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현웅
  • 조회 수 291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8년 11월 4일 11시 32분 등록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돌베개



I. 저자에 대하여 :


  내가 신영복 선생님을 책으로 처음 만난 것은 대학 2학년 때이다. 1996년『나무야 나무야』란 책을 통해서였다. 신영복하면 많은 사람들이『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떠올리지만 내가 처음 접한 선생님의 책은 아니었다. 그 후에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한참 후에 읽었다.

  운동권 학생치고 신영복 선생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운동권을 넘어 이제는 우리나라 지성의 ‘자존심’이라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선생님의 이력은 단순하며 우직하다. 우직한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선생님의 철학 그대로의 길을 걷고 계신다.

  

1941년 경남 밀양 출생

1963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 졸업

1965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1965년 숙명여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1988년 8.15 특별가석방으로 출소

1989년 부터 현재까지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

2006년 8월 정년퇴임

현재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석좌교수


  위 발자취에서 우리를 가슴 아프게 했던 일명 ‘통혁당’사건으로 인한 20년간의 옥고가 어땠을지는 『신영복의 엽서』를 보면 느낄 수 있다. 나는 이때 글씨를 보고 사람의 아픔을 처음 보았다. 친필로 쓰여 진 엽서는 글이면서 그림이었다. 옥고가 시작 된지 얼마동안은 선생님의 글씨는 초등학교 2학년 쯤 되는 것처럼 보였다. 떨리는 손으로 겨우겨우 쓴 글씨의 흔적을 보면서 가슴 아팠던 기억을 떠올랐다. 고문의 후유증이었으리라. 그러나 해가 갈수록 선생님의 글씨는 투박하지만 묘한 매력이 흐르는 모양으로 변화해 갔고, 그와 더불어 그림도 한 점 두 점 추가되었다. 난 그제서야 안심하고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함께 맞는 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은 「함께 맞는 비」로 선생님의 소개를 마칠까한다.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년)/ 엽서(1993년)/ 나무야 나무야 (1996년)

더불어 숲 1권 (1998년 6월)/ 더불어 숲 2권 (1998년 7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증보판 (1998년 8월) / 더불어숲-개정판 합본 (2003년 4월)

신영복의 엽서 (2003년 12월)/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2004년 12월)


「역서」

외국무역과 국민경제(1966년)/ 사람아 아!사람아(1991년) / 루쉰전(1992년)

중국역대시가선집(1994년)


저자 홈페이지 www.shinyoungbok.pe.kr




II.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 서론


  요즈음 대학생이나 젊은 세대들은 근본적 성찰을 하는 일이 별로 없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매우 감각적이고 단편적인 감정에 매몰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또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세례를 받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반성 자체가 낡은 것으로 치부되기까지 하지요. 이러저러한 이유로 근본적 담론 자체가 실종된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P


  고전을 읽겠다는 것은 태산준령 앞에 호미 한 자루로 마주 서는 격입니다. 21P


  우리의 고전 강독은 그런 점에서 기본적으로 사회와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근본적 담론을 주제로 할 것입니다. 23P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存在論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이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존재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 단위로 인신하고 그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개별적 존재는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가는 운동 원리를 갖습니다. 그것은 자기 증식 自己增殖을 운동 원리로 하는 자본 운동의 표현입니다. 23P


  관계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에 존재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배타적 독립성이나 개별적 정체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관계성을 존재의 본질로 규정하는 것이 관계론적 구성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 주제를 가지고 이 문제를 논의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여러분과 함께 강독하게 될 예시 문안은 대체로 이러한 관계론적 사고를 재조명할 수 있는 것들로 구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4P


  과거의 어학 교육은 어학을 위한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단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받은 영어 교과서는 I am a boy. You are a girl.로 시작되거나 심지어는 I am a dog. I bark.로 시작되는 교과서도 있었지요. 저의 할아버지께서는 누님들의 영어 교과서를 가져도라고 해서 그 뜻을 물어보시고는 길게 탄식하셨지요.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는 천지와 우주의 원리를 천명하는 교과서와는 그 정신세계에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천지현황과 “나는 개입니다. 나는 짖습니다”의 차이는 큽니다. 아무리 언어를 배우기 위한 어학 교재라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26-27p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결국 차별화로 귀착 되는 것이지요. 반대의 논리도 없지 않습니다. 일단 차이를 인식하고, 차이를 인정하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통합과 공존을 모색한다는 논리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공존은 차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는 것이지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공존이 필요한 것이지요. 어떠한 경우든 차별화는 본질을 왜곡하게 마련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 점을 특히 경계해야 하는 것이지요. 29p


