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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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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20일 22시 59분 등록
1 저자소개

Jeremy Rifkin. (1945~)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터프스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1977년'Foundation of Economic Trends (경제조류재단)'을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있으며 워튼 스쿨 경영대 최고경영자과정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노동의 종말 The End of Work >, <엔트로피 법칙>, 《소유의 종말 The Age of Access》, 《수소경제 The Hydrogen Economy >,《생명권 정치학 Biosphere Politics》,《바이오테크 시대 The Biotech Century》(공저), , , 등이다.
전 세계 20개국 500여개 대학에서 강연하는 경제학자이며 문화비평가인 동시에 부인 캐롤 그룬왈드 리프킨과 채식운동과 녹색생활운동을 펼치고 있는 운동가이기도하다.

알라딘에서 그에 대한 재미있는 소개 글을 보았다. 잠깐 옮겨보겠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너른 시야로 지구적 구조와 미래를 바라보는 탁월한 사상가이자 활동가로 추앙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과학계에서 가장 증오 받는 인물'이라는 「타임」지의 표현대로 그를 사이비 저술가, 기껏해야 영향력 있는 선동가로 본다."

“리프킨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주로 그의 과학적 엄밀성을 문제 삼는다. 리프킨은 경제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했을 뿐 정식적인 과학 교육은 받은 적이 없다. 비판자들은 그 점을 꼬집으며, 리프킨이 몇몇 과학적 사실을 수집하여 망상적인 종말론을 구성한다고 지적한다.
사실 리프킨의 초기 저작들은 '사이비 과학'이라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할 정도다. <엔트로피 2>로 번역된 는 영적인 세계관을 역설하여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로부터 "학문으로 가장하여 교묘히 짜집어진 반(!) 지성적 프로파갠다"라 비난받았다. 이후 <바이오테크 시대> 등에서 드러낸 유전자 공학에 대한 반감 탓에 '기술혐오자', '신-러다이트'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알라딘 저자 소개에 올려진 편집팀장 김명남(starla@aladdin.co.kr)씨의 글>

사실, '소유의 종말'을 반 정도 읽었을 무렵 이 글을 읽었다. 처음 소유의 종말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꽤 재미있어서 정신없이 빠져들었는데, 이 글을 보고 약간 정신을 차렸다고 해야 할까. 나는 확실히 비판적 시각이 부족한 모양이다. 누군가 이렇게 지적해놓지 않으면, 나보다 지적으로 우월한 것이 확실한 작가의 글은 다 맞는 말처럼 보이니 말이다.
제러미 리프킨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엔트로피 법칙'이나 '노동의 종말' ' 수소경제' 등은 나 같은 문외한도 제목을 알고 있는 유명한 책들이다. 그는 활발하게 저술과 강연활동을 펼치고 있는 영향력 있는 비평가이며, 그의 책에 달린 방대한 분량의 주석에서 알 수 있듯 해박하고 그만큼 부지런한 학자인 듯하다. 그에게 어떤 비판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엔 이 책 한 권만으로는 많이 부족하겠지만, 지적으로 월등하다고 해서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 것, 그 시각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하며 읽은 책이었다.

2. 소유의 종말?

한국 서명은 '소유의 종말'이지만, 원제는 'the age of access' -‘접속의 시대’ 쯤 되겠다. 아마도 저자의 앞 선 책 '노동의 종말 The End of Work'이 국내에서 히트를 쳐서 '종말 시리즈'로 책을 펴낸 것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 어떤 제목을 붙이던 책의 주제는 '재산 소유의 시대'에서 '서비스 접속(권)의 시대'로 바뀌었음을 말하는 것이니 어느 쪽도 같은 의미이긴 하다.

책은 재미있다. 1부는 신나게 읽혔다.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2부에서는 집중력이 좀 떨어졌지만 딱딱한 제목에 비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소유에서 접속의 시대로의 전환, 산업사회에서 문화사회로의 전환, 시장에서 네트워크로의 전환 등. 결국 저자기 이야기하는 것은 반복된다. “ 접속! ”

2001년도에 나온 미래 예언서(?)인만큼,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접한 나는 그가 책에서 예측하는 것과 비슷한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중간 중간 줄을 치며 스스로 예문을 달았다. ‘싸이월드’ ‘타워팰리스’ ‘다음daum’ ‘** 텔레콤’ ;‘*** 정수기’ 등.

