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단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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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세

  •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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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9일 22시 41분 등록
IP *.124.233.1

댓글 157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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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0 02:03:06 *.171.69.29
김경인(선배)님 이번에도 단군일지 멋지게 완수하세요!  항상 관심있게 보고 본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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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0 09:59:09 *.124.233.1
안녕하세요 경화님!
많이 반갑구요~ 메일로 일지 양식 보내드렸습니다.
오늘 하루도 건승하시길 기원할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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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
2011.01.10 05:45:54 *.180.75.152
경인아 반갑다
올해 목표하는거 꼭 성취되길 바랜다.
지난번 사부님 뵈었을때 경인이 연구원하고 싶어하는거 잠깐 말씀드렸더니
열심히 하는 사람은 누구나 기회가 있다고 하시더라
하루하루 풀무질하듯 성실한 수련으로 단군활동을 이어가는 경인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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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2 13:58:26 *.124.233.1
고마워요 누님!
제 마음을 누님께서 대신 전해 주셨네요! ^^
이번에는 꼭 반드시 제 글과 역사로 저를 보여드리려구요!
언제나 누님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 고맙습니다.
이번 300일이 가기 전에
저도 누님께 책 기부라는 공헌을 하겠다고 약속할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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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
2011.01.10 13:23:52 *.114.22.75
경인님
연구원에 도전하는구나... 꼭 이루길 바래
단군3단계도 무념정진 뚜벅뚜벅 걷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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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2 13:57:06 *.124.233.1
고맙습니다 철민형님!
이번 300일도 형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제겐 큰 기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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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0 14:19:34 *.118.58.45
별로 긴 말이 필요없는 김경인.
단군방학 동안에도 보여준 그대의 저력이라면 우주가 그대 앞날은 축복하리라 믿고 있어.
더불어 이 샤머니 누나야의 힘찬 응원도 함께 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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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2 13:56:22 *.124.233.1
제 맘도 아시죠 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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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0 14:28:50 *.124.233.1

201일차 (1월 10일)

300일차의 첫날이다. 2시 40분에 눈을 떴다. 이런 날 가장 불안하다. 다시 눈을 감으면 알람을 듣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우와는 달리 정확히 3시 반에 눈을 떠서 새벽활동을 시작했다. 출석 댓 글을 남긴 후 모닝페이지를 썼다. 하루 중 새벽을 깨우는 이 의례를 할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그저 마음껏 내 생각을 휘갈겨 적으면 된다. 내가 글을 쓰는지 글이 나를 끌어가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도 나도 다시 보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글이므로 거리낄 것이 하나도 없다. 평소보다 20분 일찍 새벽활동을 시작했고, 오늘은 ‘자발적 빈곤’의 날이라 단식을 하기 때문에 식사를 차리고 먹는데 걸리는 시간도 절약이 되어 그 시간들이 고스란히 독서를 하는 데 활용했다.

2011년의 두 번째 책은 단군 300일차 첫 번째 콘서트 과제인 조셉 자보르스키의 ‘리더란 무엇인가? (Synchronicity)’ 란 책이다.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피터센게의 서문을 읽는 순간 몰입하기 시작했다. 온통 밑줄로 도배가 되었고 책장은 천천히 넘어갔다. 지하철에 내려서도 그의 서문을 다 읽기 위해 한참을 서있었다.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라면, 이번 한 주의 독서 여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짜릿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발적 빈곤’의 날이어서 출근하자마자 어제 만들어 놓은 레몬즙을 생수와 섞었다. 2리터짜리 패트병 2병을 오전, 오후로 나누어 마신다. 종일 시큼한 레몬 향이 입에서 가시지 않는다. 30분 단위로 쏟아져 들어오는 두 컵 레몬즙, 그리고 30분 단위의 화장실 출입, 번거롭지만 점점 몸이 가벼워짐이 느껴진다. 점심 시간, 35층의 계단을 오르내렸다. 날씨도 쌀쌀하고 몸도 가벼우니 땀도 나지 않았다. 자리에 돌아오니 점심시간이 40분 정도 남았다. 아침에 쓰던 개인사를 계속 이어서 써나갔다. 자괴감을 느낀 지난주와 달리 이번 꼭지 글은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내달렸다. 매일 이런 식으로 글이 쓰여지면 좋겠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직 여전히 회사업무에 시동을 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예상한 일이다. 지금 내게 있어 최우선 순위는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일이다. 인생의 위대함에 이르기 위한 여러 단계 중 나는 내 머리 속을 휘젓고 화두를 던져주고, 깨달음의 경지를 나눌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어른을 만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선택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그 대가를 감내할 만큼 나는 간절하다. 계속해서 나를 찾아오는 고난은 내가 얼마나 간절한지를 확인하기 위한 시험이다. 스승의 위대함에 내가 공명한 것이 아니라 나의 간절함이 나를 스승에게 이끌어 가고 있다. 나는 믿는다. 나를 이끄는 이 힘이 결코 나를 그릇된 곳으로 인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오늘 날씨가 무척이나 쌀쌀하다. 지금 내 몸은 한 없이 가난하다. 내가 선택한 ‘자발적 빈곤’이다. 이 또한 내 세상 하나를 갖기 위한 나의 작음 몸짓이다. 나는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행복도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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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2011.01.10 20:32:00 *.226.153.99
역시...종류가 틀려....^^:;;
연구원 힘껏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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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2 13:56:01 *.124.233.1
고맙습니다 형님! ^^
형님의 단군하고 간소하지만 넓고 깊은 메시지를 주는
일지에 인사드리러 갈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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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19:43:54 *.124.233.1

202일차 (1월 11일)

어제는 ‘자발적 빈곤’의 날이었다. 종일 레몬즙을 탄 생수 4리터로 하루를 보냈다.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정말 독하다고 이야기 하며 손사래를 친다. 나도 바로 얼마 전까지 한끼라도 굶으면 큰 일이 일어나는 줄 아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전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매주 월요일 나는 그렇게 하루 단식 후 헬스장에 가서 평소와 같이 8~10km 유산소운동을 한다. 전혀 허기지지 않는다. 평소보다 몸이 가벼워 숨이 차오르지도 않는다. 우리의 행동을 가로 막는 것은 실제의 사건이 아니라 실제의 사건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하는 두려운 마음이다. 그 두려운 마음을 이겨내고 행동으로 옮기면 우리가 두려워했던 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허상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하루 단식을 하고 체중을 쟀다. 건강 프로젝트 시작 후 정확히 15kg를 감량했다. 이미 계획했던 목표를 초과 달성했지만 이제는 무조건적인 체중감량이 아닌 ‘체지방 감량’을 새로운 목표로 정했다. 새로운 목표와 함께 지난 석 달 간의 등록기간이 만료되어 새로 3개월을 등록했다. 지난 100일 간의 빛나는 성취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운동을 하고 와서 ‘리더란 무엇인가’를 한 시간 가량 읽고 평소보다 2시간 늦은 12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3시 40분에 눈을 떴다. 혹시나 늦게 일어나는 상황을 대비해 PC를 켜 놓고 잤다. 출석과 모닝페이지를 작성한 후 샤워를 하고 나와 간단한 아침식사를 했다. 하루 단식을 하고 난 다음날 먹는 아침이 가장 꿀맛 같다. 평소 같았으면 잠을 3시간 밖에 자지 않았기 때문에 보상차원에서 모닝페이지만 작성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샤워를 하면 각성이 된다. 첫 차를 탔다. 벌써 2주째 첫 차를 타고 있지만 의외로 이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참 많다. ‘리더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피터 센게의 서문과는 달리 조셉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너무나 살아있고 흥미진진하여 책장이 빨리 넘어갔다. 이렇게 몰입할 수 있는 책을 만나면 독서의 묘미가 무엇인지 실감하게 된다.

출근하고 개인사를 쓰기 시작하며 시간을 보니 6시 45분이다. 어제보다 20분 정도 빨리 시작했다. 8시 10분에 미팅이 있어 8시 30분까지로 계획되어 있는 새벽활동의 20분을 도둑맞은 기분이 들었는데 그 만큼 시간을 벌었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뭔가 나를 돕는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지난주부터 개인사의 항목별로 꼭지 글을 쓰면서 글을 쓰기 전 개요를 쓰고 자료를 수집하는 것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필요에 의해서 깨달은 바도 있지만 ‘내 인생의 첫 책 쓰기’라는 책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오늘은 개요를 작성하는데 모든 시간을 활용했다. 그래도 부족함이 느껴졌다. 완벽주의, 형식주의 타파! 늘 나의 파죽지세(破竹之勢)와 같은 흐름과 추진력을 저해하는 요소다.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써 내려가 우선은 먼저 마침표를 찍는다. 그리고 숙성시킨다. 생각의 침전물이 모두 가라 앉은 후 고치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너무 많은 시간을 글의 개요를 쓰는 데 할애 한 것 같다.

짬이 날 때마다 사우(師友)들의 단군일지를 꼼꼼하게 읽는다. 수희향 누나의 일지에 있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One Note에 죄다 복사해서 붙여 놓았다. 개인사를 작성할 때, 첫 책의 목차를 쓸 때, 매주 한 꼭지의 글을 작성할 때도 필요한 그런 주옥 같은 인용문들이다. 점점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과정자체를 즐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즐겁게 준비할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존재다. 내 존재를 초월하는 그 위대한 불 꽃에 소망의 장작 한 개비를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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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23:47:22 *.171.69.29
참 충만하고 차분한 일지 잘 읽고 갑니다. 본받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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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2 13:55:20 *.124.233.1
넵! 경화님도 오늘 하루 용맹정진(勇猛精進) 하시길 바랄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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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2 13:54:05 *.124.233.1

203일차 (1월 12일)

어제도 거의 12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운동과 잠 중 운동을 택하고 있다. 둘 다 중요한 가치다. 둘 다 건강을 위한 세부 가치다. 지난 100여 일 동안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한 매주 3회 이상 헬스장에 갔다. 그리고 회사에 출근하는 모든 날에 청담역에서 회사까지 2km거리, 왕복 4km를 매일 걸어서 출퇴근 했고, 아침에 13층 계단을 올라 사무실에 들어가고, 점심엔 회사건물 꼭대기인 35층을 오르내렸다. 매주 월요일 아침을 ‘자발적 빈곤의 날’로 정하여 하루 단식을 실천했다. 또한 매주 일요일 새벽 2시간~2시간 반 가량을 충랑천을 걸었다.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진 아주 추운 날씨에도 예외 없이 걸었다. 그렇게 힘겹게 과거와 단절에 성공했고, 내 몸의 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부족한 잠은 사무실에서 틈틈이 해결하면 된다. 좀 더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조직문화가 정착되길 바라지만 아직은 나의 영향력의 원 밖의 영역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에 그저 최선을 다할 따름이다.

오늘도 새벽기상에 성공했다. 더 이상 출석 글을 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기로 했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벌써 5개월째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모닝페이지를 작성하고 있다. 신성하고 성성한 이 시간이 너무나 좋다.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었다. 오늘의 시리얼에 해바라기 씨를 넣어 먹어 보았다. 맛은 일품인데 아내 말이 100g에 열량이 610kcal나 된다고 한다. 조금만 넣어 먹어야겠다. 지난주에 이어 계속해서 새벽날씨가 쌀쌀하다. 나야 괜찮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내가 걱정이다. 오늘도 지하철 속에서 나는 조셉 자보르스키의 영웅 여정에 동참했다. 너무나 즐겁다.

오늘은 어제 작성한 개요를 토대로 개인사 관련 꼭지 글을 작성했다. 개요를 짜고 글을 쓰니 술술 풀리는 느낌이었다. 출근하면서 읽은 책에서 가슴에 와 닿은 문구를 바로 인용했다. 바로 이게 독서와 글쓰기가 살아서 연결이 되어 내 것으로 승화되는 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이렇게 잘 쓰여지면 참 좋을 것 같다. 아니. 그냥 이렇게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성성한 시간이 확보되길 소망한다. 슬럼프에 빠진다 하더라도 이 시간대는 무조건 글을 쓰고 책을 읽을 것이다. 기계적이어도 좋다. 하나의 멋진 작품을 그리기 위함이다. 군데군데 얼룩이 질 수 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완성하고, 화룡점정(畵龍點睛) 반드시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이렇게 잘 할 수 있을 때 흐름을 탔을 때 조금이라도 더 수련하고 연마한다.