  동양에서는 자연이 최고의 질서입니다. 초고의 질서란 그것의 상위 질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자연 이외의 어떠한 힘도 인정하지 않으며, 자연에 대하여 지시적 기능을 하는 어떠한 존재도 상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연이란 본디부터 있는 것이며 어떠한 지시나 구속을 받지 않는 스스로 그러한 것(self-so)입니다. 글자 그대로 자연自然이며 그런 점에서 최고의 질서입니다. 38p


  동양 사상은 과거의 사상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사상입니다.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뛰어난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45p


  고전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어쩌면 오늘날처럼 속도가 요구되는 환경에서 너무나 한가롭게 우원迂遠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가 쌓아가고 있는 모순과 위기 구조는 근본 담론을 더욱 절실하게 요구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금언이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걸음을 재촉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47p


2. 오래된 시時와 언言

   『시경』詩經 ? 『서경』書經 ? 『초사』楚辭


  인류의 정신사는 어느 시대에나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모색해가게 마련입니다. 농본 사회에 있어서 노인의 존재는 그 마을에 도서관이 하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노인들의 지혜와 희생이 역사의 곳곳에 묻혀 있습니다.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esis)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변화할 때 사회가 변화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미래가 어디로부터 다가온다고 생각합니까?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식민지 의식의 전형입니다. 권력이 외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49p


  풀은 바람 속에서도 일어섭니다.

  모시毛詩에서는 “위정자는 이로써 백성을 풍화風化하고 백성은 위정자를 풍자諷刺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초상지풍 초필언’ 草上之風草必偃,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는 것이지요. 민요의 수집과 『시경』의 편찬은 백성들을 바르게 인도한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백성들 편에서는 노래로써 위정자들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풀은 눕지 않을 수 없지만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선다는 의지를 보이지요. ‘초상지풍 초필언’ 구절 다음에 ‘수지풍중 초부립’ 誰知風中草復立을 대구로 넣어 “누가 알랴,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것을” 이라고 풍자하고 있는 것이지요. 『시경』에는 이와 같은 비판과 저항의 의지가 얼마든지 발견됩니다. 「큰쥐」라는 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쥐야, 쥐야, 큰 쥐야. 내 보리 먹지 마라.

  오랫동안 너를 섬겼건만 너는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구나.

  맹세코 너를 떠나 저 행복한 나라로 가리라.

  착취가 없는 행복한 나라로. 이제 우리의 정의를 찾으리라. 62-63p


  『시경』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삶과 정서의 공감을 기초로 하는 진정성에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 시와 『시경』에 대한 제조명은 당연히 이러한 사실성과 진정성에 초점을 맞추어져야 합니다. 64p


  불편함은 정신을 깨어 있게 합니다.


  군자는 무일無逸(편안하지 않음)에 처해야 한다. 먼저 노동의 어려움을 알고 그 다음에 편안함을 취해야 비로소 백성들이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는가를 알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건대 그 부모는 힘써 일하고 농사짓건만 그 자식들은 농사일의 어려움을 알지 못한 채 편안함을 취하고 함부로 지껄이며 방탕 무례하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를 업신여겨 말하기를, 옛날 사람들은 아는 것이 없다고 한다. 70p


「무일」편은 주공의 사상이나 주나라 시대의 정서를 읽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편을 통해 가색稼穡의 어려움, 즉 농사일이라는 노동 체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생산 노동과 유리된 신세대 문화의 비생산적 정서와 소비주의를 재조명하는 예시문으로 읽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71p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81p 『초사』, 「이소」離騷, 굴원의 시 중에서


  나는 굴원의 이 시를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라는 의미로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모순과 살등은 어쩌면 인생의 영원한 주제인지도 모릅니다. 이 오래된 주제에 대한 굴원의 결론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가장 정갈하게 간수해야 하는 갓끈을 씻고 반대로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 것입니다. 비타협적 엘리트주의와 현실 타협주의를 다같이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획일적 대응을 피하고 현실적 조건에 따라서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는뜻으로 읽힙니다. 굳이 이야기한다면 대중노선을 지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감옥에서 만난 노선배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82p


