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단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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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세

  •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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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9일 22시 41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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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57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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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11.02.05 13:50:58 *.12.196.235
김경인, 잘 지내지..? 잘지내는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래서 좋다..^^
누나야 수행다녀올께. 문자 보내야 해. 며칠 잘 부탁해..^^
글고 이번주 단군일지는 오늘까지 6개.

그럼 구정 연휴로부터 일상으로의 복귀 홧팅이야.
늘 흐트러짐없는 그대야니까 암 걱정 안하지만서도, 그래도 홧팅은 함 외칠께. 김경인 홧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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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6 03:45:59 *.109.54.9

227일차 (2월 5일)

쌍문동 처가에서 새벽활동을 했다. 새벽에 집으로 가서 활동하려고 했는데, 지하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차 뒤로 2대의 차가 있어서 옴짝달싹 하지 못해 단념했다. 예전에 아내가 쓰던 방에 있던 책상은 이미 치워진 터라 피아노를 책상 삼아 그 위에 넷 북을 두고 새벽활동을 했다. 출석체크를 하고 모닝페이지를 썼다. 미리 준비해 간 독서대에 책을 올려 놓고 어제에 이어 필사를 했다. 쉬지 않고 내리 3시간 이상을 작업했다. 두꺼운 책을 총 4권으로 분철했었는데, 그 중 한 권의 2/3 가량 필사했다. 무작정 타이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읽었던 내용을 다시 이해하고 필사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러나 읽기만 했을 때 놓친 부분들,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이 직접 손으로 타이핑 하며 적다 보니 새록새록 새롭게 다가왔다. 사부님께서 연구원에게 왜 이렇게 고단한 과제를 주시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처가에서 아침밥을 먹고 운동을 하기 위해 홀로 상계동 집으로 건너 왔다. 어제 밤과 오늘 아침을 푸짐하게 먹은 터라 가뿐하게 10km 가량을 걷고 달렸다. 원래 계획은 도서관에 가서 필사를 이어나갈 생각이었으나 도서관에 전화를 해보니 열람실 대기 인원만 150명 가까이 된다고 했다. 장모님과 마트에 간 아내를 데리러 갔다가 처가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잠시 쉰다는 것이 졸음이 몰려와 내리 3시간의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한나절이 지나갔다. 아내와 노원에 있는 북 카페를 찾았다.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3시간을 함께 공부했다. 아내는 자격증 공부를 했고, 나는 필사를 이어나갔다. 알차게 보낸 저녁시간에 우리 둘 다 뿌듯해 했다.

공부를 하고 수련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았다. 집. 참으로 편안한 수련공간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집에서 공부하는 것은 되도록 피하려고 한다. 물론 뭐든 마음 먹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집에서 공부를 하면 잠깐 나태해지는 순간 흐름이 확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잠시 쉬었다 하겠다는 것이 곧 그날 공부의 끝이 되는 경험을 너무나 많이 했다. 원인은 너무 편안하기 때문이다. 조용하지만 조금은 불편하여 나태함을 최소화 시킬 수 있는 그런 조건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환경은 도서관이고 그 다음은 북 카페 정도다. 나를 지속적으로 관찰해 본 결과 내린 결론이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에서 공부하지 않는다. 최대한 도서관과 북 카페를 활용하도록 할 것이다.

두꺼운 책을 읽기 시작한지 내일이면 열흘째다. 내일까지 필사를 마칠지도 의문이고, 더군다나 저자에 관한 조사와 저자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을 정리하고, 칼럼까지 써내야 한다. 쉽지 않다. 물론 실전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무리수를 두어서라도 꾸역꾸역 해내겠지만 분명히 쉽지가 않다. 레이스가 오기 전까지 단련하고 또 단련한다. 지난 1년간 이 순간을 위해 많은 수련을 거듭했다. 결과는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과정 만큼은 내 모든 것을 걸 정도로 간절하게 임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균형을 잃어서는 안 된다. 연금술사에 나오는 현자의 이야기처럼 찻숟가락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흘리지 않고,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속에 행복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한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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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6 20:49:42 *.124.233.1

228일차 (2월 6일)

새벽 순례길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어제 낮잠도 잤겠다, 날씨도 풀렸겠다, 무엇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라 더욱더 발걸음이 가볍다. 오늘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망상이 떠오르면 떠오르는 데로 그냥 내버려 두었다. 참 좋다. 날씨가 풀렸음에도 흐르는 중랑천 위로 아스라이 물안개가 피어 오른다. 전혀 연관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요하게 흐르는 중랑천을 보면 일산 호수공원이 생각난다. 따뜻한 5월에 아내와 함께 간 호수공원 말이다. 일찍 출발하여 돗자리와 도시락, 보드게임, 베개와 담요를 챙겨가서 호수가 잘 보이고 그늘과 햇빛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좋은 곳에 자리를 편다. 일찍 나선 사람만의 특권이다. 재미있게 보드게임도 하고 수다를 떨다가 싸간 도시락을 먹는다. 나른하게 졸음이 몰려온다. 담요를 덥고 낮잠을 잔다. 곁에는 아내가 내 팔을 베고 자고 있다. 팔이 저리지만 참을 만하다. 살짝 눈을 뜬다. 햇살에 눈이 부시다. 푸른 잔디와 잔잔하고 고요한 호수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언젠가 내 다른 쪽 팔은 우리 아이의 자리가 될 것이다. 상상만해도 평화롭고 행복하다.

8시에 문을 여는 도서관 열람실의 자리를 맡기 위해 산책에서 돌아오자 마자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섰다. 이곳에 이사를 와서 처음으로 이 시간에 도서관을 간다. 8시에 도착했음에도 역시나 교육 특구 노원답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아무 자리나 골랐다가 넷 북 전원선을 연결하기 위해 다시 내려와 좌석을 변경했다. 좁고 답답하다. 필사를 해야 하는데, 넷 북 자판에 커버를 씌웠음에도 소리가 나서 신경이 쓰였다. 차라리 북 카페를 갈 걸 그랬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10시에 문을 연다고 한다. 최대한 조용하게 자판을 두드리며 1시간 가량 필사를 하고 서둘러 짐을 싸서 어제 갔던 노원에 있는 북 카페를 찾았다. 이제 막 문을 연 듯 했다. 역시나 아무도 없다. 가장 구석진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춥긴 했는데 홀로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10시부터 12시 까지 내리 2시간을 필사했다. 진도는 많이 나가지 못했지만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다.

점심 식사로 베이글과 함께 아내가 싸준 모찌 떡과 곶감을 먹었다. 맛있고 적당히 배가 불렀다. 너무 오래 쉬지 않고 다시 바로 필사를 했다. 쉬지 않고 3시간 동안 타이핑을 했다. 친구들과 약속을 마치고 아내가 왔다. 내가 점심을 제대로 안 먹었을까 봐 롤 초밥을 사왔단다. 마침 출출했는데 입에서 살살 녹았다. 만약 연구원이 된다면 아내와 이렇게 주말을 보내는 것도 참 즐거울 것 같다 이렇게 함께 해주는 아내가 너무나 고맙다. 그렇게 3시간을 함께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내일 '자발적 빈곤'을 보내기 위한 레몬 6개를 샀다. 집에 돌아와 레몬즙을 만들었다. 아내가 저녁식사로 멸치 볶음밥을 해주었다. 아내가 차린 것도 없고 맛이 없을 거라며 미안해 했지만 너무나 맛있었다. 많이 해보지 않아서 그렇지 아내는 정말 요리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오늘 내로 필사를 마무리 지으려 했지만 역부족이다. 시행착오기간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필사를 하고, 저자에 대한 조사와 내가 저자라면을 쓰고, 칼럼까지 쓰려면 필사에 들어가는 막대한 시간을 줄일 필요가 있다. 내가 지난 3일간 쓴 분량만해도 거의 50 페이지는 족히 나올 것 같다. 적정 분량은 25~30페이지 수준이다. 물론 분량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직장 생활을 하는 내게 시간이라는 자원은 아주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정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한 주의 밸런스가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아주 좋은 시행착오를 경험한다. 시행착오를 하는 덕분에 두꺼운 이 책을 제대로 내 것으로 소화하게 된 것 같다. 뿌듯하다. 무리하지 않겠다. 오늘은 새로운 한 주를 위해 10시 이전에 꼭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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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7 19:18:08 *.124.233.1

229일차 (2월 7일)

'자발적 빈곤의 날'이다. 여느 다른 명절에 비해 이번 설은 적게 먹었지만, 체중관리 후 조절한 식사량에 비해 많이 먹었다. 그래서 지난 주 초에 비해 체중이 조금 늘어 있다. 그래서 오늘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위가 더 늘어나서인지 유독 허기짐이 더하다. 그리고 어제 종일 앉아서 필사를 했기 때문인지 피로감도 더 하다. 오전까지 컨디션이 좋았는데 오후가 되니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매주 월요일 단식을 함과 동시에 운동을 했었는데 무리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운동을 하고 돌아오면 10시가 훌쩍 넘기 때문에 오늘은 집에서 필사를 하고 9시 반 정도에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그 동안의 기준을 하향 조정하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불편하지만 오래가기 위한 방편이라 여기려 한다. 운동하는 날을 화, 목, 토 3일로 정하고 무리하지 않고 되도록 10시 전에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운동시간도 조절하려 한다. 충분한 수면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깨어 있는 시간의 질이 현저히 떨어짐을 경험했다. 일요일인 어제의 경우 토요일에 충분한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긴 휴식 없이 8시간 동안 한 자리에 앉아 공부할 수 있었다. 다만 '1주일에 3회 이상 헬스장에 가서 유산소운동을 한다' 라는 원칙은 변함이 없다. 바뀐 것은 단식하는 날은 계단 오르기와 청담역 왕복으로 만족하고 충분한 휴식과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는 것뿐이다. 새삼 그 동안 내가 스스로를 얼마나 엄정하게 대해왔는지 실감한다. 지금 내린 결정은 기준을 하향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하는 습관을 오래 가져가기 위해 시도하는 새로운 실험이다.

또 다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직 지난 주에 읽은 두꺼운 책의 필사를 끝마치지 않았지만 매주 1권의 책을 읽는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읽기 시작했다. 적은 분량도 아니고 쉬운 내용도 아니지만 생각보다 빨리 읽힌다. 총 10강으로 되어 있는데 하루 2강 분량씩 읽는다면 금요일까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새벽활동을 활용해 지난 주에 읽은 책에 대한 필사가 완료시킬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면 오늘 새로 읽기 시작한 책도 이번 주 안으로 필사할 수 있고, 형식을 갖춘 2개의 북 리뷰와 2개의 칼럼을 이번 주말에 홈페이지에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칼럼의 경우 첫 책의 컨셉에 맞춘, 장기적 포석을 둔 형태로 써 나갈 생각이다. 목차까지는 아니지만 컨셉과 몇 개의 꼭지 글 주제를 잡아 놓았다. 이왕 산출할 지적 컨텐츠라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짜 놓은 굵고 큰 맥락 아래서 써 나가는 것이 더 가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지금 내가 쓰는 글이 부분적으로는 아주 보 잘 것 없는 수준의 조각 글이겠지만, 지속적으로 쓰는 이 글들이 마치 모자이크의 한 조각처럼 모여 거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그저 그렇게 보내던 하루에서 많은 시간을 뽑아내고 그 시간들을 구획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그 시간들의 질적 측면을 고려해야 할 때다. 균형과 조화에 입각한 원칙을 지키되 유연한 조율을 통해 내가 가진 하루의 가치를 극대화 시키고 싶다. 사랑, 건강, 배움, 성장이 고루 버무려진 알찬 하루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그런 하루가 많아지고 그런 시간이 오래 흐르게 되면 내 삶이 참 좋은 삶이고, 행복한 삶이며, 황홀한 삶이라고 감히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삶에 대한 간절함 때문이다. 이번 생에 내게 주어진 짧은 시간에 대한 간절함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 의식 없이 보낸 30여 년의 시간에 대한 미련 때문이리라. 유독 고단한 하루였지만 오늘도 나는 인생이란 나의 거대한 작품의 작은 모자이크 한 조각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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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8 18:56:34 *.124.233.1

230일차 (2월 8일)

오늘 점심까지 One-Note에 필사한 텍스트를 Word에 붙이니 90페이지 가량 나왔다.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책의 남은 부분 리뷰와 '저자에 대하여'와 '내가 저자라면'까지 작성하면 100페이 정도 나올 것 같다.리뷰를 쓰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가 여기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독한 필사다. 만일 20~30페이지 분량으로 리뷰 한다면 토요일, 일요일이면 가능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번 리뷰를 완성하고 나면 무척 뿌듯할 것 같다. 마치 큰 산 하나를 넘고 나면 작은 산은 시시해 보일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다.

무리한 탓일까 어제처럼 오후 내내 피곤하다. 한 숨 푹 자고 나면 곧바로 개운해질 것 같다. 컨디션 조절을 위하여 일정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융통성 없는 일관성이 큰 변고를 만들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들기 때문이다. 체중 감량 후 체지방이 감소하다 보니 예전보다 심하게 추위를 탄다. 내 몸이지만 내 몸 같지 않을 정도로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오후 내 으슬으슬 했는데, 외투를 입고 앉아 있으니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아주 중요한 시기다. 2차 레이스 발표를 1주일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 안 된다. 최우선 순위는 컨디션의 최적화다. 마치 내가 큰 경기를 앞둔 프로선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면 다를 것도 없다.

그래도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뭔가 목표를 가지고, 목표를 위해 스스로를 최적화 시키며 단련하는 이 과정 자체가 너무나 즐겁다. 주어진 일을 마지 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인공이 되어 독서를 하고, 리뷰를 하고 칼럼을 쓴다. 이렇게 1년, 2년 내공을 다지고 나면 그렇게 기울인 노력에 합당하는 결과물인 '내 첫 책'이 빚어질 것이다. 내가 내 삶을 아름답게 빚어 나간다는 것. 내 의지, 내 선택, 내 저력으로 하루하루 뭔가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좋은 스승, 좋은 동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내 하루를 더 알차게 보낼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생각해 보면 피곤할 만도 하다. 새벽 3시 반에 눈을 뜬 후 15시간을 깨어있는 셈이니 말이다. 그 만큼 좋은 하루를 위해 스스로를 소진시켜 녹초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무리하지는 말자. 지나치게 소진시키지는 말자. 지금 내 몸이 내게 보내는 신호 '에너지를 충전할 때야.' 귀 기울여 듣도록 한다. 아주 혹독한 리허설을 경험하고 있다. 연구원 활동은 1년여 간의 여정이다. 한 주도 쉬지 않는다. 그렇게 50주를 보내야 한다. 매주 에너지를 잘 조율하고 분배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 자원, 에너지를 견고하게 쓰지 않아 잠시라도 방심하거나 오버 페이스를 하게 되면 상당한 고통이 따를 것이다. 나는 왜 굳이 이 험난한 길을 택하려고 하는가? 민물장어가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길 바라는 것과 같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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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9 18:13:32 *.124.233.1

231일차 (2월 9일)

무리라는 것을 알고서도 운동하러 갔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가? 그렇지는 않았다. 그냥 헬스장에 가서 씻고만 와도 좋으니 우선은 나서자. 집에 돌아오자 마자 옷을 갈아 입으니 이상하게 가뿐한 느낌이 들었다. 런닝머신에 오르니 몸이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다. 400m 트랙 한 바퀴를 돌고 달리기 시작했다. 종일 적게 먹은 탓인지 뛰는지 걷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냥 잠시 걷다 가려 했는데, 내리 10바퀴를 달렸다. 오히려 활력이 생긴다. 사람들이 붐비는 시간대라 샤워장이 만원이다. 옷을 갈아입고 바로 집으로 와서 샤워를 했다. 나를 망설이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 스스로에 대한 걱정이었다. 무리를 하게 될 경우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해보지 않고 단념했던 것이다. 지난 30여 년간 이런 패턴으로 살아왔다. 해보지도 않고, 저질러 보지도 않고 지레 짐작으로 안 될 것이라 속단을 내리고 포기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지금 내 모습은 그런 수 많은 선택으로 인한 결과다.

