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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향님께서 20111212132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388일차   2011 12월 1일 목요일

* 새 달, 마지막 달의 시작.
 서너 시간을 잤나보다. 잠들 때나 잘 때나 눈 뜰 때나 머리 속이 성이 나 있는 것 같다. 마치 잠들지 못하는 사람처럼 몸은 잠들어도 정신은 잠을 못이룬 사람마냥 머리 속이 그랬다. 어젯밤 늦게 들이킨 두 사발의 아메리카노 덕분인 것 같다.  이렇게 어느새 늦은 밤의 커피 양을 제한해야 하는 나이에 이르렀다.

 올 해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갑자기 잡힌 6학년 전체 학생을 위한 집단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밖에서 강사를 섭외해도 되는 일이긴 하지만, 혼자 하겠다고 했고 그 것도 2반을 한꺼번에 진행하겠다고 했다. 아직 겁이 없을 수도 있고 뭣도 모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난 내가 아이들 70명은 간단하게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거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모르지 또, 나란 허당이 시대가 바뀐걸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만약 그렇다면 변해가는 시대에 진화해가는 아이들을 맞닥뜨리면 한 판 황망해하겠지. 어찌되었든 나름의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엊그제는 ppt를 손봤고 오늘은 프로그램 진행에 쓸 활동지들을 찾고 편집하고 만들고... 했다. 여기저기서 방학맞이 일거리들이 폭죽처럼 마구 튀어오른다. 그러나 나는 마냥 느긋하다.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만큼 느긋하다. 아니 몸은 많이, 정말 눈코뜰 새 없이 바쁘지만 마음만은 느긋함 그 자체이다.

남들이 퇴근한 줄도 모르고 사방이 깜깜해질 때까지 교실에 홀로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매일 그렇다.  꼼짝도 않고 않아서 남들 다 퇴근하는지, 교실이 추운지 발이 시린지 것도 모르고 들여다보고 있는것이..... 나중에 메신저에 나 혼자 남아있는걸 보고 식겁해서 뛰쳐나왔더니 다행하게도 행정실에 한 사람이 있었다. 무서버 죽는 줄 알았다.

매일, 매일이 좋다. 내 살아있어 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또 만나고 생각이 변해가고.... 일련의 그 과정이 좋은 것이다. 오르락 내리락하는 그 삶도 좋고, 화나다가 즐겁다가 죽을만큼 괴롭다가 또 어느날 기쁨이 차오르는 그런 인간인 것이 좋다.  좋았다가 싫어지는 사람 마음도 느낄 수 있고 고맙고 미운 마음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보통의 사람이란 것이 참 좋다.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가지의 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보통의 사람이란 것이 좋다.

오늘 일단락 지어놓고 퇴근 한 프로그램은 그것으로 일단 됐고, 내일부터는 도교육청 인성교육 자료개발팀에서 맡은 부분에 대한  정리를 마쳐야하고 일요일엔 전송되어야한다. 

숨돌릴 틈도 없이 일하고 싶은 일정이긴 하지만, 진짜로 빡세긴하다. 주말지나고나서 월요일부터는 초빙교사 지원서류만들어서 접수시켜야한다.  초빙기간에 대한 고민이 많기는 하지만, 생각해왔던 것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는 현실적으로 가지기 힘들것도 같고, 왠지 해야할 것 같아서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냥 한다. 나도 모른다 잘 할 수 있을지는. 그러나 시도때도없이 떠오르는 이런 아이디어를 잠재우기위해서는 그냥 해보는거다. 

그냥 해보고싶다. 되든 안되든. 내가 남을 도와야한다는 그런 거창한 마음도 접고, 교사들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그런 부담도 전제도 접고, 그냥 일이 내 앞에 있으니 하되 그 대신 그 일에 몰입을 하는 것이다. 어떠한 저항이 있을지도 내심 궁금하고 어떠한 답답함에 몸서리칠지 그것도 한편 궁금해진다. 하고 싶어했던 일이 과연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 어떤 식으로 펼쳐질 수 있는지 그 정도를 확인해보고 싶다. 

문득 남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이 궁금해졌다. 나는 늘 나를 어느 정도는 잘 안다고 생각했고 내 생각의 전모를 세심하게 알고 있다 생각하지만, 한편 생각하니 나에게는 어찌보면 일반적인 선생님들과 구별되는 그런 요소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하는 우려가 생겼다.  처음으로 우려를 했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 지는 사실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지만, 내 그런 이미지때문에 해야 할 프로그램에 지장이 생긴다면 그건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운전하는 내내 되돌리지 못할 시간 속에 남겨졌을 내 발자욱 생각을 했다. 궁금했다 과연 어떤 모양새를 이루고 있는 지....... 그러나  괜찮다, 또 다시 찍으면 된다.

때때로 내년이면 시작 될 몇 개의 프로그램을 과연 내가 진행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대체 무엇을 믿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뭐 하나 내세울 것도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언변이 좋은 것 같지도 않고, 성격이 활달하기를 하나.... 뛰어난 재주가 하나 있나... 정말 우짤라고 기가막힌 계획을 마구 그려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또 그런 기획은 누구나 다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

모르겠다, 너무 깊이는 생각지 말자. 만약 이야기를 나눈 뒤에 내게서 나올 게 없다고 생각했으면,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하라고 전권이 주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단지 그것을 위로삼을 뿐이다.

이 모든 것 시작하기 전에 철저한 사전조사와 설계가 필요하다. 그거 없으면 말짱 꽝이다. 내 정신줄 놓지 않아야하는 건 그거 하나다.  다른 건 그냥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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