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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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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19일 19시 27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저자에 대한 나름대로의 견해를 쓰고자 한다면 최소 두세 권의 저서를 읽어보아야 할 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가 <엔트로피>, <노동의 종말>과 같은 영향력 있는 책의 저자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한창 배우고 익혔어야 했을 시기에 게으름을 피웠던 것에 대해 다시금 반성하게 해주었다.
제레미 리프킨은 주로 현대 사회의 모습을 진단하고 머지 않은 미래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에 탁월한 재주가 있는 듯 했다. 특히 그의 넓고 깊이 있는 시각은 많은 인용자료에서 비롯된다. 인용자료들 중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신문기사나 학술지에 실린 에세이에서의 인용이 매우 많았다는 점이다. 사회의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사례들을 모으고 그것들을 관통하는 어떤 움직임을 꿰뚫어보는 시각이 남다르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라 생각된다. 또한 그러한 관찰력의 이면에 인간이 인간답기를 바라는 인문학자적 따스함이 숨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2. 내 안에서 재창조된 생각들

우스운 질문을 하나 해보자. <소유>라는 것과 <접속>이라는 것 중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 것은 어떤 것인가? 여기서 소유란 것은 당신이 직접 돈을 주고 구입해서 그것을 다시 되팔기 전까지는 내 것임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을 말하며, 접속이란 것은 어떤 권리에 대한 사용 요금을 내고 정해진 기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예컨데, 들고 다니면서 사용할 수 있는 하드디스크는 소유지만, 인터넷에 올려놓고 쓰는 웹하드는 접속이다. 소유는 배타적인 것이라 나 아닌 다른 사람은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지만 소유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고 비용도 만만찮다. 접속은 완전히 내 것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고, 난 그저 이용권리만 가질 뿐 책임질 일은 없고 게다가 저렴하다. 자, 다시 한번 물어보겠다. 당신은 소유가 끌리는가 접속이 끌리는가?

리프킨은 앞으로 다가올, 아니 이미 상당한 수위로 다가온 접속의 시대에 대해 여러 가지 화두를 던져 주었다. 근대 이후 빠르게 인간 사회를 장악했던 소유의 개념은 이제 올 때보다 더 빠르게 퇴화되어 버릴 지도 모른다. 접속의 시대는 기본적인 최저속도가 보통 이상이기 때문에 이 변화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에서 리프킨은 접속의 시대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비교적 가치 중립적으로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연하고 가벼워지는 경제의 장점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고 거대 자본의 공급 독점에 대해서도 경고 하고 있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접속의 시대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기가 어려웠다. 아니, 어찌보면 가치 판단 자체가 무의미 할 지도 모른다. 누가 반대를 하든, 그것이 옳든 그르든 상관없이, 이미 접속의 시대로의 전이가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그 전이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접속의 시대에 일어날 긍정적인 변화와 그것이 만들어낼 어두운 그림자들에 동시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소유의 시대 조차 제대로 겪지 못한 사회는 어쩌란 말인가?
분명한 것은 접속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쉽게 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가벼움이 썩 기분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소유의 시대에 길들여져 있어서인지도 모르지만 관계의 얇음은 왠지 인간하고는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내가 필요하면 사정없이 달려 들겠지만 내가 어려우면 그들이 달려 올 것인가? 접속은 도구 이상으로 활용되지 말았으면 싶다


3. 내가 저자라면 (저자의 관점 속으로)

‘내가 저자라면’ 이라는 역할 대입을 하기가 쉽지 않은 책이다. 영역도 낯설거니와 재구성에 대한 엄두가 쉽게 나지 않는다. 그저 예견할 수 있다는 능력과 뚫어 볼 수 있다는 시각이 부러울 뿐이다.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 자학하고 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뭔가에 눌린 모양이다.
역자에 대해 한마디 하면, 번역의 대상이 되는 핵심 단어들은 영어로 병기하는 친절을 보여줬으면 좋았겠다. 번역에서 오는 딱딱함을 없애려고 때때로 의역을 해준 센스는 좋으나 그 절묘한 단어선택으로 인해 과연 원어는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수시로 일어났던 것도 사실이다.


