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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1일 10시 53분 등록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5-2 Review]


1. 저자에 대한 생각 


[삼국사기]는 인종의 명에 따라 김부식을 비롯한 11명의 집필자가 공동 저술한 정사正史다. 반면 [삼국유사]는 일연이 절과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고대의 설화와  야사, 향가 등을 십수년 동안 모으고 정리해서 엮은 총 5권 2책 (권상:1,2, 권하: 3.4.5) 9편목으로 구성된 역사 서적이다.


중국인들은 자기 나라가 사방 오랑캐에 에워싸인 유일한 문명국이라는 생각에서 중국中國이라 했고, 이것은 곧 중화주의中華主義의 시작이다. 일연은 우리나라가 중국 못지않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삼국유사]의 ‘고조선’조에 우리민족의 시조가 된 단군 신화이야기가 나온 것이나, 기자 및 위만조선 등에 대한 서술을 통해 우리 민족이 4000년의 역사를 가졌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우리 역사의 시작을 한나라의 전성기인 기원전 57년으로 잡았다.)


일연은 상고 시대와 삼국의 복잡다단한 역사를 다루기 위해 역사적 사건을 연대순으로 기록해 놓은 [삼국사기]와는 전혀 다른 방식을 취했다. 유사遺事에서‘유遺’는‘잃어버리다’,‘자취’,‘남다’등의 의미이고,‘사事’는‘사실‘이나‘사건’,‘사적事跡’을 뜻한다. 이전 역사 가운데 고려에 와서 없어진 일들에 관한 기록이라는 뜻과 정사에서 빠진 역사에 관한 기록이라는 뜻을 동시에 담고 있다.


[삼국유사]의 성격에 대해 사서史書인지, 야사집野史集인지, 불교 문화서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80%의 내용이 신라의 역사에 대한 기록 위주라는 점, 지은이도 승려이고, 불교를 소재로 하거나 불교를 중심으로 한 문화활동을 서술한 것이 많고, 권1.2를 제외하면 불교설화나 전설 등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 리뷰였던‘사기열전’을 옮긴 김원중은 [삼국유사]를 역사서이자 불교문화서요, 야담과 설화의 모음집이자 소중한 문학서이고, 문사철文士哲이 관통된 인문서라고 말한다. 이는 고은기의 생각과도 같다. 고은기는 [삼국유사]를 승전이라고 말하는 주장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1) 일연 (1206~1289)


일연은 국사에 오른 승려인 동시에 뛰어난 문인이요 시인이다. 장산군, 즉 지금의 경북 경산 사람으로 고려 희종 2년(1206) 6월 11일 출생했다. 속성(출가전 쓰던 성)은 김(金), 이름은 견명(見明), 호는 목암(睦埯), 자는 회연(晦然)으로 후에 일연으로 고쳤다. 그의 아버지 김언필은 학문하는 선비였는데 벼슬은 하지 못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9세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공부를 위해 전남 광주의 무등산 자락에 있는 무량사로 들어갔고, 14세 때 승려가 되기 위해 강원도 양양에 있는 진전사에서 머리를 깍고 승려가 되었다. 1227년 22세때 승과에 장원급제한 후 비슬산 보당앞에 머물며 20년 동안 수도에 정진했다. 44세때, 남해의 정림사의 주지로 초빙되어 6년 동안 머물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왕명에 의해 주요한 불사를 주관했다.


1277년(충렬왕 3년)부터 왕의 명에 따라 청도 운문사에서 1281년까지 살며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이 무렵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282년 3월 국존(國尊, 덕행이 높은 스님에게 주던 최고의 승직으로, 후에 국사라고 함)으로 책봉되었고, 4월에는 왕의 거처인 대내에서 문무백관을 거느린 왕의 구의례(옷의 뒷자락을 걷어 올리고 절하는 예) 를 받을 만큼 왕실 상하의 존경을 받았다. 효성이 지극했던 그는 79세 때,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나라에서 수리해 준 인각사로 내려가 그곳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하게 된다. 그는 제자에게 북을 치게 하고 자기는 의자에 앉아 다른 승려와 태연하게 선문답을 하다가 손으로 금강인金剛印을 맺고 84세에 입적했다. 이때 나라에서는 보각이라는시호를 내렸다. 경북 군위군 인각사에는 그의 이름을 기리려고 충렬왕 21년에 새운 사리탑과 비석이 남아 있다.


