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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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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김경인님께서 2011660443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049일차 (6월 5일)

새벽에 일어나 모닝페이지와 수련일지 이렇게 두 꼭지의 글을 썼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휘갈겨 쓰는 글인데도 쓰고 나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주말은 몸과 마음을 놓아주는 쇄신의 시간이기도 하다. 나에게 쇄신의 시간이라야 평소보다 2~3시간 더 눈을 붙이는 일이 전부다. 아내가 차려준 맛있는 아침을 먹고, 함께 북 카페를 찾았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인데, 하루 3천원이면 종일 이렇게 행복한 지적 여행을 떠날 수 있는데, 그 동안 주말에 무엇을 했던 것일까? 무엇보다도 학창시절, 그저 무료하게 흘려 보낸 방학이 사무치게 아쉽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렇게 흘려 보낸 시간이 지금의 간절함을 빚었을 수도.

이순신에 대하여 알면 알아갈수록 스스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참으로 힘겨운 시절을 살았다. 중요한 것은 힘겨운 시절이 아니다. 힘겨운 시절, 하루도 버티기 힘든 그 시절의 하루하루를 살아간 이순신이다. 그렇게 그는 전란의 한 가운데서 하루 하루를 살았다. 전쟁의 한 가운데에 서면 어떻게 될까? 내 한 목숨 부지하고자 허둥지둥 도망 다니기 바쁠 것이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아주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평화의 시대에는 깊숙이 가라 앉아 있는 인간의 이런 어두운 본연의 모습이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는 것이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러한 전란의 한 가운데서도 이순신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헤아릴 줄 알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전념했으며, 자신의 어떤 위치에 있고, 그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앉아 있는 자리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원균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순신은 뜸 아래 앉아, 때로는 수루에 기대어 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았다. 심지어는 꿈을 해석하고, 점을 치는 행위를 통해서까지 자신이 처한 환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끊임 없는 내적 성찰을 통해 이순신은 자신의 중심을 지킬 수가 있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하도록 이끌었을까? 조국에 대한 사랑, 군왕과 백성에 대한 사랑, 불굴의 의지. 그러나 나는 이런 당연해 보이는 것들이 왜 이렇게 식상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물론 그 또한 타고난 천재일 수도 있고, 억수로 운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궁금한 것은 더욱 더 근본적인 내적 동기이다. 어떤 계기나 자극, 혹은 내적 통찰이 그로 하여금 초인적인 인내를 발휘하게 한 것일까? 뭔가 비밀 가까이에 다가왔다는 느낌이 든다. 이 열쇠를 찾으면 나 또한 내 꽃으로 피어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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