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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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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28일 23시 17분 등록
1. 저자소개 (유홍준)

<수졸당(守拙堂)>

"짓고 싶은 집의 조건은 일반적인 건축비의 수준으로 짓되, 생활하는 기능이 아파트보다 편리하고 여섯 식구를 위한 방 5개를 둔다는 정도였다. 덧붙여 분위기가 한옥보다 아늑하고 공안 분할이 유기적이어서 외형이 화려하기 보다는 조용하고 단순한 가운데 멋이 있는 집을 원하였다. 정말로 좋은 집을 지어 그 집이 우리 시대 일반 주택의 한 전형이 되어 주거 양식을 새롭게 전환시킬 수 있는 일종의 모델하우스가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이었다." (유홍준)

"살기 좋은 집이라는 의미는 식당, 화장실, 방 등이 거실을 둘러싸면서 얼굴만 돌리고 손만 내밀면 접근되는 기능적 구성을 갖는다는 것은 아니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나가서 대문을 열어 주고, 손으로 문을 여닫으며, 물을 길어오고 불을 지피며, 좀 일어서서 걷고, 가서 직접 얘기하고, 빗자루로 쓸고, 걸레로 훔치면서, 생각하면서 살 수 있는 집, 생각하게 하는 집이 바로 좋은 집이다." (건축가 승효상)

수졸당. 현재 유홍준 선생이 살고 있는 서울시 학동의 집에 붙인 당호이다. 이 집을 의도한 유홍준 선생과 그것을 실현시킨 승효상씨의 얘기처럼, 수졸당은 공간 배치와 인테리어, 집 이름에 이르기까지 아주 탐이 나는 곳이다. 책에서 만난 유홍준 선생의 이미지보다는 다소 세련된 현대식 집이라서 의외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원하는 분위기의 집을 구하고 그에 걸맞는 이름을 붙이는 솜씨는 유홍준 선생답다.
이 책을 보면서 흥미롭게 건져내었던 것들 중 하나가 화인들의 호였다. 대개 당호로 호를 삼은 것들이 많이 있는데, 앞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나 어울리는 모습을 담아 이름을 정하고 뒤에는 재(齋), 원(園), 관(館) 등을 붙여서 본인 또는 본인이 사는 집의 이름으로 삼았던 모양이다. 참으로 운치있는 모습이다. 나도 훗날, 집 앞이든 방 앞이든 어울리는 이름 하나 붙여 놓고 즐겨볼 생각이 들었다.

(* 공간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승효상씨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유홍준 선생에 대한 正과 反>
이제서야 안 얘기지만, 2003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선임하려던 시기에 그 후보자 중의 한명이었던 유홍준 선생을 두고 꽤 많은 설전이 오갔던 모양이다. 문화재의 대중화에 큰 공헌을 한 선생을 지지하는 여론이 있었던 반면, 선생의 경력과 자질(그 동안 저서에서 나타난 적지 않은 오류들에 대한 지적과 대중화에 따른 가벼움 등)을 고까운 시선으로 바라 보았던 전문가 집단도 있었고 근거 없는 정치세력의 공격도 만만찮았다. 결국 뭇매를 견디다 못한 선생의 자진 사퇴로 사건이 일단락 되기는 했지만 어느 쪽의 시선이 옳았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완당평전에서의 200여가지 오류’에 대한 얘기는 세세하게 알아볼 수가 없지만, 학자들 사이에서 자질논란을 일으킬 만하다. 하지만 유홍준 선생이 하고자 한 바가 ‘전통미술의 대중화’라고 한다면 그러한 오류들 보다 그 책들을 통해 일어난 우리나라의 과거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 더 비중을 둬야 할 것이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이후에 일어난 대중들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의 덕을 유홍준 선생 혼자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학자들은 오히려 그의 실수와 부족함을 채워 주어 더 근거 있는 내용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긍정적 질책을 해주는 것이 더 마땅하겠다.