오늘 새벽은 어제보다 훨씬 개운하다. 출근 전 15분 간 필사를 하고, 지하철에서 어제에 이은 독서를 했다. '이마누엘 칸트'에 대한 부분이다.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읽은 많은 책들의 저자들은 직 간접적으로 칸트와 니체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 인간 사유의 상징인 '철학'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지적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곧 사상누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명한 사상가들의 저서들이 하나 같이 알아듣기도 힘든 철학자와 철학용어 들을 끌어와 자신의 사상에 대한 논리적 근거로 제시한다. 사유의 틀, 사유의 역사, 사유의 도구를 알지 못하고서 마음과 정신의 세계에 대해 논하는 것은 그저 잡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연구원 2차 레이스에 왜 두꺼운 철학관련 서적을 선정하시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필사라는 능동적인 활동 덕분에 새벽활동을 알차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사무실이라는 약간의 긴장된 환경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뭔가를 습관으로 갖추기 위해서는 주변 지형지물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새벽활동을 힘들게 하는 장애물이 졸음일 경우 졸음을 쫓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활동공간을 편안함을 주었던 집에서 회사와 북 카페로 바꾸었다. 물론 앉아서 졸 수는 있겠지만 이불 속으로 도망감으로써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부득이 하게 집에서 활동할 경우는 일부러 샤워와 면도를 하고 머리에 왁스를 바르고 외출용 옷을 갖춰 입는다. 흐트러지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다. 스스로 긴장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움직이는 행동의 지렛대를 잘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잠이 부족해서 화장실에서 20분 정도 눈을 붙였다. 한결 개운하다. 가끔 내가 이렇게 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언제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있었느냐고 스스로에게 되 묻는다. 그 동안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 더 치열해야 하는 것이다.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간절한 무언가가 나를 움직인다. 그 실 한 가닥을 놓치지 않고 붙잡기 위함이다. 어려운 숙제가 남아있다. 책의 저자가 되어 보는 일과 책을 통해서 얻은 지혜를 나의 언어로 풀어 이야기 하는 것이다. 어렵게 가지 않을 생각이다. 그냥 붓 가는 데로 써 내려갈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체 하지도 않을 것이고, 마음 속에 없는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내가 진지하게 고민한 만큼 드러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다. 동지 이후 해가 길어졌다. 법정스님의 맑은 수필이 그리운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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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0 19:09:01 *.124.233.1
고마워요 누나!!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또한 치열하게!!
그러나 즐긴다는 걸 잊지 않을께요 누나!!
아주 많이 고마워 한다는 거 아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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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0 12:45:39 *.12.196.131
김경인, 1차 레이스 합격 추카~! 그대야가 정말 자랑스러운걸! ^^
당연히 좋은 결과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합격자 명단에서 이름을 보는 건 역시 기분 좋은 일이야. 추카해. 한점 흐트러짐없고자 늘 깨어있으려고 노력하는 그대야인만큼 2차 레이스도 누구보다 성실히, 그러면서도 한편 즐길거라 믿어. 누나야의 응원은 계속되는거 알쥥? ^^  김경인, 계속 아자아자 홧팅!! ^^

참, 지난 며칠 문자받아주어 고맙고, 나 지난주 단군일지 다 채웠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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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0 19:07:16 *.124.233.1

232일차 (2월 10일)

정리정돈 되지 않고 들떠 있다. 그래서 잠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관조적 입장을 취해 본다. 기존 연구원들이 작성한 리뷰를 보았다.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나만의 방식을 갖고 프레임을 만들어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벌써부터 심리적 압박감이 크다. 스스로 선택한 고행길이다. 대단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여 나를 깎아 내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 진다. 오롯이 내 중심을 잡고 지금 내 수준에 맞게, 내 스타일 대로 가는 것이다. 역량의 격차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더 있어 보이려고 포장할 필요 없다. 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만큼 발휘하지 못할까 걱정될 뿐이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로 잠시 회사를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 여건에 맞게 신화를 이루어 나가자.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그 어려움을 딛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 이거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인가? 이거 아니면 안 되는 것인가? 사실 모르겠다. 갑자기 자신이 없어진다. 그냥 직장생활이나 잘 하면 되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왜 자꾸 고되고 힘든 곳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인가? 무엇을 위함인가? 정말로 내가 누구인지 알 필요가 있는 건가? 다 부질 없는 건 아닐까? 갑자기 허무주의로 빠지려고 한다. 곧추 세운다.

막연한 두려움에 제압당하지 말 것. 나는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이다. 내 그릇 만큼이다. 무리해서 내 그릇을 키우기 위함이 아닌 내 그릇 만큼 드러내면 되는 것이다. 내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결핍되어 있고 부족한지 명쾌하게 찾아낸다. 아마도 돋보여야 한다는 마음이 부담의 원인이 된 것 같다. 중요성과 최상주의자 테마가 내 발목을 붙잡고 있다. 분명 더 나은 고수들이 태반이다. 내가 승부수를 걸 수 있는 것은 성실함과 진정성이다. 그거 하나 밖에는 없다. 자! 원칙을 하나 세우도록 하자! 모든 것에 초안을 만든다. 초안을 만들되 그 전에 프레임을 갖춰 놓는다. 이 틀을 짤 때 조금만 신중하도록 하자. 그렇게 틀을 짠 후 우선 내용물을 부어서 초안을 최대한 신속하게 완성하도록 한다. 그리고 시간이 닿을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그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 고치고 뒤 짚는 일을 두려워 해서는 안 된다. 더 완성된 모습을 향해 간다고 여기며, 스스로를 깎고 자르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

최선을 다하지 못함은, 다른 동료들보다 탁월하지 못함은 내 수준이 지금 여기까지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모든 일련의 노력은 더 큰 하나로 수렴되어야 한다. 내 분야에서 절차탁마를 통해 수련하여 세상에 나를 알릴 수 있는 첫 책을 탄생시키는 일이다. 변경연 연구원의 타이틀을 얻기 위해 연구원에 지원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연구원에 걸 맞는 실력을 갖추도록 부단히 수련하고 싶다는 것이다. 아마도 연구원으로써의 삶은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시련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오직 스스로 선택한 결과다. 지금처럼 하늘이 나를 돕는다고 여겨질 때 부단히 이뤄나가도록 한다. 매번 좋은 결과를 산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부단히 노력하다 보면 우연이 운명이 되어 나를 찾아와 줄 것이다. 그저 나를 믿고 내 실력에 맞게, 내 페이스를 갖고 그저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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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1 18:04:08 *.124.233.1

233일차 (2월 11일)

나의 모든 신경이 레이스로 집중되어 있다. 사실 일도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부담감도 따르지만 두근거리는 설렘이 더 크다. 1차 합격자 발표 공지에 달아 놓은 내 댓 글에 한 지인께서 "요령과 기술이 아닌 것 알지? 멀리 가는 성실성과 진정성 있는 내용과 거침없는 장부의 기상이라면 아마도 괜찮지 않을까? 생을 불사르듯 한 줌 재가 되어 다시 태어나시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원 없는 자기 배려하세." 라고 다시 댓 글을 남겨주셨다. 뿐만 아니라 함께 단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동료들과 꿈 벗들도 함께 응원해 주었다. 너무나 고맙고 또 고맙다. 정말로 나를 한 번 원 없이 불태워보고 싶다. 이런 에너지의 장에 내가 있다는 것 자체가 내 가슴 속을 뜨겁게 끓어오르게 만든다. 외부의 적과 싸우겠다는 경쟁심이 아닌 온 힘을 다해 내가 의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내어 소진시키겠다는 그 마음 때문이다. 이런 순수한 열정을 느껴본 게 언제이던가? 내 나이 서른 셋. 그리 많지도 않은 펄펄한 나이에 나는 그 동안 왜 이렇게 위축된 삶을 살아 왔던 것인가? 지금이야 말로 온 몸을 쭉 뻗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발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오롯이 쏟아 내고 싶다!

만만한 책이 한 권도 없다. 다행히도 사부님의 저서와 조셉캠벨의 저서는 단군 프로젝트를 수행하여 읽었던 책이다. 레이스의 첫 번째 과제인 조셉캠벨의 '신화의 힘'을 읽는 내 마음이 새롭다. 재 작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가 떠오른다. 마치 외계 언어를 접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난해했다. 작년 가을 운명적인 사부님과의 만남과 함께 두 번째로 이 책을 읽었다. 난해한 것은 매 한가지. 다행히도 함께 에너지 장을 형성하며 수련하는 동료들 덕분에 캠벨과 신화에 관한 많은 이야기 들을 귀동냥으로 얻었다. 승완형님의 강의, 수희향 누나의 글, 그리고 아직 발간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새벽 이야기를 담은 책의 초고를 접하며 나도 모르게 캠벨과 가까워져 있었다. 그렇게 숙성된 기운이 그렇게 어렵던 '신화의 힘'이란 책을 레이스라는 것도 잊게 한 채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때마침 바꾼 새벽활동의 변화로 인해 탄탄하게 확보된 2시간은 직장인으로써 연구원 레이스에 참여하기에 부족한 절대 시간을 채워줄 알토란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주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북 카페의 발견도 내겐 행운이다. 이미 그 공간에서 몇 번의 트레이닝을 했지만 필사를 하기에 그 보다 더 좋은 공간은 찾을 수 없다. 필사가 아닌 독서를 위해서는 도서관을 활용할 것이다. 레이스에 참가할 하드웨어는 이렇게 이미 갖춰 놓았다. 남은 건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퍼 올려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색과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늘 해오던 출근 길 걷기명상과 일요일의 중랑천 순례 길을 통해 독서를 통해 담근 생각들을 숙성시키는 작업을 한다. 그래서 남김없이 최대한 길어 올린다. 그렇게 4주 동안 내 영혼을 건 승부수를 띄운다. 결과는 지팡이의 끝이기 때문에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역이다. 나는 그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할 뿐 결과는 하늘의 뜻이다. 아니 나의 '간절함'의 뜻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직장인이라는 핸디캡을 강점으로 승화시켜 보고 싶다. '스스로의 기쁨으로 세상을 기쁘게 하라' 어떤 6기 연구원의 슬로건이다. 결코 병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치열함과 즐거움. 이 두 가지로 빚어낸 나의 리뷰와 칼럼들이 레이스에 참여한 다른 동료들의 것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무지개 빛을 발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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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1 22:56:04 *.201.121.165
간절함은 우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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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3 04:28:04 *.109.80.201
네 형님!
정말 간절함은 우리의 힘이죠.
고마워요 형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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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3 03:53:55 *.171.69.29
축하드립니다. 꼭 승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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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3 04:28:41 *.109.80.201
네! 응원해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후배님도 꼭 승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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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3 04:27:30 *.109.80.201

234일차 (2월 12일)

양평에서 새벽을 맞이 한다. 며칠 전 어머니께서 급체를 하셔서 몸이 많이 안 좋으셨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내려왔다. 다행히도 며칠 새 많이 나아지셨다. 집에 와보니 동생네 식구가 와 있었다. 늘 내려가면 부모님 두 분만 서늘한 거실에 계시곤 했는데, 동생네 네 식구와 와 있으니 그렇게 훈훈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이 더불어 사는 삶의 훈훈함일까?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아내가 콩으로 만든 음식을 좋아한다고 어머니께서 두부조림, 두부부침, 콩 탕 등을 만들어 주셨다. 건강과 사랑으로 가득한 밥상이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가족들과 함께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아내가 깨워서 곧 바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활동을 시작했다. 출석은 되도록 간결하고 신속하게. 모닝페이지를 써 내려갔다. 그게 한 번 호흡하고 쭉 써내려 갔다. 그렇게 나의 의식을 깨워낸 후 샤워를 했다. 샤워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씻고 난 후 독서를 시작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읽을 때와는 180도 다르게 다가온다. 아마도 레이스 과제라 더욱 더 신경을 써서 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내가 캠벨과 모이어스와 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즉흥적으로 생각난 나의 생각들을 샤프로 책의 여백에 적으며 나 또한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했다.

2시간의 새벽활동을 마치고 일찍 일어나신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저 빙긋이 웃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하다가 급체를 하셨는지, 그래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간 하고 싶으셨던 많은 말씀을 하셨다. 그저 중간에 끼어들지 않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시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동생네와 우리가 동시에 와서 함께 자고 간 일도 오랜만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충만해 보이셨다. 이런 경험을 자주 만들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들어와 캠벨과 모이어스의 대화를 함께 하다가 가족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정말 더불어 사는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어머니 아버지께 연구원 레이스에 관한 내 상황을 말씀 드리고 다른 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올라오는 내내 아내와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요새 들어 많이 바뀐 습관중의 하나가 그저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빙긋이 웃으며 듣게 되면 둥그런 에너지 장이 우리를 둘러싸는 체험을 하곤 한다.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상대방의 얼굴이 밝아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저 귀 기울여 들을 뿐인데 말이다. 이런 신비로운 기운이 나를 즐겁게 한다.

올라와서 짐을 후다닥 정리한 후에 나는 헬스장으로 아내는 요가학원으로 향했다. 참 헬스장에 가기 전에 이발을 했다. 나는 머리 결이 얇아서 머리카락이 길게 자라면 관리하기가 힘들다.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 머리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으니 상관이 없는데, 머리를 올리다 보니 길고 더벅더벅 자란 머리는 관리하기 힘들다. 그리고 머리를 감고 나오면 말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때보다 조금 더 짧게 깎아 달라고 말씀 드렸다. 레이스를 위한 의식의 성격이 섞여 있기도 한 이발이다. 머리를 깎고 바로 헬스장으로 향했다. 아무리 레이스라 하더라도 내 일상을 이루는 축을 빼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운동과 산책은 레이스 중에도 빼 놓지 않을 것이다. 8km 정도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나오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바로 노원에 있는 성소인 북 카페로 향했다. 오후에 간 터라 북적이고 자리도 없었다. 그러나 마침 나를 위한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자리에 앉아 바로 독서를 시작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운동을 하고 온 터라 피곤했는지 졸음이 몰려와 잠시 졸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책을 읽었다. 한 시간 정도 있다 아내가 왔다. 갑자기 눈을 감으라고 한다. 아주 조그마한 쇼핑백을 꺼내 보이며 열어 보라 한다. 작은 상자와 카드가 있다. 우리가 함께 하기로 한지 1000일이자, 체중감량에 성공해서 허리 사이즈가 줄었고, 곧 발렌타인데이고, 무엇보다 연구원 1차 합격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작은 상자를 열어보니 속옷이 들어 있었다. 한 사이즈 줄어든 속옷이다. 아내가 다른 상자 하나를 살며시 꺼냈다. 열어보니 초코케익이었다. 아내가 준비한 사랑스런 이벤트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나는 정말로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말이다. 내 기쁨에 온 마음으로 참여하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를 했을 사랑스런 아내의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이 내 가슴 속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행복하다.

그렇게 아내와 저녁까지 함께 공부했다. 캠벨과 모이어스의 대화에 참여하며 아주 여러 번 테이블을 치고, 가슴을 치고, 눈물이 왈칵하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 사부님께서 늘 캠벨의 책을 첫 번째로 제시해 주시는 지 이해가 되었다. 곳곳에 사부님을 떠올리게 하는 대화들이 너무나 많았다. 삶의 섭리를 통찰한 고수들의 에너지 장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무진장 행복하다. 책을 읽어 내려갈 수록 내가 정말 옳은 방향으로 왔구나 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연구원을 향한 간절함이 더 강해졌다.

