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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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은 전염될까 ? 그럴 리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다. 과체중인 사람들로 둘러 싸인 사람은 그 자신도 과체중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닭들은 물리도록 먹이를 많이 먹고도 옆 닭장에 굶주린 닭들이 들어와 먹이를 먹기 시작하면 덩달아 또 다시 먹기 시작한다고 한다. 웃기는 일이다. 그런데 그 웃기는 일이 인간에게도 똑같이 발생한다. 인간은 혼자 먹을 때 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먹으면 35% 정도 더 많이 먹는다고 한다. 네 명이서 함께 식사를 하면 75%나 더 먹고, 일곱 명 이상이 식사를 하게 되면 혼자 먹을 때 보다 96%를 더 먹는다고 한다. 그러니 식성이 좋은 친구와 어울려 식사를 하면 혼자 먹을 때 보다 훨씬 더 많이 먹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닭보다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인간은 늘 실용적이거나 합리적으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치마가 짧아지거나 길어지는 것, 넥타이가 좁아지거나 넓어지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에 의해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중요한 선택을 할 때,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쉽게 욕망의 자동시스템에 의해 감염되어 합리적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때가 많다.
넛지 nudge 란 무의식적인 선택 프로세스에 외부적인 영향을 줌으로써 행동에 변화를 주기 위한 부드러운 개입을 뜻한다. 말하자면 자유주의적 개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어떤 의도를 가진 선택 설계자(choice designer)가 의도적으로 교묘하게 인간의 선택 방식에 영향을 미칠 때 사용할 수 있는 힘을 뜻한다. 예를 들어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건강식 음식을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진열하는 넛지를 이용하여 학생들에게 좋은 음식을 더 많이 먹을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이것은 선한 의도를 가진 넛지다. 그러나 만일 특정 식자재 납품업자로부터 돈을 받은 부패한 공무원이 그 식자재를 쓴 음식을 가장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진열하여 수요를 높혔다면 이것은 악한 넛지가 된다.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이 다듬어 놓은 '부드러운 개입' 넛지는 무의식적인 심리적 판단이 경제적 선택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명료하게 보여 줌으로써 현명한 선택에 이르는 길을 찾아가도록 돕는 개념이다. 우리는 화가 머리끝 까지 나서 분노에 찬 이 메일의 발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메일의 상당 부분이 분노에 가득 차 있습니다. 진짜 보내시겠습니까?' 라는 귀여운 경고 메시지를 한 번 노출 시키는 것만으로도 과격한 메일을 보내고 난 뒤의 후회와 자책 그리고 갈등을 없앨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일상의 사소한 넛지에서부터 기업들이 환경에 이로운 행위를 할 때 강력한 환경 인센티브를 작동시켜 오염물질의 배출을 줄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시급한 사안에도 넛지를 활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이 부드러운 선의의 개입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유로든 개입에 반대하는 반개입 원칙주의자들은 온건한 개입주의를 받아들일 경우 분명히 극도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간섭이 뒤따르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럴 수도 있다. 역사는 분명히 그런 위험이 상존했음을 증명해 준다.
그러나 우리는 선을 행하는 일에도 용기와 일관성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선함이 현명함을 낳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링컨의 말대로 '우리의 본성 중에서 상대적으로 착한 천사'를 독려하면 인간의 삶은 지금 보다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