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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인님께서 20115111532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009일차 (4월 26일)

요새 새벽에 눈을 뜰 때 가장 먼저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가?> 행복한 마음으로 시작하는가? 아니면 두려운 마음으로 시작하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쫓기는 듯한 두려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대체로 그렇다. 사람을 행동에 이르게 하는 데 2가지 원리가 있다고 하는데, 하나는 좋아 죽어서 하고 싶어 미치는 일, 하나는 너무 괴로워서 피하고 싶은 일 두 가지다. 다시 말해 즐거움을 좇는 일, 괴로움을 피하는 일. 매 순간 우리의 선택을 이끄는 데 있어서의 근본 원리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새벽 기상을 실천하기 전에는 늘 아침에 이런 전쟁을 하곤 했다.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뜬다. 조금만 더 자자. 두 번째 알람이 울린다. 조금만 더. 조금 더 자면 혼잡한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한다. 까짓 꺼 잠만 더 잘 수 있다면야. 이윽고 세 번째 알람이 울린다. 땀을 뻘뻘 흘리며 허둥지둥 사무실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나를 바라보는 상사의 불편한 눈초리.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그 불편한 눈초리가 행동의 지렛대가 되어 나를 일어나게 한다. 이것이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행동하는 대표적 사례다.

소풍 날, 여행 가는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새벽은 알람이 필요 없다. 설레는 마음에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전 날 설레는 마음으로 늦게 잠들어 몇 시간도 못 잤음에도 어서 빨리 그곳으로 당장 달려가 행복을 만끽하고 싶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다. 이것이 행복을 찾아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대표적 사례다. 나는 이 두 가지의 미묘한 차이를 밝히는 일에 내 삶을 걸어보기로 했다. 둘 다 사람을 행동으로 이끈다. 하나는 괴로운 감정을 피하기 위해, 또 하나는 행복한 감정을 더 많이 느끼기 위해.

그런 의미에서 내가 새벽에 일어날 때 느끼는 첫 번째 감정은 행복한 감정을 더 많이 느끼기 위함이라기 보다, 괴로운 감정을 피하기 위함이 크다. 매일 같이 해오던 새벽 4시 기상의 일관된 흐름을 깨버렸다는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첫 차를 타지 못했다는 자책을 피하기 위해 등등. 생각해 보니 내가 정한 어떤 기준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자괴감을 느낄까 두려워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던 것이다. 늦게 까지 잠을 자서 얻는 감정적 이득보다 그로 인해 생기는 고통의 무게가 더 클 것이라는 기대가 나를 행동으로 이끈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얼마나 쏠린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가 느껴진다. 내가 가진 강점이 참으로 양날의 검과 같은 것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일관성에 대한 집착 등 한 측면에서 보면 성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의 필수요소가 다른 측면에서 보면 피곤한 삶의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일관성을 사수하는 대신 나는 무엇을 잃게 되는가? 내게 정말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내가 정말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잊게 한다.

고마운 재경이 누나가 달아준 나의 Me Story에 대한 댓 글을 보고 이 일지를 쓰게 되었다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의 저자인 엔서니 라빈스도 그런 얘기를 했다. <그저 목표를 성취하지 말고, 행복하게 성취하라고> 과정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 것이다. 이왕지사 길을 떠나 길 위를 걷기로 한 거 앞만 보고 걷지 말고, 위 아래 앞 뒤 좌 우를 둘러보며 한 걸음씩 걸어가자. 인생은 짧지만 또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인간은 어리석어 짧은 시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과대 평가하고, 오랜 시간에 이룰 수 있는 위대한 일을 과소 평가한다. 고개를 들어 파란하늘과 흰 구름을 보고, 좌우를 둘러보면 예쁜 나무와 꽃들이 나를 보며 속삭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벗이 있다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다. 그래 행복하게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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