오늘은 희석형님을 만나는 날이다. 저녁에 만난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접혀 있는 나의 꿈을, 나의 이상을, 나의 내면의 속내를 조심스레 펼쳐 내 보일 수 있고, 그 이야기를 경청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 오늘은 내게 이런 질문을 해보아야겠다. 내가 희석형님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형님께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까? 부족한 내게 친히 시간을 내어주고 많은 이야기를 들어 주신다. 계속 질문하다 보면 좋은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형님을 만나기 전 형님의 블로그를 찾아가 그간의 형님의 소식부터 확인해 봐야겠다. 오늘도 참 황홀한 하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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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3 15:42:02 *.124.233.1

204일차 (1월 13일)

어제 저녁 희석형님을 만났다.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인상. 누가 봐도 선하고 순하다고 생각할만한 그런 사람이다. 인사를 나눈 후 선릉역 부근에 있는 형님이 아는 단골 식당에 가서 감자탕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가면을 덜 써도 되고 억지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다. 좋은 사람인 체 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부족한 사람이어도 된다. 저마다 제 갈 길 바빠 다른 사람은커녕 자기 내면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기 어려운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따뜻한 사람이다. 형님께서 사람을 무너뜨리는 4F, 즉 Family(가족), Fame(명성), Fortune(재산), Food(음식)에 대해 이야기 해 주셨는데, 가족 이란 이야기에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형님을 만나기 전에 어머니와 안 좋은 내용으로 통화를 했기 때문이다. 유독 떨쳐 버리기 힘든 가슴 속에 응어리. 나는 가족 콤플렉스를 안고 있었다. 얘기치 않은 계기로 형님께 가족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참으로 아주 참으로 오랜만에 다른 누군가에게 눈물을 보였다. 형님께서는 나보다도 더 심각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경청해 주셨다. 그리고 따뜻한 조언을 해주셨다. 그저 털어 놓았다는 것 하나, 내 이런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하나가 가슴속에 뜨끈함을 가져다 주었다. 헤어지기 전에 형님은 브라질 산 커피와 지난해 그리스 여행 때 사셨다는 남성 전용 세안제, 그리고 ‘창조적 글쓰기’ 라는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셨다. 나는 아무 것도 드릴 게 없다. 그래서 나는 마음 속으로 이희석 팀장의 평생 단골 고객이 되기로 결심했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독서 반, 상모돌리기 반 하며 돌아왔다. 이렇게 마음이 허할 때 돌아가면 기다리고 있을 아내가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번 주는 3일 연속 12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도 기상 시간에는 예외가 없다. 새벽 3시 40분에 일어나 모닝페이지를 쓰고 샤워와 가볍게 요기를 하고, 첫 차 시간이 될 때까지 독서를 하다 집을 나섰다. 오늘도 자보르스키와 함께 영웅 여정을 떠났다. 오늘 새벽 글의 주제는 개인사의 ‘프롤로그’다 홈페이지에 써놓은 프롤로그가 있었지만 분량과 내용 모두가 부족했고, 사부님께서 부여하신 주제와 달라 아예 처음부터 다시 작성했다. 그 동안 조금씩 모아둔 아이디어 꾸러미를 가지고 개요를 작성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몰입했다. 그 성성한 느낌이란!

오늘은 아내와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얼마 전 종영된 K본부 주말드라마에 나온 배우가 직접 운영하는 식당이다. TV에서 나온 호탕한 캐릭터처럼 표정도 말투도 시원시원했다. 청국장과 비지찌개를 맛있게 비우고 회사 주변을 2km 정도 산책했다. 추운 날씨 탓이기도 하지만 체중 감량 이후로 유난히 더 추위를 심하게 타는 듯 하다. 아마도 그 동안 일종의 보온재 역할을 하던 체지방이 많이 빠져나간 탓인 것 같다. 회사로 돌아와 35층까지 오르고 내리니 땀이 조금 났다. 요새 하루도 빠짐없이 점심에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 오르내릴 때마다 아이폰으로 사부님의 ‘책과 사람들’이란 독서에 관한 사부님의 나레이션을 듣는다. 지금과 같은 삶이 10년이 이어진다면 나를 상징하는 키워드도 사부님처럼 책, 독서, 글쓰기, 사람, 건강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쁘지 않다. 아주 좋다.

어제 일 하기 정말 싫다는 푸념에 형님께서 해주신 조언. “함께 일 하는 사람들이 다 네 고객이잖아. 그냥 관찰해. 그냥 재미있게 관찰해봐. 나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살아있는 기회를 누리는 것이 한 권의 독서보다 더 값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따뜻한 눈매를 나무며 이 사람들은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관찰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낯선 사람들을 그저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살아있는 현장 체험이 될 수 있다. 앞으로 내가 써야 할 글과 열정을 다해 뿜어낼 강연의 펄떡거리며 살아있는 이야기의 소재가 되어줄 것이다. 이 얼마나 좋은가! 좋다! 마음을 활짝 아주 활짝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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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4 17:08:35 *.218.179.6

205일차 (1월 14일)

어제 저녁 부서 술자리가 있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연초 첫 모임이고, 올해 나의 모토과 소통과 더불어 사는 삶이니만큼 술은 마시지 않더라도 참석하는 성의를 보였다. 예전엔 거의 매주 2번 이상은 술자리에 참석했었다. 없는 술자리도 만들어서 참석할 정도로 그런 모임을 좋아했다. 또한 그런 자리에 가면 기본적으로 담배를 한 갑 이상은 피우곤 했었다. 익숙했던 자리를 다시 찾은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그리고 그 익숙했던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찾아와 앉아 있다. 희석 형님의 조언대로 그날의 술자리를 아주 유심하게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보기로 했다. 뼛속까지 스며 있는 전통적인 조직문화 그리고 술 문화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로 옆에서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려는 시도를 해보았다. 전통이라기 보다는 인습에 가까운 것 들이 대부분이었다. 술은 흩어진 구성원을 한 곳으로 수렴하고, 손 쉽게 의사소통할 수 있게 하는 대표적 수단 중 하나다. 이끄는 사람과 이끌리는 사람 모두 능숙하게 잔을 주고 받는다. 언젠가는 나의 책에 꼭 이러한 조직문화의 단상에 대한 내용을 담아볼 생각이다.

두 번째 실험은 '듣고 또 듣고 또 듣기' 였다. 더 빨리 더 높은 사다리를 찾아 오르려는 주류 문화에서 벗어나기로 한 나에게 직장은 더이상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가 아닌 '실험과 모색의 장’이다. 유심히 듣고 유심히 관찰하다 보니 예전엔 취해 흥청거릴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각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행동을 이끄는 신념과 믿음체계, 고정관념, 콤플렉스 들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뛰어나 보였던 사람,별볼일 없을 것 같았던 사람도 결국 한 명의 사람, 한 명의 고단한 직장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안타깝게도 삶의 부름을 받아 자아의 신화를 찾아 모험을 떠나려는 사람도,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삶의 희열을 느끼는 것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오로지 내 밥그릇을 쥐고 있는 조직과 상사에 대한 충성, 불안한 유대관계를 확인하고 확인 받으려 하는 그들의 슬픈 페르소나가 보일 뿐이었다.

이런 내 시각이 균형과 중립성을 잃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내가 전향한 패러다임 중심으로 바라본 편향된 시각이다. 내가 궁극적으로 이르고자 하는 곳은 두 세계의 중립지대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아직 세상엔 내가 모르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나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세상에서 나와 가장 잘 맞는 곳에 나를 포지셔닝 하고 싶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향한 첫걸음을 이제야 한 걸음 내딛었다. 생각보다 힘겹고 뻐근하며, 쓰라린 아픔이 있다. 그러나 이미 나는 부름을 받고 여행을 떠나왔다.

문득 연금술사에 나온 현자의 말이 생각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그 신화를 실현하는 게 불가능함을 깨닫게 해준다. 그것은 나쁘게 느껴지는 기운이지. 하지만 사실은 바로 그 기운이 자아의 신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네. 자네의 정신과 의지를 단련시켜주지.” 그렇다 내가 힘들고 아프기 시작한 것은 시험인 것이다. 내 간절함의 정도를 확인하기 위한 시련이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이 한 마디만 믿으려 한다. 이 한 가지만 가지고 모든 시련을 이겨내 볼 생각이다.

아직은 뒤바뀐 나의 시선에 적응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익숙했던 것들은 매 순간 망령처럼 찾아와 나를 괴롭힌다. 멋진 검이 되기 위한 담금질이다. 태양빛이 더욱 더 찬란해 질수록 그림자의 색깔은 더 짙어진다. 이 두 가지 모두를 품을 때 나는 비로소 삶의 연금술을 터득할 수 있으리라. 공존할 수 없는 것들 사이의 조화. 이미 나는 보이는 길 밖의 세상으로 나왔다. 오늘 쓴 글은 감정적이다. 아주 감정적이다. 객관적일 것 같은 관찰로 시작해 다분히 감정적으로 마무리 된 형편없는 글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솔직한 내 마음을 담아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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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5 22:23:07 *.124.233.1

206일차 (1월 15일)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한파가 찾아왔다. 아내와 함께 지금 막 밖에서 돌아왔는데 밖에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냉동실 속을 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체중과 체지방 감량으로 예전에 비해 훨씬 추위를 타게 되었다. 그 동안 든든한 보온 메리 역할을 해준 기름 덩이들이 내 몸에 기여한 점도 있었던 셈이다.

어제는 퇴근 전 명기형님의 단군일지와 독서노트를 읽었다. 300일차 들어 더욱 깊어지신 것 같았다. 형님의 새벽산책과 모닝페이지를 통해 하루하루 지날수록 내면탐험의 깊이가 깊어짐이 느껴졌고, 또한 형님의 내실과 비주얼을 모두 갖춘, 그야말로 형님이 생산해 내신 훌륭한 지적 컨텐츠인 PDF 파일로 만든 독서노트는 책의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기 보다 그저 몇 권 읽었다는 성취감의 수단으로만 여겨왔던 그릇된 나의 독서 방법에 경종을 울렸다. 형님의 좋은 에너지에 공명함과 동시에 나도 더 나아지고 싶다는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다. 너무 기쁜 마음에 형님께 전화를 하려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내용도 깊고 비주얼도 훌륭한 북리뷰 잘 읽었구요, 치열함이 담긴 일지 더 잘 읽었어요 형님. 형님! 저도 단군이 참 좋아요. 그리고 사우들. 서로 물어 뜯는 경쟁을 하지 않아도 자극 받고 배울 수 있어서 더 좋아요. 형님의 좋은 에너지에 공명한 아우 경인”

양평에 내려갔다. 내려가니 시골에서 외할머니, 이모 내외, 외삼촌 내외분께서 올라와 계셨다. 그분들 덕분에 부쩍 외로움을 타시는 부모님 표정이 더 밝아지셨다. 부모님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 알콩달콩 즐겁고 재미 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요즘 들어 부쩍 더 이런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어차피 나중에 다 후회하기 마련이겠지만 뵐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뵈고,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 맞고, 우선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그러나 잘 지키기 어렵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찾는다면 어떻게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하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란 질문을 던질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유일하게 한 분이 그러한 삶을 살아가시는 것 같다. 바로 사부님이시다.

가족들과 아시안컵 축구경기를 함께 보고 20분 정도 책을 읽고 나니 또 12시가 넘어버렸다. 이번 주는 5일 모두 12시 이후에 잠 자리에 들었다. 수면량이 4시간이 안 된다는 의미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의욕은 충만하지만 무리는 하지 말자. 무리하면 결코 오래갈 수 없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출석 글을 남기고 올 들어 2번째 읽는 책이자, 300일차 첫 번째 콘서트의 과제인 ‘리더란 무엇인가’를 완독했다. 역시 한 번 봐서는 머릿속에 약간의 잔상과 감동의 여운만이 남아있지 진정으로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반드시 북 리뷰를 통해 나만의 언어로 정리하여 내 것으로 만든다. 2시간 이상 새벽활동을 했다. 알차고 뿌듯하다.

집으로 올라와 짐을 정리하고 곧바로 헬스장으로 갔다. 오전에 잠시 눈을 붙이기도 했고, 오랜만에 집 밥을 먹어서 그런지 컨디션이 좋았다. 런닝머신으로 400m 트랙을 19바퀴 달리고, 6바퀴 걸었다. 총 10km 이상 유산소운동 성공이자 금주 3회 이상 운동에 성공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느껴지는 가벼워진 몸과 샤워로 인한 개운함은 운동을 x통해 찾아낸 경이로운 즐거움이다. 술과 담배로 얻는 쾌락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내게 이런 호사를 주는 별탈 없이 잘 움직여 주는 내 몸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다 나의 몸아!

운동 후 아버지 친구분 자제의 결혼식이 있어 아내와 명동에 다녀왔다. 오는 길에 노원에 있는 북 카페 ‘엘까미노’에 가서 아내와 함께 책을 읽었다. 아내는 자격증 시험에 관한 책을 나는 개인사 작성 테마 중 하나인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요약’을 위해 가장 좋아하는 그 책을 읽었다. 가장 좋아하다 보니 다시 읽어도 좋고 또 좋고, 또 감동이다. 그렇게 2시간 반 정도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에 세운 앙큼한 계획들을 모두 다 지키지는 못했다. 개인사를 더 작성해야 하는 데 못했다. 그래서 마음이 내내 불편하다. 그러나 오늘은 책을 많이 읽어 좋았다. 중간에 흐름이 끊기지 않고 쭉 이어서 읽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기온이 떨어진다고 한다. 내일 새벽은 중랑천 순례길을 걷는 날인데 걱정이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나가 봐서 못 견딜 정도면 도로 복귀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영하 2~30도로 내려 간다고 해도 충분히 견딜 수 있다. 한 번 예외가 생기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어떻게 만든 질서인데 그 흐름을 끊는단 말인가? 더 늦기 전에 얼른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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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7 04:03:18 *.109.26.243

207일차 (1월 16일)

어제에 이은 최고의 한파. 그러나 일요일 새벽 ‘길’을 향한 나의 열정을 얼려 놓지는 못했다. 옷을 꽁꽁 동여매고 집을 나섰다. 옷으로 채 감싸지 못한 눈과 볼이 꽁꽁 얼어 붙는 느낌이다. 오늘도 나서기 전 생각했다. 버티기 힘들 정도면 무리하지 말고 돌아오자. 물론 내 마음이 나를 걱정하여 한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나서고 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우려했던 것만큼의 고통은 없다. 늘 나의 행동을 가로막는 것은 그렇게 행동했을 때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두려움이다. 아마도 바로 이 지점에 사람을 ‘변화’시키는 경이로운 열쇠가 숨어 있음을 나는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 들이 나의 첫 책의 주제가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해 본다.

