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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3일 04시 04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서양화가. 1946년 4월 24일 개성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시청각교육학과 졸업. 홍익대학교대학원 서양화과 석사.
1988년 예술평론가협회 미술부문 올해의 예술가 (1987-1988) 상 수상.
1972년 파리 비엔날레 출품 후보선정.

스스로를 ‘디지로그’ 작가라고 칭한다. “컴퓨터를 이용했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완전히 인간적이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인 거.” 라고 말하며 컴퓨터 그림, 유화, 유화와 컴퓨터를 합성한 그림을 그린다.

그가 생각하는 화가는 그림 그리는 육체노동자다. 1983년 첫 전시회를 가진 후 2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개인전을 열었다. 1998년 <나, 김점선> 출간. 오십견 때문에 붓질이 어려워지자 컴퓨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 사방 10cm 태블릿에 펜으로 그려낸 디지털 그림 작업에 매혹되다. 2002년 디지털 그림들에 개인사를 풀어낸 책 출간. 2003년 6월 ‘30회 개인전’(스타타워 갤러리)에서는 수록된 디지털 그림과 그 후에 그린 디지털 화투 그림을 모두 전시하였다.

『“아동화와 피카소, 마티스의 그림이 비슷한 것 같아도 차이가 뭐냐 하면 아이들은 감성만 갖고 그리기 때문에 어떤 어른이 뭐라고 하면 방어를 못 해. 반면 대가들은 욕을 먹어도 확신이 있기 때문에 방어를 해. 어릴 적의 감성을 나이 60, 70까지 가지고 가되 그에 대한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지.” 김씨는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의 좋은 감성을 나이 40, 50이 될 때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침해받고 억눌리고 상처받은 채 꺾여버리는 것”이라 말했다. 또한 자신이 “그 감성, 단순함을 이어온 것은 끈기”라 말했다. 과거 그의 끈기를 가장 먼저 알아본 이들은 얼리어답터적인 그림을 찾던 콜렉터들이다. 30년 전 '물감값 없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물감을 두껍게 바르는 화풍이 지배적이었던 화단에서 김씨는 맑고 깨끗한 느낌의 수채화 같은, 유화임에도 유화 같지 않은 그림을 그려 주목을 받았다.』<우먼뉴스>

한문학자 정민 선생은 ‘불가무일 불가유이’(한 사람쯤 없을 수 없지만, 둘이 있어서는 곤란한 사람)라고 그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기도.

1972년 홍익대학교 대학원에 입학. 그해 여름 처음 앙데팡당 전이 열렸다. 제 8회 파리 비엔날레 참가자를 뽑기 위한 공모전이었는데, 주제는 극사실주의와 관념예술이었다. 관념예술에 속하는 작품을 출품했고 뽑혔다. 화려하게 화단에 등단한 것. 그러나 곧 관념미술에 염증을 느꼈고 미련 없이 찬란한 무대에서 내려와 버렸다. 그 후 전통적인 그림들,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형상이 있는 그림들을 그렸다. 빨간색 물감으로 도룡뇽을 그리고 말을 그렸다. 그림 속에 글씨도 썼다. 흑색과 백색이 지배하던 당시 한국화단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혹독한 비판과 찬사가 동시에 쏟아졌다. 1977년 결혼했고, 1979년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생존의 절박함 속에서 매일매일 그림을 그렸단다.

시력이 나빠진 이유의 2/3가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까닭이라고 하는 사람. 눈을 작게 떠서라도 글자가 보이면 읽었고 앞이 캄캄해지면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더라고 체험을 말하는 사람. “의학자들에게 24시간 책을 읽어도 눈물이 안 나는 인공눈을 만들어 달라고 항의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글쓰기에 투신했던 젊은 날도 있었다. 신춘문예에 30번도 넘게 떨어지면서도 작가가 되기를 열망했던 그녀는 “작가는 큰 스토리를 만들어 내야하고 화가는 하나의 캔버스로 완성 될 수 있다”며 “나는 화가 밖에 될 수 없구나. 슬프지만 받아드렸었다”고.

저자 조사를 하다 보니 샘이나서 기분이 나쁘다. 이토록 간결하게 가뿐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나는
질투가 난다. 초로의 사람 앞에서.

