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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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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7일 22시 11분 등록

1. 윌 듀랜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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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역사를 쓰는 철학자'

윌듀랜트 재단 홈페이지의 그에 대한 소개란에 오스카 와일드의 격언이 첫 머리에 등장한다. 바로 '누구나 역사를 만들지만, 오직 위대한 사람만이 그 역사를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윌 듀랜트와 그의 아내 에이리얼 듀랜트는 역사를 쓰는데 온 생애를 바쳤다. 그들은 하루에 일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에 썼다. 직접 그 현장들을 돌아보고, 모든 자료들을 찾고 철학적 관점으로 해석하였다. 그 기간이 1926년부터 1975년까지 였다. 거의 50년이라는 시간을 『문명 이야기』에 바쳤던 것이다.  그들은 위대한'역사를 쓰는 철학자'였다.

 

<철학이야기>의 탄생

1914년부터 는 한 교회(Labor Temple)에서 주2회씩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철학, 문학, 과학, 음악, 예술의 역사에 대한 강좌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는 훗날 그의 ‘철학 이야기’와 ‘문명 이야기’의 밑거름이 된다. 1917년, 그는 첫번째 저서 ‘Philosophy and the Social Problem’을 내고, 박사 학위를 따고, 콜럼비아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수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자, 자신의 자리를 사임한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13년간 계속된다.

 

1921년, 유명한 ‘Little Blue Books’ 시리즈의 발행인인 줄리어스(E. Haldeman-Julius)가 우연히 그의 수업을 듣게 되고, 그의 강의를 책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다른 일들로 바빴던 듀란트은 처음에 이 제안을 거절하지만, 줄리어스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에게 선금을 주며 철학자 한 명씩에 대한 소책자를 쓰게 만들었고, 이렇게 11권의 소책자가 모여 1926년 마침내 ‘철학 이야기’가 탄생했다.

 

윌 듀랜트의 생애와 저서

1885년 11월 5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노스 애덤스에서 태어났다. 노스 애덤스와 뉴저지 주 커니의 가톨릭 부설 학교에서, 그 다음에는 저지 시의 세인트 피터스 칼리지와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수학한 후, 뉴저지 주 사우스 오렌지에 소재한 세튼홀 칼리지에 자리를 잡고 라틴어와 프랑스어, 영어, 기하학을 가르쳤다.이후 그는 평온한 신학교에서 뉴욕의 가장 진보적인 자유주의 교육 실험 학교인 페레르 학교로 자리를 옮기는데 이 학교에서 1898년 5월 10일 러시아에서 태어난 아이다 카우프만(에이리얼 이라는 닉네임을 가진)이라는 제자와 사랑에 빠져 교직을 사임하고 그녀와 결혼한다. 부인은 뒤에 남편이 사용하던 애칭 에이리얼로 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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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에 출간된 자신의 저서 『철학 이야기』의 성공으로 1년 후 교직을 떠날 여력이 생긴 듀런트 부부는 가끔씩의 평론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작업시간을(매일 8시간에서 14시간) 『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에 바쳤다. 보다 철저한 준비를 위해 1930년에는 이집트와 근동, 인도, 중국, 일본 등지를 직접 탐방하고 1932년에 다시 일본과 만주, 시베리아, 러시아, 폴란드 등지를 방문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문명 이야기』시리즈의 제1권 『동양 문명』(1935)이다. 이후 몇 번인가의 유럽 방문을 거쳐 제2권 『그리스 문명』(1939)과 『카이사르와 그리스도』(1944)가 준비된다. 1948년, 터키와 이라크, 이란, 이집트, 유럽 등지에서 체류하며 제4권 『신앙의 시대』(1950)를 저술하고, 1951년에는 제5권 『르네상스』(1953)를 출간했으며, 1954년부터는 이탈리아와 스위스, 독일, 프랑스, 영국에 대한 추가 연구를 시작해 종교 개혁을 새롭게 조망한 제6권 『종교 개혁』(1957)을 발표했다.이들 저작을 준비하는 데 있어 듀랜트 여사의 역할은 매년 그 비중이 더욱 커져 갔으며, 제7권 『이성의 시대가 시작되다』(1961)에서는 그 기여도가 너무나 커 책 표지에 두 사람의 이름이 공저자로 나란히 오르게 된다. 『루이 14세의 시대』(1963)와 『볼테르의 시대』(1965), 『루소와 혁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으로 두 부부는 공동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75년 제11권 『나폴레옹의 시대』의 출간을 끝으로 50년에 걸친 이 대작은 완결된다. 1977년 발간된 <두 사람의 자서전(A Dual Autobiography)>에서 자신들의 공동 작업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에이리얼 듀랜트(Arial Durant)는 1981년 10월 25일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윌 듀랜트도 그로부터 13일 후 11월 7일에 96세를 일기로 그녀를 뒤따랐다. 현재 그는 아내와 함께 나란히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Westwood Village 기념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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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철학이야기, 윌 듀랜트, 임헌영 옮김, 동서문화사

Yes24 작가파일 _ 윌 듀랜트

Will Durant Foundation : http://www.willdurant.com/home.html

 

2.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 귀

머리글-철학의 효용에 대하여

13. 철학에는 즐거움이 있으므로 형이상학의 신기루까지도 매력이 있습니다.

 ☞ 문체가 매력적이다. 문학적인 문체랄까. 건조한 논문 투의 말투가 아니라 좋다.

13. 우리는 지나가는 것들의 가치와 전망을 포착하여 그날그날 일어나는 일의 큰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들 자신을 끌어 올리고 싶은 것입니다.