4. 나에게 들어온 글들

(1)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
<10>
이 세상은 상품을 교환하고 남부럽지 않을 만큼 재산을 누려보겠다는 원초적인 충동에 의해서 굴러간다. 이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가진 생각이다.

<11>
시장은 네트워크에게 자리를 내주며 소유는 접속으로 바뀌는 추세다…근대 경제의 중요한 특성이었던 판매자와 구매자의 재산 교환은 네트워크 관계로 이루어지는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단기 접속으로 바뀐다…기업은 물적 자본을 자산이 아닌 단순한 경상비로 취급하게 된다. 가급적 소유하지 말고 빌리자는 인식이 뿌리내린다. 반면 지적 자본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선망의 대상이다. 새로운 경제에서는 물건이 아니라 개념,아이디어,이미지가 실리를 가져온다. 부는 이제 물적 자본에서 나오지 않는다. 부는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에서 나온다.

<14>
산업 생산 시대가 가고 문화 생산 시대가 오고 있다…산업 생산에서 문화 생산으로 탈바꿈하면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노동의식이 유희의식으로 바뀌는 것이다…우리는 경제학자들이 체험 경제라고 부르는 세계로 넘어가고 있다. 개개인의 삶은 사실상 하나의 시장이 되어버린다. 기업가는 이 새로운 개념을 고객의 평생가치(lifetime value)라고 부른다. 한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모든 순간을 온갖 형식으로 상품화할 경우 그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이론적으로 다지는 값이다.

<18>
가족 관계의 울타리를 벗어난 사실상의 모든 인간 활동이 돈으로 거래되는 세계를 한번 상상해 보라. 그런 세계에서는 믿음, 공감, 연대의 감정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상호 의무와 기대가 회원, 등록, 입회, 수임료, 요금에 기반을 둔 계약 관계로 바뀐다.

<19>
다가올 시대의 가장 큰 화두는 정부와 문화 영역이 크게 축소되고 상업 영역만이 인간 생활의 으뜸가는 매개 고리로서 남아있는 상황에서 과연 문명이 살아남겠느냐 하는 것이다.

<24>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의 격차도 크지만 연결된 사람과 연결되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더욱 크다. 세계는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 두개의 뚜렷이 구별되는 문명으로 급속히 갈라지고 있다.

(2) 시장이 네트워크에 밀리는 날
<30>
인터넷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인터넷을 운영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만인의 컴퓨터를 연결한 것, 그것이 인터넷이다.

<37>
앨빈토플러에 따르면, 규모의 경제가 속도의 경제로 바뀌고 있다. 시장에 먼저 제품을 내놓는 기업만이 가격을 높게 책정하여 이익을 챙길 수 있다. 경쟁자들보다 몇 달 앞서느냐 뒤지느냐에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 시장에 빨리 나오는 제품의 수명은 그만큼 길어진다. 제품이 쓸모 없어지기 전에 투자비를 건지고 이익까지 거두려면 연구 개발 기간을 단축하여 제품이 시장에 깔려 있는 기간을 어떻게든 연장시켜야 한다.
제품 주기가 짧아 졌다는 것은 소비자의 주의 집중 기간이 그만큼 짧아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눈 깜빡할 사이에 수천가지의 신제품이 시장에 나왔다 사라지는 현실에서 소비자의 인내심이 그만큼 약해지고 주의 집중 기간이 짧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39>
위계적 구조는 시장이 견고하고 안정된 시기에는 효력을 발휘하지만 요동하는 시기에는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급변하는 시장 여건에 적응하기에는 관료적 절차가 너무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네트워크는 훨씬 유연해서 새로운 글로벌 경제의 변화무쌍한 성격에 기민하게 적응할 수 있다. 문제를 팀워크로 해결하면서 외부 환경 변화에 재빨리 대응할 수도 있다.

<44>
갈수록 경쟁이 심해지고 제품과 서비스가 다양해지며 제품 수명이 짧아지는 상황에서 대기업은 위에서 자금과 배급망만 장악하고 유형자산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부담은 소기업에게 떠넘긴다.

<47>
음반업, 예술계, 텔레비전, 라디오를 아우르는 문화 산업은 물리적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경험을 상품화하고 포장하고 마케팅한다. 문화 산업이 재화로 쌓아두고 거래하는 것은, 현실을 모방한 세계와 의식을 고양시키는 세계로 잠시 접속할 수 있는 권리이다. 물건과 서비스를 상품화하던 것에서 경험 자체를 상품화하는 단계로 변모하는 글로벌 경제에서 이것은 더없이 이상적인 모델이다.