그 첫 인상은 언뜻 내 지난 시어미를 닮았다. 큰 덩치가 그렇고 큰 눈의 시원스런 이목구비가 그러하며 남자 알기를 뭣같이 아는 보나마나한 대단한 성깔이 그러해 보이는 데다 개성 사람이라는 점이 그러하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무엇이건 취할 줄 아는 명석함도 지녔다. 유난히 인중이 길다. 오래 사려나 보다. 아마도 암 투병에 성공할 것 같다. 암, 그래야 하고말고.


2. 내 마음속에 들어온 글귀


1권

타인의 삶에 기생하여 예술가연하는 화가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가난한 남자와 결혼했고 죽음 근처의 가난을 거쳐 왔다. p3

나는 말 위에서 죽었다.
내가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죽어가는 나를 태운 채 말은 달리고 있었다.
그때 말과 나는 구별이 되지 않았다. 말이 내 자신인지 내가 말인지...... .

또다시 사람으로 태어났다. 화가가 되었다. 말을 그린다. p9

대부분의 사람은 언어로 생각하고 수학자는 숫자나 기호로 생각하지만 화가는 눈과 손으로 생각한다. 손을 통해서만 사고는 앞으로 나아간다. 손으로 그려보지 않으면 상식적인 단계에서 시각적인 사고가 멈춰버린다. 화가는 생각과 동시에 손을 움직여서 그려야만 한다. 손이 그린 것을 눈이 보면서 생각은 더 앞으로 나아간다. 손의 도움 없이 눈만으로 나아가는 세계에는 한계가 있다. 자꾸 손으로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세계에 자신이 도달해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손으로 그리는 작업이 중요한 것이다. p14

1
나 자신/ 무당 굿하다
나는 무엇을 해도 무지막지하게 하고, 결국 일을 내고야 만다. p29

거적을 입다
나는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돈이 생기면 물감을 사거나 필름을 샀다. 스스로는 자신을 늘 성실하고 훌륭한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미쳤다며, 퇴폐적이라며, 부당한 대접을 했다. 어릴 때 만난 선생님이나 교과서에서는 말했다. 인간은 실력을 쌓고 내면에 충실해야 하며 겉치레 하는 것은 나쁘다고. 그런데 그것을 확실하게 실천하는 나를 왜 사람들은 백안시하는가.
그렇게 주장해도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편견은 변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내 작품까지도 진지하게 봐주지 않았다. 미친 사람이 미친 짓을 한 찌꺼기로 생각했다. 정말 슬펐다. 슬퍼하면서도 나의 활동은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았다. 그것이 내 최대의 장점이자 생명력이다. p37

허무한 세상
허무한데 무엇이 아까우랴. 목숨을 아끼지 않기로 결심했다. p38

처음으로 독자적인 사고를 할 무렵이었다. 어마어마한 우주에서 미약한 자신의 존재를 보고 고민할 때였다. 의식을 거시세계에 놓고 끊임없이 고민을 할 때였다.
언제부터인지 미시 세계로 의식이 옮겨졌다. 채송화 한 송이를 들여다보면서 예쁘다는 소리만 연발하며 몇 시간이고 앉아 있었다. 그 작은 꽃 한 송이의 신비를 밝히려 하지 않았다. 그 아름다움을 예찬하기로 했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만 찾는 사람이 되었다. 아름다운 것을 실컷 예찬하다가 저절로 죽어지면 죽자. p41

그때 김상유 선생님이 어떤 술자리에서 우리들에게 말했다.
“이 중에서 자신이 번 돈으로 물감을 사서 쓰는 사람이 있냐?”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이 우리들을 꾸짖듯이 말했다.
“예술은 그런 게 아니다. 집에서 탄 돈으로 물감 사서 기분 나는 대로 물감칠을 하면 그게 예술인 줄 아느냐? 너희들이 정말 예술가가 되고 싶으면 결혼해라. 백마 탄 왕자가 아닌 아주 가난한 사람과. 얼음물에 손을 넣고 기저귀를 빨고, 시장에서 콩나물 값을 깎으며 사는 고난을 이겨내고 나서도 그림을 그려야지...... . 지금처럼 살면 너희들은 기생충이다. 부모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한 달 안에 결혼했다. 선생님의 뜻에 꼭 맞는 가난한 남자와. p43

