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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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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6일 10시 29분 등록

 

 

<피터 드러커 자서전> 이동현, 한국경제신문사


 

이 책은우리 시대의 역사가 아니며, 그렇다고나의 시대의 역사도 아니다. 그보다는 일종의 자서전이다. 여기서는 주로 내가 살아온 삶의 순서에 따라 인물들이 등장한다.”(p.21)

 

<피터 드러커의 자서전>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20여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간접적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형식의 독특한 자서전이다. 사실 굳이 분류하자면 자서전은 아니다. 저자가 자신의 삶을 콘텐츠로 하여 직접(혹은 간접)적으로 쓰는 글이 자서전이라고 본다면 이 책은 콘텐츠가 다른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자서전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단지 그가 서문에서 기술한 위의 문장을 참고 삼아 한국의 출판사가 <피터 드러커 자서전>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을 뿐이다. 원제는 <Adventures of a Bystander>, 번역하자면 <구경꾼의 모험>이다.

피터 드러커가 이 책의 서문한 사람의 구경꾼, 탄생하다에서 기술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구경꾼은 자신 만의 역사가 없다. 무대 위에 있지만 연극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구경꾼은 무데 한 쪽에 서서 배우나 관객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 그들은 좀 특이하고 별나서 언제나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준다. 그러나 구경꾼은 사물을 다른 각도로 보는 사람이다.’

 

피터 드러커는 이 책을 구경꾼의 시각에서 썼고, 그런 구경꾼의 시각이 세상과 사람을 관찰하듯이 바라보게 했고, 그것이 자신의 생을 모험으로 만들어주었다고 믿는다. 상식적이길 바라는 사람들은 구경꾼이 남들과 튀지 않기를 주문하지만 남들의 그런 충고는 그에게 별로 귀 기울일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엉뚱함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 <피터 드러커의 자서전>은 모든 인간은 제각기 독창적이라고 믿었던 피터 드러커가 관찰자의 시각으로 풀어내는 ‘20세기와 그 사람들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그러니 자서전이라는 말에 매여서 이 책을 너무 제한하지 말라.


 

1. 저자 소개

 

시대를 앞서는 경영철학과 미래사회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보이는 빼어난 경영 저서들로 이 시대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경제구루인 피터드러커는 1909 1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무원인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1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국제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1933년 나치가 득세하기 직전 영국으로 건너가 은행, 보험회사, 증권회사 등에 근무하였다.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사라 로렌스 대학, 베닝턴 대학, 뉴욕대학 에서 강의하는 한편, GM, GE와 같은 기업들에 대한 컨설팅을 담당하였다. 1971년부터 캘리포니아주 크레어몬트 대학교의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과 사회과학을 강의하였다.

 

한국에 번역된 그의 책으로는 미래의 조직(1998, 한국경제신문사), 성과측정(1999, 21세기북스), 미래의 결단(1995, 한국경제신문사), 비영리단체의 경영(2003, 한국경제신문사), 21세기 지식경영(2003, 한국경제신문사),자본주의 이후의 사회(2003, 한국경제신문사), 피터 드러커의 미래기업(2002, 한국경제신문사),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경영자(2000, 한국경제신문사), 다시 그리는 세계 지도(2000, 해냄), 21세기 리더의 선택(2000, 한국경제신문사), 현상돌파의 사고력(2000, 21세기북스), 프로페셔널의 조건(2001, 청림출판), 변화 리더의 조건(2001, 청림출판), 이노베이터의 조건(2001, 청림출판) 등이 있다.

 

<경제인의 종말>, 피터 드러커의 첫 책

 

드러커는 1909년 출생하여 2005년까지 우리 나이로 96세를 살면서 40여권의 저서를 냈고, 철학ㆍ경제학ㆍ정치학ㆍ사회학ㆍ동양예술ㆍ경영학 교수로서 강의를 했으며,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들었고, 기자와 경영 컨설턴트로서 명성을 날렸으며, 월스트리트 저널과 포브스와 아틀란틱 맨슬리 그리고 런던 이코노미스트 등 세계 유수의 잡지에 기고한 저널리스트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많은 고정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일본화 수집가이자 소설가였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박애주의자로서 한 평생을 살다가 갔다. 그런 지적 배경을 바탕으로 드러커는 자신이사회생태학자로 취급되기를 바랐다. 말하자면 이 책은 드러커가 자신을 스스로 사회생태학자로 부르게 되는 기원이다. 놀랍게도 1939년 이 책을 출판했을 때 드러커의 나이 30세였다. 처칠이 극찬하고 일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드러커 최고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에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 지명, 인물, 그리고 용어, 개념들이 등장한다.

 

드러커를 연구하는 이 책의 역자 이재규 <경제인의 종말> 이후의 드러커의 모든 저서들을 <경제인의 종말>에서 분석하고, 주장하고, 예측한 이론들에 대해서 시간의 검증(test of time)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옳았는지 혹은 틀렸는지를 밝히고, 다시 분석하고, 수정하고, 다시 주장하고 또 예측한 것들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는 드러커가 80년대에 소설 두 권을 썼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두 소설의 제목은 <()에의 유혹: The Temptation to Do Good> <가능한 세상의 마지막: The last of all possible worlds>이다.

 

 

나는 왜 이 책을 썼는가

 

이 세상에는 3 5천종의 파리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나 신학자들에게는 오직 한 가지의 파리만 존재한다. 창조자는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의 다양성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다. 그리고 어떠한 피조물도 두 발로 걷는 인간들봐 더 큰 다양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다양성에 매료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나름대로 흥미로운 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그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개별적인 존재다.

 

내가 가장 진부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잉글랜드의 작은 마을에 살던 은행가다. 그는 매우 진부하고 상투적인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단추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그는 대단히 흥미로운 사람으로 돌변하였다. 단추의 발명이라든지 모양, 재질, 기능과 사용처 등을 설명하면서 위대한 지적 수사법이 주는 감동에 버금갈 정도로 엄청난 영감과 열정을 보여줬던 것이다. 나는 그가 말하는 단추의 역사보다 그렇게 흥미롭게 돌변한 그 사람 자체에 더 관심을 느꼈다. 그는 하나의 인간이 아닌 개별적인 존재였다.

 

이 책은 그 은행가처럼 자신만의 개별성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그려나갈 것이다. 나는 인간이 다양성과 다원성을 갖고 있으며 모든 인간은 나름대로 독창성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이 미 50년 전에 처음으로 나온 나의 첫 책 <경제인의 종말>에서부터 내 모든 책에 내재된 핵심은 바로 그런 신념이다.