2. 내 안에서 재창조된 생각들

<서예, 시, 그림>
완당 평전을 읽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서예에 대한 충동이 화인열전을 보여 일었다. 특히 윤두서의 수려한 솜씨를 보며 ‘글씨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래 전부터 서예를 즐기시던 아버지 옆에서 슬쩍 한번 흉내를 내볼까 한다. 옛 선비들은 어려서부터 붓을 잡았을 터인데 서른이 넘은 나이에 서도를 깨우치려면 얼마나 걸릴지 아득하기만 하다.

시를 읽는 맛도 들였다. 시는 눈으로 읽으면 안된다. 나에게만 그러한 지는 모르겠으나, 시를 읽으려면 조용한 곳에서 소리를 입 밖으로 내며 분위기를 살려가며 읽어야 제 맛이다. 현대시는 잘 모르겠으나, 옛 시는 이렇게 제멋대로 운율도 살려보고 목소리도 비슷하게 내보며 읽으면 어렴풋이 그 느낌이 전해져 온다. 시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깨우친 순간이다.

동양화를 그려 보고 싶었으나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대신에 깊은 맛이 나는 커다란 동양화 한폭을 가져 보고 싶다.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이는 그런 그림 한 점 욕심이 난다. 겸재의 진경산수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고 단원의 대작들을 볼 때에도 그러하였다. 정말 겸재와 단원의 그림은 ‘점점 다가서며’ 보게 되며, ‘엊그제 그린 것’ 같다.

<대가의 삶>
소위 천재라 불리 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生而知之라는 말이 어울린다. 나면서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이고 굳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몸으로 깨우친 바가 있다. 아마도 단원 김홍도가 그러했던 모양이다. 당대 최고의 감식안이었던 표암 강세황이 나이를 반으로 꺾으면서 까지 함께 지내고자 했던 재능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천재는 더러 있을 수 있지만 대가(大家)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천재가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수한 자기 수련이 있어야 하기에 그렇다.

유홍준 선생이 화인 열전을 통해 드러내려 했던 대표적 인물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 겸재와 단원이었을 것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시대의 인물이지만 대가로 성장하는 길은 비슷했다. ‘40대까지는 수련과 연찬을 성실히 수행하다가, 50대에 와서야 비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되었던’ 것이다. 2,30대에는 치밀한 묘사로 그림을 만들어 냈지만, 50대를 넘어서는 과감한 필치와 생략으로 변신하는 것 또한 비슷하다. 그리고 완당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아마 이러한 과정이 대가의 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연구원 생활은 수련의 연속이다. 이는 연구원이 끝나도 그러할 것이다. 매일 읽고 매일 쓰는 것이 수십년간 반복되어야 나의 진액을 우려낼 수 있다. 그간의 조급함을 반성하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옛 성현들의 가르침이 고마울 뿐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처음에는 8人의 화인들을 선정한 배경에 대해 어떤 기준이 있었는지 궁금했으나, 읽고 나니 미술사적 흐름에 따른 구성임을 알 수 있었다. 겸재에서 한번 수용되고 단원에서 완전히 종합되는 영,정조 시대의 문예부흥의 분위기를 일반인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풀어 주었다. 더욱이 작품 중심이 아닌 화인 중심의 구성을 통해 자칫 그림이 겉돌 수 있는 미술평론서의 한계를 잘 극복한 작품이라고 보여진다. 또한 실증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저자의 상상력을 동원한 예측도 개인적으로는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다만 이 부분은 전문가들의 충분한 검증을 받으며 고쳐나갈 필요는 있을 것이다.

능력이 된다면 호에 대한 연구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사람들의 멋이 느껴지는 부분 중의 하나라고 생각 되는데, 찾아 보다 보면 나에게도 어울리는 이름도 하나 있지 않을까 싶다.


