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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3일 23시 58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집필한 목적을 저자는 서두에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종교와 신화의 형태로 가려져 있는 진리를 밝히되, 비근한 실례를 빗대어 비교함으로써 옛 뜻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데 있다.”(서문 中에서)

그렇다. 그는 세상을 관통하는 진리(眞理)를 신화라는 상징(象徵)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가 인식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내성적인 성격만큼이나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방법이 아닌, 신화라는 비유를 통해 재미있고 흥미롭게 모험을 떠나는 느낌으로 안내하고 있다. 이러한 친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책을 읽는 독자에게 일정 이상의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그 가르침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고문집 편집자(古文集編輯者)의 재주쯤은 갖추고 있어야 할 듯하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상징의 문법을 터득해야 할 터인데, 저자가 알기로는 이 문을 여는 열쇠로 정신분석학만한 현대적 길잡이는 따로 없을 듯하다.”(서문 中에서)

저자는 이 책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고전에 대한 수준 높은 지식과 더나아가 프로이드와 융에 대한 정신분석학에 대한 사전 지식; 특히 상징의 문법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 처음 이 서문을 읽으면서 난감했다. 고전과 정신분석학에 대해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러한 전제조건은 약간은 가혹한 요구가 아닌가?

그런데 실제 책읽기의 어려움은 고전과 정신분석학에 대한 편린보다는, 그의 화려한 문학적 수사와 이론적 어휘 사용에 있었다. 흡사 과거 철학에 심취해서 근대 서양철학을 읽었던 느낌이 되살아났다. 니체, 푸코, 하이데거, 사르트르, 데리다와 같은 구조주의와 해체주의를 대표했던 서양 철학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이해능력과 저장공간의 한계를 한탄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정도로 난해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상대한 인내심과 위기관리능력을 요구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는 종교적 도그마에 빠져있는 사람들과 이분법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시종일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할 수 없음을 신화를 통해 주장하고 있다. 즉 모든 것은 상호보완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라는 것이다. 많은 저작을 통해 그가 <화해(和解)>를 염원하고 있음을 느낀다.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 자아와 초자아, 개인과 영웅의 화해를 말이다.

“<화해 atonement>,즉 <하나되는at-one-ment>란 스스로 만들어낸 두 마리의 괴물(신, 초자아)으로 보이는 용과 죄악(억압된 이드)으로 보이는 용을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171p

문득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 아이의 눈빛을 가진 천진난만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내내 떠올릴 수 있었다. 머리 색깔은 희긋희긋한 노인의 외모일지라도, 너무도 행복하고 재미있어하는 사람말이다. 그는 신화 속에서 신화가 그가 되고, 그가 신화가 되는 그만의 여행 속에서 있었다. 그가 자신의 천복(天福)을 따랐기에 지금과 같은 방대한 신화와 전설 그리고 종교학에 대한 울창한 숲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원했다. 물론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신화라는 숲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뛰어 놀고 있는 그가 그려진다. 그의 소망이 이뤄지길 바란다.


2 내 마음에 들어오는 글귀

머리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종교 교의에 녹아들어 있는 진리는 대개가 변형된 데다 체계적으로 위장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진리로 알아보지 못한다. 이는, 우리가 아이를 상대로 갓난아기는 황새가 물어다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황과 흡사하다. 우리는 이 큰 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따라서 이 경우, 우리는 상징으로 분석된 진리를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이는 알아듣지 못한다. 아이는 우리가 말하는 내용 중 변형된 부분만을 알아듣고는 속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른에 대한 아이들의 불신과 면역성이 종종 이러한 부정적 인상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 진리의 상징적 분식을 피하고 아이들의 지적 수준에 맞추어 사건의 진상을 알게 하는 데 인색하지 말야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5p

이 책의 목적은 종교와 신화의 형태로 가려져 있는 진리를 밝히되, 비근한 실례를 빗대어 비교함으로써 옛 뜻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데 있다. 옛 현자들은 말을 하되 언외(言外)의 뜻을 거기에다 싣는 데 소홀함이 없었다. 따라서 그 분들의 상징적 언어를 거듭 읽되 그 가르침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고문집 편집자(古文集 編輯者)의 재주쯤은 갖추고 있어야 할 듯하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상징의 문법을 터득해야 할 터인데, 저자가 알기로는 이 문을 여는 열쇠로 정신분석학만한 현대적 길잡이는 따로 없을 듯하다. 이 말을 금과옥조로 삼지 않고는 정신분석학의 안내를 받기 어렵다. 다음 단계는, 세계 각처에서 채집된 신화와 민간 전설을 한곳에 모아놓고 상징으로 하여금 스스로 입을 열게 하는 일일 듯하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면 그 유사성이 한눈에 두드러져 보이고,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이 이 땅에 살면서 오랜 세월 삶의 길잡이로 삼아온, 방대하면서도 놀라우리만치 일정한 상태로 보존된 진리와 만나게 된다. 6p

프롤로그

원질신화

1. 신화와 꿈.