 

내가 저술활동을 해온 지난 50년은 획일화가 지배했던 시절이었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사람이 똑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내용을 쓰거나 그려야했다. 이런 조류는 이후 민주주의 사회 역시 그런 조류에 휩쓸렸다. 그 동안 나는 이런 시대의 조류를 거슬러 다양한 나의 관심을 경영서적과 기고문들에 써왔다. 나는 내 책의 사례와 증명자료들을 실제 인물들에서 찾았고 내가 만난 개별적인 인물들은 내가 제시하는 개념에 대한 예시와 실증으로 이용되었다. 이제 비로소 조류의 흐름은 내가 제시해왔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세계는 지금 급격한 속도의 탈집중화의 길을 걷고 있고 중앙에서 멀어지는 분산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거대기업은 지속적으로 체구를 줄여왔고, 고용은 대부분 소규모나 중간 규모의 기업에서 발생했다. 이제 학교 역시 다양하고 분화된 형태로 전환하고 있다. 물론 작은 것이 아름답다큰 것이 최고다라는 말 만큼 숨막히는 독선이다.

 

사람들은 신의 창조물 속에서 다양성을 봐야한다. 나는 작가로서 인간보다는 개념을 다룬 책이 더 많이 팔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개념보다 인간에게 더 끌렸다. 이 책은 인간에 관한 책이고 시장의 요구와 관계없이 나 자신을 위해 쓴 책이다. 영국에서 출판된 이 책의 부제목 내 생애 다른 사람들(Other Lives and My times)’은 나의 그런 의도를 잘 보여준다. 내 책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이보다 구상기간이 길었던 것은 없다. 20년 동안 나는 내가 기억하는 인물들과 함께 살았고, 꿈 속에서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걸으며 대화를 나누다 잠이 깨었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떤 책보다 빨리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내가 책상에 앉아 타이핑을 시작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원고가 완성되었다. 분명 이 책은 내 저서 40여권 중에 그다지 큰 비중은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즐거운 마음으로 쓴 것만은 틀림없다. 나는 지금 개정판 서문을 쓰고 있다. 이 책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크게 성공을 거두어 이렇게 개정판의 서문을 따로 쓰게 된 것은 그 자체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은 아는 사람이 당신이 쓴 책을 여러권 읽었고 거기서 많은 교훈을 얻었지만 제일 재미있게 읽은 것은 이 책입니다라고 편지를 보내거나 말을 하는 것이다.

 

이 책들은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모은 것이고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상관성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사회적 초상화를 제공하기 위한 시도이다. 이런 책을 처음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케네디 대통령 재임시기였다. 나는 그 무렵 몇 년 동안 일어난 일들이 아직 역사가 되기엔 너무 가까운 시기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해되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그 당시라고 역사서적, 전기물, 통계자료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사회의 분위기나 의미, 또는 현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사회과학 서적들도 마찬가지였다. 훌륭한 컬러사진이 여름 햇살에 반짝이는 초원의 경험을 그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통계수치로는 인간이 무엇을 보고 무엇에 따라 행동하는지 표현할 수 없는 법이다. 오직 한 편의 사회 초상화만이 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그 초상화는 개인들 사이에서 사회를 반사하기도 하고 개인들을 통해 사회를 반사하기도 한다.

 

나는 내가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작품이나 20세기 초 소설가들에게 필적하는 작품을 만들어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들을 대상으로 제대로 된 당시 초상화를 그린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유명하거나, 위대해서 선택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지그문트 프로이드 뿐이다. 이 책에 기술된 인물들은 좋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내게 중요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그들이 내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내게 반사시켜 보여주었던 방식 때문이었다.

 

나는 이 책을 구경꾼의 입장에서 썼다. 그래서 책 제목을 <구경꾼의 모험>(Adventures of a bystander)이라고 지었다. 구경꾼은 자신만의 역사가 없다. 그들은 무대에 있지만 연극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구경꾼은 배우나 관객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구경꾼은 사건을 재현하지만 그것은 거울에 보이는대로가 아니라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여과된 상으로서 재현된다. 여기서는 내가 살아온 시대 순서에 따라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책에서 내 경험과 삶, 연구성과들은 단지 부속물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매우 주관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으면 당시의 사회가 구성된다.

 

2. 마음에 들어오는 문구

1부 사라진 제국 아틀란티스

할머니 : 인간에 대한 예의를 깨우쳐 준 유쾌한 사람

42. “하지만 할머니, 그 창녀에게 기침약을 갖다 줬잖아요.” 그러자 할머니가 말했다. “너희는 언제나 그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옮기는 끔찍한 성병만 걱정하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나 역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 하지만 나는 적어도 그녀가 젊은 남자에게 감기를 옮기는 일은 예방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데도 화가 안났어요?”                         물론 화가 났지. 하지만 내가 정부를 두지 않는 남자를 만나려고 했다면 결코 결혼하지 못했을 거야. 그런 남자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거든.”

45. “하지만 할아버지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요.’’                             조금도 안했지. 할아버지는 저녁 식사 때는 늘 집에 돌아왔단다. 나는 그저 멍청한 늙은 여편네에 불과했지만 남자에게는 위장이 성기나 마찬가지라는 걸 알 정도의 머리는 있었지.” 

69."젊은이, 당신은 멍청하고 늙은 여편네를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구려. 하지만 대신 앰뷸런스를 불러주시는 게 좋겠소. 당신 차에 낯선 여자가 타고 있으면 당신의 명예가 손상될 지도 모른다오. 세상 사람들은 말이 많거든." 교통사고를 당한 후

헤메와 게니아 : 경영의 귀감으로 삼은 괴짜 부부

72. 나는 항상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인간에게 관심이 더 많았고, 관념이란 철학자들이 범주화를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고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내게 흥미롭고 다양성을 가진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관념보다 훨씬 더 의미있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발전하고,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며, 변화를 일으키면서 무엇인가로 바뀐다.

96.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지. 다루기 힘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러니까 누군가 겁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 필요하다거나 문제가 너무 복잡해서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경우에 그건 전부 헤매의 일이 됐지. 그리고 그는 언제나 기대에 부응했어. 그는 문제의 핵심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기꺼이 불쾌한 상황과 대면할 수 있는 배짱도 있었으니까.”

119. 하지만 게니아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언제나 최고의 인사에게 바로 달려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정확하게 어떤 조치를 원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전화기를 들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마라. 항상 그들에게 할 일을 지시하라.” 이것이 그녀의 좌우명이었다. “만약 그것이 잘못됐거나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그들은 그 사실을 지적해 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해 주지 않으면, 그들은 행동보다는 연구에 몰두할 것이다.”

