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단군의

/

300일+

단군의

수희향님께서 201110272136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429>

600배 정진: Yes

# 3년차 가을 어느 초하루: 삶의 중심축이 이동하기 시작하다..

처음 수행을 시작했을 때 선배 도반들이 아무 생각말고 3년차까지 수행을 밀고 나가라고 하였다.
그러면 수행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 느끼게 될거라고.
수행이 무엇인지를 느끼는게 또 무언지조차 가늠할 수 없던 시절, 맘속으로 3년을 되뇌였다.
'그래, 일단 3년을 채우고보자. 뭐가 달라져도 달라지겠지..'

이 가을, 11월 정기수행에 들어가면 꼬박 3년째이다.
드디어 선배 도반들이 말하던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게다.
12월 동지가 되면 4년차로 접어든다. 불가에선 예로부터 동지를 '작은 설날'이라고 부를 정도로, 동지란 모든 액이 물러나고 달의 주기가 바뀌는 중요한 날이기에 말이다. 그날이 시시각각 다가오며 괜시리 마음이 설레인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11월 정기수행을 몇주 앞에놓고 마지막으로 맞는 초하루. 절에를 다녀왔다.
가급적 초하루에도 절에를 가야지 하면서도, 매달 초하루가 돌아오면 늘 갈등한다.
여전히 세상 일이 산더미이고, 하루라도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이 내 안에 일렁이기에.

오늘 아침, 이러저러 쌓인 일들 앞에서 역시나 망설이는 마음 상태.
이 마음이 바로 현상계에 붙잡힌 욕망과 그것을 털어내려는 마음과의 부딪힘이다.

보셨을까? 아님 느끼셨을까?
준비를 서두르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중요한 때이니 가서 3배라도 올리고 오라 하신다.
무서우리만치 나의 내면을 꿰뚤어아시고, 그때그때 필요한 한 말씀을 전해주신다.

늘 내게 높은 기대치를 걸고 계셔서 감사하면서도 힘겹게만 지내야했던 시간들 속에 원망 아닌 원망도 많이 했던 엄마인데, 요즘 가만히 생각해보면 수십년 수행을 이어오시면서 참으로 꼿꼿함을 전해주시는 당신의 정기 앞에서 나의 어리석음이 부끄러워질 뿐이다. 본격적으로 수행의 길로 접어들기전, 젊은 엄마로서 그 당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그게 당신에게 얼마나 힘겨운 일이었는지는 한번도 헤아리지 않고, 내 힘든 것만 끌어안고 끙끙거렸으니 말이다. 그로인해 누리게 된 것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고 말이다.. 못나고도 못난 것이 사람이라 하지만, 나처럼 미련하기도 참 힘들 것 같다.

그런 내가 수행을 시작한지 3년차 가을. 결국 오늘도 엄마의 한 말씀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잠에서 깨어나듯 미망의 갈등을 털고 절에를 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절 수행..

몇백배쯤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참 절에 빠져들어 나를 잊기 시작하는 그 어드메쯤 내면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 "삶의 중심축을 이동하자.."

그렇다. 지금까지는 세상을 바로 살고자 수행했었다면, 이제부턴 그 세상에서 영혼의 의식체를 떼어내는게다.
눈에 보이는 물질계 혹은 현상계가 전부가 아니다. 수행을 하며 살다보면 하나씩 둘씩 현상계 배후의 세계가 이 세상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아주 조금씩, 아주 미약하게나마 느끼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더 내 삶의 일부가 되고.. 그 찬란한 기적 앞에선 아무 할 말이 없어진다.

사람들은 흔히 스스로의 힘으로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생각하지만 위험한 생각이다.
아니, 스스로 선업과 악업의 원인이 되니 틀린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정말이지 "바른 생각, 바른 마음" 지니기를 유념해야 한다.
데이비드 호킨스는 이것을 "의도가 중요하다"라고 풀고 있다. 모든 원인이 내 안에 있다라는 또 다른 표현이 되겠다.

제일 중요한건, 나의 의도를 하늘의 뜻에 주파수를 맞추는 일일게다.
그 때 비로소 우주의 힘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말이다. 비로소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하는 거 말이다..

도대체 현대 사회에 모자라는 것이 무엇일까?
물질로만 한정지어 생각하면 넘친다. 도대체 비즈니스를 하는 입장에선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모든 것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더 좋은거, 더 특별한 거, 더 짜릿한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그러면서 터질듯 넘쳐나는 물질 속에서 공허함과 슬픔을 안고 있다.
왜..

삶을 물질계 혹은 현상계에 한정지어서는 궁극적으로 충만감이 지속되기는 어렵다.
어느 일순간 자신의 욕망이 채워지는듯한 순간에는 행복할지 몰라도 그건 찰나일 뿐이다.
그 찰나가 지나가면 사람은 누구나 또 다른 욕망 혹은 더 큰 욕망이 채워지기를 갈망하게 된다.

석가모니 불타가 깨달음을 얻는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도 마라는 시험을 한다.
그때 그가 들고나온 세 가지 욕망은 다름아닌 이성에의 사랑, 부 그리고 명예이다.
이를 달리 해석하자면 인간이 끝까지 내려놓기 어려운 것이 위 세가지 욕망이란 뜻이다.
그러니 감히 나는 사랑으로부터, 돈으로부터 혹은 권력/명예로부터 자유롭다 스스로 장담하기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의지만으로는 힘겨우니, 좋은 의도로 하늘의 뜻에 자아를 맞출 수 있어야 함이다.

세상을 잘 살기 위해 수행하지 않는다.
수행을 중심축으로 삼고 세상은 수행터로 살아갈 뿐이다.
비로소 수희향이란 한 영혼의 중심축이 거대한 이동을 시작했다.. 너무도 감사하게도..
그녀는 이번 생에 이 한걸음을 이루기 위해 태어났고, 먼 길을 돌아온듯싶다.

절에 가는 차 안에서 어머니가 이젠 더 이상 세상에 미련이 없다 하신다.
많은 걸 시도했고, 많은 걸 누려보셨지만 수행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하신다.
육신이 멈추는 날까지 기도에 힘쓸터이니 우리 또한 그리 살라 하신다..
수희향은 오늘에서야 그녀가 얼마나 위대한 어머니를 두었는지 알게 되었다..

먼별 샤먼.
어쩌면 스승은 참으로 수희향에게 걸맞는 이름을 지어주신 것 같다.
아마 스승에겐 직감적으로 그녀의 운명이 느껴지셨는지도.

세상은 그 자체로 참 아름답다.
한낮에도 별가루가 날리니 말이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