2
바다 컵 속에서 꿈꾸는 인간
순수 시각에 빠져라.
이 그림을 보고 언어적인 사유를 하는 자들은 머리가 굳을 것이라고 어떤 시인이 말했다.
이 그림을 놓고 감히 말 같은 것으로 표현하겠다고 덤비지 말라고 화가가 말했다.
이 그림을 놓고 감히 말 같은 것으로 표현하겠다고 덤비지 말라고 화가가 말했다.
이곳에 감히 언어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언어적인 기능을 완전히 제거하고 오로지 시각만으로 접근하라. p98

3
물고기를 안고 가는 사람
물고기는 찬 피 동물이다. 사람은 더운 피 동물이다. 또한 변온 동물이다.
나는 따듯한 정온의 존재에게 잡혀가고픈 욕망을 그렇게 그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변함없는 온도로 따뜻하게 품고 그 어디엔가로 데려다줄 수 있는 사람을 끝없이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커다란 동물을 갈망하고 있었다. 변함없는 온도로, 자비와 연민과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나를 품어줄 큰 동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때로는 내가 물고기가 되어 사람에게 안겨서 간다. 어떤 때는 내가 물고기를 안고 걷는다. p104

토끼
인간은 편견으로 완전 무장되어 있어서 어떤 행복도 스며들 수가 없는 웃기는 동물이다. 토끼는 갇혀있는데도 평온하다. 토끼는 갇혀서도 태평스럽게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데, 사람은 토끼를 가둬 놓고 좌불안석이다.

토끼는 단순해서 다가오는 행복을 받아들이지만 인간은 들끓는 욕망이 뒤엉켜서 복이 와도 알아보지 못하고 내쫓는다. 토끼보다 못한 인간들. p114

여우
세찬 폭풍우가 몰아치는 사방에 비처럼 어둠이 내리려는 오후, 뱃가죽이 잔등에 달라붙은 여우가 풀숲을 헤매고 있다. 먹이를 찾아 여우가 걸어온 길이 남아 있는 길보다 길다. 미칠 듯한 굶주림. 나는 그런 굶주림으로 미친 듯이 뛰는 여우가 좋다.
햇빛에 눈이 부셔 도저히 하늘을 쳐다볼 수 없이 밝은 오후, 강가 풀 그늘 속을 배부른 여우가 어슬렁어슬렁 거닐고 있다. 햇빛을 피해 그늘로 기어들어가 긴장을 풀고 느긋이 쉬고 있다. 여우는 눈부시게 빛나는 하늘을 쳐다보지 않는다. 여우는 편안하다. 나는 그런 둔한 여우가 좋다.

여우는 매혹적이다. 현명하다. 날쌔고 민첩하다. 꾀가 많다. 언제나 초연하다. 즐겁다.
사람들은 현명하고 날쌔고 똑똑하고 민첩하고 현실적이고 성공적이고 매력적인 사람을 보면 여우라고 한다.
나는 여우가 좋다. 나는 불타는 빨간 털을 가진 날쌘 여우다. p136


2권
내가 살아 있는 이유는 바로 아름다움을, 생명의 환희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내가 느낀 감동을 증폭시키고 고착시켜서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p5

살면서 타락하고 과오를 저지르고 승리하고 인생에서 인생을 창조하고, 그 모든 일을, 그의 인생에서, 일으키는 자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자연현상보다 더 아름답고 황홀한 것이다. p9

1
나는 아류가 좋다. 본류하고 사는 건 버겁다. 일상은 무덤덤해야 한다. p13

어떤 화가, 인류를 구원하다
단순히 기억해 낸 것이 아니었다.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던, 찡그리고 듣던 고통의 기억이 해답으로 변환되어서 의식의 표면으로 선명하게 떠올라온 것이었다. 나는 황급히 버스에서 내렸다. 되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작업실로 돌아왔다. 곧장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말을 그렸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되는 대로 그렸다. 글씨도 썼다. ‘이것은 말이다.’라고 말 근처에다 글씨를 써넣었다. 일반사회 선생님처럼 글씨를 썼다. p29