놀라운 것은, 심원한 창조적 중심을 촉발하고 고무하는 특징적인 효과가 아이들 놀이방에서 굴러다니는 하찮은 동화책에도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한 방울의 바닷물이 바다의 본질을 고스란히 대표하고, 하나의 벼룩 알에 생명의 신비가 두루 깃들여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이는 신화학의 상징은 영혼의 부단한 생산물인데, 이 하나하나의 상징 속에는 그 바탕의 근원적 힘이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4p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복종인가? 이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수수께끼이며, 영웅의 바탕되는 미덕과 역사적 행위가 풀었어야 하는 문제다. 29p

요컨대, 영웅이 첫단계에서 하는 일은, 하찮은 세상이라는 무대로부터 진정한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심성의 인과(因果)가 시작되는 곳으로 물러앉는 일이다. 그리고 영웅은 난관을 헤쳐나가되 자기 식으로 그 난관의 뿌리를 뽑고(즉 자기가 속한 문화권의 유아기 악마에게 싸움을 걸고) 한달음에 쳐들어가 C.G 융의 소위 <원형심상>과의 동화작용을 시도한다. 힌두와 불교 철학에서는 이 과정을 <비베카>, 즉 분리 discrimination의 과정이라고 한다. 32p

꿈은 인격화한 신화고 신화는 보편화된 꿈이며, 꿈과 신화는 상징적이되, 정신역학의 동일한 일반적 시각에서 보아 그렇다. 그러나 신화에서는 문제와 해결책이 모든 인류에게 직접 뚜렷이 제시되는 데 견주어, 꿈속에서는 꿈꾸는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33p

우리는 혼자서는 이 모험길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모든 시대의 영웅들은 우리에 앞서 미궁으로 들어갔고, 미궁의 정체는 모두 벗겨졌으며, 우리는 단지 영웅이 깔아놓은 실만 따라가면 되는데도 그렇다.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38~39p

신화적 영웅의 길은 부수적으로는 지상적일지 모르나 근원적으로는 내적인 길이다. 즉 보이지 않는 저지선이 뚫리고, 오래 전에 잊혀졌던 힘이 다시 솟아 세계의 변용에 기여하게 되는 그런 심연으로 뚫린 길인 것이다. 이러한 영웅의 행위가 완성되면, 삶은 더 이상 도처에 도사린 재앙의 가호한 단죄와 시간에 의한 마손(磨損)이나 막막한 공간의 두려움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고통받는 일이 없게 된다. 뿐인가, 공포는 눈앞에 여전히 보이고, 고뇌의 울부짖음은 여전히 귀에 들리나, 삶은 모든 것을 채우고,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과 정복되지 않는 힘의 자각으로 다시 생기를 얻는다. 여느 때에는 막막한 물질로 뒤덮인 생명의 심연에서 보이지 않게 타오르던 불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빛이 되어 비치기 시작한다. 저 무서운 단죄의 손길은, 그제서야 우리들 마음 속의 불멸하는 우주의 그림자로 비친다. 시간은 영광의 승리자 앞에 무릎을 굻고, 세계는 더할나위없이 천사적인, 단조롭고 요정의 노래처럼 매혹적인 하늘의 노래를 부른다. 행복한 가정이 다 그렇듯이, 소생한 신화와 세계는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44p

영웅이 치르는 신화적 모험의 표준 궤도는 통과 제의에 나타난 양식, 즉 <분리>, <입문>, <회귀>의 확대판이다. 이 양식은 원질신화(原質神話, monomyth)의 핵심 nuclear unit라고 할 수 있다. 즉 영웅은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나고 여기에서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영웅은 이 신비스러운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44~45p

나는 높은 산 위에 서서 거인과 난장이를 보았다. 천둥소리 같은 음성이 들려 나는 자세히 들으려고 다가갔다. 그 분은 나에게 이르셨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다. 네가 어디로 가건 나는 거기에 있다. 나는 없는 곳이 없으니, 원하면 언제든지 나를 찾으라. 나를 찾는 것은 곧 너를 찾음이다.] 55p

제 1부 영웅의 모험

출발 Depature

1. 영웅에의 소명
2. 소명의 거부
3. 초자연적인 조력

소명을 거부하지 않은 모험 당사자는 영웅적인 편력 도중 첫번째 보호자를 만난다. 노파나 노인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 보호자는 모험 당사자가 곧 만나게 되는 용과 맞설 호부(護符)를 준다. 93p

영웅이 빠져드는 환각은 곧 안식처이며, 낙원의 평화에 대한 약속이다. 모태 안에서 처음으로 경험했던 이 낙원의 평화에 대한 약속은 아직 유효하다. 이 약속은 현재를 지탱케 하고 과거와 미래까지 주관한다(따라서 알파이자 오메가다). 이러한 약속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여러 단계에 이르는 삶의 문턱을 넘으면서, 그리고 삶을 자각하면서 무산의 위기를 겪지만 보호 세력은 항상 영혼의 지성소에, 심지어는 이 세상의 낯선 사건에 내재해거나 그 배후에 존재한다. 모험을 나선 당사자가 그것을 알고 그 존재를 믿기만하면 시공을 초월한 안내자는 언제나 나타난다. 소명에 응답했고, 용기있게 미지의 사건에 대한 체험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영웅은 모든 무의식의 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 대자연 Mother Nature은 항상 위대한 임무를 지원한다. 영웅의 행동이 그 사회가 예비하고 있는 것과 일치될 때, 그는 흡사 역사적 변화의 리듬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97p