현재 내 직장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1부의 '무게 없는 경제' 부분에서 IBM이 개인 책상을 없애고 직원들에게 개인 휴대폰과 노트북을 지급하여 집이나 고객 사무실에서 효율적으로 일하게 하는 시스템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직원들이 공동의 사무실을 예약하여 사용함으로써 부동산을 줄인다는 개념이다. 우리 회사에서도 비슷한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확인해보니 역시나 한국 IBM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1997년쯤에 운영을 하다가 폐지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작년 하반기부터 다시 전국에 시범 팀을 6팀 정도 선정하여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주로 외곽지로 출장을 다녀야 하는 팀에서 운영되고 있는데, 회사에서 지급된 노트북으로 공인 인증서를 통해 개인 인증을 하면 회사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고, 어디서나 인터넷이 가능한 무선 랜을 지원한다. 시범 운영하는 팀에 아는 사람이 있어 전화를 해서 물어보았더니, 일단 바로 출장지로 출근해도 업무를 시작하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기 때문에 출근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워졌고, 출장을 나갔다가 귀사 하는 시간은 별 차이가 없지만 퇴근 시간은 빨라졌다고 한다. 단지, 아직은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어서 접속이 좀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고. IBM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공용으로 사용하는 사무실이 지원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동산 비용을 줄이는 효과는 당장 없다는 것.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좀 더 작은 사무실로 운영하는 것이 가능할 테니 부동산 비용을 줄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회사들은 사무실을 통한 땅장사로도 수익을 챙긴다고 하던데, 뭐가 더 이익일까?)

리프킨은 2005년(작년!)까지는 모든 데이터의 50퍼센트 이상이 컴퓨터로 저장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내다본다고 했는데, 주석을 보니 1998년도에 나온 책을 인용한 것이다. 다른 회사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작년부터 우리 회사는 창고로 들어가게 되는 서류는 1차적으로 모두 이미지시스템에 등록하도록 지침이 내려왔다. 전국 어디서나 회사 공용망을 통하면 바로 볼 수 있고, 서류를 분실해도 내용을 보전할 수 있다. 당장 회사를 다니면서 얼마 전에 겪은 변화를 리프킨은 내가 입사하기도 전에 예측하고 있었다니. 문득 다른 회사들은 이런 시스템을 언제부터 시행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정말 모든 데이터의 50퍼센트 이상이 저장되고 있을까?

그의 책 중 무엇보다 내 가슴을 두드린 부분이 있었으니, '접속' 문화에 익숙한 '다중인격' 세대에 대한 내용이다. 컴퓨터 화면 앞에서 자라서 채팅과 오락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책을 쓸 당시에만 해도 리프킨은 이 세대가 아직은 ‘소수’라고 말한다)은 네트워크상의 단편적인 관계에 익숙한 나머지 끈끈한 인간관계의 경험과 참을성 있는 주의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요즘엔 인터넷의 빠른 속도에 익숙한 나머지 15분 동안만 집중할 수 있다는 이들의 특성을 꼬집어 'quarterism' 이란 용어도 나오지 않았는가. 사실 나 자신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끊임없이 클릭을 해가며 화면을 바꿔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 중 하나이다. 가끔 스스로 정서불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나보다 더 어린 친구들은 더 찰나적이지 않을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한 스피드로 향해가고 있는 웹의 세계가 학교만큼 익숙한 어린 친구들에게 과연 진득한 인내심과 끈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인터넷의 다수에게 익명의 댓글을 다는 것에 익숙한 친구들이 그 ‘다수’ 와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책의 마지막에, '접속의 시대'에서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 할 것인지,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그의 우려에 공감하는 것은 , ‘접속의 시대’에 살고 있는 ‘다중 인격자’로서 스스로 문제를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잠시 서늘한 생각에 잠겨야 했다.


3. 내가 저자라면

당신이 부럽다! 당신만큼 부지런하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 되고 싶다! 라고 한 번 부르짖어 주겠다. 말만 많은 게 아니라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저자는 일단 칭찬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많은 주석과 참고문헌을 본인이 다 리서치 했다는 가정하이다)

