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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9일 11시 38분 등록
 

국화와 칼

루스 베니딕트 지음 / 김승호 옮김, 책만드는집



I. 저자에 대하여 :


루스 베니딕트(Ruth Benedict, 1887 - 1948)

188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베니딕트는 1905년 미국의 명문 여자대학인 바사대학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했다. 졸업한 후 여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시인으로서도 활동했다.

1919년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 입학하여 인류학을 배우기 시작한 그녀는 이후 컬럼비아대학에 입학, 프란츠 보아즈 교수의 지도 아래 본격적으로 인류학 공부에 매진했다. 1923년에 <북아메리카 수호 신령의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컬럼비아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1943년 미국 전시정보국 해외정보부에 부임하게 된 베니딕트는 1944년에 『국화와 칼』을 출간했다. 단 한 차례의 일본 방문 없이 이루어진 이 연구는 학문적 연구에서 그 대상을 직접 목격하거나 체험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더 엄밀한 검토를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일본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저서로는 『문화의 유형 Pattern of Culture』(1943)과 『종족 Race : Science and Politics)(1940)등이 있다.


II.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제1장 연구과제 : 일본


  그러나 이러한 모든 모순이 일본에 관한 책에서는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다. 앞서 말한 것은 모두 사실이다. 칼도 국화도 하나의 그림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 일본인은 싸움을 아주 좋아하면서도 유순하고, 군국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이며, 무례하면서도 예의바르고, 고집불통이면서도 융통성이 있으며, 외부에 순종적이면서도 그 자신이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에는 분개한다. 또한 충직하면서도 반항적이고, 용감하면서도 겁이 많으며,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면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무척 신경을 쓰면서도, 한편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보지 않을 때는 쉽사리 범뵈의 유혹에 이끌린다. 그리고 군인들은 철저히 훈련되어 있지만 명력을 거역하기도 한다. 13p


제2장 전쟁 중의 일본인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일본인은 타고난 자신의 입장을 굳건히 지켜갈 것이다. 그러한 태도 중 특히 중요한 것은 바로 계층 제도에 대한 신앙과 신뢰다. 평등을 사랑하는 우리 미국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지만, 계층 제도를 통해 일본이 의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 제도에 어떠한 장점이 있다고 보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34p


  그들의 전쟁 지침서에서는 “숫자에는 훈련으로 대응하며, 강철에는 육탄으로 부딪쳐라”라는 표어가 실렸다. 36p


  1870년대의 무사 아이고 다카모리의 유언 인용

  “기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우련히 찾아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힘든 고난의 시기에는 우리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41p


  항복의 치욕스러움은 일본인의 의식 깊은 곳에 새겨져 있다. 그들은 우리의 전시 관례와는 판이한 행동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동은 그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미국인 포로로부터 자신의 이름을 본국 정부에 알려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가족에게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는 너무나 기가 막힌 나머지 충격을 받았다고 일본인들은 말했다. 바탄 반도에서 미군이 항복했던 것도 최소한 일반 사병에게는 의외의 일이었다. 그들은 미군이 일본처럼 최후까지 싸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미국인이 포로가 되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55p


제3장 제자리 찾기


  일본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수수께끼가 있는데 그것을 우리나라 식으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부모에게 의견을 말하고 싶어하는 아들은 머리털을 자르고 싶어하는 승려와 같다. 이말의 속뜻은?” 정답은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다. 67p


  유럽에서 봉건제도가 붕괴된 것은 점점 발달하여 우세 세력이 된 중산 계급의 압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계급이 근대의 산업 시대를 지배했다. 일본에서는 그와 같은 강대한 중산계급이 발생하지 않았다. 상인이나 고리대금업자들은 공인된 방법을 통해 상류 계급의 신분을 ‘샀다’. 상인과 하층 무사는 동맹자가 되었다. 유럽과 일본에서 봉건제도가 임종의 고통을 겪고 있을 시기에, 일본이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보다도 유연하게 계급 간 이동을 승인했다는 것은 기묘하고 놀라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무엇보다도 유력한 증거는 귀족과 시민 간에 계급투쟁이 일어난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89p