3. 『주역』의 관계론


   생각한다는 것은 바다로부터 물을 긷는 것입니다. 자연과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나름의 인식 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그릇이 집집마다 있었지요. 여러분도 물 긷는 그릇을 한 개씩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서로 비슷한 그릇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주역』에 담겨 있는 사상이란 말하자면 손때 묻은 오래된 그릇입니다. 수천 년 수만 년에 걸친 경험의 누적이 만들어낸 틀입니다. 그 반복적 경험의 누적에서 이끌어낸 법칙성 같은 것입니다. 물 긷는 그릇에 비유할 수 있지만 또 안경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물과 현상을 그러한 틀을 통해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주역』은 동양적 사고의 보편적 형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5p


  우리가 보통 점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상相 , 명命, 점占으로 나눕니다. 상은 관상 수상과 같이 운명 지어진 자신의 일생을 미리 보려는 것이며, 명은 자주팔자와 같이 자기가 타고난 천명, 운명을 읽으려는 것입니다. 상과 명이 이처럼 이미 결정된 운명을 미리 엿보려는 것임에 반하여 점은 ‘선택’과 ‘판단’에 관한 것입니다. 이미 결정된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판단이 어려울 때, 결정이 어려울 때 찾는 것이 점입니다. 89p


  『주역』이 점치는 책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경험의 누적으로부터 법칙을 이끌어내고 이 법칙으로써 다시 사안을 판단하는 판단 형식입니다. 그리고 이 판단 형식이 관계론적이라는 것에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90p


  한마디로 『주역』은 변화에 대한 법칙적 인식이 절실하게 요청되던 시기의 시대적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92p


  『주역』의 관계론적 철학 사상이 이러한 사회 역사적 지반 위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상이란 어느 천재의 창작인 경우는 없습니다. 어느 천재 사상가가 집대성하는 경우는 있을지 모르지만 사상이란 장구한 역사적 과정의 산물입니다. 107p


  공자는 『주역』을 열심히 읽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 하였습니다. 죽간竹簡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많이 읽은 것으로 유명하지요. 107p


  되돌아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 이것은 천지의 법칙이다.


  ‘제’際는 만남의 의미입니다. 천은 양, 지는 음입니다. 따라서 ‘천지제야’天地際也라는 의미는 음양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천지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지의 법칙, 즉 천지의 운행 법칙이라는 의미로 풀이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춘하추동이 반복됩니다. 인간의 화복도 대체로 다시 반복됩니다. 그런 의미로 읽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113-114p


  절제와 겸손은 관계론의 최고 형태

  『주역』사상을 계사전에서는 단 세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역易 궁즉변窮卽便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가 그것입니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잇습니다. 궁하다는 것은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이른 상태, 즉 양적 변화와 양적 축적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질적 변화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통通의 의미입니다. 그렇게 열린 상황은 답보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원진다(進新)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구久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사전에서 요약하고 있는 『주역』 사상은 한마디로 ‘변화’입니다. 130p


  여러 가지 사정을 배려하는 겸손함  그것이 바로 관계론의 최고 형태라는 것이지요. 132p


4. 『논어』, 인간관계론의 보고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時制라는 사실입니다. 궁자의 사상이 서주西周 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 공자의 인간 이해를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의 인권 사상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고전 독법은 그 시제를 혼동하지 않음으로써 인人에 대한 담론이든 민民에 대한 담론이든 그것을 보편적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관점이 고전의 담론을 오늘의 현장으로 생환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35p


  배움과 벗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 142p


  중요한 것은 이 ‘습’을 복습復習의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습’의 뜻은 그 글자의 모양이 나타내고 있듯이 ‘실천’實踐의 의미입니다. 부리가 하얀(白) 어린 새가 날갯짓을 하는 모양입니다. 복습의 의미가 아니라 실천의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배운 것, 자기가 옳다고 공감하는 것을 실천할 때 기뿐 것이지요. 144p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구절은 어디까지나 진보적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미래를 하나의 통일체로 인식하고 온고溫故함으로써 새로운 미래(新)를 지향(知)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149p