(3) 무게 없는 경제
<50>
부서와 부서 사이에 칸막이를 두었던 산업시대의 업무공간은 회사 조직의 위계적 형태처럼 설 자리를 잃었다. 네트워크 환경에서 개인적 공간은 사회적 공간으로 바뀐다. 함께 일하면서 끊임없이 정보,지식,식견을 공유해야 하는 프로젝트 팀에는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수 있는 확트인 공간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사무환경에서는 공간을 개인적으로 소유하면서 타인을 배제하는, 무조건 소유하고 보겠다는 발상은 금물이다. 접속의 시대에는 동료에게 거리낌없이 바로 다가갈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하다.

<55>
부동산이 일부업종에는 짐이 되고 줄이거나 없애야할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리적 시장에 기반을 둔 시대에서 사이버스페이스의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시대로 변하는 추세의 중요한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58>
돈의 탈물질화가 진행되면서 저축은 감소하고 개인 부채는 증가한다.

<62>
중요한 것은 미국인이-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소비자도 점점 그런 추세로 나아가고 있지만-돈을 버는 족족 써버리고 모아놓은 돈 없이 살아가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67>
기업들이 구입보다 리스를 선호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장 상황의 변화에, 그리고 기존의 설비가 쓸모없어졌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유를 하지 않고 리스 만기가 되면 새로운 설비로 교체하기 때문에 늘 첨단 설비를 쓸 수 있다.”

<74>
무명의 공급업자들에게 제품의 생산을 맡기는 이런 새로운 네트워크 방식의 사업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75>
이런 아웃 소싱 계약은 그러나 불순한 의도에서 출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웃 소싱은 경영진이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즐겨쓰는 수단이 되었다. 노조의 힘이 강하지 않은 기업이나 노조가 아예 없는 기업에 업무를 넘김으로써 회사는 골치 아픈 단체 협상을 피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에서 노조의 힘이 줄어드는 배경에는 아웃소싱이 있다.

<81>
회계시스템은 현실을 잘 포착하지 못한다…정보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산업-금융, 오락, 통신, 비즈니스 서비스, 교육-이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새 25퍼센트를 넘어섰다. 이런 기업들의 가치는 상당액이 무형 자산이므로 회계상으로는 정확히 나타내기 어렵다.

<82>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업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다…네트워크 경제를 염두에 두고 개발된 새로운 회계 모델에서 물리적 자본은 회계 원장의 자산 항목으로부터 비용 항목으로 이동 하여 경상비로 처리될 것이고, 무형 자본은 자산 항목으로 이동할 것이다.

<85>
상업권에서 아이디어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에서 불길한 생각도 든다. 인간의 생각이 그렇게 중요한 상품으로 거래될 수 있다면, 중요하지만 상업성이 없는 사유는 어떻게 되는가? 자기 인생의 길잡이가 될 만한 생각을 상업의 영역에서 가져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문명에서,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관점, 의견, 관념, 개념이 존립할 수 있는 여지가 과연 있을까? 온갖 유형의 아이디어가 거대 기업들이 관리하는 지적 재산권의 형태로 얽히고 설켜 있는 사회에서 우리의 집단 무의식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미래의 사회적 담론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4) 지적 재산의 독점
<86>
네트워크 경제에서도 재산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교환빈도는 줄어든다고 앞에서 말했다. 판매자와 구매자는 공급자와 사용자로 바뀐다. 판매자와 구매자의 협상에 의한 재산의 양도행위는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구입해서 장기적으로 소유하는 것보다는 잠시 접속을 즐기는 것이 더 유행한다. 접속을 통해 유형, 무형의 자산을 공유하는 주체들의 관계를 상품화하는 것, 이것이 곧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상업 활동의 핵심이다.

<89>
맥도널드만 하더라도 햄버거를 파는 것보다 햄버거 매장을 파는 것이 훨씬 짭짤한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상품의 대량 생산이 아니라 개념의 대량 생산 시대가 열린 것이다.