14. 철학은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의, 혹은 정밀하게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의 가설적 해석입니다.

15. 과학은 우리에게 지식을 줍니다. 그러나 오직 철학만이 우리에게 지혜를 줄 수 있습니다.

15. '미학'은 이상적 형태, 혹은 미에 대한 연구, 즉 예술의 철학입니다.

17. 피타고라스 : '철학은 최고의 음악'

 

플라톤

19. 신앙이 무수히 많을 경우 우리들은 그 모든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쉽다. 아마도 최초의 회의주의자는 무역업자일 것이다... 부의 증대는 탐구와 사색에 없어서는 안 될 여유와 안정을 가져왔다.

22. 정치의 소란함에도 아랑곳없이 유유히 광장을 거닐며 사람을 붙들고는 오래도록 이야기하고, 광장에 모인 청년과 학자들을 신전의 한 모퉁이로 데려가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개념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광경을 우리는 2천3백년이 지난 지금도 상상할 수 있다.

23. 불가지론'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단 한 가지만을 안다'는 것을 신께서 기리신 것._소크라테스

 ☞ 신이 말해주었다는 뜻이 '언어가 말한다'의 의미와 상통하는 것 같다. 

26. 사고가 없는 곳에 혼돈이 지배하고, 군중은 성급함과 무지 속에서 결단하고, 나중에야 안타깝게 후회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30. 플라톤은 기원전 399년 길을 떠났다... 기원전 387년 플라톤은 아테네로 돌아왔다.

 ☞ 12년의 여행, 이집트, 유태, 피타고라스, 인도에 까지 다녀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35. 정의는 사회 조직에 의존하는 개인간의 관계이며, 따라서 그것을 개인 행위의 성질로서 연구하기보다는 사회구조의 부분으로서 연구하는 쪽이 좋다는 것을 지적한다.

37. 백성이 최선의 지도자와 가장 현명한 길을 선택할 만한 교육을 올바르게 몸에 익히고 있지 않다면 이것은 참담한 것이 된다... 민중은 아첨을 좋아하며 '꿀맛에 주려'있으므로 결국 가장 교활한 아첨쟁이가 '국민의 보호자'로 자처하여 최고의 권력을 잡게 된다.

39.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현재의 왕과 군주들이 진지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철학을 하여 지혜와 정치적 지도력이 한 사람에게 겸비될 때까지... 국가와 인류는 결코 재난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46. 인생의 무자비한 알력으로 학자적 허영심은 제거되고 전통과 경험, 교양과 투쟁이 하나로 되어, 비로소 나눌수 있는 지혜로 무장된다. _ 50세에 대하여..

52. 플라톤 : '정의란 자기 자신의 것을 소유하고 자기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53. '정의란 단순한 힘이 아니라 조화된 힘이다. 즉 여러 가지 욕망과 허다한 인간이 이성과 조직의 본질인 질서를 얻는 것이다. 정의는 강자의 권리가 아니라 전체의 유효한 조화이다.'

53. 그리스도는 약자에 친절한 것이 도덕이라 했고, 니체는 강자의 용감함이라고 했으며 플라톤은 전체의 유효한 조화라고 했다.

54. 독신 생활은 성직자 권세의 심리적 구조의 일부였다.

59. 이 세상이 원하는 것은 가장 현명한 사람들의 통치이다.

59. 모든 남녀에게, 부모의 재산을 막론하고 교육의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 대학 교육과 정치적 승진의 길이 균등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진정한 민주주의의 기본! 평등한 교육의 기회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68. 현대의 국가가 학술연구에 대대적인 원조를 한다고 하면 어느 정도의 지식을 얻을 수 있을까!

68. 그는 '시계 없이 시간을 측정했고, 한난계 없이 온도를 비교했으며, 망원경 없이 천체를, 청우계 없이 천후를 관측해야만 했다.

70.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위대한 공적은, 오직 혼자만의 엄격한 사색으로 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71. 간단히 말하면 논리학이란 정확한 사고의 기술과 방법이다. 그것은 모든 학문과 과학 및 기예의 방법이며, 음악 속에까지 스며들고 있다.

73.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로 돌아가라', 그리고 '자연의 싱싱한 얼굴'을 보라고 말한다. 그는 구체적이고 특수한 것, 피가 통하는 개별자를 특히 좋아했다. 그러나 플라톤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사랑했기 때문에 <국가론>속에서, 완전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개인을 말살해 버렸다.

74. 확실히 삼단논법은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설명이나 사고를 명석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74. "소크라테스는 인류에게 철학을 주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류에게 과학을 주었다."

80. 무엇을 물을 줄 아는 것은 이미 반은 안 것이다.

81.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신의 섭리는 자연적 원인의 작용과 완전히 일치한다.'

84. 가장 고상한 예술은 감정에 호소할 뿐 아니라 지성에도 호소한다.

87. 행복에 대한 외부의 보조수단 중 가장 고귀한 것은 우정이다.

90. 모든 것이 모두의 소유일 때는 아무도 그것을 돌보지 않을 것이다.

 ☞ 공유지의 비극

94. '인간은 완성되면 가장 선한 동물이 되나 내버려두면 가장 악한 동물이 된다.

95. 독재적 통치자는 특히 신들의 숭배에 열심인 것처럼 보여야 한다.

 ☞ 그러니 속지말자.

96. 예술품을 잘 평가하는 것은 그것을 만든 예술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일때도 있다.

... 손님이 요리사보다도 요리 맛을 더 잘 판별할 것이다. '다수 쪽이 소수보다도 부패되기 어렵다.'