컨디션에 따라 산책길을 3가지로 구분해 놓았다. 왕복 10km, 14km, 15km 구간이 있다. 컨디션이 좋으면 15km, 그렇지 않으면 10km나 14km를 택한다. 큰 무리가 없는 한 15km 구간을 선택한다. 오늘 새벽의 경우 최대 한파라는 말에 겁을 집어 먹고, 무리하지 않겠다는 마음에 10km를 걸으려 했다. 그러나 막상 걷기 시작하니 탄력이 붙었고, 이런 저런 아이디어도 샘 솟고, 내 마음이 하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추위는 사라지고 길, 걸음, 마음이 하나가 되는 몰입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15km를 선택했다. 새벽 5시 인적도 없는 그 시간에 그리고 그 추위에 거닐며 자신과 마음과 대화를 나누며 거니는 모습이 평범한 모습은 아니지만 나는 한 주 중에 이 시간이 가장 신성하며 보람찬 시간이라 여겨진다. 한 주의 생각할 것을 이 시간에 다한다고 여길 정도로. 물론 흔히 말하는 그런 잡생각도 포함이 되지만 내 마음이 떠는 수다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고, 무거운 마음을 내려 놓는다. 나는 자유롭다. 그리고 걷기 때문에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이다. 몸과 마음이 혼연일체가 되는 이 시간이 가장 좋다. 행복하다.

오늘 세운 거창한 계획이 생각보다 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많은 책도 읽어야 하고, 많은 북 리뷰도 써야 하고, 많은 꼭지 글도 써야 한다. 주말은 Super Day가 아니다. 평일과 같은 스물 네 시간을 가진 하루다. 그러나 내 마음은 주말을 48시간으로 착각할 때가 많아 무리한 기대와 계획으로 시작하여 좌절로 맺음 짖는 경우가 많다. 집에 돌아와 개인사에 적을 책의 리뷰를 하느라 다시 그 책을 읽었다. 새벽 산책길의 피로가 남아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깨고 나니 10가 넘었다. 2시간 정도 잠이 든 것이다. 나를 생각한 내 몸의 항상성 작용이라 여겼다. 장모님 생신이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서둘러 준비하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맛있는 해산물로 점심을 먹고, 처가에 들러 축하파티를 하고, 아내와 장모님을 쇼핑몰에 모셔다 드리고 집에 돌아오니 4시가 다 되어 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아까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조금 피곤했지만 집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 늘어질 것 같아 책과 넷 북을 챙겨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도 만원이다. 도서관에 올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지적 호기심의 에너지 장(場)이 형성되어 있는 도서관은 내겐 그리움 같다. 그래서 이곳에 오면 나는 행복하고 즐겁게 몰입할 수 있다. 열람실에 자리가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홀로 불평하다 돌아갔을 텐데, 그럴 시간도 아까웠다. 열람실 구석에 의자들이 있는 데 다행히도 몇 개의 의자가 비어 있어 불편했지만 책을 꺼내 읽었다. 바로 이 불편함이 내가 도서관을 찾은 이유다. 편하면 늘어진다. 이것이 내가 평일에 피곤함을 무릅쓰고 운동을 하러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고, 오늘 새벽 그 추위에 산책길을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아마도 지하철 독서가 몰입이 잘 되는 것도 그 작은 불편함이 나를 성성하게 깨어있게 하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1시간 반 가량 책을 읽었다. 열람실의 이용시간은 5시까지였고, 공부를 할 수 있는 열람실의 자리가 생기지 않아 집으로 돌아왔다. 7시에 처가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해서 더 는 기다릴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읽은 책의 인용문을 타이핑했다. 책을 읽은 후 책의 내용을 내 몸에 흡수하는 시간이다. 이 단순하고 간소한 작업이 나는 가장 즐겁다. 그리고 나를 몰입하게 한다. 무엇보다 작업을 마치면 남는 무언가가 있어 좋다. 그렇게 1시간 반 가량 필사하는 작업을 한 뒤 처가에 가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오니 9시가 넘어 있다. 내일이 ‘자발적 빈곤’의 날이어서 미리 사다 놓은 레몬으로 레몬즙을 만들었다. ‘자발적 빈곤’을 채워주는 또 다른 의식이다. 이 시간만큼은 아내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레몬즙을 만든다. 성스러운 준비의식과도 같다.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잠들고 싶었지만 너무 고단하다. 그래서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새로운 한 주를 피곤하게 시작할 수는 없기 때문에. 좀더 정교하게, 불필요한 형식, 시간낭비 등의 기름기는 쫙 뺀 담백한 주말을 만들고 싶다. 그래야 연구원 레이스, 1년 간의 연구원 생활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연구원 활동이 일생일대의 기회는 맞다. 그러나 균형은 균형이다. 균형을 잃으면 모든 좋은 것의 의미는 퇴색이 되고 만다. 이번 주말은 좋은 시행착오를 한 알찬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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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7 12:22:17 *.93.128.163
새벽산책을 하면서 나누는 내 가슴과의 대화는
내가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의식이죠. 그렇죠?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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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7 13:07:30 *.124.233.1
그럼요 형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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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7 18:40:48 *.124.233.1

208일차 (1월 17일)

새벽 3시에 눈을 떴다. 잠이 왔지만 더 잘 수 없었다. 연구원 지원서 제출이 이제 2주 남았는데, 계획대로였다면 벌써 작성이 완료되고 퇴고 단계에 있어야 할 개인사가 아직도 미완성 단계이다. 까다로운 주제들만 남아 있다는 것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무엇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던 주말에 아무런 성과물이 없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압박했다. 이번 주 토요일은 단군 1차 콘서트가 있고, 일요일은 처남 결혼이 있다. 결론은 이번 주 내로 모든 것을 완결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주 일요일까지 무조건 완료를 하고 월요일엔 사부님께 메일과 우편으로 송부하도록 하겠다. 더 이상 자신과 그 어떤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작은 책을 필사하는데 5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연구원 레이스나 본격적인 연구원 생활을 하며 읽게 될 책들은 더욱 더 심오하고 만만치 않은 분량의 책들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는다. 불가능 할 것 같던 일들도 막상 상황이 닥치게 되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겨나게 되고, 실제로 가능하게 되었던 경험을 여러 차례 한 적이 있다.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게 만든 게 뭘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성실함과 부지런함 그리고 간절함이었던 것 같다. 나는 믿는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아직은 내게 주어진 어려운 과제를 똑바로 응시하고 정면돌파 하는 저력이 부족함을 느낀다. 오늘 틈틈이 적은 메모 중에서 가장 와 닿았던 것이 ‘지금 내가 이렇게 끄적거리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으르고 달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본 결과 최고의 성취를 냈던 상태를 만들기 위함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성취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냈던 심리상태를 갖추기 위해 지속적으로 마음 속을 조율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론 그런 조율에 많은 시간이 걸려, 스스로 너무 형식에 치우치고 완벽주의, 최상주의에 젖어 있다고 질책하곤 했었다. 그 질책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 깨달음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실마리를 하나 마련해 주었다.

기계적으로 마구 초안을 쓸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마구 써내려 가며 초안을 작성할 수도 있지만, 아직 나에겐 어려운 일이다. 오랜 세월 익숙해진 완벽주의 사고방식에서 자유롭기란 이렇게도 어렵다. ‘잘 쓸 것 같지 않으면 손도 대지 않는’ 이 좋지 않은 습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형편없는 수준의 글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니 써라. 그리고 고쳐라.

명기형님의 독서 노트를 봤다. 탐이 난다. 저런 컨텐츠라면 유료 서비스라도 받고 싶을 정도다. 나도 저런 컨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의 허락을 받고 따라서 만들어 보고 싶다. 알고 있다. 형식보다는 내용이 알차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그것도 완전한 진리는 아니다. 알찬 내용이 먼저지만 비주얼과 디자인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그런 재능을 타고난 편이다. 아직 창의적이지는 못하지만 모방하는 것은 자신이 있다. 보고 따라 하며 모방하다 보면 언젠가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내 주 종목은 변화를 화두로 한 스스로에 대한 다양한 실험, 독서, 명상을 기반으로 한 지적 컨텐츠 생산이다. 그러나 차별화를 위한 ‘디자인과 비주얼’에 대한 관심과 욕심은 타고난 나의 재능에 대한 감응이라 거부하기 힘들다. 타고 나기도 힘든 재능을 사장시킬 수는 없다. 이 또한 명기형님처럼 재능을 탁월하게 활용하는 사람들을 역할모델로 삼아 1만시간의 프로젝트를 가동시킨다.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쓴 글과 책이 탁월성과 차별성을 모두 겸비한 하나의 작품이 되길 소망한다. 좋은 사우(師友)를 통해 성장의 동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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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8 00:24:26 *.171.69.29
하하 저는 선배님을 따라하고 있는데요^^;;
최상주의자 멋있어요--근데 자기 성에 안 차는 상황이 생기면 
지나치게 괴로워하는 건 위험한 일 같아요--빠져나오는데 오래걸리거든요..
처음부터 100% 완성보다 80% 정도를 완성해두고
다듬고 고쳐가며 100%를 만드는 것은 
다른 형식의 최상주의자의 좋은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완벽주의는 프로페셔널의 상징이라고 하지요--오늘도 많이많이  배우고 갑니다. 
하루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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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1 16:52:29 *.124.233.1
보잘 것 없는 일지 지켜봐 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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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8 19:51:09 *.124.233.1

209일차 (1월 18일)

어제 무사히 월요일의 ‘자발적 빈곤’을 마무리하고, 운동을 한 뒤 집으로 돌아와 어제 미처 다 하지 못한 책의 필사를 하고 나니 12시가 다 되어 있었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수면 시간이 평균 3시간 반에서 4시간 정도로 줄어들었다. 운동과 수면 그리고 새벽. 어느 것 한 가지도 놓치고 싶지 않은 내 하루의 알참을 판가름 하는 가치들이다. 수면이 운동과 새벽에 밀려 힘겨워 하지만 요령껏 잘 극복하고, 일상의 군더더기를 좀 더 줄일 수 있도록 해야겠다.

새벽 3시반 알람 소리에 감은 눈을 억지스레 떴다. 역시 잠이 부족해서 피곤하다. 그래도 새벽활동에 예외는 없다. 단군부족과 꿈서리 양쪽에 출석 글을 남기고 새벽의 의례인 모닝페이지를 써내려 갔다. 하루 처음 내 마음과 만나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모르는 번호가 떴다. 긴장했다. 혹시 부모님께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다행히 아는 분이다. 스마트 폰으로 바꾸면서 전화번호가 누락된 모양이다. 불편한 기운이 느껴진 통화에 모닝페이지를 쓰는 일이 어그러져 버렸다. 내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일어나 새벽활동을 하는 것은 나 자신과 만나는 신성한 작업을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모두 잠든 시간에 조용히 일어나 조심스레 활동을 하는 것이다.

중요한 부분을 놓쳤다. 내가 생각하기엔 아무것도 아니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일들이 상대방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요즘 새벽시간을 최적화 하기 위해 분단위로 시간을 측정하며 일상의 군더더기를 빼는 작업을 하고 있다. 새벽의 1분은 낮과 밤의 10분과 같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그래서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출근하며 지하철역까지 걸어 가면서 얘기치 않게 찾아온 이런 사건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나의 사명 중 하나인 ‘차이점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라는 가치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나 중심의 관점이기 때문에 관계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말과 행동에 더 신중을 기해야겠다.

올 해의 3번째 책으로 파커 J. 파머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 올 때’를 읽고 있다. 이 책은 내가 찾았다기 보다 나를 찾아와 준 책이다. 변경연 커뮤니티에 머물다 보니 이곳에 있는 분들의 리뷰나 이야기를 통해 나와 궁합이 맞는 책을 접하게 된다. 마치 지금 읽지 않으면 안 되는 간절함으로 이 책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읽는 내내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거의 모든 부분이 밑줄이다. 가슴에 무찌르는 말이 많을수록 좋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잃어버린 내 마음을 찾는다. 이 책의 단 몇 줄만 가지고도 행복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양식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게 책은 그런 포근함과 그리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개인사를 다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난 번에 잃어 버린 꼭지 글을 다시 썼다. 날라가 버린 파일 때문에 며칠 마음 고생을 했다. 다시 손대고 싶지가 않았지만 다시 썼다. 지난 번에 쓴 내용이 잘은 생각나지 않지만 지난 번 보다 훨씬 내 마음을 가득 담은 듯 하다. 앞으로 이렇게 고쳐 쓰거나 아예 새로 쓰는 일이 잦아질 것이다. 이러한 갈아 엎음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나와 미래의 내 잠재 고객들에게 더 와 닿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 모두가 고통으로 점철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일부는 마주치기 어려운 부분과 맞닿아야 한다. 자신과의 창조적 불화를 통해 더 나은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또 쓰고 고치며, 또 다시 쓰고 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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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1 16:53:34 *.124.233.1
고마워요 누나..
미련없이 쏟아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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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9 19:22:18 *.118.59.101
이제 얼마 안 남았지..? 개인사 작성 말이야.
그대야라면 후회없도록, 미련도 없도록 다 쏟아낼거라 믿어.
잊지마. 간절함.. 연구원은 스스로가 뽑는다고 사부님께선 늘 말씀하고 계셔..
김경인. 믿고 있어. 그대의 최선을.. ^^ 김경인 홧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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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9 23:24:05 *.109.54.206