인각사 입구 시비에는 아래와 같은 일연스님의 시가 새겨있다.

“즐겁던 한 시절이 자취 없이 가 버리고 시름에 묻힌 몸이 덧없이 늙었어라. 한 끼 밥짓는 동안 더 기다려 무엇하리. 인간사 꿈결인줄 내 이제 알았노라.”


2) 고운기 (1961~)


1961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다.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이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등 세 권의 시집을 냈다. 일본 게이오 대학 문학부 방문 연구원으로 한국과 일본의 고시가를 비교 연구하였다. 현재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이다.


동그란 금테에 곱게 빗어 넘긴 머리, 차분하고 갸름하면서도 강한 신념이 느껴지는 모습, 그의 사진을 보니, 아나운서 손석희를 연상시키듯, 이름처럼 곱고 이지적인 모습이다. 그는 시인이다. 윤동주를 특히 사랑하여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소개하는 책도 냈다. 일연도 시인이고, 고운기도 시인이다. 시인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이는 역시 시인인가 보다. 그는 이십년을 ‘삼국유사’ 연구에 매달렸다. 시인이 혁명가를 만나, 혁명가의 눈으로 바라 본 역사의 아름다움이, 찬란한 빛을 드러내게 되었다. 시인과 역사학자, 행복한 조합이다. 그의 소개는 그의 시로 살펴보자.


인생


더러는 좋은 말이

남에게 비수가 되는 일도 있었네


암에 걸린 부인을 둔 선배와 만나는 밤

하릴없는 술잔만 별을 따라 도는 것이니


무딘 입술이 내뱉기로야 덜 실수하자고 노래나 한 곡조


선운사 떨어지는 동백꽃을 부르고 나면

된장국 끓여놓고 고기 잡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바닷가

마을이 따라 나와

따라나오, 끝내 한 사람은 눈물을 보이고


끝난 영화의 필름을 돌려

또 같은 화면이 나온다 할지라도


눈물 흘려 한 사흘 울고 나니

다시 아무일 없는 처음으로 돌아가 있더라는

전설이라면 진정 꿈이라면…….


[자전거 타고 노래부르기 中 / 고운기 시집]


아!...시 좋다...같은 시집에 있는, 한편만 더 읽자...


책과 나


예쁜 여자 훔쳐오듯 데려와 살았다.


어느 새 방하나를 요구한다.

저의 방 하나 마련하려 살아가는 나날이다


한때는 요행히 방을 준 적도 있었다.

정중히 헤어질 것을 요구한 적도 있었다.


남의 집에 저를 맡겨두고

먼 데로 떠돌거나 가끔씩 들러 눈을 맞춰보기도 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정 깊어진 여자


하기야 깊이 사랑하고 자식을 낳기도 하였다.

드디어 늙어서는 먼지만 쌓인 네 몸뚱어리를

끝내 버리지 못하고 챙긴다.


다시 욕구가 생길 때는

새 여자보다 헌 네 몸을 탐하게 될까


자식을 얻겠다는 생각은 웬만큼 사라지는 나이.


아..좋다...시인, 만세!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편안함이나 위험이 어떤 날에는 서로 기대는 친구가 되고

즐거움이나 고통이 닥치거든 두루 맛보아야 하는 것

 

나는 [삼국사기]를 방금 따낸 과일이나 방금 캐낸 채소에다 비유해 본 적이 있다. [삼국사기]가 사대주의라는 방부제를 친 통조림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요리를 하기에는 방부제 친 통조림보다 싱싱한 과일과 야채가 더 좋은 재료 아닌가? 그러므로 모름지기 [삼국유사]는 시대마다 좋은 요리사를 만나 좋은 요리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재료인지 모른다.