4. 첫 관문의 통과
5. 고래의 배

입문 Initiation

1. 시련의 길

일단 관문을 통과한 영웅은 기묘할 정도로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로 이루어진 꿈의 세계로 들어간다. 영웅은 이 곳에서 거듭되는 시련을 극복하고 살아남지 않으면 안된다. 신화의 모험에서 가장 흥미롭게 다루는 부분도 바로 이 국면이다. 이 국면은, 기적적인 시험과 시련을 다룬 세계의 문학을 창출해 왔다. 영웅은 거듭나는 데 필요한 충고와 호부(액막이), 그리고 이 영역에 이르기 전에 만났던 초자연적인 조력자의 밀사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어쩌면 모험 당사자가 자신의 초인간적 여행 도정의 도처에 자비로운 권능이 있어서 자기를 도와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인지도 모른다. 129p

어떤 사회에 속하는 사람이든지, 고의적으로든 타의에 의해서든 자기 정신의 미궁이라는 미로로 내려가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저 시베리아의 <푸닥>과 성산에 못지않는 상징적인 것들(능히 여행 당사자를 삼켜버릴 수도 있는)에 둘러싸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신비주의의 용어로 말하자면 이것은, <자기정화>에 이르는 길의 두번째 단계에 해당한다. 즉 감각이 <정화되고, 스스로를 낮추어> 모든 에너지와 관심이 <초월적인 것에 집중될> 때인 것이다. 굳이 현대적인 의미의 어휘를 쓰자면, 우리 개인이 가진 과거의 유아적 심상이 분리, 초월, 변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우리의 꿈에는 아직까지도 시대를 초월한 위험, 괴물, 시련, 정체불명의 조력자, 그리고 우리에게 유익한 인물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들의 형태에서 우리는 현재 상태의 모든 현상뿐만 아니라, 그 현상을 이기기 위해 우리가 취할 행동의 단서도 굴절되고 있음을 본다. 134p

신화학의 심상 언어에서 여자는, 알려질 수 있는 것들의 전체성으로 표상된다. 알게 되는 존재가 곧 영웅이다. 영웅이 삶의 다른 형태인 입문의 과정을 진행함에 따라 여신의 형상은 그에게 일련의 변형과정을 체험하게 한다. 여신은 항상 영웅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약속할 수 있지만 영웅보다 위대할 수는 없다. 여신은 그를 유혹하고, 그의 발목에 채인 족쇄를 깨뜨리게 한다. 그리고 만일 영웅의 능력이 여신에 미치면 이 양자, 즉 아는 존재와 알려지는 존재는 갖가지 제약에서 해방된다. 여성은 감각적인 모험의 정점으로 영웅을 인도하는 안내자다. 열등한 눈으로 보면 여신은 열등한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무식한 눈으로 보면 범용하고 추악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여신은 자기 존재를 알아 보는 자에 의해 해방된다.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에서가 아닌, 여신이 바라는 친절하고 침착한 상태에서 그 여신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영웅은, 여신이 창조한 세계의 왕, 즉 인간으로 화신한 신일 수 있는 것이다. 154p


3. 유혹자로서의 여성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적인 결혼은 영웅의 삶 전체가 완성되었음을 상징한다. 즉 여성이 곧 삶인데, 영웅은 이 삶을 알게 되었고, 이를 완성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영웅의 궁극적인 체험과 행위의 예비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웅의 시련은 자각의 위기를 상징한다. 이 자각의 위기를 통해 영웅의 의식은 증폭되고, 어머니 상의 파괴자, 즉 천생연분의 신부를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시련을 받는 당사자는 자기와 아버지가 동일하다는 사실과, 자기가 곧 아버지의 입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59p

4. 아버지와의 화해

<화해 atonement>, 즉 <하나되기 at-one-ment>란 스스로 만들어낸 두 마리의 괴물(신, 초자아)으로 보이는 용과 죄악(억압된 이드)으로 보이는 용을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자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는데 이게 예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사자는 아버지가 자비로우며, 이 자비를 믿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되면 믿음의 중심은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신의 족쇄 바깥으로 이동하고, 믿음의 중심이 이동하면 무섭고 잔인한 측면은 사라진다.
영웅이, 조력자인 여성에게서 희망과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련을 통해서다. 여성의 마법 덕분에 영웅은, 자아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하는 아버지의 무서운 입문 의식 경험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영웅은, 아버지의 끔찍한 얼굴을 믿을 수 없으며 그 믿음을 다른 곳에다 기울인다. 지원을 보장받은 영웅은 위기를 견디어 나가고, 결국에 가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를 투영하고 있지만 사실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70~171p