누군가는 세뇌라고 이야기했지만(사실 공감한다), 그는 확실한 전달력과 비교적 대단한 설득력의 소유자이다. 어느 누가 이렇게 줄기차게 본인의 주장을 책 한권 내내 흐트러짐 없이 일관성 있고 확실히(무엇보다 정확히) 전달할 수 있겠는가. 반복되고 반복되는 그의 이야기는 독자들이 자기가 하는 말을 빠뜨리지 않고 들어줬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겠다. 사실, 나처럼 주의집중력이 부족한 독자에게는 친절한 저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음표를 달아 놓아야했던 문단들도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 아쉬운 번역이 눈에 띠었다. 2부의 ‘탈근대’에서 새로운 인간형에 대해 설명할 때 흥미롭고 신나는 체험에 관심이 많은 이 인간형이 스스로를 ‘노동자’가 아니라 ‘경기자’라고 칭한다고 번역해놓았는데, 차라리 원문일 ’player'를 옆에 달아놓는 것이 더 이해가 쉽지 않았을까 싶다. (단, 이것은 내 추측이다. 원문을 읽지는 못했다)

아, 그리고 앞의 저자 소개에서 옮겨 적었던 그의 사이비 과학에 대해 한마디 하겠다. 그는 1부 'DNA 임대' 라는 소제목의 내용에서 생명과학 산업에서 앞으로 10년 안에 인간이라는 종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그 청사진을 보여주는 14만개 유전자의 위치를 거의 다 확인하고 정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2001년부터 10년이라. 2011년에 어떻게 되어 있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1차 과제였던 '대담'에서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머리카락 색을 결정하는 유전자조차 찾지 못했다고. 간단한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의 존재도 모르는 상황이라는 자연과학자의 겸손에 비하면 리프킨은 너무 자신만만한 것은 아닌지.

아래 ‘책 속에서’에 다시 인용해 놓을 것이지만, 워낙 내용이 많을 것이기에 한 번 읽어주었으면 하는 부분만 여기 인용해두겠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중요한 것은 순간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다. 개인 생활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절정감과 카타르시스는 효율성과 생산성보다 윗자리에 놓인다.”

“ 프랑스의 한 탈근대론자는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텔레비전 앞에서 보내면서 가상 현실에 깊숙이 빠져드는 아이에게 텔레비전은 더 이상 가상 현실이 아니라도 말한 적이 있다. 아이에게 그것은 현실이다. 텔레비전은 더 이상 현실의 대용물이 아니라고 보드리야르는 갈파한다. 이제 텔레비전은 세계를 해석하거나 극화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이 바로 세계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4. 책 속에서

