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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7일 15시 53분 등록
너 무엇하러 여기 왔느냐.JPG

너 무엇 하러 여기 왔느냐?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또다시.

어릴 적에는 한 살이라도 더먹고 싶어 떡국을 일부러 몇 그릇씩이나 먹었었는데 이제는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겁이 나기 시작 합니다.

더구나 올해처럼 아무 이루어놓은 성과 없이 그냥 지나간 해를 바라보노라면 아쉽다는 생각보단 무엇을 하며 살았냐는 자책감이 먼저 앞섭니다.

물론 누구의 말대로 무탈(無頉) 없이 지낸 것이 가장 좋은 일이 아니었느냐는 질문이 돌아오면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지만.

 

너 무엇 하러 여기 왔느냐?

배낭 하나 짊어지고 길을 나섭니다. 어느 종교에서는 이것을 피정(避靜)이라고 하지요.

낯선 곳에 도착해 짐을 풀고 들어가니 찬 기운이 휑하게 느껴지는 방이 냉골입니다.

뜨거운 물은 나오지도 않고.

어떡해야 하나.

호기 있게 멀리 이곳까지 내려온 처음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짜증이 납니다.

이게 뭐야. 그래도 그렇지.

수도자와 함께 기도 시간에 참석을 하여서도 궁시렁은 이어집니다.

괜히 온 게 아닌가.

내가 무어 그리 뭘 찾겠다고 먼 이곳까지 왔을까.

그냥 편하게 집에 쉬면서 있으면 될 걸.

 

너 무엇 하러 여기 왔느냐?

이곳까지 와서도 속세의 성공을 지향하는 짐을 잔뜩 들고 왔습니다.

노트북을 켭니다. 이루지 못한 무언가를 탐색하고 집착에 무언가를 타이핑을 칩니다.

뿌듯해야 할 텐데 오만가지 생각이 찾아옵니다.

기도시간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추위도 그렇지만 간밤 좁다란 나무 침대 잠자리가 불편했던지 졸음은 계속 젖어들고.

뭐 하러 여기 왔을까요.

 

너 무엇 하러 여기 왔느냐?

외부인과의 차단을 위해 자그마한 결계(結界)가 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계가 야릇합니다.

상징적인 의미겠지만 맘만 먹으면 누구나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할 수 있습니다.

웃기는 현상.

저쪽은 일생을 신을 위해 자신의 전존재를 바치러 들어온 존재이고,

이쪽은 속세의 성공을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번민에 시달리는 중생입니다.

내 마음에도 수많은 결계가 있습니다.

넘어오지 마. 내꺼야. 넘어오면 죽는다. 내가 가진 것을 주지 않을 거야.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 짝꿍과 말다툼이 있을 때면 나무 책상위에 금을 그어놓고 이런 놀이를 하곤 했었지요.

나이가 들어도 철이 들지 않는 것은 여전 합니다.

누군가 이야기 했었지요. 너는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살지 못할 거라고.

이런 나 자신이 무척이나 답답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선을 그어놓고 한계를 지어놓고 그 선대로 움직이기를 바라며, 그 나만의 잣대를 타인에게 세상에게 요구 합니다.

덕분에 주위의 분들은 나로 인해 얼마나 불편하고 어려울까요.

그럼에도 나는 내생각대로 된 것에 대해 희희덕 거리고 있으니.

나도 자유롭고 싶습니다.

생각에서

해야 하다는 당위성에서

이것이 맞는다는 고집스러움에서.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이 많은 나 자신 그것도 나라는 것을.

 

너 무엇 하러 여기 왔느냐?

새벽녘 어지러운 꿈에 시달리다가 맞추어놓은 알람 소리에 겨우 아침에 눈을 떴습니다.

한심합니다.

이곳까지 와서도 이런 어린애 같은 꿈을 꾸다니.

이루어지지 않는 생각 꼬투리의 상념을 조급하게 계속 잡고 있다 보니 이런 꿈을 꾼 것 같습니다.

무엇에 쫓기고 있을까요.

무얼 자꾸 이루려고 할까요.

머리도 어지럽습니다.

쓴웃음이 나옵니다.

나는 여기 무엇 하러 왔을까요.

 

너 무엇 하러 여기 왔느냐?

나는 참 생각이 많습니다.

하나의 생각을 잡고 밀고 나가기에도 벅찬 시간에.

그래서 허탈한 마음에 그냥 그분을 멍하니 쳐다보았습니다.

그냥 보았습니다.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것이 아닌

마음속 하소연을 호소하는 것이 아닌

원망을 털어놓는 것이 아닌

짧은 시간이지만

푹신한 소파가 아닌 불편하고 딱딱한 의자 위에 앉아 그를 보았습니다.

그냥 보았습니다.

아주 조금이지만 하나의 느낌이 슬며시 어깨위에 내려옵니다.

그냥 본다는 것.

그냥 세상을 본다는 것.

그냥 당신을 본다는 것.

판단 없이 애써 바람 없이 그냥 그곳을 바라본다는 것.

내가 바라는

내가 원하는 결과가 오지 않음에도

그냥 바라본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만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너 무엇 하러 여기 왔느냐?

떠나온 곳으로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아무것도 답을 받지 못한 현실 속으로 다시 들어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하지만,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나의 행위가 우선 필요치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상념의 무거움을 아셨던지 그분께서 한 말씀을 다른 이를 통해서 주십니다.

밝은 앞날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찾게 되면 내가 너희를 만나주리라.

애처로워서 천막을 다시 지어줄 생각이다.

물론 나만을 위해 주신 말씀은 아니지만 장난꾸러기 어린애마냥 금세 마음이 열립니다.

너 무엇 하러 여기 왔느냐?

다시 그 무엇을 위해 일어나야할 시간입니다.

다시 그 무엇을 위해 걸어 가야할 시간입니다.

 

시작한다는 것.

바라본다는 것.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살기를 다시금 희망해 봅니다.

내 마음의 짐이

내 현실의 짐이

내 어깨의 짐이

덜어진 것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대로이지만

그 짐을 짊어지기 위해 다시 일어섭니다.

IP *.130.10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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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12.18 04:42:05 *.23.188.173
단상은 언제나 시 같아요.
시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으로써...ㅋㅋㅋ
아~ 그래서 쉽고도 쉬운 아줌마가 마음에 들었던 건가?
송년회에 안오셨지요?????
흠... 기억하고 있어요!!!!!!
언제 막걸리 한잔 해요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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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11.12.20 07:31:50 *.128.229.174

너는 늘 쓰는구나.   보나도 늘 여행의 기록을 남기고. 
구슬처럼 모아질 것이다.  모아지면 좋은 것들을 골라 목걸이를 만들 수 있다. 
재능은 성실을 당할 수 없고, 성실은  평범한 재능을 비범하게 계발하게한다.
그렇게 하여 우리 모두 자라게 되는 것이다.   너는 좋은 힘을 가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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