 ☞ 좋은 예시다.

101. 그의 저서는 유럽 철학에 있어 신학의 성경처럼 모든 문제의 해결점을 갖고 있는 절대적인 텍스트가 되었다.

102. 로마의 영광은 사상의 빛이라기보다도 힘의 화려함이었다.

 

프란시스 베이컨

106.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했을 때, 아테네의 정신은 소크라테스와 함께 죽었으며 단지 그들의 자랑거리인 제자 플라톤만 살아남았다.

108. 스토아학파 : 평화의 비결은 우리가 성취하는 일과 우리의 욕망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욕망을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일이라 하였다. '당신이 갖고 있는 것이 당신에게 불만스럽게 생각된다면, 세계를 소유하더라도 당신은 불행할 것이다'라고, 로마의 스토아학파 세네카는 말했다.

113. 십자군이 동방으로 길을 열자 사치와 이단이 흘러들어와 금욕과 교리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113. 사람들은 미지의 것을 숭배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려고 생각했다.

115. 나는 연구에 대한 정열, 참을성 있게 판단을 보류해 두는 힘, 즐겁게 묵상하는 힘, 조심스럽게 긍정하는 힘, 잘못된 인상을 재빨리 수정하는 힘, 세심하게 마음을 써서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_베이컨

 ☞ 자신에 대해 잘 표현하는 모습을 닮고 싶다. 

118. 교활한 사람은 학문을 욕한다. 단순한 사람들은 학문을 감탄한다. 총명한 사람은 학문을 이용한다. 학문은 학문의 용도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르치는 것은 학문 이외의 지혜, 즉 관찰에 의해서 얻어진 학문 이상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122. '인생극장에서는 신들과 천사들만이 관객임을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124. 최선을 택하라, 습관은 그것을 유쾌하게 하고 용이하게 할 것이다. _피타고라스 학파

126. 이론보다는 실천을, 사변적 논리보다도 특수한 구체적 결과를 노리는 점 등이 다른 모든 철학과 그 취지를 달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식은 힘이지, 단순한 논증이나 장식은 아니다.

129. 연금술이라고 하면 어떤 남자가 포도밭 어딘가에 금을 묻어놨다고 자식들에게 유언한 이야기에 비교할 수 있다. 자식들은 그곳을 파보았으나 금을 찾을 수가 없었따. 그러나 포도나무의 뿌리 주변을 파헤쳤기 때문에 큰 수확을 얻었다고 한다.

134~136. 종족의 우상(인간의 본성이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오류), 동굴의 우상(개인 특유의 오류), 시장의 우상(인간 상호의 교섭 및 교제에서 생기는 우상), 극장의 우상(철학자들의 잘못된 논증에서 마음에 들어온 우상)

138. 베이컨 : 사실에 대한 이 끈질긴 축적과 분석에 의해 우리는 연구하려고 하는 현상의 현상, 즉 현상의 숨은 본성과 그 내적 본질에 도달 하는 것이다.

143. 비평 : 일반적으로 과학은 사실의 수집과 복잡한 조작에 의해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더 단순한 가설, 연역 및 실험이라는 방법에 의해 최대의 성과를 올리는 것이다.

 ☞ 확실히 그러하다. 경험론과 관념론의 통합이 이래서 필요하게 되었구나.  

145. 프랑스 '계몽주의'의 위인들은 지적 기획의 걸작 '백과전서'를 계획했을 때, 그것을 프란시스 베이컨에게 바쳤다.

 

스피노자

153. 그리하여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스피노자의 단순한 확신은 불가해와 회의 속으로 녹아들었다.

159. 그는 유대 인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동안 광학용구직을 배웠는데, 그것은 학자라면 누구나 어떤 재주나 기술을 익혀 두어야 한다는 헤브라이의 율법에 따른 것이다.

 ☞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학자는 결국 부랑인이 되고 만다.

160. 렌즈는 잘 만들어냈지만, 충분한 벌이가 될 정도로는 계속되지 않았따. '성공자'가 되기에는 너무도 지혜를 사랑했던 것이다.

164. 학자들이 그의 지혜 때문에 그를 존경했듯이, 순박한 사람들은 그의 다정함 때문에 그를 사랑했던 것이다.

167. "일상생활에서 자주 일어나는 모든 일이 공허하고 무익하다는 것을 경험에 의하여 배운 후 내가 두려워한 모든 것은 그것에 의해 감동되지 않는 한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170. 변화하기 쉬운 개체는 내면적으로나 본질적으로 확고한 사물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확고한 사물 없이 개체는 존재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173. 나는 신은 만물의 내재적 원인이지 외재적 원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이제 말한 바와 같이 만물은 신 안에 존재하고, 신 속에서 살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현대적 신비주의적 신앙과도 닮았다. 

 177. 신은 정신이 아닐 뿐 아니라 물체도 아니다. 이중의 세계사를 구성하고 있는 정신의 과정과 물체의 과정 및 그러한 과정이 원인과 법칙이 신이다.

 ☞  스피노자.

177. 정신과 물체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이므로 서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178. 관념은 그 자체가 유기적 통일 과정의 맨 처음 단계이며, 외적 행위는 이 과정의 완성인 것이다.

179. 관념이 의식 속에 존속하기를 결정하는 충동적인 힘을 가끔 의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욕망이라고 불려야 할 것이며 이것이야 말로 '인간의 본질' 그 자체다.'

181. 스피노자는 남의 행복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성은 자연에 반대되는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참된 자기의 이익을 구하고, 자기를 보다 큰 완전으로 이끄는 모든 것을 얻으려고 한다.'