제4장 메이지유신


  일본인은 오랫동안 복종의 관습에 크게 의지해왔다. 이 관습은 과거의 경험 속에서 만들어졌으며 그 윤리 체계와 예식 속에 형식화된 것이다. 국가는 ‘각하’들이 ‘제자리’에서 직분을 다하면 반드시 그들의 특권이 존중되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것은 해당 정책이 승인되기 때문이 아니라 일본에서는 특권의 경계선을 넘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102p


  다른 대다수의 나라에서 군대는 현상을 유지하는 강력한 힘으로서 기능 하는 것에 비해 일본 군대는 소농 계급에 동정을 일으켜 군대가 대금융 자본가나 생산 자본가들에 대한 항의를 일으키는 일도 다수 있었던 것이다. 108p


  일본인은 항상 계층 제도를 고려하면서 그들의 세계 질서를 다녀나간다. 가정이나 개인 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연령, 세대, 성별, 계급이 그 알맞은 행동을 결정한다. 정치나 종교나 군대, 산업에 있어서는 각각의 영역이 세밀하게 계층으로 나뉘어 있어서 윗사람도 아랫사람도 자신의 특권을 범위를 벗어나면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 ‘제자리’가 유지되는 한 일본인은 불만 없이 살아갈 수 있다. 또 안전하다고 느낀다. 물론 그들 자신의 최대 행복이 보호되는가 하는 의미에서는 ‘안전’하지 않은 경우도 간혹 있다. 그래서 역시 계급제도를 정당한 것으로 수용해왔다는 이유에서는 ‘안전’하다. 이것은 평등과 자유에 대한 신뢰가 미국인의 생활양식의 특징인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인의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의 특징을 이룬다. 113p


제5장 과거와 세상에 빚진 사람


  동양인의 어떤 모습에 대해 서양인이 조상 숭배라고 이름 붙이고 있는 대부분이 실은 숭배가 아니며, 또한 그것이 오히려 조상에게만 향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모든 과거에 대해 커다란 빚을 짊어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의식이다. 115p


  온은 최고이자 최대의 부채로 ‘천왕에게 입은 온’에서 쓰일 때는 언제나 무한한 헌신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것은 천왕에 대한 빚을 지는 것으로, 사람은 천황에게서 주어지는 온을 무한한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야 한다. 이 나라에 태어나 이렇게 편안하게 생활하며 주변의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할 때, 일본인은 항상 이것은 모두 한 분으로부터 받은 은헤라고 느낀다. 일본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일본인이 빚을 지고 있다고 느끼는 살아 있는 한 사람은 그가 속해 있는 세계의 가장 윗사람이었다. 그것은 시대가 변할 때마다 지방 영주, 봉건영주, 쇼군 등으로 바뀌어왔다. 오늘날에는 천황이다. 118-119p


  일본인은 선생이나 주인에 대해서도 특수한 온을 느낀다. 이들은 모두 무사히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그들이 곤란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부탁이라도 하면 그 부탁을 들어주어야 하고, 그들의 사후에라도 그 남겨진 자녀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아주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해야 하며, 시간의 경과가 부채를 줄어들게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흐르는 세월과 함게 줄어들기는커녕 도리어 불어간다. 소위 이자가 쌓이는 것이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온을 입는다는 것은 중대한 일이다. 일본인이 자주 쓰는 말 중에 “사람은 도저히 온의 만분의 일도 갚을 수 없다”라는 표현이 있다. 엄청나게 무거운 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온의 힘’은 항상 단순한 개인적인 취향 정도는 뭉개버릴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121p


  비교적 먼 관계의 사람에게서 본의 아니게 온을 입게 되는 것을 일본인은 가장 불쾌하게 여긴다. 이웃과의 교제나 오래전부터 정해진 계층적 관계에서라면 일본인은 온을 입은 번거로움을 이미 인정하고 있으며, 또한 기꺼이 그 수고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상대가 그저 면식이 있는 정도의 사람이거나 자신과 거의 대등한 관계의 사람인 경우에는 석연치 않게 생각한다. 그들은 되도록 온의 여러 결과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122p


