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오현정
  • 조회 수 2189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08년 4월 14일 10시 28분 등록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조셉 캠벨 저, 이윤기 옮김

Ⅰ.저자에 대하여

조셉 캠벨

이 글은 조셉 캠벨이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하는 글 형식으로 꾸며본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조셉 캠벨입니다. 미국에서 왔어요. 사실 국적이야 미국인이긴 하지만 저
는 사실 제가 어떤 특정한 나라의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나
기야 미국인으로 태어났지만, 우리 부모님은 아일랜드 사람들 이었고, 나중에 커서는 프랑
스, 독일에서 공부를 한데다가, 더 나중에 힌두교, 불교 등을 공부할 때는 제가 동양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으니까. 그냥 저를 세계인이라고 해 주셨음 좋겠네요.

마찬가지로 저는 사람들이 저한테 ‘신화학자’라는 말을 쓸 때도 같은 기분이 들곤해요. 물론
제가 각 문화의 다양한 신화에 대해서 일생 동안 가장 많은 이야기를 많이 하긴 했지만, 돌
이켜 생각해 보면, 제가 읽고 싶었던 텍스트는 ‘신화’라기 보다는 ‘인간’, 그리고 ‘ 그 인간
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인간이 가진 이야기’가 매우 재미 있었거든요.
인간들이 가진 이야기가 좋아서 영문학, 비교 문학을 공부를 시작했고, 어떻게 하면 더 많
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더 많은 언어를 배우게 되면 그렇게 될 것 같아서
로망스어, 중세 프랑스어, 프로방스어, 라틴어, 산스크리스트어를 배우게 되었고 그러다가
괴테와 토마스만의 문학이 좋아졌고, 나중에는 문학에서 혹은 신화에서 이야기하는 이야기
들이 인간의 근본적인 무의식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서 프로이트, 융의 사상을 공부하게
된 거죠. 어찌 보면 신화학자라는 말보다 ‘인간학자’라는 말을 써 주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네요.

벌써 아셨겠지만, 저는 못 말리는 호기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호
기심과 함께 살았어요.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호기심이라는 밑천이 떨어진 적이 없었죠.
그것이 아마 제가 우리 부모님께 물려 받은 가장 좋은 재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문학, 언어, 종교, 무의식 등 이 모든 것들이 제 호기심의 대상이었죠. 게다가 이 호기심을 끝까지 해결해 보려고 하는 끈기와 용기도 있었던 것 같아요. 다 아시다시피, 제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대공황’의 시기였어요. 당장 먹고 살 것이 걱정이 되어서 수십통의 이력서를 썼는데요 정말 단 한곳에서도 연락이 안 오더군요. 할 수 없이 제 동생 앨리스랑 우드 스톡으로 들어갔어요. 거기 숲 속에다 집을 이어 놓고선 공부를 했어요. 색소폰 연주를 해 주고 받은 돈으로 책을 사서 공부를 하고 생계를 유지하고 그랬죠. 어떤 때는 책 사 볼 돈조차 없어서 서점 주인에게 편지를 써서 나중에 갚는 조건으로 책을 사서 보기도 하고 그랬죠. 당시에는 가끔 힘들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잘 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 제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마 그 시절이 없었다면 저는 제 학문에 깊이를 부여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거에요. 그 시절에는 이렇게 강의를 많이 안 해도 됐었고, 결혼도 안 했을 때라서 시간이 많이 있었어요. 고요히 침잠할 시간이 많이 있었으니까. 이전에 산만하게 퍼져있던 내 생각을 많이 정리할 기회를 갖게 되었었지요.

여러분들이 저한테 가장 궁금해 하시는 것 하나를 마지막으로 말씀 드리고 마쳐야 할 것 같네요. 많은 분들은 제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하시더라구요. 사실, 벌써 공공연하게 말씀 드렸지만 저는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쪽은 아닙니다. 이 부분에서 많은 오해가 있으시더라구요. 다만, 저한테는 이제 불교나 기독교나 이슬람교나 힌두교 등 세상의 모든 종교가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니까 인류가 오랫동안 지켜 온 그 다양한 종교도 그들의 근본은 단 하나 같은 곳에서 출발을 한다는 것이지요. 저는 ‘진리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서로 다른 상징을 이용해서 이야기 할 뿐이에요.

다만 제가 말년에 달마대사의 그림을 집에 붙여 두고 불교 쪽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했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지요. 제가 생각하기엔 그 어느 종교 보다도 불교가 가장 그 원형의 진리를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종교라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다른 종교에도 가장 많이 열려있는 종교죠. 그래서 불교를 더욱 가깝게 느끼게 되었어요. 그러나, 불교만을 내 종교로 받아 들였던 적은 없어요. 그렇게 이해해 주시길 바래요.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p5](프로이트) 종교 교의에 녹아들어 있는 진리는 대개가 변형된 데가 체계적으로 위장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진리로 알아보지 못한다.

[p6]이 책의 목적은 종교와 신화의 형태로 가려져 있는 진리를 박히되, 비근한 실례를 잇대어 비교함으로써 옛뜻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데 있다. 옛 현자들은 말을 하되 언외의 뜻을 거기에다 실은 소홀함이 없었다.

[p6]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상사성이지 상이성은 아니다. 일단 이런 상사성을 이해하면 상이성은 일반적으로(그리고 정치적으로)믿어지는 정도만큼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리라 믿는다. 저자가 바라기로는, 이러한 저자의 비교 해석이 이 세계의 통합을 결실시키려는 작품의 경향에 대해, 종교적 혹은 정치적 제국의 이름으로서가 아닌, 인류의 상호 이해라는 측면에서 그리 초라하지 않은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베다 경은, <진리는 하나되, 현자는 여러 이름으로 이를 드러낸다>고 했다.