210일차 (1월 19일)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도 하루 평균 수면량이 4시간을 넘지 못한다. 피곤하다. 물론 회사에서 짬짬이 졸음으로 부족한 잠을 채우지만 역부족이다. 기름기가 쏙 빠진 순 살코기 같은 하루를 보낸다는 게 쉽지가 않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하루 중에 말랑말랑하고 미끈미끈한 시간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마지막 습관은 ‘쇄신하라. (Sharpen the Saw.)’이다. 멀리 오래가기 위한 원칙이다. 지나치게 여유와 휴식이 없으면 금새 지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포기하게 된다. 내가 지향하는 정신적 성장은 장기적인 성장이지 결코 냄비처럼 끓어오르고 쉬 식어버리는 단기적인 성장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부족한 잠을 잘 채울 필요가 있고, 단단하게 정립된 원칙 몇 가지를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하는 것은 불필요한 야근과 저녁 약속이다. 그 다음이 저녁에 하는 운동인데, 지금까지 내가 정한 목표는 주 3회 이상, 1시간 이상, 8km 이상 헬스장에서 운동 하는 것이다. 물론 출퇴근 시 걷는 왕복 5km 가량의 거리와 매일 오르내리는 48층의 계단, 일요일 새벽 15km 순례길 은 제외한 것이다. 어찌 보면 무리라고 할 수 있는 운동량을 섣불리 줄이지 못하는 이유는 순식간의 과거로 돌아갈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지난 4개월간 힘겹게 노력해서 얻은 성과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빡빡한 프로그램과 실천이 멋진 성취를 이루게 해주었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도 조정하기가 어렵다. 조금 더 심사숙고를 한 후에 결정토록 해야겠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 올 때’를 읽었다. 얇지만 오래 읽어야 하는 책이다. 그러나 급한 마음에 3일만에 읽었다. 그래서 다시 읽었다. 너무 서둘러서 읽는다. 한 주에 한 권을 읽어야 한다는 목표의식 때문에 자꾸만 쫓긴다. 무엇보다 개인사 항목 작성을 위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의 필사가 중간에 끼어들었고, 생각보다 나머지 개인사 항목 적성이 어려워서 마음이 급하다. 간절한 소망도 좋지만 주객전도(主客顚倒)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번 주 내로 초고를 드디어 완성하고 주말 내내 퇴고를 한 후 마무리를 지을 것이다.

정말 1년 이상 준비했다. 사부님의 ‘자신의 역사와 글로만 이야기 할 것’이란 말의 위력 덕분에 지난 일년은 내가 정말 간절한지에 대한 진정성을 검증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새벽 나의 이야기를 썼다. 형편 없지만 계속 썼고 홈페이지에 포스팅 했다. 부끄러웠지만 내 마음, 내 머리, 내 손을 거쳐 나온 나의 작품들이다. 아무도 보지 않고, 관심도 없지만 나 또한 그런 무관심에 관심 없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닌 나 자신을 향해 내 놓은 글이기 때문이다.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어서도 안 된다. 1년 여간의 긴 레이스를 거치며 좋은 페이스를 유지해 왔다.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결코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뜨거운 모습을 잃지 말아야겠다. 조금만 참자. 고지가 눈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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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0 18:53:23 *.124.233.1

211일차 (1월 20일)

어제 퇴근 길과 오늘 출근 길에 ‘삶이 내게 말을 걸어 올 때’를 재독했다. 밑줄 그은 부분 중심으로만 읽었다. 이 책은 속독으로 읽을 책이 아니다. 천천히 책장을 넘기며 음미하며 읽어야 할 그런 부류의 책이다. 여러 가지로 쫓기는 상황이 아니면 주말 도서관 열람실에서 바른 자세로 앉아 찬찬히 음미하며 읽고 싶다. 출근하자마자 개인사의 꼭지 글 하나를 완성했다. 6시 50분에 작성하기 시작해서 9시 넘어 완성했다. 초고를 적은 후 다시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글을 쓰는 순간 몰입해고 내 마음이 글을 이끌었다. 글의 수준을 떠나 글을 쓰는 순간 자체를 즐길 수 있어서 만족한다.

잠이 부족하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자리에 돌아오니 겉잡을 수 없이 졸음이 몰려와 화장실에 가 잠시 눈을 붙였지만 피로가 가시지 않는다. 업무 틈틈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에 대한 리뷰를 작성했다. 필사한 부분을 필터링 했다. 3단계 정도는 거쳐야 내게 정말 주옥같이 와 닿은 말들이 정제될 것 같다. 느낀 점을 적고, 작가에 관한 내용을 적고, 내가 저자라면 어땠을까를 적는 것이다. 연구원이 되면 칼럼과 함께 어렵고 힘들지만 하고 나면 엄청난 희열을 느낄 수 있게 해 줄 부분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간절한 내 마음이 답을 줄 것이라 믿는다.

개인사 작업이 완료되고 연구원 지원서 제출이 완료되면 하루 정도는 내게 충분한 휴식을 주고 싶다. 그리고 평소 읽고 싶었지만 읽지 못한 책들도 읽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찾아오는 생각, 이렇게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던 학창 시절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후회되지만 지금이라도 내게 이런 소명이 찾아와 준 것에 대해 감사히 생각하려 한다. 다 때가 있는 법이고, 내게 예정된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비록 지금 이 순간 내가 얼마나 깊이 내려가고 있고, 얼마나 깊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자신을 몰아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 도착하는지는 두 번째 문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곳으로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시시때때로 찾아와 나의 꿈, 나의 신화를 향한 나의 신화를 시험한다. 이제는 이 시험에 내성이 생겼나 보다. 내면에서 피어 오르는 막연한 두려움과 관계 속에서 찾아오는 위협이 전처럼 괴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방심하지 않는다. 안심하는 순간 내 반대편 그림자의 날카로운 칼날이 나를 향하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응원해 주고 있다. 고맙고 또 고맙다. 다만 그 고마운 배려에 제 때 화답하지 못해 모두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초심자의 행운’을 안고 시작했고 ‘가혹한 시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당당히 그리고 단단히 맞설 것이다. 모험을 떠나기 전의 나는 이런 비유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며 그저 그런 일상을 되풀이 하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단군을 알게 되고, 영웅의 여정을 알게 되고, 모험을 떠나왔다. 그리고 그 후 많은 것들이 내게 쏟아져 들어 왔다. 좋은 책, 좋은 사람, 좋은 스승께서 나타나 주셨다. 그런 초심자의 행운에 만족하지 않는다. 가혹하기까지 할 수련을 행복한 마음으로 해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수련은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내 몫이다. 내가 누구인지 물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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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1 16:54:27 *.124.233.1
포근하고 따스한 형님이 계셔서
저 또한 든든한 마음으로 나아가요
고마워요 형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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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0 19:22:14 *.76.121.104
그대의 여정이 얼마나 주위의 동무들에게 힘이 되는지..
두려움과 피곤함과 힘든 시간을 켜켜히 쌓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지만.. 잘 해내리라는 그런 느낌이 들어. 바로 나의 위에 저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옆에서 걸어가는 이는 성장을 바라보는것 자체가 나에게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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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1 16:20:46 *.124.233.1

212일차 (1월 21일)

어제는 반가운 분들을 뵈었다. 거의 반년 만에 한국에 들어오신 신이 형님과 이번 주 토요일에 드디어 장가가시는 진배 형님, 신이 형님의 사촌 형님이신 일석형님, 그리고 일석형님의 고교 동창이신 희연 형님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두 분은 하나도 변하지 않으신 것 같다. 8년 전 그때 그 모습들이다. 투박했지만 뭐든 해보려 부딪히고 도전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꽤 긴 시간이 흐른 지금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졌는가? 부끄럽다. 집에 일이 생겨 저녁식사만 함께 하고 자리를 떠났다.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고 있고, 어머니께서 보신 내 사주에 나는 사람 복이 많다고 한다. 정말 그렇게 느낀다. 물론 게 중에 코드가 맞지 않아 으르렁 거리는 사람들도 간혹 있긴 하지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고 생각한다. 황량하기도 하고, 과일즙 짜듯 늘 쫓고 쫓기는 회사 안의 정신 없는 되풀이 되는 관계를 잠깐 빠져 나와 꿈을 나누는 친구들과 만나는 일은 내겐 오아시스와도 같다. 스트레스에 짓 눌려 잔뜩 움츠린 몸이 활짝 펴지기 시작한다.

집에 도착해서 씻고 나오니 12시가 넘었다. 오늘의 수면시간도 4시간이 안 된다. 첫 지하철을 탔다. 서서 갔다. 앉으면 졸음을 이기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하철 안에서 30분 정도 이번 주 단군 콘서트의 주제인 '리더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지난번에 밑줄 친 부분 중심으로 읽었다. 수험생이 아님에도 수험생 이상의 모드로 공부를 하는 내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내가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지난 주에도 이런 주제로 글을 썼던 것 같은데,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내면의 어떤 간절한 울림이 나에게 새벽에 깨어 글을 쓰고, 좋은 책을 읽으라고 했다.

내 안의 울림 소리를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내가 나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 때부터 그 울림은 언제나 내게 표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늘 그 표지를 외면했다. 이번엔 달랐다. 지금 아니면 너의 보물은 땅속에 영원히 묻히리라. 나마저 나를 외면하면 나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잊혀질 거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 속의 뜨거운 무엇이 내 눈물샘을 자극했다. 길을 떠나온 지 여덟 달, 아직 비범함으로 도약하기 위한 1만 시간, 10년 여정 게이지의 1/10도 채우지 못했다. 침묵의 10년을 거쳐야 비상할 수 있다. 단 하루의 예외도 두지 않을 것이다. 매일 쓰고, 매일 읽는다. 그리고 매일 걷는다.

오늘도 개인사의 한 꼭지를 완성했다. 정신 없이 휘갈겨 쓰는 모닝페이지를 쓰고 났을 때의 홀가분함과는 반대로 충만한 느낌이다. 모닝페이지가 의식과 감정의 배수로라고 한다면, 꼭지 글은 가슴 속 지혜의 샘에 한 가득 맑은 샘물이 고이는 느낌이다. 지난 1년 간 모닝페이지는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써왔다. 그러나 꼭지 글은 어렵다. 많이 어렵다. 그러나 쓰고 나면 충만하고 뿌듯하다. 안 써져도 멈추지 않고 기계적으로라도 쓰고 또 쓰면 습관의 근육이 생길 것이다. 그러면 마치 자전거를 배울 때처럼 수 차례 넘어지다 갑작스럽게 균형을 이루는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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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2 22:42:20 *.109.80.151

213일차 (1월 22일)

오아시스에 다녀왔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편안하고 충만하다. 꿈을 나눌 수 있는 벗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 이 시간이야 말로 내 삶의 오아시스다. 그들과 함께 있어 형성된 에너지 장(場)에 속해 있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편안하고 충만하다. 서로의 수련과 성장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내적 성찰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스승이 되어주고, 따뜻한 눈매를 나눌 수 있는 벗이 되어 준다. 진정한 사우(師友)라 할만하다. 끓어 오르는 벅찬 마음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아직 내 손이 서툴다. 안타깝다.

장장 5시간의 강의에 빨려 들어 갔었다. 물론 과거에 나침반 프로그램이나, 꿈 벗 여행, 그리고 개인사 작성을 통해 이미 했던 과제에는 집중하지 못했지만 이번 콘서트의 주제인 '리더란 무엇인가?'에 관한 토론과 마지막의 '위대함에 이르는 7가지 힘'의 강의는 정말 압권이었다. 5시간 분량의 강의를 준비한 승완형님의 프로정신과 흐트러짐 없이 강의를 소화해 내는 저력에 감탄했다. 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은 내 삶의 둘도 없는 축복이다. 이 역시 손이 마음의 흐름을 따라주지 못해 안타깝다.

사부님께 잘 보이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스승님도 그런 태도를 가장 꺼려 하신다. 모범생의 가장 큰 약점은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지 못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답을 쓰려고 기를 쓴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그런 불필요한 시선과 사족들을 가지치기 하고 뭔가 자신의 내면에서 외부로 뿜어내는 온전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하길 원한다고 하셨다. 사부님께 잘 보이려고 자신의 마음을 왜곡하고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못나고 부족하고 어둡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드러내라. 내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나를 지금까지 이곳으로 부른 그 목소리에 대해 온 마음으로 화답하라.

