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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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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일 17시 42분 등록

1.저자소개

 

루스 베네딕트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배서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교사와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우연한 기회에 사회연구를 위한 뉴스쿨에서 인류학 강의를 접하고 매료되어 1921년 34세의 나이에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하여 프란츠 보아스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인류학 연구에 빠져들었다.

1923년 아메리카 인디언 종족들의 민화와 종교에 관한 연구로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34년 문화의 상대성과 문화가 개인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 <문화의 패턴Patterns of Culture>을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 때 그녀의 학생이자 동료인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를 만나게 된다.

 

마가렛 미드는 본인의 저서 루스 베네딕트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바너드 대학 4학년이던 1922년 가을에 루스 베네딕트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당시 프란츠 보아스 밑에서 대학원 과정을 막 마치고 1년간 바너드 대학에서 보아스의 조교로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 학생들을 데리고 미국 자연사박물관에 데려가기도 했다.
이 당시, 소녀 시절에 그리고 그 후에 하나의 전설이 되었던 그녀의 미모는 완전히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수줍음이 많고 정신이 산만한 중년 부인 같아 보였고, 가느다란 쥐색 머리카락은 잘 고정되어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 법이 없었다. 여러 주가 지나가도록 계속 엉성한 모자를 쓰고 다녔고 칙칙한 색깔의 같은 옷을 입었다. 남자들은 매일 같은 옷을 입잖아, 하고 그녀는 말했다. 여자는 왜 그렇게 하면 안 돼? - p.25 중에서” ㅇ; 대목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나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기 대문이다. 매일 아침 정장을 입고 출근길에 오르면서 ‘남자들은 셔츠만 갈아입어도 되는데 왜 우리 여자들은 옷을 매일 갈아입는걸까? 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대표적인 저서에는 '문화의 패턴(Patterns of Cultures, 1934), '종족(Race: Science and Politics,1940),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1946) 등이 있다. 그녀의 학문적 입장은 인류학과 심리학을 결합하여, 인간의 사상, 행동을 의미를 심리학적으로 파악하려는 '문화 양식론'으로 대표되는데, 이는 문화와 인성(culture and personality)에 대한 연구이다. 그녀의 자신의 책 '문화의 패턴'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화도 사람처럼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는 사고와 행위의 유형이다. 각 문화는 특징적인 목적을 가지며, 그 문화에서 이질적인 행위들도 점차 일관성이 있는 형태를 갖추어 가게 된다. 이러한 행위들이 취하게 되는 형태는 그 사회의 정서적이고 지적인 주요 동기들을 이해함으로써만 이해할 수 있다."

이어 『인종Race:Science and Politics』을 출간함으로써 미국 인류학계의 대표적인 학자가 되었다. 1943년 전쟁공보청 해외정보 책임자로 일하였고, 1946년 만년의 역작인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을 출간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내 마음속에 들어 온 글귀

제1장 연구과제-일본
 
(10) 문호가 개방된 이래 75년간 일본인에 대해 씌어진 저작에는 세계 어느 국민에게도 일찍이 쓰인 적이 없을 정도로 기괴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또한(but also)’이라는 표현이 연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1) 그렇지만 이러한 모순이 일본에 관한 책에서는 날줄과 씨줄이 된다. 그러한 모순은 모두가 진실이다. 칼도 국화가 함께 한 그림의 일부분이다. 일본인은 최고도로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얌전하며, 군국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탐미적이며, 불손하면서도 예의 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성이 풍부하며, 유순하면서도 귀찮게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하며,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며,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며,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놀랄 만큼 민감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모를 때는 범죄의 유혹에 빠지고 만다. 그들의 병사는 철저히 훈련되지만 또한 반항적이다.
 