 

(p5)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그가 승려였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이었다. 유학을 기본으로 하는 선비들이야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고 한들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 주는 데 반해, 승려들은 처음부터 중국 중심에 서 있지 않았으므로 보다 빨리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p6) [기이]편은 그 서문에서 밝힌 바, 우리에게 뿌리가 되는 나라와 왕들을 비록 기이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나 굳이 수록하겠다는 것, 그래서 단군 신화가 처음으로 문서상에 기록되었다는 데에서 더 이상 강조할 필요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p12) 글을 쓰는 것이 목숨과 바꿀 무게로 쳐지는 시대에서 단 한 글자도 허투루 적을 수 없다. 예나 이제나 작은 나라는 거기에 그다지 자유가 없다. 늘 큰 나라가 만든 규범을 좇아가야 했던 것이다. 


(p18) 곰은 여자가 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았다. 최후의 주인공 단군의 출생까지 커다란 각본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것을 움직여 나간 주체는 바로 어머니 곰이다. 단군은 그렇듯 현명한 곰 부족 출신의 어머니를 두고 태어나 이 땅의 첫 왕이 되었다.


(p21) 단군 신화는 건국 신화다. / ‘세상’이 아니라‘나라’다. /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 아니다. 더러 단군의 자손도 있겠지만, 그 때 이미 한반도에 살고 있다가 단군을 왕으로 모신, 이러저러한 사람들의 자손이다.


(p23) 모방이 창조의 원동력이라고는 하나 지나치면 부작용이 따른다. 한껏 폼을 내 만들어놓은 [삼국사기]라는 명약이 우리만의 고유한 정신과 영역을 잠식해 들어가는 바이러스로도 기능할 줄은 아마도 그 찬술자들조차 몰랐던 것 같다. 일연은 그 바이러스의 정체를 발견했다. 중국의 제도와 문물이 좋다고 한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고 쓴 것이다. 이를 그대로 들여와 내용만 우리 것으로 채웠을 때, 내용은 형식에 가려 실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세련된 장식으로 우리 역사를 볼품 있게 세워 놓았지만 그로 인해 본질을 놓친 것, 부작용이란 다름 아닌‘우리의 실종’이었다.


(p34) 사실 [삼국유사]에서 단군 신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지만, 실은 일연이 단군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처음과 끝을 설명하고자 한 데 더 힘을 기울였다고 보아야 한다.


(p44) 주몽의 이 같은 고난과 극복은 소설의 이론에서 말하는 ‘영웅의 일생’에 부합한다.영웅은 특이한 재주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성장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아 고난을 겪는다. 영웅은 그가 타고난 능력으로 이같은 고난을 극복하고 이상을 실현해 낸다.


(p56)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곧 오리지널의 출발을 의미할 것이다. 이제 남쪽에도 하늘에서 내려 온 이들이 있음을 말하는 일연의 의도란 곧 북쪽과 계통을 달리하는 오리지널이 있음을 강조하자는데 있지 않을까?


(p73) 탈해가,“무릇 덕 있는 자는 이가 많으니, 마땅히 이를 가지고 시험해 봅시다”하고 ,떡을 물어 살펴보았다. 노례왕의 이가 많았으므로 먼저 자리에 올랐는데, 이 때문에 닛금이라 이름을 지었다. 닛금이라 부르는 것이 이 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p86) 왕이 알지를 싣고 궁궐로 돌아올 때, 새와 짐승까지 따라오며 기뻐 뛰었다. 왕은 좋은 날을 가려 태자에 책봉하였지만, 뒤에 바사에게 양위하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황금 궤짝에서 태어났으므로 성을 김(金)씨로 하였다.


(p91) 오래도록 남성에 복종하며 살아온 일본의 여성들이 자신의 일을 찾고, 자기의 삶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는데, 그들이 내세우는 상징적인 인물이 여왕 히미코라는 것이다.


(p92) 프로레슬링을 진짜 격투기라고 생각한 우리에게 잃어버린 것은 재미요 남은 것은 공허감이지 않았던가? 역사 또한 그래서는 안 된다.


(p96) 오랫동안 여러 군데 옮겨 다니는 생활 속에서 일연은 남다른 일 하나를 했다. 자기가 머문 지역에 전해오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빠뜨리지 않고 모았다는 점이다.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 또한 그의 이 같은 관심과 실천 속에 모아진 것으로 본다. 그런 이야기일수록 일연의 붓끝은 힘을 얻는다.