184. 사고는 욕망의 열을 잃지 말고 욕망은 사고의 빛을 계속 비춰야 한다.

186. '자유인은 죽음에 대하여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지혜는 죽음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이다.

188. <에티카> 마지막 정리, '최고의 복은 덕의 대가가 아니라 덕 그 자체다.'

191. 우리는 자신과 닮은 것을 좋아한다.

193. 국가의 목적은 자유이다.

193. 자유로운 국가에서 희망하는 자는 누구나 자기의 비용과 자기의 책임으로 공공연히 가르칠 수 있다면 기예 및 학문은 그로인하여 가장 잘 발달될 것이다.

 ☞ 철학은 답답한 현실을 넘어서는 힘과 용기를 준다. 다른 생각, 다른 실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이 진실이니 용기를 가져라라고 지지해준다.  

 

볼테르와 프랑스의 계몽주의

199. "그렇고 말고, 어떤 예술이든 성공하려면 악마를 지니고 있어야 해"_볼테르

201. 이탈리아는 르네상스를, 독일은 종교개혁을, 프랑스는 볼테르를 가졌다.

202. '어떤 국민이 일단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미 그것을 멈출 수는 없다.' 그리하여 볼테르와 함께 프랑스는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 사유하라! 에서 말하고자 한 것이 이런 의미 였는데. 

205. '철학을 하기 전에 우선 살아야 한다. '

209. 그는 무슨 일이든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한때는 '웃고 웃기기'를 자기의 목표로 했다.

218. '샤를르마뉴로부터 루이 13세에 이르는 여러 국민의 풍속과 정신에 관한 시론' = <풍속시론>

223. 1755년 11월 리스본의 끔찍한 지진으로 3만 명의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

230. '이성을 해방하라, 그러면 이성은 몇 세대 안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것이다.'

231. '사람에 따라서는, 한 권의 작은 책을 써도 장황한 자가 있다. 볼테르는 1백 권의 책을 써도 언제나 간결하다.'

232. 만일 노파처럼 무지하다면 나도 행복했겠지요, 그러나 나는 그런 행복은 바라지 않습니다.

 ☞ 소박한 행복, 시골에서의 무소유에 만족할 수 있을까? 

234. 우리는 생각 있는 자를 생각 없는 자에게 복종하게 해서는 안 된다.

243. 빛은 이웃에서 이웃으로 퍼지게 마련이므로 기회 있는 대로 찬란한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248. 고티에는 왔으나 볼테르가 가톨릭의 교리를 무조건 믿는다는 고백에 서명하지 않는한 '죄의 사함'을 거절한다는 뜻을 전했다. 볼테르는 그에 따르지 않고 다음과 같은 성명문을 썰서 비서인 바그너에게 주었다.  "나는 신을 숭배하고 친구를 사랑하며, 적을 미워하지 않고 미신을 혐오하면서 죽어갑니다. 볼테르(서명), 1778년 2월 28일

249. 영구차에는 '그는 인류의 정신에 위대한 자극을 주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유를 준비하였다.'라는 말이 씌어 있었다.

 

칸트와 독일 관념론

251. 이 기괴한 스코틀랜드 인은 1781년 그의 저 유명한 <순수이성 비판>에 의해 세계를 '독단의 꿈'에서 깨게 하였다.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비판 철학'은 유럽의 사상계를 지배하여 왔다.

253. 수천 년 동안 수백만의 인간이 믿어 온 신앙을 삼단논법으로 파괴하려는 이성은 도대체 무엇일까?

253. 이성을 비판할 때가 왔던 것이다.

255. 우리가 아는 한 모든 물질은 어떤 정신적 상태이고, 우리가 직접 아는 유일한 실재는 정신이다.

257. 과학도 신앙도 다 같이 이 회의론자에게 항복했던 것일까. 양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묘책이 있을까?

258. 칸트는 <에밀>을 읽었을 때, 이 책을 통독하기 위하여 그의 일과로 삼았떤 보리수 그늘 밑의 산책을 잊었다.

259. 버클리 및 흉의 이념을 루소의 감정과 결합시켜 종교를 이성에서 보호하는 동시에 과학을 회의론에서 수호한다는 것이 임마누엘 칸트의 사명이었다.

263. 칸트에 의하면 '순수'이성이란 우리의 감각을 통하여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감각적 경험에서 독립한 인식, 다시 말해서 정신의 내적 본성 및 구조에 의해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인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64. 이러한 진리는 경험 이전에 있어서 참된 것으로서 과거, 현재, 또는 미래의 경험에 좌우되지 않는다.

268. 감각이란 무질서한 자극, 지각이란 조직된 감각, 개념이란 조직된 지각, 과학이란 조직된 인식, 지혜란 조작된 생활이다.

269. 과학은 절대적이며, 진리는 영원한 것이다.

270. 관념론이란 일반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지각하는 주관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상의 대부분이 우리들의 지각과 오성의 형식에 의하여 만들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270. 칸트의 최대 공적은 현상과 물자체를 구별한 것이다. _ 쇼펜하우어.

272. 제한을 넘으면 과학은 우스꽝스러운 '이율배반'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리하여 과학은 '구원'받은 것이다! 신앙의 대상이 이성으로는 결코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설파한 부분이다. 이리하여 종교는 '구원'을 받은 것이다.

276. 교회나 교의는 다만 인류의 도덕적 발달을 돕는 한에서만 그 가치를 지니는데 불과하다.

278. 인류에게 생존과 발달을 계속하게 하려면 개인주의와 경쟁의 그 어떤 혼합이 필요하다.

