의 시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절반도 살지 않고 벌써 곰팡이 나는 생각과 붕괴된 육체를 갖는다면 후반부 인생은 시작도 못하고 실패한 것이다. 꿈이야 말로 단박에 삶에 동경을 불러 넣으므로써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한다. 월든에서의 생활은 소로가 이 호수가에서 오두막을 짓기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케네디의 자기 재창조 역시 꿈의 설계도를 따라 갔다. 꿈은 주술이다. 꿈을 잃었다는 것은 자신을 다른 것으로 재창조해낼 주술의 힘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꿈은 자신을 세상으로 불러 줄 힘을 요구한다. 현실의 장벽을 넘어설 구체적인 결심과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확고하고 명료하고 완성된 것이 아니다. 변화해 가는 것이다. 인간은 시도이며 예감이며, 미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현실을 숭배하거나 존경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가 현실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때 비로소 달라지는 것이다” 이 말은 훌륭한 통찰이다.
분명한 것은 현실이 꿈과 미래를 장악하게 되면 내 마음대로 해 볼 만한 나만의 세상을 창조해 낼 힘은 상실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늘 결정적 순간을 노리고는 있지만 그때가 오면 슬그머니 발을 빼는 슬픈 패배를 되풀이 하게된다. 자신의 미래를 현실로 부터 지켜 낼 힘을 잃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인생과 생각에게 복종하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사라지고 그들이 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다.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던 인물들은 자신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는 것을 최우선적 가치로 삼는다. 그것을 위해 현실의 위협에 대항한다. 뻔한 인생을 거부할 권리, 과거의 나를 죽일 수 있는 용기, 새로운 곳으로 떠날 수 있는 무모함들이야 말로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인 것이다. 그때 그들은 삶을 재창조해 내는데 성공한다. 인생의 터닝포인트에서 분명한 도약을 통해 완벽하게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동아 biz, 2009년 1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