1부 자본주의의 새로운 프론티어

1. 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
p 9 근대 이후로 재산과 시장은 줄곧 동의어로 쓰였다. 실제로 자본주의 경제는 재산을 시장에서 교환한다는 발상 위에서 성립한 것이다...18세기 말이 되면 시장이라는 용어는 공간적 지시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서 물건을 사고 파는 추상적 과정을 묘사하는 데 쓰이기 시작한다.
p 11 시장은 네트워크에게 자리를 내주며 소유는 접속으로 바뀌는 추세다.... 재산은 엄존한다. 하지만 재산이 시장에서 교환되는 빈도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새로운 경제에서 재산을 장악한 공급자는 재산을 빌려주거나 사용료를 물린다. 또는 입장료, 가입비. 회비를 받고 단기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근대 경제의 중요한 특성이었던 판매자아 구매자의 재산 교환은 네트워크 관계로 이루어지는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단기 접속으로 바뀐다. 시장은 여전히 살아남겠지만 사회에서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p 12 네트워크의 시대에는 가치 있는 지적 자본을 많이 보유한 기업이 장땡이다.
p 13 접속 중심의 구도에서 기업의 성공은 시장에서 그때그때 팔아치우는 물건의 양보다는 고객과 장기적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점점 좌우된다...요즘은 후속 서비스를 통해 고객과 장기적 관계를 맺겠다는 계산으로 상품을 아예 공짜로 제공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p 14 산업 생산 시대가 가고 문화 생산 시대가 오고 있다. 앞으로 각관을 받을 사업은 예전처럼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사업이 아니라 다양하고 광범위한 문화적 체험을 파는 사업이 될 것이다. 세계 여행과 관광, 테마 도시와 공원, 종합 오락 센터, 건강, 패션, 요리, 프로 스포츠와 게임, 도박, 음악, 영화. 텔레비전, 사이버스페이스의 가상 세계, 그리고 온갖 유형의 온라인 오락은 문화적 경험에 대한 접속권을 거래하는 하이퍼자본주의의 새로운 주역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산업 생산에서 문화 생산으로 탈바꿈하면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노동 의식이 유희 의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노동을 상품화 하는 것이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접속의 시대에는 놀이의 상품화가 그 특징이다.
.....우리는 경제학자들이 ‘체험’ 경제라고 부르는 세계로 넘어가고 있다. 개개인의 삶은 사실상 하나의 시장이 되어버린다. 기업가는 이 새로운 개념을 고객의 ‘평생 가치(lifetime value’라고 부른다. 한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모든 순간을 온갖 형식으로 상품화할 경우 그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이론적으로 따지는 것이다.
p 18 타인의 시간, 타인의 배려와 애정, 타인의 공감과 관심을 돈으로 사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p 19 문화적 의식, 공동체 행사, 사회적 모임, 예술, 운동, 게임, 사회운동, 시민적 참여가 모두 상업 영역에 의해 야금야금 잠식되어 가고 있다. 다가올 시대의 가장 큰 화두는 ‘정부와 문화영역이 크게 축소되고 상업 영역만이 인간 생활의 으뜸가는 매개 고리로서 남아 있는 상황에서 과연 문명이 살아남겠느냐’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네트워크로, 소유에서 접속으로 이동이 일어나고 물적 재산이 찬밥 대우를 받고 지적 재산이 부상하고 인간관계가 점점 상품화되면서, 재산의 교환이 경제의 일차 기능이었던 시대로부터 경험 자체가 완전한 상품으로 떠오르는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 재산 관계, 시장 교환, 물질 축척에 바탕을 둔 과거의 제도는 서서히 허물어지고, 문화가 가장 중요한 상품 지원이 되고 시간과 관심이 가장 귀중한 소유물이 되고 개개인의 삶이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시장이 되어버리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p 21 인류 문명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화는 줄곧 시장보다 우위에 있었다. 사람들은 공동체를 만들고 정교한 사회적 규약을 만들었다. 공유할 수 있는 의미와 가치를 재생산하고 사회적 자본의 형태로 사회적 신뢰와 사회적 교환이 어느 정도 발전한 다음에야 공동체는 비로소 상업과 교역에 뛰어들었다. 요컨대 상업 영역은 언제나 문화 영역에서 파행되었다. 상업 영역은 언제나 문화 영역에 의존했다. 문화는 합의된 행동 기준을 낳는 원천이기 때문이다.....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의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는 것은 어쩌면 접속의 시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인지도 모른다.
p 23 컴퓨터 화면 앞에서 자라면서 많은 시간을 채팅과 전자 오락에 쏟아 붓는, 아직은 소수이지만 점점 그 수가 늘어나고 있는 젊은이들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다중 인격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들의 의식은, 특정한 시간에 자신이 몸담았던 가상 세계나 네트워크와 어울리기 위해 이용했던 짧은 토막의 파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일각에서는 이 닷컴 세대가 현실을 수시로 바꿀 수 있는 한낱 이야기들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우려한다. 주위 세계에 적응하고 주변 사람을 이해하려면 일관된 참조의 틀이 있어야 하는데 이 틀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끈끈한 인간관계의 경험과 참을성 있는 주의력이 이들에게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시장이 네트워크에 밀리는 날
p 29 새로운 교역은 시장처럼 지리적 제약을 받지 않는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전자 매체 안에서 일어난다... 사이버 스페이스에서는 서버와 클라이언트가 정보, 지식, 경험, 심지어는 환상까지도 빈번히 교환한다.
p 30 제임스 글레이크에 따르면 소유라는 관념에서 이제 겨우 벗어나려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인터넷이 사물도 아니고 실체도 아니고 조직도 아니라는 것이다. 인터넷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인터넷을 운영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만인의 컴퓨터를 연결한 것, 그것이 인터넷이다.
p 34 한 제품의 정보 집약도가 크면 클수록 그 제품을 갈아치우기가 쉽고 그럴 필요성 또한 커진다.
p 37 규모의 경제가 속도의 경제로 바뀌고 있다. 시장에 먼저 제품을 내놓은 기업만이 가격을 높게 책정하여 이익을 챙길 수 있다.... 제품 주기가 짧아지는 것은 소비자의 주의 집중 기간이 그만큼 짧아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할부금을 다 갚기도 전에 구닥다리가 될 기술이나 제품을 구태여 왜 소유하겠는가?
p 39 구체제가 클럽이었다면 신체제는 네트워크.
p 46 ...다른 산업에서 연예 산업이 조직되는 방식을 본뜨려고 애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음반업, 예술계, 텔레비전, 라디오를 아우르는 문화 산업은 물리적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경험을 상품화하고 포장하고 마케팅한다. 문화산업이 재화로 쌓아두고 거래하는 것은, 현실을 모방한 세계와 의식을 고양시키는 세계로 잠시 접속할 수 있는 권리이다. 물건과 서비스를 상품화하던 것에서 경험 자체를 상품화하는 단계로 변화하는 글로벌 경제에서 이것은 더없이 이상적인 모델이다.