281. 칸트는, 능력의 평등이 아닌 계급의 특권을 전부 부인하고, 세습적 특권을 모두 과거의 폭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규정지었다.

283. 칸트의 위대한 사업은 외계는 우리에게 다만 감각으로써만 알려진다는 것, 그리고 마음은 .. 가만히 먹히기를 기다리고 있는 감각의 먹이가 아니라 경험적 사실이 다가드는 것을 선택하고 개조하는 적극적인 힘이라는 것을 증명한 일이다.

286. '내 머리 위에는 별이 총총 빛나는 하늘, 내 가슴에는 도덕법칙'

293. 변증법적 과정은 변화를 기본원리로 한다. 어떠한 상태도 영원하지는 않다. 사물의 모든 단계에는 '대립의 투쟁'만이 해결할 수 있는 모순이 있다. 따라서 정치학의 가장 심오한 법칙은 자유이고, 역사란 자유의 성장, 국가란 조직화된 자유이며, 또는 자유이어야 한다.

 

쇼펜하우어

298. 젊은이만이 미래에 살 수 있고 노인만이 과거에 살 수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이 살아야 했던 현재는 폐허였다.

301. 그에겐 어머니가 없었고, 아내가 없었고, 자식도 가정도 없었고, 조국도 없었다. '그는 철저히 혼자였으며, 진정으로 마음을 주는 친구라고는 단 한사람도 없었다.

302. 세상은 자기들의 빈궁과 피폐에 대하여 쓴 글을 읽기에는 너무도 가난했고 지쳐 있었다.

  ☞ 세상이 읽고 싶은 것들을 쓸 필요도 있다. 그들을 위로하면서 깨우치는 글을 없을까?

305. 철학이 한편에서는 국가의 수단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생계의 수단으로 한심스럽게 남용되는 시대만큼 추악한 철학의 시대는 없다.

306. '세계는 나의 표상(관념)이다.'... '여기에 대해 피히테의 부인은 뭐라고 할까?'

 ☞  괜찮은 질문이다. 아내에게 물어보라. 그의 위선을...

307. 의식적 오성 아래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인 의지, 격렬하고 집요한 생명력, 자발적 능동성, 부단한 욕구의 의지가 가로놓여 있다.

308. 이제까지 아무도 사람을 논리학으로 설득시킨 일은 없다. 사람을 설득하려면 그 사람 자신의 이해관계, 욕망, 의지에 호소해야 한다.

312. 의지는 살려고 하는 의지이고, 이 의지의 영원한 적은 죽음이다. 의지는 어쩌면 죽음조차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317. 인생은 악이다. 왜냐하면 '곤궁과 고뇌가 그치자마자 홀연 권태가 다가와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심심풀이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다시 고통을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319. 살려는 의지는 모두가 자기 자신을 먹고 살고 있는 것이며 여러가지 형태로 자신의 영양이 되고 있는 것.

321. 인생이 얼마나 짧은 것인가를 알기 위해 사람은 오래 살았던 것이다.

322. 부의 획득에 바쳐지는 인생은 만일 우리가 부를 기쁨으로 바꾸는 법을 터득하고 있지 못하다면 무익한 것이다.

324. 철학이란 경험과 사고로 해석해야 하며 단순한 독서나 수동적 공부로 알아서는 안 된다.

324. 첫째 권고는 책보다 생활이 먼저이고, 둘째 권고는 주석보다 본문이 먼저라는 것이다.

327. 인식을 의지의 예속에서 구출해 내는 일, 개인의 자아와 그 물질적 관심을 잊어버리는 일, 그리고 정신을 진리의 무의지적 관조로 높이는 일, 이것이 예술의 임무이다.

328. 예술은 변화하기 쉬운 개체적인 것의 그 안쪽에 영원하고 보편적인 것을 보여주는 일로써 인생의 재앙을 완화시킨다.

332. 나폴레옹 전쟁의 분란은 유럽의 영혼에 서글픈 피로를 느끼게 했으며,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이 피로의 목소리였다.

333. 염세관에는 상당한 이기주의가 포함되어 있다. 세상이 충분하게 친절을 베풀어 주지 않기 때문에 철학으로 세상을 경멸하는 것이다.

 ☞ 친절한 세계에서는 염세주의가 없어질까.

334. 실상 세계는 우리의 편을 드는 것도 적대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손 안에 있는 단순한 원료로써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가에 따라 천국도 되고 지옥도 될 수 있는 것이다.

335. 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구하는 것 보다 자기의 능력을 드러낼 기회를 구하려고 애쓴다.

335. 우리는 설령 고통이라는 희생을 치르더라도 인생을 강하게, 또 깊이 경험하고 싶은 것이며 설령 환멸이라는 희생을 치러서라도 인생의 가장 깊은 비밀을 헤치고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336. 올바르게 죽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

338. 그의 시대 이후, 철학에 있어서 이론을 주무르고 따지는 형이상학의 비현실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기란 어렵게 된다. 그리고 사상가들은, 행위와 관계없는 사고는 불건전한 상태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 여기서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 나온것인가? '지금까지의 철학은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이제부터의 철학은 세계를 변화시켜야 한다.' 

 

스펜서의 불가지론

343. 철학은 과학과 다른 것이 아니다. 철학이란 인간 생활을 개선할 목적으로 모든 과학을 조정하는 것이다.

347. 스펜서의 성과는  독서에 의해서보다는 오히려 직접적 관찰에 의해서 '익혀 얻은 것'이었다.