그렇게 아내와 치열하게 공부를 한 후 쌍문동 처가에 가서 어머님께서 차려주신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다.  어머님과 아버님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일도 너무나 행복하다. 다만 죄송스러운 것은 새벽같이 일어나 종일 치열하게 시간을 보내 피곤하고, 저녁을 먹고 노곤해져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인 일이다. 어머님께서 방에 이부자리를 펴주셨다. 아 정말 오늘 하루 너무 좋았다. 일요일도 멋진 하루가 되길 간절히 바라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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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3 18:22:27 *.219.118.139

235일차 (2월 13일)

오후 4시 45분 북 카페에서 일지를 쓴다. 오전 10시 이곳이 문을 열 때 들어왔다. 5시간 가량 책을 읽어 레이스의 첫 번째 과제인 '신화의 힘'을 완독했다. 아주 많은 곳에 밑줄을 그어 필사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400여 페이지의 분량에다 페이지 여백 및 활자가 작아 그 동안 읽은 책으로 환산하면 분량이 500페이지 이상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도 대단하다. 내가 5시간 이상 앉아서 책을 읽는 동안 나와 같이 그 시간 내내 거의 쉼 없이 공부를 하고 있다. 중간에 싸가지고 간 과자 몇 쪽으로 허기짐을 달래고, 좀 전에 아내가 아침에 싼 꼬마 주먹밥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아주 맛있다.

새벽 순례 길을 떠나기 전 살짝 갈등을 했다. 매 주 일요일 하는 순례길 15km를 다녀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반. 이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내 그런 생각을 거두었다. 내가 새벽 순례 길을 다녀오는 이유는 걷기 운동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함이다. 레이스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더 소중한 것은 내 마음이다. 그리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서는 결코 성공적인 레이스를 치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순례 길을 걷는 2시간 반의 시간 내내 나오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물론 그 때와는 다른 갈등 상황이지만 내 마음은 내게 아주 많은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 주었다. 일요일 순례 길의 가치가 더욱더 고귀해지고 견고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변경연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뽕 맛'은 과연 어떤 맛일까 라는 호기심이 생긴다. 아마도 나의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끌어 낸 혼을 담은 글을 써냈을 때의 그 희열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 그 '뽕 맛'을 느껴보지 못했다. 부디 다음주 일요일 저녁에 아쉬움이 아닌 '뽕 맛'을 꼭 느껴보고 싶다. 아직도 '신화의 힘'이 내게 안겨준 여운과 고단함이 남아 글을 써 내려가기가 버거운 느낌이 든다. 아내와 함께 있는 이곳 북 카페가 올 수록 매력적인 이유는 이곳에 형성된 '책'을 중심으로 형성된 에너지 장 때문이다. 이곳은 그야말로 책을 보기 위해 만들어진 카페다. 그 동안 내가 갔던 북 카페 중 가장 나와 잘 맞는다.

에너지 선택효과로 모닝페이지와 단군일지에 들어가는 시간과 정신적 자원의 크기가 줄어들 것이다. 막상 마음은 그렇게 먹었는데, 일단 쓰기 시작하면 대충 가볍게 쓰는 일이 쉽지가 않다. 그것이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지 간에 습관은 이래서 무서운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앞에는 아내가 열심히 몰입하여 형광 펜으로 교재에 밑줄을 긋고 있다. 몰입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은 배시시 웃는 모습과는 또 다른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렇게 치열한 삶의 한 복판에서도 아내는 나와 함께 해 준다. 겉모습은 약해 보이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든든하게 느껴진다. 자! 이제 필사를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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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4 22:23:48 *.109.52.136

236일차 (2월 14일)

"경쟁은 아니다 김경인!"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누나의 목소리가 단호하다. 정신이 화들짝 든다. 연구원 레이스를 하기 한참 전에 누나는 내게 연구원이 되는 것은 누군가와 경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사부님께서 뽑으시는 것도 아니라고 하셨다. 오로지 자신의 간절함만이 그 길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런데 오늘 나도 모르게 '경쟁력'이란 단어를 입에 담았다가 누나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맞다! 나는 경쟁을 하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의 기쁨으로 세상의 기쁨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몸은 고되지만 예전과는 180도 달라진 경험을 하고 있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한 것 같은데 벌써 '뽕 맛'에 취한 것인가?

생각보다 불협화음이 많다. 너무 무식하게 필사를 하고 있었다. 총 8개의 장 중 2개의 장을 필사했을 뿐인데 20페이지를 넘어 버렸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사부님께서는 10페이 이상이라고 말씀하셨다. 누나에게 물어보니 30페이지 정도면 적당할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책을 다시 갈무리 해야 한다. 필사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 같고, 계획이 틀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심란해졌다. 좋은 시행착오라 여기자. 더 시간이 흐르기 전에 찾아낸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자.

업무시간 내내 저자에 관한 자료를 찾았다. 사부님께서 수정하신 2차 레이스 기준을 일찍 살펴보았다. 나의 짧은 생각은 여지 없이 간파되었다. 선배 연구원들의 탐색을 적당히 짜깁기 해서 작성하면 되겠지 라고 그저 쉽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 정말로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이렇게 고강도의 훈련을 매주 되풀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 막혔다. 자료를 찾고, 찾고 또 찾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저자의 세계에 흠뻑 젖어 드는 것 같았다. 레이스에 돌입하기 전에는 '저자에 대하여'에 대해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왜 이 테마가 연구원 북 리뷰의 핵심요소로 자리하고 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저자를 알지 못하면 결코 이 책을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오늘 내가 배운 교훈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 탐색에는 반드시 진정성이 베어 있어야 한다.

레이스 돌입 전 나름대로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내 생각과는 달리 레이스에는 내가 몰랐던 정신의 다른 근육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나 결론은 균형의 묘미다. 부족하고 쫓기는 시간에 정해진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취하고 버릴 것을 분명히 하고 의사결정 또한 신속하게 내려야 한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정신적 자원을 가지고 1주일이라는 시간 안에 최적화 된 - 이것은 최상주의도 아니고, 완벽주의를 의미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 성과물을 도출해 내는 일이다. 좋다! 감이 좋다! 벅차긴 하지만 못할 것 같지는 않다!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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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5 08:52:47 *.93.128.163
나는 <저자에 대하여>를 쓰는 부분이 가장 힘듭니다. ㅠ_ㅠ

인터넷이나 기존 매체에서의 글을 옮겨적지 말고
자신이 생각하는 저자의 생각을 적으라는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감도 안잡히고 끌림도 없어
어떻게 해야할지 이래저리 방황만 하고 있네요. 

독서노트를 하면서 이 부분만 오면 뭘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 참 망설이게 됩니다.

아마도 저자의 생각을 비평하며 자신의 생각을 기술한다는 것 자체가
인상적인 구절을 옮겨 적는것 보다 훨씬 고차원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힘들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런데 경인씨의 고민의 깊이는 말로 할 수도 없겠지요.

이게 동시성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항상 때 마침 비슷한 고민과 관심 키워드가 일치하는 것을 보고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잘 될 겁니다.
그렇게 되게 되어 있으니까요. 굿 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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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5 16:05:06 *.124.233.1
고마워요 형님! ^^

연구원 선배들이 작성한 내용을 보고,
선생님께서 내려주신 지침에 따라 작업을 하려 하니 이게 생각보다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실감하게 되네요.
사실 제가 가장 약한 부분이 자료 리서치 하는 거거든요.
수희향 누나가 리뷰를 통해서 최대한 나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정말 나를 알리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아요.

나의 방식으로 저자를 이해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고,
나의 방식으로 책을 읽고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에 대한 해석을 하고,
나의 방식으로 책의 뼈대와 구성을 분석하고 내책과 연관지어 생각하고,
이렇게 뽑아낸 엑기스를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일,
혹독해도 견뎌볼려고 해요.
형님도 함께 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아쉬워요..ㅠㅠ

언제나 부족한 아우에게 관심가져 주셔서 고마워요 형님!
형님은 이미 저 멀리 가계시니 저도 얼른 총총걸음으로 따라가도록 할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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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5 15:59:05 *.124.233.1

237일차 (2월 15일)

이렇게 틈나는 대로 쓰고 또 쓴지 벌써 1년이 넘은 것 같다. 자유롭게 써 내려가는 것은 마음을 비울 수 있어 즐거우나 깊어지지 못하고, 깊이 있는 글은 묵직한 고뇌가 뒤따라 다가서기 쉽지 않다. 쓰기 어려운 주제 앞에 마주할 때마다 그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과감하게 치고 들어가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 15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어려운 수학문제와 마주하면 이렇게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자신과 타협했다. 슬그머니 맨 두 해답집을 펼쳤다. 그렇게 명쾌할 수가 없다. 이건 나도 알고 있는 건데. 그렇게 쉽게 펼친 해답집 속의 정답이 마치 내 것인 냥 뿌듯했다. 그러나 그런 나의 '비겁한' 습관은 모의고사와 실제 수능의 '정직한' 점수로 화답해 주었다. 스스로 무너지고 해답집을 펼칠 때까지가 내 실력이었던 것이다.

지금 상황도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때처럼 넘기면 나오는 해답집이 없다는 것이 다르다. 그냥 한 권의 책일 뿐인데, 그 한 권의 책을 읽고, 저자에 관하여 탐색하고, 밑줄 그은 부분을 필사하고, 저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나의 언어로 승화시킨 글을 써내고. 악으로 깡으로는 오래 할 수 없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신화의 힘>에도 나오듯이 영웅의 시련은 그 영웅의 진정성과 간절함을 시험하기 위한 수단이다. 2차 레이스 4개의 과제를 수행하고 나면 정말로 이 길이 내 길이 맞는지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15년 전 치열했던 고3 수험생 이후 가장 화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다시는 비겁하게 해답집을 펼치지 않으리라. 내 힘으로 온 마음을 다해 찾으리라. 조금 늦더라도 확실하고 단단하게 갈 수 있다.

신비로운 인연이다. 1기 오병곤 선배님께 메일이 왔다. '오병곤'이라는 이름으로 메일이 왔다는 메시지가 떴다. 외부메일을 아무리 확인해도 없었다. 알고 보니 회사 메일로 온 것이다. 메일을 열어보니 12월부터 우리회사 건물 8층에서 근무하고 계신다고 했다. 와! 이런 인연이 있을 수가! 지난 해 12월 14일에 있던 변경연 송년회 때 인사도 드렸었는데, 설마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계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제 같은 건물 7층에서 근무하는 경빈 형님과 점심식사를 하시면서 내 이야기를 들으시고 연락하신 것 같았다. 올 초 첫 번째로 읽은 책이 선배님께서 승완형님이랑 함께 쓰신 '내 인생의 첫 책 쓰기' 였다. 연구원 지원서인 개인사의 '작가관'을 쓰기 위해 읽었던 책인데 내게 너무나 많은 도움을 준 책이다.

새벽과 점심시간외에 저녁시간까지 추출할 필요성을 느꼈다. 생각보다 시간이 훨씬 부족하다. 연구원이 되어 과제 작성 패턴이 몸에 익으면 수월하겠지만, 지금으로써는 1주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기엔 절대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 절대시간도 시간이지만 피곤함으로 인해 집중력도 떨어진다. 어차피 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충분히 끌어 올리지 못했다. 비겁한 편법과 나약한 마음에 편승하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을 모두 걸고 도전해보고 싶다. 그 만큼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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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6 10:45:15 *.241.116.234
경인님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진정성 그리고 간절함은 통하는 것 같아요. 이번 레이스의 끝에서 값진 결과를 꼭 얻으시리라 믿어의심치 않아요.

오늘 아침엔 새벽운동을 하러 가면서 단군1기 분들을 떠올렸어요.
그 분들은 저에게 '스타'와 같은 존재란 생각을 하면서요.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총총히 빛나는 분들.
그래서 '기라성'이라는 단어도 그런 뜻이겠구나.. 생각을 했더랬어요. :-)

멋진 출사표도 잘 읽었습니다. 새벽을 함께 하는 벗으로 저도 넣어주시는거죠? ㅎㅎ
치열한 하루하루 속에서 경인님의 꿈을 이루어가시는 모습이 저에게 큰 힘이 돼요.
경인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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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9 05:36:01 *.109.55.222
정말로 고마워요 현주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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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6 22:12:42 *.71.161.198

238일차 (2월 16일)

나는 언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글쓰기와 관련된 가장 인상적이었던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숙제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나는 부랴부랴 숙제인 글짓기를 했다. 아직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원래 글짓기를 잘 했던 것도 아니고, 잘 쓸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그저 아무거나 편안한 마음으로 휘갈기듯 막 글을 쓰기로 했다. 당시 기억으로는 책상 위에 올라가 장난치던 일과 그 장난으로 엄마에게 혼난 일을 생각나는 데로 마구 휘갈겨 썼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그 때는 그런 글짓기나 독후감 숙제는 빨간색에 가까운 짙은 주황색 칸으로 된 원고지에 써서 냈었다. 그 글짓기로 나는 방학숙제 글짓기 동상을 받았다. 그것이 아마도 글짓기라는 것으로 처음 즐거움을 맛보았던 기억인 것 같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 때 나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놓아주고 마음을 따라 글을 썼다. 초등학교 3학년이면 10살인데 벌써 23년 전의 일인데, 그 때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 방학숙제고 뭐고 상관없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맘 편하게 써보자. 그 마음이 나를 놓아주었던 것 같다. 그때 기억 말고 어떤 기억이 있을까?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 글을 많이 쓰게 된 계기는 군대에 있을 때였다. 누구나 그렇듯 이등병 시절은 마음껏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당시 틈이 날 때마다 화장실에서 분위기가 좋으면 쉬는 시간 내무실에서 모나미 볼펜으로 자유롭게 휘갈겨 썼다. 그렇게 가슴 속에 쌓여 있는 것들을 휘갈겨 쓰고 나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때 쓴 수첩이 남아있다. 아직 민망해서 열어보지는 않았지만 읽어보면 그때 그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2002년 동북아 대장정에 다녀온 뒤에 같은 조였던 사람들이 모여 프리챌에 커뮤니티를 만들었었다. 그때 한 형님이 여정을 함께한 멤버들에 대한 인물평을 해보라고 한적이 있었다. 나는 정말 마음 편하게 내가 본 그들에 대해 적었다.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그 때 처음으로 '아! 나에게도 글쓰기 재능이 있었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같은 해 가을 손수 도메인을 따고, 나모라는 웹에디터 프로그램과 포토샵 프로그램을 독학하여 '김경인 닷컴' 을 만들었다. 거기에 'Essay' 게시판을 만들어 일기 같은 수필을 적어 올렸다. 그 당시는 싸이월드가 이제 막 나온 시점이었고, 블로그도 전무하고 카페나 커뮤니티가 유행하던 시절이어서 나는 내 홈페이지에 커다란 자부심과 함께 내 글을 써서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당시 글을 쓸 때 나의 롤모델은 법정스님이었다. 당시 나는 법정스님의 수필에 푹 빠져 있었다. 간결하지만 맑고 투명한 문체, 맑은 향기가 피어오르는, 연꽃 향기를 들을 수 있는 그런 문체였다. 세상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산 속에서의 아름다운 삶의 부스러기를 담은 것이라는 스님의 겸손하신 말씀과는 달리 내게는 수님의 글 한편 한편이 내 삶의 하루 양식과도 같았다. 그래서 나도 스님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물론 출가 수행자로서의 삶이 아니라 단순하고 간소한, 작지만 일상에서 조촐한 삶의 향기를 느끼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매일 밤 따뜻한 녹차을 우려내고 불을 끄고 초를 켠다. 그리고 향을 피워, 도시 한 복판에서 고즈넉한 산 중의 분위기를 연출하곤 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진다.