제6장 만분의 일 은혜 갚기


  그들은 귀국하고 나서 천황은 “신성하여 침범할 수 없는” 존재며 각료의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취지의 조항을 헌법에 넣었다. 천황은 책임 있는 국가원수로서가 아니라 일본 국민을 단결시키는 최고 상징으로서 쓸모가 있었다. 사실 천황은 거의 700여 년간 실권을 쥔 통치자로서의 기능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까지처럼 천황을 무대 뒤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단지 메이지의 정치가들이 해결해야만 했던 하나의 과제는 모든 일본인으로 하여금 이 무조건적인 최고의 덕 주를 천황에게 바치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147p


  그들은 천황이 “국민에게 마음을 쓰고 계신다”라는 것을 알자 황송함에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폐하의 마음을 편안히 해드리기 위해” 헌신했다. 일본 문화와 같이 완전히 개인적인 유대 위에 입각한 문화에서 천황은 국기를 뛰어넘는 충성의 상징이었다. 실습 중인 교사가 인간 최고의 의무를 애국이라고 했다면 그는 낙제였다. 천황에 대한 보은이라고 해야만 했다. 151p


  하지만 일본은 서양이 아니다. 일본은 서양 여러 나라의 최후의 보루인 혁명을 이용하지 않았다. 일본은 또한 적국의 점령군에 대해 불복종하는 반대 운동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들은 일본 고유의 강점, 즉 아직 전투력이 분쇄되지 않았음에도 무조건 항복을 승낙하다는 엄청난 대가를 주로 받아들여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능력을 이용한 것이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분명 엄청난 대가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대신에 그들은 무엇보다 높이 평가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즉, 일본인은 항복의 명력이라 해도 그 명령을 내린 것은 천황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것이다. 패전에 있어서도 최고의 법은 여전히 주였다. 154-155p


제7장 기리만큼 괴로운 것은 없다


  기리의 규칙은 엄밀히 말하자면 어떻게든 갚아야 하는 변제의 규칙이다. 그것은 모세의 십계명과 같은 도덕적 규칙은 아니다. 기리로 강요받았을 때에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정의감을 무시해야 할 수도 있다. 일본인은 때로 “나는 기리 때문에 기義를 행할 수가 없다”라고 한다. 또한 기리의 규칙은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일본인은 사람이 진심에서 우러나와 자발적으로 관대한 행위를 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라밍 기리를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로부터 기리도 모르는 인간’으로 불리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리에 꼭 따라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평판이 두렵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에 대한 기리’는 가끔 영어로는 ”여론에 따르는 것“이 라고 변역되기도 한다. 사전에는 ”세상에 대한 기리니까 어쩔 수 없다“가 ”세인들은 이 방법 외에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번역되어 있다. 164-165p


  ‘기리에 몰린’ 사람은 때때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지는 부채의 변제를 강요받게 된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한 상인에게 자신이 그 상인이 어릴 때 배웠던 스승의 조카라는 이유로도 원조를 요청할 수 있다. 젊은 시절 학생은 선생님에게 기리를 갚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경과한 세월 속에서 부채는 점점 불어난 것이다. 그리고 상인은 그 빚을 '세상에 대한 해명에 앞서 마지못해‘ 갚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168p


제8장 오명 씻기


  체면을 중시하는 일본인에게 요구되는 금욕주의의 자기 절제도 이름에 대한 기리의 일부분이다. 여자는 분만할 때 큰 소리를 내서는 안 되며 남자는 고통이나 위험에 초연해야 한다. 마을에 홍수가 날 경우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각자가 챙겨야 할 필요한 물품만을 가지고 높은 지대로 이동한다. 거기에는 절규도 혼란도 공황도 없다. 추분 무렵 비바람이 맹렬한 태풍이 되어 덮칠 때에도 마찬가지로 절제된 모습을 보인다. 그러한 태도는 가령 그것을 완전히 실현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일본인 각자가 지닌 자존심의 일부를 이룬다. 172p