146. 게니아가 매섭게 쏘아붙였다. “그것이 인간의 희생을 요구한다면 원칙이란 내게 전혀 필요 없는 물건이야.” 이는 절대주의의 세기에는 대단히 위험한 이단이다. 교육과 심리, 환경, 경제, 정치, 심지어 인종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서 이상적인 미래나절대 다수를 위한 선이라는 망상을 위해 인간이 희생해야 한다는 사상이 판을 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153. 나치즘은 분명 혐오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찰스 린드버그의 표현처럼 모든 것이 과거를 향한 물결이 되고자 기를 쓰고 있을 때 나치즘만이 유일하게 미래를 향한 물결이었던 것이다.

엘자와 소피 : 교육의 길을 제시한 노처녀 자매 선생님

167. 우리는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녀를 숭배했다. 50년 뒤 여성해방운동가들이 신은 여자라고 선언했을 때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내 머릿 속에는 신이 미스 엘자를 대단히 많이 닮았을 거란 생각이(검은 봄바진과 코안경, 발목까지 올라오는 신발 등 모든 것이) 들었던 것이다.

168. 당시 유럽에서 상류가정의 자제들이 자기 손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은 대단히 유별난 생각이었다. 물론 미술은 상관이 없었다. 자신의 지위를 잘 지키고 있는 한은 말이다 그리고 여자들이 바느질과 자수, 뜨개질을 배우는 것은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요리는 상류사회 여성이 손수 해야 하는 일들에 끼지 못했다. 집주인께서 자기 주방에 발을 자주 들여놓으면 자존심 강한 요리사는 결코 그 집에 머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모든가정이 당연히 요리사를 두고 있었다. 중하류 계급의 정의는 하인을 둘 이상 둘 수 없는 가정이었다.

169. 하지만 신사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손으로 벌어먹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 있어서 누구도 청나라의 고위관료들을 흉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도 손을 사용하는 것을 비천한 일로 봤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손톱을 거의 30센티미터나 길렀다. 하지만 19세기 유럽도 청나라의 관료들에 근접하는 수준이었다. 할아버지는 189년에 돌아가셨으며, 당시 우리 어머니는 열네 살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나며두신 양복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양복에는 시계를 넣어두는 조끼 주머니를 제외하고는 단 하나의 주머니도 없었다. 할머니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다. “너희 할아버지는 신사였단다. 그리고 20년 전 신사들은 뒤에 항상 하인들이 따라다녔지. 필요한 물건은 전부 하인이 들고 다녔어. 신사는 자신의 손을 사용하지 않았거든.” [169]

175. 미스 소피는 결코 야단을 치지 않았으며 비평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정말 질렸을 때는 이단아의 옆에 앉아서 그 녀석의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고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런 후에는 이단아도 다시 작업을 시작해서는 보통은 우수한 작품을 만들었으며, 적어도 이전 것보다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냈다.

187. "신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실수를 저지르게끔 만드셨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실수를 통해 배우려고 하지 마라. 다른 사람이 뭔가를 올바로 했을 때 그것을 보고 배워야 한다." -마르틴 부버

193. 오랜 시간에 걸쳐 나는 다른 종류의 선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쩌면 학습을 하게 만드는 선생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들은선생이 됨으로써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가르치는 데 타고난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들은 학생들을 학습하도록 이끄는 방법을 사용해 가르침을 전수한다이런 사람들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시절 미스 엘자가 썼던 방법을 사용한다. 그들은 개개의 학생이 가지 장점을 찾아내고 그들의 장점을 개발하기 위한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를 설정한다. 이 작업을 끝낸 뒤에 비로소 그들은 학생들의 단점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그런 단점은 학생들이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는 데 제한사항으로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들은 학생들의 성취에 항상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이 자제력을 발휘하고 스스로를 이끌어가게 한다.

194. 이런 선생들은 비난보다는 칭찬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매우 드물게 칭찬하기 때문에 칭찬이 학생의 동기를 유발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거나 학생이 스스로 느껴야만 하는 성취감과 만족감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들은 효과적 학습을 계획할 뿐, ‘가르치지않는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학생을 만나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비록 그들이 많은 학생들을 맡더라도 결국은 학생 개개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방법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197-198. 선생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자신의 재능 가운데 가르치는 재능이 포함돼 있는 선생이 있는가 하면, 학생에게 학습을 프로그램해서 넣는 방법을 알고 있는 교육자가 있다.

198. 선생은 타고난다. 그리고 타고난 선생은 자신을 향상시키고 더 좋은 선생으로 거듭날 수 있다. 하지만 교육자는 가르치는 방법을 갖고 있고, 그것은 학습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198. 미스 소피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미스 엘자는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미스 소피가 깨달음을 주었다면 미스 엘자는 기술을 제공했다. 미스 소피는 비전을 전달했고, 미스 엘자는 학습을 이끌었다. 미스 소피가 선생이었다면 미스 엘자는 교육자였다.

200. 가르침과 학습은 인지적이며 동시에 행동적이다교육자는 학생들의 깨달음에 같이 도취됨으로써 열정을 얻는다. 학생의 얼굴에 떠오르는 깨달음의 미소는 어떤 마약이나 약물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교실에 만연된 무시무시하고 학생을 고사시키는 전염병인 교사의 권태감을 치유하는 것이 바로 이 열정이다.

201. 가르침과 학습은 플라톤의 에로스, 즉 그가 <향연>에서 언급한 참된 실재를 향한 갈망이다. 우리 각자에게는 플라톤의 페가수스가 내재해 있고, 그 고귀한 준마는 제 짝을 찾는데, 그 일은 오직 가르침과 학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선생의 열정은 자기 자신에게 있고, 교육자의 열정은 학생들의 내면에 존재한다. 하지만 가르침과 학습은 언제나 열정이고, 그 열정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거나 다른 사람의 열정에 자신이 중독되는 것이다선생과 교육자가 공유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들은 학생의 실패를 언제나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한다.

201. 진정한 선생과 진정한 교육자에게는 게으르다거나 열등하다거나 멍청한 학생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선생이 잘했거나 능력이 없었을 뿐이다.

프로이트 : 프로이트에 대한 프로이트적 분석

204. 내가 프로이트에게 소개된 것은 여덟살인가 아홉살 때였다내가 그를 만난 건 그때 분이다. ‘오늘 일은 잊어선 안된다. 넌 방금 오스트리아에서, 아니 아마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만난 거야라는 말을 부모님이 내게 했기 때문에 이 때의 일만은 생생히 기억한다. “황제보다 더 중요한 사람인가요?” “그래, 황제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야.”