  '가이위사의‘可以爲師矣는 “스승이라 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무난합니다. 스승이란 단지 정보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지요. 더우나 과거지사過去之事를 전하는 것만으로 스승이 될 수는 없지요. 스승이란 비판적 창조자여야 하는 것이지요. 150p


  행정명령으로 백성을 이끌어가려고 하거나 형벌로써 질서를 바로 세우려 한다면 백성들은 그러한 규제를 간섭과 외압으로 인식하고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될 수 있으면 처벌받지 않으려고 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부정을 저지르거나 처벌을 받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와 반대로 덕德으로 이끌고 예禮로 질서를 세우면 부끄러움도 알고 질서도 바로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153p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163p


  덕의 의미는 『논어』의 이 구절에 나와 있는 그대로입니다. ‘이웃’입니다. 이웃이란 그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입니다. 심心이 개인으로서의 인간성과 품성의 의미라면 덕은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에 무게를 두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68p


 바탕이 문채 文彩보다 승勝하면 거칠고 문채가 바탕보다 승하면 사치스럽다. 형식과 내용이 고루 어울린 후라야 군자이다. 옹야 194p


  승하다는 표현은 물론 지금은 쓰지 않지요. 그러나 과거에는 매우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말이었습니다. 이 구절에서 ‘승하다’는 말은 여러분의 언어로는 ‘튄다’로 해석해도 되겠네요. 내용이 형식에 비하여 튀면 거칠고, 형식이 내용에 비해 튀면 사치스럽다는 의미입니다. 195p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199p


5. 맹자의 의義


  많은 연구자들의 일치된 견해는 공자의 인仁이 맹자에 의해서 의義의 개념으로 계승되고 잇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중심 사상이 인에서 의로 이동했다는 것이지요. 인과 의의 차지에 대해서 물론 논의해야 하겠지만 한마디로 의는 인의 사회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12p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뵈었을 때 왕이 말했다. ‘선생께서 천리길을 멀다 않고 찾아주셨으니 장차 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가져오셨겠지요.?“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어찌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따름입니다.


  만약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하시면, 대부大夫들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해야 내 영지領地에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할 것이고, 사인士人 이나 서민庶民들까지도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하는 것만을 생각할 것입니다. 위 아래가 서로 다투어 이利를 추구하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맹자의 글은 매우 논리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논어』가 선어禪語와 같은 함축적인 글임에 비해 『맹자』는 주장과 논리가 정연한 논설문입니다. 서당세서 『맹자』로써 문리文理를 틔운다고 합니다. 213p


  맹자는 그 사상이 우원迂遠  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패자들에게 수용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급진적이었기 때문에 수용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맹자의 민본 사상은 패권을 추구하는 당시의 군주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적인 사상이었습니다. 249p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씻으리”라는 노래가 있다. 공자께서 이 노래를 들으시고 “자네들 저 노래를 들어보게.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씻지만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게 되는 것이다. 물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며, 한 집안의 경우도 반드시 스스로를 파멸한 연후에 남들이 파멸시키는 법이며, 한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를 짓밟은 연후에 다른 나라가 짓밟는 것이다. 『서경』 「태갑」편에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러 들인 재앙은 피할 길이 없구나”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 「이루 상」249-250p


6. 노자의 도와 자연


  진정한 연대란 다름 아닌 ‘노자의 물’입니다. 하방 연대下放連帶입니다. 낮은 곳으로 지향하는 연대입니다. 노동 ? 농민 ? 의료 ? 시민 등 각 부문 운동이 각자의 존재성을 키우려는 존재론적 의지 대신에 보다 약하고 뒤처진 부문과 연대해 나가는 하방 연대 방식이 역량의 진정한 결집 방법이라고 생각하지요. 중소 기업, 하청 기업, 비정규직, 여성, 해고자, 농민, 빈민 등 노자의 물처럼 낮은 곳을 지향하는 연대여야 하는 것이지요. 하방 연대에는 보다 진보적인 역량이 덜 진보적인 역량과 연대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덜 진보적인 역량은 더 내놓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연대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연대 담론에 있어서 노자의 생활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251p


  노자가 가리키는 근본은 자연自然입니다. 노자의 귀歸는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연이란 문명에 대한 야만의 개념이 아님은 물론이고 산천과 같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노자의 자연은 천지인天地人의 근원적 질서를 의미하는 가장 큰 범주의 개념입니다. 254p


  『노자』는 81장 5,200여 자에 이릅니다. 상편은 도道로 시작하고, 하편은 덕德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도덕경』이라 불리게 됩니다. 주나라가 쇠망하자 노자는 주나라를 떠납니다. 이때 관윤關尹이라는 사람이 노자를 알아보고 글을 청하자 노자가 이 『도덕경』 5천 언言을 지어줌으로써 후세에 남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258p


  도라고 부를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닙니다.

