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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0일 10시 52분 등록
박노자의 글을 예전부터 좋아했었다. 언제가 되어야 그를 귀화한 한국인이 아니라 그냥 한국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성적으로야 그는 한국인인 나보다도 한국을 더 사랑하는 멋진 한국인이라고 판단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역시 한국의 아담한 산들이 좋아서 귀화를 하게 되었다는 별난 러시아계 한국인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목격한다.

그가 인터넷의 블로그라는 약간은 공개적이면서도 약간은 사적인 공과 사의 경계사이에 있는 곳에 적었던 글을 책으로 펴내었다. 사회주의의 이상을 아직도 포기하지 않는 약간은 이상주의의 느낌이 나는 작가를 나는 좋아한다. 우리 혹은 세상이 무엇인가 보다는 우리 혹은 세상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사람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작가가 서문에 스스로에게 주는 면죄부와 같은 이야기를 밝혔던 것처럼 개인적이면서도 약간은 공적인 공간 블로그이기에 하고 싶은 말을 많이 담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작가도 인정하는 것처럼 이 일기도 비관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 그 이야기의 바탕에 흐르고 있는 작가의 생각을 무시하고 이야기만 단편적으로 읽게 된다면 한국은 더 이상 살만한 공간이 못되는 나라같이 느껴질 수 도 있다. 그런데 나는 작가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작가가 부러워한 한국의 산에서 뛰어놀고 자란 나보다도 한국을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비판이 그냥의 비판이 아니라 애정을 가진 비판이라는 느낌 말이다. 작가도 자신의 글이 비관적으로만 읽혀질까 걱정을 했던지 서문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전략)..당장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현 상황에 대한 마음, 무거운 번뇌, 번민 들이 많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관은 절망과 다르고 번뇌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피게 되고 번뇌가 깊어지면 갑자기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중략) 번뇌 자체는 그 어떤 정답도 제공해 줄 수 없지만 번뇌 속의 물음들이 독재 개인에게 개인적, 사회적 화두를 던져주기를 기원한다."

박노자의 글 중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은 그 대상이 극우든 극좌든 NL이든 PD든 노르웨이든 유럽이든 미국이든 아랍이든 일본이든 중극이든 상관없이 일관성되게 이야기 하는 폭력에 대한 일관된 그의 생각이다. 국가건 개인이건 상관없이 그것이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할지라도 폭력자체를 그리고 폭력을 거부하는 사람들(양심적 병역거부자)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에 나는 공감한다.

나는 짧은 군 생활기간동안 폭력에 길들여져 있었다. 매일 구타(毆打) 금지각서를 쓰고 구타(九打)를 안하고 십타(十打)를 해야 된다는 식이었다. 많이 맞고 많이 팼던 시절이었다. 물론 군시절이라는 특별한 기간에 있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부끄러운 과거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다행인 것은 경험하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경험한 후에 깨달았다는 것이라할까.

관악삭의 숲냄새, 연주암 쪽에서 내려다 볼 때 사위에 다 보이는 청구의 신록을 사랑한다는 이 한국의 지식인이 자랑스럽다. 식민정책에 반대하면서 자신이 러시아에 있었을 때 행했던 행위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담담하게 쓸 수 있는 그가 자랑스럽다. 한국의 많은 지식인연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 얼마나 인색한지를 비추어 보면 그가 대단해 보이기 까지 한다.

생뚱한 한국인 박노자의 사유가 나의 생각을 자극하는 이 봄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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