  일본인은 항상 어떤 교묘한 방법을 궁리하며 직접적 경쟁을 될 수 있는 한 피해왔다. 이를테면 일본의 초등학교에서는 미국인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을 최소한으로 억제해왔다. 일본의 교사들은 아이들 각자가 자신의 성적을 향상시키도록 가르쳐야 하지만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지시를 받고 있다. 또한 학생을 낙제시켜서 같은 학년을 다시 다니도록 하는 일도 없다. 함께 입학한 아이들은 초등교육 전 과정을 함께 밟으며 함께 졸업하도록 되어 있다. 성적표에 기재된 석차는 품행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 학업에 따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중학교 입학 시험처럼 경쟁을 피할 수 없을 때의 아이들의 긴장이란 대단한 것이다. 교사들은 대부분 불합격 소식에 자실을 시도한 아이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180p


  일본인 중세서 박애심이 뛰어난 사람으로 꼽히는 니토베 이나조는 1900년에 저술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복수에는 무엇인가 우리의 정의감을 만족시켜주는 것이 있다. 우리가 가진 복수의 관념에는 수학적 능력과 같은 엄밀함이 있어서 방정식의 양변이 만족되지 않는 한 무엇인가 못다 한 일이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187p


  일본인은 실수나 비방, 배척에 상처를 잘 받는다. 그래서 타인을 괴롭히기보다 너무 쉽게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일본 소설은 교양 있는 일본인이 자주 자신을 망각하고 분노를 터뜨리는가하면, 반대로 극단적인 우울증에 빠지는 모습을 되풀이하며 묘사해왔다. 191p


  일본인의 변치 않는 목표는 명예다. 타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은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선택되며 일이 끝난 후에는 버려지기도 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사태가 변하면 일본인은 태도를 바꾸어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일본인은 태도를 바꾸는 것을 서양인과 같이 도덕 문제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198p


  기리는 항상 침략 행위의 행사나 존중 관계의 준수를 동시에 의미하는 것이었다. 전쟁에 패했을 때 일본인은 스스로에게 심리적 폭력을 휘두르는 의식을 전혀 가지지 않고 침략 행위에서 존중 관계로 옮겨 갔다. 목표는 지금도 여전히 명예를 획득하는 것이다. 200p


제9장 인정의 세계


  일본인의 사고방식에서 보면 식욕을 절제하여 단식을 하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단련’ 되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감별법이다. 210p


  최근 어떤 잡지에서 한 일본인이 말한 것처럼 이 나라에서는 “결혼의 진정한 목적이 아이를 낳아 집안을 존속시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외의 목적은 무엇이든 단지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시킬 뿐이다.” 213p


  주忠나 고孝, 기리義理의 의무를 다함에 있어서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는 굉장한 고통은 그들이 처음부터 각오한 것이다. 그것은 인생을 힘들게 하지만, 그들은 그 어려움을 견뎌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항상 그들이 생각하기에 조금도 나쁘지 않는 쾌락을 단념한다. 그것에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지만, 그러한 강함이야말로 일본인이 칭송하는 미덕이다. 221p