많은 연구원들과 꿈 벗을 알고 있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다. 이는 온전히 자신과의 투쟁이다. 이대로 매일 되풀이 되는 낙타 같은 삶을 지속할 것인가? 내가 왜 지난 1년 동안 새벽에 깨어 있었는가? 구본형의 제자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함인가? 아니면 내 책 한 권을 써보고 싶어서? 나를 이곳으로 부른 것은 운명 같은 것이었다. 뭔가 나를 계속해서 이곳으로 이끌었다. 내가 외면할 수록 그 표지들은 내게 더욱 간절한 모습으로 손짓했다. 과거에 무엇을 했던지, 얼마나 노력을 했고, 얼마나 많은 인정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과거의 작은 승리에 도취되어 방심하거나 자만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아무리 공헌력의 마인드로 무장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경쟁적 구도를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뱃심이 필요한 대목이다. 연구원은 사부님께서 뽑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 자신의 간절함이 연구원을 만드는 것이라고 하셨다. 사부님께 잘 보일 필요도, 다른 사람보다 잘 쓰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로 향한 분산되어 낭비되는 에너지를 죄다 끓어 모아 내 마음을 뿜어내는 동력으로 활용한다. 그것마저도 부족하다. 태곳적부터 잠자고 있던 내면의 우주의 넘치는 에너지를 더 많이 길어 올려야 한다. 있는 그대로 꾸밈없는 온전한 내가 되어야 한다. 아니 그런 내가 되고 싶고, 그런 나와 만나고 싶다. 연금술사를 10번은 더 읽고 싶다. 내 마음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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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19:54:42 *.109.24.92

214일차 (1월 23일)

일주일 기다리던 중랑천 순례길을 걷는다. 어제 수희향 누님께 들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어 나와 나눌 이야기 거리 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내 접도록 한다. 주말 산책의 이유는 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함이지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 아니다. 내 마음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 놓게 끔 듣고 또 듣는 시간을 가지기 위함이다. 거기에 어떤 목적성이나 의도가 개입이 되면 내 마음은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거북이 등딱지 속으로 쏙 하고 숨어 들어가 버린다. 그저 마음이 하는 이야기를 듣다가 좋은 이야기다 싶으면 스마트 폰의 녹음 기능을 이용하여 녹음한다. 처음엔 내 목소리를 듣는 게 너무 어색하고 민망스럽기도 하고 다시 받아 적는다는 것이 번거로웠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섬광 같이 찾아오는 아이디어는 그 섬광의 밝기 만큼이나 금방 증발해 버린다. 그 찰나의 순간이 영원히 기억 속에 남아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게 놓친 멋진 아이디어들이 너무나 많다.

아이디어들은 보통 마음이 하는 얘기를 듣다 보면 찾아오는데 마음의 이야기를 듣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심히 걷는 것이다. 음악을 들어서도 책을 읽어서도 안 된다. 그저 걷고 호흡하는 일만 하면 된다. 그럼 마음은 아주 조용히 나타나서 처음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여 재잘재잘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험담과 욕지거리부터 해서 마음 상하고 삐진 일 까지 시시콜콜 죄다 털어 놓는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가끔 이상한 이야기를 툭 던진다. 그게 기가 막힌 생각일 경우가 많다. 그 찰나를 나는 그 동안 너무나 많이 놓쳐 왔다. 게으름이 유일한 이유다. 자신에게 간절하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기록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스마트 폰은 사진, 동영상, 문자, 음성메모 모두 가능하다. 그 중 내가 가장 애용하고 있는 것이 음성메모다. 훌륭하다. 정말 훌륭하다. 최근 MS Office의 One-Note의 경이로움과 버금가는 기능이라 여겨진다.

특히 일요일 새벽 2시간 반 가량의 산책을 하면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튀어 나온다. 당시에는 이게 좋은 생각인지 아닌지 긴가 민가 하다. 무조건 녹음 시켜 놓는다. 마치 무전기를 쓰는 것처럼 떠올랐던 생각을 말한 뒤 '이상!' 이라는 마지막 신호를 남긴다. 집에 와서 바로 One-Note에 옮겨 적어야지 미루면 그 감흥이 죄다 사라져 버리고 아이디어가 찾아왔을 때의 흐름이 모두 사라진 뒤다.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우리의 기억력은 결코 기록을 능가할 수 없다. 시도 때도 없이 무조건, 무작정 기록하고 또 기록한다.

기록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내가 기록에 천착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업무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 팀 상무님께서는 정말 '메모 광'이시다. 언제나 업무 수첩을 샤프로 빼곡히 채우신다. 글자체와 글을 쓰는 속도를 보면 1만시간의 법칙을 이미 채우고 남은 내공이 느껴진다. 팀과 파트회의 등에 참석해서 사람들을 가끔 유심히 살펴보며 메모하는 습관과 회사 내 역량과의 상관관계를 가늠하게 된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상관관계가 분명히 있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이래로 작년 초 도서관에 가서 메모와 관련된 책을 탐독하고, 빨리 쓰되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파트 후배 중 사시를 공부하던 친구가 '백강 고시체'라는 책을 추천해 주었는데 그 책을 계기로 메모하는 속도와 가독성이 현격히 나아졌다. 구해서 찾지 못하고 연마할 수 없는 건 없다. 게으름 때문에 찾지 못할 뿐이지.

그 이후 메모에 대해 시행착오를 겪다가 내게 맞는 방법을 찾아냈다. 물론 그 습관도 늘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지만 손바닥 만한 수첩인데 양면에 줄이 쳐져 있는 위에 링 바인더가 있는 기자수첩 같은 것이다. 앞 뒷장 합하면 총 220페이지 짜리인데 작년 1월부터 3권째 써오고 있다. 이 수첩은 온전히 사무실에 앉아 있거나 교육을 듣거나 세미나를 할 때 거침없이 쓸 수 있는 수첩이다. 다만 주머니에 넣기 어려워서 걸어 다니거나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 쓰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주로 사무실이나 교육을 들을 때 사용하곤 한다. 걷거나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는 앞서 말한 것처럼 스마트 폰의 녹음기 기능으로 수첩메모의 부족함을 메 꾼다.

기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순간 찾아온 생각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기억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성실하게 기록한다고 하여도 기록한 내용을 정기적으로 피드백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궁극적으로 내가 메모에 천착하는 이유는 내 책을 쓰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데이터 베이스를 잘 구축해 놓아야 한다. 쓰려고 하는 책의 주제별로 혹은 키워드 별로 정리 정돈을 해 두면 언제 어디서든지 나의 기억을 위한 비서인 기록이 튀어 나와 준다. 내게 가장 부족한 약점 중 하나가 바로 잘 적어 놓는데, 잘 갈무리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다 시간이 남아야 정리한다고 생각하는 이 마인드가 문제다. 정말 중요한 일은 시간이 남으면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어 해야 한다. 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글을 쓰고, 책을 읽기 위해 2시간을 만들고, 운동을 하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 처럼, 내가 기록한 기억의 편린들을 그저 방치하고 쌓아두고 사장시키지 말고 반드시 시간을 내어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내가 정말 창의력이 부족하고 유연하지 못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일까? 아마도 그런 이유보다 어쩌다 우연한 기회에 찾아와준 번뜩이는 생각들을 게으름으로 놓쳐버렸기 때문에 창의성과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아주 많은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단 1시간만이라도 시간을 낸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음성메모 이야기를 하다 나도 모르게 나의 기록에 관한 단상들로 내 글이 끌려 들어왔다. 이런 글은 몰입할 수 있어서 좋다. 인용문구가 단 한마디 없는 오리지널 살아있는 나의 이야기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급력과 설득력은 없겠지만, 평소 이런 습관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나도 한 번 해볼까?' 라는 생각 한번쯤은 들지 않을까?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자신 없는 분야에 글은 되도록이면 쓰지 않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의 글을 쓰기도 어려운데 나와 동떨어진 부분에 대한 글은 가당치도 않다. 편식을 하면 안 되지만 뭔가 억지로 하는 게 더 불편하다. 비록 아주 조금씩이지만 글쓰기에 대한 나의 철학이 조금씩 자리 잡혀 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냥 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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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4 19:06:03 *.124.233.1

215일차 (1월 24일)

개인사 초고를 완성했다. 1년간 써왔다. 오늘과 내일 오타 등을 수정하는 퇴고 작업을 하고, 명기형님께서 손수 만들어주시는 표지가 도착하는 데로 메일과 출력본 모두 발송할 예정이다. 정해진 분량을 훨씬 초과하여 작성했다. 작성 기간이 길었던 만큼 분량도 길어졌다. 퇴고는 오타를 수정하는 수준에서 끝낼 것이고, 내용을 가감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사가 곧 나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서면화된 것들 중에서는 나를 가장 닮았을 것이다. 책을 집필하는 일은 이보다 열 배, 스무 배는 고될 것이다. 그래도 내 손에서 빚어진 작품, 내 안에서 태어난 아이와 같은 책 한 권이 내 손에 쥐어지는 순간을 생각하면 감내할 수 있을 것 같다.

월요일, 자발적 빈곤의 날이다. 하루 단식,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하는 것을 보고서도 자신들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한 번 해보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가벼운 느낌, 하루 정도는 안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신기함, 내가 스스로를 이끌고 있다는 느낌. 배고프고 고통스럽다는 느낌은 아주 작다. 문제는 고통스러울 것이라 여기는 그 두려운 마음이다. 매주 월요일 하루 간의 단절은 내겐 배고픔의 날이 아닌 배부른 회식 날이다. 단식이야 말로 진정한 '육식'이라 했다. 불필요한 내 몸에 붙어 있는 살과 지방덩이 들을 스스로 먹어 치울 수 있고, 과식으로 혹사된 소화기에 하루 휴식을 줄 수 있다.

나는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간절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단연 간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비록 나는 출가수행자도 성직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심리학자나 치료사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일개 회사원일 뿐이다. 아마도 내가 평범한 회사원이기 때문에 더 간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태어나서, 그냥 그렇게 살다가, 그냥 그렇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내 삶이 그렇게 잊혀진다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울컥한다.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렇다. 내가 책을 쓰고, 글을 읽고, 사랑을 하는 이유는 아무 의미도 없이 잊혀지기 싫은 두려움 때문이다.

1년간 꾸준히 작업을 해 왔고, 오늘 쓴 분량도 많지 않았으며, 지금까지 작성한 내용을 편집하고 정리만 했을 뿐인데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 것 같다. 내 글이 내 기운을 담아간 것 같다. 오늘은 운동을 하루 쉬고 싶다. 이렇게 마음 먹었다가도 막상 집에 도착하며 주섬주섬 옷을 갈아 입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헬스장에 가서 런닝머신 위에 오르면 또 다시 활력이 생긴다. 우리의 마음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몸은 철저하게 마음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잠이 부족해서 더 고단하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시간을 내어 사우들의 일지를 찾아 읽고 싶다. 300일차 들어 모두 더 깊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코엘료 처럼 '짧고, 쉽고, 깊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니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하여도 그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누군가와 비교를 통해 획득된 상대적 경지가 아니다. 오직 나 자신의 어제와 비교하여 더 나아졌는지 만이 내게 중요한 사실이다. 매일 오래하다 보면 적어도 오늘보다는 나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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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6 07:17:31 *.124.233.1

216일차 (1월 25일)

3주째 하루 평균 수면량이 4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특히 오늘 유독 더 피곤하게 느껴졌다. 연구원 지원서 마감이 가까워졌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난 1년간 의욕적으로 내 역사를 기록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에 비해 산출된 성과는 아주 미약하게 느껴진다. 새벽활동을 통해 최대한 많은 부분을 끌어내어 보려 노력했지만, 나의 새벽은 잠과의 사투로 점철되었던 것 같다. 글을 쓸 때 개요가 필요하다는 아주 간단한 진리를 200일이 다 끝나고 300일차가 되어서야 체득하게 되었다. 그렇게 개요를 써서 글의 골격을 맞추고, 골격을 토대로 스스로 질문하고,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관련된 좋은 인용문을 모은다. 그렇게 뼈대를 세우로 재료를 한 데 모아 숙성시키는 작업을 거친다. 그 다음 거침 없이 써 내려간다. 그렇게 초고를 마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투박한 초고를 절차탁마(切磋琢磨) 해야 한다. 정으로 튀어나온 곳을 다듬고, 사포로 부드럽게 갈아 주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하나의 좋은 꼭지 글을 쓰는 일은 이와 같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일과도 같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없이 스스로를 치약 튜브를 짜듯 억지로 짜내어 마구잡이로 글을 쓰도록 강요했으니 그 글의 수준은 물 보듯 뻔하다. 지금 내가 써 놓은 개인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혹자는 개인사에 왜 퇴고가 필요하냐며 의아해 하지만, 그만큼 수준이 형편없다는 이야기다. 사실 나는 애초에 개인사를 작성할 때 짧게는 5년 후, 길게는 10년 후에 펴낼 자서전을 염두에 두고 작성하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스스로에게 주었던 1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비록 지금은 형편없고 스스로 다시 읽어 보기에 민망한 수준이지만 그게 내 현주소임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오늘 퇴고를 마지막으로 지난 1년여 간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프로젝트를 일단락 지을 것이다. 용두사미(龍頭蛇尾)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거창하게 시작하고 마무리는 초라한 그런 일 말이다. 그래도 주어진 테마를 모두 작성했다. 일 단락 지었다는 그 자체에 위안을 삼는다. 이렇게 마침표를 찍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다음 스테이지에서는 어떤 모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설레고 기대된다.

신이 형님을 만났다. 형님께서는 아직 '연금술사'를 읽지 않으셨다고 했다. 비록 형님은 연금술은 모르시지만 이미 연금술을 연마하고 계셨다. 이미 오래 전에 자아의 신화를 찾아 길을 떠나신 분이다. 형님과 마주 앉아 있는데, 한 순간 떠올렸던 연금술사의 그림이 흩어지며 형님의 등 뒤에 후광이 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아마도 상상이었으리라. 내겐 그건 하나의 표지 같은 것이었다. 나는 왜 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내 마음의 화답이자, 보이지 않는 손의 손짓이었다. 그런 표지에 걸 맞게 형님께서는 '나의 길'을 떠나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렇듯 내겐 늘 안내자와 조력자가 있어왔다. 다만 알아보지 못하거나 부름을 거부할 따름이었다.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퇴근했다.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는데, 청담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카페 베네'에 들어가 간단하게 베이글과 오곡 라떼로 요기를 했다. 청담역에서 회사로 걸어올 때 마다 이 카페의 복층 인테리어에 매력을 느껴 아내와 꼭 함께 오고 싶었다. 따뜻한 온기에 나무와 책으로 둘러 쌓인 포근한 인테리어가 참 마음에 든다. 나중에 내가 지을 집도 이렇게 복층식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너무 피곤했는지 아내와 이야기를 하며 졸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개인사를 퇴고하다 졸았다. 잠은 싸움의 상대가 아님을 깨닫는다. 잠의 신이여 저를 좀 도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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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6 18:59:42 *.124.233.1

217일차 (1월 26일)

퇴고를 완료했다. 인쇄본은 회사 행랑을 통해 특별등기로 발송했고, 파일본은 자리로 돌아와 메일로 보냈다. 홀가분하다. 1년간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나만의 작은 승리다. 그러나 들뜬 마음을 다시 제자리로 되돌린다.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승리의 영광을 해체하고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라.' 마침표를 찍었으니 내게 주어진 새로운 미션을 수행하고자 한다. 개인사는 시작을 알리는 작은 신호일 뿐이다. 그리고 마침표가 없는 평생 기록해야 할 프로젝트다. 앞으로 수 많은 영광과 좌절이 나의 신화에 찾아올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의미 없이 잊혀진 기억의 뒤편으로 던져버리진 않을 것이다. 기록을 통해 차곡차곡 개인사에 담아낸다. 혹은 같은 경험을 새로운 방식으로 읽어내기도 할 것이다.