<92>
패스트 푸드 체인점의 소유주들은 프티 부르주아 즉 소규모 자영업자와 매니저 사이의 모순된 지위에 있다. 그들은 독립 자영 생산자로서의 자격요선을 모두 갖고 있지만 그보다는 거대 자본주의 기업의 일개직원처럼 되어버렸다…체인 가맹점을 사업체를 사들인 것이 아니라 공급자와 미리 정한 조건에 따라 사업체에 단기간 접속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데 불과하다. 이 관계는 판매자-구매자가 아니라 공급자-사용자의 관계이다. 체인점 계약의 핵심은 접속의 합의이지 소유권의 양도가 아니다. 이것은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이다.

<100>
업계에서는 수억 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생물이 진화하면서 공동으로 축적해 온 유전자 암호의 상당수가 앞으로 25년 안에 분리되고 규명되어 지적 재산권의 형태로 포장된 뒤 소수의 거대 다국적 생명과학 기업에 의해 장악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109>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본 적이 없는 위험천만한 권력의 집중 양상을 드러내는 독점, 곧 기본적 정보에 대한 독점을 확실히 규제하기 위해서 반독점법을 활성화시키자

(5) 서비스 세상
<120>
로크의 관심사가 인간이 어떻게 재산을 만드는지를 규명하는데 있었다면 스코틀랜드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재산이 어떻게 시장에서 교환되는지에 더 관심이 있었다.

<126>
서비스는 물질이 아니면 손으로 만질 수 없다. 그것은 수행되는 것이지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는 실행되는 순간에만 존재한다. 보유하고 축적하고 상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29>
새로운 제조업의 풍토에서 중시되는 것은 서비스와 업그레이드이다…제품은 고객의 사업장이나 집에 마련해 둔 일종의 교두보이다. 이런 교두보를 발판으로 기업은 고객과 장기적 서비스 관계에 들어간다.

<133>
사람들이 이 물건을 정말로 사는 이유가 뭘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 물건 자체가 필요한 건가 아니면 그 물건의 기능이 필요한 건가?

<142>
결국 문제는 여러 산업분야에서 제품의 생산비가 제로에 육박하여 이윤을 낼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기업이 돈을 벌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생산비가 거의 안 드는 제품에 어떤 식으로 가격을 매길 것인가? 답은 제품을 공짜로 주고 제품에 수반되는 복잡한 서비스의 제공을 통해 고객으로부터 돈을 받아낸다는 것이다.

<143>
장소와 물건을 상품화하고 그것을 시장에서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는 서로의 시간과 식견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고 필요한 것을 빌린다. 그것은 우리가 한시적으로 구입하는 활동이나 사건이 된다. 자본주의는 물질에서 출발했지만 물질성을 벗어 던지고 점점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개별적 사건으로 나아가고 있다.

(6) 인간관계의 상품화
<146>
한 종류의 제품을 최대한 많은 고객에게 팔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한명의 고객에게 이런저런 다양한 제품을 평생에 걸쳐서 최대한 많이 팔려고 노력한다.

<150>
인터넷과 사이버스페이스는 개별 고객에게 쥐꼬리 만한 감시 능력과 쌍방향 소통 능력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고객이 회사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아는 지식보다는 회사가 고객에 대해서 알고 있는 지식이 훨씬 많다. 새로운 온라인 시장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쪽은 고객이 아니라 기업이다.

<157>
마케팅의 진화는 기업과 고객이 1대1로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준 새로운 정보와 통신 기술에도 힘입은 바 크지만 소비자의 수요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167>
우리는 상업적 영역 안에서 서로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온갖 활동, 시간과 노동을 절약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을 만들었지만 이제까지의 역사에서 인간이 지금처럼 시간에 쫓기며 산 적도 없었다. 이것은 시간과 노동을 절약하는 서비스가 급증하면서 우리 주위에서 상품화되는 활동의 다양성과 속도만 늘어났기 때문이다.

(7) 삶으로의 접속
<182>
공동체 전체가 상업적 영역으로 변질 된다는 것,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이제 공동체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시장의 가치관이 미국인의 가정 생활 안으로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는지를 시사한다.