아래쪽에다 더 많은 글씨를 써넣었다. 글씨 쓰기를 두려워하면서가 아니라 당당하게 집행했다. 그 순간 나는 인류를 구원했다. 내 머릿속에 살고 있는 수많은 고통 받는 인류를 삽시간에 구원했다. 언니도 내 짝도 일반사회 선생님도 그리고 이름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그 사이에 만난 수많은 사람들을, 내게 그림 그리기가 힘들고 어렵다고 호소하던 모든 사람들을 단번에 구원한 것이었다.
그 그림 하나로 내 나라의 백성들은 모두가 해방되었다. 그들보다 더 나 자신이 해방되었다. 나는 완전한 시각적인 사고의 자유를 발명해냈던 것이었다. 그 후 나는 말할 수 없이 편안한 생애를 살았다. p30

보살
그 여자는 거침없이 말했다. 나는 아주 새로운 기쁨에 젖어들었다. 연극을 구경하는 기쁨과 동시에 그 연극을 만들어가면서 즐기는 기쁨, 낮선 사람하고 그렇게 쉽게, 그렇게 친해져보기도 처음이다. 자신의 치부를 완전히 까발리는 자세. 그러면서도 이 세상을 초월하는 듯한 당당함. 무심하게 사람을 대하는 태도. 나는 이렇게 잡혀오기를 잘했다고 기뻐했다.

요즘도 길 가다가 커다란 닭장차를 만나면 그 시절의 우리들과 그 여자가 생각난다. 생각이 자꾸 자라나서 그때 나는 어떤 보살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 여자는 그렇게 맑고 깨끗하게 기억된다. 불현듯 나타나서 그 더러운 구치소 속에서, 악취에 메스꺼워하면서, 추위에 떨 나를 신나게 춤추게 한 것이다. 인간의 속내가 그 포장과 관계없이 얼마나 아름답고 싱싱할 수 있나를 내게 깨우치고 사라진 것이다. 보이지도 않고, 만날 수도 없는 이 세상의 수많은 보살들에게 그리움을 보낸다. 그리고 희망한다. 언젠가 홀연히 내 앞에 그렇게 나타나, 또 다른 나의 우둔을 부숴버릴 것을. 그런 시간이 내 미래에 꼭 자리 하기를...... . p53

명절
명절을 피해서 학교에 머물기로 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멈추듯이 세상이 변한다. 학교는 문을 닫는다. 도서관도 문을 닫는다. 명절이라고 도서관이 문을 닫다니, 이런 미친 세상에서 내가 머물 곳이 없어져버린다. 나는 나머지 그 어디에도 가고 싶지가 않다. 그냥 잠시 죽었다가 깨어나고 싶다. 명절은 무의미할 뿐이다. 무의미를 넘어 장애물이 되어버렸다. 내 생각대로 살아가는, 나의 행동을 방해하는 장애물. p58

4층 화장실 앞에 무지하게 큰 전신거울이 있다. 그 앞에 멈춰 서서 자신을 들여다본다. 일럴 때 나는 어떻게 변화할까. 언뜻 보면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 눈을 본다. 말할 수 없이 맑다. 굶을수록 눈은 맑아진다. 위장을 오래 비울수록 눈은 더욱 세차게 빛난다. 영혼의 집결체인 양 그렇게 독자적으로 빛을 낸다. 하얀 자위가 희다 못해 푸르다. 인간으로서의 생활에서 이렇게 맘에 드는 자신을 발견하기는 난생 처음이다. 그때의 내 모습이, 나 자신이 스스로를 생각하는, 대표적인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그 전에도 잘 먹고 잘 산 기억이 별로 없지만 내리 화장실 물만 먹고 나흘을 굶기는 그때가 처음이다. p62

2
백지의 일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버려진 땅처럼, 나는 광활한 자유가, 황폐한 자유가 필요하다. p66

왼손
인생은 켜켜에 이런 황홀을 숨겨놓고 기다린다. p110

머리카락자르다
나는 밤나무다. 나는 해와 물과 흙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고요! 밤이 다 익어서 땅에 떨어지면 조용히 주워다 먹으면 된다. 고맙다고 줄기를 쓰다듬고, 그 앞에서 풍악을 울려대고, 보답한답시고 글씨를 파 넣고 하는 따위의 짓은 미친 짓이다. 나무는 그저 조용히 놔두기를 원한다. 나무는 그냥 살아 있기만 하면 밤이 열린다. 밤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할 필요도 없다. 저절로 열매가 열린다. 나는 절대로 저 홀로 내버려둬야 한다. 나는 내 방과 내 작업실 속에서만 자유를 추구한다. 잠자는 시간과 작업시간의 자유, 이것이 내 자유의 전부이다. p113