211. 당시에도 유대인들을 비롯해서 돈을 추구하는 의사들은 많이 있었다. 당시 이런 이들은칼 쓰는 사람이라고 불리기도 했다….하지만칼 쓰는 사람이라는 말에는 경멸감이 담겨 있었다. 아주 악명 높은칼 쓰는 사람조차도 병원의 원장이나 대학 임상학과의 부서장이 되어 빈곤한 환자들을 돌보곤 했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의 탐욕 때문에 바라는 것 없이 베푼다는 치료사로서의 전통적 윤리를 어긴 셈이었다. 하지만 그런 윤리를 경멸한 프로이트는 가장 심층적이고 가장 중요시되는 치료사라는 유대인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는 의학을장사로 만들었다. 게다가 프로이트가 옳을 수도 있다며 동조하는 의사들이 생겨났다. 적어도 감정이나 정신장애에 대해서는 상당한 진료비를 요구하는 것이 치료효과가 있을 수 있고, 대가 없는 치료는 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212-213. 프로이트는 의사가 환자에게서 감정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의사는 동정심(실제로는 환자에 대한 인간적 호기심)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가 환자를 인간적으로 대하면 환자는 의사에게 의존하게 되고, 그러면 회복과 치료가 더뎌질 수밖에 없으므로 의사는 고통을 받는 환자를 형제가 아닌 사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의사를 치료사에서 기계공으로 강등시키는 것과 같았다. 빈의 모든 유대인 의사들은 물론, 유대인이 아닌 의사들에게 이는 의사가 되고자 했던 이유에 대한 정면부정이자 자신과 자신의 소명에 대한 자부심을 모욕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심기를 한층 더 불편하게 만든 것은,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이 프로이트가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거이다. 적어도 정신분석학자에 관해서는 말이다.

219. 토마스 만은 프로이트의 여든 살 생일축하 자리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신분석은 소설이라는 예술에 그 누구보다도 큰 공헌을 했습니다."…많은 사람들은 그가 오랫동안 굳게 닫혔던 영혼에 창을 냈다는 점은 기꺼이 인정한다.

221. 요한 슈트라우스 <박쥐>는 프로이트 시대 빈의 상징이었다. 프로이트가 18살 때 초연된 그 오페라 내용은 연인 교환과 자유로운 성생활이었다. …그런데도 그 작품의 무대는 공상의 네버랜드가 아닌 고상한 오스트리아 황제가 여름 휴가를 보내는 휴양지였다.

223. 프로이트 자신은 빈 사회의 성적 억압가능성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런 설명은 훨씬 나중에 나왔으며 미국이 만들어낸 것이다. (성에 대해 개방적이던 당시) 빈 사람이라면 그런 주장에 넘어갈 일이 없었을 것이다.

224. 프로이트가 주장한 억압과 신경증을 일으키는 성적 욕구는 문화나 사회적 관습과는 상관이 없다. 그것들은 특정 사회의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성인과 아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프로이트의 저서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가 성적불안, 성적 불만, 성기능 장애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19세기 말 빈(실제로는 19세기 말의 유럽)의 다른 모든 기록에서 강조됐던 한 가지 신경증이 빠져있다. 바로금전 신경증이다. 프로이트 시대 빈에서 억압의 대상이 됐던 것은 성이 아니라 돈이었다. 돈이 이미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 상태였지만, 동시에 언급돼서는 안될 대상이기도 했다.

230.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과학적인 합리성과 비합리적인 내면의 경험이라는 두 세계를 하나의 종합이론에 담으려는 거대한 시도였다. 그것은 계몽시대가 낳은 극단적으로 합리적인 프로이트와, ‘영혼의 어두운 밤을 꿈꾸는 몽상가이지 시인인 프로이트를 한 개체에 담으려는 거대한 시도였던 것이다.

232. 완공된 건물이 공개되기 전의 준비작업 틀을 프로이트만큼 정교하게 해체한 사상가는 없다. 그는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과 비판자들이 제기하는 물음을 논의하게 되는 순간 그것이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트라운 트라우네크 :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회주의자의 고백

262. 네 아버지나 헤메 슈바르츠발트처럼 나이든 사람은 여전히 자유주의자였지. 하지만 아직 20대 전후의 젊은 세대들은 자유주의가 다음에 벌어질 전쟁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힘에 의지하기로 했지. 그 힘이 조직과 헌신, 그리고 대중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었어. 그리고 그게 바로 사회주의였지.

265. 전쟁이 가져온 가장 큰 피해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는 우리의 희망을 파괴횃다는 게 아니야. 그건 전쟁이 유럽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렸다는 거야. 전쟁으로 한 세대의 지배계층이 사라져 버렸어.

268. 사회주의는 19148월의 총성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때 사회주의 대중들은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을 포기하고, 그 대신 열광적으로 민족주의를 수용하면서 동지들 간의 상장인 전쟁을 택했던 것이다. 그것은 신학으로서 마르크시즘의 끝이 아니었다 신학은 신앙보다 더 질겼다. 그것은 또한 정치세력으로서 사회주의자들의 끝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의 이상으로서 사회주의의 종말이었다. 비록 영원히 끝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하나의 세대 전체에 관한 한 말이다.

2부 명멸하는 시대의 사람들

폴라니 가() : 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흥미로운 가족

290. 협동조합국가란 나라를 위해 공통적으로 헌신하는 여러 계급이 결속하고, 그 때문에 묶은 나뭇가지, 즉 영광스러운 로마 공화정의 유물인 속간(束桿, 다발로 묶은 막대에 도끼를 끼운 것으로, 고대 로마에서 집정관의 권위를 표시한 것. 후에는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의 상징이 된다)처럼 부러지지 않는 강력한 국가를 의미한다.

286. 그들은 19세기를 극복하려 했다. 자유를 추구하되 부르주아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이지 않은, 번영을 이루되 경제에 종속되지 않는, 공동체를 지향하되 마르크스주의의 집산주의가 아닌 새로운 사회를 추구했던 것이다. 아버지와 다섯 형제는 각자 독자적인 길을 걸었지만 결국 똑같은 목표를 추구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똑같은 성배를 찾아 각기 다른 방향으로 길을 나선 원탁의 기사를 떠올렸다.