<185>
어느 모로 보나 재고가 가장 부족한 상품은 시간이다…맞벌이를 하거나 아이를 혼자서 키우는 가정은 빠듯한 예산과 시간으로 전통적 방식으로 살아가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따라서 들이는 시간에 비해 훨씬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공정, 제품, 서비스를 시급히 제공할 필요가 있다. 시간을 절약하거나 아예 들일 필요가 없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192>
소유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소유에 수반되는 집착으로부터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소유가 접속으로 바뀌면 소유에 수반되는 개인적 책임감도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소유는 임대 문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강한 의무감과 책임감을 낳는다.

<193>
사람의 인격은 소유되는 대상 안에 늘 나타나기 대문에 재산은 인격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194>
재산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개인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런 재산을 소유하지 못하고 접속만 하게 될 때 우리는 타인에게 훨씬 더 의존하게 된다. 우리가 자꾸 남들과 연결되고 상호의존적이 되면 우리의 자기 충족감은 약화되고 외부의 압력에 쉽게 허물어지는 것일까?

<197>
장소의 비중을 서서히 감소시키고 관계와 경험의 가치를 부각시킴으로써 인간의 의제를 한 차원 높은 지평으로 올려놓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이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는 접속의 시대에는 우리 존재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물리적, 생물학적 토대와의 깊은 교감을 잃어버리고 방향감각을 상실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하는 이들도 있다.

(8) 자본주의의 새로운 문화
<202>
우리는 디지털 통신 기술과 문화 상업주의의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 둘은 실제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강력한 쌍두마차이다.

<207>
다니엘 벨은 현대 문명을 분명히 구분되지만 서로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세가지 권역으로 나눈다. 그것은 경제, 정치, 문화이다. 경제 영역의 핵심적 원리는 자원 이용의 효율화라고 벨은 주장한다. 정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다. 문화 영역에서 제일로 치는 것은 자기 실현과 자기 고양이다.

<211>
한때는 시장이 추구하는 가치에 강력한 반기를 들었던 예술이 이제는 시장이 내세우는 가치의 가장 중요한 전달자, 가장 충실한 하수인이 되었다.

<213>
체험 산업은 심장 박동을 바르게 만드는 모든 내용을 거래하는 것

<241>
경제는 거대한 공장에서 거대한 극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242>
연극의 원리를 기업에 적용하는 것은 캐스팅에서 시작된다. 기업 안에서 특정한 역할을 맡을 배우를 선정하는 과정이다. 파인과 길모어에 다르면 제작자는 사업자금을 대고 무대에 올릴 작품의 성격을 결정하는 사람들이다. 감독은 기본 구상을 현실성있는 각본으로 발전시키고 공연을 지휘하는 임무를 맡는다. 작가는 최종연기를 낳는 과정을 정의하는 임무를 맡는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종합품질관리,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히 솎아내는 업무 처리 재설계에 해당하는 일이다. 기술자는 무대를 꾸미고 소품을 준비하고 의상을 고르는 등 공연의 물질적 토대를 관장한다. 마지막으로 진행요원들은 공연이 차질없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무대 뒤에서 땀을 흘린다…사업의 성패는 고객의 머리에 감동적 드라마를 얼마나 많이 집어 넣느냐에 좌우된다.

<245>
노스웨스턴 대학 켈로그 경영 대학원과 컬럼비아 경영 대학원은 최고 경영자 과정에서 연기 원리를 가르치고 있다. 전문 배우와 감독이 나와서 기업 경영자들에게 연기를 통해 자기를 표현하는 기술을 가르치고 동료나 고객으로부터 원하는 반응을 얻어내기 위해 써먹을 수 있는 연출 기법에 익숙해 질 수 있도록 집중적인 역할극 훈련을 시킨다.

(9) 문화의 광맥을 찾아서
<252>
마케팅은 문화라는 공공재로부터 가치 있는 문화적 의미를 캐낸 다음 예술적 조작을 거쳐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상품화된 체험으로 변형시키는 수단이다.

<254>
새로운 마케팅 시대에는 ‘이미지가 제품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이미지를 표현’한다.

<261>
고도 자본주의의 본질은 단순한 제품의 생산도 아니고 서비스의 수행도 아니고 정보의 교환도 아니다. 그것은 정교한 문화 상품의 창조다.