3 무게 없는 경제
p 54 사용하되 소유하지는 말라
p 68 숙박 체인 모텔 식스는, 객실이 모두 3만 3천 개에 이르는 건물 288채를 다시 리스한다는 조건으로 11억 달러에 팔았다...포템긴은 1997년 11월 11개 대리점 가운데 8곳의 당을 킴코-오토 펀드에 5천만 달러에 판 다음 저렴한 가격으로 장기 임차 계약을 맺었다. 포템킨 체인의 공동 회장 앨런 포템킨은 이런 판매 후 리스 계약을 윈윈 전략이라고 불렀다. ‘덕분에 우리는 유동성이 좋아졌다. 유동성이 좋아지니까 임대인들도 마음을 놓는다. 나는 풍부한 현금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고 경영권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포템킨 회자의 설명이다.
p 69 굶주린 시장에 고정 자산을 팔아넘기고 남은 돈으로 유연하게 리스를 하라
p 85 상업권에서 아이디어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길한 생각도 든다. 인간의 생각이 그렇게 중요한 상품으로 거래될 수 있다면, 중요하지만 상업성이 없는 사유는 어떻게 되는가? 자기 인생의 길잡이가 될 만한 생각을 상업의 영역에서 가져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문명에서,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관점, 의견, 관념, 개념이 존립할 수 있는 여지가 과연 있을까? 온갖 유형의 아이디어가 겨대 기업들이 관리하는 지적 재산권의 형태로 얽히고 설켜 있는 미래 사회에서 우리의 집단 무의식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미래의 사회적 담론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4 지적 재산의 독점
p 89 맥도널드만 하더라도 ‘햄버거를 파는 것보다 햄버거 매장을 파는 것’이 훨씬 짭짤한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p 91 체인 가맹점은 사업체를 사들인 것이 아니라 공급자와 미리 정한 조건에 따라 사업체에 단기간 접속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데 불과하다. 이 관계는 판매자-구매자가 아니라 공급자-사용자의 관계이다. 체인점 계약의 핵심은 접속의 합의이지 소유권의 양도가 아니다. 이것은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다.

5 서비스 세상
p 114 모름지기 사물의 진가는 지닐 때보다는 쓸 때 발휘되는 법이다
p 128 물질적 상품은 지식-가치를 담은 통이나 운반체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p 129 제품은 고객의 사업장이나 집에 마련해 둔 일종의 교두보이다. 이런 교두보를 발판으로 기업은 고객과 장기적 서비스 관계에 들어간다.