프롤로그 원질신화
1. 신화와 꿈

[p13]재미삼아 귀를 기울여보는 콩고 주술가의 잠꼬대 같은 주문이나, 점잖은 취미로 읽어보는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 노자 경구집의 얇은 번역본이나, 이따금씩 깨뜨리고 보는 경고하기 그지 없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논법이나, 기괴한 에스키모 요정 이야기의 빛나는 의미나 그 내용면에 있어서는 별로 다른 것이 없다. 즉 변화 무쌍한 듯하지만 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이야기의 일정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p 14]놀라운 것은, 심원한 창조적 중심을 촉발하고 고무하는 특징적인 효과가 아이들 놀이방에서 굴러다니는 하찮은 동화책에도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한 방울의 바닷물이 바다의 본질을 고스란히 대표하고, 하나의 벼룩 알에 생명의 신비가 두루 깃들여 있는 것과도 같은 이치인데, 이는 신화학의 상징은 꾸며낸 것도 아니고 누가 있으라고 해서 있을 수도, 발명될 수도, 억압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화의 상징은 영혼의 부단한 생산물인데, 이 하나하나의 상징 속에는 그 바탕의 근원적 힘이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p 15]세부적인 데 이르면 견해가 다소 다를 수 있고, 특정 사례나 문제에 대한 해석이 서로 상반되는 경우도 있지만, 프로이트와 융과 그 후계자들은 영웅과 신화의 행적이 현대로 계승되었음을 여지없이 증명해 내었기 때문이다.

[p 15]최신형 오이디포스의 화신, 미녀와 야수의 속편이 오늘 오후에도 뉴욕의 42번가와 50번가 모퉁이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p 23]신화와 제의의 주요 기능은, 과거에다 묶어두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끊임없는 환상에 대응하여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내부에 있는 타락의 길을 버리고 영험적인 정신의 도움을 따르게 하는 우리 내부의 고차원적인 신경증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아직도 남아 있는 유아기의 이미지에 발목이 잡혀 있고, 따라서 어른으로 가는 길을 애써 좆으려 하지 않는다.

[p29]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p29]오직 탄생(낡은 것의 새로운 태어남이 아닌, 새로운 것의 탄생)만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 죽음의 끈질길 재현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내부에, 사회적인 무리의 내부에 끊임없는 <탄생의 재현>(우리가 이 땅에서 오래 잔존하게 되어 있다면)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갱생하지 않는다면 응보 천벌 여신의 복수만이 우리가 얻게 되는 승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며, 파멸은 우리 미덕의 껍질부터 깰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화는 올가미다. 전쟁은 올가미다. 변화도 올가미이며, 항구 불변성이라는 것도 올가미다. 죽음이 승리하는 날이 오면 죽음이 다가 온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는 길 뿐, 갈가리 해체되었다가 재생하는 길뿐이다.

[p30]창조 작업의 회복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보다 높은 차원을 위한 위기가 따르는데, 토인비 교수는 이 위기를 묘사하는 데 <해탈>과 <변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첫단계, 즉, 해탈 혹은 물러섬 과정은, 외적인 세계에서 내적인 세계로, 대우주에서 소우주로 그 중심을 옮김으로써, 황무지의 절망에서 내부에 존재하는 영원히 평화로운 영역으로 물러섬으로서 이루어진다.
(중략)
보다 중요한 것은 어른이 되어도 의식할 수 없는 삶의 잠재력, 우리들 자신의 또 한 부분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이 황금의 씨앗은 마르는 법은 없다. 우리가 상실해 버린 이 전체성의 일부라도 나날의 현실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우리의 능력은 놀라운 수준까지 신장될 것이며, 아울러 생기 넘치는 재생의 순간을 체험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는 더 높이 속아야 한다.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세대, 나아가서는 우리의 문명 시대가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얼마간이라도 건져 올릴 수 있다면 우리는 저 위대한 천품의 시혜자, 시대의 문화 영웅(한 나라뿐만이 아닌 세계 역사상의 귀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 33]따라서 영웅은 과거 개인적, 지방의 역사적 제약과 싸워 이것을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정상의 인간적인 형태로 환원시킬 수 있었던 남자나 여자를 일컫는다. 그런 사람의 상상력과 이상과 영감은 태고적부터 인간의 생명과 사상의 원천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영웅은, 현재의 붕괴되어 가는 사회나 정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회 재생의 심원한 원리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영웅은 현대인으로 죽었지만 영원한 인간(완전하게 되되, 특이하지 않은 우주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따라서 두번째 엄숙한 과업과 행위는(토인비가 주장하고, 인류의 모든 신화가 보여 주듯이)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재생의 삶에 대해 그가 배운 바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p 36]이 판도라의 상자는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신들의 선물인데, 이 안에는 존재의 고통과 축복의 씨앗뿐만 아니라 미덕과 희망까지도 들어 있다. 이 상자의 도움으로 꿈꾸는 사람은 강을 건너 반대편 강 언덕에 이른다. 그리고 이 기적 같은 일을 통하여, 극히 어렵고 위험한 작업인 자아 발견과 자아 발전을 꾀하는 모든 사람들은 생명의 바다 건너편에 정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p38]모든 시대의 영웅들은 우리에 앞서 미국으로 들어 갔고, 미궁의 정체는 모두 벗겨졌으며, 우리는 단지 영웅이 깔아놓은 실망 따라가면 되는데도 그렇다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을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2. 비극과 희극

[p 39]그리스의 비극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소설도 의절의 비의를 찬양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 속에 있는 인생이다. 해피 앤딩은 허위 진술로 경멸을 당하는데, 이는 우리가 알고 보아온 한, 이 세계에는 하나의 종말, 즉 죽음, 붕괴, 의정,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던 형대가 사위어감에 따라 일어나는 우리 마음의 십자가가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p 43]모든 것은 변하고 있으나, 아무것도 죽지는 않는다. 영혼은 여기 저기를 방황하다 마음에 드는 뼈대를 취한다. 따라서 한번 존재한 것은 다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존재하게 되니, 모든 운행의 주기는 반복한다.

이 몸뚱이는 죽어 없어지지만 이 몸 속에 와 계시는 실재는 영원하며, 불멸이며, 무한이니라.

[p44]신화적 영웅의 길은, 부수적으로는 지상적일지 모르나, 근원적으로는 내적인 길이다. 즉, 보이기 않는 저지선이 뚫리고, 오래 전에 잊혀졌던 힘이 다시 솟아 세계의 변용에 기여하게 되는 그런 심연으로 뚫린 길인 것이다.

3. 영웅과 신

[p 44]영웅이 치르는 신화적 모험의 표준 궤도는 통과 제의에 나타난 양식, 즉 <분리>,<입문>,<회귀>의 확대판이다. 이 양식은 원질 신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p 46]그는 정각을 이루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굳게 결심하고 그 보리수 아래, 부동의 자리에 앉았다.