  도道를 도라고 부를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며,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참된 이름이 아니다. 무無는 천지의 시작을 일컫는 것이고, 유有는 만물의 어미를 일컫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로서는 항상 그 신묘함을 보아야 하고, 유로서는 그 드러난 것을 보아야 한다. 이 둘은 하나에서 나왔으되 이름이 다르다. 다 같이 현玄이라고 부리니 현묘하고 현묘하여 모든 신묘함의 문이 된다. 263p


  서툰 글씨가 명필입니다.

  가장 완전한 것은 마치 이러진 것 같다. 그래서 사용하더라도 해지지 않는다.

  가득 찬 것은 마치 비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 퍼내더라도 다함이 없다.

  가장 곧은 것은 마치 굽은 듯하고, 가장 뛰어난 기교는 마치 서툰 듯 하며, 가장 잘하는 말은 마치 더듬는 듯하다.

  고요함은 조급함을 이기고, 추위는 더위를 이기는 법이다. 맑고 고요함이 천하의 올바름이다. 299p


  노자의 철학은 귀본歸本의 철학입니다. 본本은 도道이며 자연입니다. 그런 점에서 노자의 철학을 유가 사상에 대한 비판 담론으로 규정하는 것은 노자의 철학을 유가 사상에 대한 비판 담론으로 규정하는 것은 노자를 왜소하게 읽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자 철학이야말로 동양 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 제25장)는 것이 노자의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305p


7. 장자의 소요


  고기는 이를테면 하나의 현상입니다. 반면에 그물은 모든 현상의 저변에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기가 하나의 사물이라면 그물은 세상의 모든 사물을 망라하고 있는 천망天網인 것이지요. 고기는 잊어버리든 잃어버리든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물입니다. 모든 사물과, 모든 사건과, 모든 사태가 그 위에서 생성 변화 발전하는 거대한 관계망을 잊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한 마리의 재비가 아니라 천하의 봄이지요. 남는 것은 경기의 승패가 아니라 동료들의 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는 것은 그물입니다. 그리고 그물에 관한 생각이 철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07p


  "우물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장자』 외편外篇 「추수」秋水 309p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그렇기 때문에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다고 하더라도 늘여주면 우환이 되고, 학의 다리가 비록 길다고 하더라도 자르면 아픔이 된다. 그러므로 본래 긴 것은 잘라서는 안 되며 짧은 것은 늘려서도 안 된다. 그런다고 해서 우환이 없어질 까닭이 없다. 생각건대 인의仁義가 사람의 본성일 리 있겠는가! 저 인仁을 갖춘 자들이 얼마나 근심이 많겠는가. 「변무」325-326p


  길다고 그것을 여분으로 여기지 않고 짧다고 그것을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 이것이 자연이며 도의 세계입니다. 엄지발가락과 둘째발가락이 붙은 것을 가르면 울고, 육손을 물어뜯어 자르면 소리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장자가 주장하는 것은 인의仁義는 사람의 천성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천天이 무엇이며 인人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장자는 간단명료하게 답하고 있습니다. 326p


  '책‘의 한계에 대하한 명쾌한 지적

  세상에서 도道를 얻기 위하여 책을 소중히 여기지만 책은 말에 불과하다. 말이 소중한 것은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뜻이 소중한 것은 가리키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은 그 뜻이 가리키는 바를 전할 수가 없다. 도대체 눈으로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은 형形과 색色이요 귀로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은 명名과 성聲일 뿐이다. 「천도」338p


  배로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떠내려와서 자기 배에 부딪치면 비록 성급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비키라고 소리친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면 두 번 소리치고 두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면 세 번 소리친다. 세 번째는 욕설이 나오게 마련이다. 아까는 화내지 않고 지금은 화내는 까닭은 아까는 빈 배였고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산목」 343p


  빈 배로 흘러간다는 것이 바로 소요유입니다. 빈 배는 목적지가 있을 리 없습니다.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보행步行이 아닙니다. 삶이란 삶 그 자체로서 최고의 것입니다. 삶이 어떤 다른 목적의 수단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이 점에서 장자는 자유의지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관념적이라거나, 사회적 의미가 박약하다거나, 실천적 의미가 제거 되어 있다는 비판은 『장자』를 잘못 읽거나 좁게 읽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343p


  장자가 바야흐로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제자들이 장례를 후히 치르고 싶다고 했습니다.

