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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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순박한 청년이다. 말수도 없고, 보기에도 착해 보인다. 말을 시켜보면 어눌하여 금방 쑥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시에 보기 드문 진국임이 느껴진다. 그는 세계 최고 중의 하나가 된 한국 기업에 다니는 5년차 엔지니어다. 그런 그의 고민이 깊어졌다. 나를 찾아 와 회사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져 회사를 떠나고 싶다는 것이다. 이유를 말해 보라 했다. 그가 더듬거리며 한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처음에 나는 일에 미치다시피 빠져들었어요. 재미있었거든요. 학교에서는 볼 수 없던 최신의 설비와 장비들이 나를 흥분시켰어요. 몇 년 동안 그랬지요. 그런데 요즈음엔 회사가기가 싫어요. 사람들이 나를 이용하는 것 같아요. 대부분 다 박사고, 똑똑해요. 5년이 지나니 나에게도 어떤 자리가 주어져야하는 데, 잡다한 일만 내 차지가 되고, 내겐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러니 일도 잘하기 싫어요. 나는 사람과 관계에 지쳤어요. "
20년간 직장인이었던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한 팀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경쟁구도 속에서 밀린 것이다. 아무리 잘해도 기회가 없을 것이고, 묵묵히 일해도 저평가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입장을 몇 년이 지나서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박사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고 싶다한다. 그곳에서 직장을 구해 눌러 앉고 싶어한다. 전력을 다해 일하면 그것을 인정해 주고, 또 그런 사람들도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조직이 그립다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아주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 되었다. 과소평가를 받는 것과 과대평가를 받는 것 중 장기적으로 보아 어떤 것이 더 나쁜지 물어 보았다. 그는 더듬거리며, 아마 과대평가를 받는 것이 더 두려운 일일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내 함정에 걸리지 않도록 경계하는 듯 했다. 그의 눈빛은 '그러나 당신도 한번 과소평가를 당해 보세요. 그게 얼마나 쓰라린 지 알기나 해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단기적으로 보아 인생을 불공평하며, 그 불합리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세상의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고, 누구든 자신을 포장하는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기질적으로 착하고 순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쉽게 저평가당하는 요인이다. 그렇다고 사나워질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결국 포장 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두 번 째 이야기는 바로 그 내용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다시 그에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 지 물었다. 그는 꽤 잘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현재의 직무 중에서 가장 핵심적이면서 적성에 잘 맞는 일에 시간과 관심을 집중하라고 말했다. '시키는 일'을 하는 단순한 월급쟁이가 아니라 자신의 할 일을 '팔아야 하는 비즈니스'로 인식하는 경영자의 마인드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객은 결국 최고의 서비스와 기술을 살 것이다. 직장인에게 중요한 고객은 바로 회사다. 먼저 '그 일에 관해서만은 회사에서 가장 차별적인 사람'이라는 자리를 점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필살기를 갖춘 진정한 직업인'이다.
주머니에 송곳을 넣으면 그 끝은 주머니를 뚫고 나오게 마련이다. 지금 주어진 일 중에서 중요하고도 적성에 잘 맞는 일을 선택하여 집중할 수 있다면 누구나 그 일들에 대해서는 아주 잘해 낼 수 있다. 다산 정약용선생은 부족한 두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가장 평범한 사람도 한 분야를 들이파면 그 일에 대해서만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된다'고 격려해주었다. 얼마나 간단하고 핵심적인 조언인가!
나는 그 순하고 쑥맥이며 진국인 청년에게 하나의 일, 하나의 분야에 통달하라고 말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술, 나는 그것을 필살기라고 부른다. 필살기는 승리의 급소를 걷어차는 죽여주는 기술이다. 그것은 동시에 우리 자신을 걷어차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죽여준다'는 것은 표현의 끝이다. '모든 것을 넘어서는 탁월함'에 대한 가장 서민적 표현이다. 그건 아마 삶이 죽음으로 완성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평범한 재능을 비범하게 숙성시키기 위해, 내일 죽을 듯이 오늘을 살아야 겨우 얻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곳에 평생직업의 길이 열린다. 직장은 필살기를 익히는 도장이고, 우리는 필살기를 통해 세상의 전진에 공헌한다. 왜냐하면 나로 인해 그 분야가 그 만큼 깊어지기 때문이다.
피한다고 피해지지 않으며, 조직을 탓한다고 조직이 바뀌지 않는다. 변화는 내가 현실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줄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착한 인재' 가 되라. 모두 함께 일하고 싶어할 것이다. '순한 독종'이 되라.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 기고문은 부산일보/ 대구 매일 신문 2010년 3월 8일자에 '필살기 하나를 가져라' 라는 제목으로 동시 게제되었던 내용입니다. 특히 새로운 연구원들이 들어오는 봄, 그들이 마음으로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
<꿈을 꿀때는 영원히 살 것처럼 불가능한 꿈을 꿔라.
그러나 그 꿈을 실천할 때는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
지난 2월 해냈어야 하는 일을 못하고나서,
내내 위의 문구가 저를 따라 다녔습니다.
그리고 3월, 끙끙거리며 매달린 결과
작은 결과물이 하나 나올 것 같습니다.
좋은 글을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또 무엇으로 새로운 과제를 시작할까 모색하는 중이지요.
동시에 떠오르는 말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오늘 죽을 것 처럼 살아라>입니다.
오늘 읽은 필살기는 여기의 젊은 친구들에게도 샘물처럼 퍼서 나누어 주었답니다.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상하이에서 보냅니다.
순한독종...
저는 선생님과는 조금은 다른 생각입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야야 하듯,
조직이 바뀌지 않는다면, 자신과 맞는 곳을 찾아 떠나는 것도 용기중의 하나이겠지요.
물론 스스로의 역량을 개발하는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다만, 개인의 실력문제를 떠나서
개인과 조직과의 사이에도 '궁합' 이라는 것이 있겠지요.
혹시 맞지않는 옷에 자신을 채찍질 하며 맞춰가고 있는것은 아닌지,
한번 돌아보는것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개인의 다양한 특성을 발휘하는 개성 보다,
조직에 맞추어야하는 획일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는
쉽지않은 문제이지요.
하지만, 다가오는 미래.
아니 어쩌면 우리곁에 와 있지만 인식하고있지 못하는 미래. 에서는
개개인의 개성과 욕망이 조직의 요구와 일치되는 조직이
더 생존 가능성이 높고 더 크게 성장할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지금있는 그 조직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을 수 있겠지요.
이런 본질적인 질문들이 현상을 직시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결국 선택은 고민하신분의 온전한 몫이겠지요.
많이 생각하시고, 자신과 거짓없이 이야기 나누셔서
진정 원하는 스스로의 길을 찾게 되길 바랍니다.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