(p109) 가까운 사이라고 함부로 대하다 보면 틀어지기 마련이다. 왜의 찾은 침략을 받는 신라로서는 더 이상 가까이 하기 힘든 존재로 굳혀 갔으리라 보인다.


(p111) “저는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임금이 욕을 보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쉽고 어려움을 따진 다음에 행한다면 충성을 다한다 하지 못할 것이요, 죽고 사는 것을 가린 다음에 움직인다면 용맹스럽다 못하다 할 것입니다. ”


(p120) 무릇 큰 강은 어느 지류도 마다 않고 받아들여 함께 흐르고, 그러기에 거꾸로 생각하면 큰 강이 된 것과 다르지 않게, 사람도 큰사람이 있는 법이고, 큰 사람이 이룬 일에 대대로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는다.


(p125) 봄꽃이라면 뭐든 아름답다 하나 복사꽃을 따를 만할까? 희다면 희고 붉다면 붉은 꽃, 그 두가지 빛이 어우러져 먼 데서 보면 뾰족하게 이제 막 피어나는 소녀의 맑고 붉은 볼을 연상시키는 꽃이다.


(p134)“자줏빛 옷을 입은 사내가 잠자리에 들어 정을 통하곤 한답니다.”


(p140)‘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옛 유대 성인의 입을 통해 나왔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것은 진리다.


(p149) 힌트는 어디선가 주어져 있는 법이다. 그것을 찾고 못 찾고는 지혜의 눈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달렸다. 어떤 점에서 진지왕은 영민한 사람이다. “청년이 스스로 서울 사람이라 했다면서? 성인이 빈말을 하겠느냐, 성안을 찾아보면 되지 않겠는가/ 라는 한마디는 심상한 듯하면서도 정곡을 찌른다.


(p158) 왕은 "꽃을 그리면서 나비가 없으니 거기 향기가 나지 않음을 알지요. 이는 곧 당나라 황제께서 내가 배우자 없이 지냄을 놀린 것입니다.“고 답한다. 


(p170) 춘추는 여자인 선덕과 진덕으로 명맥을 이어 나가는 당시 성골 왕실에서 다시 남자 왕을 추대하고자 할 때, 가장 유력시되는 후보였다. 그가 본래 신라 사람도 아닌 가야 출신 지방 관리의 딸고 결혼한다면 스스로 왕위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p189) 왕께서 이 대나무를 가져다가 피리를 만들어 불면 세상이 화평해 질 것입니다. /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치료되며,가뭄에는 비가 내리고 홍수 때는 맑아지며,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잔잔해지는 것이었다.


(p194) 신령스런 피리를 일컬어서는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 했다.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더할 데 없는 보배이나, 거기에 공을 더 세우니 글자를 하나씩 더 붙여 주었던 것이다.


(p205) 믿지 못할 일이지만 통일 이후 화랑 출신들이 걸어갔던 쇠락의 길을 하나하나 찾아보면 한편 수긍이 가기도 한다. 화랑 가운데 우두머리는 실권을 잃은 종이 호랑이로, 무리들은 주인을 잃은 처량한 신세로 이리저리 내쳐졌다. 철저한 토사구팽이다.


(p212) 득오의 [모죽지랑가]는 인생의 무상함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인 동시에 삼국 통일 후 당해야 했던 화랑 출신들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가 버린 봄을 그리워하자니

모든 것이 울어야 할 슬픔

아름답게 빛나시던

그 모습 갈수록 스러져 가도다

눈 돌릴 사이

만나보기 어찌 이루랴

님 그리는 마음이 가는 길

다북쑥 구렁에서 잘 밤 있으리.


(p226) 노인은 꽃 만큼이나 아름다운 노래를 함께 지어 바쳤다.

자줏빛 바위가에

잡은 손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꺽어 바치오리라.


꽃이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이라면, 인간이 만든 최고의 선물은 노래다. 손에 잡은 암소도 놓고 그렇게 정중히 꽃을 바치는 노인의 태도야말로 헌신하는 자의 상징이다. 꽃을 탐내는 여자의 마음도 아름답지만, 모름지기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 바꾸는 사랑이라면 최고의 가치를 지니지 않겠는가?