[p 50]그리스의 웅장한 서사시로 표현되든, 아니면 장엄한 성서의 이야기로 표현되든, 영웅의 모험은 위에서 말한 핵 단위의 패턴, 다시 말하면, 세계로부터의 분리, 힘의 원천에 대한 통찰, 그리고 황홀한 귀향의 패턴으로 이루어진다.

[p 51]<회귀와 사회와의 재통합>은 정신 에너지가 세계로 흘러 들어오는 연속적인 순환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과정이고, 영웅이 속한 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영웅의 오랜 후퇴에 대한 변명이 되나, 영웅 자신에게는 가장 어려운 필요 조건이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영웅이 부처처럼 승리를 거두고 완전한 정각 상태에 들어버린다면 이 경험의 만족감이 세상의 슬픔에 대한 그의 기억과 흥미와 희망을 없앨 위험이 있게 때문이다. 혹은 경제적인 문제에 발목을 잡힌 사람들에게 이 깨달음을 전하기가 너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웅이 입문의 모든 시련을 향해 차례로 올라가는 대신, 프로메테우스처럼 단도 직입적으로 목표를 향해 돌진하고 (폭력이나 기지로써, 혹은 운에 힘입어), 그가 의도하던 세상을 위한 홍익을 손에 널어버린다면 그가 지닌 힘의 불균형이 부작용을 일으켜, 프로메테우스가 자기의 불경스러운 부의식이라는 바위에 갇혔듯이, 내-외적인 시련을 당하게 된다.

[p 54]이런 시작에서 보면 영웅은, 우리 모두가 내장하고 있되 오직 우리가 이 존재를 발견하고 육화 시킬 때를 기다리는 신의 창조적, 구원적 이미지의 상징이다.

[p 55]이 둘(영웅과 그의 궁극적인 신, 찾는 자와 찾아지는 자)은 결굴, 이 세계의 신화에 다른 아닌 단일한 유형적 신비의 표리로 받아들여진다. 위대한 영웅은 위대한 행적을 통해, 이 다양한 얼굴이 사실은 하나임을 알고, 또 남들에게 알리게 된다.

4. 세계의 배꼽

[p 55]영웅의 성공적인 모험의 의미는, 생명의 흐름을 풀어 다시 한번 세계의 몸 속으로 흘러들게 하는 데 있다. 이 흐름의 기적은 물리적으로 음식물의 순화, 역학적으로는 에너지의 흐름, 영적으로는 은총의 현현을 나타내는 듯 하다.

[p 58]우주적인 남성이나 여성 (가령 부처 자신이나 힌두의 춤추는 여신 칼리 같은)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신의 화신으로서의 영웅은, 영원의 에너지가 시간성 안으로 흘러드는 배꼽, 즉 세계의 배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의 배꼽은 연속적인 창조의 상징, 모든 사물 안에서 약동하는 소생의 연속적인 시적이 일어나게 하는 세계 보존의 신비인 것이다.

[p 62]세계의 배꼽은 도처에 있다. 그리고 이곳은 존재의 근원이기 때문에 세상의 하고 많은 선과 악을 두루 산출한다. 추한 것, 아름다운 것, 죄악과 미덕, 쾌락과 고통이 모두 이 세계의 배꼽이 공평한 산물이다.

[p 62]신화도 위대한 영웅을 위대한 도덕가로는 다루고 있지 않다. 미덕 역시, 최고의 직관 앞에서는 케케묵은 훈장의 읊조림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직관은 짝짝으로 된 상대적 반대 개념을 초월한다. 미덕은 자기 중심적인 자아를 완화시켜 범개인적 중심성을 지향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가능했다면 고통이나 쾌락, 미덕이나 악덕, 우리의 자아 혹은 남들의 자아는 무엇이라는 말인가? 초월적인 힘은, 이 모든 것을 통하여 모든 것 안에 사는 자, 모든 것 안에서 훌륭한 자, 모든 것 안에서 우리의 섬김이 타당한 자에게 감득되는 것이다.

[p64][둘은 싸울 수밖에 없었지.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남들을 싸우게 하는 것이니라.]

제 1부 영웅의 모험
제 1장 출발

1. 영웅에의 소명

[p 72]그러나 크든 작든, 삶의 단계나 정도가 어디에 이르러 있든, 이러한 소명은 언제나 변용의 신비, 완성되면 곧 죽음과 탄생에 이르는, 정신적 통과 의례 혹은 순간을 개막한다. 지금까지의 삶의 지평은 이제 너무 웃자라, 낡은 개념과 정서 패턴은 몸에 맞지 않는다. 바야흐로 또 하나의 문턱을 넘어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p 76]변형의 때가 무르익은 정신은 끊임없이 이런 전령관을 산출하는데 아래에 소개하는 두 사람의 꿈이 이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첫번째 예는,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려는 어느 젊은이의 꿈이다.

나는, 많은 양들이 풀을 뜯는 녹지에 있었다. 이것은 <양의 땅>이다. 양의 땅에는 미지의 여성이 서서 내가 갈 길을 손가락질 하고 있었다.

[p80] 이 신화적 여행의 첫 단계(우리는 <이를 모험에의 소명>으로 불렀다)는, 운명이 영웅을 불렀고, 영웅의 영적 중심이 그가 속한 사회에서 미지의 영역으로 옮겨졌음을 암시하고 있다. 낙원일 수도 있고 위험의 도가니일 수도 있는 이 운명적인 영역은 여러 가지 형태로 다양하게 표상된다. 가령 오지, 숲, 지하 왕국, 해저, 천상, 비밀의 섬, 험한 산꼭대기, 혹은 꿈꾸는 상태로 표상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항상 변환 자재하는 존재, 다형태를 취하는 존재, 뜻밖의 고통, 초자연적인 행위, 그리고 초현실적인 환희가 있다.

