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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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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김경인님께서 20115111533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010일차 (4월 27일)

사람들과 어울리느라 밤을 지새웠다. 예전엔 이런 시간이 일상의 다반사였는데, 지난해 단군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저녁에 술 마시는 일, 밤을 지새는 일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새벽 2시간을 얻는 대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대화를 나누는 일도 줄어들게 되었다. 최근에 느끼는 대인관계에서의 여러 불편한 감정들은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 버린 균형감각 상실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모 아니면 도 식의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아닌 일곱 빛깔 무지개식의 스펙트럼 식 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게다가 내 사고방식은 너무나 경직되어 있다. 사고의 유연함도 필요하다. 대안들이 너무나 추상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하다. 이 또한 나의 불편한 감정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곤 한다.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나를 향해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은 고맙다. <홀로 있을 수록 함께 할 수 있다>는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좋아한다. 나는 이 말 속에서 늘 <홀로 있음>의 가치만을 중요시 여겼고, 이 <홀로 있음>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함께 할 수 있음>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 <함께 할 수 있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살이의 균형과 조화를 찾아가는 과정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며칠 전 희석이 형과 만나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차를 마시며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생각나는 이야기 중 하나가 <경인이 너는 다른 사람들이 너를 돕고 싶게 하는 어떤 뭔가가 있어> 라는 말이었다. 실제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사람들에게 <나는 사람 복은 참 많아>라고 스스럼 없이 이야기 하곤 한다. 필요한 순간에 누군가가 나타나 필요한 만큼의 도움을 주곤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수 많은 상념에 사로잡혔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잠이 부족해 지는데, 아내에게 미안해 지는데, 아직 과제 도서도 다 읽지 못했는데, 칼럼도 다 못 썼는데, 내일 프로젝트 PT가 있는데..> 등등. 그냥 뒷일 걱정하지 말고 그 순간에 그렇게 있으면 그만이었는데, 이도 저도 아닌 시간만 보냈다. 그리고 내겐 이런 식의 고민으로 증발해 버리는 시간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의 따스한 눈 빛과 손길을 놓칠 뻔 했다. 사부님의 주옥 같은 조언과 이야기를 놓칠 뻔 했다. 모든 것을 계산적으로 호혜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피곤하다. 지친다. 상현이 형 말이 떠올랐다. 그냥 하루 늦게 일어나고 몸도 챙기고 동료들에게 숨 쉴 틈도 줘요. 콱 와 닿았다. 결국 혼자지만,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그 순간이 내게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나를 감싸고 있던 두꺼운 알 껍질에 미세한 작은 균열이 난 것 같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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