아버지는 아들에게 있어서 미래 세계의 상징이요, 딸에게 있어서는 미래 남편의 상징이다. 알든 모르든, 그리고 사회의 지위가 어떻든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이 더 넓은 세계로 나갈 때 마땅히 거쳐가는 입문식의 사제다. 어머니가 그때까지 <선>과 <악>을 표상하고 있었듯이, 지금부터는 아버지가 그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이 경우는 조금 복잡하다. 여기엔 새로운 경쟁자적 요소가 틈입한다. 즉 아들은 세계를 섭렵하는 데 있어서 아버지를 경쟁상대로 삼고 딸은 섭렵된 세계 자체가 되는 데 있어서 어머니를 경쟁자로 삼는 것이다. 177~178p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영웅은 영혼의 문을 열어 공포를 극복하고, 이 광대무변하고 무자비한 우주의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을 존재의 존엄성 속에서 완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영웅은 자기 몸에 박힌 가시(약점)을 통해 삶을 초월하여, 한순간이나마 그 근원을 투시한다. 그는 여기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와 자기가 화해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192p

5. 신격화 Apotheosis

우리는 모두 보살 이미지의 그림자다. 우리 내부의 고통은 바로 저 신적인 존재다. 우리와 저 보호자인 아버지는 한몸이다. 이것은 구원의 통찰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우리 보호자인 아버지다. 그러니 이 무지하고, 유한하고, 자위적이고, 고통받는 육신이 다른 육신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경우에도 그 적 또는 신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도깨비는 우리 기를 꺾지만, 유능한 후보자인 영웅은 <사나이답게> 입문한다. 보라. 그 도깨비가 바로 아버지였다. 우리는 그의 안에 있고, 그는 우리 안에 있다.
우리의 보호자인 사랑하는 어머니는 우리를 저 위대한 아버지 뱀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없었다. 어머니가 준 필멸의, 현실적인 육체는 그의 무서운 힘 안으로 빨려들었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새 생명, 새로운 탄생, 새로운 존재의 지식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저 아버지가 바로 어머니, 즉 재생의 자궁이었던 것이다.
양성적인 신의 요체가 바로 이것이다. 양성적인 신은, 입문 의식이라는 주제의 궁극적 요체다. 우리는 어머니 품에서 끌여나와 조각 조각으로 촌단된 다음 세계를 적멸시키는 도깨비의 몸 안으로 동화된다. 이 도깨비에게 있어서 고귀한 모든 형상과 존재는 오직 제물일 뿐이다. 그러나 이어서 우리는 기적적으로 재생한다. 이때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아닌, 그 이상의 존재다. 신이 종적, 인종적, 국가적, 혹은 분파적 원형이라면 우리는 그 신에 의해 사역당하는 전사들이다. 그러나 신이 우주 자체의 주인이라면, 우리는 전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존재, 즉 모든 인간이 한 형제임을 깨달은 존재다. 어느 경우든 유아기의 부모 상과 선악에 대한 관념이 억압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재생한 우리에겐 욕망도 공포도 없다. 우리 자체가 곧 욕망과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든 신들, 보상, 부처가 우리에게, 세상이라는 화를 든 우리의 후광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212p

6. 홍익

만물은 나아나고, 일어나고, 되돌아온다. 나무는 꽃을 피우나 오직 뿌리로 되돌아가기 위함이다. 뿌리로 되돌아감은 정일을 찾음이다. 정일을 찾음은 천명으로 합일함이다. 천명에 합일함은 영원에 합일함이다. 영원을 아는 것은 깨달음이요, 영원을 깨닫지 못하면 혼란과 마가 있다. 영원을 알면 이해력이 넓어지고, 이해력이 넓어지면 포용력이 넓어진다. 시야가 넓어지면 귀함을 얻는다. 귀함이란 천상적인 것과 다름이 아니다. 248p

귀환 Return

1. 귀환의 거부
2. 불가사의한 탈출
3. 외부로부터의 구조

영웅은 의식을 잃고 무의식의 상태에서 원래 그가 살던 세계로 되살아난다. <불가사의한 도망>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웅은 자아를 지키는 대신 자아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조력자의 은혜로 영웅은 자아를 되찾는다.
이제 우리는 이 여행의 마지막 고비에 이르렀다.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모험은 서곡에 불과했다. 말하자면, 신화 영역에서 일상 현실로 귀환하는 영웅의, 역설적이고 험난한 관문 통과의 서곡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구조를 받든, 내적 충동에 따라 살아나든, 신들의 안내를 받든, 영웅에게는 오래 잊고 있던 곳으로 애써 얻은 전리품(홍익)을 가지고 돌아가야 할 단계가 남는다. 뿐만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재생의 영약을 가지고 돌아가 원래 속해 있던 사회와 맞서면서 그들의 까다로운 신문과 서릿발 같은 증오와 맞서야 한다. 뭐가 뭔지 영문을 모르는 선한 사람들까지 설득하지 않으면 안된다.