 (21) 어떤 국민 생활의 사소한 인간적 일상 생활에 주의해야만, 비로소 어떤 미개 부족에도 또 어떤 문명국에도 인간의 행동은 일상 생활 속에서 학습되는 것이라는 인류학자의 전제에 대한 중요한 의의를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22) 종교적 교리와 경제적 관습과 정치는 결코 명료하게 격리된 작은 연못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있을 것으로 상상되는 그 경계를 넘어서 넘쳐 흘러나간다. 그래서 그 물은 서로 섞여져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모르게 합쳐진다.
 
(23) 20세기의 핸디캡 가운데 하나는 일본을 일본인의 나라답게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미국을 미국인의, 프랑스를 프랑스인의, 러시아를 러시아인의 나라답게 만드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여전히 가장 막연하고도 편견에 가득 찬 관념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식의 결핍으로 세계 각국은 서로 오해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닮은 두 나라 사이에서 불화가 일어난 경우라도 우리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23) 모든 나라의 문필가들은 그들 자신의 것을 설명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국민이 자기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렌즈는 다른 국민이 사용하는 렌즈와는 다른다.
 
(25) 그들은 차이를 존중한다. 그들의 목표는 차이가 있더라도 안전이 확보되는 세계, 세계 평화를 위협하지 않고도 미국은 철저히 미국답고, 같은 조건으로 프랑스는 프랑스, 일본은 일본다울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30) 덕과 악덕은 서양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체계는 전혀 독특한 것이었다. 그것은 불교적인 것도 아니고 유교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일본적인 것이었다. 일본의 장점도 단점도 모두 포함한 것이었다.
 

제2장 전쟁중의 일본인
 
(32-33) 반면 일본은 전쟁의 원인을 이와는 다른 시각에서 보았다. 각국이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있는 동안 세계는 무정부 상태가 계속된다. 일본은 계층 제도(hierarchy)를 수립하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질서의 지도자는 물론 일본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며, 따라서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40) “기회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우연히 부딪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시기를 당해서는 반드시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내야 한다.”
 
(41) 미국인은 생활 양식을 끊임없이 도전해 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하다. 그리고는 그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반면 일본인은 오히려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 양식에서만 안심을 얻을 수 있으며, 예견하지 못한 일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44) 일본에서 산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일본인의 천황 숭배는, 나치스 당의 성쇠를 점치는 척도이며 파시즘적 계획의 모든 악과 결부된 하일 히틀러(Heil-Hitler) 숭배와는 함께 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주장했던 것이다.
 
(50) 천황이 명령하는 한 일본인 ‘죽창을 들고’ 죽을 때까지 싸우겠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만일 칙명이라면 그들은 조용히 패전과 점령을 감수할 수 있다는 포로들의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우리를 속이기 위한 말은 아니었을까? 혹은 어쩌면 진실일까?
 
(51) 일본군들은 죽음 그 자체가 정신의 승리이며, 우리 미국인같이 환자를 충분히 간호하는 것은 전투기의 구명 도구처럼 영웅적 행위를 해치는 것으로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다.
 
 
제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
 
(69) “부모에게 의견을 제출하고 싶어하는 자식은, 머리를 기르고 싶어하는 승려와 같다. 그 까닭은?” 이에 대한 답은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85) 동기의 정당함은 법을 어긴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86) 그들은 처형당한 지도자를 위해 사당을 지어 순교자로서 숭배하기도 했으나 처형 그 자체는 그들이 살고 있는 계층적 법률의 본질적 요소로서 시인했던 것이다.
 
 (90-91) 사람들은 이 지도를 신뢰하였다. 그리고 그 지도에 표시된 길을 따를 때에만 안전하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바꾸든가 혹은 그것에 반항하는 대신, 그것을 지키는 데서 자신의 용기와 고결함을 드러내었다. 여기에 명기된 범위 안에서는 이미 아는 세계이며, 따라서 일본인의 눈으로 본다면 신뢰할 수 있는 세계였다.
 