제10장 덕의 딜레마


  일본인의 인생관은 앞서 쓴 주忠, 고孝, 기리義理, 진仁, 인정人情 등의 표현을 통해 제시된 바와 같다. 그들은 ‘인간의 의무 전체’가 마치 지도 위의 여러 지역처럼 명확히 구별된 몇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인생은 ‘주의 세계’, ‘고의 세계’, ‘기리의 세계’, ‘진의 세계’, ‘인정의 세계’, 그리고 다른 많은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각각의 세계는 특유의 세밀히 규정된 규칙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은 타인을 총체적인 인격의 소유자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고를 모른다’거나 ‘기리를 모른다’는 식으로 판단한다. 그들은 미국인처럼 어떤 사람이 옳지 못하다는 식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다하지 못한 행동의 세계를 확실하게 제시한다. 또 어떤 사람이 이기적이라거나 불친절하다고 비난하는 대신, 그가 어긴 규칙의 영역을 명시한다. 그들이 정언적 명령이나 황금률에 호소하는 일은 없다.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은 그 행동이 나타나는 세게와 관련이 있다. 사람이 ‘고를 위해’ 행동을 할 때, 또는 ‘단지 기리 때문에’ 아니면 ‘진의 세계에서’ 행동을 할 때 각각 전혀 다른 사람인 듯 - 서양인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 행동을 한다. 더욱이 각각의 세계에서 규칙은 그 ‘세계’ 속에서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눈에 뛰게 다른 행동을 당연히 해야 할 행위로서 요구하고 있다. 주군에 대한 기리는 주군이 신하를 모욕하기 이전까지는 가장 큰 충성을 요구하지만, 일단 모욕을 당한 후에는 모반을 일으켜도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1945년 8월까지 주는 일본 국민에게 최후의 한 사람까지 적에게 항전할 것을 요구했다. 천황이 라디오를 통해 일본의 항복을 알렸을 때 주의 요구 내용은 변경되었으며, 동시에 일본인은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외부인에게 적극적으로 협력을 자청하기 시작했다. 224-225p


  우리가 자주 말하는 것처럼 ‘덕이 승리하는’ 이야기는 해피 앤딩으로 끝나야 하며 착한 사람은 그 대가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인은 양립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부채와 이름에 대한 부채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주인공이 결국 해결책으로 죽음을 택한다는 식의 ‘엄청난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선호한다. 229p


  일본인이 자신들의 도덕률에 어떠한 수정을 가하고자 노력했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원자론적인 것이다. 덕의 원리는 전과 다름없이 그 자체가 선인 행동과 또한 자체가 절대적 선인 다른 어떤 행동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251p


  일본인은 수치심을 원동력으로 하고 있다. 제시된 선행의 푯말을 따르지 못하고 또 여러 가지의무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지 못하고 일어날 모든 우연을 예견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수치다. 수치심은 덕의 근본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쉽게 수치를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선행의 모든 규율을 실행하는 사람이다. “수치를 아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어떤 경우에는 “유덕한 사람”. 때로는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257p


  일본인의 생활에서 수치심이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수치심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부족이나 국민이 그렇듯이 각자가 자기 해동에 대한 사람들의 평판에 신경을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257p


제11장 자기 수양


  이런 신조를 표명하는 일본인의 가장 극단적인, 적어도 서양인의 귀에는 그렇게 들리는, 표현은 “죽은 셈치고”라는 것이다. 그들은 죽었다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가장 높게 평가한다. 이를 문자 그대로 서양의 언어로 표현하면 ‘산송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양 어디에서도 ‘산송장’이란 표현은 좋은 느낌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이 표현을, 어떤 인간의 자아가 죽어서 지상에서는 그저 쓰레기처럼 남아 있을 뿐인 그의 육체에 더는 머무르지 않는 상태를 가리켜 사용한다. 이제 그의 안에는 생명력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일본인은 그런 “죽은 셈치고 살아간다”라는 표현을 ‘숙련’의 경지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누군가를 격려할 때에도 아주 흔하게 사용된다. 286p


  곧잘 “나는 죽은 셈 치고 천황의 은헤에 보답할 각오로 살겠다”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이 말은 출정 전에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거나, 자신이 “이오지마의 흙이 되겠다”라고 맹세하거나, “버마의 꽃과 함께 지리라”라고 각오를 하는 모든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무가의 저변에 깔린 철학이 바로 이 ‘죽은 셈 치고 살아가는’ 태도의 밑에도 숨어 있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은 모든 자기 감시와 모든 공포심과 경계심을 함께 버린다. 그는 죽은 사람, 즉 이제 올바른 행동 방침 때문에 고민할 필요를 넘어선 존재가 되는 것이다. 287p