4. 귀환 관문의 통과

수많은 실패의 사례가, 이 삶을 확정하는 관문의 통과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증하고 있다. 귀환하는 영웅이 당면하는 첫번째 문제는, 성취의 더할나위없이 만족스러운 체험을 겪은 이후에 덧없는 기쁨과 슬픔, 삶의 범용과 소란한 외설스러움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문제다. 왜 그런 세상으로 되돌아와야 할 까 헛된 정열에 소진된 범상한 남자와 여자에게 왜 초월적인 은혜의 체험을 그럴싸한 것, 혹은 흥미로운 것으로 보이게 해야 하는 것일까? 밤에 꿈으로 꿀때엔 중요하게 보이다가도 밝은 대낮에 생각하면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시인이나 예언자는 맨정신으로, 전날 밤에 했던 기도를 후회한다. 사회를 악마에게 넘겨버리고, 저 자신은 천상의 바위 굴에서 문을 닫고 은거하는 편이 쉽기는 쉽다. 그러나 어느 정신적 산과의(産科醫)가 <시메나와>를 쳐놓고 퇴로를 차단한다 해도, 시간 속에서 영원을 표상하고, 시간 속에서 그 영원을 지각하는 작업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282p

5. 두 세계의 스승

신화란 신화는 이 한순간의 이야기 속에 모두 들어 있다. 예수는 안내자이며, 길이며, 초월적인 세계, 귀환의 동반자다. 제자들은 그의 비의 전수자들이다. 그러나 그 신비를 통달한 자들이 아니라, 두 세계를 일거에 수렴하는 역설적 체험으로 안내받는 자들이다. 베드로는 겁에 질린 나머지 중언 부언한다. 그들 앞에서 육(肉)은 변하여 말씀이 되었다. 그들은 엎드려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일어났을 때는, 이미 문이 닫힌 뒤였다. 298p

6. 삶의 자유

영웅이 불가사의한 여행을 끝내고 귀환한 결과는, 과연 무엇인가?
영웅이 지난 전장은, 모든 피조물이 다른 피조물의 희생으로 삶을 영위하는 삶의 현장을 상징한다. 자기 삶을 영위하려면 죄악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은 참으로 구역질나는 것이다. 이를 깨달은 영웅은 햄릿이나 아르쥬나처럼, 불가피한 죄악의 거부를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세상의 예외적인 존재로서 자기 입장을 합리화하고 허위적인 자기 이미지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말하자면, 자기는 선한 자를 대표하고 있다는 간주하고, 죄악을 불가피한 것으로 합리화함으로써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부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합리화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 인간과 우주에 대한 본질에 이르기까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신화의 목적은 개인의 의식과 우주적 의지를 화해시킴으로써 생명에 대한 그 같은 무지를 추방하는 데 있다. 이 목적은 덧없는 시간적 현상과,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불멸의 삶과의 진정한 관계를 자각해야 달성이 가능하다. 308p

열쇠 The keys

제 2부 우주 발생적 순환

유출 Emanations

1.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우리에게 전승된 신화학적 표상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우리는 이러한 표상들이 무의식의 징후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정신적 원리의 통제되고 의도된 진술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정신적 원리는 인간의 육체의 형태 및 신경 구조처럼 인류 역사를 통들어 인류에 유전된 것이다. 간단하게 공식화한 이 보편적인 교리는, 이 세계의 가시적인 모든 구성물(사물과 존재)은 편재하는 힘에 의한 결과라고 가르친다. 즉 이 힘은 모든 구성물의 생성 원리이고, 그들이 이 세상에 현현해 있을 동안 그들을 지탱하고, 그들을 채우며, 궁극적으로 그들이 돌아갈 귀소(歸巢)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에서는 에너지라고 부르고, 멜라네시아인들은 <마나 mana>, 수우족 인디언들은 <와콘다 wakonda>, 힌두교도들은 <샤크티>, 기독교도들은 <하느님 능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정신분석가들은, 심성에 나타나는 이 존재를 <리비도 libido>라고 부른다. 이 존재의 우주적 현현이 바로 우주 자체의 구조며 우주의 변화인 것이다. 330p

정신분석학자들은, 천국, 지옥, 신화적 시대, 올림포스 산 및 그 밖의 신들의 거처는 모두 무의식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현대의 심리학적 해석 체계의 열쇠는 바로 <형이상학적 여역 = 무의식>이라는 등식이다. 이 문을 여는 또 하나의 열쇠가 있다면 전후항을 바꾼, 즉 <무의식 = 형이상학적 영역>이라는 등식이다. <보아라,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고 예수는 말했다. 331p

구원은 초의식으로의 귀환과, 이에 따른 세상의 소멸에 있다. 이것은 우주 발생적 순환, 세계 현현의 신화적 이미지, 그리고 비현현 상태로의 회귀를 나타내는 중요한 테마 및 공식이다. 331p

영웅의 모험은, 그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나타낸다. 이 순간은 그가 살아 있을 동안에, 우리의 살아 있는 죽음의 어두운 벽 너머의 빛의 길을 발견하고, 이 길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참으로 중요한 순간이다.
신의 왕국은 내재적인 것이면서도 동시에 외재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은 잠자는 공주, 즉 영혼을 깨우는 편의수단이다. 삶은 공주의 잠이고, 죽음은 공주의 깨어남이다. 자기 자신의 영혼을 깨우는 영웅은, 그 자신이 자기 소멸의 편의수단일 뿐이다. 영혼을 깨우는 신은, 그 영웅과 죽음을 함께 한다. 이 신비를 설명할 수 있는 웅변적인 상징이 바로 고난을 당하는 신,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에게> 제물로 바친 신일 것이다. 332p

