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제
- 조회 수 5795
- 댓글 수 0
- 추천 수 0
● 자세히 읽어라
글을 볼 때 이해한 곳에서 다시 읽어나가면 더욱 오묘해진다. 작가의 언
어는 꽃밭과 같다. 멀리서 바라보면 모두 좋게 보이지만, 분명하게 좋은
것은 가까이 다가가서 봐야 보인다. 공부는 자세히 보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에 지
름길은 없다. 지름길은 사람을 속이는 깊은 구덩이다. 껍질을 벗겨야 살이 보이고
살을 한 겹 다시 벗겨내야 비로소 뼈가 보인다. 뼈를 깎아내야 비로소 골수가 보
인다.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사부가 물었다.
“책은 주로 언제 읽어?”
“주로 자투리 시간에 읽습니다.”
사부의 표정이 약간 어두웠다. 뭔가 보충이 필요할 것 같았다.
“병원에 갈 때도 책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렇게 읽어도 될 책이 있고, 일부러 시간을 떼어 읽어야 할 책
이 있다. 정말 읽어야 할 책은 시간을 따로 내어 읽어야 돼.”
그 후 나의 책 읽는 패턴이 바뀌었다. 책 읽는 시간을 따로 떼어
읽으니 자연히 책의 수준이 높아지게 되었다. 고수의 한 마디가 많
은 것을 바꾸었다.
속독을 배우고 싶은 적이 있었지만 배우지는 않았다. 자세히 보
아야 잘 이해할 것 같았다. 많이 읽으면 속도는 빨라진다. 잘 쓴 글
일수록 미끄러지듯이 읽혀진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친다.
단락 전체가 좋은 문장이면 처음과 끝에 꺽쇠표시를 한다. 나중에
다시 볼 때는 줄 친 부분만 읽어도 전체의 내용을 알 수 있다
● 어떤 책을 볼 것인가
생각할 것 없는 쉬운 독서와 킬링 타임의 통속성 속에 익숙해진 우리들
에게 배움과 독서의 향기를 선사하는 책은 많지 않다. 그러나 향기를 선
사하는 책은 다 읽고 버리는 책이 아니다. 평생을 곁에 두고 봐야 한다. 좋은 책이
란 마음이 떨어진 낙엽처럼 바스러질 때, 혹은 바람에 날려 어디로 날아갔는지조차
알지 못할 때 몇 페이지 펼쳐보면 청량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책은 책이라기
보다는 향기다.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젊었을 때는 베스트셀러가 좋은 책인 줄 알았고, 유명한 여행지
가 좋은 곳인 줄 알았다. 책을 읽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을 찾게 되었다. 한
사람의 책이 마음에 들면 그가 쓴 다른 책을 더 읽어보게 된다. 책
속에서 다른 책이 소개되거나 인용되면 그 책도 사게 된다. 결국 책
이 책을 부르고, 지식이 커지면 모르는 부분도 커지게 되어 항상 갈
증이 가시지 않는다.
많이 읽다 보면 넓고 얕은 것보다는 좁고 깊은 것이 더 필요하다
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하다 보면 깊게 파기 위해서는 넓게 파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자연히 고전과 인문학 관련 책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사부와 지리산에서 아침 산책을 하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
누었다.
“주로 어떤 책을 읽나?”
“제가 읽는 책의 반 이상이 자기계발서입니다.”
나는 자신 있게 말했는데 사부의 반응의 의외였다.
“자기계발서는 이제 그만 읽어. 그런 책은 세 권만 읽으면 돼. 나
머지는 다 똑같은 소리야.”
난감한 마음이 들어 물었다.
“그럼 어떤 책을 읽어야 합니까?”
“인문서를 많이 읽어.”
“네, 알겠습니다.”
나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는 ‘인문학이 죽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문학이 흔들릴 때였기 때문이다. 그 후 독서방향을 바꾸었다. 이
제 읽는 책의 대부분이 인문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