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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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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3일 04시 56분 등록

오늘은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분노로 가득 차있던 시간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당시 무엇부터 해야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았어요. 어떤 것이 먼저일지, 진정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았습니다. 그저 막막하기만 했어요. 답답하고, 속터지는 시간들이었죠. 그 시간들 안에 하루가 생각이 나네요.

아는 동생과 술을 진탕 마시고 돌아온 날이었습니다. 알 수 없는 짜증이 솟구치는 날이었죠. 무엇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듯한 그런 날이었습니다. 취하고 싶은데 기억이 나는 그런 어정쩡한 날이었죠. 미친 듯이 신나고 싶은데 자꾸만 신이 나지 않는 상황이 짜증이 나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행거에 걸려있던 옷들을 전부 다 집어던졌습니다. 옷이 미워서는 아니었어요. 가장 집어던지기 쉬운 상대가 그들이었을 뿐이죠. 그때 제가 했던 말은 “나 보고 어쩌라고.” 였습니다. 그때 저는 알 수 없는 분노감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모두가 가지는 그 하나를 제가 가질 수 없는 아픔에 제 정신이 아니었지요. 모든 상황이 짜증이 났습니다. 나는 왜 이러고 있는지.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려는지. 평생을 그저 그렇게 밖에 살 수없을 거라는 생각이 저를 미치도록 힘들게 만드는 날이었지요. 내가 변하게 만들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크고 거대하게 느껴지고, 그 앞에서 운명을 바꿀 수 없는 자신이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분풀이 하는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랄만큼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저 쳇바퀴를 돌 듯이 아무것도 변하게 할 수 없는, 이 상황을 타개할 힘이 없는 내 자신이 너무나 무력하고 또 무력해서 누군가에게라도 상처를 주고 제 자신에게라도 상처를 입혀야만 될 것 같은 날이었지요. 그래도 내일이 왔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상황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더 짜증이 나는 것은 제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사를 했어요. 그리고 별다른 생각없이 아이를 일찍 재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며칠은 아이를 재우고 일어나서 그냥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 아이가 자는 시간에 잠이 오더라구요. 그래서 며칠은 그렇게 아이와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대략 9시 쯤이었지요. 며칠 9시에 잠이 들었더니 어느 날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되더라구요. 일찍 일어나서 잠이 안 오니 컴퓨터를 켰습니다. 티비를 켤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컴퓨터 뿐이었거든요. 캄퓨터를 했어요. 미드를 보기 시작했지요. 원래 미드를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했거든요. 예전 살던 동네에서는 그 영화관의 상위 10%안에 드는 VIP고객 이었죠. 아이를 낳고 나서보니 1년에 영화를 2편인가 3편인가를 봤더라구요. 티비로 본 것 까지 해봐두요. 아침 시간이 조금씩 즐거워 지기 시작했습니다.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해도 미드를 보는 시간이 즐거워졌어요. 그렇게 새벽에 일어나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즐거워젔습니다. 새벽에 눈이 떠지면 빨리 가서 미드를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벌떡 일어나곤 했어요. 제가 즐거운 일이 생기니 생활에서도 부드러움이 늘어나더군요. 그 즐거운 시간 한 시간 두 시간으로 인해서 저의 인내심이 늘어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시간을 위해서 잠이 들곤 했어요. 집안에서 오로지 저만 깨어서 아직은 깜깜한 새벽에 그 다음 내용이 무엇인지를 기대하면서 컴퓨터를 켜는 그 시간을요. 그러다가 책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조금은 더 생산적인 일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누구나 그렇듯이 책을 집어 들었어요. 베스트셀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던 제가 초등학교 때 이후 처음으로 읽고 싶은 책이 생기고 관심이 늘어났지요. 새벽에 나만의 시간을 만든지 1년 만에 저는 책 한 권을 만났고, 그렇게 변경연을 알게 되고, 단군을 알게 되고, 연구원 동기를 만나고 연구원이 되었습니다.