내가 왜 오늘 일지에 갑작스레 이런 이야기를 쓰는고 하니, 갑자기 글쓰기가 고달프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새벽에 일어나 책상에 앉았는데 갑작스레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음습해 들어왔다. 아마도 레이스라는 것에 돌입하면서 많은 압박감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캠벨의 <신화의 힘>을 읽고 필사하고 그에 대해 찾다 보니 10여 년 전에 저 세상으로 떠난 그가 마치 현존하는 사람처럼 여겨지며 푸근하게 느껴지면서 한편으로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이리 저리 마음이 오가다 보니 내 중심이 흐트러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곰곰이 스스로에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하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지?' 그래 마음 편하게 쓰자. 그냥 아주 사적인 내 이야기를 담자. 일반론은 나중에 그 주제에 대해 내가 정말 한 자락 하게 되면 그 때 쓰고, 온전히 내 이야기만 쓰자. 자기 전에 한 번 더 스스로에게 묻는다.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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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7 22:28:53 *.109.55.222

239일차 (2월 17일)

글을 쓴다는 것을 좋아라 하는가? 그렇다. 그럼 이게 천복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럼 글쓰기가 왜 좋은가? 그냥 내 속에 담긴 것을 드러낼 수 있어서 좋고, 그냥 흩어져 버리고 마는 내 존재가 언어로 기록되어 좋은 것 같다. 그렇게 나온 글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가?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새벽에 일어나 1년 이상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 페이지 이상 써내려 갔다. 단군 프로젝트 200일차 이후로는 새벽에 쓰는 글 이외에 하루의 일을 일기처럼 한 페이지 이상 쓴다. 오늘도 운전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너무나 피곤했다. 씻지 않고 그냥 자려고 했다. 그러면 아내에게 혼날 것 같아 씻었다. 씻는데 단군일지를 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내일 쓰자라고 생각할 만도 한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살짝 가슴이 떨렸다. 그러지 않아도 오늘 업무시간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 북 리뷰를 하고 칼럼 글을 끄적거렸다. 쓰는 일에 질릴 만도 한데 그렇지가 않다.

오늘 대단히 중요한 경험을 했다. 지난번 한명석 선생님의 글을 읽고 큰 충격을 받은 이후 두 번째 충격을 받았다. 연구원들의 북 리뷰를 살펴 보다가 이한숙 선생님의 글을 읽게 되었다. 글을 읽고 나서 나는 순간 마음 속으로 쥐고 있던 모든 화두들을 순간 다 내려놓았다. 속된 말로 스스로가 너무나 하찮게 느껴졌다. 이건 자기비하와 차원이 다른 느낌이다. 마치 엄청난 고수의 어마어마한 히 앞에서 한 발도 떼지 못하고 옴짝달싹 못하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드래곤 볼이라는 만화에서 나메크 성에서 프리더와 싸우던 베지터가 프리더와의 엄청난 수준 차이에 전율을 느끼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매일 같이 꼿꼿해 지며 힘이 들어가던 목이 어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연스레 숙여졌다. 마음이 한 없이 겸손해 졌다. 한편으로는 너무나 행복한 어떤 희열이 느껴졌다. 올라야 하는 산봉우리가 생긴 것이다. 이르고자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은 우주가 나에게 준 선물과도 같다.

정화누나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레이스를 하다 보면 나의 바닥을 볼 수 있다고 하셨다. 내가 얼마나 하찮은지, 혹은 내가 얼마나 거만한지, 그런 감정의 극과 극을 달리며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끄집어내는 경험을 할 것이고, 그 경험은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엄청난 희열을 안겨줄 것이라고. 그리고 그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떻게 그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나는 그냥 마음 편하게 글을 쓴다는 게 좋다. 물론 대체로 대부분이 배설적인 글이긴 하지만 그렇게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좋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는 거울을 바라보듯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나와 허심탄회 한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 자신이 얼마나 진지한지, 아니면 얼마나 유치 뽕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과 대화를 나누면 내 마음이 나를 좋아해 준다. 갈등 순간에 내가 한 없이 초라해지는 순간에 무너지지 않고 꿋꿋이 내 중심을 붙잡아 준다.

나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늘 그런 생각과 바램으로 살아가지만, 알고 있다. 그런 것들은 철저하게 자연 법칙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쓰고 또 쓰고, 쓰고 또 쓰고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 된다. 매일 쓰는 일이야 말로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일이다. 좋은 글은 장담 못하지만 매일 쓰는 일은 자신이 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심심해서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그렇다. 나는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글을 쓰는 게 참 좋다. 아마도 천복이지 않을까? 천복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천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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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9 03:48:45 *.109.55.222

240일차 (2월 18일)

지난주 목요일 연구원 1차 서류전형 발표 후 2차 레이스에 돌입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한 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다. 이제 한 주 지났고, 아직 1차 과제도 제출하지 않았음에도, 레이스의 강도는 사실 상상초월이다.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얕게 책을 읽고, 얕게 글을 썼는지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연구원들의 글이 왜 깊이가 있고 울림이 있는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중에 이런 한 주간의 사이클이 익숙해진다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백도 생길 것이다. 언감생심, 벌써부터 요령 피울 생각부터 하다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붓되, 페이스 조절을 잘 할 필요가 있다. 마치 연금술사에 나온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데 있다"는 말처럼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끌어 내되 쓰러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 여긴다. 이렇게 일지를 쓸 수 있는 시간이 내겐 즐거운 휴식시간이다. 그저 손이 가는 데로 글을 쓴다. "피곤하다. 피곤하다. 피곤하지 않다. 피곤하지 않다. 견딜 수 있다. 견딜 수 있다."

2번째 책을 읽으려 한다. 가장 난코스에 돌입한 것이다. 제레미 리프긴. 인류의 역사를 철학, 심리학, 사회학으로 꿰뚫었다. 심리학은 학부시절 복수전공으로 공부한 바 있어 부담이 적지만 내가 약한 역사, 철학, 사회학이 문제다. 과연 저자의 깊은 세계를 내가 꿸 수 있을까? 첫 번째 책인 '신화의 힘'은 운 좋게도 레이스에 돌입하기 전 2번 읽은 책이었고, 단군프로젝트를 통해 어려운 용어들에 대해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힘겹게 과제수행을 하고 있는데, 이번 책은 분량과 스케일도 만만치 않고, 처음 접하는 저자이기도 하다. 물론 엔트로피,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을 쓴 저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저서를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까지 1차 과제를 완료하려 노력했다. 그래야 주말 동안 세 권으로 분철한 두 번째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리프킨에 대한 자료 스크랩을 해야겠다. 그리고 꼭 이번 주말에 책을 완독하겠다. 다음주 화요일은 팀 회식이 있고, 수요일과 목요일엔 연수원 교육이 있다. 가장 까다로운 한 주이자 위기의 한 주가 될 것 같다. 4주간의 레이스 기간도 캠벨의 '영웅 여정'의 프로토 타입을 따르는 듯 하다. 스스로 깊이 파고들수록 고개를 숙이게 됨이 느껴진다. 아내와 가족들이 더욱 더 사무치게 그립고, 함께 하던 사우들의 모습이 보고 싶어진다. 외롭고 고독하지만 그 만큼 나는 더 자라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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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0 04:31:55 *.109.55.222

241일차 (2월 19일)

12시간 이상을 앉아서 책을 읽었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묵묵하게 앉아서 한 장 한 장 책 장을 넘기며 밑줄을 그으며 읽는 것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생각과 동시에 사부님께서 글을 쓰시면 책장을 넘기시던 뒷모습이 떠올랐다.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천복을 찾는 일이셨겠지만, 지독하게 외롭고 고독하기도 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셔서 두려움에 불면증에 시달리시는 와중에도 거침없이 책을 읽으셨었다는 일화가 생각이 났다. 아마 사부님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았을까?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그저 입다물고 앉아서 가만히 책장을 넘기는 일. 힘들었지만 일종의 '희열'이 느껴졌다.

예전에 고등학생 때 도서관에서 8시간을 내리 앉아서 공부한 기억은 있었지만, 이렇게 12시간 이상을 앉아있었던 적은 없었다. 담배를 끊었기 때문에 화장실 말고는 밖에 나갈 일이 생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말 안에 이 두꺼운 책을 읽지 않으면, 직장인 신분으로 레이스에 참가한 나의 평일 핸디캡을 극복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나를 그렇게 이끈 것 같다. 상대적인 체험이지만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만만치 않은 책이다. 내용도 만만치 않지만 내가 집중력이 떨어진 탓인지, 도무지 해독이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역자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어쩌랴? 그럼 원서를 사다가 읽던지.

아내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나와 6시간을 함께 있어 주었다. 형형색색 예쁜 고구마 경단과 꼬마 주먹밥을 도시락을 싸가지고 왔다. 뭔가 해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이야기 하며 배시시 웃는다. 힘이 불끈 솟아오른다. 인생 뭐 있나? 이런 자잘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지. 표류하면서 읽지 않기 위해 목차를 직접 마인드 맵 프로그램에 직접 타이핑을 해서 넷 북을 열어 놓고 체크하면서 읽었다. 역사, 철학, 심리학, 인류학, 신학 등을 꿰어 인류의 역사 전체를 아우르며, 동시에 깊이도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저자의 엄청난 저력 앞에 그저 감탄이 나올 뿐이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끌어 올려야 한다는 것이, 지극히 간절해야 한다는 것이 또 다른 의무감이 되어 내 발목을 죄는 족쇄가 되지 않길 바란다. 되었으면 하는 간절함도 있지만 지금의 이 순간이 억지로 눌러 짜는 고통스러운 순간이 아니라, 내 삶 전체의 아름다운 행복의 융단을 이루는 일부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냥 재미있고, 즐겁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어차피 누군가 경쟁하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끌어내 보이는 것이다. 무엇보다 50주 이상 이 사이클을 견디려면 즐겁고 재미있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놓치고 싶지 않은 여러 가지의 가치들 사이에서 어떻게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무게 중심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그게 바로 행복의 비결이다. 답은 없다. 답이 아니라 내가 그려낸 그림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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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0 22:49:56 *.124.233.1

242일차 (2월 20일)

어제 오늘 한 자리에서 내리 10시간 이상을 앉아 책을 읽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냥 읽고 또 읽어 내려갔다. 주말이 아니면 읽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800페이지 이상의 책을 이틀 만에 1독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천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나를 한자리에 이렇게 오랜 시간 붙잡아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없었다. 앉아서 차분히 책장을 넘겼다. 졸음이 오면 일어서서 읽었다. 그렇게 읽고 또 읽었다.

새벽에 중랑천을 걸었다. 오늘은 오래 걷지 않았다. 그냥 집을 나서 중랑천을 걸었다는 것에 상징적인 의미를 두려 했다. 왜냐하면 내 마음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랑천을 걷는 것은 내 마음과 나 사이의 아주 소중하고 중요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걸으며 마음에게 이야기했다. '오늘도 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그런데 어쩌지? 오늘 안으로 꼭 읽어야 할 게 있어서.' 내 마음이 내게 대답해 주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그거 하나 이해해 주지 못할 까봐. 어서 들어가 봐. 여기까지 나와 줘서 너무 고마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도울 께.' 마음이 한 그 말을 듣고 나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코 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나의 외롭고 고독한 싸움을 마음이 알아준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2차 레이스의 첫 번째 과제를 올렸다. 함께 레이스에 참가하시는 분들의 글이 몇 개 올라와 있다. 다 읽어 보려고 하다 그만 두었다. 내일 맑은 정신으로 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내일부터 두 번째 과제에 대한 작업을 시작한다. 회사 일과 병행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지난 1주일 동안 절절히 깨달았다. 그러나 이게 나의 천복인 걸 어쩌랴. 아직 뽕 맛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는데, 벌써 몽롱하니 즐거운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도 아내에게 고맙다. 나를 위해 곁에 있어주다 먼저 들어갔다. 늘 함께 있다 홀로 보내려니 마음이 짠했다. 묵묵하게 이해해 주는 아내가 너무 고맙다. 그래서 힘들어도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우연이 운명이 되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구르기 시작한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바퀴에 중심에 굳건히 서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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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1 18:54:50 *.124.233.1

243일차 (2월 21일)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주말 내내 북 카페에서 앉아 있었고, 잠도 부족하여 피곤할 줄 알았는데 컨디션이 좋다. 지하철에서 레이스 2번째 과제인 '공감의 시대'를 읽었다. 주말에 1회독 한 부분 중 필사할 부분을 추리는 작업을 했다 '신화와 힘'보다는 구성 자체가 짜임새 있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표현이 적어 정리하기엔 좋다. 첫 번째 과제의 필사 분량이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 두 번째 과제부터는 30페이지 정도로 조정할 생각이다. 마음을 무찌르는 말들 중에서 찌르고 또 찌르는 말을 선별해야겠다.

출근 후 지하철을 타고 오며 표시해 둔 부분을 필사했다. 필사는 단순하고 간소한 과정이라서 집중과 몰입이 잘 된다. 타이핑이라는 능동적인 활동이 있어 졸리지도 않다. 업무 시간 틈틈이 저자에 관한 자료를 스크랩 했다. 2번째 작업이라 지난 주보다는 짜임새 있게 자료를 탐색할 수 있는 것 같다. 조셉캠벨과 다르게 제레미 리프킨의 경우 저서에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없어서 자료 찾기가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형식적으로 찾는 것이 아닌 7가지의 길로 방향을 잡아 저자를 알아가는 일은 너무 즐거운 일이다.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너무 오랜 시간 할애하지 않기로 했다. 찾을 수 있을 만큼 찾고 찾은 만큼 작성한다. 오히려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가 내게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에 대한 소감과 평가 그리고 책의 구성과 전개방식에 관한 부분을 작성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배치할 것이다. 무엇보다 칼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있다.

1주일이라는 정해진 시간 내에 일정한 사이클로, 일정한 패턴으로 학습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차별성을 둘 수 있는 것은 결국 포트폴리오다. 그리고 숙성이 중요하다. 화두를 마음 속에 던진다. 그리고 틈 날 때마다 생각한다. 내게 있어 생각을 숙성시키고 깊이 있는 질문과 사유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출퇴근 길 걸어갈 때와 계단에 오르내릴 때다. 무엇보다 주말 산책이 내겐 생각의 숙성의 보고다. 이번 주는 어떤 생각이 찾아와 줄까? 어떤 접혀진 질서가 펼쳐져 줄까? 궁금하다. 그리고 신기하다. 다른 사람에게 잘 읽히는 글이 아니라 내 마음을 사로 잡는 글을 쓰고 싶다.

월요일. '자발적 빈곤'을 실천하는 날이다. 8주째다. 역시나 오늘도 예외는 없다. 새벽기상, 걷기명상, 독서와 글쓰기와 함께 내 삶을 받쳐주는 위대한 기둥 중 하나다. 타성에 젖지 않겠다는 나의 강한 의지의 상징이다. 하루 굶는다고 절대 굶어 죽지 않는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허기지지도 않는다. 그냥 약간 배고픈 정도다. 레몬즙이 힘이다. '자발적 빈곤의 날' 하루 전 레몬 6개를 사서 식초를 넣은 찬물에 깨끗하게 씻고 껍질을 벗긴다. 믹서에 갈아 생수와 섞어 거름망으로 걸러 레몬즙 원액을 만든다. 껍질은 가위로 썰어 방향제 대용으로 쓴다. 레몬즙 원액을 만드는 행동은 일종의 의례와 같다. '자발적 빈곤의 날'을 위한 신성한 준비작업이다. 절대 아내에게 부탁하지 않는다. 모두 내가 한다. 어찌 보면 이 의례 활동이 배고픈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힘을 충전시켜주는 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의식을 거행하는 순간만큼은 정신이 성성하다.

오늘 하루도 저물어 간다.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몫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가? 자신 있게 외치긴 힘들다. 향하여 갈 수 있는 목표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 목표의 방향만 제대로 되었다면 말이다. 스승을 향해 가는 이 여정이 나는 즐겁고 행복하다. 고되지만 즐겁고 행복하다. 나는 지금 내 가슴 속 하나의 질서가 펼쳐지고 있는 그 속에 있다.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 것인가? 숨죽이고 지켜보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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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2 16:48:37 *.124.233.1

244일차 (2월 22일)

하루가 온통 과제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이다. 잠시 내려 놓는 여유가 필요하다. 매진하고 천착하는 것도 좋지만 과부하는 곤란하다. 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다. 한 가지씩 차근차근 해야 한다. 한 걸음씩 걸어가야 한다. 모닝페이지나 단군일지는 내게 휴식이 되어줄 필요가 있다. 당분간 매일 되풀이 되는 활동보다는 그저 생각나는 것들, 그리운 것들에 대해 쓰도록 해야겠다.