6 인간관계의 상품화
p 145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았던 불연속적 시장 거래로부터 시간 위에 무한히 펼쳐진 관계를 상품화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상업 활동의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우리의 일상 생활을 점점 이해 득실과 타산의 노예가 된다.
고객이 시장이다
p 147 개인이 일평생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상품화될 수 있다는 잠재성에 주목함을 뜻한다.
p 167 대부분의 관계가 상업적 관계로 변하고 모든 개인의 삶이 24시간 내내 상품의 틀에 갇혀 있을 때, 비상업적 관계, 다시 말해서 혈연, 이웃, 문화적 취향의 공유, 종교적 결사, 민족 의식, 형제애, 시민 의식에 바탕을 둔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7 삶으로의 접속
p 176 CIDs(commom-interest developments, 공동관심단지) 주민은 소유권과 재산권을 교묘하게 박탈당하고 접속생활 공간에서 장점을 누리는 한편 그에 수반되는 함정까지도 감수하면서 점점 단순한 점유인으로서 위상 변화를 겪는다.
p 180 모든 생활 공간이 상업적 구획의 일부분으로 지정되어 있는 CID에서 공공장소라는 관념과 집회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 수정 헌법 1조의 정신은 어떻게 되는가?
p 182 CID의 경제적, 사회적 의미에 대한 논의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많은 미국인들이 고동 관심 단지에 있는 집을 사는 것은 재산권을 확실히 지키겠다는 의지의 노골적인 표현이라는 점이다. 폐쇄 공동체가 갖는 이점의 하나는 가치관이 비슷하고 경제력이 엇비슷한 사람들과 모여 살고 부동산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는 사람의 진입을 막음으로써 집과 부동산에 대한 투자의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말한 대로 사람들이 굳이 CID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이유는 특별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사람, 서비스, 시설의 네트워크로 편입되고 싶다는 욕심, 다시 말해서 자기 마음에 드는 생활 방식을 사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다. CID는 재산 투자의 안정성을 강조하는 것 못지않게 생활 경험의 상품화가 주는 매력을 내세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CID는 과도기적 주거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두 가지 세계와 두 가지 생활 방식, 다시 말해서 소유와 재산 관계에 우위를 두는 낡은 방식과 상품화된 관계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공간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에 중점을 두는 새로운 방식 사이에서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주악ㄴ 기착지의 역할을 CID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
p 198 문제는 결국 이렇게 정리된다. 시간적 네트워크 안에 편입하는 것은 장소에 뿌리를 둔 삶의 충분하고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지리는 필수 불가결한 조건인가, 아니면 지나간 시대의 주변적 찌꺼기에 불과한 것인가? 지리는 좌표이고 제약인가 아니면 고려해야 할 수많은 요소 중의 하나에 불과한가? 장소에 대한 갈망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있지만 공간을 폐지하고 우리의 경험을 시간화하려는 욕망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의 생활공간을 소유에서 접속으로 어느 정도까지 탈바꿈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누구이며 21세기를 어떤 식으로 살고 싶어하는가에 대한 두 가지 감수성의 우열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다.

2부 문화를 고갈시키는 자본주의

8 자본주의의 새로운 문화
p 202 통신은 인간이 공동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이 이룩한 세계를 공유하는 중요한 수단이므로 디지털 통신의 모든 형태를 상품화한다는 것은 결국 개인과 공동체의 살아있는 경험-문화생활-을 구성하는 수많은 관계를 상품화하는 결과로 귀착된다...단 한번도 시장에 흡수당한 적은 없었던 문화-인간이 공유하는 경험-가 이제 새로운 통신 기술이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추세 속에서 점점 경제 영역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
p 203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인간 문화 안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는 뜻이며, 어떤 인간 문화 안에 있다는 것은 그 문화를 매이매일 재창조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보며 알고 세계와 소통한다는 뜻이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커뮤니케이션이 문화의 핵심, 아니 생명 그 자체의 핵심’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p 205 웅변, 무용, 연극, 의식, 음악, 시각예술, 조형 예술은 아득히 먼 옛날부터 인간 경험의 핵심적이고 또 필수 불가결한 요소요소였다. 그런데 과거와는 달리 ‘인간이 가진 창조성을 표현하는 이런 기본적 요소를 집단적 공동체적 기원으로부터 자꾸만 분리하여 돈을 내는 사람에게만 팔아먹으려는 시도가 파죽지세로 확산되고 있다.
p 207 경제 영역의 핵심적 원리는 자원 이용의 효율화라고 벨은 주장한다. 정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다. 문화 영역에서 제일로 치는 것은 자기실현과 자기 고양이다.
p 212 살아있는 체험은 상품 구체화의 최종 단계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살아 있는 체험은...자본 순환에서 최종 상품이 되었다.
p 213 '체험 산업은 심장 박동을 빠르게 만드는 모든 내용을 거래하는 것‘
‘ 종교나 정치 같은 승화장치를 통해 분출하는 것보다는 시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표현되는 ’정념이 훨씬 안전하다‘
경영 컨설턴트 조셉 파인과 제임스 길모어는 기업들에게 ‘ 새롭게 떠오르는 체험 경제에서는 상품이 아니라 ’기억‘을 만든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고 강조한다.