  장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을 널로 삼고, 해와 달을 한 쌍의 옥玉으로 알며, 별을 구슬로 삼고, 세상 만물을 내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있네. 이처럼 내 장례를 위하여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는데 무엇을 또 더한단 말이냐?”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의 시신을 파먹을까 봐 염려됩니다.”

  장자가 대답했습니다.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될 것이고, 땅속에 있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이 될 것이다. (장례를 후히 지내는 것은) 한쪽 것을 빼앗아 다른 쪽에다 주어 편을 드는 것일 뿐이다. 인지人知라는 불공평한 측도로 사물을 공평하게 하려고 한들 그것은 결코 진정한 공평이 될 수 없는 것이다.” 354p


  고기는 잊더라도 그물은 남겨야

  ‘득어망전得魚忘筌 득토망제 得兎忘蹄’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리고 토끼를 잡고 나면 덫을 잊어버린다”는 뜻


  전筌은 물고기를 잡는 통발인데,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은 잊어버리게 마련이고,

  제蹄는 토끼를 잡는 올무인데, 토끼를 잡고 나면 그것을 잊어버리고 만다.

  말은 뜻을 전하는 것인데, 뜻을 얻으면 말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나도 이렇듯 그 말을 잊어버리는 사람을 만나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고 싶구나! 잡편 「외물」355-356p


8.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묵자의 검은 얼굴

  

  첫째로 하층민의 이미지입니다. ‘묵’墨이란 우리말로 먹입니다만, 묵자墨子 묵墨은 죄인의 이미에 먹으로 자자刺字하는 묵형墨刑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묵가墨家란 형벌을 받은 죄인들의 집단을 의미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설령 형벌과 죄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검은색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검은색은 노역奴役과 노동주의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검은 노동복을 입고 전쟁을 반대하고 허례虛禮와 허식虛飾을 배격하며 그론와 절용節用을 주장하는 하층민이나 공인工人 들의 집단이 묵가라는 것입니다. 364p


  맹자에 따르면 “묵가는 보편적 사랑을 주장하여 정수리에서 무릎까지 다 닳아 없어진다 하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366p


  "큰 나라가 약소국을 공격하고, 큰 가家가 작은 가를 어지럽히고, 강자가 약자를 겁탈하고, 다수가 소수를 힘으로 억압하고, 간사한 자가 어리석은 자를 속이고, 신분이 높은 자가 천한 사람들에게 오만하게 대하는 것 이것이 천하의 해로움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오늘날의 세계 질서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금치 못합니다. 377p


  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을 저지하였고, 초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을 저지하였으며,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을 막았다. 묵자가 송나라를 지날 때 비가 내려서 마을 여각에서 비를 피하려 하였다. 그러나 문지기가 그를 들이지 않았다.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드러내놓고 싸우는 사람은 알아준다. 386p


  미리 아궁이를 고치고 굴뚝을 세워 화재를 예방한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우면서 요란하게 불을 끈 사람은 그 공을 칭찬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인 셈이지요. 개선장군에 대한 환호가 그러한 것입니다. 386p



III. 내가 저자라면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

  나는 신영복 선생님을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라고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최고라는 것은 유일하다는 뜻이다. 이 책 『강의』또한 최고의 지성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손색이 없다. 아니 성공회대학교로 쫓아가서 이 이야기를 선생님의 육성 그대로로 듣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성공회대학교에서 이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부럽다.

  신영복 선생님은 동양학을 전공하지 않으신 분이다. 그러나 감옥에서 공부한 동양학에 자신의 철학적 담론을 감이한 이 책은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명저다.