<268>
이제 자본주의가 문화의 생산 단계로 이행하고 체험의 상품화가 진전되면서 새로운 엘리트 계급이 정치영역과 시민사회에서 공히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고 있다. 문화의 중재자로 불리는 이 새로운 계급의 실력은 지식과 창조성, 예술적 감수성과 기획력, 전문가적 식견과 마케팅 안목 같은 무형자산에서 발휘된다. 그들은 예술가와 지식인, 광고의 귀재와 홍보의 달인, 그리고 대중과 문화 상품을 체험이라는 거미줄로 결합시키기 위해 기업이 동원하는 스타와 유명연예인이다.

<273>
이 세상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아득히 먼 옛날부터 인류가 쌓아온 지적 성취와 살아있는 지식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웨이드 데이비스는 언어의 소멸이 급속이 진행되는 현실을 개탄한다.

(10) 탈근대
<277>
근대인이 가졌던 믿음 혹은 신념은 무엇일까? 세계는 인간이 알아낼 수 있고 인간 생활을 개선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불변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믿음이었다.

<279>
과학은 객관적 현실의 원리는 탐구하는 것, 기술은 객관적 현실의 결과를 이용하는 것이라면, 사유재산은 정복에서 얻은 전리품을 분배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283>
새로운 물리학은 존재와 운동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정지 상태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사물은 시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서만 존재하게 된다.

<286>
근대가 목적을 추구했다면 탈근대는 유희를 추구한다…
(근대의 핵심이 근면이라면 탈근대의 핵심은 유희다.)

<288>
탈근대 사회과학자도 인간의 행동을 통일적으로 설명하려는 근대의 노력은 계급론, 인종주의, 식민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만을 낳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탈근대 사회학은 다원주의와 이중성을 중시하고 인간의 경험을 구성하는 수없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너그럽게 수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누구나 열망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상적 사회체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타당성을 모두 갖는 수많은 문화적 실험이 있을 뿐이다…새로운 시대는 모호하고 다양하며, 재미와 유머를 추구하며, 어수선하고 너그럽다. 절충을 중요하게 여기며 권위를 우습게 여긴다.

<294>
서양역사에서 자아라는 개념은 오래전부터 서서히 발전해 왔지만 유독 부르주아지는 이 자아에 거의 강박관념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다…모든 사회관계가 사유재산을 중심으로 엮였던 시대에 부르주아지는 사유재산의 이상을 찬미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갔다. 그들은 재산으로 자신을 에워쌌고 내것과 네것을 구분하는 모든 형태의 경계선을 만들었다. 소유라는 개념은 심지어 그들의 의식 안으로 철저히 내면화 되었다.

<297>
현대 마케팅과 매력 예찬론이 손을 잡고 새로운 인간을 창조했다. 이 새로운 인간에게 자기 충족은 자기 제어 못지않게 중요했다. 양식이 매력으로 바뀌는 기나긴 여정에서 사유재산은 여전히 사회에서 가장 으뜸가는 지위를 차지했지만 강조점은 서서히 생산에서 소비로 이동했다.

<300>
20세기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역사의식은 쇠락하고 심리치료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역사적 사명감을 의식하기 보다는 자신의 개인사를 훨씬 비중있게 생각했다.

<301>
크리스토퍼 래시에 따르면 역사의식이 붕괴하고 치료의식이 부상하는 것은, 한 인간의 성취와 역사에 대한 공헌을 평가하는 잣대를 재산에서 찾던 세계가 막을 내리고, 개인이 얼마나 다채로운 심리적 경험을 했고 자기 변신에 투자를 했는가를 중시하는 세계가 부상하는 추세와 맥락을 같이 한다.

<306>
하이퍼텍스트는 인쇄문화의 중요한 특성 하나를 잠식한다. 그것은 바로 책에 씌어진 생각이나 단어는 개별 저자의 소유라는 발상이다.

<313>
로버트 리프턴에 따르면 복수의 인격을 가지는 것은 현실을 극복하는 수단이다. 하이퍼 현실, 탈근대 사회의 점증하는 요구 앞에서 영혼이 대처하는 방식이다. 리프턴은 복수의 인격을 가진다는 것은 자아의 실종을 의미하기는커녕 좀더 유연하고 성숙한 의식의 단계에 올라섰음을 뜻한다고 주장한다.