날씨가 포근해지자 따뜻한 봄의 햇살이 떠올랐다.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봄은 심란한 계절이다. 양평 집에 가는 길 도로변에 한아름 가득한 개나리 꽃 사태가 떠오른다. 그 생각에 이어 귀여운 산수유 꽃이 떠올랐고, 지난해 아내와 함께 갔던 어린이 대공원의 벚꽃이 떠올랐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사무치게 그립다. 내게 봄은 파스텔 톤의 화사하고 밝은 빛이다. 연둣빛, 노란 빛, 아주 연한 벚꽃 빛. 특히 벚꽃의 그 아주 연하고 은은한 붉은 빛은 가장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어린이 대공원의 벚꽃 비에 이어 재 작년 여의도 윤중로가 떠올랐다.

참 다행이라 여기는 것은 내가 추억을 담아놓는 곳은 즐겁고 아름다운 것들 위주로 담겨져 있다는 것. 내 마음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추억을 생각하기도 부족한 삶에 나쁜 기억을 굳이 생각할 필요가 있느냐 라고 대답해 준다. 예전에 법정스님 봄 법회에 갔을 때 스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스님의 육성으로 생생하게 울린다. "꽃철에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니깐 봄이 온 것이지요." 강원도 오두막에 가면 스님이 계실 것 같다. 슬프진 않다. 스님은 언제나 내 가슴 속에 살아계시니깐.

좋은 추억과 관련된 글을 많이 쓰고 싶다. 어머니 아버지, 아니 엄마, 아빠와의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싶고, 푸르렀던 학창시절을 추억하고 싶다. 물론 나의 정신적 여행은 과거로만 향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고이 접혀 있는 마음 속 질서들이 펼쳐질 펼쳐질 아름다운 미래도 떠올릴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도 이미 5년 전, 10년 전에 접혀 있던 질서들이라 생각하니 새삼 신비로운 마음이 든다. 잠시나마 마음속 시간여행을 통해 아름답고 따사로운 추억의 장면들을 만끽하고 돌아왔다.

물론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아 겉잡을 수 없을 때도 있지만, 요즘처럼 나와 내 마음이 죽이 잘 맞으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아직은 너무나 간질간질 하다. 이가 나올락 말락 하는 아이의 젖니처럼 말이다. 그저 아쉬운 것은 내가 마음을 통해 본 것과 들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잘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걱정하지 않는다. 매일 읽고 쓰니 점점 나아지겠지? 5년, 10년 후면 나와 마음이 나눈 이야기와 함께 바라본 것들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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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3 00:40:52 *.171.69.29
선배님의 글은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어 읽기가 좋아요.
아마 다른 분들도 그렇게 느끼실 것 같아요. 미래의 독자들도..

저는 요즘은 수험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해 단군일지를 최소화하고 있지만 
선배님 일지는 여전히 자주 들러 읽고 간답니다.
거의 수험생활과 비슷한 여정을 걷고 계시네요. 어쩌면 더할지도...
삶의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 몰입하시는 모습
규칙적으로 하루의 패턴을 관리하시는 모습에 많은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상상외로 에너지 소비가 많답니다. 
체력관리를 꾸준히 하시는 것을 보니 끝까지 잘 견디실 것 같아요. 
저같은 경우도 운동없이 몰두하다 보면 꼭 지치더라구요. 
하루 잘 보내세요. 여러가지로 많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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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4 06:54:56 *.99.185.249

245일차 (2월 23일)

1박 2일 교육과정으로 곤지암에 있는 그룹 연수원에 와 있다. 새벽에 회사에서 1시간 남짓 활동이 오늘 활동의 전부가 되었다. 오늘 있는 교육은 일종의 '정신 교육'이다. 지난해 CEO가 새로 취임한 이래로 10월 이후 진행해 온 과정인데,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 차수에 마지 못해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레이스 기간과 겹칠 줄 알았다면 미리 받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오늘 오게 된 것도 다 어떤 내게 어떤 의미가 있겠지 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일종의 '정신 교육' 과정이다. 오전 시간은 회사의 핵심가치에 대해서 오후에는 그룹의 경영방침에 대해서 한 방향 교육을 했고, 사이코 드라마 강사를 초빙해 역할극을 진행했다. 우리 회사가 참 힘들게 성장한 회사임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내 가슴에 경종이 된 말, 아마도 이 말을 들으려고 내가 오늘 이곳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는 어떤 인재를 원하는가? 두 개의 축이 있다. 가로 축은 회사의 가치와 개인의 적합도 이고 새로 축은 개인의 역량이다. 이 곳을 사분면으로 나눈다. 강사로 온 우리 회사의 경영혁신 파트장은 특유의 유려하고 세련되며 지적인 말투로 GE의 잭웰치 사례를 들며 단호하게 이야기 했다. "개인의 역량은 출중하지만 회사의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 사람이 최우선 축출 대상이다. 이건 우리 회사의 인사 정책과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들은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지만 계속해서 팀을 와해시킨다. 그들이 훌륭한 단기 성과야 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의 암 세포가 될 것이다." 마치 나를 향해 던지는 직격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5월 이후 지속적으로 팀 멤버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상사들의 리더십에 실망했고, 최선을 다해 회사 일에 매진해 왔지만 조금이라도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이해와 관용보다는 배척과 고립이라는 카드로 개인을 억압하여 개인의 정체성을 짓누르려는 그들의 작태에 암묵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물론 개인적인 지병으로 그들과의 저녁 어울림을 의도적으로 피한 것도 사실이다. 경영혁신 파트장의 이야기가 내 가슴 속을 무찔러 들어온 것은 생존의 위협 때문이었다. 적어도 향후 3~5년 이상은 이 조직에 속해 밥벌이를 하고자 했다. 물론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최대한 지금 있는 조직에 남아, 부서 이동 등을 통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필살기를 개발하는 것이 내가 수립한 1차적인 목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적인 측면에서 나는 여전히 스스로 고립된 위치를 고수해 왔다. 일 시키기 까탈스럽고 어려운 직원이 되어가면서 말이다. 오늘의 교육은 아마도 더는 고립되지 말고 조금만 조직과 손잡고 화해하라는 행동신호로 내게 다가온 것 같다. 나의 다른 모습을 이곳에 온 다양한 직급을 가진 70여명의 타 부서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느낀 또 다른 가능성. 여기에 있는 사람들, 내가 속한 회사 사람들이야 말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나의 미래 고객의 표본이라는 생각이었다. 희석형님 말씀대로 조직을 나오게 되면 이러한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히며 배우고 관찰하는 살아있는 경험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그들과 나 사이의 간격을 메우지 못하고 평행선만 긋는 다면 나는 탁상공론이나 하는 허섭한 자기계발 강사로 전락되고 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1박 2일의 교육은 내게 아주 커다란 개안의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래도 내가 5년 이상 몸담아온 조직이다. 일시적인 매너리즘일 수도 있다. 보다 열린 마음, 편안한 마음, 따뜻한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물과 기름처럼 어울림을 갖지 못하고 고립될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관계를 개선시키는 방향으로 선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연구원 레이스로 온 신경이 다른 곳으로 집중되었던 시기에 이 교육이 내게 찾아와 준 이유가 그곳에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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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4 22:38:26 *.109.53.183

246일차 (2월 24일)

새벽 3시 반, 연수원에서 새벽을 맞이했다. 주섬주섬 넷 북을 싸 들고 교육장을 향했다. 어젠 너무 고단해서 정말 씻지도 못하고, 일지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그만 곯아 떨어져 버렸다. 모닝페이지를 쓰고 어제 쓰지 못한 단군일지를 작성하고 나니 4시 20분쯤 되었다. 가져간 독서대 위에 책을 펴놓고 부지런히 필사를 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양을 줄였는데도 끝이 없다. 양을 맞춘다고 함부로 양을 버리기도 싫다. 마치 불의와 타협하는 기분이 들어 싫다. 언젠가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지금은 그러기 싫다.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시간인 7시까지 두 시간 반 가량 필사를 했다.

아침을 먹고 연수원 주변을 산책했다. 연수원 뒤 언덕에 지금은 비어 있는 절이 있는데, 부도가 그대로 남아 있어 부도 앞에서 합장을 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기도를 했다. 내려와 연수원 뒤 소나무 길을 걸었다. 곤지암에 있는 연수원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다. 지난 번에 왔을 때만해도 못 맡았던 솔 내음이 났다. 후각이 아주 많이 돌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연 덕분이다. 은은한 솔 내음을 맡아 본지가 언제이던가.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 시간에도 그렇게 연수원 둘레를 어슬렁거렸다. 가끔 회사가 참 좋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좋은 곳도 보내주고 밥도 먹여주고 월급도 주고 말이다.

함께 교육을 받았던 다른 부문 과장님께서 같은 방향이라 차를 태워주신다고 하셨다. 버스를 타면 대치동 사옥에서 내려주기 때문에 집에 오는데 한 시간 이상이 걸린다. 7호선 태릉입구에 내리니 4시정도 되었다. 곧바로 노원에 있는 북 카페로 향했다. 4시 반부터 9시 반까지 5시간 동안 쉬지 않고 필사를 했다. 필사를 마치고 나니 지난번보다 분량이 더 많다. 필사한 분량만 60페이지 가량이 나왔다. 제목을 붙이고, 저자에 관한 자료랑 책의 구조에 대한 분석까지 덧붙이면 70페이지를 훌쩍 넘길 것 같다. 아직은 양 조절이 안 된다. 더욱 더 가슴을 무찌르는 말을 추릴 수밖에.

그래도 필사를 다 마쳤으니 다음 단계에 돌입할 수 있다. 미리 구상해 놓은 아웃라인을 토대로 나머지 과제들에 살을 붙이는 작업을 해야겠다. 오늘 북 카페에서 5시간 앉아 필사를 하며 아주 많은 시간 FLOW(몰입)를 경험했다. 황홀한 순간이었다. 쉬지 않고 앉아 있었음에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쌓였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교수가 말한 'FLOW'라는 확신이 들었다. 천복이 아니라면 이게 가능할까? 아니면 단지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 '시작효과'일까? 중요한 건 나는 요즘 계속 몰입하고 있고, 몰입하는 순간은 심장도 뛰지 않는 듯한 고요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1박 2일 교육이었는데 마치 며칠 다녀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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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5 18:25:57 *.109.26.245

247일차 (2월 25일)

칼럼 글을 썼다. 나를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른 사람을 위한 글이 아닌 나를 위한 글을 썼다. 1주일간 머리 속을 맴돌던 생각들이 제자리를 잡아 간다. 분명 모닝페이지와는 다른 류의 글이다. 더 힘들다.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다 쓰고 나면 느껴지는 뿌듯함은 모닝페이지와는 다른 즐거움을 준다. 새벽에 모닝페이를 쓸 때도, 집에서 나와 지하철 역으로 걸어갈 때도, 지하철 안에서도, 회사로 걸어가는 길에도, 계단을 오르는 시간에도 화두를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숙성에 숙성을 거듭한 화두를 건져 올린다. 고수들의 눈에는 가소로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 안에서 길어 올려진 따끈한 글은 참으로 맛있다. 어법에도 맞지 않고 문맥도 엉망이지만 문장과 문장 사이에 내 마음이 살아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 흐름에 나는 희열을 느낀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새로운 마음으로 한 주를 시작한다. 이 또한 평생 습관으로 삼을 만 하다. 매주 훌륭한 스승을 만나고 스승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그의 이야기를 해체하고 나의 언어로 재구성한다. 그렇게 스승을 내 가슴속에 빨아 들여 나와 동화시킨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오늘도 나의 내면 속에는 작은 으르렁거림이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어! 먹고 살아야지! 존재와 밥벌이의 전쟁. 이들은 매일 마주친다. 매일 전쟁을 치른다. 언제쯤 이들이 조화를 이루고 화해를 할 수 있을까? 회사를 그만두고 나가면 해결 가능한 것일까?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면 언제나 어깨가 무거워진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겠다. 봄이 오면 하고 싶은 일이 참 많다.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재작년 따뜻한 봄날에 쌍문동 어머님, 아버님, 아내와 나 이렇게 넷이 우이동 연산군 묘 부근의 꽃 시장을 찾은 적이 있었다. 따사로운 봄의 햇살과 아직 꽃을 피우지 않은 온실 안의 화분들의 맑은 내음이 풋풋한 흙 내음이 어우러져 특유의 향을 냈다. 나는 그 향을 그 해의 봄 내음으로 기억한다. 아버님께서 앵두나무 몇 그루를 사셨던 것 같다. 그 앵두나무가 열매를 맺어서 지난해 초여름 맛있게 앵두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보다 배고프게 살지도 모르는 길이다. 견딜 수 있겠는가? 언제부터인가 돈이란 녀석이 암묵적으로 내 삶의 목표 중 하나가 되어 들어 앉아 있다. 남들의 시선, 남들과의 비교. 나는 이런 요소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 그들에게 벗어나려 몸부림 칠수록 더욱 더 그들 속에 갇힐 것이다. 내 안에 그런 존재가 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무수히 많은 내 안의 나, 그리고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가짓수 만큼 가지고 있는 페르소나.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힘. 그것을 바라보는 나.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지도자를 원한다. 내 안의 소우주를 조화롭게 가꿀 수 있는 그러한 지도자 말이다. 그 모든 일에 앞서 나의 존재를 온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시작은 그 다음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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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6 17:44:47 *.192.54.187

248일차 (2월 26일)

새벽활동으로 2번째 과제 북 리뷰 중 '저자에 대하여'를 작성했다. 겉으로 보여지는 몇 페이지의 자료를 위해 몇 십 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스크랩했다. 스승을 비롯한 탁월한 글쓰기를 하는 분들의 빛나는 글의 뒤편에는 내가 경험한 그런 엄청난 탐색과 독서, 사색이 베어 있을 것이다. 마치 호수 위의 우아한 백조가 물 아래에서는 발로 열심히 물질을 하듯이 말이다.

7시에 집 앞 헬스장에 가서 1시간 가량 가볍게 유산소운동을 했다. 마치고 돌아와 아내와 함께 아침 밥을 지어 먹었다. 지난 번 양평에 갔을 때 어머니께서 싸주신 비지찌개와 아내가 만든 샐러드와 함께 먹었다. 매일 아침 시리얼만 먹다가 오랜 만에 아침 밥을 먹으니 아주 든든했다. 아내가 도시락을 싸주었다.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데, 하와이 출신 대통령이 좋아해서 유명해 졌다는 음식이다. 밥을 뭉쳐 네모나게 만든 후 그 위에 간장에 졸인 스팸을 올려 놓고, 가운데를 김으로 한 바퀴 감싼 것이다. 먹음직스러웠다.

10시에 북 카페에 와서 지체 없이 과제를 시작했다. '내가 저자라면'을 작성했다. 과제를 마무리 짓고 나니 1시가 다 되어 있었다. 도시락을 먹었다. 너무나 맛있다. 저녁에 먹을 것까지 싸 주었는데, 얼른 저녁이 왔으면 좋겠다. 3번째 과제는 사부님의 저서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이다. 4개의 과제 중 가장 읽기 무난하다. 그래서 더 부담스럽다. 2009년 5월 에 처음 읽었고, 지금까지 총 3회독을 했다. 아무리 많이 읽어도 나의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느꼈다. 이번 기회에 구석구석 내 것으로 만들어야 겠다.

