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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4일 13시 57분 등록
10장

혼백을 싣고
그 하나를 부둥켜안고서
떠나 보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아무리 기운을 부드럽게 만들어도
갓난 아이처럼 나긋나긋해질 수 있겠는가?
하늘의 문을 열고 닫음에 있어
여인의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자만심 없이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생명을 낳고 기름에 있어
만들되 소유하지 않고
일을 하되 공을 인정받으려 않고
이끌되 조정하고 지배하지 않는

이를 마음에 새긴 사람이야말로
이 땅에 도를 가져온다.
이를 일러 현덕이라 한다.


하나되는 삶(Living Oneness)

도덕경의 이 장은 이 땅에 존재하는 삶의 역설적인 성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노자는 우리 일상의 근본을 구성하는 육체와 정신처럼 겉보기에는 상반된 것들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라고 다독인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게 될 필멸의 육체 속에 살고 있는 동시에 영원한 도의 (무한한) 힘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이렇게 애매해 보이는 자세로 서서 결점 없이 완전한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완전무결하게 보이는 모든 것은 그 모순적인 실체를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이 장의 가르침은 이어지는 질문의 형태를 띄고 있다. 노화의 운명을 타고난 성인의 몸(단단히 굳고, 통증이 느껴지고, 관절통에 의해 움직임이 제한되는 등)이 갓 태어난 아이의 몸처럼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만물을 낳음에 있어 일하고 애쓰면서 여전히 여성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러한 것들에서 성공하고도 자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아를 잘 다스리고 도에 맞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 10장은 이중성의 환상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세상에서 '하나를 껴안는' 힘이 이끄는 삶의 방식을 권한다. 같은 주제로 쓰여진 하피즈의 시를 읽어보자.

오직

모호한 것이 분명해지도록
끊임없이 유혹하는

저 밝게 비춰진
하나만이

내 심장을 빼앗을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언제나 '둘'이라는 말을 비웃던

오직 완전한 하나만이

너에게 사랑을 알게 할 수 있다.

우리의 근원(origin)은 나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든 사람이 완전한 하나인 도를 너무나도 자주 거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서로 반대되는 것을 믿는 대신에 그들이 하나로 어울리는 이치를 깨달음을 통해 개인적으로 도를 실천할 수 있다.

이것이 노자가 2,500년 전의 관점으로 우리에게 주는 충고에 대한 내 나름의 해석이다.

여러분이 만나는 타인의 안에서 스스로를 발견함으로써 하나됨을 끌어 안아라.

여러분이 이질적이거나 다르다고 간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 대신에 그들을 여러분 자신의 연장이라고 생각해보자. 이런 생각은 자만심을 줄여줄 것이고 여러분을 노자가 현덕(the primal virtue)이라고 말한 그것과 하나가 되게 할 것이다. 자아가 지배하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하나됨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모든 것을 끌어안는 도의 한 부분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된다.

어떤 사람 혹은 어떤 집단의 사람들을 비평하고 싶을 때마다 내면의 깨달음을 실천하라. 다른 사람에 대해 단절되거나 우월한 느낌이 들도록 자극하는 뉴스를 보는 것은 이러한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뉴스에 등장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을 여러분 자신이라고 생각해보라. 누군가를 미워해야 하는 상황들 속에서 이러한 부정적인 판단들을 멈추도록 노력해보자. 그리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서 한 번(혹은 두 번) 생각해보자. 갖가지 모습의 생명체가 되어서 이렇게 역지사지를 실천해보자. 심지어는 나무나 풀이 되어보기도 하자. 이 간단한 관찰 속에 들어있는 도에 주목하면서 모든 사람 그리고 모든 창조물 속에 비친 여러분을 바라보라. 우리가 바로 세상이다.(We are the world)

가진 것에서 즐거움을 누리되 집착하지는 말아라.

