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단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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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ANNE님께서 20121142305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본능적으로 알고, 시간 내내 충만해지고, 공감하고 함께 거닐고 있음을 안다.

그리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 어느 때보다 나답다.

들으면 관계를 그리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풀어내는 매듭에 반응하는 그들을 보는 것은 커다란 희열이다.

점 점 더 그 일에 빠져있고 싶어진다.

세 시간이건 네 시간이건 흐트러지지 않는 집중력이 고마울 따름이다.

 

프로그램이나 기타 등등이 아니라 개인을 만나고 가족을 만나야 한다.

내가 세상과 나눌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바로 이런 일이다.

 

마치고 나오며 그득 차오른 마음에 지인에게 전화를 한다.

내가 일하면 그도 일할 줄 알았더니 결혼식장이란다.

난 점심시간이라 일하다가 점심 먹는 줄 알았다. 오늘은 일하는 날이 아니었다.

가까우니 보기로 한다. 한가지에 빠지면 어리석고 멍청할 만큼 다른 일들이 뒤죽박죽되고 생각이 멈춰버린다.

지하철을 두 번 타고 논현역에서 그를 만난다.

 

그는 항상 나를 만나면 시골사람 구경시켜주듯 뭔가 개화시켜서 집에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는다고 웃는다.

나를 위해 그런 마음을 먹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고맙다. 남을 위한 순수한 마음을 내게 보여주는 사람이 내 곁에 있다니 행복하다.  이 순간 그와함께 있는 것이 무엇보다 마음 가볍고 따뜻하다.

 

늘 들어오던 강남역 신논현역 논현역 신사역? 아마도 이런 순이었던 것 같다, 이 길을 걸어내려가며 도시탐방의 마지막 순서로 정해두었다던 신사동 가로수길을 갔다.  이상야리꾸리한 식당에 데려가서 그야말로 평소에 먹지 않던 라멘과 또 귀엽고 앙증맞은 샐러드를 먹었다.  나 혼자서는 결코 시도하지 않았을 맛, 그와 함께라면 즐거운 경험이 된다.

 

촌 넘인 나를 구경시켜 준다면서 가로수길을 뱅뱅 돌다가 커피를 마시러 들어갔다. 아, 그리고 가기전에, 토끼 한마리를 다시 사서 내 휴대폰 뒤에 끼웠다. 전에 가지고 다니던 것과 같은 것이다.  내 꺼보고 너무 이뻐해서 인도에서 스스로 내 꺼 빼주고 돌아왔더니 왠지 허전해 같은 걸로 다시 샀다. 그는 내가 같은 것을 사는 데 딴지를 걸다가 이내 나의 강경함에 깨갱하고 만다.

 

함께 버스를 타고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그리고 좋은 세상이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한 번 거한 식사를 했고, 부른 배에 대한 죄책감에 자전거를 타며 300 칼로리를 소비하고 마음 속으로 적당한 합의를 본다.

 

자전거를 타며 적어도 오늘과 내일에 거쳐 해내야 할일을 그려보니 어영부영 시간을 흘릴일은 아니다 싶다. 오늘 상담한 내용도 정리해두어야 하고, 내담자에게 메시지도 보내주어야 하고,  또 자료개발팀에서 수정할 부분도 수정해서 보내야 하고 덤으로 얻어온 일거리도 정리해서 넘겨주어야 하고, 비커밍 출사표 등 할 일이 자꾸 자꾸 기다린다. 꼬레인 프로그램도 시간 가기 전에 빨리 다듬어서 자료 정리 해두어야 하고, 무엇보다 월요일부터는 다시 대학원에 갈 수 있도록 일을 다른 일들을 마쳐두어야 한다.

 

매일 매일을 스스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시간 보내고 나서 후회나 자책의 감정이 밀려오지 않도록 몸을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수고하고 덜 재미에 빠지려 한다.

 

내 앞에 펼쳐있는 당분간의 시간, 제발 의미있는 시간으로 채워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일정한 시간 이후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흠뻑 빠지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오늘' 글로벌 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내 꿈이 너무 작은 것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꿈도 성격만큼이나 얌전하고 소심하고...... 그야말로 좀 더 대범해져도 될텐데 말이다.

 

어쨌거나 이후의 내 세상은 어디서 어떻게 문이 열릴지 모르고 어디로 통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나이를 먹는다고 모든 것이 안으로 작아지지는 않는다. 우리의 마음도 생각도 꿈도 희망도 우리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성장하는 만큼 커가고 열매 맺을 것이기 때문이다. 좋아하고 하고싶은 일을 하며 세상과 나누고 살 수 있도록 삶을 좀 더 단순화시키고, 할 수 있는 일에 더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기로 한다.  살아움직일 수 있는 우리의 그 시간을 놓치지 않도록 호흡을 맞추어 살아있기로 한다. 열린 마음 열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열린 자세로 세상과 나누기로 한다.

 

인도에서 기차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인도인들이 생각난다. 버스에서 지나치며 보았던 수많은 광경과 인간의 삶을 그려본다. 어쩌면 그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리라. 언젠가 다시 그 곳에 갈 다짐을 해 본다.  문득 그립다. 인간 삶의 원형을 만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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