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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2일 16시 42분 등록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원제 Opening Skinner's Box : Great Psychological Experiments of the Twentieth Century (2004)

-로렌 슬레이터 (지은이), 조증열 (옮긴이) | 에코의서재

- 로렌 슬레이터 (Lauren Slater) -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작가, 칼럼니스트, 하버드 대학과 보스턴 대학에서 심리학 석.박사 학위를 마쳤으며, 정신과 진료서 에프터케어 서비스의 소장으로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등이 있다.


1.
1964년 뉴욕에서 잔혹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시내에서 젊은 여성이 괴한에게 무자비하게 살해된 것이다. 그런데 이 살인사건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된다. 바로 이 사건의 목격자가 38명인데, 아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 범인과 목격자들 간에 연결고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사건을 외면했고 젊은 여성은 난도질당한 채 죽어야만 했다. 왜 그랬을까? 38명의 사람들은 왜 신고하지 않았을까?

1970년 데이비드 로젠한은 정신과 의사들이 정상인과 정신병 환자를 제대로 구별할 줄 아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을 포함한 정상인 여덟 명을 정신병자로 위장시켰다. 그리곤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쿵’ 소리가 들린다고 말을 했다. 당시는 정신 의학이 한창 전성기를 누릴 때였는데 로젠한은 정신 의학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어쨌든 ‘쿵’ 소리가 들린다는 위장 환자들의 속셈을 병원은 알아챘을까? 알아챘다면 몇 명이나 알아챘을까?

2.
로렌 슬레이터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사람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고도 남을 풍성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물론 이 책은 최근의 심리학 책들이 알려주는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들, 예컨대 대화 도중에 상대편 심리를 파악한다거나 옷차림새를 보고 기분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일상에서 이용할 수 있는 심리적인 내용들은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내용들을 담고 있다. 바로 20세기 인간들을 지배했던 패러다임에 정면 승부를 걸었고 사람들을 놀래켰던 심리 실험들 열 가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은이가 책에 담은 10장면은 어떤 것들일까? 먼저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장면이 있다. 먼저 목격자가 38명이나 있었음에도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던 장면이다. 목격자의 수가 알려지면서 미국인들은 흥분한다. 윤리적으로 그럴 수가 있느냐며 그들의 신원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일었을 정도다.

젊은 심리학자 존 달리와 빕 라타네도 이 사건에 흥분한다. 그들은 심리학자답게 증인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에 관심을 갖게 되고 조사에 착수했다. 당시 흥분한 사람들은 이들이 무관심했다고 화를 냈다. 하지만 두 명의 심리학자는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이들은 무관심했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굳이 정리하자면 38명 모두가 누군가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행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실험 결과를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실험을 실시한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은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생소했던 주장을 펼치게 된다. 그것은 무리의 수가 많을수록 안전감이 커진다는 진화설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으로, ‘방관하는 집단으로 인해 도움을 주는 행위가 억제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수백 명의 사람이 있는 도시에서 위기에 처할 때보다 사막에서 동행하는 사람이 한 명일 때 모래 폭풍에 휘말리게 되면 그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확률(85퍼센트)이 더 높다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실험 결과가 이끌어낸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3.
두 번째 장면을 보자. 첫 번째 장면에서 달리와 라타네가 우연히 지배중인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결과를 얻었다면 로젠한은 의도적으로 패러다임에 도전했다. 그리고 원하는 성과를 얻게 됐다. 어떤 병원도 환자를 가장한 정상인을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병원의 환자들이 기자나 교수가 아니냐고 묻고 당신은 정상이냐고 말했던데 반해 의사들은 치료를 운운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정신 의학이 황금 시절을 구가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수천 달러의 돈을 거둬들였다. 더군다나 누구도 공개적으로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는데 로젠한이 나선 것이다. 만약 로젠한의 실험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쩌면 정신 의학의 황금시절은 오늘날까지 이어졌고 사람들의 병원비 지출 목록은 전혀 다른 내용으로 구성됐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지은이가 뽑은 대로 위대한 심리 실험의 한 자리를 차지할 만하다.

다른 장면들 역시 실험의 파괴력만큼이나 흥미롭다. 제목으로 인용된 스키너는 딸을 상자 속에 집어넣어 실험을 했다고 알려진 인물인데 그것은 자유 의지가 아니라 통제로 인간을 만들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상상하면 끔찍한 일이지만 스키너는 그것에서 깜짝 놀랄 만한 주장을 이끌어내 세상을 놀라게 한다. 가짜 충격 기계로 사람들의 복종을 실험하려고 했던 밀그램이나 원숭이 실험으로 사랑의 본질을 알아보려했던 해리가 보여준 장면 등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장난스러워 보이고 기괴해 보이기도 하지만 오늘날까지 영향을 끼치는 결과물들을 만들어냈던 놀라운 실험들이었다.