여러분의 재산과 성취를 통한 신분 따위는 잊어버려라. 대신 여러분이 하는 일 그리고 (여러분의 삶으로 흘러 들어오는) 행하고 지켜보는 그 자체만으로 즐거운 모든 흐름(flow, 이건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을 즐겨라. 여러분은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또 아무도 소유할 수 없다. 한 번 모인 것은 반드시 헤어지기 마련이다; 한 번 여러분의 손에 들어왔던 것은 다시 여러분을 떠나 다른 사람의 것이 된다. 그러니 한 걸음 물러서서 이 물질의 세계를 지켜보라. 이렇게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은 소유에 대한 집착을 느슨하게 해주는 동시에 여러분을 환희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이 놓아주는 과정(releasing) 속에서 여러분은 도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지금 도를 행하라.(Do the Tao Now)

예전에는 이중적(개별적)으로 보이던 것에서 하나됨을 발견하는 연습을 해보자. 여러분의 심장을 두드리는 보이지 않는 힘을 느껴보라. 그리고 동시에 모든 생명체의 심장을 두드리는 그것에 주목하라. 이제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보이지 않는 힘을 느껴보아라. 그리고 그 힘이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 똑같이 작용하고 있음을 깨달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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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이는데,
그 가운데에 빈 구멍이 있음으로
수레의 쓸모가 생겨난다.

흙을 빗어 그릇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에 빈 공간이 있음으로
그릇의 쓸모가 생겨난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데,
그 비어있음으로 방의 쓸모가 생겨난다.

있음(有)이 유용함은
없음(無)에 달려있다.


비움으로 사는 삶(Living from the Void)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 도덕경의 11장에서 노자는 종종 간과되는 빔(無)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는 바퀴통의 중심에 비어있는 구멍, 그릇 내부의 빈 공간 그리고 창이나 문과 같이 방의 빈 요소 등의 이미지를 통해 이러한 생각을 설명한다. 그리고는 "있음(有)이 유용함은 없음(無)에 달려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달리 말해서 각각의 나뉘어진 부분들은 그 중심이 있어야 유용해진다.(or 채워진 것들은 빈 공간을 통해 유용해진다.) 이 장은 우리 존재의 중심에 자리잡은 보이지 않는 그 빈 공간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즉, 삶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라고 이른다.

여러분 자신의 존재(beingness)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봄으로써 비존재(nonbeing)라는 역설적인 개념을 고찰해보자. 여러분은 마치 거푸집처럼 모양을 유지해주는 피부로 둘러 쌓인 뼈, 장기 그리고 피의 흐름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이런 신체 기관들 속에 자리한 '나'라는 존재를 '남'과 구분 짓는 분명한 본질이 있다. (여러분을 분해해서 신체의 각 구성 요소들을 담요 위에 펼쳐놓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여러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신체의 부분들을 하나로 모아놓는다고 해도 그 유용함은 비존재 즉 노자의 표현대로라면 빔(無)에 달려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지금 있는 방의 모든 벽과 천장을 따로 분리해서 그 안에 들어있는 모든 물건들과 함께 일렬로 늘어놓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그 중심의 빈 공간이 없다면 다른 모든 요소들이 그대로 존재한다고 해도 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흙으로 만든 화분은 그 흙이 감싸고 있는 빈 공간이 없이는 화분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외장재가 둘러싸고 있는 내부의 공간이 없다면 집이라고 할 수가 없다.


한 작곡가는 음표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이 음표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을 내게 들려주었다. 그는 음악을 음악일 수 있게 하는 것은 음표와 음표 사이에 있는 빈 공간이라고 말했다. (만약 빔(無)이 없다면 음악은 그저 끝없이 이어지는 소음에 불과할 뿐이다.) 여러분은 이 작은 깨달음을 여러분의 일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일들에 적용해볼 수 있다. 여러분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라. 나무를 나무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껍질? 가지? 뿌리? 잎사귀? 그것도 아니라면 열매? 이 모든 것들은 노자가 말한 있음(有)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것들만으로는 나무가 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나무가 나무일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빔(無)이다. (여러분의 오감을 교묘히 벗어나는, 느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삶의 기운) 여러분은 나무를 자르고 나누어 그 세포 속까지 끝없이 살펴볼 수는 있겠지만 결코 그것을 찾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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