책을 읽기 전에 사전 작업을 했다. 2번의 과제를 수행하고 나니 과제를 작성하기 위한 나만의 아웃라인이 생겼다. 자료를 스크랩 하고 나니 시간이 꽤 흘러 있다. 자료를 탐색할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나는 다방면으로 자료를 탐색하고 의미 있는 자료를 찾는 데는 재능도 없고 흥미도 없음을 느낀다. 그러나 이 재능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에 꼭 필요한 재능이기도 하다. 탁월함 수준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평균수준에는 도달해야 한다. 변경연에서 필요한 자료를 스크랩을 하려 했는데, 느리고 로딩이 길다. 여기서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 먹었다. 완벽주의, 최상주의는 버리기로 했으므로 추후에 이어서 자료수집을 해야겠다.

되도록 오늘, 내일 책을 정독하고 필사까지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깊게 들어가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해도 필사 량이 너무 많다. 필사를 더 줄이고, 그 시간에 칼럼과 리뷰에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겠다. 그러나 막상 필사를 하면 욕심이 생겨서 계획이 틀어지고 만다. 오늘 자료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책을 읽도록 한다. 스승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찾아 왔다. 스승의 말씀대로 독서는 저자와의 만남이다. 그와 함께 산책하며 도란도란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하니, 기대를 넘어 설렘으로 다가온다. 자 길을 떠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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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7 22:38:16 *.109.83.148

249일차 (2월 27일)

참으로 오랜만에 겨울비가 내린다. 새벽 기상 후 모닝페이지를 쓰고, 중랑천 산책을 나섰다. 레이스 기간이라 산책 거리는 줄었지만 비가 내린다고 해서 예외는 없다. 산책은 나에게 명상이자 정신적 양식이다. 그 어떤 것에도 양보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우산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내 발걸음을 경쾌하게 한다.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은 거리를 걸으려 했는데 신발이 젖어 걷기가 곤란해졌다. 마음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아쉽다

사부님을 만났다. 물론 책 속에서.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장장 12시간의 긴 대화였다. 대화라기 보다는 내 쪽에서의 경청이었다. 며칠을 두고 읽어야 하는 책임에도 하루 만에 읽었다. 물론 5번째 읽기 때문에 빨리 읽을 수 있었다. 빨리 읽었다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깊이 읽었는가가 중요하다. 한 문장도 놓치지 않고 싶었다. 한 페이지 전체에 밑줄을 그은 곳도 있다. 그런 곳이 꽤 많다. 필사하기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책 반 권 정도는 타이핑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라도 사부님의 세계와 문장력을 내 속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몇 권이라도 필사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럴 계획도 있었다.

사부님의 세계에 흠뻑 빠져 들었었다. 전에 읽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아주 세세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함께하면 어려워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는 분을 정말로 옆에서 투명인간이 되어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 철저한 스토커가 되었던 셈이다.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나 참 잘 했구나 라는 생각에 코 끝이 찡해 왔다. 내가 제대로 된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들고 또 들었다. 나의 깨달음의 경지를 나눌 수 있는 어른. 닮고 싶고, 따라 하고 싶고, 넘어서고 싶은 분. 그런 스승을 얼마나 애타게 찾아 왔던가?

내일 휴가를 냈다. 그래서 내일과 모레 양일간 북 카페에 진을 치고 마음껏 책 속에 파 묻힐 작정이다. 아마도 토, 일, 월, 화 4일 간의 모습이 내 미래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면도를 하지 않아서 좋다. 좀 지저분하긴 하지만 까슬까슬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원래 내일이 자발적 빈곤의 날인데, 회사에 출근하는 수요일로 미루었다. 스스로와 타협해서 그러한 것은 아니고, 불필요한 신경 쓰임에서 벗어나 하나에만 전념하기 위해서다.

하루 만에 필사를 끝낼 수 있을 것인가?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그런 형식에 얽매이는 모범생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라고 수희향 누나가 따끔한 조언을 해주시지 않으셨는가? 그 시간에 자신의 속으로 더욱더 침잠해 들어갈 것. 2번째 과제를 올렸다. 일보다 과제에 더 전념했다. 왜냐고? 이게 내 본업이니깐. 회사 일은 부업이다. 힘의 분배가 중요함을 새삼 실감했다. 적어도 4주간은 뼛속까지 내려가는 치열함이 필요하다. 아직도 부족하다. 부족하고 또 부족하다. 그리고 늘 배고프다. 지적 굶주림, 지적 결핍을 견디기 힘들다. 지금까지 헛되이 보낸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내게 남은 시간에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다. 또 왜냐고 묻는다면. 그냥 간절하니깐.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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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8 22:26:35 *.124.233.1

250일차 (2월 28일)

2월의 마지막 날이다. 회사에 연차휴가를 냈다. 징검다리 휴가라 오늘 휴가를 내면 연달아 이틀을 더 공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활동으로 2시간 필사를 했고, 한 시간 가량 운동을 다녀온 뒤 10시부터 북 카페에서 다시 필사를 시작했다. 잠깐 짬을 내어 밥을 먹고, 잠시 20~30분 가량 눈을 붙인 것 이외에 카페에서 나오는 21시 반까지 필사만 했다. 일부러 분량은 체크하지 않았다. 책의 1/4 가량을 필사하는 것 같다. 정상적인 필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별다른 재능이 없는 나로서는 열정과 성실로 승부하는 수 밖에는 없다. 그리고 스승의 책이기 때문에 더욱 더 애착을 가지고 필사를 하게 되는 것 같다.

12시간 이상을 스승의 세계에 푹 빠져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책을 쓸 수 있을까?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지 일년 남짓 되었다. 스승은 이 책을 쓰신 것은 본격적으로 글을 쓰신지 8년 차가 되는 해였다. 이미 1만 시간 이상을 채우셨을 것이다. 그리고 깊은 내공으로 1년을 공들여 쓰신 책이다. 하루 이틀 만에 깊은 세계를 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도 욕심이 나고 또 욕심이 났다. 어쩌면 문장들이 이렇게 하나같이 살아 숨쉴 수가 있을까? 무식하게 필사를 하는 것은 눈으로 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눈으로 있는 것이 뉘앙스를 흡수하는 것이라면 필사는 직접 저자가 되는 것이다.

스승께서 연구원들에게 적지 않은 분량의 북 리뷰를 과제로 내어 주시는 것도 모두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물론 1년 내내 레이스와 같은 집중력을 일관되게 발휘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레이스를 통해 체험한 독서의 강도는 상상초월이다. 예전의 독서의 강도가 1이라면 레이스 할 때 체감한 독서의 강도는 10이상이다. 부끄럽지만 그전의 독서는 독서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레이스를 통해 진정한 독서의 의미를 깨우치고 있다. 물론 독서의 목적에 따라 책 읽는 방식이 달라지겠지만, 나와 같이 생계 형 독서를 목표로 한다면 레이스를 하듯 독서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루를 소진해서 진이 빠진다. 그런데 기분은 너무나 상쾌하다. 이것이 진정한 천복인지는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이만한 즐거움은 없다. 12시간을 한 곳에 있어도 지치지 않았다. 천복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마음 같아서는 몇 날 며칠이고 이러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진퉁인지 짝퉁인지는 시간이 지나보면 알 수 있다. 단 한 권의 책으로도 나는 네 안의 것을 소진시킬 수 있다. 고수의 세계로 가는 길은 피나는 훈련밖에는 없구나. 새삼 깨닫는다. 그렇다. 다른 방법은 눈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그저 나를 오롯이 바쳐 수련하고 또 수련하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은 전혀 없다. 정말이다. 일절 없다. 그래서 해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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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1 21:37:44 *.109.24.221

251일차 (3월 1일)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존재다' 벽에 부딪힐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뇌는 말이다. 넘을 수 없는 커다란 벽에 부딪힌 기분이다. 성정이 급한 나는 어서 저 벽을 넘고 싶어 안달이 난다. 회사를 그만 두고 나와 스승이 걸은 그대로 따라 하고 싶어한다. 그나마 평소에 점잖은 체 하는 이성이 나서서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다. 연속 4일을 북 카페에서 살다시피 했다. 파고 파도 끝이 없다. 그저 단 한 권의 책인데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진다면. 조금만 내게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잡힐 듯 잡힐 듯 한데 잡히지가 않는 뭔가가 있다. 그게 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더 머물고 싶은데 자리를 일어서야 하는 아쉬움. 차를 타고 처가로 아내를 데리러 가는 길. 창동교를 건너 지하차도를 지나 창신 초등학교 방향으로 가면 북한산이 정면으로 보인다. 갑자기 슬퍼진다. 누구라도 툭 건드리면 눈물이 날 것 같다. 갑자기 슬픈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처가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오는 길에도 심란해진 마음을 가라앉힐 길이 없다. 왜 그런 것인지 이유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내려두고 낙타로 되돌아가 무거운 짐을 어깨에 실어야 한다는 두려움이 내 가슴을 콱 막히게 하는 모양이다.

이래서 엔서니 라빈스는 우리 삶에서 '은유'가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소중한 나의 하루를 낙타의 고된 삶에 비유함으로써 불행해졌다. 정말로 나는 불행한가? 스승은 말씀하셨다. 변화는 불행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모르겠다. 스승이 쓴 단 한 권에서 쏟아져 나온 언어의 홍수 속에 나는 정신차리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다. 어서 빨리 헤엄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수준 차이다. 아.. 분하다. 분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시련이다. 참고 견뎌야 한다. 아직 1/10 도 채우지 못했다. 필요한 것은 반사. 불행을 반사하여 극적으로 상황을 역전시킨다. 반사의 도구는 태도. 스승의 방법을 그대로 쓴다.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 낙관적인 정신적 전환을 꾀한다.

그만 심각하고 싶다. 그만 심각한 체 하고 싶다. 모범생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싶다. 나는 니체를 잘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니체처럼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미친놈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조르바처럼 거침없이 먹고 마시고 춤추며 하늘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다. 나라는 껍질을 벗어 던지고 탈출을 시도하는 내 안의 파토스. 나를 단단히 묶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대체 그 속박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이렇게 나는 스승에 의해 사정없이 뒤흔들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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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2 22:10:20 *.109.82.164

252일차 (3월 2일)

감히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할 지 모를 때가 있다. 원래 내가 지향하는 단군일지는 모닝페이지와 칼럼의 중간 정도 수준의 글이었다.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기술하되 앞뒤에 맞지 않는 무의식적 독백은 하지 않는 그런 글 정도였다. 형식을 조금 갖춘 모닝페이지라고 하면 맞겠다. 형식에 구애 받고 누군가를 의식하는 순간 글 쓰는 것은 재미가 없어진다. 생각해 보면 레이스를 시작한 이래로 참 많이 읽고, 참 많이 쓰고 있다. 그것이 속에 있는 것을 끌어 올리는 글쓰기이든, 밑줄 그어 놓은 것을 베껴 써야 하는 필사이든 아주 많은 양을 쓰고 또 쓴다. 그래도 쓰는 일은 지루하지 않다. 힘들 때도 있지만 내가 짜놓은 개요랑은 아주 다른 방향으로 훨씬 더 완성도 높은 글이 나왔을 때의 쾌감이란.

내 이야기가 언제나 나올까 오매불망 기다리는 독자들. 내가 쓴 글의 문장을 구석구석 꼼꼼하게 읽는 독자들. 심지어는 나의 글을 통째로 필사하는 독자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닌 수 천명.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나의 스승은 이미 그 너머에 계시다. 그가 떠 안아야 할 무게 너머에 그는 존재한다. 나도 20여 년 후쯤 되면 저 정도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고개를 숙이고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배우고 익히도록 한다. 배우는 자는 무릇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한다. 앞으로 향후 10년간 나의 배움의 원칙은 겸손, 또 겸손이다. 아는 것을 모르는 척 하거나, 굽신굽신거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결코 완전하지 않으며, 완전에 가까운 수준에 이르려면 아직도 배우고 익힐 것이 너무나 남아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배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에게조차 배울 것은 있다. 배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배움이다. 말장난 같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알량하게 책을 몇 권 읽었다고 해서, 글을 몇 줄 썼다고 해서 오만 방자해져서는 안 된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서 배울 수 있다. 늘 먼저 고개를 숙이고 배워라. 아는 자가 가장 빠지기 쉬운 것이 지적 오만이다. 삼국지에 보면 그런 어줍잖은 알량한 지적 오만함으로 인해 단칼에 목이 날아가는 인물들이 적잖다. 연금술사에 나오듯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글 좀 쓰고 책 좀 읽었다고 나대지 마라. 당당하되 겸손 하라. 당당한 겸손함, 겸손한 당당함. 역설적인 것 사이의 균형을 이루어라.

월요일에 휴가를 내어 하지 못했던 '자발적 빈곤'을 오늘 실천했다. 일일 단식. 배는 조금 고프지만 가벼워서 좋다. 타성에 구속 받지 않음을 몸소 실천한다는 것은 멋진 경험이다. 단 하루라도 먹는 것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자기 통제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두려움은 곧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무엇이랴." 칼릴지브란의 말이다. 사부님께서는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에서 이 문구를 읽으시고 '시팔'이라 외치셨다. 그 느낌 알 것 같다. 사람들은 겨우 하루 굶는 나를 보고 독하다고 한다. 정말 내가 독한 것일까? 그들은 두려워한다. 버젓이 굶고도 하루 잘 보내는 나를 보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들도 '시팔'의 묘미를 좀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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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3 21:52:59 *.109.82.164

253일차 (3월 3일)

오늘 점심엔 본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입사동기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여자동기 한 명이 그만 두고 타사로 이직을 한다고 했다. 함께 입사하여 같은 팀에서 5년 이상을 함께 일한 동기다. 우리 모두 아쉬웠지만 축하를 했다. 아쉬움보다 축하한다고 하는 우리의 말에 미묘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 말의 뒤에는 지금 함께 몸 담고 있는 조직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베어 있다. 사람을 혹사시키는 조직, 사람을 가치를 키워야 할 자산이 아닌 소모되는 비용으로 생각하는 조직이라는 실망이 베어 있던 것이다. 5년 이상을 몸담아 온 조직에 대해 이러한 실망 섞인 잠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어 그저 씁쓸할 뿐이었다.