2. 소명의 거부

[p 81]현실 생황에서는 자주, 신화나 민간 전승에서도 드물지 않게 소명에 응하지 않는, 조금은 답답한 경우를 우리는 만난다. 다른 데 주의를 집중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소명에 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명에의 거부는, 모험을 부정적이게 한다. 타성이나, 힘겨운 일, 혹은 <문화>의 장벽 때문에, 모험의 주체는 의미 심장한 긍정적 행동력을 잃고,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버리는 것이다. 모험의 주체가 누리던 화려한 세계는 메마른 돌멩이가 구를 뿐인 황무지가 되고, 그 삶은 무의미해진다. 그렇긴 하나, 미노스 왕처럼 이 모험의 주인공 역시 초인적인 노력으로 예사롭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는 데엔 성공할지 모른다. 그러나 무슨 집을 짓건, 그가 짓는 것은 죽음의 집이다. 자기의 미노타우로스를 숨기는 퀴클롭스 식 미궁일 뿐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면서 파멸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p82]미노스 왕은, 그가 속한 사회의 신의 의지에 복종한다는 의미로 희생을 드려야 하는 신의 수소를 사유물로 취했다. 그는, 자기 상상력보다는 경제적 이득을 앞세웠다. 때문에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생의 역할을 감당하는 데 실패했고, 우리가 보았듯이 엄청난 불운을 겪어야 했다.

[p 88]이것이, 저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카마르 알 자만(세기의 달이라는 뜻) 왕자와 부두르 (<만원>이라는 뜻) 공주의 모험이 상징하는 영웅 문제의 일면이다.
페르샤 샤리만 왕의 외동 아들인 젊은 미남 왕자는 부왕의 끈질긴 제안, 부탁, 요구, 끝내는 명령까지 거부했다. 즉 남 하는 깃 하며 살고 아내를 얻으라는 아버지의 청을 거절한 것이다. 처음 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청년은 이렇게 대답했다.
‘오 부왕이시요, 부황께서는 저에게 결혼할 욕심도, 여자에게 영혼을 기울일 의향도 없다는 걸 아시면서도 그러십니다. 여자들의 교와 간에 대해서는 저도 많은 책에서 익히 일고 많은 선인들로부터 익히 들은 바 있습니다.

3. 초자연적인 조력

[p93]소명을 거부하지 않은 모험 당사자는 영웅적인 편력 도중 첫번째 보호자를 만난다. 노파나 노인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 보호자는 모험 당사자가 곧 만나게 되는 용과 맞설 호부를 준다.

[p96]소명에 응답했고, 용기 있게 미지의 사건에 대한 체험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영웅은 모든 무의식의 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 대자연Mother Nature은 항상 위대한 임무를 지원한다. 영웅은 행동이 그 사회가 예비하고 있는 것과 일치될 때, 그는 흡사 역사적 변화의 리듬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러시아 원정에 즈음해서 나폴레옹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미지의 종국으로 떠밀리는 느낌을 받고 있다. 내가 그곳에 이르는 순간, 내가 불필요하게 되는 순간, 나를 갈가리 찢는 데는 한 입자의 원자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인류가 힘을 모두 합치더라도 나를 해칠 수 없을 것이다.

4. 첫 관문의 통과

[p 105]이 수호가 뒤로는 어둠이며, 미지의 세계이며, 위험이다. 부모의 감시 밖이 아이들에겐 위험 지역이고, 사회의 보호 밖이 종족의 구성원들에겐 위험 지역인 것과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들이면 여기에서 만족한다.

[p107]미지의 땅(황야, 밀림,심해 타향 등)은 무의식의 내용물이 자유롭게 투사되는 무대다. 근친 상간 리비도와 부친 살해의 데스트루도는, 거기에서 폭력의 위협과 가공의 위험한 환희를 암시하는 형태로, 도깨비는 물론, 신비스러운 정도로 매혹적이고 향수를 유발할 정도로 아름다움 세이레네즈(사이렌)으로 개인과 사회에 다시 투사된다.

[p 111] 모험이란 기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어느 나라에서든, 어느 시대든 마찬가지다. 이 기지의 세계와 미지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의 수호자는 극히 위험한 존재다. 그들과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의 위험 부담을 안아야 가능하다. 그러나 능력과 용기를 갖춘 사람 앞에서는 위험은 그 꼬리를 감추고 만다.

[p 117]”도깨비여, 왜 내가 두려워하겠는가? 태어나면 어차피 한번은 죽게 되어 있는데 두려워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더구나 내 뱃속에는 벼락이라는 무기가 하나 더 있다. 그대가 나를 먹는다고 하더라도 벼락은 삭이지 못할 것이다. 이 벼락은 그대 뱃속에서 그대를 갈가리 찢어 필경은 그대 목숨을 빼앗을 것이다. 결국 그대가 나를 먹으면 우리는 둘 다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p118]이제 독자들도, 다섯 가지 무기를 지닌 태자의 말 뜻을 헤아렸으리라. 그가 자기 뱃속에 있다고 한 무기는 다름아닌 <지혜>라는 무기였다. 실제로 이 젊은 영웅은 전생의 부처, 바로 그분이었다.

5. 고래의 배

[p 120]마법의 문턱을 넘는다는 것이, 곧 재생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관념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래의 배라는 자궁 이미지가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p124]스스로를 구원하는 힘은 여기에 있다. 그의 죽음과 회귀는, 모든 현상계의 대립물이 창조되니 않은 불멸의 존재임을 드러내는데 여기에 두려움이 있을 리 없다.

제 2장 입문
1. 시련의 길

[p 133]따라서 주술사는, 그 사회 성인들의 심성에 내재하고 있는 상징적 환상 체계를 출몰 시키는 역할을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주술사란, 이러한 유아적 놀이를 주도하고, 공통의 근심거리를 밝혀내는 지도자인 것이다. 그들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방에서 성공하고 현실적인 어려움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잡귀와 대리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p143]고대의 상징 체계에 따르면 빛과 어둠을 표상하는 자매, 즉 이난나와 에레쉬갈은 두 얼굴의 한 여신이다. 그리고 그들의 반목은 어려운 시련의 길을 의미한다. 신이든 여신이든, 남자든 여자든, 신화의 등장인물이든 꿈을 꾸는 사람이든, 영웅은 적대자를 발견하고 삼키거나 그에게 삼켜짐으로써 이 적대자(뜻밖에도 그 자신의 자아)를 동화시킨다. 하나씩 하나씩 장애는 차례로 사라진다. 영웅은 자신의 자존심, 미덕, 아름다움, 삶을 팽개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 적대자에게 절을 하거나 복종한다. 이윽고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2. 여신과의 만남

[p 144]모든 장애물이 극복되고 도깨비가 퇴치되었을 때 영웅이 치르는 마지막 모험은, 승리한 영웅과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스러운 혼례로 표상된다. 이로써 영웅은 천저, 천정, 혹은 땅 끝, 우주의 중심점, 신전의 성소, 혹은 마음속의 가장 어두운 방 속에서 위기를 맞는다.

