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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인님께서 20116161724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060일차 (6월 16일)

잠시 쉬기 위해 23층 계단을 오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즐기면서 글을 써본 게 언제더라?' 예전엔 삶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내적으로 성찰하는 마음 편한 에세이를 가끔 쓰곤 했었다. 처음 '김경인 닷컴'을 만들고 'Essay' 메뉴를 만들어 쓰고자 했던 글도 그런 글이었다. 법정스님 같은 수필을 쓰고 싶었다.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웠던 수필의 정의는 '붓 가는 데로 쓰는 글'로 기억된다. 매주 쓰는 칼럼, 매일 쓰는 수련일지, 이 모두가 수필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의 글들이 독기 가득 머금은 투쟁적인 글들이 되어가고 있다. 글은 내가 처한 상황을 온전히 반영하는 것이니, 내가 처한 상황이 투쟁적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내게도 하루 중에 맑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다. 새벽에 출근하기 전 아기처럼 자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볼 때, 집을 나서 엘리베이터가 올라올 때를 기다리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을 볼 때,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며 길 사이에 있는 나무와 풀 내음, 흙 내음을 맡을 때 나는 삶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지하철 뚝섬유원지에서 청담으로 가는 한강 다리를 건너며 찬란하게 떠오르는 눈부신 태양을 바라볼 때도 경이로움을 느낀다. 또 있구나. 잠시 짬을 내 쉬기 위해 회사 건물 23층에 올라 녹음으로 가득한 선릉공원과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서울시내와 그 사이를 흐르는 한강 물줄기를 바라볼 때 내 마음은 성성해진다. 지난 번에는 회사 옆 포스코 건물 안에 있는 커다란 수족관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열대어들을 바라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해가 짧은 겨울에는 저녁 6시 전후로 해질녘 노을을 보며, 소혹성 B-612에서 마흔세 번의 해넘이를 바라봤을 슬픈 어린 왕자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어깨가 많이 위축되고 경직되어 있음이 느껴진다. 몸과 마음은 따로 놀지 않는다. 마음이 뭔가에 쫓기고, 불편해 하고, 두려워하면 몸은 위축되고 경직된다. 지난 몇 달간 나의 시선은 계속해서 어둡고 부정적인 곳만을 향해있었던 것 같다. 아마 내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난중일기가 떠오른다. 자주 아파 괴로워 하고, 가족을 그리며 눈물짓던 이순신의 아픔이 느껴진다. 그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고통 날들을 하루하루 살아냈다.

나는 매일 무엇을 그리워 하고 있는 걸까? 사랑, 자유, 돈, 명예 이런 것들일까? 내 머릿속은 여기저기서 주워 담은 얽히고 설킨 개똥 이론들로 가득하고, 마음 또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시름으로 가득하다. 불교에서는 이것이 삶이라고 한다. 사바세계, 고통의 바다, 참고 견디는 세상이라고 이야기 한다. 딱 참고 견딜 수 있을 만큼 괴로운 것이 인생이라고 한다. 그래도 나는 늘 아름다웠던 순간을 그리워하고, 아름다울 미래를 꿈 꾼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아름다운 순간과 맞닥뜨리고 싶다.

아내와 함께 거닐던 마우이 해변가와 구름 속 할레아칼라 하늘 길, 제주도 성산 일출봉의 해넘이 풍경. 떠올림만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영원히 머물고 싶은 순간들이다. 그렇다. 나는 내 삶을 더 많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그것이 내 꿈이다.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삶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더 많은 아름다운 경험과 더 많은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 그 날이 언제인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내가 투쟁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서 빨리 그날을 오늘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하루 빨리 낯선 곳에서 설레는 아침을 맞이하고 싶은 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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