9 문화의 광맥을 찾아서
p 249 '우주에서 단 하나 잘못된 점은 우리 아닌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에 따라 이 우주가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
‘기계들의 숲’으로 이루어진 최첨단 생태계를 상상해 보라고 컬럼비아 대학의 마크 슬루카 교수는 말한다. ‘그 생태계는 당신의 기분을 인식하고 감지한다. 당신을 바라보고 알아보는 것은 물론 ’말을 더듬거나 말을 끊거나 침을 꿀꺽 삼키거나 목소리가 미세하게 변화하는 것에 담긴 정보‘도 예민하게 포착한다. 요컨대 그것은 인간의 의지에 완전히 종속된, 오직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우주다’.
p 253 고급 상표가 붙은 제품을 구입한다는 것은 그 디자이너가 창조한 가치와 의미의 세계에 자기도 끼어든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p 254 이제 마케팅 산업에서 문화 노동자의 일차적 임무는 대중 문화로부터 의미의 단편을 뽑아내고 음악, 영화, 디자인, 광고 같은 예술의 힘을 빌려 특정한 문화적 범주에 어울리는 정서적 반응을 소비자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제품을 포장하는 것이다.
p 256 동물 실험이 반대하는 광고를 적극적으로 내보내는 미용용품 체인점 바디샵에서 비누와 향수를 사는 사람들은 실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체험을 구입하는 것이다.

10 탈근대
p 287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중요한 것은 순간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다. 개인 생활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절정감과 카타르시스는 효율성과 생산성보다 윗자리에 놓인다.
p 288 근대의 핵심이 근면이라면 탈근대의 핵심은 유희다.
p 289 프랑스의 한 탈근대론자는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텔레비전 앞에서 보내면서 가상 현실에 깊숙이 빠져드는 아이에게 텔레비전은 더 이상 가상 현실이 아니라도 말한 적이 있다. 아이에게 그것은 현실이다. 텔레비전은 더 이상 현실의 대용물이 아니라고 보드리야르는 갈파한다. 이제 텔레비전은 세계를 해석하거나 극화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이 바로 세계이다.
p 294 모든 사회 관계가 사유 재산을 중심으로 엮였던 시대에 부르주아지는 사유 재산의 이상을 찬미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갔다. 그들은 재산으로 자신을 에워쌌고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는 모든 형태의 경계선을 만들었다. 소유라는 개념은 심지어 그들의 의식 안으로 철저히 내면화되었다.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열렬히 희구한 것은 ‘침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침착을 뜻하는 영어는 self-possessed 이고 possessed는 소유를 뜻하는 possession 의 파생어이다. 침착하다는 뜻마저도 자기를 소유한 상태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p 300 '예전에는 자기 이해 하면 부를 합리적으로 획득하고 누적하려는 노력을 의미했지만 이제 그것은 쾌락과 영혼에 대한 관심을 뜻할 뿐이다‘
새로운 연극배우
p 313 리프턴에 따르면 복수의 인격을 가지는 것은 현실을 극복하는 수단이다. 하이퍼 현실, 탈근대 사회의 점증하는 요구 앞에서 영혼이 대처하는 방식이다. 리프턴은 복수의 인격을 가진다는 것은 자아의 실종을 의미하기는커녕 좀더 유연하고 성숙한 의식의 단계에 올라섰음을 뜻한다고 주장한다.
p 315 신세대는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데 확실히 익숙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런 자세는 모든 현상이 얽히고 설켜 있다는 점을 통찰하는 데 도움이 되며 사고와 행동에서 공조 의식을 강화하는 데 이바지한다.
세계는 무대
p 316 접속의 시대에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두드러진 것은 연극성이다.
p 318 마사 스튜어트는 인물 조형이라는 새로운 장르에서 아마 가장 성공을 거둔 사람일 것이다. 그녀는 연극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고객에게 소도구를 결합하는 정확한 요령을 일러준다. 기존의 무대공연이 그런 것처럼 우연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으며 모든 것이 용의 주도한 각본에 따라 연출된다. 스튜어트는 가령 집 앞에 쌓인 눈을 삽으로 치울 때도 ‘새하얀 눈을 2,3 센티미터는 남겨두는’ 감각이 필요하다고 고객에게 조언한다. ‘하다못해 눈을 치울 때도 미적 감각은 아주 중요하다’

11 접속자와 비접속자
p 325 미국은 거대 군수 산업국에서 세계 오락 정보를 장악한 패권국으로 변모했다.
p 331 '무역은 이제 국기(국가?)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통신 시스템을 쫓아간다‘
p 326 지금까지 정부가 의지한 것은 지리적 기반이었다. 정부는 국토를 통치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러나 인류의 사업 범위와 교제 범위가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비물질적 세계로 이동하게 되면 영토에 기반을 둔 정부의 지위가 점점 흔들리게 되지 않을까?
p 339 통신 혁명과 미래의 네트워크 세계에 대한 대담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보면 세계 인구의 65퍼센트가 평생 전화를 걸어본 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들이고 40퍼센트는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에서 살고 있다. 뉴욕의 맨해튼 한곳에 있는 전화기 수가 사하라 사막 남쪽의 전체 아프리카에 있는 전화기 수보다 많다.