오늘 퇴근길부터 연구원 2차 레이스를 대비하기 위한 독서수련을 할 것이다. 두껍고 어려운 책에 도전해 보려 한다.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이리저리 재보지 않고 그냥 하기로 했다. 어차피 할 거라면 그냥 무심히 하면 그만이다. 좋은 스승 밑에서 좋은 사우들과 함께 치열한 수련을 하는 것이다. 좋은 스승과 좋은 사우는 내 영향력의 원 밖의 영역의 일이다. 우주의 뜻을 따르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치열한 수련'은 좋은 책, 그러나 어려운 책을 읽고 내 삶으로 끌어 들이는 것이다. 스승의 방법을 따르기로 한다. 읽고, 필사하고, 저자의 삶을 탐색하고, 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렇게 책으로부터 빼낸 엑기스를 나의 언어로 재구성한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이 내 삶 속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

어제 사부님의 '나는 이렇게 살게 되리라' 라는 제목의 칼럼 글에 댓 글을 달았고, 사부님께서 답 글을 달아주셨다. 나는 이런 댓 글을 달았다. "사부님의 기쁨에 온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어서 저 또한 기쁩니다. 하늘로 비상하는 새가. 하얀 물살을 일으키고, 파아란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는 뱃머리의 여신이. 춤추는 조르바가. 아주 많은 그림들이 펼쳐집니다. 삶의 기쁨에 온 마음으로 함께 하는 아름다운 그림이요. 그 자리에 저도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축하 드립니다 사부님." 이 댓 글에 사부님께서 "경인이는  진실한 사람이지. 속에 것이 밖으로 배어 나와 숨길 수 없는 사람이지." 라는 답 글을 달아주셨다. 처음이다. '아.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 것이. 그 답 글 하나로 오늘 하루가 충만해 졌다.

사랑, 건강, 배움, 성장.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여길 수 있는 가치는 없다. 어찌 보면 나의 삶은 이 가치를 실현하라고 주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의 삶은 이런 가치들을 재료로 잘 빚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운동, 수면, 독서, 관계 등 내가 맡은 역할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하는 수 많은 미션들이 있다. 아직은 내게 주어진 이러한 삶의 요소들 사이의 무게 중심을 찾지 못해 기우뚱거린다. 그러나 진정성이 담긴 매일의 치열한 수련은 궁극의 지점, 황금률이 있는, 연금술의 비법이 있는 바로 그 지점을 알려 줄 것이라 믿는다. 내 개인사의 에필로그를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으로 적었다.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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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7 16:39:08 *.124.233.1

218일차 (1월 27일)

자연스럽게 새벽활동에 변화가 생겼다. 어제까지 개인사 관련된 작업을 지속해 왔었다. 퇴근 길부터 두꺼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시각적인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4권으로 분철했다. 각 1권이 일반적인 책 한 권의 분량이다. 결국 1주일에 4권의 책을 읽어야 하는 셈이다. 마음 같아서는 휴가 혹은 휴직이라도 해서 종일 도서관에서 독서와 글쓰기라는 지적 탐험에 매진하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몰라 허둥대는 사람들 속에서 너무나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게다가 저비용 고효율의 부가가치가 높은 일이다. 조금만 더 참고 견디자. 하루를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으로 가득 채우며 살아 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간절하게 바라고 스스로 돕기로 결심했을 때 하늘도 도왔다.

지금의 이 과도기를 균형감각을 잃지 말고 잘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초심자의 행운이 나를 지켜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가혹한 시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시련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는가? 눈과 입술이 살짝 떨려온다. 이상을 추구하되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되겠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아무리 견고한 일상이라 하더라고 금새 붕괴하게 된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다. 반드시 잘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믿음과 이상추구, 그러나 냉혹한 현실인식. 현실적 이상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아무도 나의 고된 하루를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 매일 되풀이 되는 고된 낙타의 생활을 한다고 메리트가 부여되는 것도 아니다. 잠은 부족할 것이고, 회사에서는 더 많은 과업이 주어질 것이고, 내게 거는 가족들의 기대도 더 커질 것이며, 스스로를 단련하기 위한 수련의 강도는 더욱 더 강해질 것이다. 이렇게 내 어깨 위, 나의 팔목, 발목엔 무거운 과제와 책임들로 채워질 것이다. 너무 가혹한 비유인가? 그러나 충분히 내가 맞이할 수 있는 현실이다. 이 정도, 이 이상의 상황에 대한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마음 속의 울림. '쉬지 말고 가라' 그 울림을 따를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인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헛되게 보내왔던가? 아무런 목표도, 방향도 없이 그냥 되는 데로 낭비한 시간이 대체 얼마인가? 지금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려 하는 것은 과거에 무의미하게 흘려 보낸 시간에 대한 자책과 앞으로 다가올 소중한 내 미래에 대한 배려다. 어차피 삶 자체가 모순을 끌어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생각, 이성적 판단으로는 절대 불가능할 것 같던 일들이 행동으로 옮겼을 때, 가능함으로 변모되는 감동적인 순간들이 있다. 우리가 기적 혹은 연금술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요행만을 바래서는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 주지 않는다. 치열한 수련을 통한 철저한 준비, 성실함과 부지런함, 그리고 간절한 마음이 필요조건으로 작용한다.

이 과도기적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한 역할과 과제들 사이의 무게 중심을 찾아내어 정교한 각도로 일상의 균형을 이뤄내는 것. 그리고 삶의 모순과 역설,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그리고 내게 쏟아지는 온갖 부정적인 피드백을 견딜 수 있는 맷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익'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다. 그래야 한시라도 더 빨리 나를 둘러싼 껍질을 깨고, 나만의 세상에 다시 태어나 진정한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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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8 19:12:17 *.124.233.1

219일차 (1월 28일)

두께도 만만치 않지만 내용의 폭과 깊이도 만만치 않다. 평소 내가 관심을 가져오던 분야도 아니다. 어렵고 생소하다. 훈련을 하기엔 최적의 책이다. 애초 계획은 5일 내로 1회독을 완료한다. 틈틈이 저자에 관한 서치를 하고, 칼럼의 개요와 글감을 모은다. 마지막 이틀은 필사를 하고, 필사한 내용을 토대로 '내가 저자라면'을 작성한다. 이미 뼈대를 작성해 놓은 칼럼의 개요에 북 리뷰를 통해 뽑아낸 책의 엑기스를 부어 나만의 언어로 재구성 한다. 나의 원칙은 단순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내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본연의 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내 눈은 오직 한 곳만을 응시 할 것이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매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이다. 내가 그를 믿고 나를 맡기면, 그도 나를 믿고 나에게 온 마음을 다해 응답해 줄 것이라 믿는다.

오늘 점심 아내와 함께 희석형님을 만났다. 한달 간 브라질에 다녀오신다고 하신다. 얼마 전 그 동안의 모든 강의 자료와 곧 발간할 책의 초고가 담긴 컴퓨터 하드가 날라갔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그리고 양평으로 이사를 하셨단다. 2011년은 오로지 책을 쓰는 일에 몰입하시겠다고 하셨다. 연 초부터 일어난 불상사가 형님에게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 나도 2주전에 연구원 지원서를 위해 작성한 꼭지 글 중 하나가 실수로 날아가 버렸다. 그 때의 좌절감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그 글을 쓰는데, 개요와 자료 수집시간을 포함하면 5~6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희석형님에 비하면 정말 새 발에 피 수준이지만 그 꼭지 글 하나로 하루가 엉망이 되었었다. 그러나 그런 사건에도 불구하고 형님은 의연해 보이셨다.

아내와 함께 희석형님을 만난 건 이번이 3번째인데, 우리 둘 다 희석형님의 팬이 되어가고 있다. 1시간도 채 안 되었지만, 함께 들은 좋은 이야기들과 형님께서 아내에게 선물해주신 책으로 우리 부부는 종일 행복으로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주 많은 말들이 가슴 속을 맴 도는 데, '형님의 나무 같은 성품이 우리를 충만케 했다.' 로 표현을 아끼려 한다. 공격적이고, 동물적이고, 이기적인 나와 반대 속성을 가진 형님께 나는 자꾸만 공명한다. 음. 적당한 표현을 찾기란 참 힘든 일이다.

정화 누나께서 내 꿈 그림을 그려 주셨다. 그림을 맞이 한 순간 나는 내 꿈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요동친다. 그냥 딱 봐도 나다. 내가 보았던 우주의 그 색이다. 그 우주 안에서 나는 별을 건지고 있다. 살짝 눈물이 고였다. 이곳과 인연을 맺은 이후로 나는 너무나 많은 호사를 누리고 있다. 나의 내면의 접혀있던 꿈들이 하나 둘 펼쳐지고, 소중한 사우들과도 아름다운 인연을 펼쳐나가고 있다. 이곳은 변화와 성장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존재의 에너지의 장(場) 이다. 오늘 내가 쓴 글을 되돌아 가 읽어보니 예전에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본다면, 나를 굉장히 낯설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특정 종교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처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인정한다. 나는 이곳에 흠뻑 젖어 있다. 그들이 종교를 통해 하나님과 만난 것처럼 나 또한 이곳을 통해 나 자신과 만났다. 나를 두고 누가 뭐라던 마음에 두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걷는 것,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일은 오직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저 묵묵히 한 걸음씩 걸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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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9 04:58:54 *.72.153.39
경인씨... 그림 다 그렸는데 어떻게 전하지? 우편물로 보낼까? 우리 콘서트때 전할까?
그림은 A4 용지 사이즈야. 액자에 넣으면 8절지 사이즈가 돼.

혹시 그림이 자신이 알고 있는 생각한 그 이미지가 아니라면 말해줘. 다시 그릴께. 사진 갤러리에 올려두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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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9 22:04:53 *.109.54.141

220일차 (1월 29일)

꿈 서리 와의 청계산 산행을 마치고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늦게 집에 들어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뒤 자리에 앉아 오늘의 일지를 쓴다. 요새 들어 나의 빈약한 어휘력을 탓 하게 될 만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체험들을 하고 있다. 오늘 또한 그런 충만함으로 가득한 하루였다. 정말로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은 달랐다.'

지난 해 10월 2박 3일 간 꿈 벗 프로그램에 참가했고, 그곳에서 아주 특별한 인연들을 만났다. 말 그대로 꿈 벗을 만난 것이다. 좋은 스승을 만나 좋은 가르침을 얻는 경험도 좋았지만, 낯설지만 시절인연이 닿아 만나게 된 친구들에게 가슴 속 깊숙한 곳에 있는 아픈 기억과 은밀한 꿈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그들과 결연했다. 그러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던가? 모두 함께 새벽활동을 시작했지만 마치 불멸의 법칙인 양, 일부 벗들은 자신들이 좀 더 우선시 하는 세상을 향해 떠나고 남아 있는 벗들이 함께 새벽을 맞이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남아 있던 벗들 마저 지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오늘 산행을 통해 다시금 만나게 되었다. 하나 같이 오늘의 산행에 오는 것을 망설였다고 했다. 나 또한 점점 와해되어 가는 듯한 모임에 나의 주말 하루를 바쳐야 하는지 갈등했다. 그러나 어떠한 힘이 나를 끌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공유했던 꿈에 대한 간절함이 서로를 자석처럼 끌어 모았던 것이다.

드디어 추운 겨울, 그것도 소중한 주말에 모두들 어렵게 시간을 내어 만났다. 만나는 순간 그들은 되살아 났다. 지난 모임과 달리 사부님 없이 우리끼리 모이면 별다른 내용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산에 오르고 내려와 점심 식사 한끼 하고 뿔뿔이 흩어지고 이 모임은 와해되리라 예상했다. 그것이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고 예상했던 '길'이었다. 그러나 내가 직접 걸은 길은 달랐다. 우리는 하나같이 서로 엮어 놓았던 꿈의 실타래를 놓지 않고 있었다. 그 막연한 간절함이 우리를 다시금 뜨겁게 만들었다. 아주 신기하게도 어떤 찻집이 우리를 불러 모았다. 아주 신령스러운 기운과 함께. 그곳에서 우리는 3시간 이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조심스레 자신들의 이야기를 내어 보였다. 자연스레 이 모임의 희망이 본래 부터 빛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충만한 에너지 장 속에 나는 놓여 있었다. 이 충만함을 어떻게 묘사해야 좋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의 어휘력은 그만큼 빈약하다.