[p148]그러나 우리의 심상이 기억해 낸 어머니가 항상 자비로운 것만은 아니다.
(1)우리가 공격적인 환상을 투사하고 그러면서도 반격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무심하
거나, 이르기 어려운 어머니도 있고,
(2) 구속하고, 금지하고, 벌주는 어머니도 있으며,
(3)자기에게 묶어두기 위해 아이의 성장을 싫어하는 어머니고 있고,
(4)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위험한 욕망을 일으키게 하는 (거세 콤플렉스) 바라던 어
머니이긴 하나 가까이해서는 알 될 어머니고 있다. (오이디우스 콤플렉스)

[p 151]여신은 생의 불길로 늘 붉다. 지구, 태양계, 먼 우주의 은하까지 이 여신의 자궁 안에서 팽창한다. 왜냐하면 이 여신이 세계의 창조자, 영원한 어머니, 영원한 처녀이기 때문이다. 이 여신은 포옹하는 것을 포옹하고, 자양하는 것을 살지게 한다.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것의 생명이다.

[p152]여신은 또 때가 되면 죽는 모든 것의 죽음이기도 하다. 나서 사춘기, 성년기, 장년기를 거쳐 무덤에 들어가기까지 전 존재의 순환은 여신의 지배 아래서 이루어진다. 여신은 자궁이며, 무덤이며, 제 새끼를 먹는 돼지다.

[p 153]만일 영웅의 능력이 여신에 미치면 이 양자, 즉 아는 존재와 알려지는 존재는 갖가지 제약에서 해방된다. 여성은 감각적인 모험의 정점으로 영웅을 인도하는 안내자다. 열등한 눈으로 보면 여신은 열등한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무식한 눈으로 보면 범용하고 추악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여신은 자기 존재를 알아보는 자에 의해 해방된다.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에서가 아닌, 여신이 바라는 친절하고 침착한 상태에서 그 여신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영웅은, 여신이 창조한 세계의 왕, 즉 인간으로 화신한 신일 수 있는 것이다.

3. 유혹자로서의 여성

[p159]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적인 결혼은 영웅의 삶 전체가 완성되었음을 상징한다. 즉 여성이 곧 삶인데, 영웅은 이 삶을 알게 되었고, 이를 완성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p 160]참으로 까다롭고 재미있는 것은, 이상적인 삶에 대한 의식적 견해가 실제의 현실적 삶과 잘 일치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질을 이루는 것, 우리 친구들에게 내재해 있는 것, 우리가 추구하는 것, 자기 방어적이고, 악취가 나고, 탐욕적이고 음탕한 흥분상태,즉, 우리 조직 세포의 본질을 인정하여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이를 윤색하고. 회칠을 하고, 재해석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기름에 빠진 머리카락을 누군가 다른 불유쾌한 사람의 허물로 돌리려 한다.

[p 165]오, 은자여. 아름다운 은자여! 그대 내 어깨로 손을 얹어 보아요. 불 같은 화살이 그대 핏줄을 타고 지나는 것 같으리니. 아니, 내 몸의 더 비천한 곳을 점유하시면, 제국을 정복한 것 이상의 격렬한 기쁨을 맛보시려니. 그대 입술을 더 가까이.

4. 아버지와의 화해

[p 168]이윽고, 유일한 해결책인 재생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하느님 성령의 능력에 영혼을 의지하여 심정에 위대한 변화가 일어나게 하니 않는
여러분, 거듭나고 새 사람이 되어, 죄악의 구렁텅이로부터 새로운 상태로 일어서지 않는 여러분, 빛과 생명을 체험하지 않은 여러분은(허나 여러분은 많은 부분에서 삶을 개선하고, 종교적 열의를 가지고 있으면, 가족과 친척에게 종교의 형식을 권면하고 있고, 하느님 안에 거하고, 그 안에서 엄격하게 살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 하느님의 노하신 손 안에 있습니다. 이 순간 여러분을 저 영원한 파멸로부터 지키고 계씨는 것은 바고 그 분의 의지입니다.

[p 170]<화해>, 즉 <하나되기>란 스스로 만들어낸 두 마리의 괴물(신 ,초자아)로 보이는 용과 죄악(억압된 이드))로 보이는 용을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자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는데 이게 예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사자는 아버지가 자비로우며, 이 자비를 믿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되면 믿음의 중심은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신의 족쇄 바깥으로 이동하고, 믿음의 중신이 이동하면 무섭고 잔인한 측면은 사라진다.

[p 178]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입문의 영광을 입는 자는, 자기 인간성을 모두 박탈당하고, 비개인적인 우주적 힘을 대표하는 사람이 된다.

[p 192]창조의 역설, 영원으로부터의 시간이라는 양식의 도래는 아버지가 지니는 근원적인 비밀이다. 이것은 설명될 수가 없다. 따라서 모든 신학 체계에는 배꼽, 즉 어머니인 생명의 손가락이 닿았던, 끝내 아무도 알 수 없는 아킬레우스 건이 있는 법이다. 영웅이란, 정확하게 그곳을 뚫고 (그가 속한 세계와 함께)들어가, 그의 존재를 제약하는 매듭을 잘라야 하는 것이다.

[p 194]아들이 아버지를 알 나이가 되면 시련의 고뇌가 이미 그의 내부에 태동해 있다. 세상은 더 이상 눈물의 공짜기가 아닌, 행복이 기다리는 현종의 환전한 현현이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그 추종자들이 알던 노기 충천한 신의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같은 세기의 눈물겨운 동유럽의 게토(유태인 집단 거주 지역)에서는 다음과 같은 서정시가 흘러나왔다.

5. 신격화

[p 195]관세음 보살이다. 이 분은 존재의 구렁텅이에 빠져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지각 있는 중생을 가엾게 여긴다고 해서 관세음보살, 즉 <대자대비로 굽어보시는 주>라고 불린다.