 
제4장 메이지유신
 
 (109) 국정의 최상층에서는 ‘국민의 여론’에 대한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 정부는 단지 ‘국민의 지지’만을 요구할 따름이다. 국가가 그 권한의 영역을 지방 행정의 범위 내에 침범할 때에도 또한 그 지배권은 황송하게 받아들여진다. 갖가지 국내적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는 미국에서 일반적을 느껴지고 있는 것처럼 불가피한 필요악이 아니다. 일본인의 안목으로 보면 국가는 더없이 존귀한 것이다.
또한 국가는 국민 소망의 ‘알맞은 위치’를 인식하려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당연히 국민의 여론이 지배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설명 그것이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일일지라도, 일본 정부는 국민의 비위를 맞추듯이 그 일을 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110) 일본인의 생활 양식은 알맞은 권위를 할당하고 각각의 권위에 알맞은 영역을 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웃어른’에게는 서구 문화보다도 더 큰 존경-따라서 더욱 큰 행동의 자유-을 주지만, 웃어른들도 그 지위를 지켜야 한다. ‘모든 것을 알맞은 장소에 둔다.’ 이것이 일본의 좌우명이다.
 
 (117) 일본이 이룩한 것은 실수와 헛된 소모를 최소한도로 줄여 그들이 필요로 하는 산업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121) 그들은 ‘각자 알맞은 지위를 받아들이는’ 일본의 도덕 체계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치리지 못하였다. …… 그것은 틀림없는 일본만의 산물인 것이다. 일본의 저술가들은 이 윤리 체계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기술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앞서 먼저 그 도덕 체계를 이해해야 한다.
 
 
제5장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
  
(130-131) 일본인은 우연히 다른 사람으로부터 온을 받음으로써 보답의 빚을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137) 아무리 착잡한 감정을 가졌더라도 온진恩人이 실제로 자기 자신인 한, 즉 그 사람이 ‘나의’ 계층적 조직 속에 일정한 위치를 점하는 사람이든지, 혹은 바람 부는 날 모자를 집어 준 경우처럼 나 자신도 아마 그렇게 하였으리라 상상되는 일이든지, 혹은 나를 숭배하는 사람일 경우에 한해서는 일본인은 안심하고 온을 입는다. 그런데 일단 이런 조건에 해당되지 않으면 그 온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 된다. 지워진 부채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불쾌하게 느끼는 것이 훌륭한 태도이다.
 
(142) 사랑, 친절, 너그러운 마음 등은 미국에서는 부수적인 대가가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존중되지만, 일본에서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그런 행위를 받은 사람은 채무자가 된다. 일본인이 잘 쓰는 속담이 있다. “온을 받는 데에는 더없이 타고난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제6장 만분의 일의 은혜 갚음
  
(159) 일본은 유사 이래 서른 여섯이나 되는 왕조가 교체된 중국과는 달랐다. 일본은 이제까지 여러 가지 변천을 거쳐 왔지만 그 어떤 변혁에서도 결코 사회 조직이 지리멸렬하게 파괴된 일이 없이 항상 불변의 형태로 지켜져 왔던 나라였다.
 
(160-161) 주는 신하와 천황의 관계에 이중적 체계를 부여한다. 신하는 위를 향해서는 중간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천황을 우러러본다. 그는 그의 행동에 의해 직접 개인적으로 ‘폐하의 마음을 편안케’ 해 드리는 데 신명을 바친다. 그러나 신하가 천황의 명령을 받을 때는 그 명령은 그와 천황 사이에 개재하는 여러 중간자의 손을 거쳐서 중계된 것을 귀에 담는다.
 
(163) 아침에는 소총을 겨누면서 착륙했지만, 점심때는 총을 치워 버렸고, 저녁때는 이미 장신구를 사러 외출할 정도였다.
 