제가 원래 아침형인간이냐구요? 아니요. 저는 원래 새벽까지 놀다가 집에 와서 쪽잠자고 학교로 출근하거나 아니면 오후까지 늘어지게 잠을 선물하는 인간이었답니다. 시험공부를 하겠다며 밤 늦게까지 친구와 별로 하는 일 없이 보내가다 다급하게 새벽에 일어나서는 책을 펴 놓고 조는 올빼미형 인간이었지요. 밤에 피는 분꽃 같은 그런 인간형이요. 하지만 우연히 새벽에 일어나게 되었고,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불가피하게 소소한 제가 좋아하는 일거리를 찾게 된 것이었지요. 그리고 그것이 예기치 못하게 이 길로 저를 이끌어 주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그 길로요. 전혀 방향성을 잡을 수 없던 인생에 방향성을 알게 해 주었죠. 그 시간들이 원하는 길로 저를 이끌어 주었지요. 정말 우연이라고 얘기할 수 밖에 없는 기회들이 모여서요.

자기만의 시간이 꼭 거대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리고 뭐 제가 그리 대단한 일을 했다는, 하고 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제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이러한 일들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 시간을 가진 이후 제가 많이 여유로워지더라는 사실입니다. 조금은 실망스럽고 짜증나는 일이 있더라도 하루에 몇 시간 안 되는 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다른 일에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보이는 듯한 그런 기분아시죠? 마치 그런 기분이었어요. 사랑이 안겨주는 즐거움으로 인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듯이 제가 좋아하는 시간을 선물 받음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아름다워 보이고 그 안에서 여유가 생겨나게 되었지요. 마치 꿀단지를 집안에 감춰준 아이가 그 꿀단지를 생각하며 하루종일 배시시 거리다가 학교가 끝나면 한 달음에 집으로 달려오는 것처럼 말이예요. 나머지 것들은 그 시간들이 가져다 준 부차적인 것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저는 지금 작가와 강연자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가야할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것이 제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것을 선물한 것은 바로 아침에 일어나서 미드를 보기 시작했던 그 시간들입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혼자 아침에 일어나서 무언가를 할 거라면 차라리 생산적인 일에 매달리라고. 하지만 저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아침이라는 시간은 잠을 이겨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미 일어난 것으로 승자이니 우리는 그 시간을 우리가 좋아하는 일들로 보상해 주어도 괜찮습니다. 누군가는 일어나서 영어를 공부할 수도 있겠지요. 전공 공부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직장에 대한 공부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작은 남들이, 자신이 보기에 하찮은 그저 즐거움만이 가득한 일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말이예요, 그렇지 않으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의무가 되고 고역이 되거든요. 특히나 저와 같은 올빼미형 인간에게는요. 아, 그렇다고 제가 반드시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그 시간이 다른 이들에게 방해 받지 않기에는 가장 편안한 시간이고 제가 그 시간을 활용했기 때문에 그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뿐입니다. 그 시간에는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는 시간이기에 자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에 좋았을 뿐이지만 뭐, 다른 시간이라고 상관없어요. 혼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꽉 채울 수 있는 시간이기만 하면 되는 거죠. 예를 들어 점심시간 같은 것들이요. 혹은 늦은 밤 시간이 될 수도 있겠지요.

자신의 생활에 자신을 위한 선물을 만들어 주고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 자신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주세요. 그 시간으로 인해 당신 자신에게 여유가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답니다. 면역력이 커지는 자신을 느낄 수 있답니다. 아무도 당신을 바라보지 않는 공간에 아무도 당신을 뭐라하지 않는 시간에 당신을 위한 공간과 시간을 선물하세요. 모든 것을 놓고 쉬세요. 온라인 게임을 좋아하시나요? 새벽에 사냥터가 얼마나 한산한지 아세요? 열랩하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즐기세요. 사냥터는 당신의 것이 될 거예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신다구요? 보고 감동받으세요. 혼자보는 영화나 드라마는 엄청난 설렘을 가져다 준답니다. 그 화면에 몰입하게 만들어 주거든요. 주인공이 되어서 대사를 읊어보세요. 당신만의 시간이잖아요.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타인들과 함께 합니다. 그것이 동료들일 수도 있고, 친구들일수도 있고, 가족들일 수도 있지요. 그 안에서 우리는 역할 놀이를 철저하게 수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자신에게 자신만의 시간의 선물하는 것이지요.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자신이 즐거운 일에만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말이예요. 우린 때론 웃기지 않은 상황에서도 웃음을 짓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에는 그럴 일이 없답니다. 웃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즐겁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요. 그런 시간들을 선물하세요. 오로지 제 자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들을 선물하세요. 시작은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우선 나에게 그 시간을 선물했다는 사실만으로 당신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무언가 거창한 일을 꿈꾸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 시간은 남들에게 무언가를 한다고 자랑하려 만들어 내는 시간이 아니예요. 언제나 충실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 내고 있는 자신에게 돌려주는 시간인 거지요. 내 마음에 가장 흡족한 한 시간을 만들어 보세요.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나만을 생각하고 이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세요. 당신은 그 시간을 선물받을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는 사람입니다.