<314>
내 것과 네 것을 철저히 구분하고 엄청난 규모로 공간을 착취하고 재산을 축적하려는 집요한 욕망에 지배되었던 산업시대의 낡은 자율성은 부자와 빈자, 인간과 나머지 동물로 양분된 세계를 낳았고 그 과정에서 지구는 고갈되고 왜소해졌다.

<315>
변화 무쌍한 의식은 존재를 파편화시킬 것이라는 일부 심리학자의 우려에도 일리가 있지만 복수의 인격을 가진 사람은 남들에게 쉽게 공감하는 능력을 배우기 때문에 문화쇄신의 기초를 닦는 데도 기여한다.

<316>
인간이 생산활동을 하는 노동자에서 창조활동을 하는 공연자로 변신하는 것은 사회관계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322>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평생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11) 접속자와 비접속자
<331>
문제는 냉장고나 의류 같은 일반 공산품의 생산 통계가 아니다. 거의 모든 남자, 여자, 아이를 통제된 이미지와 단어로 둘러쌀 수 있는 힘, 자라나는 세대의 의식을 지배하는 힘, 국가의 정치적 의제마저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세력이 등장했다는 것이 문제다. 이 기업집단의 영향력은 학교, 종교, 부모, 심지어는 정부 자체의 영향력보다 크다고 말할 수 있다.

<333>
1997년 체결된 국제 통신 협약은 각국 정부에게 주어진 정치적 무기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규제권, 다시 말해서 자국 영토안에서 통신의 구조와 접속양식의 기본적 조건을 정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함으로써 정부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335>
주파수가 국민을 대표하여 정부가 관리하는 공공재에서 거대 미디어 기업의 사유재산으로 탈바꿈하면 거대 기업과 일반국민의 관계에도 변화가 온다. 고도로 발전한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문명에서 지금까지 공공재산으로 여겨졌던 주파수를 잃어버리면 사람들은 거대 미디어 기업의 그늘 아래 들어가게 된다.

<336>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정말로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알짜 재산은 방송 주파수, 광섬유 케이블, 통신 위성, 통신채널을 구성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술, 생명줄로 흘러다니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343>
부유층은 자기들끼리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사업과 교제의 네트워크를 더욱 공고히 쌓아갈지 모르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고립되고 소외된 채 점점 고달파지는 세상에서 점점 가난하게 살아갈 위험성에 직면해 있다.

(12) 문화와 자본주의의 생태학을 향하여
<350>
사유재산과 공공재산이라는 소유의 두 형태는 사회의 모든 성원이 개별적으로 누리는 재산권의 일부분이었다. 사유재산은 타인을 배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고, 공유재산은 타인으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했다.

<351>
상호 의존성이 높은 복잡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소유의 형태는 사회 전체의 누적된 생산자원을 이용하거나 여기서 혜택을 볼 수 있는 기획를 박탈당하지 않을 개인의 권리이다. 그래서 맥퍼슨은 산업자본주의가 도래하기 전에 존재했던 옛날 소유개념을 원상복구하자고 주장한다.

<352>
새로운 시대의 소유는 개인이 인간으로서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보장하는 역학관계의 체제에 참여하는 권리로 성격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맥퍼슨은 결론 짓는다.

<354>
관계를 맺고 공조를 구축하며 관심을 공유하는 네트워크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자유의 많고 적음이 판가름난다…네트워크 세계에서 자치를 고수한다는 것은 단절과 고립을 의미한다. 반면 배제되지 않을 권리, 곧 접속의 권리는 개인적 자유를 재는 잣대가 된다.

<359>
모든 나라는 시장이라고 하는 제1부문과 정부라고 하는 제2부문을 중심으로 공공정책을 운용함녀서 문화라는 제3부문은 당연시한다. 사회자본을 수립하고 시장과 교역을 가능하게 만드는 막중한 역할이 문화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한 사회의 문화기구(교회,세속기관,민간단체,상조회,스포츠클럽,예술집단,비정부기구)는 사회적 신뢰의 샘물이다… 강한 공동체는 건강한 경제의 전제조건이다. 강한 공동체만이 사회적 신뢰를 낳기 때문이다.