(164) 그러나 일본은 서구가 아니다. 일본은 서구 여러 나라의 최후 방법인 혁명을 이용하지 않았다. 일본은 또한 적국의 점령군에게 불복종 사보타주를 하지 않았다. 일본은 일본 고유의 강점, 즉 아직 전투력이 분쇄되지 않았는데도 무조건 항복을 수락한다는 막대한 대가를 주로서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능력을 사용하였다. …… 즉, 일본인은 비록 그것이 항복의 명령이긴 했지만 명령을 내린 것은 천황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것이었다. 패전에 있어서도 최고의 법은 여전히 주였다.
 
 
제7장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
 
(166) 기리는 ‘올바른 도리, 사람이 좇아야만 할 길, 세상에 대한 변명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하는 일’로 되어 있다.
  
(172) 이처럼 기리가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것이었고, 전혀 혐오의 정에 더럽혀지지 않았던 시대의 옛 이야기는, 현대 일본이 꿈꾸는 황금 시대의 백일몽이다.
 
(175) 일본인은 어떤 사람이 기리를 갚을 수 없을 때, 그 사람은 파산하였다고 여긴다.
 
(175) 그것은 복잡한 세상에서 끊임없이 방심하지 말고 걸어다녀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8장 오명을 씻는다
 
(179) 이름名에 대한 기리義理란 자기 자신의 명성에 오점이 없도록 하는 의무이다.
 
 (181) 보복은 인간의 덕행이지, 인간의 본질적인 약점에 기초한 피할 수 없는 악덕이 아니다.
 
 (185) “진정한 존엄성이란 항상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자기에게 알맞은 지위를 차지한다는 일이다. 따라서 이것은 왕이나 백성이나 어떤 사람에게도 가능한 일이다.”
 
(188) 본심은 그가 알고 있는 체하기보다는 정직하게 알지 못한다고 하는 편이 훌륭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189) 일본의 어린이는 경쟁을 장난처럼 생각하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청년이나 성인인 경우에는 경쟁자가 있으면 작업 능률이 뚝 떨어진다.
  
(197) 살인자-그는 타인의 육체를 살해한 인간이다. 조소자-그는 타인의 혼과 마음을 살해한 인간이다.
혼이나 마음은 육체보다 훨씬 귀한 것이다. 따라서 조소는 가장 큰 죄이다. 실제로 그 선교사 부부는 나의 혼과 마음을 살해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에 대단한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내 마음은 “왜 ‘너 따위가’라고 말하는가?”라고 외쳤다.
 
(199) 일본인은 사람이란 스스로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모욕받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사람을 모욕하는 것은 ‘당사자로부터 나오는 것’뿐이요,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향하여 말하거나 행하거나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는 윤리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202) 일본인은 실패나 비방, 배척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 따라서 타인을 괴롭히기보다는 너무도 쉽게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많다.
 
(204) 현대 일본인이 자기 자신에게 대하여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 행위는 자살이다. 그들의 신조에 따르면 자살은 만일 적절한 방법으로 행해지면 자신의 오명을 씻고, 죽은 후 평판을 회복하는 구실을 한다.
 
(208) 그들은 국가주의적 목표를 세우고 공격을 내면으로부터 다시 밖으로 향하게 했던 것이다. 외국에 대한 전체주의적 침략 속에서 그들은 다시금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들은 불쾌한 기분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속에 새로이 큰 힘을 느꼈다.
 
(210) 그 필연적 귀결로서 대부분의 일본인은 무엇이든 당신이 하는 대로 내맡기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그 목적으로 가장 안전하게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무엇을 하더라도 안 될 테니 잠시 걸음을 멈추어 형세를 관망하는 것이 제일이다”라는 생각을 갖는 것을 정말 쉬운 일이다. 무기력은 확산되어 간다.
 
(211) 일본인의 영원 불변의 목표는 명예이다. 타인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214) 달과 같이 기리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
 
(215-216) 일본인은 자신이 속해 잇는 세계에서 존경을 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보답이 된다. 그래서 ‘기리를 모르는 인간’은 아직도 ‘비열한 놈’이 된다. 그는 친구들로부터 경멸을 받고 추방된다.
 