305. 그러나 카를 자신은 크게 절망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선사학과 문화인류학은 존속 가능한 대안, 즉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뛰어넘는 좋은 사회에 대한 탐구에 뒤따르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가 경제사에서 발견하고 싶었던 것은 미래에 대한 해답이었다. 하지만 그는 점점 더 수수께끼 같은 과거 속으로 들어갔다. 선사시대로, 원시경제로, 고전고대와 고전기 이전의 고대로 파고들면 들수록 시장이 없는 좋은 사회는 더욱 더 찾기 어려워졌다

306. 그는 노예무역이 오랫동안 알려져 왔던 것처럼 자유를 사랑하고 화목하게 사는 흑인 종족사회에 사악한 외부인(동양의 아랍인, 서양의 백인)이 우격다짐으로 강요한 일이 아님을 발견했다. 실제로는 흑인 왕과 추장들이 노예상인을 불러들여 노예투매를 조직하고 지휘하고 지원했던 것이다. 그 이유 가운데 일부는 자기 부족이나 왕국 외부의 경쟁자나 적을 파멸시키거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였고또 다른 일부는 자기 부족에 대한 통치권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총 같은 물건과 교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호혜와 재분배를 기초로 공동체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309. 그러나 그들이 특별한 이유는 그들의 삶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품었던 이상과 실패 때문이었다. 폴라니 가의 사람들은 각자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그들은 모두 사회의 구원에 의한 구원을 믿었다. 하지만 그 후에 사회에 대해 단념하고 절망했다.

크레머 : 키신저를 만든 외교정치 고문

337. 비스마르크는 외교할 때는 절대로 영리하게 보이지 말라. 단순하고 정직하라는 오랜 규칙을 거만하게 무시했다.

337-338. (공적인 일에서 위대한 인물이 가지는 패러독스에 대해) 위대한 인물이 없으면 비전도 리더십도 우수함과 업적의 기준도 없다. 또한 공적인 일에서 평범함은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예술이나 과학과는 달리 공적인 일에서는 개인적인 성취 외에도 연속성이 필요하다.

339. 카리스마는 언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짜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노력과 헌신으로 이끈다. 모든 것을 자기 손아귀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을 구성한다. 조종이 아닌 성실성으로 지배한다.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정직하다.

헨슈와 셰퍼 : 나치즘이 불러온 개인의 비극

345. “베르톨르, 난 한 가지는 알아.. 만일 나치가 정권을 잡게 되면 나는 독일에 있지 않을 거야.” 그때까지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일이 없지만 재 자신이 말하는 것을 듣고 이미 내가 마음을 그렇게 정했다는 것을 알았다. 또 내가 마음속으로는 나치가 정권을 잡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음을 알았다.

348-349. 베르톨르를 만난 다음 날 나는 나치가 나와 어떤 관계도 가질 수 없게 하고 나 또한 나치와 어떤 관계도 가질 수 없게 하는 책을 쓰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팸플릿 정도되는 짧은 그 책의 주제는 독일의 유일한 보수 정치철학자 프리드리히 율리우스 슈탈에 관한 것이었다….나치는 그 책을 금지하고 곧 불살라버렸다. 물론 그 책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그러나 나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지라도 나 자신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해야 했다. 

363. 나치의 대량학살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에 관한 책에서 독일계 미국인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악의 평범함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이는 아주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악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 악행을 하는 사람이 평범할 뿐이다. 아렌트는 스스로위대한 죄인이라는 낭만적인 환상에 빠져버렸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많은 이아고(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 나오는 악한), 엄청난 죄를 짓는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약간의 맥베스 부인(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여주인공으로 권력욕이 강한 여인)이 있다. 악은 극악무도하고 사람은 평범하다는 그 사실 때문에 악은 헨슈나 셰퍼같은 사람을 통해 작용한다.

364. 악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지만 인간은 평범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조건으로든 악과 흥정해서는 안된다. 그 조건은 언제나 악의 조건이지 인간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헨슈처럼 악을 자신의 야망에 이용하겠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악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셰퍼처럼 더 나쁜 것을 막기 위해 악과 손을 잡을 때 인간은 또한 악의 도구가 된다….가장 커다란 죄는 20세기에 새로 나타난 무관심의 죄, 아무도 죽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지만 오랜된 찬송가 구절처럼 "그들이 내 주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증언하길 거부한 저명한 생화학자의 죄가 아닐까?

브레일스포드 : 영국의 마지막 반체제자

367. 노엘 브레일스포드는 절대로 권력자가 아니었다. 그는 양심이었다. 그는 딱 한 번 하원의원에 입후보한 적이 있었지만 완전하게 패배했다. 그래서 오히려 구제될 수 있었다. 정치가가 됐다면 그는 6개월도 안 돼 파멸했을 것이다. ..그는 영국의 마지막반대자였으며, 그 때문에 중요한 사람이 됐다. 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그가 무엇을 대표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375. 그는 완전한 외톨이었다그는 오래된 영국의 전통을 대표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의 결속 보다는 동정심에 호소하는 전통, 부자에 대한 보복보다는 가난한 자를 위한 전통, 정부의 행동보다는 개인적 변화, 그리고 번영보다는 존엄성의 전통, 힘보다는 양심의 전통이었다. 근본적인 소수의견과 전통이었다. 브레일스포드는 기인이나 괴짜가 아니었다. 그는 양심이었다.  

395. 찰스 디킨스의 작품 가운데 가장 강하고 어두운 소설인어려운 시절(1854)’의 주인공이자 반대자인스티븐 블랙풀은 자신이 양심이 권력과 야합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의심받고 추방당해 파멸에 이른다. 그의 죽음조차도 실패였다. 그가 죽었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아무런 동요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디킨스의 19세기형 반대자는 순교자조차 아니었다. 그는 단지 사상가였을 뿐이다.