353. '나쁜 일 속에 친절한 영혼이 존재할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오류 속에 진리의 정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어버리고 있따.'

357. '너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메멘토모리)'라고 삶의 얼굴에 씌어 있으며, 모든 탄생은 쇠망과 죽음의 서곡이다.

358. 그도 먼 앞날만 바라볼 뿐 눈앞의 조촐한 생활의 즐거움을 모르는 '철학자의 병폐'에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361. 근본적으로 이성과 본능 정신과 생명은 같다.

368. 생활은 노동을 위해서 있다는 신앙이, 노동은 생활을 위해서 있다는 신앙으로 역전됨으로써 드러난다.

369. 적도 아프리카에서도 그리하여 '남자가 결혼한 다음 그 아내가 남편이 또 한 사람의 아내를 거느릴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또 한 번 결혼식을 올리라고 남편을 조르며, 남편이 거기에 응하지 않으면 “노랭이!” 라고 부른다'고 한다.

 ☞ 재미있는 예화!  

373. 사회생활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상호부조의 경향을 더해 간다. 끊임없는 사회적 훈련은 인간의 본성을 단련시켜 마침내는 동정의 즐거움을 자발적으로 추구하여 가능한 한 전반에게 유리하도록 유의시킬 것이다.

 ☞ 사회적 훈련에 의하여 이타적 행위가 본능이 된다.  

375. 다윈은 스스로의 이론에 불리한 사실이 부딪치면 서둘러 그것을 기록했다. 불리한 사실은 유리한 사실보다 잊어버리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79. 어떠한 사람도 스스로가 쓴 책만큼 훌륭하지 않다. 정신활동 최상의 소산은 그 사람이 쓴 책이다. _스펜서

 

프리드리히 니체

385. '내가 아닌 것이야말로 나에게 신이며, 덕이다.

393. 니체는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이상으로 '아폴론적'이었다.

395. '나는 하나의 가곡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부르길 원한다. 비록 빈집에 홀로 있어, 듣는 것은 오직 내 귀뿐일지라도.'

395. <차라투스트라..> 팔린것은 40부였고, 7부는 기증본, 수령증을 준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고,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았다.

397. "선악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자야말로 먼저 파괴자가 아니면 안 된다. 그리고 모든 가치를 부숴버려야 한다.

399. 그는 시간도 장소도 일정하지 않은 생활을 보내며, 스위스/베네치아/제네바/니스/투리노를 전전하며 살았다. ... 시력이 약해져 갔기 때문에 그 후로는 책을 쓰지 않고 잠언 만을 썼다.

403. 쌀은 불교의 성립에 큰 도움이 되었으며, 독일의 형이상학은 맥주의 결과이다.

404. 도덕성이 친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힘에 있는 것과 같이 노력의 목표도 역시 만인의 향상이 아니라 보다 우수하고, 강한 개인의 발전에 있어야 한다.

406. 자기의 충동을 쫓아가는 자는 누구냐. 약자다. 약자에게는 금지하는 힘이 결여되어 있다. 아니다,라고 할 만한 용기가 없다.

 ☞ 약자로 남고 싶지는 않다. 나의 본성을 이길 수 있다면 그리하리~! 

409. '베네치아의 가난한 곤돌라의 사공은 여전히 베를린의 진짜 추밀 고문관보다도 풍채가 좋다. 그리고 실제로 인물도 우수하다.'

410. 민주주의란 자연적인 흐름에 맡겨 둔다는 의미로 유기체의 각 부분이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413. 사람들은 앞으로 또 1백만개의 칼라 단추를 만든다는 견디기 어려운 단순함보다도 전투의 위험 쪽을 좋아했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죽음의 깃발 아래로 떼 지어 몰려들었던 것이다.

416. 니체는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고지하고 계시하는 것이다. .. 새로운 신앙, 새로운 희망, 새로운 종교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는 낭만주의 운동의 아들이다.

417. '저자는 자기의 저서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

 ☞ 언어가 말한다. 작가를 통해 시대정신이 말한다. 신이 말한다. 

420. 비평 : 그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지배와 전쟁보다도 상호관계와 우애에서 생긴다는 것을 몰랐다.

421. 메디치 가의 사람들 또는 엘리자베스나, 낭만주의 시대의 전성 시기는 신흥 부르주아지의 부에 의하여 길러졌던 것이며, 문학과 예술의 독창성은 귀족에 의해서가 아니라 중류계급의 자제에 의해, 산파의 아들 소크라테스난 변호사의 아들 볼테르나 백정의 아들 세익스피어에 의해 이루어졌다.

423. '자기 자신을 넘어서 창조하기를 바라며, 그런 후에 몰락해 가는 자를 나는 사랑한다.'고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

424. 자연이 그를 미치게 한 것은 자연의 자비였다. (그는 미쳤을 때 평화와 안정을 찾았다)

 

 현대 유럽의 철학자들

앙리 베르그송

428. 두뇌의 물질적 메카니즘은 뇌과정이라는 열에서 생긴 얼핏 쓸데없이 보이는 이 불길을 끄지 못하는가.

429. 베르그송이 그만큼 빨리 명성을 높인 것은.. 감히 의심할 용기가 베르그송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432. 이론적으론 살아 있는 생물에는 모두 의식이 있어야 한다. 원리상으로 의식은 생명과 동일한 넓이를 가지고 있으니까.

439. 생명은 결국 지성 쪽으로 관심을 기울여 희망을 의탁한 것이다... 끊임없는 창조적 생명이야말로 우리가 신이라고 이름 짓는 것을 뜻하며, 신과 생명은 하나이다.