4. 내안에 들어온 글들

<5>
화가라는 말 대신 화인이라고 한 것은 이들은 현대적인 개념의 화가라기 보다는 시인, 문인처럼 사람 인자를 붙이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8>
문장가에는 삼품(三品)이 있는데 신품(神品), 법품(法品), 묘품(妙品)이 그것이다. 이것을 화가에 비유해서 말한다면 연담은 신품에 가깝고, 허주는 법품에 가깝고 공재는 묘품에 가깝다. 이것을 학문에 비유하자면 연담은 태어나면서 아는 자(生而知之), 공재는 배워서 아는 자(學而知之), 허주는 노력해서 아는 자(困而知之)이다.

<68>
공은 제가(諸家)의 서적을 연구하되 다만 문자만 강구하여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는 천박한 학문의 자료로 삼는 데 그치지 않았다. 반드시 정확히 연구,조사하여 옛사람이 말한 바의 뜻을 파악하여 스스로 몸으로 체득하고 실사(實事)에 비추어 증험했다. 그러므로 배운 바는 모두 실득(實得)이 있었다.

<152>
그림을 보고서 그림을 베끼는 것은 잘못이며, 대상을 직접 보고 그려야만(卽物寫眞) 살아있는 그림이 된다. (책에서 구할 것과 현장에서 구할 것이 따로 있기 마련이다)

<162>
관아재의 4욕론
사람에게는 네가지 욕망(四慾)이 있으니, 생욕(生慾), 색욕(色慾), 관욕(官慾), 재욕(財慾)이다. 이 4욕은 사람마다 모두 마땅히 힘써 경계해야 할 바이며 특히나 관직에 있는 사람은 더욱 빠지기 쉬운 것이다.
혹은 갑자기 불행한 일이나 변란을 당하면 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 명예와 절개를 보존하지 못하고, 혹은 사치스러움과 여색에 빠져서 정사(政事)를 망가뜨리고 이름을 더럽히고, 분주히 뛰어다니면 청렴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혹은 관의 재물을 절약해서 쓰지 않아 백성들을 땀에 찌들게 하는 것은 모두 한 가지 마음에 있는 것이다.
고로 나는 20년 가까이 관직생활을 하면서 항시 스스로 조심하고 조심하여 감히 이 네가지를 잃지 않으려고 했고, 혹은 지금까지도 잃을까 걱정해 왔다. 그리고 늙으면서 의지가 점점 약해지고 감정이 여려지니 늙도록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는 방심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에 글로써 스스로를 살핀다.

<225>
요즘 세상에 이런 문사, 화가들의 교류가 과연 있기는 있고 또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하는 부러운 생각마저 든다.

<230>
그러나 겸재가 섣불리 자기 개성을 드러내지 않고 이처럼 고전을 차근차근 방작하는 중년의 겸손과 성실성을 거쳤기 때문에 훗날 자신의 개성에 힘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257>
나는 겸재의 <금강전도>를 볼 때마다 위인의 크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금강전도>의 세부묘사는 대단히 치밀하다. 흔히 선이 굵고 스케일이 큰 화가는 디테일을 가볍게 처리하는 것이 상례인 줄 알고 있지만, 대가의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259>
위대한 장편소설은 어느 쪽을 펼쳐 읽어보아도 재미있고, 위대한 건축은 외형 못지않게 내부가 아름다우면, 위인의 삶은 선이 굵은 만큼 작은 일에도 따뜻한 마음씀이 있다는 것을 <금강전도>에서 그대로 느끼게 된다.

<268>
모든 명화는 바로 엊그제 그린 것 같다

<316>
인생과 예술에는 준엄함이 있어 만년의 원숙한 경지란 반드시 중년의 치밀함과 성실성을 경험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중년 시절에 만년의 작업을 시도했다면 그것은 불성실이고 일시 성공한다고 해도 조로(早老)하고 마는 법이다.

2권
<15>
영조시대의 선비화가인 3재에 의해 개척된 그림의 새로운 지평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정조시대 이후에 일반화되어 3원을 비롯한 도화서 화원이라는 일종의 테크노크라트에 의해 확산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 조선 후기 회화사의 큰 흐름이며, 이는 영조와 정조시대 문화적 성격의 중요한 변별점이 된다.