제12장 어린이는 배운다


  스기모토라는 한 일본 여성은 자신이 경험한 무사 가정의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철이 들고 나서부터 나는 밤에 잘 때 작은 목침 위에 조용히 눕도록 해를 썼다. (중략) 무사의 딸은 어떤 경우에도, 가령 잠을 자고 있을 때도 심신을 흐트러뜨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침을 받는다. 남자 아이는 큰 대 자로 팔다리를 뻗고 자도 전혀 상관없지만 여자 아이는 조심스럽고 품위 있게 약간 구부린 자세로 자야 한다. 그것은 ‘자제력의 정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나는 일본 부인들로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 그녀들의 어머니나 유모가 그들의 손발을 가지런히 놓도록 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307p


  근대 일본의 중학교나 군대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상황이 위와 같은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은 조소나 모욕에 관한 일본의 오랜 습관에서 기인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중학교나 그보다 상위 학교, 또는 군대가 위에서 예로 들었던 여러 상황에 대한 일본인의 반응을 처음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 이름에 대한 기리라는 전통적인 규칙이, 아랫사람을 괴롭히는 습관을 미국에서보다 훨씬 잔인한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선배에게 괴롭힘을 당한 집단이 곧 순서에 따라 다음 피해자 집단에 고통을 가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롭힘을 당한 소년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을 실제로 괴롭힌 당사자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전념하는 것은 또한 옛날부터의 틀에 일치하고 있다. 울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은 서양의 많은 나라에서 계속해서 거듭되어온 풍습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폴란드에서는 자신이 선배에게 당한 것을 갓 들어온 제자나 젊은 일꾼에게 되갚는다. 물론 일본의 소년도 이런 식으로 분풀이를 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사자에게 직접 복수하는 것이다. 괴롭힘을 당한 사람은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에게 복수를 끝냈을 때에야 ‘속이 시원하다’고 느낀다. 318-319p


  일본의 교육이나 여론도 모두 혼전 남녀 간의 친밀한 관계를 막고자 노력하고 있다. 일본의 영화를 보아도 그들은 젊은 여성에게 허물없이 대하는 청년을 ‘불량’ 청년으로 보며, 사랑스러운 소녀에게,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냉담하다 못해 오히려 실례가 될 정도의 태도를 취하는 청년을 ‘좋은’ 청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324p


  영어권에서는 ‘자기희생’이라고 불리는, 그다지 극단적이지 않은 몇몇 행위도 일본어에서는 오히려 자중의 범주에 속한다. 자중은 늘 자제를 의미하며, 자제는 자중과 마찬가지로 아주 소중한 것이다. 큰일이란 자제함으로써만 당성할 수 있는 법이다. 미국인은 목적 달성의 필요조건으로서 자유를 강조했지만 생활 체험이 달랐던 일본인은 그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그들은 자제를 통해 자아를 한층 더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사고를 그들 도덕률의 주요한 신조의 하나로 인정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무거운 속박에서 뛰쳐나와 올바른 생활의 터를 무너뜨릴지 모를 갖가지 충동을 안고 있는 위험천만한 자아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단 말인가?  332p


제13장 패전 후의 일본인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어버지와의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이러한 태도는 일본 사회의 모든 면에 통하는 틀이 된다. 자신의 계층적 지위로 인해 최고의 경의를 받는 사람조차 스스로 원하는 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일은 없으며, 계층 제도의 으뜸을 차지하는 관리가 실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의 독특함이다. 345p


  일본이 평화 국가로 재건되는 데 이용 가능한 일본의 진정한 강점은, 하나의 행동 방침에 대해 “그것은 실패로 끝났다”라고 한 후에는 바로 다른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이다. 일본의 윤리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대안적 윤리다. 그들은 전쟁으로 ‘제자리’를 얻고자 했다. 그러나 패했다. 지금의 그들로서는 그 방침을 버릴 수 있다. 왜냐하면 이때까지 받아온 모든 훈련이 그들을 방향 전환이 가능한 인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349p


  일본인의 사전에 따르면 한 개인 또는 국가가 다른 개인이나 국가에 굴욕감을 주는 것은 비방과 조소, 모욕, 경멸, 불명예라는 징표를 강요할 때라고 한다. 일본인이 모욕을 받았다고 느꼈을 때에는 복수가 덕이 된다. 352p