441.우리는 <창조적 진화>1907가 현세기 유일한 철학적 걸작인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정한다.

442. 충동과 욕망을 진화의 적극적인 힘으로 본다. .. 생명이란 창조적인 힘, 즉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욕망을 고집함으로써 기관을 형성해 나아가는 힘이다.

443. 그는 사물의 우연성은 포착하기 힘들며, 정신에는 물질을 다시 만들어 내는 능동성이 있음을 역설하였는데, 우리는 그러한 주장이 필요했다.

443. 베르그송 이후 우리는 세계를 우리 자신의 창조적 무대이며 재료라고 보게 되었다. 베르그송이 나오기 전에 우리는 죽은 기계의 톱니바퀴나 수레바퀴였지만 지금은 창조의 드라마 속에서 스스로 자기의 역할을 써넣을 수 있다.

 

베네데토 크로체

449. 인간은 상상력을 작용시키자마자 예술가이며, 개념적으로 사고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예술가이다.

450. 예술작품을 이해, 또는 감상하는 정도는 그려진 진실을 직접적인 직관에 의하여 포착하는 능력, 즉 감명 깊은 형상을 자기 스스로 홀로 형성하는 능력에 좌우된다.

451. 어떤 것이 왜 아름다우냐 하는 것을 우리는 결코 정확하게는 모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버트란트 러셀

455. 추상은 총괄로서 유용하지만 논증의 수단으로는 경험과 해설을 필요로 한다.

459. 우리의 학교는 유토피아를 향해 열려진 문

459. 예술은 부에서 성장하는 꽃에 불과하며, 결코 부를 대신할 수는 없다. 메디치 가는 미켈란젤로보다도 먼저였던 것이다.

 ☞ 그러나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이 이끄는 문화가 진정 예술을 이끈다고 보기 어렵다. 대기업은 예술 조차도 부의 축적 수단으로 삼았다. 그들은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기보다 과거의 예술을 빨아먹기 바쁘다. 

460. 중국에 대해, 이와 같이 마음이 넓고, 현실주의적이고, 자진하여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뿐 그것을 구부려 특수한 형에 넣지 않으려는 문명을 나는 아직 다른 곳에서 본 일이 없다.

 

현대 미국의 철학자들

463. 두 개의 미국이 있는데 그 하나는 유럽적이다. 동부의 여러 주. 이 새로운 영국이 워싱턴, 어빙, 에머슨, 포우를 낳았으며, 미국 최초의 철학자 조나단 에드워드가 책을 쓴 곳도 새로운 영국이다.

463. 또 하나의 미국은 미국적 미국이다. 그것은 양키, 인디애나 주, 카우보이.... 이곳이 링컨, 소로우, 휘트먼, 마크 트웨인을 낳은 미국이다.

 

조지 산타야나

465. 주저 <이성의 삶>

466. 비판은 인습의 팔에 안겨 있는 영혼을 놀라게 한다.

467. 한 가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간의 경험, 즉 이 색체, 이 형태, 이 맛, 이 향기, 이 질이다. 그것은 '실재계"이며, 그것들의 지각이 '본질의 발견'이다.

467. 자기가 내걸고 생활하는 것과 다른 의식에서 싸우는 것은 부정직하고 비겁한 것처럼 생각된다.

468. 산탸야나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으로 무장하고 현대 생활의 모든 문제에 맞선 것이다.

469. 비록 물질이 무엇이든 나는 그것을 대담하게 물질이라고 부른다. 마치 그의 비밀은 모르지만 아는 사람이기에 스미스나 존슨이라고 부르듯이.

471. 만약 우리가 종교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472. 가톨리시즘에서는 그리스의 이교적 요소가 우세하고, 프로테스탄티즘에서는 엄격한 헤브라이의 도덕이 우세하다. 전자는 르네상스를 경험하였고, 후자는 종교개혁을 경험한 것이다.

478. '지혜의 역할은 무엇이냐' --> 한쪽 눈을 뜨고 꿈을 꾸는 것, 세상을 적대시하지 말고 세상에서 멀어지는 것, 아름다움도 고통도 순식간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고 순간의 아름다움을 기쁨으로 맞이하고 순간의 고통을 슬피 탄식하는 것

 ☞ 지혜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해 줄 때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윌리엄 제임스

481. 끊임없이 유럽문화에 접촉함으로써 그는 형이 도달하지 못한 사고의 성숙을 얻었고, 윌리엄은 미국으로 돌아와 생활하면서 기회와 희망에 찬 젊은 국민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시대정신에 맞추어, 국토의 본질을 잘 포착하였기 때문에 어떤 미국의 철학자도 일찍이 맛보지 못한 인기의 정상에 홀로 오를 수 있었다.

 ☞ 주목을 받으려면 그곳에 서있어야 한다. 시대의 중심에.

488. 제임스는 사회주의에 동정을 가졌지만 사회주의가 개인과 천재를 무시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489. 실용주의는 .. 마치 배당률이 높은 장기투자를 권하면서 하나도 손해를 볼 것이 없고, 세계를 송두리째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490. 그는 진리론보다는 오히려 경험의 강조, 그 새로운 실재론에 의해 오랫동안 우리에게 기억될 것이다.

490. 그의 마지막 말 "결론이라는 것은 없다. 우리가 그것에 관해 결론을 낼 수 있다는 결론을 도대체 누가 끄집어냈는가. 말할 수 있는 예언도 없으며, 들려줄 조언도 없다. 안녕!"