[p 196]의식의 외피가 벗겨져 나가, 모든 공포에서 자유로워지고 변화의 경계를 넘어서게 된 상태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잠재해 있는 해탈의 상태에며, 영웅들이 됨으로써 누구나 획득할 수 있는 상태다

[p 200]하나가 둘에 이어 다수로 분열하며, 둘의 재결합으로 새 생명의 세대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이미지는, 우주 발생적 순환의 시작에 해당하는데, 영웅의 모험이 막바지에 도달하여 낙원의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 신의 형상은 다시 나타나고, 지혜는 다시 원상으로 회복된다.

[p 203]이 피는, 여자의 질에서 나온 월경혈, 남자의 정액, 그리고 오줌과 물과 남성의 유두에서 나온 젖을 동시에 상징한다. 피가 흘러 내린다는 것은 곧 피를 흘린 아버지가 삶의 원천과 자양을 내부에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

[p 205]세계는 서로 싸우는 무리들로 가득 차 있다. 이 모두가 토템, 국기, 그리고 집단의 숭배자들이다. 심지어는 기독교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들도 (세계의 구원자를 따르기는커녕) 지엄하신 그들의 주가 가르친 에고, 에고의 세계, 그리고 에고의 종족 신의 정복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하기보다는, 식민지주의적 야만성과, 너 죽고 나 죽자 식 전쟁의 선수로 역사에는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의 주는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던가?

[p 206]그러나 이제 내 말을 듣는 사람들아, 잘 들어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어라, 그리고 너희를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라. 누가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 주고 누가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마저 내어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빼앗는 사람에게는 되받으려고 하지 마라.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너희가 만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한다. 너희가 만일 되받을 가망이 있는 사람에게만 꾸어준다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것을 알면서 꾸어준다.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남에게 좋은 일을 해주어라. 그리고 되받을 생각을 말고 꾸어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며,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다. 그러니,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p209]그대와 남이 다르지 않음을 알면
남을 섬길 수 있으리라.
남을 능히 성겨 내면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
나를 만나면 불성에 이르리라.

[p 213]보살 신화에서 주목해야 할 두번째 경이로움은, 보살이 삶과, 삶으로부터 해당의 차이를 없애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보살이 열반을 단념한다는 사실로 상징되고 있다. 열반이란 말은<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음 이라는 세 겹의 불을 끈다>는 뜻이다.
[p 217]세상으로부터의 출발은 오류가 아니라 여행의 첫 출발이다. 이 먼 여로에서, 우주 순환의 심오한 적멸을 깨치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은 힌두교에도 익히 알려져 있다. 삶에서 자유로워진 사람, 욕심이 없고 대자 대비하고 현명한 사람이 요가로 자아를 통일하고 만사 평등하게 보면 일체 만유 속에서 자아를 보고 자아 속에서 일체 만유를 본다. 절대의 마음으로 만유 안에 있는 나를 우러러 섬기는 사람, 그런 사람은 세속의 삶이 어떠하든 신 안에서 사는 사람이다.

6.홍익

[p 237] 그러나 신들은 지나치게 잔혹하고 지나치게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이럴 경우 영웅은 그 불로불사의 영약을 손에 넣기 위해 속임수를 써야 한다. 프로메테우스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최고의 신이라도 심술궂고, 생사 여탈권을 쥔 도깨비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신을 소이거나 죽이거나 이 신과 화해하는 영웅은 구세주로 칭송을 받는 것이다.

[p248]영원을 알면 이해력이 넓어지고, 이해력이 넓어지면 포용력이 넓어진다. 시야가 넓어지면 귀함을 얻는다. 귀함이란 천상적인 것과 다름 아니다.

제 3장 귀환
1.귀환의 거부

[p 253]근원을 투시함으로써, 혹은 남서이나 여성, 인간이나 동물로 화신한 자의 은혜를 입음으로써 영웅의 임무가 수행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모험 당사자인 영웅은 아직 생을 역전시키는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하는 모험을 치러야 한다.

2. 불가사의한 탈출

[p 269] 도망에 실패하는 신화는 우리에게 있어서 비극이지만, 성공하는 신화는 신용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단일 신화가 완성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적인 실패나 초인간적인 성공이 아닌, 인간적인 성공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귀환의 문턱에 도사리고 있는 위기가 중요한 문제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3. 외부로부터의 구조

[p 269] 영웅은 외부의 지원을 빌려 초자연적 모험에서 귀환하는 수가 있다. 말하자면 이 세계가 합세하여 그를 도울 수도 있는 것이다. 외부 세계가 이렇게 하는 것은 지칠대로 지친 영웅에게, 힘겹게 도달한 지복의 땅을 포기하는 것은 쉬운 노릇이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 옛말마따나 <세상을 버린 자가 이 땅에 다시 돌아오려 하겠는가? ‘거기’에 남아 있으려 하지 않겠는가>는 것이다.

4.귀환 관문의 통과

[p 281]개인의 개성화 상실의 이 공포는, 자격 미달인 개인에게는 초월적인 경험이라는 만만치 않는 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영웅에 값하는 인간은 대담하게 쳐들어가 마귀 할멈이 여신이 되고, 용이 신들이 번견이 되는 것을 목격한다.

5. 두 세계의 스승

[p 307] <때로는 바보로, 때로는 현자로, 때로는 왕관에 미친 자로, 때로는 방랑자로, 때로는 예언자처럼 부동하는 존재로, 때로는 자비로운 얼굴로, 때로는 귀인으로, 때로는 폐덕자로, 때로는 무명인으로. 깨달은 자는 이런 상태에서도 지복의 극락을 산다. 무대 의상을 입고 있든, 벗고 있든 배우는 배우 이전의 그 자신이듯이, 불멸의 지혜를 깨친 자는 늘 그 불멸의 경지 안에 거한다.>

6.삶의 자유

[p 308] <그러므로 애착을 떠나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행하라. 너의 모든 일을 나에게 맡기고, 네 생각을 가장 높은 자아에 모으고, 원망과 이기심에서 벗어나되, 흐트러뜨리지 말고 나가 싸우라.>

제 4장 열쇠

[p 319]많은 신화의 후반부에서 중심적 이미지는 건초 더미에 비늘이 떨어지듯 부수적 삽화와 윤색된 부분에 숨겨진다. 따라서 문화가 신화 시대의 시점에서 현실적 시점으로 옮겨옴에 따라 낡은 이미지는 감지되거나 증명되기 어려워진다. 헬레니즘 시기의 그리스와 로마 제국 시대의 고대의 신들은 단순한 시민들의 수호신, 집안의 애완물, 문학의 소재 정도로 전락했다.