396. 20세기 현실의 반대자인 노엘 브레일스포드는 효과를 위해 자신의 양심을 권력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프리트베르크 : 19세기의 탁월한 개인 금융업자

424. "소매에는 오직 두 가지 원칙만 있네. 첫 번째 원칙은 '2센트 에누리에 안 넘어오는 고객은 없다' 이고, 두 번째 원칙은 '진열해 놓지 못한 상품은 팔 수 없다'는 거지. 나머지는 모두 노력이야.  또는 어리석은 고객은 없어. 상인이 게으른거지" -헨리 베른하임

427. "이번에 그 체인에서 10여 명의 구매자들과 얘기를 해보았다. 그들은 아주 영리하더구나. 하지만 다들 회사를 위해 싸게 구매하고 있었지. 고객을 위해 싸게 구매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잘못된 일이야. 고객을 잃고, 매출을 잃고, 수익을 잃게 된다는 의미다." -헨리 베른하임

428. 메뚜기처럼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예를 들면 스타킹에서 단추로, 또는 한 실험에서 다른 실험으로) 옮겨 다니기만 할 뿐 일반화나 개념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상인만큼이나 많이 눈에 띈다. 하지만 나는 좋은 예술가나 좋은 과학자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좋은 상인의 마음은 헨리 아저씨의 마음이 움직이는 식으로 가장 분명하고 가장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일반화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431. 우리는 지금 서양에서 체계적인 분석과 사고가 막 시작됐을 때 플라톤이 자신의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두 개의 대화편, 즉 인생을 시작하는 젊은이 파이드로스와의 대화를 담은 <파이드로스>와 소크라테스가 죽는 날 아침에 나눈 대화를 담은 <크리톤>에서 가르친 것을 망각하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 그 두 개의 대화편은 우리에게 논리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경험은 '웅변'이 아니라 잡담이며, 경험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논리는 '논리'가 아니라 부조리라고 가르친다.

438.  바로 그 점 때문에 부탁드리지 않은 겁니다. 전 다른 사람이 하는 방식대로 일하지 않습니다.”

446. 스탈린, 히틀러,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세상, 1930년대의 세상에서 프리트베르크와 헨리 아저씨, 그리고 파르붐 같은 사람들의 문명(매매와 거래의 문명)은 아마존 인디언들처럼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을 모르는 석기시대 문명처럼 생각됐다.

447. 실업은 더 이상 인간의 상황이 아니라 목표수치일 뿐이다. 상징을 조작함으로써 현실이 만들어지고, '미디어 이벤트'를 실행함으로써 역사가 만들어진다.

448.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할 때 가장 순수하다.- 새무얼 존슨

3부 순수의 절정기

헨리 루스 : <타임>, <포춘>, <라이프> 잡지 왕국의 제왕

469. 루스와 <경제인의 종말>에대해 이야기할 때 옆에서 지루해하던 루스의 부인 클레어(브로드웨이 최고 극작가)가 하는 말, “드러커씨 경제인 다음에는 육체인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470. 내가 아는 최고의 편집자는 모두 자신의 출판물에 들어가는 것은 한 자도 빠짐없이 일고 손질하고 다시 쓴다. <뉴욕>의 해럴드 로스가 그랬고,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의 호레이스 로리머가 그랬고, <맨체스터 가디언>의 스콧, <베를리너 타게블라트>의 테오도어 볼프, <1870년대 런던의 <이코노미스>의 월터 배젓이 그렇게 했다좋은 편집자는 관대하지 않다. 그들은 동료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신문이 해야 할 일을 하게 만든다. 위대한 편집자는 인정사정 없는 지독한 독재자다그에 반해 루스의 집단 저널리즘은 개개의 기사를 기계적으로 통일시켜 신문을 비인간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475. 루스는 타임, 라이프, 포춘에 능력있는 사람들을 무척 많이 고용했다. 그러나 일단 직원이 되고 나면 대부분이 일생동안, 심지어는 회사를 떠나고 나서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돈을 많이 주고 호사를 시킨 루스의 친절이 그들을 망쳐버린 것이다. 과연 내게 그런 것을 버틸 만한 꿋꿋함과 성숙함이 있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478. 데이번포트는 난 머리 속에 계획이 들어있네라고 말하곤 했지만 사실은 그의 머리는 계획이라는 것을 담아두지 않는 유일한 곳이었다.

493. 지식인은 더 이상 여러 분야의 아마추어가 아니라 자신의 전문분야를 지식의 영역과 결부시킬 능력이 있는 전문가다.

495. 20세기 초반에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를 미국의 가장 성공적인 잡지로 만든 호레이스 로리머는 잡지수입은 광고에서 나오며 구독은 기본적으로 광고수입을 얻기 위한 판촉이라고 역설했다로리머의 원칙은 후에 미국의 출판업자와 미국잡지 투자자 사이에서 하나의 신조가 되었다그러나 이는 헛소리다. 구독(가두판매)에서 수지가 맞지 않는 잡지는 소멸하게 마련이다.

496. 맥루안이 인쇄된 말()은 죽었다고 한 말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죽은 것은 우편으로 배달되는 말이다. 편집자와 독자에게 중요한 건 메시지일 뿐 전달자가 누구인가가 아니다.

497. 나는 누구보다 잡지를 높게 평가한다. 잡지는 현대문명의 중요한 업적이다. 특히 무한한 개성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498. 언젠가 잡지의 역사가 쓰인다면 다음과 같은 제목이 붙을지 모른다. ‘에디슨의 <스펙테이터>에서 헨리 루스의 <라이프>까지. 그러나 지금부터 200년 후에는 이런 제목이 붙을 지 모른다. 헨리 루스의 <라이프>부터 <****)까지’. 루스가 만든 잡지는 구시대의 마지막 주자였으며 새로운 시대의 첫번째 주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풀러와 맥루안 : 테크놀로지의 위대한 예언자

508. 버키 풀러에게 기술은 천국의 조화였다. 그는 인간의 완성은 환경을 '다이맥시언(dymaxion, 풀러가 만든 조어로 dynamic maximum efficiency를 합친 단어다)' 디자인과 '상승작용의 기하학', 그리고 '텐서그리티(tensegrity, 풀러가 만든 조어로 tension integrity를 합친 단어다)'로 이루어진 천상의 조화에 더욱 가깝게 만드는 기술, '' 기술과 '어려운' 기술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그의 세계는 인간이 보편적인 기술과 동일화할수록 자기 자신의 신성에 가까워진다는 범신론의 세계였다.

508. “의도적으로 비유기적으로 진화를 할 수 있는 건 인간 뿐이다. 인간만이 도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찰스 다윈과 같은 시기에 진화론을 발견한 앨프레드 러셀 윌리스

508. 맥루안에게 기술이란 인간의 자기 완성이며, 인간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시켜 완성해 가는 수단이다. 다시 말하면, 동물이 자연적인 진화를 통해 특정 기관을 새롭게 발달시켜 다른 동물이 되는 것처럼, 인간은 새로운 도구를 개발해서 자신을 성장시키고 다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516. 버키에게 인정이나 돈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청중이었으며 청중은 많을수록 좋았다. 소그룹을 대하는 것에 서툴렀던 그는 개개인을 상대하는 것은 불편하게 생각했지만 대규모 청중 앞에 서면 다른 배우 없이도 연기자가 되었다.