점심을 먹고 함께 커피를 마시다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에 낯선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분명 스팸 전화일 것이다. 모 보험회사인데 사고접수를 받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이제는 별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잘못 걸었다며 후다닥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 순간 상대방이 어머니의 존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부모님께서 접촉사고가 나셨고, 뒤에서 부모님의 차를 받은 상대 차량의 보험사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차량 번호를 조회해서 내 번호를 알고 전화를 한 것이다. 서둘러 사무실에 들어와 차장님께 보고를 하고 바로 집에 들러 차를 갖고 함께 조퇴를 한 아내와 함께 양평 길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큰 이상은 없으셨다. 어머니께서 약간의 뇌진탕 기운이 있으셨지만 CT촬영 결과 이상은 없다고 했다. 아버지께서도 사고로 인한 이상은 없으셨지만, CT결과 예전에 앓으신 뇌졸중으로 인하여 막힌 뇌혈관이 CT사진에 나온 모양이다. 그 사진을 보고 의사가 앞으로 더욱 더 조심하셔야겠다고 이야기 했단다. 우선은 2주 정도 입원하시고 상황을 더 지켜 보아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먼저 도착한 동생이 이래저래 수습을 해 놓은 터라 막상 도착해서 내가 할 일은 없었다. 왕방울 만한 큰 눈을 깜박이시는 어머니와 어느새 좁게 쳐진 아버지의 어깨를 보니 갑자기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왈칵 치솟아 오르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저녁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보고 동생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아침에 2시간 동안 5매정도의 칼럼 글 초안을 작성했다. 그야 말로 마구 잡이로 갈겨쓴 초안이다. 형편없이 갈겨썼지만 아이디어는 좋았다. 물론 터무니 없어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원래 목표는 원대하게 세우는 법이다. 또한 넓게 파기 시작해야 깊이 팔 수 있다. 적어도 내가 특별해지기 위한 조건은 그렇게 시작한다. 전화위복이라 생각하려 한다. 사실 오늘은 새벽부터 겉잡을 수 없이 피곤했다. 그래서 쓰러지기라도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차를 가지러 집으로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잠깐 눈을 붙였고, 부모님께서 물리치료 받으실 때도 조금 졸았다. 피로가 많이 누적된 모양이다. 이 정도면 되었다. 오늘 이 정도면 충분하다. 맑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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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11.03.04 09:20:58 *.12.196.17
저런.. 그만하시기를 참 다행이다..
정말 하루가 다르게 나이들어가시는 부모님들이신지라,
이젠 그분들이 아프신게 가장 아리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그렇다..
그래도 큰 부상없으시니 다행이시라 생각하고, 원래 좋은 길 열릴때는 조금의 방해가 있다잖아.
중심 잃지말고, 기운 잃지도 말고, 예쁘고 심성고운 와이프랑 힘합쳐서 계속 홧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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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4 22:59:29 *.109.52.245

254일차 (3월 4일)

종일 듣고 들어도 질리지 않는 노래가 있는 날이 있다. 오늘 바로 그런 날이다. 한 곡은 유치한 만화주제가이고, 한 곡은 아주 오래된 노래이다. 이 두 곡이 오늘 내 삶을 받쳐주었다. 그리고 오전에 보낸 알 찬 시간도 오늘 하루를 알차게 하는 데 한 몫 했다. 글을 쓰는 일은 즐겁다. 그러나 작가라는 타이틀은 부담스럽다. 내게 있어 글쓰기는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내 속에 있는 것을 바깥 세상으로 끌어내는 수단일 뿐이다. 그것이 예술이 되어주길 바라지 않는다. 절대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내 안에 있던 뭔가를 속 시원히 드러내어 주면 그것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그저 씀으로써 내면에 에너지가 갇히지 않고 뿜어져 나와 좋을 뿐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 되도록 의무감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지난 1년 간의 시간은 내게 그런 훈련의 시간이었다. 글쓰기는 의무가 아니다. 그저 나를 드러내고, 내 안에 존재하는 에너지들이 고여 썩지 않게 바깥으로 표출시키는 즐거운 순환의 도구이다. 글쓰기는 언제고 할 수 있다. 음악은 한정된 공간과 악기라는 조금은 번거로운 절차와 도구가 필요하지만, 글쓰기는 종이와 펜 혹은 노트북 앞이면 된다. 빈 파일 하나 열어서 그저 써 내려가면 된다. 지우개도 필요 없다. 그저 쓰고 또 써 내려가면 그걸로 좋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내 글쓰기를 있게 한 것은 팔 할이 모닝페이지다. 그런 의미에서 줄리아 카메론은 또 다른 나의 진정한 스승이라 할 수 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되도록이면 들뜨지 않으려고 한다. 고요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한다. 늘 똑같은 상황을 유지하라는 것이 아니다. 회사 내에서의 여러 가지 압박감, 돌발상황 등 각종 스트레스 성 요인들에게 농락당하지 말라는 의미다. 흥분하고 들뜨면 그 하루는 대체로 엉망이 되기 십상이다. 요새 들어 소리의 위대함에 감탄하곤 한다. 무슨 대단한 음악이나 노래를 들어서가 아니라, 음악이 있고 없고의 현격한 차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잠들기 전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의 멜로디를 오르골 연주로 들으면 만화 속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피구왕 통키 주제가를 들으면 가사에 나오는 영웅의 여정에 따라 나는 피구왕 통기가 되어 고된 훈련과 도전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불꽃 슛을 뿜는다. 가슴이 떨리고 심지어는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 없는 반응이지만, 내 가슴은 그렇게 반응한다. 그리고 그렇게 반응할 수 있는 가슴을 가진 것이 자랑스럽다. 그렇게 나와 내 마음은 통한다.

마음껏 글을 쓸 수 있고, 듣고 싶은 노래를 몇 번이고 듣고 또 들을 수 있는 지금, 내가 사는 곳이 천국이 아닐까? 사실 나는 신도 잘 모르고, 천국도 잘 모른다. 그냥 막연하게 행복을 느끼고, 누릴 수 있는 곳이 천국이 아닐까라고 짐작할 뿐이다. 만약 천국의 정의가 그러하다면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바로 여기가 천국이다. 행복하게 졸리다. 오늘도 오르골 연주를 들으며 잠이 들어야지. 하울의 움직이는 섬의 순무 허수아비가 아른거린다. 몽환적인 연주곡 너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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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5 22:32:48 *.109.52.102

255일차 (3월 5일)

쉬울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해보았다. 레이스 또한 하나의 작은 '영웅의 여정'의 원형과 같다. 균열은 가장 약한 부분에서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부분에서 찾아온다.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변하는 찰나에 작은 균열이 생긴다. 아직 기회는 있다. 호미로 막을 수 있을 때 막아야 한다. 대단한 절제가 필요하다. 여러 지점들에 연결된 실 사이에서 나는 균형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무게 중심을 잡아야 한다. 잠, 관계, 건강, 일 등 내가 맡고 있는 역할 중 어느 것 하나도 자칫하면 끊어질 수가 있다. 이것은 외줄타기보다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

결코 쉬울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가장 믿었던 것이 가장 뼈 아픈 비수가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만화에 나오는 무림 고수들도 독이 든 비수에 맞으면 우선 조용한 곳에 가서 좌정에 든다. 입을 꾹 다물고 안으로 살피고 또 살핀다. 한 마디도 할 수 없다. 말을 하는 순간 독이 온 몸으로 퍼지기 때문이다. 삼매를 통해 독이 퍼지는 것을 막고 선한 기로 독을 중화시키고 뿜어낸다. 나  또한 단단히 입을 다문다. 침묵이 상책이다. 세상 경험이 많은 지혜로운 노인은 이야기 한다. 심히 번거롭고 지금 당장 해결하기 힘든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경우 입다물고 침묵하며, 하룻밤 푹 자고 나면 자연스레 답이 찾아올 것이라 이야기 한다.

내게 찾아오는 시련은 모두가 하나의 시험과 같다. 내가 정말 간절한 것인지 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그 어려운 시련이 주어지는 것은 그 단 한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지 않겠는가? 입 다물고 어금니를 꽉 깨물도록 하라. 모든 불필요한 망상들을 잠재워라. 이유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 그냥 침묵하라. 100% 완벽한 해답이 뇌리 속으로 찾아왔다고 하더라도 입다물고 침묵하라. 모든 것이 평온하게 가라 앉았을 입을 떼라. 그러면 그 어떤 화라도 면할 수 있다. 모든 화의 근원은 바로 입에서 나온다. 우리는 입에 들어갔다 나오는 똥을 더러워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더럽고 추한 말은 똥보다 더 더럽다. 똥보다 더러운 말을 내뱉느니 어금니 꽉 깨물고 침묵하라. 그게 최상책이다.

쉬워 보이는 일은 있어도 쉬운 일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까지의 내 삶이 그래왔다.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는 남들에게 자주 생기는 운도 따라본 적 없었다. 내 삶은 요행과 거리가 멀다. 노력한 만큼 딱 그만큼만의 대가가 주어졌다. 불행하지 않은 것, 불운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또 하나가 생겼다. 나를 다스리는, 나를 가라앉히는 훌륭한 진정제 역할을 해준다. 조심스레 예언한다. 내 삶의 팔 할은 바람이 아닌 글쓰기가 될 것이다. 결정이란 것, 최종 결정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확정된 그 결정이란 것을 10번이고 되새김질 하고 내리는 것이다. 그전까지 입다물고 침묵하라. 그게 최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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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6 21:04:18 *.192.54.187

256일차 (3월 6일)

3주 만에 중랑천 산책길을 풀코스로 다녀왔다. 그냥 마음이 그렇게 하자고 하여 따라갔다. 나의 마음은 끊임없이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를 해댔다. 쌓이고 쌓인 게 많았던 모양이다. 듣고 또 들었다. 산책을 하며 나도 변한 것이 있다. 예전엔 마음이 이야기하면 마음의 이야기에 휩쓸려 무엇이 마음인지, 무엇이 나인지 구분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마음에 대한 감정이입이 된 셈이다. 그러나 이제는 흔들리지 않은 중심이 마음의 이야기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하게 듣는다. 그래서 마음이 흥분하여 격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동요되지 않는다. 그렇게 두 시간 반 가량 산책을 하고 돌아와 씻고 바로 북 카페로 향했다.

이제는 이곳의 단골이 되었다. 연구원이 된다면 1년 아니 2년 내내 이곳의 단골로 주말마다 그리고 휴일마다 이곳에 오게 될 것이다. 구석진 곳에 앉아 자리 세팅을 한다. 세팅이래 봐야 가지고 간 넷 북을 설치하고, 독서대를 펴는 일이다. 그리고 가장 싼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다. 이곳에서 파는 토스트는 맛이 없으므로 잠시 근처에 있는 빵집에 가서 샌드위치 같은 것을 사가지고 온다. 그 다음부터는 그냥 읽고 쓰고 하는 일만 한다. 담배를 끊은 지 300여 일이 다 되어 간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는 일 말고는 자리에서 일어날 일이 없다.

오후 2시쯤 출출해 지면 샌드위치를 꺼내어 먹는다. 그렇게 먹고 읽고 또 쓴다. 그러다 식곤증으로 졸음이 몰려오면, 유키구라모토의 피아노 곡이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오르골을 들으며 잠시 눈을 붙인다. 그러나 깨면 시원한 물을 한 컵 마시고 또 읽고 쓴다. 저녁 6시가 되어 또 출출해지면 김탁구 보리 빵과 싸간 바나나를 함께 먹는다. 그러고 난 후 또 읽고 쓴다. 이런 사이클이 아직 3번 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 질리는 일은 없다. 시간 가는 줄 모를 뿐이다. 뽕 맛은 아직 모르겠다. 지난 번 병곤 선배님께서 뽕 맛은 나의 첫 책이 배달되어 왔을 때 느껴지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다. 뽕 맛은 아무 때나 느끼는 것이 아니다.

3번째 칼럼과 과제를 올렸다. 홀가분하다. 내일은 '자발적 빈곤'의 날이라 레몬즙을 준비해야 한다. 새벽에 산책을 다녀와서 북 카페 여는 10시 사이에 시간이 조금 남아서 미리 만들어 두었다. 이렇게 일지만 쓰고 나면 오늘 할 일 끝이다. 정상적인 하루란 무엇일까? 균형 잡힌 하루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3주간 주말과 휴일 동안의 나의 하루는 정상적인 하루는 아닐 것이다. 아내와 부모님들께 죄송하고, 최선을 다해 업무를 하지 않아 고객인 회사에게도 미안하다. 내 역할을 모두 완벽하게 수행하면서 연구원 과제를 수행하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아마도 간절함이 닿아 연구원이 된다면 앞으로의 1년 간의 난관과 심연은 연구원 과제와 커리큘럼에서 오기 보다는 역할 사이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마찰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나 하나를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저 일사의 기름기를 쫙 빼내고, 모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함으로써 최대한 마찰을 완충시킬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 그렇다. 이렇게 까지 해서라도 좋은 어른에게 좋은 가르침을 받고 싶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기회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더 간절해진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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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7 22:27:08 *.109.82.45

257일차 (3월 7일)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루에도 수 없이 되 뇐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만은 없는 것일까? 그러나 스승은 늘 현실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상적 현실주의자.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을 살아가라는 의미다. 현실에 남아 있는 사람에게도 현실을 떠난 사람에게도 아픈 이야기다. 현실에 남아 있는 사람은 늘 이상에 목말라 하며 아파하고, 현실을 떠난 사람은 배고픔에 아파한다. 정말 그렇게 늘 그리움과 배고픔이라는 아픔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정말로 인생은 그렇게 슬프기만 한 것일까?

월요일. '자발적 빈곤'의 날이다. 하루 정도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 그리고 몸이 가벼워 맑은 정신으로 안으로 거듭 살필 수 있다. 밥이라고 하는 생존을 위한 타성에 속박 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이 하루만큼은 온전히 나 하나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단 하루 뿐이다. 3일도 하고, 일 주일도 하고 싶지만, 하루 단식을 두려워 하는 사람과 같은 마음 때문에 단식을 연장하지 못한다. 그래도 단 하루라도 나의 타성에 의지하지 않은 채 나의 저력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데 의의를 두려고 한다.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일까? 하루 하루 되풀이 되는 물음이다. 오늘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를 외웠다. 그냥 문득 출근길에 시집이 손에 잡혔다. 출근하는 내내 하나의 시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식 독서의 병폐다. 그런 병폐 속에 사는 사람에게는 결코 시의 여유, 여운, 여백, 행간의 의미가 찾아올 수 없다. 지금의 내가 그러한 사람이다. 고3 수험생 시절, 늦은 밤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교실 창가에 기대어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윤동주의 '서시'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던 때도 있었다. 그 때 이후로 나는 시를 잊은 것 같다.

그래서 외우기로 했다. 두 연을 외고 나니 집에 도착하고 말았다.

당신이 생존을 위해 무슨 일을 하는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고,
자신의 가슴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꿈을 간직하고 있는가 나는 알고 싶다.

당신이 몇 살인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다만 당신이 사랑을 위해
진정으로 살아있기 위해
주위로부터 비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알고 싶다.

-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 <초대> 중에서

그저 외우면서 몇 번이고 되뇔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내 마음은 촉촉하게 적셔지질 않는다. 그만큼 메말라 있다는 증거다. 시는 정말로 한가한 사람들이나 읽는 사치일까? 이 시집을 엮은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 편의 좋은 시가 보태지면 세상은 더 이상 전과 같지 않다. 좋은 시는 삶의 방식과 의미를 바꿔 놓으며,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시는 인간의 영혼으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 그 상처와 깨달음을, 그것이 시가 가진 치유의 힘이다. 우리는 상처받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상처받는 것이다. 얼음을 만질 때 우리 손에 느껴지는 것은 다름아닌 불이다. 상처받은 자신에게 손을 내밀라. 그리고 그 얼음과 불을 동시에 만지라. 시는 추위를 녹이는 불, 길 잃은 자를 안내하는 밧줄, 배고픈 자를 위한 빵이다."
- 류시화,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레이스 와중에 왜 갑자기 시가 내게 찾아왔을까?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잠시 한 숨 돌리고 쉬어가라는 마음의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마치 오늘 내가 외운 시처럼 말이다. 나는 내 가슴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꿈을 간직하고 있는가? 사랑을 위해 그리고 진정으로 살아있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두 질문을 스스로 던지기 위해 이 시집이 오늘 새벽 나를 끌어 당긴 모양이다. 길지도 않은 문장인데도 외우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외웠음에도 가슴 속을 적시며 스며들지 않는다. 아마도 이 시집은 내 가슴 속에 심각한 가뭄을 내게 알리기 위해 나를 찾아온 모양이다. 다행이다. 늦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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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8 22:07:18 *.124.233.1

258일차 (3월 8일)

레이스 마지막 주이다. 비염에 야근에 여러 악재가 겹쳐서 다가온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한 없이 고요하고 평온하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사무실에 앉아 쓰는 일지도 나름 운치가 있다. 늦게 자고 똑같이 일어나 줄 것이다. 그리고 역시 나 말고는 그 사실을 알아줄 사람은 없다. 이미 그 고독과 외로움을 즐기기로 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내가 거닐 10년은 외롭고 고될 것이라는 것은 이미 각오한 것 아니던가? 배고파서 괴롭고, 외로워서 괴롭다. 어차피 인생은 고해(苦海), 고통의 바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행인 것은 딛고 일어서고, 극복할 수 있을 만큼만 괴롭다는 것이다. 딛고 일어서고, 극복할 수 있음. 그것을 일컬어 희망이라 하지 않는가?