12 문화와 자본주의의 생태학을 향하여
p 350 맥퍼슨은 타인을 배제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만으로 인간의 경제적 관계를 구조화하는 조건을 정의하는 것은 이제 무리라고 주장한다. 상호 의존성이 높은 복잡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소유의 형태는 ‘사회 전체의 누적된 생산 자원을 이용하거나 여기서 혜택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을 개인의 권리’이다. 그래서 맥퍼슨은 산업 자본주의가 도래하기 전에 존재했던 옛날 소유 개념을 원상 복구하자고 주장한다. 소유 개념은 ‘접속으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까지 포함시키는 쪽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p 354 네트워크 세계에서 자치를 고수한다는 것은 단절과 고립을 의미한다. 반면, 배제되지 않을 권리, 곧 접속의 권리는 개인적 자유를 재는 잣대가 된다. 정부는 사람들이 그 속에서 의사소통을 하고 어울리고 상거래를 하고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수많은 네트워크에 모든 개인이 접속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러나 점점 확대되는 글로벌 네트워크 세계에서 정부가 과연 누구나 접속의 권리를 누리도록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p 362 자본주의 체제가 앞으로도 계속 문화 영역을 상당 부분을 상업화된 문화 상품, 공연, 체험의 형태로 자기 영역 안으로 흡수할 경우, 문화가 더 이상 사회 자본을 충분히 생산하지 못할 만큼 위축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고 그렇게 되면 경제도 타격을 받는다. 어디까지나 문화에 의해 생산되는 사회 자본은 경제의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사회 자본이 고갈되면 문화와 상업의 섬세한 균형은 무너져버린다.
p 363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체험이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모의 현실로 자꾸만 옮겨가고 그 속에서 체험을 문화 상품으로 구입하는 추세가 일반화될 때 공감 능력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화면 앞이나 가상 세계 안에서 성장한 세대-그들의 상호 소통은 기술과 상징의 두꺼운 층위를 통해 이루어진다-가 남들과 또는 다른 생명체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모사의 세계에서 사람은 공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p 364 서로에서 공감하지 못하는 세대는 문화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다.
p 376 많은 미국 학교가 오래전부터 핵심적 교육 목표로 표방해 온 경쟁력 있는 기술의 습득은, 마차를 말 앞에 놓는 것처럼 본말이 전도된 발상이라고 시민 교육 이론가들은 비판한다. 시장에서 자기의 노동력을 팔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것은 21세기 교육 이념으로는 지나치게 옹색하다. 이런 교육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 의식을 가진 균형 잡힌 인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남에게 팔아먹을 수 있는 재산쯤으로 치부하는 어른을 양산한다. 시민 교육 옹호론자들은 문화를 자기 삶의 중요한 일부로 여길 수 있도록 학생의 자기 정체성을 심화 확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교육은 사회적 신회와 공감을 육성하고 타인과의 유대를 권장하며 문화가 문명 생활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는가를 학생에게 일깨워주어야 한다. 시장이 문화의 파생물인 것처럼 시장성을 가진 기술도 기본적인 사회성의 파생물이다. 시장에서 팔아먹을 수 있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수적인 조역에 그쳐야지 시민 교육을 희생시키면서 맨 앞자리를 차지해서는 곤란하다.

제 3부분의 정치 세력화
p 383 많은 시민 사회 조직의 정서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에 집약되어 있다. ‘나는 사방이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창문을 굳게 닫아놓은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 온 세계에서 불어오는 문화를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밖에서 불어온 문화에 덩달아 휩쓸려 가지는 않겠다.’
p 390 진정한 자유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에서 나온다. 공유하고 공감하고 포용할 수 없으면 사람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p 391 새로운 글로벌 네트워크 경제에 대한 접속을 보장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은 건강하고 다양한 지역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안정된 길을 보장하는 것이다...문화와 상업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일은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 접속의 시대는 ‘ 우리는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하는가’ 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 것이다. 접속이라는 것은 참여의 수준만이 아니라 참여의 유형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누가 접속권을 얻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과연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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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 한정화
2007.04.04 07:09:40 *.72.153.12
저자 조사하느라 님의 리뷰를 참고 합니다.
전 노동의 종말을 읽고 있는데... 책 읽기전에 저자를 더 잘 알고 싶어서 들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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