2. 우주의 순환

신화에서도 우주 질서의 연속성은 근원으로부터의 통제된 힘의 흐름이 있어야 가능하다. 신이란 이 흐름을 통제하는 법칙의 상징적 구현체(具現體)다. 333p

우주 발생적 순환에 의해 설명되는 철학적 공식이란, 존재의 세 단계를 통한 의식의 순환을 말한다. 그 첫 단계는 깨어나는 체험의 단계, 즉 태양의 조명을 받고, 만물에 공통된 외계 우주의 험난하고 총체적인 사실들을 인식하는 단계다. 두번째 단계는 꿈 체험의 단계, 즉 꿈을 꾸는 당사자와는 본질상 동일한 개인적 내부 세계의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를 인식하는 단계다. 세번째 단계는 깊은 잠에 빠지는 단계, 꿈을 꾸지 않는 지복의 단계다. 338p

힌두교에서는 성스러운 음절인 <옴 AUM>으로 이 신비를 나타낸다. 여기에서 <A>는 깨어있는 의식을 나타내고, <U>는 꿈 의식, <M>은 깊은 잠을 나타낸다. 339p

신화는 존재하는 원자 안팎에 충만해 있는 침묵의 계시록이다. 신화는 고도로 세련된 형상화 작업을 통하여 마음과 가슴을, 모든 존재를 채우고 둘러싸고 있는 궁극적 신비로 향하게 하는 풍향계다. 우스꽝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보여도 신화 체계는 마음을, 가시의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비현현의 세계로 향하게 한다. 340p

3. 허공에서 – 공간

모든 신화 체계의 기본 원리는 끝과 시작이 함께 한다는 바로 이 원리다. 창조 신화는 모든 피조물은 그들의 모태가 된 불멸의 존재와 닿아 있음을 상기시키는 파멸 의식과 함께 고루 퍼져 있다. 모든 피조물은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으나 필경은 극점에 이르러 파멸하고 그리고 회귀한다. 342p

4. 공간의 내부에서 – 생명

애정의 궁극적인 경험은 곧 이원성이라는 환상의 배후에 <둘은 곧 하나>라는 등식의 깨달음이 있다. 이 자각은 우주의 만상은 하나라는 자각으로 확대될 수 있다. 357p

5. 하나에서 여럿으로

6. 창조의 민화

쳐녀 잉태 The virgin birth

1. 어머니 우주
2. 운명적 모태
3. 구세주를 낳는 자궁
4. 미혼모의 민화

영웅의 변모 Transformation of the Hero

1. 최초의 영웅과 인간
2. 인간적인 영웅의 어린 시절

인간적인 영웅은, 후세 인간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하강>해야 한다. 그러나 전설을 만든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위대한 영웅들을 단순한 인간에 국한시키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들을 제한하는 지평을 넘어갔다가, 보통 사람에게서도 볼 수 있는 신념과 용기로 선약(仙藥)을 얻어 돌아오는 인간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전설을 만든 사람들에겐 탄생의 순간, 심지어는 잉태의 순간에 영웅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웅의 생애는 그의 모험을 절정으로 하는 엄청난 장관으로 그려진다.
영웅이란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운명지워진다는 관점과 일치한다. 400p

신적인 존재란 우리 모두의 내부에 있는, 전능한 자아의 계시다. 삶에 대한 묵상은 따라서 정확한 모방에 이르는 전주곡으로서가 아니라 자기의 내재적인 신성(神性)에 대한 명상의 형태여야 한다. 400p

3. 전사로서의 영웅

영웅이 탄생하는 곳, 혹은 영웅이 도피 또는 추방당했다가 보통 인간들 사이에서 성인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오는 머나먼 땅은 세계의 중심 혹은 세계의 배꼽이다. 물결이 물밑의 바닥에서 번져나오듯, 우주의 형상도 이 근원에서 둥글게 퍼져나간다. 419p

신화적인 영웅은 <이루어진> 사상(事象)의 옹호자가 아니라 <이루어지는> 사상의 옹호자다. 그의 손에 살해되는 용은 현상이라는 괴물 바로 그것이니, 괴물은 쇠사슬 같은 과거의 옹호자이다. 영웅은 암흑에서 일어서지만, 적은 힘이 세고 권능 또한 엄청나다. 적은 자기 지위의 권위를 자신을 위해 행사하기 때문에 적이며, 용이며, 폭군이다. <과거>를 옹호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옹호>한다는 이유에서 그가 바로 사슬이다. 422p

4. 애인으로서 영웅

5. 황제로서, 폭군으로서의 영웅

최고의 영웅이란 우주 발생적 순환의 원동력을 추진시키는 영웅이 아니라, 눈을 다시 뜨고서 오고 가며 기쁨과 고뇌가 교차되는 세계의 파노라마를 통해 하나의 실재가 다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깨치는 영웅이다. 이러한 영웅이 되려면 보다 깊은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432p