이렇게 고독과 외로움을 거름으로 삼아 견디다 보면 언젠가 달콤한 열매를 맺을 날이 찾아올 것이다. 허나 그건 미래의 언젠가의 결과일 뿐, 지금 걷고 있는 길, 그 힘겨운 길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기백이 있어야 한다. 스승의 말씀처럼 여행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의 비염은 아주 특별한 경험을 내게 선사해 주었다. 다행히도 예전에 타놓은 약 때문에 악화되지는 않았지만, 코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는 언젠가 기억도 나지 않는 이미 무의식 너머 세계로 가버린 어떤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의식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의 감각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심란함, 그리움, 두근거림. 이런 아주 복잡한 기억들이다. 그것과 연결된 사건이 기억나질 않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억지로 그 사건을 기억해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어지럽히는 이 아스라히 희미한 두근거림이 나는 너무나 좋다. 아마도 고단하다 보니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 모양이다. 그 별의 별 생각을 글로 쏟아낼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해도 해도 질리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이렇게 마음껏 글로 쏟아내는 것이다. 물론 쏟아내는 것은 쉽지만 담아내는 것은 아직 어렵다.

지금 막 밤 10시가 넘었다. 집에 들어가면 꽤 늦은 시간이 될 것이다. 늦은 시간.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친구와 만나 소주 한잔 기울였던 게 언제이던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그리고 그럴 날이 있기나 한 것일까? 지나가는 누구라도 붙잡고 울어 보고 싶기도 하다. 마음 속의 파도는 이렇게 출렁이건만 나의 표정은 여전히 무미건조하다. 아마도 새벽에 일어나 이 글을 다시 읽는다면 지워버리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본다고. 누가 본다 한들 어쩌리요. 그런 부끄러움의 경지를 넘어선지 오래다. 오늘 같은 날 조르바 같은 친구가 내게 있다면, 해변가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꿀꺽꿀꺽 포도주를 들이키며 춤을 출 것 같다. 마치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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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0 06:55:50 *.124.233.1

259일차 (3월 9일)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점심을 먹고, 함께 점심을 먹은 회사 형님과 선릉공원 주위를 산책을 하고, 슬슬 계단을 올라오고, 단군 출석부와, 개인적으로 작성하고 있는 엑셀로 된 단군일지와 건강일지를 작성했다. 단군하고 간소한 일을 하면서 명상한다. 가장 졸음이 몰려오는 시간에 하기에 딱 좋다. 그리고 이런 작은 기록들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기록하지 않고 하루 이틀 밀리기 시작하면, 거기서 기록이 끝난다. 더 이상의 기록이 없어진다. 지금까지 이 법칙에 예외는 없었던 것 같다. 기록의 묘미는 장기적인 누적이다. 레이스기간 동안 제대로 기록 하지 못하고 있지만 최대한 기록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측정하지 못하면 개선할 수 없다. 경영혁신의 기본원리기도 하다.

고3 수험생 시절, 대학시절 시험기간, 취업시즌 등 마음이 조급해 지고 심란해질 때 서두르지 말고 오히려 여유를 부리는 역설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고는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3주간의 무리한 행보로 피로가 누적되고, 내적 자원이 고갈된 느낌이 들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혁신 전사보고 대회와 오늘 저녁은 같은 부서 동료의 아버님 상까지 겹쳤다. 조급해하며 서두르며 호들갑을 떨고, 들떠 있다고 하여 일이 잘 된 적은 없었다. 얼굴이 벌겋게 닳아 오르고, 뭔가 소진되곤 했었다. 이럴 때일 수록 한 템포 쉬어간다. 무엇보다 주객이 전도되지 않아야 한다. 출퇴근 길에 시집을 읽고, 법정스님의 수필을 읽었다.

'탁월한 지적 작품' 혹은 '탁월한 지적 상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독서, 글쓰기와 더불어 생각이 숙성되고 부화되는 휴식과 여가가 필요하다. 모든 위대한 생각은 바로 그 여가와 휴식에서 비롯되었다. 가슴 속에 뿌려진 씨앗들이 무의식 깊숙한 곳에 뿌려지고, 충분한 숙성을 거쳐 의식의 세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바로 그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여가와 휴식이다. 그 유명한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마지막 7가지 습관은 바로 '쇄신', 영어로 'Sharpen The Saw', 그대로 번역하면 '톱날을 갈아라'이다. 무리한 혹사는 신체적, 정신적 자원을 모두 고갈시킨다. 회사에서 배운 잘못된 습관 중 하나이며, 직원을 '인적자원' 혹은 '인적 자본'이 아닌 '비용'으로 여기는 회사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 속성 중 하나다.

레이스 마지막 과제를 제출하고 나면 정말로 주말에 푹 쉬어볼 요량이다. 1년 이상을 준비해온 프로젝트였다. 과정을 즐겼기 때문에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꽃 피는 봄은 찾아올 것이고, 개나리와 산수유 꽃, 벚꽃은 피어날 것이다.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 꽃이 피지 않는다면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으로 받아 들이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용맹정진 하면 된다.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잃기도 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오로지 나 하나를 걸고, 스스로의 힘에 의지해, 내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갔다. 성실하게 북극성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내가 알아주면 그걸로 되었다. 음.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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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0 17:50:16 *.124.233.1

260일차 (3월 10일)

새벽에는 날씨가 많이 쌀쌀하더니 오후 들어 포근한 것 같다. 어제는 부서 동료직원의 부친상으로 경기도 용인에 다녀왔다. 함께 간 사람들은 식장에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 걱정하며 갔는데, 다행히도 사람들도 많고,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님 잘 보내드리라고 이야기 했다. 이제는 주변에 생기는 이런 일들이 결코 남의 일 같지가 않아 마음이 편치가 못하다. '생로병사'의 굴레에서 결코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알면서도 떠남과 헤어짐에 천착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으로써의 숙명인가보다.

자정이 다되어 도착하다 보니 잠을 4시간도 못 자고 일어났다. 지난 한 달간 계속해서 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벽 시간만큼은 어떤 것과도 타협할 수 없다는 고집. 아마도 이곳에서 타협하면 내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새벽 첫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면서도 졸기 싫어 일부러 서서 출근을 한다. 눈을 부릅뜨고 힘을 주지만 이내 풀린다. 청담역에서 회사로 걸어오는 길. 마음이 내게 묻는다. "대체 왜 이렇게 사는 건데? 대체 뭣 때문에 그렇게 살아?" 대답하지 않았다. 알면서 묻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나의 아니마가 불현듯 나타난다. 때론 꿈 속에서, 때론 노래가사를 통해 나에게 다가온다. 양파의 '천사의 시'라는 노래 '난 작고 약하지만, 남은 힘이라도 모든 걸 주고 싶어' 내게 모든 걸 주고 싶어하는 내 안의 여신에게 나를 온전히 맡기고 그 속에서 모든 폭풍우가 가라앉을 때까지 잠들고 싶다.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4주는 맛 배기에 불과하다. 그 보다 더 험난할지도 모르는 1년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또 다시 마음이 묻는다. "젠장! 지독한 자식 네 멋대로 하라고!" 그래. 그럴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비염으로 인한 코 냄새가 쉬 가시지 않는다. 조금은 마음을 불편하고 심란한 상태로 유지시키는 냄새다. 봄을 탈 때 나는 그런 냄새다. 마음 속에 바람이 살랑 거릴 때 나는 냄새기도 하고, 아득한 옛 기억을 떠올리는 냄새이기도 하다. 스스로 시각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후각도 결코 시각에 뒤지지 않음을 확인한다. '휴우.....' 한 숨이 나온다. 도대체 나는 어떤 인연으로 거친 빌딩 숲 속, 거대한 나무 가지 위 한 켠에 앉아 이렇게 살고 있을까? 대체 어떤 인연 때문에. 경주 벚꽃을 보고 싶다. 한밤중 가로등 불빛 아래 내리는 꽃 비를 맞으며 마음껏 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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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1 16:47:15 *.124.233.1

261일차 (3월 11일)

늦게 자지 않았음에도 새벽에 일어나는데 힘이 들었다. 아무래도 지난 4주간 피로가 누적된 탓인 듯하다. 4번째 과제가 끝나는 이번 주말 만큼은 정말 원 없이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에서 졸지 않기 위해 일부러 서서 간다. 요 며칠 잔잔한 명상음악을 들으며 앉아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마음 속에서 '아직은 아니다'라는 오기 같은 것이 일어 앉지 않았다. 평소 종교와 철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네 번째 과제가 쉽지 않다. 지하철에서 서서 오가며 수첩에 메모를 하고 또 했지만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책상을 정리하고 차를 한잔 마시고 난 후, 하얀 백지에 다시 개요를 짰다. 피곤함이 없고 정신이 맑았다면 그냥 휘갈겨 쓸 수 있었을 텐데, 졸음이 쏟아져서 일부러 손으로 쓱쓱 개요를 짰다. 대략적인 윤곽을 잡은 후 생각나는 데로 내용을 적어내려 갔다. 미리 생각했던 내용을 적기도 하고, 적으면서 생각난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기도 한다. 예상했던 경로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접했을 때의 신비로움이 바로 글을 쓰는 매력이 아닐까 한다. 틀조차 못 잡으면 어쩌나 고민했었는데, 다행히도 초고를 쓸 수 있게 되었다.

2010년 3월 11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내 마음 속의 영웅, 법정스님께서 지구별을 떠나셨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2주전인가 주지스님께서 주지 자리를 물리고 산으로 들어가셨다고 한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탐욕을 더는 눈뜨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잘 지켜져야 할 스님의 고고한 정신이 더럽혀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문득 길상사가 보고 싶어졌다. 곧 영춘화가 필 때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길상사의 봄, 노란 영춘화와 수선화가 보고 싶다.

레이스의 고지가 눈앞이다. 물론 나의 목표는 완주다. 마지막까지 자만과 방심은 금물이다. 늘 스스로를 다그치는 말이지만, 균열은 가장 약한 곳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가장 자신 있어 방심하는 바로 그 부분에 생긴다. 지금 내 가슴 속에 이는 두려움, 고단함은 마지막의 깔딱 고개를 넘기 직전의 힘겨움이다. 이곳만 넘어서면 이제는 내리막이다. 조금만 더 가자.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그렇게 이겨내고 나면 꽃의 향연인 봄이 찾아온다. 이처럼 봄이 기다려진 적이 있었던가. 오는 봄, 울고 웃으며 벚꽃 비를 맞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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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3 04:11:00 *.109.53.170

262일차 (3월 12일)

쫓기지 않는 주말의 새벽은 언제나 마음이 평온하다. 다행히 오늘 새벽엔 정신이 맑고 명료하여 레이스 네 번째 과제의 마지막 꼭지의 초고를 완성했다. 물론 다듬고, 도식화 해야 하는 작업이 남아 있지만 마음은 홀가분하다. 바로 여기가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 하나의 무언가가 종료되기 전에 새로운 무엇인가를 가슴 속에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일상의 꽉 채우고 있던 무언가가 빠졌을 때의 공허함, 그런 공허함에서 비롯된 슬럼프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사실 이번의 경우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내심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있다.

법정스님의 잠언집을 통째로 필사할 것이고, 엔서니라빈스의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에 대한 북 리뷰 작업을 해볼 생각이다. 물론 이번 과제는 아주 자유롭고 경쾌하게 작업할 것이다. 간절함과 운이 조화를 이루어 좋은 결과가 빚어진다면 스승을 통해 새로운 배움을 얻게 될 것이고, 만일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나만의 수련을 시작하기로 한다. 크게는 변화경영, 분석심리, NLP 등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그 중간에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배치하여 진행할 계획이다. 내가 찾은 새벽, 그 새벽에서 구하는 나의 세계. 내 삶의 이러한 변화에 감사 드린다.

인생은 슬픈 것이라 여겨지고, 자꾸만 쫓기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시간과 자원이 풍부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결핍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젊은 시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은데,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쉬지 않고 빠져나가고 있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고,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싶고, 수 많은 도전과 모험을 감행하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한 것 아니냐며, 오히려 퇴보하는 것 아니냐며 두려워하고 있다. 뭔가 가슴 속에 작은 깨달음이 찾아오는 듯 하다. 왜 못하는 것인가? 왜?

뭐가 나를 그렇게 가로 막고 있는 것일까? 부족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마음의 넉넉함이다. 쫓기지 말 것. 시간은 충분하다. 충분하고 넉넉하다. 그리고 앞으로 만날 사람과 떠날 모험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현명하고 영리하게 인생을 전개해 나가고, 내 안에 접혀 있는 질서를 펼쳐나가며, 또 내 안에 잠든 위대한 영웅을 깨우고, 온 세상의 의식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데 기여하는 삶을 살고 싶다. 개인의 일신의 안위만이 아닌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내 삶을 걸어보고 싶다. 매일 뿌리는 이 마음의 씨앗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시절인연이 닿으면 움틀 것이다. 자! 오늘은 어떤 새싹을 돌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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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3 17:31:49 *.192.54.187

263일차 (3월 13일)

아내와 북 카페에 함께 와 있다. 아내는 자격증 공부를 나는 법정스님의 책을 필사했다. 왜 이제서야 이 책을 필사할 생각을 했을까? 늦은 감이 들지만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고 했다. 이번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레이스를 통해 아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누군가와 경쟁이라는 껍질을 벗어버리고 나니 나의 내면으로 깊숙이 침잠할 수 있었고, 나의 또 다른 가능성과 저력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건 나에게 있어서 굉장한 일이었다. 적어도 책을 바라보는 관점과 독해력이 예전과 분명히 달라졌다. 이제는 적어도 세 가지 관점에서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가 읽어주는 이야기게 온전히 귀를 기울이는 것, 그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며 읽는 것, 그리고 저자의 화두를 내 것으로 가져와 온전히 나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는 것. 아직 익숙하지는 않지만 이번 레이스를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성과다. 또한 독서를 통해 얻는 내용을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칼럼 쓰기. 한 주를 맺음 짓는 꽃이다.

왜 스승이 연구원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매주 한 꼭지의 글을 쓰라고 힘주어 이야기 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주제가 내게 주어지고, 아니면 내가 어떤 화두를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데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동분서주 하면서 글의 재료를 모은다. 그렇게 모은 재료를 가슴에 묻은 뒤  숙성시키는 시간을 갖는다. 그렇게 적당하게 숙성시킨 재료들은 나의 연금술을 거쳐 나만의 표현을 거쳐 내 삶을 담은 나의 언어로 된 글로 재 탄생하게 된다. 쉽지 않다. 정말로 쉽지 않지만 기적처럼 찾아오는 내 안에 접혀진 질서들을 보면서 또 다시 새삼 깨닫는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존재' 임을.

이 글을 마치는 대로 마지막 4번째 과제를 올릴 것이다. 스스로 묻는다. 나를 온전히 다 쏟아 부었는가?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감히 '그렇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적어도 지난 4주만큼은 레이스가 내 삶의 우선 순위의 맨 앞에 서 있었다. 균형을 맞추려고 했지만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관계가 소원해 지는 위기도 겪었고, 회사 일이 뒷전으로 미루는 일도 생겼다. 그러나 '지금 아니면 언제인가?'라는 간절한 마음 하나로 돌파해 나갔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점을 찍는 일만 남았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진실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겼다는 것이다. 주말 내내 북 카페에 앉아 읽고, 쓰고를 반복했다. 몰입했고, 무아지경에 빠졌다. 늘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천복을 찾은 것 같았다.

지난 1년 간은 내게 정말 대단한 시간이었다. 운명처럼 단군 프로젝트가 날 찾아와 주었고, 그곳에서 내 삶에 아주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스승. 스승을 만났다. 그건 아주 굉장한 일이었다.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해 1년 이상의 시간을 쉬지 않고 내달렸다. 미련 없다. 스승은 이미 내 속에 영웅이 되어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건 나는 배울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스승의 뜻, 그리고 하늘의 뜻을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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