(p229) 노인은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면서 노래하라 하였다. 실제적으로 노래는 여러 사람의 행동을 일사분란하게 통일시키는 데도 필요했을 것이다.


(p242) 바람은 다름 아닌‘이른바람’이다. 아마도 이 대목이 시의 핵심이리라. 태어나는 데는 순서가 있어 형 아우가 정해지지만, 죽는데는 순서가 없는 것이고, 언젠가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p259) 이 승려를 살펴보니 하나도 좋은 관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들에게 존경과 믿음을 받으니 반드시 특이한 물건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p262)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낮은 사람들보다 겸손하게 사는 이가 첫째요. 큰 부자이면서 검소하게 옷을 입는 이가 둘째요. 본디 귀하고 힘이 있으면서 그 위세를 쓰지 않는 이가 셋째이옵니다.


(p264) “제가 말씀드린 세가지 좋은 일이 지금 모두 나타났습니다. 큰딸을 맞아들였으므로 이제 왕위에 오른 것이 하나요. 예전에 미모에 끌렸던 동생을 이제 쉽게 얻을 수 있으니 둘째요. 언니를 맞아들였으므로 왕과 부인께서 기뻐하였음이 셋째입니다.”


(p270) 무엇이 올바른지 판단하지 못하는 자에게 옳은 충고란 쇠귀에 경 읽기도 아니다.


(p284) 신라 헌강왕대는 사치가 극심했지만 바야흐로 기울어 가는 시대였다. 그 같은 사회는 필연코 성적으로도 문란하기 마련, 엄연한 유부녀가 외간남자와 정을 통하는 이 장면에서 당시의 사회상을 읽을 수 있다. 일연은 역사적 사실로서 광란스런 왕들의 혈전을 쓰는 것보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한 토막으로 더 실감나게 당시 모습을 전해 준다. 그것이 삼국유사다. 


(p287) 신라의 멸망 원인 가운데 무엇이 선두에 설까? 나는 무엇보다‘골품제의 동맥경화 현상’을 내세우고 싶다. 중앙과 지방의 중요한 관직을 성골과 진골들로만 채우는데, 그들이 나라 일을 맡아 해낼 능력도 의지도 부족해졌을 때, 신라는 탄력성을 잃고 둔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피가 수혈되지도 못했다.


(p297) 신라 멸망의 상징으로 포석정 연회를 든다. 마치 박정희의 마지막 만찬처럼, 그러나 포석정은 그런 오명을 뒤집었쓰고 폄하되어야 할 곳이 아니다. 포석정이 단순한 연회의 장소인지, 그보다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장소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p302) 백성의 입장에서야 누구의 백성이 된들 무슨 상관이랴? 더욱이 넘쳐나는 새로운 힘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 백성의 삶이 더욱 윤택해질 교체라면, 어느 개인의 사유물처럼 정권을 휘둘러 무고한 희생만 초래하는 것에 비길 수 없다. 


(p324) 그러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200명도 채 안 되는 집권층이라면, 탁월한 문화를 지닌 소수가 가서 단번에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소수가 바로 백제계였다. 


맹랑하기 그지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누구도 될 수 없다고 포기할 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난국을 돌파하는 꾀는 맹랑한 자에게서 나온다. 그런 맹랑한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 서동이 쓴 방법은 노래를 통한 여론의 조성이었다. 노래에는 그 같은 힘이 있다. 


(p353) 오랜 싸움은 민심을 얻는 자가 이기는 법이다. 견훤은 제힘만 믿고 오만스럽기 짝이 없어, 갈수록 민심을 잃는 편이었고, 왕건은 그렇게 떨어진 민심을 주워담아 자기편으로 만드는데 능했다.


(p378) 먼 뱃길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서 석탑, 그것은 참으로 상징적이다. 우리는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곤 한다. 바람과 파도 속에서, 또 때로 찬란한 태양과 밤 하늘에 빛나는 별의 인도를 받으며 건너는 고해가 있다. 그 길을 지켜 주는 석탑.