영웅 모험의 목표가 미지의 아버지를 찾는 것일 때, 여기에 등장하는 기본적인 상징 체계는, 시험 및 정체 고백의 상징 체계다. 434p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영웅은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증거한다. 434p

6. 구세주로서의 영웅

영웅의 임무는 아버지,(용, 시험자, 무섭고 잔인한 왕)의 부정적인 측면을 살해하고, 우주의 자양이 될 생명의 에너지를 그 굴레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과업은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서도 성취될 수 있고, 그 의지를 거스르고도 성취될 수 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아니 어쩌면 신이 그에게 스스로 자식을 위한 제물이라 되라는 의지를 심어주었는지도 모른다. 441p

7. 성자로서의 영웅

삶의 너머에서 존재하는 이런 영웅은 신화를 초월한 영웅들이기도 하다. 그런 영웅들은 이 삶의 너머에 존재하는 것을 다루려 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을 신화도 다룰 수 없다. 444p

8. 영웅의 죽음

영웅의 전기 마지막 장은 영웅의 죽음, 혹은 떠남의 장이다. 여기에서는 그의 전생애가 요약된다. 죽음에 겁을 먹는다면 그 영웅은 영웅이 아니다. 영웅은 마땅히 무덤과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 445p

소멸 Dessolutions

1 소우주의 끝

놀랄만한 권능을 가진 막강한 영웅은 바로 우리들 개개인이다.
크리슈나 “나는 모든 피조물의 가슴 안에 있는 실재다. 나는 모든 존재의 시작이며, 중간이며, 끝이다.” 이것이 바로 개인이 소멸되는 순간, 사자(사자)의 머리맡에서 들려주는 기도다. 즉 개인은 생전에 자기 가슴에 반영되어 있던 세계를 창조하는 신에 대한 근원적인 깨달음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458~459p

2 대우주의 끝

에필로그

신화와 사회 Myth and society

1 변신 자재자(變身自在者)
2 신화, 제의(祭儀), 명상의 기능
사회적인 의미를 통해 개인은 축제를 정상적, 일상의 생존으로 수렴할 것을 배운다. 이로써 개인의 정체가 확인된다. 거꾸로 말하면 무관심과 반항은 개인과 사회를 단절시킨다. 사회라는 단위에서 볼 때 그 단위에서 단절된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쓰레이기다. 남자든, 여자든, 정직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동사를 쓸 자격이 있는 인간이다. 반면에 입문 의식이나 취임식은 개인과 집단은 어쩔 수 없이 하나라는 교훈을 베푼다. 계절적인 축제는 인간의 지평을 넓힌다. 480p

진정으로 종교적인 제의의 가장 중요한 동기는 피할 길 없는 운명에 순종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동기는 계절적 축제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480p

3 오늘날의 영웅

그러나 모든 것은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요원하다.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개인의 민주적 이상, 동력으로 움직이는 기계의 발명, 과학적인 연구 방법의 발달이 인간의 삶을 변형시킨 나머지 저 유서 깊은,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상징의 우주는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가 토해 낸 신기원을 예고하는 숙명적인 선언처럼, <신들은 모두 죽음> 것이다. 483p

오늘날 집단 속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계도 그렇다. 모든 것은 개인에 귀착된다. 그러나 여기서 의미란 완전히 무의식적이다. 인간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은 어떤 동인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의 심성의, 의식적인 부분과 무의식적인 부분의 교류 통로는 단절되고, 우리는 둘로 찢기고 말았다. 484p

우리는 갖가지 상징을 통해 동일한 구원이 계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고 또 알아야 한다. <베다>의 말씀처럼 [진리는 하나되, 현자는 여러 이름으로 이를 언표한다] 즉 하나의 노래가 인간이라는 합창대의 갖가지 음색으로 들리는 것이다. 인간이 되려면, 놀라우리만치 다양한 인간의 얼굴로 바뀌어 있는 신의 얼굴을 알아보아야 한다. 486p

니체는 <그날이 도래한 듯이 살라>고 하고 있다. 창조적인 영웅을 이끌고 구원하여야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다. 아니 사회를 지키고 구원하여야 할 사람이 바로 창조적 영웅이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는 그 영웅의 족속이 대승을 거두는 그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그가 개인적으로 절망을 느끼고 침묵을 지킬 때 그가 겪는 모진 시련을 나누어 부담하는 것이다. 488p

역자후기

그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신화는 꿈과 동일한 문법을 갖는다. 가령 프로이트의 이른바 <꿈의 작업>, 즉 응축, 치환, 형상화 작업은 신화 형성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거의 대부분의 영웅이 공유하는 경험인, 비정상적인 탄생, 어린 시절의 고난, 방황, 조력자와의 만남, 기적적인 권능의 획득, 귀환의 도식이 캠벨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491p


3. 내가 저자라면

구본형의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라는 책은 베스트 셀러다. 책이 많이 팔렸다는 의미보다는 많은 사람에게 ‘변화’라는 화두를 던져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나와 같은 세일즈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현실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가게 하는 활화산 같은 위험한 사상이다. 특히나 고분고분하게 직장생활 잘하는 사람의 가슴을 질러대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분명 불온한(?) 서적임에 틀림없다. 아무튼 구본형은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라는 책의 중요한 아이디어를 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영감을 얻으셨다고 한다.
다시 한 번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라는 책을 되짚어보면,

