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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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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김경인님께서 20115111612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019일차 (5월 6일)

나를 비롯한 많은 동료들이 삶의 균형을 잡아가는 일에 힘겨워 하고 있다. 수 많은 역할들 사이의 무게 중심을 잡는 일이란 참으로 험난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시간과 역량은 한정이 되어 있는데, 여기 저기서 나를 보아 달라며 아우성을 친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손오공의 기술을 배워 여러 개의 분신을 만들어 각기 역할을 수행하게 하고 싶을 정도다. 그렇게 역할을 맡기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여행? 휴식?

쿨한 민방위 훈련 대장이 6시 종료 시간을 당겨 5시에 교육을 끝냈다. 와! 어차피 회사에서는 여기서 퇴근할 채비를 하고 나왔으므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걷고 싶었다. 걸으며 명상하고 싶었다. 양평에 내려가기 위해 차를 주차해 둔 종합운동장까지 대략 3~4km 정도. 비가 오다 잠시 그친 터라 공기는 촉촉했다. 건물에서 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가다 보니 양재천 산책로가 나왔다. 큰 길을 따라가지 않고 곧장 그 길로 내려갔다.

아.. 이 여유란 무엇이란 말이냐. 이런 여유가 내게 주어졌다는 사실에 너무나 행복했다. 사뿐 사뿐 걸었다. 주변에는 온통 푸릇푸릇 한 나무며 풀이며, 이제는 봄을 훌쩍 넘은 초여름의 땅 내음과 풀 내음으로 바뀐 향을 감지 할 수 있었다. 비가 온 직후라 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더욱 더 경쾌했다. 가슴 벅찬 이 충만함이여. 나 아무런 조건 없이도 행복했다. 살아서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고 충만했다. 흙 내음과 풀 내음, 물 흐르는 소리, 촉촉한 이 공기의 촉감. 그렇게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행복은 먼 미래에 있지 않음을. 언제든지 내 삶에 이렇게 소환해 올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바로 그것이다. 행복은 먼 미래 어느 날에 찾아오는 완전한 어떤 것이 아니다. 불완전한 현재의 일상 속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여유로움 속에도 행복은 깃들여 있다. 그렇게 세상은 내게 수 많은 표지를 보여주며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어리석은 나의 눈은 늘 그것을 놓친 채 표류한다.

1시간 정도의 행복을 누린 후 종합 운동장에 도착하니 다시 찾아온 현실 세계. 두산과 롯데의 야구 경기로 운동장 주변은 벌써부터 꽉꽉 막히고, 엄청난 무리의 사람들과 함성, 그리고 여기저기 버리는 쓰레기와 담배 냄새의 악취. 결국 이 두 세계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는 것. 그것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일까? 어떤 목적 지향적인 의도된 삶보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다 벅차고 넘치는 것을 길어 올리는 것을 글로 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지 못할 이유는 또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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