(p392) 고구려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것을,[삼국사기]에서 인용하고 난 다음에 쓴 찬을 보자.

압록강 봄 깊어 풀빛 고웁고

백사장 갈매기 한가히 조는데

노 젓는 소리에 깜짝 놀라 멀리 날으네

어느 곳 고깃밴지,안개 속에 이른 손님


(p394) 물론 상상이다. 이 같은 시적 상상은 그 선연한 형상력의 도움을 받아 우리를 사실 이상의 사실 어디로 데려가고 있다. 순례자의 길은 외교 사절의 화려한 행차가 아니다. 무기를 쥔 군대의 살벌한 행진도 아니며, 이익에 혈안된 장사꾼들의 잰걸음도 아니다. 어떤 깨달음의 숭고한 사명이 조용히 깃든, 세계와 인간이 하나되어 마침내 그 비밀에 눈뜨고야 말 두근거리는 첫 발자국이다. 


(p398) 신라 불교는 처음부터 순교자를 부르고 있었다.

금교에 눈 덮여 아니 녹으니

계림의 봄빛은 아직도 먼데

영리한 봄의 신神 재주도 많아

모례네 집 매화꽃에 먼저 피었네


(p405)“뭐라 해도 제 목숨만큼 버리기 어려운 것을 없을 것입니다.그러나 제가 저녁에  죽어 커다란 가르침이 아침에 행해지면, 부처님의 날이 다시 설 것이요. 임금께서 길이 평안하시리다.”


(p428) 불교미술사학자들은 불상의 출현을 서기 1세기경의 쿠샨 왕조 때로 보고 있다. 석가모니 열반 후 500여 년이나 지났을 무렵이다.


(p444) 성인이 성인인 줄 알고 만난다면 오죽 좋으련만, 우리는 본질을 두고도 늘 외곽만 맴돌며, 손에 잡은 진리를 진리인 줄 모르고 버리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이라고 말한다.


(p454) 이것은 하나의 인연이다. 도를 이루려고 해도 이루려는 자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음을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를 이루려는 일만이 아니다. 무릇 의지만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그렇게 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 인연은 그렇게 오는 게 아닐까?


(p464)“그 사람은 마음이 아주 곧습니다. 용서해 주시지요.”“그렇게 현명하고 곧다면 지난밤 내 꿈속의 모습을 그려내거라. 어긋나지 않으면 용서하리라.”그 사람이 곧 11면 관음상을 그려냈다. 꿈과  맞으니 황제는 의심이 풀려 용서해 주었다.


(p484) 달달박박을 두고 쓴 시다...

두 사람의 행적을 두고 쓴 일연의 찬 또한 마찬가지다.

푸른 빛 떨어지는 바위 앞, 문 두드리는 소리

날 저문데 누가 구름 속 빗장 문을 당기는가

남쪽 암자 가까운데 그리로 갈 것이지

푸른 이끼 밟고서 내 뜰을 더럽히지 마오.


(p488)‘담을 쌓다’라고  말하면 흔히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인다. 뭔가 외부세계와 단절된 고립의 의미를 넘어, 제 주장에만 골똘한 고집쟁이를 연상시키는 말이다. 그러나 절 주변에 쌓은 담은 고집쟁이의 그것이 아니다. 속된 것으로부터 지키는 어떤 성스러움의 의지라 할 수 있다.

(p499) 재궁마을의 우물가  학 바위에서 처녀가 아이를 낳았는데, 이 여자는 표주박에 해가 담긴 물을 마시고 와서 잉태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범일이다. 처녀가 남자와 관계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이야기는 [신약성서]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p508)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허망한 줄 모르면서 이전투구泥田鬪狗하고 알면서도 뭔가 이뤄보려 악착을 부리는 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이다.


(p518)“자리自利만 행하고 이타利他의 공이 없으면, 지금에는 높은 이름을 떨치지 못할 것이요.”


(p530) 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원효는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p533) 원칙은 무너지기 쉽고 오해는 따르기 쉽다. 그러나 미로를 헤매지 않으며 오해를 무릅쓰면서, 사람이 살다보면 당할 문제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기란 쉽지 않다.