  (1946년) 현재, 일본인은 군국주의를 실패로 끝난 광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군국주의는 과연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도 실패했는가를 알기 위해 타국의 움직임을 주시할 것이다. 만약 실패하지 않은 나라가 있다고 하면 일본은 스스로 호전적인 열정을 다시금 불태워 일본이 전쟁에서 얼마나 크게 공헌할 수 있는가를 보여줄 것이다. 만약 다른 나라들에서도 실패했다고 한다면 일본은 제국주의적인 침략기도가 결코 명예에 도달하는 길이 아니라는 교훈을 얼마나 철저하게 익혔는가를 증명할 것이다. 362p



III. 내가 저자라면


  멀고도 먼 나라

  우리에게는 가깝고도 먼 나라가 일본이다. 미국인들에게는 아마도 멀고도 먼 나라가 아닐까? 살아오면서 그래도 많이 만나본 외국인이 일본 사람들이다. 어떤 분은 지금도 자주 만난다. 중학교 때 친구 녀석은 일본 아이들과 펜팔을 꽤 오랫동안 이어갔었다. 그중 한명은 나도 봤고 몸짓 발짓으로 이야기도 나눠봤다. 회사 일로 가장 많이 가본 나라가 일본이다. 그들과 일을 할 때면 참 치밀하다는 생각을 하고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이 책이 쓰여 지고 40년이 넘은 이야기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쓰이는 언어가 다르면 더더욱 힘들어지게 마련이다. 특히 학습 환경은 다름의 폭을 더욱더 크게 넓혀 놓는다. 흔히 서양의 문화를 합리적이라고 하지만 합리적이라는 것이 그들이 만들어낸 언어이기 때문에 나타났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합리적이지 않은 것은 그들과 다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화는 합리적이고 비합리적일 수 없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미국사람들이 보는 일본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임에 틀림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얼마나 많은 문헌을 치밀하게 연구했을까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저자가 일본을 연구하면서 그 나라를 한 번도 가보지 않고 오직 문헌과 몇몇 사람에 의존해서 저술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기리義理’를 풀어가는 과정이 흥미로 왔다. 우리나라에서 재미삼아 하는 ‘고스톱’을 하면서도 ‘기리’라는 것을 한다. 아마도 이것과 같은 의미일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속임수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상대편에게도 기회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의리’는 공평해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되지 않는다. 저자는 일본을 이야기하지만 동양적인 것에 대한 언급을 중국의 예와 섞어가며 들고 있다. 아무래도 시대적 상황이 ‘코리아’라는 작은 나라에까지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의리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의 쓰임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특히 일본의 경우 더욱더 다름의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천황에 대한 생각

  천황은 일본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책을 읽으면서 일본에서 천황이란 존재가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란 생각을 해봤다. 각기 다른 사람들 속에 천황은 절대적인 모습으로 그들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현실로 들어났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아마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천황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것 같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마치 광신도 집단의 그것처럼 그들의 생각은 천황을 말을 따르는 것이 전부였다. 모든 것이 천황으로부터 온 것이고 살아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마치 우리나라 조선시대 주군을 모시던 충직한 신하의 모습이 아닌가? 그러나 이것으로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변절과 그때그때마다 상황이 다 달랐지만 일본은 소름 돋는 것으로는 모자랄 만큼 획일적이었다.


  현대의 일본

  이 책은 발간 된지 60년이 넘은 책이다. 한 나라를 이해하면서 그 나라의 역사와 민족성에 대한 것은 큰 가치가 있다. 그들의 과거를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것은 일본사람들은 자신이 맞은 임무에 대해 매우 충실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덕분에 한 사람이 많은 것을 하지 않는 듯 했다. 주어진 일에 기초를 닦는데 걸리는 시간을 매우 중요시 한다. 그들은 입사 5년까지는 신입사원으로 간주한다. 10년은 되어야 회사에서 어느 정도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한다. 미국의 한 직장 평균 근속연수는 3년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이 책을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말하는 ‘온의 힘’이다. 그들은 자신을 선택해준 사람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평생을 두고 갚아야 할 부채다. 이러한 문화는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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