  영양가 만점 밥상

  어느 연기자의 수상 소감이 떠오른다. “난 그저 스텝들이 차려준 밥상을 맛있게 먹었을 뿐입니다.” 이 책이 그렇다. 저자는 동양학을 자신의 솜씨로 맛있게 요리했다. 11가지의 밥과 반찬을 준비했다. 고품격 한정식이 이렇다면 나는 배가 터져도 좋다.

  그러나 나는 저자가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 드는 법도 익히지 못하고 덤벼들었다. 내가 만약 동양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좀 더 풍부했더라면 책속에 더욱더 푹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밥과 반찬은 숟가락 드는 법을 잘 모르더라도 미각만 살아있다면 충분히 맛을 느낄 수 있듯이 저자의 『강의』는 범인들에 맞게 눈높이가 조절되어 있다.


  한자를 잘 몰라도 부담이 없는 동양철학 책

  이 책의 특징 중 다른 동양철학 서적과 비교했을 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한자에 대한 사전 지식이 별로 없어도 부담이 없다는 것을 나는 들고 싶다. 한자로 원문을 쓰면서도 현재에 맞게 번역한 내용은 이것이 옛날 책인가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없어진 과거의 언어를 지금의 언어로 변화시킨 점은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노자 ? 장자에 대한 저자의 마음

  노자와 장자를 이야기 하면서 저자는 그분들 대접을 소홀히 한 것 같다는 말을 남기며 장을 마무리 했다. 이 대목은 저자가 노장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내가 굳이 노자 ? 장자를 여기에 끌어들인 이유는 나도 저자의 마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다.


  두고두고 읽기에 충분한 책

  도올 김용옥은 ‘고전古典을 두고두고 책상위에서 읽을 만한 책’이라고 했다. 고전이 갖는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이 처음 나온 해에 사서 일 년에 한번 정도 씩 책장을 다시 넘겼다. 이번엔 아예 작정을 하고 책속에 느낌이 닿았던 대목을 옮겨 적었다. 역시나 구절구절의 의미가 새롭다. 왜 두고두고 읽어야 하는지 이제 알겠다.


  굳이 아쉬운 점을 찾자면

  내용상 이 책은 나에게 과분하고도 넘쳐흐른다. 그래도 못내 아쉬운 점은 책이 『대학』, 『중용』정도는 지면을 할애해 주셨으면 하는 욕심을 부려보고 싶다. 강단에서의 강의는 시간적 제약으로 어쩔 수 없으셨겠지만 책에서는 채우지 못한 부분을 담아 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IP *.37.24.93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12 [북리뷰 46] 사람에게서 구하라 신진철 2011.02.06 2910
1711 14th Review-서양의지혜- B.러셀 지음/이명숙,곽강제 옮김/서광사 file [1] 사샤 2011.07.04 2910
1710 First, break all the rules - 머커스 버킹엄, 커트 코프만 [2] 박노진 2005.11.04 2911
1709 노년 -시몬 드 보부아르 [1] 이한숙(소은) 2008.03.24 2911
1708 당신들의 대한민국.. [6] 김미영 2005.09.08 2913
1707 [29]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2] 현정 2008.12.01 2913
1706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자크 아탈리 [6] [3] 香仁 이은남 2007.05.01 2914
1705 변신이야기 (revision) [1] 학이시습 2012.04.18 2915
1704 12, 열정과 기질_발췌 [1] 맑은 김인건 2010.05.24 2916
1703 서대원 주역강의(1) 보따리아 2018.02.10 2916
1702 몰입의 즐거움 김귀자 2006.06.09 2917
1701 다선선생 지식경영법_ 정민 레몬 2012.11.04 2917
1700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하) [2] 학이시습 2013.04.01 2917
1699 #24. 그들이말하지않는23가지 / 장하준 file [1] 쭌영 2013.10.29 2917
1698 <당신의 파라슈트는 어떤 색깔입니까?> 리처드 N. 볼스 file [9] 박미옥 2010.07.13 2918
1697 9-4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그리스인 이야기) (DS) [1] 땠쑤나무 2013.05.27 2918
» [28]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현웅 2008.11.04 2918
1695 율리시스 - 제임스 조이스 [1] [5] 레몬 2012.05.21 2919
1694 [블루오션 전략] 김위찬, 르네 마보안 오세나 2005.08.04 2920
1693 완당평전 [2] 이종승 2006.06.01 2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