그저 새벽에 내가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출석 글 하나 남겼을 뿐인데, 나의 아주 작은 공헌을 그들은 아주 높게 평가해 주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나만이 아닌 모두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멀리 함께 가기로 했다. 그날 함께 한 사람들 주위에 어떤 신령스러운 기운 같은 게 일고 있음을 느꼈다. 물론 나의 환상일 것이다. 조셉 자보르스키의는 '리더란 무엇인가'에서 '진정한 리더십은 펼쳐지는 미래에 대해 끊임 없이 배우고, 더욱 효율적으로 참여할 영역을 창조하는 것이다. 진정한 리더는 이처럼 예측 가능한 기적이 우연이라고 느낄 만큼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장, 그리고 실제로 일어나는 장을 마련해준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 순간 우리 모두는 서로에 대해 각자 '진정한 리더'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형성된 에너지 장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 모두 함께 잘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럴 것 같은 정도가 아닌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신 말이다.

서로에게 '신뢰'라는 선물을 안겨준 모두에게 고맙다. 이런 충만한 기운이 오늘 함께 하지 못한 우리 꿈 서리 동기들 모두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늘 나 자신 안에 갇혀있어 나만 생각하던 이기적인 내가 누군가의 발전과 성장을 사심 없이 진심으로 바랄 수 있다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에 더욱 더 감사 드린다. 그리고 이런 나의 충만함을 부족한 글 솜씨와 어휘력이지만 글로 기록하고 남길 수 있어서 좋다. 감히 오늘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글로 남길 수 있었던 건 오늘 모임에서 느낀 확신, 정말 모두 함께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이 소중한 인연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이어 갈 수 있으리란 확신 때문이다. 오늘의 이 아름다운 경험은 책 몇 권을 읽는 것과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다. 참으로 충만한 그런 하루였다. 정말로 희망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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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31 05:10:15 *.109.80.16

221일차 (1월 30일)

새벽 순례 길을 다녀왔다. 오늘 새벽도 무척 춥다. 그러나 늘 그렇듯 견딜만하다. 그리고 여전히 걷는 내내 내 삶에 대한 충만함을 느꼈다. 언제나 출발하기 전에 큰 기대를 가지려고 한다. 어떤 화두를 던져주고 거기에 답을 하길 바란다. 이제는 알고 있다.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그런 명령조의 언어가 아니라는 것을. 내 마음은 청 개구리와 같아서 강요하면 할 수록 저항한다. 눈치가 100단이어서 얄팍한 수를 썼다가는 된통 더 크게 당한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지켜보면, 제가 알아서 잘 한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을 그렇게 지켜보는 일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다. 여러 번의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내린 결론이다.

그래서 늘 스스로에게 이렇게 이야기 할 따름이다. '오늘도 길을 걸으며 네가 그 동안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다 하렴. 그 어떤 이야기도 좋으니깐 말이야.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던 이야기도 좋아. 다른 사람들에 대한 험담도 좋으니 모든 걸 내려 놓고 너를 마음껏 보여 줘.' 그냥 이렇게만 이야기 한다. 몇 번 화두를 던지고 그것을 잡고 가려고 했으나 그러기엔 나의 내공이 아직 부족함을 절절하게 느꼈다. 오히려 이렇게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 주었을 때 내 마음이 즐거워했다. 처음엔 천방지축 날 뛰며 두서도 없는 이야기 들을 지껄이다가 점점 진중해 지고, 의도하지도 않았던 고민의 중심으로 들어와 있다. 이렇게 당최 알 수 없는 마음의 흐름을 보면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정도로 이해를 할 수 없다가도 선과 악이 없는 순수한 아이 같은 천진함에 내 마음은 점점 더 고요해 진다. 그러다 좋은 생각이 찾아와 주면 녹음기에 남긴다.

다행히도 내 마음은 내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그리고 착하게 살라는 이야기를 자주한다. 과연 그게 본래의 내 마음인지 의식의 검열을 거쳐 나온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길을 걸으며, 짐이라 여겨졌던 가족에 대한 의무감이 사랑으로 바뀌는 경험을 자주한다. 그들이 내게 얼마 소중한 존재인지를 느끼면서 가슴이 충만해지고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되살아 난다. 그렇게 마음 속이 서서히 뭔가로 차올라 옴이 느껴진다. 아마도 내가 아무리 추워도 일요일의 순례 길을 실천하려고 하는 이유다. 뭔가를 얻어내겠다는 욕심보다는 나를 그저 자유롭게 놓아주고, 나의 이야기를 놓아주고 그저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서서히 차오르는 충만함은 일상과 타성에 젖어 방전된 영혼의 양식을 다시금 수유함으로써 찾아오는 포만감 같은 것이다. 식곤증도 없고, 부작용도 없는 이 포만감이 나는 참 좋다.

아내의 생일이다. 순례 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새로 생긴 집 앞 빵집이 아주 이른 시간에 문을 열고 있었다. 들어가 보니 나와 아내를 위한 치즈케이크가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어제 사 놓은 선물과 함께 몰래 가방 속에 숨겨 놓았다.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고 있으니 아내가 일어났다. 천사 같다. 꼭 안아주며, 세상에 찾아와 줘서 나 같이 못난 사람을 구제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마음으로 전했다.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다. 생일에 직원들이 노래를 불러주는 곳이라 아내 몰래 직원들에게 이야기 했다. 몰래 준비해간 케이크에 초를 붙이고 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선물을 건 냈다. 눈에 맑고 투명한 구슬이 맺혔다.

함께 '글러브'란 영화를 봤다. 맨 앞자리에서 보느라 목이 조금 아프긴 했지만, 깊고 짜임새 있는 구성은 아니었지만 청각 장애 우의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망가져 가는 야구 선수의 식은 열정을 되살려 냈다.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내 마음 속의 열정도 저렇게 활활 타오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처럼 하지 않으면 미칠 정도로 빠지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아니 그 보다 먼저 그런 일을 찾았는가? 부끄러운 화답이 들려온다. 그러나 나는 쉽게 끓었다 이내 식어버리는 냄비가 아닌 아주 묵직한 뚝배기를 끓이고 있느라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이지 한 번 끓기 시작하면 잘 식지 않는 그런 삶을 택했다.

영화를 본 후 북 카페에 가서 아내는 자격증 공부를 나는 두꺼운 책을 읽었다. 난로 곁에 있어 꾸벅 꾸벅 졸기도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읽으려 했다. 하루하루를 좋은 경험으로 채우고, 그런 좋은 경험을 함께 할 수 있는 아내가 곁에 있어서 너무나 좋다. 아마도 이 또한 모두 준비된 예정되고 기록된 일이었으리라 믿는다. 오늘도 나는 희미하지만 오늘, 바로 지금의 삶을 금으로 바꿀 수 있는 연금술의 모습을 보았다. 행복 그것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파랑새다. 온통 나를 둘러 싸고 있다. 나의 무지함이 내 눈을 흐리게 할 뿐. 벌써 3주가 지났다. 더 나답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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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정
2011.02.01 13:03:18 *.154.223.196
영화보더 더 아름다운 생일 풍경입니다. 읽는 저도 감동받았어요. 우와 부러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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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31 15:09:35 *.124.233.1

222일차 (1월 31일)

새로운 새벽활동을 시작한지 3주가 지났다. 하루 평균 4시간 가량의 수련시간을 확보하고 있다. 부족하다. 연구원 활동을 하려면 하루 평균 5시간은 확보해야 한다. 평일에 3~4시간을 확보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문제는 주말이다. 각종 가족들과 지인의 경조사로 인해 오히려 주말 활동시간이 3시간 미만이다. 서류 발표 후 레이스 모드에 돌입할 경우 주말 모두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보낼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35시간 이상은 확보할 수 있다. 평일의 경우도 출퇴근 이동시간, 출근 후 업무시작 전까지, 점심시간 등의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저녁 운동은 3회 1시간 미만으로 조정할 것이다. 아무리 빠듯한 일정이라도 운동 시간은 빼지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개인사 작업이 마무리 되어 출근 후 새벽활동을 채우던 글쓰기 시간을 독서로 채우고 있다. 넓고, 깊고, 어려운 책이다. 내가 낯설어 하는 생소한 분야다. 게다가 분량이 만만치 않다. 오늘로 읽기 시작한지 5일차인데 지금의 패턴이라면 7일차에 간신히 완독할 것 같다. 레이스 모드였다면 100%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페이스 조절을 하는 측면도 있지만 독서의 호흡도 참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주객이 전도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통독을 통해 큰 맥락을 잡으며 신속하게 1회독을 마쳐야 한다. 물론 기본 전제는 정독이다. 필사를 통해 2회독을 한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필사한 내용에 대한 필터링으로 3회독을 한다. 그래야 가장 어려운 '내가 저자라면'에 대하여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과제를 마무리 짓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어진 책을 내 가슴 속에 담는 것이다. 알고 있다. 7일이란 시간이 넉넉한 시간이 아니란 것을. 적어도 한 달은 읽고 정리해야 반쯤 내 가슴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독서 속도로는 말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속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책을 꼭꼭 씹어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학창시절 몇 번이고 읽고 또 읽던 수험서를 공부하던 그 자세 이상이어야 한다. 그 옛날 공부하던 교재와 성격과 수준이 다르지만 공부, 배움에 임하는 신성한 마음은 그 이상이어야 한다. 스승의 눈에 잘 들기 위함도 아니다.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함도 아니다. 활짝 열린 가슴으로, 끓어오르는 뜨거운 열정으로, 냉철한 판단력으로 한 권의 스승을 확 끌어 안아 내 가슴 속에 모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필살기에 그들의 기운을 녹여 우렁차게 사자후를 내뿜는다. 그렇게 나는 한 단계 성장한다.

사변적이어서는 안 된다. 구체적이어야 한다. 좋은 방향을 설정하고, 좋은 스승을 찾은 것 까지는 좋다. 그 다음은? 어떻게 나를 세상에 드러낼 것인가? 어떻게 가슴 속 청사진을 현실로 불러올 것인가? 구체적이어야 한다. 1억만 화소, 초고속 카메라로 보는 것처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나의 꿈이 시절인연을 만나 현실로 들어올 수 있다. 행동, 실천이다. 바로 영웅과 소인배의 경계선이 거기에 있다. 내가 늘 무너진 지점이 바로 그곳이다. 방 한구석에 앉아 궤변만 늘어 놓는 일은 그만 두고 움직여라. 무조건 움직이고 뛰어라. 책을 펼쳐라 그리고 읽어라. 감기는 눈을 뜨고 읽고 또 읽어라. 나를 걸어 볼만 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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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1 16:27:07 *.124.233.1

223일차 (2월 1일)

설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다. 차를 가지고 출근 하느라 지하철 독서는 하지 못했다. 대신 평소보다 사무실에 일찍 도착하여 책을 읽었다. 잠이 부족했고, 내용이 어려워서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벌써 엿새 째, 내게 주어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로 채우고 있다. 결코 읽지 못할 것 같은 분량이었지만 읽고 또 읽으니 2/3 이상 읽었다. 오늘 밤과 내일이면 1회독을 완료할 수 있을 것 같다. 명절이지만 최대한 시간을 내어 막대한 양의 필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진도가 나갈 수록 앞쪽에 읽었던 내용이 희미해 진다. 그러나 필사를 한다면 기억이 되살아 날 것이고, 처음 읽었을 때 놓쳤던 의미를 재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되지만 즐거운 모험이다.

올해 들어 읽는 4번째 책(기존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은 것까지 포함하면 6번째)이지만 개인사 작성에 쫓기느라 출사표에 세웠던 매주 북 리뷰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한 번 때를 놓치면 소급해서 작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읽은 3권의 책에 대한 리뷰는 잠시 접어 두고, 지금 읽고 있는 이 책부터 제대로 시작하기로 한다. 이미 연구원 과정을 거친 분들도 연구원 수련 형식의 리뷰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고되게 작업한 만큼 책의 내용이 깊이 들어와 주었으면 좋겠다.

운동, 적당한 수면, 집중력 있는 수련, 이들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이 중 가장 힘든 것이 적당한 수면 량을 확보하는 일이다.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 뭔가를 추가해도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덜어 내야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아니면 내가 너무 좁고 얕은 시야를 가지고 있어서 정작 중요한 큰 흐름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펼치고자 하는 자신과의 레이스는 단거리 경주가 아닌, 장거리 마라톤 경기와 같다. 초반에 오버 페이스를 하면 오래 가지 못한다. 그래도 나는 믿는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문제는 두려움이 내면에 잠자고 있는 엄청난 잠재력의 발산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잠재력의 세계에는 결핍이란 단어가 존재할 수 없다.

내가 가진 한계는 어디까지 일지 궁금하다. 내가 가진 한계를 모른다는 것은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연구원 활동이 나의 한계, 나의 밑바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좋은 스승과 좋은 동료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빠져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갈 때까지 가보고 싶다. 일을 쉬어볼까도 생각했다. 최적의 대안은 아니다. 희석 형님의 말씀대로 현장의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은 내가 가진 약점이 아니라 멋진 혜택일 수 있다. 부처님께서도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고 하셨다. 살아 숨쉬는 현장에서 이뤄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몸 담고 있는 회사는 어마어마한 고액의 장학금을 매달 지급해 주며 교육을 시켜주는 학교다. 이 비유가 나는 너무 좋다. 아직 내게 있어 회사는 시련과 고난이 아닌 희망이다.