제 2부 영웅의 모험
제 1장 유출
1.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p 330]제의와 신화의 기능은, 유추 작용을 통해 이를 볼 수 있게 하고 이를 촉진시키는 기능이다. 마음과 감각이 감지할 수 있는 형상과 관념은 초월적인 진리와 개방성을 암시하도록 제시되고 조정된다. 이어서 명상의 조건이 완비되면 개인은 홀로 남는다. 신화는 부수적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현상계 저쪽 세계(공 혹은 범주를 초월한 존재)로 들어가 적멸에 드는 것이다. 따라서, 신 혹은 신들은 편의적인 방편, 즉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을 잘 나타내고 또 그것에 도움이 되는 것이기는 하나, 신 혹은 신들 자체는 어디까지나 편이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p 331]<보아라,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고 예수는 말했다.

2.우주의 순환
[p 333] 신화의 메타포에서도 우주는 시간을 초월한 배후에서 떠오르고, 원기를 회복하다 다시 소멸된다. 개인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의식의 어둠으로부터 깨어 있는 시간대로 흘러 나오는 생명력의 질서 정영한 흐름에 달여 있듯이, 신화에서도 우주 질서의 연속성은 근원으로부터 통제된 힘의 흐름이 있어야 가능하다.

3.허공에서 – 공간

[p 342] 모든 신화 체계의 기본 원리는, 끝과 시작이 함께 한다는 바로 이 원리다. 창조 신화는, 모든 피조물은 그들의 모태가 된 불명의 존재와 닿아 있음을 상기시키는 파멸 의식과 함께 고루 퍼져 있다. 모든 피조물은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으나 필경은 극점에 이르러 파멸하고 그리고 회귀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신화는 비극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참 존재를, 파멸하는 형상이 아닌 다시 태어나는 불멸의 존재라는 측면에서 보면 신화 체계는 그리 비극적인 것도 아니다.

4.공간의 내부에서 – 생명

[p 348]우주 발생적 유출Emanations의 첫번째 결과는 이승적 단계의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고, 두번째 결과는 이 틀 속에서 생명이 지어졌다는 것이다.

5.하나에서 여럿으로

[p 365]여기에 신화의 근본적이 모순, 즉, 이중 초점의 모순이 있다. 우주 발생적 순환의 초기에 <신은 관여하지 않으나>,<신은 창조자이자 수호자이며 파괴자인>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가 여럿으로 나뉘는 이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운명은 <우연히> 그러나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6.창조의 민화
제 2장 처녀의 잉태
1.어머니 우주

[p374] 조금 더 추상적으로 말하면, 그녀는 자가번식하는 절대자를 움직여 창조의 행위를 유발하는 유혹자인 것이다.

2.운명적 모태

[p380]왜냐하면 창조의 결과란 다양하고 복잡한 데다, 창조된 세계의 관점에서 경험할 때면 상호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어머니는 동시에 죽음의 어머니다. 이 어머니는 기근과 질병이라는 추악한 마귀의 가면을 쓴다

3.구세주를 낳는 자궁

[p 392] [시바는 파괴의 신입니다. 시바는 세계의 파괴자입니다. 시바가 좋아하는 것은, 시체의 악취가 풍기는 무덤 안에서 명상하는 것입니다. 그는 썩은 시체를 좋아합니다. 썩은 시체는 그의 살벌한 가슴과 같은 것입니다. 시바의 옷은 살아있는 뱀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시바는 가난뱅이입니다. 더구나 시바의 근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4.미혼모의 민화
제 3장 영웅의 변모
1.최초의 영웅과 인간

[p402] 영웅의 첫번째 과업은, 우주 발생적 순화의 그 전단계를 의식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유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 가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의 과업은, 심연에서 일상의 삶으로 귀환하여 조물주적 잠재력을 가진 인간적인 변환 자재가가 되는 것이다.

2.인간적인 영웅의 어린 시절
3.전사로서의 영웅
4.애인으로서의 영웅

[p431]이것은 운명적인 기적의 상징이며 교훈으로 해독되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것에 대한 감상에 현혹되지 않고, 과감하게 자기 본성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자 (니체의 말을 빌리면, <스스로 구르는 바퀴>인 사람) 앞으로는 어려움이 비켜나고 뜻밖의 탄탄대로가 나타나는 법이다.
5. 황제로서, 폭군으로서의 영웅

[p442]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6.구세주로서의 영웅
7.성자로서의 영웅
8.영웅의 죽음
제 4장 소멸
1.소우주의 끝

[p458]나는 모든 피조물의 가슴 안에 있는 실재다. 나는 모든 존재의 시작이며, 중간이며, 끝이다.

2.대우주의 끝

[p468]개인이라는 창조된 형상이 결국은 소멸되고 말듯이 우주 역시 소멸된다.
십만년이 지나면, 우주의 순환 주기는 다시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때가 되면 육감적인 쾌락에 빠진 천상의, 로카비유아스라는 신들은, 머리를 풀어 바람에 흩날리고, 손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빨갛게 물든 옷을 어지럽게 입은 채 세계를 방랑한다.

[p473]무화가 나무를 보고 배워라.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워진 것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앞에 다가온 줄 알아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기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하신다

에필로그 신화와 사회
1. 변신 자재가

[p477]프로메테우스로부터 배우기를 바라는 삶의 항해자는, ‘그에게 바싹 달라붙어 그를 조여야 한다. 그러면 그는 온전한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교활한 신은 아무리 재주 있는 질문자에게라도, 그 질문자에게 자신의 지혜의 전부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 하늘 높이, 태양의 궤도 위에 솟아 있는가 하면, 문득 바닷물 속에서 이 해신은 솟아난다. 그의 말은 진실하다. 그는 서풍의 숨결을 거느리고 나타나는가 하면, 바다의 짙은 빛깔의 물결을 쓰고 나타나기도 한다.

2.신화, 제의, 명상의 기능

[p480]사회라는 단위에서 볼 때 그 단위에서 단절된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쓰레기다. 남자든 여자든, 정직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성직가든, 매춘부든, 여왕이든, 노예든)에 충실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동사를 쓸 자격이 있는 인간이다.

