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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김경인님께서 20115130431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025일차 (5월 12일)

새벽에 나의 신화를 쏟아냈다. 유치 짬뽕이지만 마음은 그래도 한결 편안해졌다. 몰입하여 가슴 속에서 뭔가를 길어 올릴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가슴 속에 있다는 것은 행복하고 황홀한 일이다. 나와 세상 사이에서 아직도 균형을 찾지 못하고, 내 쪽으로 기울어진 약간의 불균형 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불만족스러운 평형'상태가 아닌 '만족스러운 불평형' 상태인 것이다. 평형상태 그것은 참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파도가 치지 않는 바다와 같다. 살아 있는 바다. 우리가 아는 바다는 단 한 순간도 파도가 멈추지 않는다. 바다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내 마음 속에 늘 일렁이는 감정의 파도도 내가 세상 위에 당당하게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렇게 일렁이는 마음의 파도를 멈출 수는 있지만 언덕 위에 올라 바라볼 수는 있다. 인간으로써 가진 능력이다. 그저 묵묵하게 바라볼 수는 있다. 감정이 어떻게 피어 오르고, 어떻게 가라 앉는지. 언덕 위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듯이 그저 지켜볼 수가 있다. 때로는 그 강물에 흐름 속에 첨벙 뛰어들어 그 속에서 마음껏 헤엄칠 수도 있다. 물론 그게 마음이 제멋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이 또한 새벽에 일어나는 것처럼 평생을 두고 수련해야 하는 무엇이라 여겨진다.

퇴근 길에 지하철 하계역에 내려서 중랑천을 타고 집까지 2시간 가까이 걸었다. 걸으며 나름 이름을 붙였는데 '생각 놓아주며 걷기'로 했다. 주로 걸을 때 뭔가를 가지고 골똘히 고민하곤 했었는데, 그런 고민을 내려 놓고 내 마음이, 내 감정이 그저 제 멋대로 날뛰게 내버려 두었다. 의도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저 언덕 위에 올라 내 마음의 흐름을 그저 지켜보고자 했다. 역시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언덕 위에 올랐다가, 그 속에 들어가 첨벙거렸다가 이곳 저곳을 왔다 갔다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이렇듯 내 마음은 엄청나게 역동적이다.

그렇게 의도하지 않은 연습을 의도함으로써 온갖 수 많은 번뇌망상에 함몰되어가는 내게 어떤 정신적 여백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걷는 순간만큼은 내가 가진 모든 역할을 내려 놓고, 페르소나도 벗어 던지고, 오롯이 내 마음과 마주하고 싶었다. 내 마음과 마주하는 길을 참으로 역설적인 길이며, 웃기고 재미있는 길이다. 의도하면 마주할 수 없고, 의도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마주하게 된다. 보살님들의 진신이 늘 이렇게 찾아왔을까? 어리석은 나의 인식의 틀이 언제나 내 눈을 흐려 놓는다. 자아는 늘 자기가 전부,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 어리석은 관념을 버리고 나보다 더 큰 것을 보자. 이것도 의도라면 의도겠지만, 나의 자아가 얼마나 작은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의도하지 않을 수 있는 첫 걸음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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