(p535) 자루 빠진 도끼라는 비유야말로 얼마나 기이한지, 여성을 상징함과 더불어 본디 자루가 있었음을,


(p551) 원효는 탄식하면서 의상에게 말한다. “지난 밤 잘 때는 토굴이라도 편안하더니, 오늘은 잠들 자리를 제대로 잡았어도 귀신들 사는 집에 걸려든 것 같았네. 아, 마음에서 일어나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토굴이나 무덤이나 매한가지. 또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법이 오직 앎이니,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어찌 따로 구하리요. 나는 당나라에 들어가지 않겠네.”


(p571) 우리가 자본주의적 욕심에 벼려져서 모질다면 그들은 원초적 자연 속에서 몸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적응하고 생존하려는 데서 생긴 모짐이다. 인류가 가장 인류다운 모습, 아마도 문명 이전에 인류는 저렇게 살았을 것 같은 모습을 그들은 지금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 준다. 진실로 두려워 할 줄 알고, 진실로 견뎌 낼 줄 아는 사람들이다.


(p584) 처음에 7일을 기약하고 온 몸을 돌에 두들겨 무릎과 팔뚝이 부서지니, 피가 비오듯 바위에 뿌려졌으나 성인은 감응이 없었다.


(p604) 하루는 자기 집 동쪽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았다. 살을 발라내고 뼈는 동산에다 버렸다. 아침에 보니 그 뼈가 없어졌다. 핏자국을 따라 찾아보자 뼈는 제 굴로 돌아와 새끼 다섯 마리를 안고 쭈그리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오랫동안 놀라워 하다가 깊이 탄식하며 머뭇거렸다. 문득 속세를 버려 출가하기로 하고, 이름을 바꾸어 혜통이라 했다. 

(p612) 거사가 손락을 튀기며 한 번 소리를 지르자 안혜는 공중에 한길쯤 매달리는 것이었다. 한참 뒤에 거꾸로 선 채 서서히 내려와 땅바닥에 마치 나무를 심은 것처럼 꽂혔다. 옆 사람들이 뽑아내려 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p627) 거창하게 모임을 만들고 절을 짓고, 근엄한 예불을 올리는 이들에게 부처님은 찾아오지 않았다. 껍데기 미타 신앙이 가진 허위 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하자는 목적이라기보다, 제 육신을 잊고 끝내 버리고만 욱면이라는, ‘평안한 시기의 부유한 층’의 계집종에게 초점을 맞춘 이야기에서, 우리는 더할 나위 없는 위안과 격려를 받는다.


(p633) 실수와 무지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한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p645)“아가씨는 밝고 총명하기가 누구보다 뛰어나군요. 참 다행스럽게도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면, 제가 저를 소개해도 될는지요?”

 

(p648) 부부의 정 깊으나

산중에 둔 뜻 깊어만 가고

세월이 변하거든 백년가약 그 마음

두려웠네. 저버릴까봐.


(p656) 정작 큰 스승들은 무엇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법이 드물다. 진리는 단순한 법이기에 그런 것일까


(p664) 지금 스님의 병은 근심과 수고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즐거운 웃음으로 고칠 수 있을 겁니다. ..웃느라고 모두 턱이 빠질 지경이었다. 스님의 병은 모르는 사이에 씻은 듯이 나았다.


(p672) 세상과의 절연이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돼지우리 같은 시궁창에 뒹굴어도 살아있음이 소중하고, 복마전 같은 세상일지라도 그 안에서 아옹다옹 싸우며 한 세상 마치는 것이 모정의 세월이다. 누군들 거기서 벗어나 홀로 한 길을 가고 싶겠는가


(p688) ‘삼국유사’가 불교문화사적 역사와 설화의 모음이라고 한다면 모르되, 승전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어떤 책이거나 거기에는 그 책만의 이념을 가지고 있다. ‘삼국유사’의 이념이 불교일 뿐이다.


(p701) 부처님의 법을 만나기는 어렵고 인생은 짧은데, 효도를 마친 다음이라니? 그건 너무 늦다. 내가 죽기 전에 도를 듣고 깨우쳤다는 소식을 듣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가거라..