<361>
제 3부문은 사람들이 인생의 길잡이로서 공유하는 가치를 만들고 닦는 곳이다. 문화가 풍성하게 유지되는 놀이의 장이다…강한 공동체, 다시 말해서 건실한 문화는 경제 발전을 위한 전제 조건이지 경제 발전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한 것이다.

<362>
리프턴에 따르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가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을 통해 동질성을 확인한다. 사회적 신뢰는 공감이라는 토대위에서 형성된다. 공감은 타자의 인간성을 자신의 상상력 속에 끌어들이는 노력을 요구한다. 공감은 가장 심오한 인간의 감정에 해당된다. 친밀함과 예의바름을 하나로 이어주는 힘도 공감에서 나온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자아의 울타리 밖으로 넘어가서 타인 안에서 감정의 둥지를 틀고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남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희로애락을 함께 체험한다는 뜻이다. 그런 감정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를 배우고 서로를 배려하게 된다.

<363>
화면앞이나 가상세계 안에서 성장한 세대가 남들과 또는 다른 생명체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364>
서로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세대는 문화를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 낼 능력이 없다.

<365>
산업생산이든 문화생산이든 기본적으로 뽑아서 쓰는 것이다. 자연처럼 문화도 자꾸 캐내면 고갈되기 마련이다. 언제까지나 시장을 위해 황금달걀을 척척 낳아주는 문화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생명의 다양성이 중요한 것처럼 문화의 다양성도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전세계에 존재하는 풍부하고 다양한 인간의 경험을 상업영역이 근시안적 영리 추구를 위해 착취하기만 하고 순환이나 재충전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경제는 결국 문화 생산의 재료가 되는 인간 경험의 방대한 수원지를 잃게 될 것이다.

<371>
문화와 상업이 생태학적으로 균형을 회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앞으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임무의 하나가 될 것이다. 적절한 균형을 되찾으려면 시장에 나와있는 문화 상품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 못지않게 지역 문화를 소생시키는 데도 똑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372>
문화는 다른 이유를 모두 접어두고서라도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소생되어야 한다. 인간의 가치를 낳은 유일한 원천이 문화이기 때문이다.

<375>
미국의 시민교육은 전통적 도제 훈련, 현장학습, 문제해결, 시스템 중심의 개념 학습을 정교하게 하나로 엮은 것이다…시민교육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사이버 스페이스와 가상세계에서 입수할 수 있는 지식에 접속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리적 공동체 안에 배태되어 있는 집단의 지식과 지혜에 접근하는 것을 보완하는 차원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380>
생물 다양성과 문화 다양성을 보존하려는 노력은 21세기의 중요한 두 사회 운동이다.

<383>
자기만의 문화 정체성을 앞세우면서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것, 시민 사회 조직운동의 성격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많은 시민사회 조직의 정서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에 집약되어 있다 “ 나는 사방이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창문을 굳게 닫아놓은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 온 세계에서 불어오는 문화를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밖에서 불어온 문화에 덩달아 휩쓸려 가지는 않겠다.”

<384>
산업 자본주의가 문화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지금, 노동 정신은 놀이 정신에게 서서히 밀려나고 있다. 놀이는 간단히 말해서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의 상상력을 해방시켜 공유할 수 있는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놀이는 인간 행동의 가장 근본적 범주에 해당한다. 놀이가 없으면 문명도 존립할 수 없다.


<385>
일이 인간생활을 지배하고 놀이가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산업시대로 들어오면서부터였다.

놀이를 지배하는 전제와 규칙은 전통적으로 일을 지배해 온 전제와 규칙과 크게 다르다. 우선 놀이는 신나고 즐겁다…둘째 놀이는 자발적이다…놀이는 또 일보다 친밀감을 주고 더 많은 몸놀림을 요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이를 통해 자신의 감각을 한껏 발현할 수 있다…일과는 달리 놀이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그 자체가 목적이다. 논다는 행위 자체에서 보상을 얻는다. 놀이가 추구하는 것은 생산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387>
근대로 넘어오면서 일과 놀이의 비중이 뒤바뀌었다…그러나 다시 일의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이 왔다. 생산 공정의 자동화와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로봇의 등장으로 인간은 시장의 올가미로부터 서서히 풀려나고 있다.

<388>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직 상업적 성공의 결실을 좀 더 고르게 분배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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