 

존 듀이

490. 언제쯤이나 철학은 이들 귀찮은 내세의 문제를 종교에 떠맡기고, 인식과정의 미묘한 여러 난문을 심리학에 맡긴 뒤 전력을 모아 인간의 목적과 생활의 조정/향상에 몰두할 수 있게 될까.

492. 참다운 교육은 우리가 학교를 졸업한 뒤에 시작되는 것이니, 우리가 죽기 전에 교육을 그만둘 이유는 전혀 없다.

493. 신성은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이지 이들 무색투명한 우주력에 있는 것은 아니다.

494. 변화와 성장을 인식할 수 있는 한계는 없으며, 사고가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은 없다.

495. "나쁜 인간이란 비록 지금까지는 아무리 선하였더라도 현재 타락하고 있는 사람이다. 좋은 인간이란 비록 지금가지 도덕적으로 무가치했더라도 현재는 좋아지고 있는 사람이다."

496. 듀이는 국가를 신용하지 않고 사회의 일이 될 수 있는 한 많은 자발적 협동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다원적 질서를 희망한다. 그는 협동조합/정당/회사/노동조합 등에 개인주의와 공동행위의 조화를 보는 것이다.

497. 철학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의 손을 벗어나 세속화되어야 한다. 철학은 지상에 살면서 생활을 개화하는 것에 의하여 생계를 세워야 한다.

498. 서로 다투는 생활의 모든 요인을 어떻게 조정하는냐 하는 일반적인 선견지명이 있는 이론, 그것이 철학이다.

499. 우리는 부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유는 예술의 서막이다... 우리가 자유를 부와 마찬가지로 존경하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도 르네상스는 올 것이다.

 ☞ 현대는 전체적으로는 부유하기도 하지만, 젊은이나 여성 등 약자에게는 강팍한 곳이다. 자유보다는 귀속과 안정을 추구하는 경쟁의 사회인 것이다.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사회에서 르네상스는 아직 요원하다.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의 특징

윌 듀랜트는 스스로 이 책이 완전한 철학사가 아니라고 얘기한다. 그는 15명의 철학자를 선정해서 그들의 사상적 연혁을 이야기했다. 그럼으로써 '지식이라는 것에 인간성을 주려고 기도한 것'이라고 말한다.  바로 그의 이런 의도가 출간 즉시 미국의 베스터셀러가 되게 만들었고, 친절한 철학입문서로 소개되어 수십개국에 번역되었던 것이다. 그의 이런 형식적인 의도와 더불어 전하고자 한 주제도 명확하다. 그것은 철학은 지혜를 위한 종합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복잡한 인식론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스토아학파니 스콜라철학이니 하는 서양철학사에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과감히 제외시켰다. 그는 인식 과정의 연구가 심리학이 할 일이라고 넘긴다. 이 주제는 영국의 경험론이 과학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것을 강조하고, 칸트가 과학과 종교의 한계를 밝혀내었다는 것을 조명한 후 마지막 존 듀이의 '실용주의'를 설명하며 분명히 전하고 있다. 철학은 모든 경험의 종합적 해석이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베이컨과 볼테르, 칸트의 철학사적 의미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있었지만, 스피노자와 스펜서, 니체에 대한 설명은 잘 와닿지 않는다.

 

내가 동양판 '철학이야기'를 쓴다면

나라면 물론 동양의 철학자들을 찾아낼 것이다. 작게는 우리나라의 철학자들을 중심을 하겠지만, 우리의 역사가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역사에 깊이 연관되어 있으니 동아시아의 철학자들로 그 범위를 넓힐 수도 있을 것이다. 윌 듀랜트는 '문명이야기'의 제1권을 '동양문명'에 바쳤다. 그 내용은 서양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수메르로 시작해서 이집트와 페르시아의 역사를 다루는 것이었다. 미국인인 그가 자신의 정신의 뿌리를 찾아 유럽역사에 영향을 준 동양문명을 제일 첫번째 과업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러하니 나또한 철학이야기의 범위를 동아시아로 한정하지는 말아야겠다. 북방민족들과 동남아시아, 인도, 페르시아에 이르는 그 관계망 속에서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중요한 역사적 철학자들을 찾아내겠다.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찾아내 세상에 밝혀야 할 것이다. 좀 좁혀보면 중국, 인도, (한국), 일본의 철학자들 중에 찾아볼 것이다. 한국을 괄호로 표시한 것은 솔직히 동양의 역사에서 한국이 주도적으로 큰 변화를 이끈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역사적 중요도 측면에서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양(아시아)의 역사를 만들어 온 세 나라의 사건들 뒤에 있는 철학적 배경과 그 철학자를 찾아내어 설명하는 일이 재미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중국 중심의 사고에서 벗아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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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7.18 11:39:54 *.163.164.178
369.적도아프리카의 결혼에 대한 예화는 재미있었지!
너에게 그 재미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듀란트 보다는 러셀이 철학에 대한 서구중심 사상이 덜한 것 같다.
<철학이야기>는 <서양철학이야기>라고 해야 함이 옳다.
너의 동양철학사에 대한 언급을 보니 생각을 다시하게 된다. 

저자에 대한 너의 개인적인 느낌은 찾을 수 없어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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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2011.07.19 11:26:13 *.166.205.131
윌 듀랜트가 <철학이야기>를 쓰기 위해 들이 노력과 찾아온 행운,
그 첫 책을 통해 <문명이야기>라는 도전을 했고 평생을 바친 모습에
감동했고, 많은 생각을 했지요.
부인과 함께 공동저술을 한 것도 부러웠고요.
부부가 비슷하게 죽게 된것도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저희 부부도 그러하길 기원해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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