517. (맥루안)가 캐나다인 특유의 분위기를 지닌 중서부의 단조로운 콧소리로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지루해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524. 맥루안의 가장 중요한 통찰력은미디어는 메시지다가 아니라, 기술이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확장이라고 본 것이다. 기술은인간의 주인은 아니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킨 바로 그만큼 인간과 인간의 본성,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을 변화시켰다.

526. 버키 풀러와 마셜 맥루안은 내게 한 가지 목표에 정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례로 보여 준 사람들이다. 한가지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어떤 것을 이룰 수 있다. 나를 포함해 나머지 사람들은 좀 더 다양한 재미를 즐기기는 하겠지만 시간을 그저 흘려보낸다. 하지만 풀러나 맥루안 같은 사람은 사명을 수행한다. 어떤 일이 달성될 때마다 나는 그것이 사명감을 갖고 한 가지에 정진하는 사람들이 해낸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버키는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도 없이 황무지에서 40년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비전에 헌신했다. 맥루안은 비전을 찾는데 25년을 소비해서 마침내 비전이 그를 붙잡았다. 그 역시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시대가 왔을 때 영향을 주었다.

510. 기술이 형이상학과 문화, 미학, 인류학과 통합돼야 한다는 것을, 사실상 기술이 인류학의 핵심이며 인간의 자기인식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은 세대에게 이 두 예언자는 새로운 현실을 희미하게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안개에 싸여 있었지만 예언자다운 그들의 발언은 호소력을 더했다.

517. (맥루안)가 캐나다인 특유의 분위기를 지닌 중서부의 단조로운 콧소리로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지루해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524.영국의 위대한 학자 찰스 싱어가 <기술의 역사>에서 정의한 것처럼 기술은 '어떤 것을 만들거나 행하는 방법'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하는가 또는 어떻게 만드는가 하는 것이다.

앨프레드 슬론 : 절대적 권위로 GM을 이끈 전문경영자

557."대량생산이란 포드 씨가 말하는 의미와는 달라요. 일괄생산 라인이란 도구일 뿐입니다. 대량생산은 사람의 두뇌를 사용해서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니콜라스 드레이스타트

576. GM의 중역들이 아무리 능력있고 흥미로운 사람들일지라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동안에 그들은 정말이지 '조연'에 불과하단 느낌이 점점 강해졌다. '수퍼스타'는 바로 앨프래드 슬론이었다.

582. 우리가 사람들을 배치하고 적절한 자리에 임명하는 사안에 대해 네 시간씩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마 우리의 실수를 처리하느라 4백 시간을 소비해야 할 거고 내겐 그럴 만한 시간이 없어요.-슬론

602.
전문가란 자신의 관심사와 신념과 사생활을 공적인 업무와 분리할 수 있는 사람을 뜻했다. 슬론에게 개인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라도 개인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전문적으로 주의해야 할 대상이 됐다.

605."권위와 책임은 반드시 일치해야 하고, 서로 균형이 잡혀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권위를 원하지도, 그것을 가져야 할 필요도 없다면, 책임에 대해서는 말하지 맙시다. 또한 당신이 책임을 원하지도 않고 책임질 이유가 없다면 권위에 대해서 논하지 맙시다." -앨프레드 슬론

그 밖의 사람들 : 대공황 시기 미국 사회에 대한 스케치

621. 대공황에 대응하는 미국인의 방식은 자연재해를 극복할 때와 똑같은 방식이었다. 지진이나 홍수, 태풍이 지나간 뒤에 그렇듯이, 공동체는 서로의 간격을 좁히고 각자가 상대방의 구원자가 됐다. 1930년대 미국인들은 대공황을 마치 자연재해를 회상한 듯 이야기 했다. 그럴 때마다 장황한 개인적 사연이 등장하는데 보통내가 어떤 식으로 극복했냐 하면또는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냐 하면으로 시작하지만, 긴 이야기의 끝은 결국 이랬다. “당신도 봤지? 내가 그런 고통에서 벗어난 것처럼 당신도 할 수 있어

643. 흑인 소작농을 밀어낸 것은 바로 풍요의 경제학이었다. 흑인이 구시대 남부에 대해 향수를 품게 된 것은 한 세대가 지나 최근에야 발생하기 시작한 현상이다

674. 아메리카 합중국은 다른 나라들처럼 하나의 국가나 제도가 아니라 가치관이다. 뉴딜 정책에 대한 논쟁의 핵심쟁점은 이런 또는 저런 정책이 옳은지의 여부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미국적이냐 아니냐에 관한 것이었다.

638. “미국에는 두 개의 도가니가 끓어 넘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주 아주 천천히 끓고 있죠. 하지만 그 도가니 속에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3세대가 지난 후에는 앵글로색슨 족으로 변합니다. 다른 하나는 매우 빨리 끓어서 무엇이든 그 속에 들어가면,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가는 것 가운데 상당수가 흰색을 띠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과 아홉 달 뒤에는 흑인과 흑백혼혈이 되어 나옵니다” - 모데카이 존슨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을 읽고


피터 드러커 책은 처음이다. 그러나 주변에 피터 드러커를 존경하는 분들이 많아 경영은 내 관심이 아니지만 그의 책을 한 번쯤은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첫 시도부터 너무 대단한 책을 선택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읽는 내내 쉽지 않았다. 재미있게 읽히는 장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장이 더 많았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인지 그가 재창조해서 보여주고자 한 시대는 그다지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낌은 사람들과 시대라는 코드를 가지고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시종일관 사자휴처럼 토해내는 어느 대단한 학자의 지적 산맥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원제 <구경꾼의 모험 Adventures of a Bystander>은 상당히 이 책을 잘 설명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서문에 주장한대로 이 책은 하나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드러커의 존중이다. 전체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던 1930~40년대에 청년 시절을 보낸 드러커는 획일화의 시대적 폐단과 악습을 신물나게 겪었다. 이런 획일화에 대한 혐오는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다양성과 실험정신을 존중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무엇을 혐오해서 다른 것을 선택할 때 사람들은 보통 균형감각을 잃고 다시 동일한 편향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감탄한 것은 드러커의 탁월한 균형감각이다. 한 개인이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과거의 사람들을 묘사하는데 객관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좀 다르다. 드러커는 사람들을 주관적으로 묘사하되 그 사람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유보한다. 대신 가능한 한 여러 앵글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다양하게 그린다. 그 점이 나에게는 가장 경이로왔다. 직접 그 사람의 감정에 개입하지 않고 철저히 관찰자의 거울을 들고 사람과 시대를 들여다보는 드러커의 시선은, 그가 의도한대로 개인의 다양성을 통해 한 시대를 조망할 수 있도록 독자들을 잘 이끌고 있다.