'회사가 희망이다' 한근태 선생님의 책 제목이다. 시간은 더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만큼 나는 현장 속에서 살아 숨쉬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스승은 그렇게 보낸 20년의 세월을 거름 삼아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속단을 내려 잘 다니던 직장을 뛰쳐나와 추운 겨울을 보내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스승도 그러한 속단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셨다. 뛰쳐나온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뛰쳐나온다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자아의 신화를 찾아 가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의 신화 속에서 지금 '회사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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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2 02:59:20 *.171.69.29
수험생활을 하시는 듯한 일지에 마음이 참 많이 움직이네요-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시네요. 항상 일지를 읽으러 올때마다 
배울점이 참 많다는 것을 느끼고 갑니다.  
설날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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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5 05:01:20 *.63.73.170
고마워요 후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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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2 17:26:33 *.218.40.180

224일차 (2월 2일)

양평에 내려왔다. 연휴같이 특별한 날이 되어 돌아갈 수 있는 품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임을 새삼 깨닫는다. 새벽활동의 공간이 달라졌다는 긴장감에 평소보다 일찍 새벽활동을 시작한다. 모닝페이지를 거침없이 쓰고 졸을 쫓기 위해 샤워를 했다. 내리 2시간 동안 독서를 했다. 중간에 조금 졸기도 했지만 알차게 2시간 활동을 채웠다. 뿌듯했다. 300일차 들어 새롭게 고안한 도구가 효과 만점이다. '기록은 기억보다 강하다.', '기록하지 않으면 관리 할 수 없다.'라는 모토로 새벽활동에 질적인 측면과 더불어 양적인 부분도 기록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모닝페이지 04:00~04:20 (20), 독서 04:30~06:30 (120) 이런 식으로 엑셀에 기록한 후 하루 활동시간을 기록한 후 합계를 내어 하루 수련 시간을 측정한다. 목표는 1주일 35시간 수련이다. 이런 시간으로 기록을 하니 새벽에 농땡이를 치기가 힘들다. 새벽활동 공간을 사무실로 바뀐 후 100일, 200일차 대비 수련 시간이 알차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어떤 활동을 얼마만큼 했는지 눈으로 확인을 하다 보니 피드백 효과가 보통이 아니다. 지금은 비록 엑셀로 관리하지만 좋은 프로그래머를 만나 어플리케이션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집에 내려왔지만 운동을 겸비한 걷기 명상을 빼 놓을 수 없다. 새벽활동을 마친 후 포털 사이트의 지도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집 부근에 걸을 만한 곳을 찾아 거리를 측정했다. 예전에 늘 차를 가지고 약수를 뜨러 가던 곳으로 코스를 정했는데, 왕복 거리가 7km 정도 되었다. 일기예보대로 날씨가 많이 따뜻해져 있었다. 정말로 한적한 동네라서 차도 잘 다니지 않는다. 이 적막함이 너무 좋다. 가끔씩 귀여운 텃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정겹다. 서울에서 걷는 중랑천과 다른 점은 언덕길이 있다는 점이다. 언덕진 도로를 넘어 남한강변까지 걸어갔다. 아름답고 고요한 강가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지만 4대 강 사업으로 강은 여기 저기 파헤쳐져 있었다.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손을 위해서라도 있는 그대로 보존해 놓는 게 옳은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 스님께서 살아 계실 때 4대 강 사업을 반대하는 법문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법정스님 법문 이후로 4대 강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결국은 저렇게 파헤쳐 지는 강을 보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오면서 본 '개군산 등산로' 푯말을 보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계획했던 코스가 아닌 등산로로 경로를 바꿨다. 아버지께서 지금보다 건강하셨을 때 함께 올랐던 산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었음에도 당시 땀도 많이 흘리고 숨도 많이 찼던 기억이 난다. 체중도 많이 줄었고, 꾸준히 운동을 해온 덕분에 약간 숨이 차오를 뿐 전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체력이 좋아졌다는 느낌은 산을 오르는 내내 내게 뿌듯한 마음을 가지게 해주었다. 높지 않은 정상에 올랐다. 그 뿌듯함이란. 서울의 산처럼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고 고요하다. 이때다 싶었다. 사자후를 외쳤다. 뱃속 깊은 곳에서 있는 힘껏 끌어 내어 외쳤다. 그렇게 3번을 외쳤다. 시원하게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오래 머물지 않고 바로 내려 갔다. 올라올 때와 다른 방향으로 내려갔는데, 가파르지 않고 완만했다. 굽이 굽이 오솔길이 올라올 때의 가파름과는 사뭇 다르게 정겨웠다. 내일과 내일 모레도 이 코스로 산책을 해야겠다. 날씨가 오늘과 같다면 좀더 가볍게 입고 나서야겠다.

어머니, 아버지, 아내와 함께 양평시내 장터에 갔다. 장이 서는 날은 아니지만 명절전이라 일부 장이 서 있었다. 사실 장을 볼 것은 없었지만 어머님 단골집을 가기 위해 나온 것이다. 장터 한 복판에서 보리밥 비빔밥과 잔치국수를 파는 곳이다. 커다란 대접에 각종 나물과 강 된장을 넣고 비벼 먹는 보리밥인데 맛이 일품이었다. 강 된장을 너무 많이 넣어 짤 것 같다며 주인 아주머니께서 보리밥 한 주걱을 더 담아 주셨다. 서울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넉넉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4명이 맛있게 한끼 해결한 데 든 비용이 단 돈 만원이다. 이것도 오른 가격이라고 한다. 아버지 말씀이 복선 전철이 개통된 이후 서울에서 이 집을 찾기 위해 일부러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유명한 맛 집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보니 우리도 기뻤다.

집에 돌아와 나른 함에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나만 빼고 모두 만두를 빚고 계셨다. 아버지와 바통 터치를 하고 만두피를 만들었다. 도마 위에 밀가루를 뿌리고 밀대로 밀고 난 후 주전자 뚜껑으로 똑 찍어 내면 완성이다. 꽤 많이 만들었다. 가족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하는 이런 즐거움. 이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다른 거 없다. 행복을 자꾸 먼 미래로 미루지 말 것.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살 수 있는 방법은 지금 행복해 하면 되는 것이다. 변경연 홈페이지 메인 이미지에 나온 문구 '우리는 기쁨을 위해 산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행복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쁨과 나의 기쁨은 늘 섞여 있다.' 그렇게 나는 사랑과 행복이 충만한 하루를 보낸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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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3 22:22:06 *.105.68.104

225일차 (2월 3일)

두꺼운 책을 1회독 했다. 8일만이다. 레이스가 얼마나 힘겨울지 예상된다. 오늘 같은 경우 연휴를 끼고 5시간 이상 독서를 했기 때문에 8일만에 완독이 가능했던 것이다. 주말이 관건이 될 것이다. 주말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면 기본적인 조건 조차 충족시킬 수 없을 것 같다. 300일차 들어 새벽수련의 질이 높아졌다. 아무래도 200여일 간의 개인사 작업이 완료되어 독서에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무엇보다 연구원 레이스에 대비해 긴장된 마음으로 새벽활동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요인인 것 같다. 팽팽한 긴장감이 참 좋다.

오전에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인 뒤 동생네가 와서 오랜만에 함께 식사도 하고 시간을 보냈다. 윷놀이도 하고 고스톱도 쳤다. 조카들을 데리고 동네 얼음 썰매 장에 가서 썰매도 타고 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찌나 신나게 놀았던지 조카들이 곧바로 잠이 들었다. 나도 깜빡 졸다가 일어나 집을 나섰다. 어제 산책했던 코스로 걸었다. 날씨가 포근해져서 가볍게 입고 나왔다. 올 겨울 들어 이렇게 가볍게 차려 입고 산책하긴 처음이다. 길가에 가지치기 되어 버려진 마른 나뭇가지 중 곧게 뻗은 것을 주워다가 지팡이를 하나 만들었다. 딱히 볼품은 없었지만 약간 휘어진 것이 땅에 짚으니 탄력이 있어 좋았다. 지팡이를 짚으며 걸으니 엉성하게 나마 순례자의 모습처럼 보인다.

어제 올랐던 개군산에 올랐다. 일부러 시간을 보지 않았지만 어제보다 좀더 빨리 정상에 오른 것 같다. 산 정상에 만들어진 정자에 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역시나 눈을 감는 순간 온갖 번뇌망상이 나를 제압해 들어온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 살포시 망상들이 가라앉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옅은 바람 소리가 느껴졌다. 깊은 호흡을 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좌선하러 올라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금새 눈을 뜨고 산을 내려왔다. 오랜 시간 좌선할 수 있는 습관을 갖게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글쓰기 명상, 걷기 명상도 좋지만 그래도 내 마음 속을 자세히 훤히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좌선이다. 졸음 때문에 좌선을 피했지만 곧 운명처럼 시간을 내어 좌선을 습관화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내려와 부모님과 이야기 나누다가 방으로 들어와 독서를 했다. Mind Map으로 목차를 만들어 소제목에 형광 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읽은 부분을 체크해 나가니 성취감이 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내로 1회독은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책을 읽었다. 졸음이 몰려왔지만 참고 읽었다. 1회독을 마무리 했다. 내일 새벽에는 필사를 할 것이다. 어마어마한 양이 될 것이다. 어떻게 필사를 하면 좋을까? 우선은 부딪혀 보자. 아직 여유가 있으니깐 시행착오를 통해 배움을 얻자. 재미있을 것 같다. 내일 새벽이 기다려진다. 두꺼운 책을 읽고 나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책을 향해 내 마음을 열었으니 이제 책을 내 가슴으로 품는 작업을 해야 한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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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5 05:00:34 *.63.73.170

226일차 (2월 4일)

서울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3박 4일간 양평에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결혼한 이후 양평 집에서 이렇게 오래 머문 것은 처음이다. 부모님께서도 행복해 하시고 함께 하는 우리도 행복하다. 그 동안 어머니, 아버지께서 바라시던 작은 소망이 이거였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너무나 죄송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 가량의 필사 작업을 했다. 생각보다 진도가 빠르지는 못했지만 알차게 2시간을 채웠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양평에서의 마지막 날, 산책을 나섰다 3일째 같은 코스다. 이 길이 너무너무 좋아지려고 한다. 특히 오늘 아침에 걸은 길은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몽환적인 분위기가 들었다. 고개를 넘어 가는 길에 서 있는 은빛을 한 나무의 이름이 궁금하다. 나뭇잎 하나 없이 앙상하게 남은 가지지만 그 은빛이 나무를 고고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곳 마을은 산수유로 유명하다. 걸어가는 내내 길 가에 산수유 나무가 많이 서 있었다. 나무마다 가지마다 곧 있으면 피게 될 산수유 꽃의 꽃봉오리가 동그랗게 열매처럼 붙어 있었다. 이 꽃망울이 이렇게 참고 기다렸다가 3~4월에 따뜻한 봄날이 찾아오게 되면 개나리보다도 먼저 노오란 꽃을 피울 것이다. 벚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꽃을 피운다. 어딜 가든 걸으려고 하는 이 습관이 올해 찾아올 봄을 더욱 더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게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 같았으면 쉽게 지나치고 말았을 것들을 유심히 보게 되는 습관이 생겼다. 이번에 양평에 내려와 산책을 하면서 길가에 있는 집도 유심히 보게 되고 길가에 나무들도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그리고 지저귀는 새들도 이제는 그냥 새가 아니라 각자가 다른 모습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관찰하는 습관이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오늘은 입춘이라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절에 갔다. 아내와 함께 108배를 했다. 한창 살이 쪄 있던 제 작년 초 길상사 선수련회 가서 108배를 하다 땀이 비오 듯 하고, 몸의 무게 때문에 손목이 상한 적이 있었다. 아픈 기억이다. 나는 더 나은 모습이 되어 있다. 지구력도 좋아지고 몸도 가벼워져서 가뿐하게 108를 했다. 물론 절의 수를 세느라 정작 제대로 기도하지 못했다. 스님께서 염불을 하시는 동안 어머니와 아내는 두 손 모아 간절하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도 얼른 눈을 감고 기도했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어머니, 아버지와 포옹을 하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고속도로 입구를 못 찾으실까 봐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하셨다. 비록 우리 부모님께서 세속적인 성공은 거두시지 못해 상대적으로 가난한 삶을 살아가고 계시지만 그 분들의 따뜻한 마음은 우리에게 이미 영웅의 모습이다. 얼마 전까지 가족을 콤플렉스로 생각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행복한 3박 4일간의 양평 여행이었다.

다행히도 정체를 피해 올라와 1시간도 안 걸려 서울로 올라왔다. 집에 오자 마자 아내와 구정맞이 대청소를 시작했다.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바지런한 아내를 보면 가끔 깜짝 놀라곤 한다. 청소와 빨래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아내는 가장 좋아하는 앙꼬바를 나는 비비빅을 먹었다.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다. 노곤함이 몰려와서 낮잠을 잔 후 처가로 향했다. 가는 길에 양평 부모님께서 장인어른, 장모님께 가져다 드리라고 싸주신 만두와 떡과 함께 곶감 선물 세트를 샀다. 처가에 도착하니 처남 부부가 와 계셨다. 저녁을 먹고 윷놀이와 고스톱을 쳤다.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은 이렇게도 행복한 일이다. 물론 가끔 가족들로 인해 번뇌 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가족들로 인해 행복과 충만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더불어 사는 삶. 꼭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돈은 많은 것을 채워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앗아가기도 한다. 뭐든 필요 이상을 가지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욕심내지 않는다. 그냥 지금처럼만 웃을 수 있는 수준으로 벌면 된다. 거기에 내 마음을 맞춰가면 되는 것이다. 경험을 좋은 쪽으로 읽는 다는 것. 내가 가진 강점이자 행복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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