지은이는 그 실험의 장면들을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또한 단순히 실험 장면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스키너의 딸을 추적하는 것이나 반대 의견을 내놓는 학자들과의 인터뷰 등 그것을 적절히 소개하는 등 실험을 생생하면서도 다각도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고 있다. 그렇게하여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심리를 알고 싶어 몸부림쳤던 20세기의 천재들을 효과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까지 마련하고 있다.

4.
한때 이라크 포로에 대한 미군의 가혹행위를 담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세상이 벌컥 뒤집어졌던 일이 있었다. 언뜻 생각하기엔 학대자 개인의 잔인함에 혀를 내두르다, 이것은 미군이라는 엄청난 권력을 지닌 힘의 우월성을 가지고, 그것을 최대한 누려보고픈 욕망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그런데 어느 잡지에서 이런 잔혹함이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과 함께 스탠리 밀그램의 심리 실험을 예시로 들었다. 인간이란 불합리한 명령앞에서도 얼마나 복종을 하는지 보여주는 이 실험을 통해 미군의 잔혹성과 함께 나치의 비인간적 행위가 어떻게 가능했었을까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인간이란 자신의 의지보다는 상황의 논리에 의해 행동이 선택되어진다는 측면을 이해했다고 할까... 이런 상황의 논리는 이 책 3장의 달리와 라타네가 행한 실험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밀그램의 실험에서 권위에 복종한 사람은 대략 65% 정도였다. 사람들은 이 65%라는 숫자에 현혹되어, '나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아마 그랬을 수도 있을거야' 라고 넘겨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머지 35%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머지에 대한 설명은 어는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의 심리학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기 위한 논거로 짤막한 예시를 통해 접해왔기 때문일까? 실험에서 드러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향 이외의 사람들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바로 이런 부분에 메스를 들이댄다. 그 이외의 사람들, 실험의 주류를 형성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설명을 차곡차곡 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실험이 끝나고 나서 피 실험자들에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추적하는 것은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심리 실험이 가져다준 압박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 경로가 뒤바뀌어 버린 사람, 그리고 주류를 형성했던 행동을 선택한 사람이, 실험이 끝난 후 비슷한 상황에서 비주류로 바뀌어버렸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심리실험을 행한 사람들에 대한 오해를 씻어내고자 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부분 또한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6.
이 책은 20세기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심리실험 10가지를 이야기 형식으로 맛깔스럽게 써내려간다. 이 책의 흐름이 심리에서 뇌로 변해가듯, 심리를 바라보는 세상의 관점도 유심론적 측면에서 뇌생물학쪽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다. 다만 이런 흐름이 환원주의를 넘어서 기계론적 환원주의로 흘러가지 않을까 못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즉, 우울증이나 경계성 장애 등등의 여러가지 정신병을- 이 책에선 또한 정신병에 대한 진단이 얼마나 허구일 수 있는가도 보여준다. 뇌의 일정부분의 고장으로 발생한 것으로 치부하고, 이런 병에 뇌의 이런 부분을 제거하면 된다는 식의 치료방법이 횡행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환원적 방법을 통한 치료가 어느 정도 성과를 가져온 것을 현실로 목격하고 있고, 그것이 당사자에겐 희망으로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이해와 치료가 어떤 부작용이나 오해를 가져오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을 가질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좀더 차분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실은 이런 환원적 사유가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황우석 박사의 사건이 가져다준 희망과 절망의 희비극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유도 되지 않을까 싶다. 만병통치약에 대한 인간의 숙원, 그리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진리에 대한 염원. 정말 가능한 일일까?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를 읽으면서 아직도 오리무중인 인간 심리에 대해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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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6.09.03 10:44:29 *.81.19.1
아, 이 책이 이런 내용이었군요. 언젠가 읽으려고 한 책 리스트중에서 이 책과 '미학 오디세이'를 재엽씨의 리뷰로 대체하고 읽지 않으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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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엽
2006.09.03 23:10:37 *.106.85.232
그런데 재미있는것은 최근에 저자인 로렌 슬레이터에 대한 비판의 글들이 영국의 가디언지와 미국의 워스트리트저널에 실렸다는 것입니다. 사실성의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다는 것이지요. 제가 보기엔 그 논란의 글들 자체가 이 책을 오독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암튼 굉장히 재미있는 글입니다. 그리고 저자가 직접 '발로 뛰면서 쓴' 부분들이 참 인상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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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엽
2006.09.03 23:13:13 *.106.85.232
한선생님. 아닙니다. 아니에요. 두 책들 다 뛰어난 책들이라 제가 오독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두 책을 읽으며 '난 언제 저렇게 쓸까? 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저의 글과는 비교도 안되는 재미있고 훌륭한 책들입니다. 직접 읽어보세요- 그리고 글도 올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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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6.09.07 11:40:02 *.145.125.146
리뷰만 봐도 재밌는 책이네요.
이책은 저도 한번 읽어보려 했는데..저도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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