[p482]’나는 저것이 아니다, 저것이 아니다, 조금 전에 죽은 내 어머니도 아니고, 내 아들도 아니다. 내 몸은 병들거나 나이를 먹는다. 내 팔, 내 눈, 내 머리, 이 모든 것을 합한 것도 아니다. 나는 내 감정이 아니다. 내 마음이 아니다, 내 직관력이 아니다.

3.오늘날의 영웅

[p486]인간이 되려면, 놀라우리만치 다양한 인간의 얼굴로 바뀌어 있는 신의 얼굴을 알아보아야 한다.


Ⅲ.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내가 이전에 읽었던 두 권의 캠벨의 다른 책들에 비해 체계적이다. 대담 형식의 ‘신화의 힘’ 이나 강의록인 ‘신화의 세계’에 비해서, 저자의 기준에 의해서 정리가 되었다는 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이 체계성은 영웅들의 행적을 ‘출발’, ‘입문’,’귀환’이라는 단계로 이야기 한 것, 융의 이론에 입각하여 영웅들의 내면적인 발달의 과정을 설명 한 것 등에서 구체적으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체계성 이외에 이 책의 장점은 방대한 자료 수집력에 있다. 캠벨은 영웅과 그들에 대한 신
화를 얻기 위해 역사적인 기록, 성경, 불경, 요가 경전, 심리학, 소설 등의 공식적인 기록
이외에도 민간 전승, 구전 동화 등의 비공식적인 기록까지 인용하고 있다. 이는 그가 얼마
나 열정적이고 끈기 있는 연구가인가를 보여주는 단서 이기도 하다.

이 책은 또한 저자의 다양한 문화적 수용력을 보여 주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무수한 영
웅 신화들을 인용하면서 동양과 서양의 것으로 구분을 하지 않고 있으며, 문화별로 따로 구
분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들이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덩어리 였던 것처럼 다루고 있다.
이것은 저자가 얼마나 수용력이 있는 사람인가를 보여준다. 서양인이었고 미국을 주무대로
활동을 했던 학자였지만 저자는 신화의 연구를 통해서 문화에 대한 편견을 많이 버린 사람
이었다. 그의 이런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인해서 인간의 원형적인 신화는 하나뿐이고 인류가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진리도 한 가지 뿐이라는 결론이 얻어 지는 것이다.

다만, 저자가 독자들에게 할 말이 너무 많았다는 것, 그래서 너무 많은 신화의 이야기를 한
꺼번에 했다는 것이 이 책을 읽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그리스 신화
나 성경 등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이야기에 많이 익숙하지 않는 일반 독자들이 책을 쉽게 읽
기는 어려운 듯 해 보인다. 이 책을 좀 더 쉽게 읽기 위해서는 사전에 그리스 신화나 성경,
석가모니의 생전 행적 등을 사전에 읽어 두는 센스가 필요할 것 같다.

번역한 책이기 때문에 번역에 대한 지적을 빼 놓을 수는 없겠다. 요즘 한창 등장하는 자기 개발서류의 번역 등에 비해 이 책을 번역하는 데에 역자가 몇 배 아니 그 몇 십 배의 노력을 들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추어 보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번역이 잘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번역된 책을 통해 미루어 짐작 하건데, 역자는 이 책을 번역하기 위해서 그리스 신화, 성경, 융의 심리학 등을 뒤적이지 않았을까 한다. 먼저 이런 방대한 저작을 번역서로 내어 한국의 독자에게 소개해 준 번역자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그러나, 번역도 마찬가지로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는 부분이 있다. ‘우리가 갱생하지 않는다면 응보 천벌 여신의 복수만이 우리가 얻게 되는 승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며(p29)’에서 볼 수 있는 극심한 직역투의 번역과 촌단, 생사 여탈권 등과 같은 어려운 한자어의 사용은 독자의 이해를 위해 한 번 더 생각해서 번역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IP *.84.240.105

프로필 이미지
거암
2008.04.14 15:54:36 *.244.220.254
현정공주도 미리 숙제를 해버렸네요~ 대단해요!
모닝페이지 트로이카 멤버들이 다 해 먹는구나~ ㅎㅎㅎ
모닝페이지 멤버가 되면, 내공(內功)들이 높아지나봐요......
프로필 이미지
현정
2008.04.14 16:07:28 *.84.240.105
부러우심 올아버니도 모닝 페이지에 합류 하세요..ㅋㅋ

사실, 미루면 하기 힘들 것 같아서 해 버렸어요.
오래 생각한다고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근데 언제 제가 공주 됐나요? 그럼 올아버니는 왕자?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02]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2] 오현정 2008.04.14 2189
1391 (02)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조셉 캠벨 [1] 이한숙 2008.04.14 2380
1390 [02]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 조셉 캠벨 [1] 정산 최현 2008.04.14 1881
1389 6_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1] 홍현웅 2008.04.14 2247
1388 [02]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조셉캠벨 [2] [1] 손지혜 2008.04.14 2278
1387 [02]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 조셉 캠벨 [1] 양재우 2008.04.14 2202
1386 &lt;리뷰5&gt;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5] 거암 2008.04.13 2186
1385 [02]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 조셉캠벨 [2] [1] 최지환 2008.04.13 2717
1384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조셉 캠벨 [1] 유인창 2008.04.13 2183
1383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 [2] 형산 2008.04.13 1919
1382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_2 [2] 개구쟁이 2008.04.13 2282
1381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 조셉캠벨 [1] 이은미 2008.04.13 1898
1380 (01) 신화의 세계-조셉 캠벨 [4] [1] 이한숙 2008.04.08 2415
1379 [01]신화의 세계 - 조셉 캠벨 저 [2] [1] 오현정 2008.04.08 2364
1378 [01]신화의 세계 - 조셉 캠벨 [4] 양재우 2008.04.08 2233
1377 &lt;1&gt;신화의 세계 - 진정한 자아를 찾아라 [2] 이은미 2008.04.08 2092
1376 [01] 신화의세계 - 조셉 켐벨 [2] 최현 2008.04.08 2393
1375 [01] 신화의 세계-조셉캠벨 [3] [2] 손지혜 2008.04.08 2399
1374 [01] 신화의 세계 - 조셉캠벨 [3] 최지환 2008.04.07 2116
1373 신화의 세계-조셉 캠벨 [2] 유인창 2008.04.07 2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