무성하다
자연스러운 사람은 성을 모른다. 밥을 먹으면서 아무 데도 안 아프고 눈치 보지 않는다면 자신이 밥을 먹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저 아주 자연스럽게 잡생각하면서 즐기면서 편안할 뿐이다. 성도 그렇다. 자연스럽게 살면 자신이 여잔지 남잔지를 잘 모르고 살게 된다. p117

여자이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은 없다. 사람은 여자라서 행복하지도 않고 남자가 아니어서 불행하지도 않다. 무식하고 게을러서 불행하고 의지가 약해서 실패할 뿐이다. 나는 행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무의식적으로 강하다. 그래서 해로운 기억은 아예 무의식이 지워버린다. 항상 자신을 밟고 힘차게 유지하려는 무의식이 나를 꽉 채우고 있다. 여자라서 받은 차별이나 무시, 슬픈 체험은, 나의 영혼시스템에 입력도 되지 못하고 삭제 당한다. p120

3
아찔하다. 나를 움직이는 실체는 무엇인가?

수원에 갔다
어떻게 짓느냐보다 어디다 짓느냐가 문제다. 이 말은 김수근 건축 사무소에 드나들면서 읽은 말이다. 벽에다 누군가가 그렇게 써붙여놓았었다. 처음부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습관적으로 어떻게 짓느냐에 골몰하기 쉽다. 그 말은 나를 아주 오래 생각하게 했다. 집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기능보다 주변이 주는 영향이 그렇게 크다는 것이다. 문화재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충분히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게 주변을 확보해줘야 한다. 국가는 강제수용해서 주변을 정리해 주어야 한다. 광개토왕비, 장군총 등등의 우적들 아주 가까운 곳에다가 옥수수를 심어 먹는 만주사람들을 우리가 어쩔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영토 내에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 p174


3. 내가 저자라면


먼저 저자의 말 그림에 반했다. 사람과 함께 하는 살아있는 말이다. 그녀가 말이고 말이 그녀라는 것을 깨달아 생명의 일치 속에서 영혼의 융합을 이뤄낸 그림이다. 그의 그림의 야성과 단순함과 강렬함이 나는 좋다. 너무 좋아서 두려움을 느낀다. 맞다. 김점선 그녀는 미친 여자다. 그녀에게는 잠들지 않는 광기와 시들지 않는 영혼과 불멸의 야성이 있다. 그녀는 인간 말이다. 말의 인간이다. 말 같은 그녀의 힘과 투지에서 나의 외소함과 나태가 숨을 쉴 수가 없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나는 호랑이인데 여태 고양이로 살았다. 나는 호랑이가 되어야 한다. 나는 그것을 느꼈다. 말 같은 여자 김점선을 보고 내가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부터 호랑이다. 어흥~

그리고 또 나는 보살이다. 미치겠다. 책을 읽다보면 리뷰나 칼럼을 쓰면서 다음 책에 나오는 말을 먼저 몇 단어 혹은 몇 줄 쓰게 된다는 것이다. 끔찍하다.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나는 짚신을 믿는 샤머니즘적 만신이 아니다. 나는 솔직히 신이 내게 내려질 까봐 두려워하며 이혼을 감행하기도 했다. 나는 만신과 상관이 없다. 그러나 나는 다음 책으로 만신이야기를 읽을 것이다. 왜냐면 나는 씻김굿을 하듯 ‘씻김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나리’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기도 하다. 나는 절에 가지 않아도 성당에 가지 않고도 무녀에게 신 내림을 받지 않고도 나라는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독서를 하고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고 알게 되었다. 골방에서 깨우치는 가장 경제적이고 유익하며 단순한 수행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드디어 미쳤다고 누군가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든 실험해보라. 그 순간이 찾아올 것이니. 그때에 우리 서로 이바구를 나누어 보자꾸나. 얼쑤~

나는 사람이고 싶다. 여자이거나 남자가 아닌 중성의 어정쩡한 부조리가 아닌 그 모든 융합과 통섭의 사람이고 싶다. 그 장점들만을 취한 예쁘고 씩씩하고 의젓한 사람이고 싶다. 나는 요괴인간 베라를 좋아한다. 그녀는 언제나 테가 약간 올라간 듯한 진한 뿔테 안경을 쓰고 잘난 체를 하며 뽐내는 이무기 같은 나와 닮은 요괴다. 그의 허영심과 사치와 욕망을 나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언젠가 그녀처럼 깨지고 닦여서 진짜 사람이 될 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당당한 으하하.