출사 - 그대의 꿈은 아직 살아 있는가? - 나는 지금 뜨거운가?
입문 -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 떠나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서
귀환 - 다시 세상 속으로 뜨겁게 - 그대 고유의 브랜드로 서라

구본형은 영웅이 겪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개인에게 적용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개인에게 영웅이 겪게 되는 과정을 단순하게 도입한 것이 아니라, ‘변화’라는 화두를 키워드로 이를 재구성했다는 사실이다. 조셉 캠벨의 원했던 ‘당신이 바로 신(神)이며, 당신이 영웅(英雄)’이라고 주장했던 것을 직접 현장에 적용해 모험을 거부하는 개인에게 변화의 불꽃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는 책은 지루하기 쉬운 ‘변화’라는 화두를 한 편의 판타지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로움을 안겨주고 있다.

이 책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 대해 몇 가지 언급하자면,

첫째, 책의 초반에‘융’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첨부되었으면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정신분석학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독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특히나 융은 알려진 바와 같이 개인적으로 신화(神話)에 관심이 많았다. 융이 추구하는 자아실현의 이야기가 바로 신화에서 나오는 ‘영웅 이야기’와 그 맥락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융은 신화의 주인공인 ‘영웅’(귀환하기 前)을 자신이 주장한 표층자아로 여겼다. 영웅이 모험과 시련을 통해 천신만고의 위기를 넘기면서 집단적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던 참자아를 찾아나간다. 결국 신화의 결론은 영웅이 아름다운 여인을 얻거나 왕이 되는데, 이는 표층자아가 참자아와 만나는 것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즉, 자기 안의 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아무튼 조셉 캠벨은 융의 심리학 이론에 많은 부분 영향을 받고 있는데, 독자들을 위해 좀더 친절한 지면 할애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둘째, 신화에 대한 인용들이 부분에 그쳐 파편화 되는 경향이 있다.
신화의 전체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인용되는 부분이 많았다. 또한 하나의 신화만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의 신화를 인용하다 보니 저자의 주장을 신빙성있게는 했으나 각 신화를 전체적인 흐름에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산만했다. 물론 이러한 부분에 대한 보완이 다른 조셉 캠벨의 책으로 이루어진 것은 알고 있다.

셋째, 편집과 번역의 문제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무수히 많은 오탈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쉼표의 경우에도(저자의 의도가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맥과 상관없이 남발되어 사용되고 있다. 6쇄가 넘게 인쇄되고 있는 명저(名著)가 어떤 이유로 이렇게 방치된 상태로 있는지 모르겠다. 또한 원본과 비교하거나 확인할 방법이 없기에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직감적으로 번역의 서투름과 부적절한 용어의 선택이 매끄럽지 않았다.

넷째, 개인이 영웅으로 변화해 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고 있지 않다.
우리 자신, 개인이 영웅으로서 거듭나기 위한 출발, 입문, 귀환과 같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것이 없다. 저자가 말하듯이 ‘책’에 해답이 있을까? 난 솔직히 이 견해에 공감할 수 없다. 물론 깊이 있는 책읽기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순간순간을 살기 위한 지복의 경지는 단순히 학문적인 습득을 통해서만은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승들이 왜? 모든 경전과 지식들을 불사르라고 했겠는가? 물론 책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조셉 캠벨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지 못한 지금 상황에서 그를 폄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이 부분에 대한 지복(至福)을 얻는 방법과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하게 기술하도록 하자.

여러 지적에도 불구하고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라는 책을 덮으며,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을 수 있었다. 훗날 내 개인의 책을 집필할 때, 보잘 것 없는 생애지만 있는 그대로 나의 이야기를 써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를 빗대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우리 개인의 삶은 위대한 역사이며, 신화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집필에 대한 작은 용기와 위안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수확(收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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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4.13 23:59:44 *.179.68.80
후반부에 생긴 밑줄이 없어지지가 않네요. 일부러 그런거 아닙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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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8.04.14 00:20:55 *.208.192.28
339페이지의 인용에 <u>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html 태그로 <u>는 (underline) 밑줄을 표시하는 명령어이기 때문이에요. 339페이지의 인용을 (u)로 고쳐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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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4.14 00:26:56 *.179.68.80
고마워요~ 옹선배님.
지난번 프리북페어에서 인상적인 발표였습니다.
솔직히 동기부여 많이 되었어요~ 부지런히 배워나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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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2008.04.14 17:46:41 *.235.31.78
멋진 분이세요. ^^

연구원들 한분, 한분께 정성스런 답글을 달아주시고.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제게도 달아주시고.... (고전 15:8)인용

리뷰 잘 읽었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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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4.14 19:01:15 *.117.68.202
아하~~ 옹선배가 한 이야기가 뭔지 무척궁급했는데.. 내게도 그런현상이 일어나 당황하던 사이 이제사 그게 뭔소린줄 알았다는..ㅋㅋ

거암 덧글 고마우이...
그대를 4기연구원의 칭찬쟁이로 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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