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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 심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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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2일 06시 50분 등록

지난해 해외출장길에서 아내로부터 갑작스레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제발제발하며 귀국한 토요일 저녁, 선생님께서는 소천하셨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은 제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년이 다 지나도록 추모의 글 하나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니, 제가 참 팍팍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아니면 오히려 게으르게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열흘 전 꿈속에서 미소짓는 선생님 모습이  페이드아웃되면서 잠을 깨었습니다. 두 번째 입니다. 이따끔 일찍 깨어난 새벽, 책상에 앉으면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선생님과 함께한 몇몇 장면들 잊지 못해서 그런가 봅니다. 추모의 글, 여전히 뒤로 미루는 대신, 오래전 블로그 비공개로 써두었던 기록 하나 옮겨 봅니다.

 

 

#1

새벽에 눈을 뜬다. 2층에서 아래층을 내려다보니 불빛이 켜져 있다. 선생님께서 벌써 일어나셔서,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쓰고 계신다. 인사를 드린다. 잠시 후 말씀을 건네신다. 내 속의 나를 끄집어 내기 위해 질문을 던지신다. 함께 찾아보고자 한다. 시간을 가져보자 한다. 더하여 다른 관점에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서 격려하신다. 아침이 된다. 레몬 껍질을 함께 벗기기 시작한다. 뒤늦게 일어난 사람들이 하나 둘 합류하기 시작한다.  - 2005년 1월, 양평 대호 펜션에서

 

 

#2

약속 시간에 늦었다. 점심시간이다. 내 여자 친구를 소개시키는 자리였는데, 두 사람이 먼저 인사를 나누고 말았다. 여자 친구를 소개한다. 우리의 만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자못 진지하게 회사에 관련된 조언을 구해 보기도 한다. 일단락이 난다. 자리를 옮기기로 하고 일어난다. 아주 작은 실랑이 끝에 선생님께 밥값을 내신다. 차를 몰고 삼청동 길을 지난다.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차를 마신다. 촉촉히 내린 비에 깨끗한 서울이다. 간간이 흐르는 침묵도 좋다. 만끽해 보지 못한 평일의 여유로움이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그러다가 조심스레 부탁드린다. 한 두 가지 코멘트와 함께 수락하신다. 감사 인사를 드린다. 다시 광화문으로 내려와 혜어진다. -2005년 9월, 광화문 싱카이, 그리고 삼청각 찻집에서.

 

 

#3

기다린다. 마침내 오신다. 사모님과 함께다. 인사를 드린다. 웃어주신다. 소개해 주신다.  그들의 옛날 이야기를 듣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배가 부르다. 그만 나선다. 천천히 걷는다. 언덕을 올라 계단 높은 집에 도착한다. 계단을 따라 오르니, 진도개가 짖는다. 집안을 구경시켜 주신다. 작업실도 구경한다. 작업실을 지나 전망좋은 테라스가 있다. 테라스에서 포도주를 즐기며 담소를 나눈다. 밤이 깊어 인사를 드리고 돌아선다. -2005년 11월, 상명대 앞 중국집 팔선생, 그리고 선생님 댁에서

 

 

#4

우리가 준비한 혼인서약서를 낭독한다. 목소리에서 약간의 떨림이 느껴진다. 고정된 마이크를 떼어서 우리에게 맞추어 주신다. 낭독이 끝나자, 간단히 우리를 소개해 주신다. "저는 이 두 사람들이 자기가 되려고 하는 그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정말 아름다운 결혼식입니다. 주례가 어찌 주례사를 안할 수 있겠습니까? 간단하게 주례사를 하겠습니다. 꼭 세 가지만 당부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가정 하나를 만들어 줄 것, 하루에 한 시간은 반드시 자신을 다듬고 수련하는 시간이 되도록 할 것,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신뢰받고 믿을 수 있는 지원자와 스폰서가 될 것.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메시지는 명료했다. -2005년 11월, 결혼식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403326FDEBC44EC03ADD0C6D1B1808F8CCED&outKey=V1244eb068332cb81be02180816f812bd12a73d5d959282e9c362180816f812bd12a7&width=720&height=438 

 

 

#5 청평호

나는 청평호의 아침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선생님을 곁에 두고 그저 호수만 바라보았다. 그저 깊고 그윽한 풍경을 즐길 뿐이다.

"......."

"이런 곳이라면...세상사 다 잊고, 자신만의 세계를 이룰 수 있었을거야..."소로우 이야기를 다시 꺼내셨다.

"......"

"너도 이런 곳을 좋아하지?"

"예"

짧게 대답하고 만다.

"......"

이따금 멀리서 보트가 지나가면, 한참 후에 그 물결이 전해졌다.

고즈넉이 않아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연다.

"마음 같아요. 무슨 큰 일 난 것처럼 그러다가 얼마후에는 잔잔해 지는 것이..."

"그래, 그렇구나" -2006년 5월, 청평호반을 바라보면서

 

선생님께서 기억하는 그 시간과 공간 http://www.bhgoo.com/2011/43925#comment_43927

 

#6

그래도 미리 연락했으면 좋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테라스에 나가 차를 마신다. 우리의 1년간 살아온 이야기가 화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사실은 싸움 이야기다. 사모님께서 종종 호응해 주신다. 선생님은 잠자코 들어주시다가, 짧은 조언을 하신다. 밤이 늦어 서둘러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2006년 추석 무렵, 선생님댁에서

 

 

#7 청화원

한창 놀이판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없다. 선생님과 나, 그리고 아내가 좌탁을 두고 마주 앉았다. 아내가 대신해서 묻는다. 직장에 대한 고민을.  직장을 떠나기전에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꽤 오랜시간 말씀을 주신다. 선생님에게 이미 정리된 내용이지만 나를 위해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대신 특강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밤 깊은 이 시간 이런 자리가 너무 좋다.  -2006년 10월 청화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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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4 01:06:59 *.226.200.24

추억할 아름다운 장면들을 많이 가지고 계시는군요. 너무 슬프면 가슴에만 담아두고 쉽사리 꺼낼 수가 없기도 하지요. 어느덧 스승님 가신지 한해가 다가오고 대를 잇는 노력으로 연구원들이 생전에 계획하셨던 뜻대로 10기연구원을 선발하고 있는 시점에서 봄바람이 살랑거리기 시작하니 갑자기 가슴 뭉클하던 중에 심우당 님의 글을 접하니 그리움 더욱 깊어지네요. 사부님 계신 그 별에서는 투명인간처럼 우리들 곁에 언제든 바짝 다가와 보고픔과 그리움 미소로 장난 같은 걸음으로 화답해 주실 수 있나 봅니다. 우리들 그립고 아쉬운 마음 마음들 느끼어 아시고 소탈하게 활짜 옷음으로 흗뿌려 주시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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