이 무시무시한 깡패 같은 괴짜 환쟁이를 찾아가 볼까? 대문에서 방문객이 병신머저리 같다고 내쫓길 것 같아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그래도 책을 읽으며 나는 장미 100송이쯤 아니 한 500 송이쯤 사들고 한 아름 안고서 뛰어 갔다. 그녀의 작업실로. 그리고 후드득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마음 같아선 그녀의 암을 뿌리 채 뽑아서 밟아 죽이고 태워서 멀리 떠나보내고 싶다. 세상에 사악한 나쁜 것들도 잘 사는 데 이 천재적인 재능을 죽이려드는 썩을 놈의 병마야, 너는 양심도 없냐? 어서 이 밤 그녀의 병을 거두어가라. 퉤퉤.

그림이 있기도 하지만 간결한 문체가 정말이지 돋보인다. 그녀의 그림처럼 군더더기 하나 없는 언어구사 표현이다. 대단한 함축성이다. 짧은 글이 재미나다. 힘이 있다. 놀랍다. Wow!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쓰면서 이루는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 이다. 도저히 이 전에는 깨우칠 수 없었던, 변화할 수 없었던 나를 씻고 다듬어 아름다워지고 싶기 때문이다. -르네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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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08.03.13 17:05:23 *.206.243.31
마음 먹으신대로 하시면 성불하실 것 같습니다. ^^
부디 오해하지 않으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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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16 00:12:08 *.36.210.80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부르짖음이 너무 꼴사납지요? 언제고 흙으로 돌아갈 덧없는 삶일 테지만 평생을 죄인으로 살아가야하는 종교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고 있어요. 모두가 죄인이라고 하면서도 우열을 얼마나 가리는지요. 물론 나 자신도 그렇고 주변을 보아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나는 종교도 친구 같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좋아하면서(?)도 불만이 많아요. 제 식으로는 천주교의 묵상이나 불교의 면벽 수행과 견주어도 독서와 글쓰기의 힘이 그다지 모자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교를 믿는 제 친구는 코웃음 치면서 돌아 앉을 거에요. ㅋ 하지만 하느님은 돌아앉기보다 깨우침을 주시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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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
2008.03.16 10:48:02 *.132.188.244
하나님은 창세기를 통해서 써니님을 위해서 이런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창1:3-5)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둠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니라

(써니기1:3-5)써니가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고 그 빛이 써니가 보기에 좋더라. 써니가 빛과 어둠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하고 어둠을 밤이라 칭하니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더라.

김춘수님의 ‘꽃’에 나오는 시도 생각나는 군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무관세음보살....
써니님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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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17 17:39:49 *.36.210.80
써니기라... 너무 쑥쓰럽잖아요. 저도 시간 나면 화두 공부 할 거에요.
그나저나 사람되기 너무 어려워요.

김춘수님의 <꽃 > 저가 무지하게 좋아하지요. 아무도 안 불러줘서 내가 나를 불러요.ㅋ

양수님께서 그리하라면 그렇게 해야지요.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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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7 삼국유사 [2] 박안나 2008.03.10 2188
1326 삼국유사 순례기 [2] 서지희 2008.03.10 2183
1325 고운기 ,일연, 삼국유사 [1] 김나경 2008.03.10 2830
1324 삼국유사 - 일연/고운기 [1] 최현 2008.03.10 2284
1323 [02]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1] 오현정 2008.03.10 1860
1322 [02] 삼국유사/고운기 [2] 강종출 2008.03.10 2337
1321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 고운기 [2] 김용빈 2008.03.10 2353
1320 [북리뷰002]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 고운기 [2] 양재우 2008.03.10 2350
1319 삼국유사, 고운기 [4] 이한숙 2008.03.10 2786
1318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1] 유인창 2008.03.09 2241
1317 고은기, 양진 &lt;삼국유사&gt; [1] 박중환 2008.03.09 2621
1316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 [2] 이승호 2008.03.09 2419
1315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1] 이은미 2008.03.09 2393
1314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Review [1] 손지혜 2008.03.09 2536
1313 삼국유사 [2] 최지환 2008.03.09 2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