의심이 가시나요? 며칠만 해보세요. 단, 조건은 당신의 시간에 하는 일이 당신에게 즐거운 일이어야 해요. 이걸 지키지 않으면 실패에도 제 탓은 말아주세요. 준비가 되셨나요? 혼자만의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시나요? 그럼, 그 시간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자, 이제 당신은 무엇을 하든 자유랍니다. 지금은 당신을 위한 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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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10.03 10:25:05 *.163.164.176
루미가 자신과 많은 대화를 하고 있구나... 그 소리가 아주 듣기 좋다.

평소 혼자 있을 때
자신과 대화하는 습관이 없는 사람은
사람들을 만나서 혼자 대화한다.

그런데...루미야 마지막 3줄은 없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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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10.04 04:53:03 *.23.188.173
역시 할까말까 생각이 들 때는 그냥 해버리라고 하더니.....
그 마지막줄을 뺄가 말까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뺐어야 했어요....
넣을까 말까가 아니라 뺄까 말까로 고민했거든요...
지금은 닥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써보고 있어요
마구 질러대면서 뭔가 하나만 걸려라하는 느낌이지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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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10.03 10:26:44 *.38.222.35
와우...내가 단군이 실패한 이유를 알겠군... ㅋㅋㅋㅋㅋㅋ..

일어난 것 자체가 이미 성공이다.. 그래, 이런 마인드가 필요했던 것인데!!!!

그런 마인드가 있긴 했으나, 다시 잠에 빠져들곤했다는.. 결국 포기.. 사실 포기하기전에 즐거운 일을 했어야했어.
그것이 아쉽구만. 왠지 이 글을 읽으니 단군이를 다시 시작하고 싶어지는구나.. 새벽의 공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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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10.04 04:56:01 *.23.188.173
한동안 과제 책이 두꺼웠잖아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는 걸로는 시간이 부족했지
결국 밤에 늦게까지 과제하고 책을 읽고 그랬어
그 결과 잠꾸러기 엄마가 되었어~ㅋㅋㅋㅋㅋ
이제 다시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처음 시작이 떠오르더라구
조금 졸린 눈을 하고 있지만 괜찮다~ㅋ
근데 요즘은 일찍 일어나면 조금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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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2011.10.03 11:52:18 *.111.51.110
루미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움직이고 싶어지고,
나도 루미처럼 하고싶다는 욕망을 건드리는구나.
글로 사람을 움직이는 경지!
좋구나.
오늘은 월요일! 나를 위한 시간을 선물해야쥐!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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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10.04 04:57:15 *.23.188.173
아~ 누군가가 이런 움직임의 반응을 보여주다니
역시 오빠의 리액션이 최고예요~ㅋㅋ
멋져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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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1.10.04 09:51:43 *.8.230.133
가만히 앉아 있으면 도란도란 소박한 삶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차분하게 듣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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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2011.10.04 14:03:16 *.143.156.74
그런데 루미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움직이다보면 오후에 너무 졸려.
그럼 한숨 자도 되는거야?
그런데 한숨 자고 나면 저녁에 잠이 안 와.
그러다보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게 되네.
그럼 낮잠을 자면 안되는거지?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오후에 졸리는거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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