 
제9장 인정의 세계
  
(223) 일본인의 생각에 따르면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단식하는 것은 얼마나 ‘단련’이 잘 되어 있는가를 아는 특히 뛰어난 감별법이다. 따뜻함을 멀리하고 수면을 줄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식 또한 고난을 참고, 사무라이와 마찬가지로 ‘(먹지 않았으면서도) 이쑤시개를 입에 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기회이다.
 
(231) 일본인의 철학에서 육체는 악이 아니다. 가능한 육체의 쾌락을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다. 정신과 육체는 우주의 대립하는 2대 세력이 아니다. 그리고 일본인은 이 신조를 논리적으로 밀고 나가 세계는 선과 악의 싸움터가 아니라는 결론으로까지 가져간다.
 
(232) 그들은 인간에게 두 가지 영혼이 있다고 믿고 있는데, 그것은 서로 싸우는 선의 충동과 악의 충동이 아니다. 그것은 ‘온화한’ 영혼(니기타마)과 ‘거친’ 영혼(아라타마)으로, 그들은 모든 인간의 생애에는 ‘온화’해야 할 경우와 ‘거칠어’야 할 경우가 있다고 믿는다. 한쪽의 영혼이 지옥으로, 다른 한쪽이 천국으로 간다고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두 개의 영혼은 모두 저마다 다른 경우에 필요하며 선이 된다.
 
 
제10장 덕의 딜레마
  
(242) 그런데 일본인의 생활에서는 모순?우리에게는 모순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이 그들의 인생관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마치 우리의 획일성이 우리의 인생관에 뿌리 박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43) 각자의 영혼은 원래는 새 칼과 마찬가지로 덕으로 빛난다. 다만, 그것은 갈지 않으면 녹이 슨다. 그들이 곧잘 말하는 ‘자기 자신의 몸에서 나온 녹’은 칼의 녹과 마찬가지로 좋지 않은 것이다. 칼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자신의 인격이 녹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만 설사 녹이 슨다 하더라도 그 녹 밑에는 여전히 빛나는 영혼이 있고 그것을 다시 한 번 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252) “그들은 기리를 위해 아내를 버리고, 자식과 헤어지고, 부모를 잃었다(죽였다).”
 
(254) 그는 죽음으로써 주와 기리를 둘 다 완수하였다. 죽음에서 양자는 일치한 것이다.
 
(255) 서구인은 우선 대개는 인습에 반기를 들고 수많은 장애를 극복하여 행복을 획득하는 것을 강함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인의 견해에 따르면 강자란 개인적 행복을 도외시하고 기무를 완수하는 인간이다. 성격의 강함은 반항함으로써가 아니라 복종함으로써 증명된다고 생각한다.
 
(256) 그들은 주를 지도 위의 단순한 하나의 영역이 아니라 도덕적 아치의 근본 원리로 삼으려 하였다.
 
(262) 의義는 산보다 무겁고 죽음은 새털보다도 가볍다는 것을 기억하라.
 
 (271) 일본어에서 다른 어느 것보다 강하게 말하는 방법은 “자중에 자중을 거듭한다”는 표현으로, 그것은 무한히 조심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결코 경솔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노력도 필요 이하의 노력도 소비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방법과 수단을 강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273) 오히려 반대로 나쁜 행위가 ‘세상 사람들 앞에 드러나지’ 않는 한 고민할 필요가 없으며, 고백은 도리어 스스로 고민을 자초하는 일로 생각되고 있다. 따라서 ‘수치의 문화’에서는 인간에 대해서는 물론, 신에 대해서조차도 고백한다는 습관은 없다. 행운을 기원하는 의식은 있으나 속죄 의식은 없다.
 
(274) 일본인은 치욕감을 원동력으로 하고 있다. 분명히 정해진 선행의 도표에 따를 수 없는 것, 여러 가지 의무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일어날 수 있는 우연을 예견할 수가 없다는 것, 그것이 치욕(하지)이다.
 