 

드러커가 뛰어난 인물이라는 것은 다른 경영학 서적보다 아마도 이 책에서 더욱 빛을 발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보면 대단하지 않은 인물에게서 대단함을 발견하고, 대단한 인물에게서도 허점과 오류를 발견하는 드러커의 식견에 감탄하게 된다. 두말할 것 없이 사람과 사물을 깊이 인식하는 그의 식견은같은 사람을 다르게 보는그의 독특한 시각에서 비롯된다. 그런 시각이 이 책을 단순한 사람들의 자서전이 아닌 하나의 사회적 초상화로 승격시킨다. 소설가를 꿈꾸던 드러커의 빼어난 필치와 유머도 이 책의 위대함에 기여하고 있다. 이 책은 여러모로 드러커 자신에게도 또 하나의 글쓰기 실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피터 드러커가 이 책의 독자들에게 가장 듣고 싶어하는 대답을 줄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가장 즐거운 마음으로 쓴 책이다. 나를 가장 기분 좋게 하는 것은 아는 사람이 당신이 쓴 책을 여러 권 읽었고 거기서 많은 교훈을 얻었지만 제일 재미있게 읽은 것은 이 책입니다라고 말을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글쓴이에 대한 지독한 경외는 내 안에 오롯이 남았다.


 

그의 글쓰기, 기억과 상상력

 

그가 따로 밝혀두지 않아서 이 책이 소설적 상상력을 어느 정도 차용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책에 담고 있는 내용이 다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렇게 보기에는 이 책의 서술이 마치 오늘 일어난 일인 냥 지나치게 생생하고 치밀하다. 이 책이 쓰여진 건 95, 드러커의 나이 86세 때이다. 아무리 20년을 구상하고 준비한 것이라고 해도 20년 전의 그의 나이 역시 66세다. 이미 기억에 무엇을 의존하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이다. 그러니 이 책은 치밀한 준비(역사와 시대적 자료, 개인적 일기, 메모)와 기억, 그리고 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상상력은 철저히 그의 경험과 실제 에피소드 위에서만 확장된 것이라는 점에서 일반 문학적 상상력과는 차별된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 책에서 가장 큰 공헌은 그의 기억력이라고 할 수 있다. 기록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든 순전히 그의 총기에 의한 것이든 어쨌든 그의 기억력은 놀랍다. 읽는 사람을 충분히 주눅들게 한다. 거기에 어렸을 적부터 칭찬을 들어온 가장 큰 그의 재능인 글 솜씨,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는 것이 과장이 아닐 만큼 이 책에는 그의 문필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누군가 필력을 가졌다고 할 때 우리는 치밀한 묘사력과 비틀기의 미학, 즉 위트는 기본으로 기대한다. 드러커의 묘사력은 사실 소설가 이상이다. 위트 또한 수준급이다. 나는 그가 사람들을 묘사하는 것을 유심히 보았다. 그는 사람들의 성격이나 사람됨을 드러내기 위해 사람들의 인상착의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을 즐겼다. 세밀한 묘사는 대상에 대한 관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 책에서 문학, 예술, 경제, 사회, 정치를 아우르는 그의 식견은 감히 평범한 사람들은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방대하고 전방위적이다. 기가 질린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의 경영서들을 읽고 싶어졌다. 이 책에서 발견되는 피터 드러커 다움이 그의 경영서에는 어떻게 스며들어 있을지 매우 궁금하다. 다행히 다음 리뷰는 그의 경영서 <프로페셔널의 조건>이다.  


 

자신만이 재산이다-피터 드러커의 소신

 

나는 이 책에서 피터 드러커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게되는 것이 흥미로왔다. 양심을 권력과 영합시킬 때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추락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그가 선택한 두 사례, 셰퍼와 브레일스포드의 예에서 나는 피터 드러커의 소신을 읽었다. 인간은 어떤 조건에서든 악과 흥정해선 안된다고 그는 못을 박는다. 그의 그런 소신은 젊은 시절부터 그의 혈관 속에 흐르고 있던 것이었다. 

베르톨르를 만난 다음 날 나는 나치가 나와 어떤 관계도 가질 수 없게 하고 나 또한 나치와 어떤 관계도 가질 수 없게 하는 책을 쓰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팸플릿 정도되는 짧은 책이었지만 그 책의 주제는 독일의 유일한 보수 정치철학자 프리드리히 율리우스 슈탈에 관한 것이었다….나치는 출판되는 즉시로 그 책을 금지하고 불살라버렸다. 물론 그 책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지라도 나 자신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해야 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잡지 재벌 헨리 루스가 <타임>지 편집자 자리를 제안했을 때 나는 평소 루스의 집단 저널리즘을 옹호하진 않았지만 그가 제안하는 조건들에는 유혹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타임> 내 공산주의자들 사이에 돌던 반공 블랙리스트 덕분에 저절로 그 고민을 해결하게 되었다. <타임>에서 일하지 않게 된 것을 그는 다행으로 여겼다. 그는 돈을 많이 주고 호사를 시킨 루스의 친절이 직원들을 망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유혹을 느꼈다고 말은 하지만 그는 이미 유혹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두고 있었다.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런던에서 일하던 20대의 드러커에게 프라이빗 뱅커이자 투자의 천재였던 파르붐은 더 유혹적인 제안을 했었다. 더구나 파르붐은 사회에 기여되는 이익만을 챙기는 양심적인 뱅커였다. 파르붐의 제안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뉴욕에서 자신의 대리인 역할만 해주면 일 년에 25천 달러(당시 워싱턴 각료나 대기업 CEO월급보다 많은 돈)를 주겠다는 매우 유혹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드러커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그런 돈을 받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그래도 그만한 액수의 돈을 어떻게 물리친단 말인가) 더구나 뱅커의 삶은 그가 살고 싶은 삶도 아니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피터 드러커의 겁대가리 없을 정도의 자신만만함, 자신에 대한 믿음 같은 것에 퍽 감동되었다. ‘완벽이란 것이 늘 나를 피해 갔고, 또 지금도 나를 피해 가고 있지만 완벽을 기하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 드러커의 말(프로페셔널의 조건.157)이 떠올랐다. 그런 그의 소신이 이 시대 경영의 구루로 그를 우뚝 서게 했으리라.  

균형 잡힌 소신을 가지고 완벽을 위해 노력하는 한 개인의 사회적 영향력은 언제나 그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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