<53>
현대미술에서 대부분의 화가들이 국제적 유행양식을 추종하는 것에 급급하여 자기예술을 만들어내지 못했음에 비해, 수화 김환기와 고암 이응로가 보여준 예술 세계는 우리 현대미술사의 가장 빛나는 부분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듯이, 심사정은 중국 그림을 모방하면서 그것을 단순히 수평적으로 이동하거나 물리학적으로 이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화학적 반응에 의한 재창출이라고 할 만큼 자기화하였다는 데 중요한 미덕이 있는 것이다.

<89>
옛 사람들의 묘처(妙處)는 졸(拙)한 곳에 있지 교(巧)한 곳에 있지 않으며, 담(澹)한 것에 있지 농(濃)한 것에 있지 않다. 근골기운(筋骨氣韻)에 있지 성색취미(聲色臭味)에 있지 않다.
- 노자의 말씀중에 ‘큰 재주는 졸해 보인다’라는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는 구절을 연상케 한다.

<169>
정조시대 문예 부흥을 상징하는 인물로 사상에서 다산 정약용이 있고 문학에서 연암 박지원이 있다면, 예술에선 단원 김홍도가 있는 것이다.

<257>
단원의 그림은 점점 다가서서 보게 된다.

<272>
이것은 겸재 정선이 50대에 들어와 일으킨 자기 변신과 똑같은 과정이다. 40대까지는 수련과 연찬을 성실히 수행하다가, 50대에 와서야 비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대가들의 이런 모습은 이 시대 우리들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288>
사람 사는 것이 어찌 부귀함만을 좇을 것이며, 높은 벼슬인들 어찌 마음이 즐겁고 정신이 기쁜 것이리요. 한때 뜻에 맞음을 얻어 마음과 눈이 상쾌해지며 작은 족자 하나에 천리의 생각을 둘 수 있는 것이니, 만종(萬鍾)의 녹이야 가을 털끝보다 더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이다.

<296>
단원의 작품에 가짜는 있어도 태작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자기 작품에 책임을 졌다.



5. 책속의 작은 발견

조르조 바사리 ‘미술가 열전’(가장 유명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의 일생)
인간학으로서의 미술사
신품, 신필
마누엘 가써 ‘거장들의 초상’
조선 당쟁사를 읽어 볼 것
녹우당 – 이름 멋지다.
반계-공재-성호-다산 : 실학의 줄기
화가마다 자신이 잘하는 영역이 있듯이 사람도 마찬가지
오세창 - 근역서 화징 (집에 있어서 다행이다)
주역을 뜻밖에 여기서 만나다. <장주묘암도>
한자를 읽을 줄은 알되 점점 쓸줄을 모르게 된다.
호에도 유행이 있었던가? 재-관-원, 게다가 모두 집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우리 문화는 그림과 글이 분리되지 않았다.
破天荒, 절년이하지 (折年而下之)
한자로 사명을 적어볼까
도장은 동양의 문화인가?
IP *.29.236.21

프로필 이미지
귀한자식
2006.05.29 08:58:37 *.145.123.218
유홍준 선생에 대한 정리와 재창조된 생각이 맛깔나면서도 깔끔하게 정리됐습니다.

같은 화인열전을 읽었지만, 느낌은 많이 다르네요.
저는 리뷰를 쓰면서 어떻게 정리할까만으로 책과 내 생각안에서 허우적댔다면
경빈마마는 말그대로 '그대 안에 재창조된 생각들'이어서
이게 내공의 차인가 하고,
약간 질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ㅎㅎ
프로필 이미지
도명수
2006.05.29 09:29:50 *.57.36.34
경빈님 나도 지금 이책을 읽고 있는데
화인들의 삶이 애처롭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비친 그림과
이름을 남긴 사람이기에

우리의 부러움을 사기에 족합니다.
우리 경빈님도 이런 이름의
집과 뜰 그리고 마당에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경빈제' 경치좋고 청빈하며 아담한 집
거기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
명작이 나오지 않을 까요

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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