 
제11장 자기 수양
 
(281) 그들의 자기 훈련 개념은 능력을 주는 것과 그 이상의 것을 주는 것으로 나눌 수가 있다. ‘그 이상의 것’을 나는 숙달이라 부르기로 한다.
 
(285) 태어난 그대로의 어린아이는 행복하지만 ‘인생을 맛보는’ 능력을 갖지 않고 있다. 정신적 훈련(혹은 자기 훈련, 슈요)을 쌓아야 비로소 사람은 충실한 생활을 하고 인생의 ‘맛을 음미하는’ 능력을 획득한다.
 
(286) 수양은 ‘자기 몸에서 나온 녹’을 갈아 떨구어 내는 것이다. 수양은 사람을 잘 갈아서 예리한 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물론 그가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296-297) “선은 사람이 자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광명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선은 이 추구의 방해가 되는 어떤 것도 용서하지 않는다. 당신 앞의 장애를 모조리 제거하라. (중략) 만일 도중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만일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성자를 만나면 성자를 모조리 죽여라. 그것이야말로 구원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앋.”
 
(300-301) 마지막으로 그의 마음과 고안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보는 나’의 장벽이 제거된다. 전광의 섬광처럼 빨리, 양자-마음과 고안-가 융합한다. 그는 ‘깨달음’을 얻는다.
 
 (304) 그들이 습득하는 것은 무한이 아니고, 유한한 미를 명료하게 방해받지 않고 지각하는 것인데, 혹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꼭 알맞은 정도의 노력을 할 수가 있도록, 수단과 목적을 조화시키는 일이다.
 
(306) 죽은 자는 이제 온恩을 갚는 것이 아니다. 죽은 자는 자유롭다. 따라서 ‘나는 죽은 셈치고 산다’는 표현은 모순 상극으로부터의 궁극적 해방을 의미한다.
 
 
제12장 어린아이는 배운다
  
(330) “아이들은 무엇이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한다. 그러나 점점 자람에 따라, 그들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전부 말할 수는 없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누구에게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고, 또 자기 자랑도 하지 않게 된다.”
  
(350) 아이는 점차로 많은 개인적 만족을 포기할 것을 요구당하는데, 약속되는 보상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고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요, 벌은 ‘세상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어린아이를 훈련하는 데 대부분의 문화가 의지하는 강제력이긴 하지만, 일본에서는 달리 유례가 없을 정도로 중요시된다.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는, 이미 부모가 아이를 밖에 내다 버리겠다고 협박했을 때, 아이들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의 일생을 통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배척되는 것은 폭력보다 무서운 것이다.
  
(357) 우리는 순진하게, 또한 천진난만하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일본인을 미치도록 기쁘게 하는 것인가를 상기해야 한다.
 
(360) 일본적인 의미에서 칼이란 공격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이상적이며 훌륭히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지는 인간의 비유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시대에서 이 덕은 가장 훌륭한 평형의 역할을 한다.
 
(361) 칼은 더욱 자유롭고 더욱 평화로운 세계에서도 그들이 보존할 수 있는 상징인 것이다.
 
 
제13장 패전 후의 일본인
  
(374) 그들의 윤리는 사람은 자기 행위의 결과로 생기는 모든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며, 어떤 과오의 당연한 결과에 의해 그 행위의 잘못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384) 일본의 행동 동기는 기회주의적이다. 일본은 만일 사정이 허락되면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구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무장된 진영으로 조직된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찾게 될 것이다.
 
 
해설 ; 죄의 문화와 수치 문화 ? 이광규
  
(396)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게 예의바르고 착하고 겸손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일본 사람들 속에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396) 일본 사람들 스스로도 자신들은 앞에 내세우는 얼굴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399) 일본은 거기서부터 우리와 달라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일본보다 백년 늦게 같은 유신이라는 말을 썼지만 우리의 토착 신앙을 다 때려부수었고, 한문권에서 이탈하고, 차의 세계에서 이탈한다.
 