(p709) 향가는 서정시다. 개인의 일상이 개인의 정서 속에서 부딪혀 형상화되어 있다. 여러 가지 소재나 주제가 얽혀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향가는 일상사의 개인이 부르는 곡진한 노래다.


(p722) 재물이 지옥에 가는 근본임을 알고, 바야흐로 깊은 산중으로 피해가서 일생을 보내려 하는데, 어떻게 감히 이것을 받겠는가?


(p738) 일연이 애써 향가 14수를 [삼국유사]에 남긴 일은, 그 자료가 오늘날 우리 고대 시가사의 전부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 중요성을 무엇으로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p741) 13세기 혼미한 사회를 살다 간 일연은 종교와 문학 등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으려 한 혁신적 승려였다.


3. 내가 저자라면


대학을 졸업한지 벌써 17년이 지났건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탓에 공부와 연관된 기억이 없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은행나무였다. 학교에는 천년의 수명을 지닌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었다. 어른 4~5 명이 양손을 벌려 잡아야 나무둘레가 잡히는 거대한 나무였다. 비오는 어느 날, 친구 한 놈과 수업을 땡땡이 치고 술을 먹었다. 소주와 새우깡 한봉지를 사들고, 찾아간 곳이 은행나무였다. 은행나무는 멋들어진 한옥 사이에 있다. 빗줄기가 한옥의 처마 끝에서 내려와 바닥에 떨어질 때 마다, 둥둥거리는 울림이 났다.  친구놈은 Three times lady 인가 하는 팝송을 아주 멋들어지게 불렀었다. 그 은행나무는 가을이면 자신의 잎으로 사방천지를 노랗게 물들였다. 거목이었다. 천년의 나이를 먹은 그 장엄함과 넉넉함, 무엇이든 아우르는 크기와 깊이..고전을 읽는 것은 거대한 은행나무를 바라보는 것 같다. 고전을 통해 수천 수백년을 살아남은 천년의 역사가 넉넉하면서도 깊이있게 되살아났다.


이 책에는 저자의 인생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진다. 삼국유사와 일연에 대한 저자의 애정,저자가 발품을 팔며 느꼈을, 수많은 고민들과 되새김과 깨달음의 세월이, 바람처럼 느껴졌다. 20년의 사랑이니 오죽할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삼국유사 배경에 대한 지식의 부족이나, 이는 오로지 나를 탓할 일이다.


저자가 자랑스러워 할만큼, 탄성을 지르게 하는 사진들이 도처에 숨어서 책장을 넘기는 어려움을 덜해 주었다. 운문사 입구의 솔숲길, 경주 형산강의 유유한 강물, 계림의 숲, 진평왕릉 너른 들판의 황홀한 색감! 반월성의 유채꽃, 만어산의 너덜, 낭산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 선덕여왕릉이 있는 신유림의 풍광은 또 어떠한가! 주제가 있는 사진의 힘을 알게 되었다.


향가의 발견! 그것 또한 새로움이었다. 정률조의 고대시가는 들을 수록 맛깔 난다. 삼국유사에는 향가 14편이 수록되어 있다. 서동요, 헌화가, 공덕가, 처용가, 모죽지랑가, 안민가, 찬기파랑가, 천수대비가, 도솔가, 제망매가 등등... 향가는 신라에서 성행했던 시가로서 우리나라 고유의 시가 양식이며, 문학사적으로도 가치가 높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분명히 공부했던 것 같은데, 왜이리 새로운지 모르겠다. 아둔한 머리를 탓하면서도, 향가의 멋스러움과 리듬, 운율이 책을 읽는 맛을 더해 주었다. 향가 중에서, 수로부인에게 바치는 헌화가가 계속 마음에 맴돈다. 
 

헌화가獻花歌


자줏빛 바위가에

잡은 손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꺽어 바치오리라.


IP *.30.2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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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10.05.16 06:51:44 *.160.33.180

책을 읽는 즐거움이 느껴진다.  저자에 대한  자료도 성의있다.  언제 그 절들을 한 번 휘 둘러 다녀오겠느냐 ?    다만 텍스트는 노래가 아니니, 이야기의 고리를 알 수 있도록 정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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