(400) 베네딕트는 이것을 기초로 서양 문화는 길트 문화라고 하고 일본, 동양은 셰임 문화라고 했다.
서양 사람들에게 행동의 기준이 되는 것은 ‘양심’이다. ……
그러나 동양 사람들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에, 행동의 기준은 다른 사람의 이목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이중성'이라는 일본 문화의 핵심을 이해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고전으로 추천되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전쟁의 산물이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적국인 일본을 파악해야 했다. 일본인들의 의식과, 그에 따른 행동을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여러 학자들을 동원해 조사에 나섰다.

1944년 전쟁 공보청에 근무하던 미국인 루스 베네딕트(1884~1948)도 연구원 중 한 사람이었다. 전쟁을 하는 동안, 그리고 전쟁 후 그가 지켜본 일본인들의 모습, 서구인들의 관례와 상식으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본인들의 사고와 행위를 ‘국화와 칼’에 담았다.

일본인의 국민성이 형성된 과정과 배경을 밝혀내기 위해 일본 문화를 총체적으로 분석했다. 봉건사회의 위계체계와 메이지 유신의 과정, 가족제도와 육아방식, 조상숭배 의식과 불교 등 일본인들의 사상과 정신에 깊게 뿌리내린 신앙을 훑는다.

은혜와 보은, 의리에 대한 독특한 도덕체계를 지닌 일본인들이었다. 죄와 악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 기독교 문화가 상대적으로 덜 발달된 일본은 죄와 악에 대한 의식이 미약했다. 전쟁의 실패도 잘못된 수단의 문제로 치부할 뿐 결코 악이나 죄의 개념으로 평가하지 않는 이유다.

대신 모든 행위의 판단 기준은 수치심이다. 수치심에 대한 문화적 기제가 발달해 있는 일본사회다. 수치심을 느낄 것 같은 행위만 피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일본인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

 

그러고 보니 일본인은 ‘죄의식’은 없고 ‘수치심’만 있다고 비판했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 대동아 전쟁의 결과에 대한 일본의 사죄는 진정성이 없다고 했던 것 같다. 맞는것 같다. 나는 그들에게서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

한편으로 이것 역시 그들의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 그들은 국가주의적 목표를 세우고 공격을 내면으로부터 다시 밖으로 향하게 했던 것이다. 외국에 대한 전체주의적 침략 속에서 그들은 다시금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들은 불쾌한 기분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속에 새로이 큰 힘을 느꼈다.208 이 같은 그들의 속성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전략이고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일본만의 특성으로 규정 지은 여러 문화적 특성이, 사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적 특성임을 느낄 때 아쉬웠다.

저자가 단순히 일본만을 향한 시선이 아닌 좀 더 폭넓은 시선으로 바라 보았더라면, 아름답고 숭고한 동양에 대해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저자는 심미적이면서도 동시에 칼의 냉혹함을 숭배하는 일본인, 공격적이면서도 수동적이고, 무례하면서도 공손하고, 충성스러움을 중요시 여기면서도 동시에 간악한 일본인들의 본성을 파헤친다. ‘손에는 아름다운 국화, 허리에는 차가운 칼을 찬 일본인’으로 결론짓는데, 이러한 양면적인 ‘모순’과 ‘이중성’을 국화와 칼 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드러내므로 독자의 시선을 잡고 호기심을 유발했다.

 

그러나 과연 한 나라를 ‘문화의 틀’로 정의 내릴 수 있을까? 그러기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점이 많았고 어려웠다. 한국만의 고유한 문화가 있고 민족성이 있을 것이다. 한국이 한국인의 나라 다운 것, 한국이 철저히 한국다운 것이 무엇일지 연구하고 만들어 내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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