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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5일 09시 40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하워드 가드너 (Hward Gardner, 1943 - )

미국 펜실베니아 태생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발달심리학과 신경심리학을 공부했다.

하버드 대학(교육대학원) 교수인 그는 1983년 기존의 IQ이론을 반박하면서 인간에게는 한 가지의 지능이 아니라 언어, 논리, 수학, 음악, 대인관계 등 8가지 지능이 있다고 주창해 교육학계에 일대적인 혁신을 불러일으킨 다중지능(다중지능 Multiple Inteligence)이론의 창시자다.


가드너는 28세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당시 그의 관심은 온통 뇌에 쏠려 있었다. 인간의 능력이 뇌로부터 출발하는데 정작 우리는 뇌에 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다며 영재와 두뇌 손상 환자를 함께 연구하여 처음으로 주목받은 저작 <부서진 마음, The Shattered Mind, 1975>을 내놓는다. 


이런 관심을 확산시켜 그는 인간의 두뇌 속에 내재한 잠재능력에 대하여 과감한 상상을 펼친다. 그의 기념비적 저작인 <마음의 틀, Frames df Minds, 1983>에 담긴 다중지능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그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8가지 지능, 즉 신체운동지능, 인간친화지능, 자기성찰지능, 언어지능, 논리수학지능, 음악지능, 공간지능, 자연친화지능 등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지능마다 엄청난 개인차가 존재한다. 그는 다중지능 이론을 바탕으로, 예술과 과학 분야의 창의성과 리더십에 대하여 많은 책을 썼다. <열정과 기질, Creating Minds, 1993>,<비범성의 발견, Extraordinary Minds, 1997>이 대표적이다. 또 다중지능 이론의 관점에서 경영과 정치 분야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많은 책을 썼는데 <통찰과 포용, Leading Minds, 1995>, <체인징 마인드, Changing Minds, 2004>, <미래를 위한 5가지 마인드, Minds for the Future, 2006> 등이 있다.


그는 창조성이 개인 내부의 특성이나 소질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전통적인 특성론의 관점을 거부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내부에 어떤 분야의 대가가 될만한 소질을 싹으로서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그냥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건 아니다. 우선 그런 소질을 심화하고 강화시킬 수 있는 적절한 일의 체험 기회(실습이나 연습, 훈련, 교육)를 필수적으로 가져야 한다. 아울러 이런 체험의 과정 또는 그 이후에 타인들(가족이나 친구, 경쟁자, 후원자)과 의미있는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는 리더십에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는데 “리더십은 인간을 다루는 통솔력이나 신비로운 카리스마가 아니다. 리더십이란 다른 사람의 사고, 감정, 행동에 의미심장한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리더십은 있다. 다만 그 영향력의 크기가 문제다. 어느 작은 중소기업 사장의 리더십이 있는가 하면, 간디와 같이 수억의 인도 민중을 휘어잡는 리더십이 있을 수 있다.”


그는 현재 인간의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의 발달과정을 근본적으로 파헤치며 인간의 잠재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하버드 대학의 야심찬 계획인 ‘프로젝트 제로(Project Zero) 연구소’의 책임자이자 운영위원장으로서 지능과 창조성, 교육방법론, 두뇌개발에 관한 획기적인 연구 성과와 함께 인간의 창조적 기질에 관한 일관된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가드너는 1990년대 후반 이래 창의성과 리더십 분야에서 ‘몰입’을 이야기하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와 ‘EQ(감성지능)’를 이야기하는 대니얼 골먼과 더불어 가장 인기있는 강연자 중 한 명이다. 또 실용주의 철학자이자 교육운동가였던 존 듀이 이후 최고의 교육학 이론가로 손꼽히며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에는 맥아더 펠로우십을, 1990년에는 미 교육분야에서는 처음으로 그라베마이어상을, 2000년에는 구겐하임 펠로우십을 수상했고, 2005년에는 포린폴리시지 ‘세계 100대 지성’에 선정되었으며, 2008년에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세계 경영 대가 20인 가운데 5위를 차지할 정도로 경영계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 20여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이 책은 다중지능론을 주창했던 저자가 실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창조의 비밀을 역동적으로 풀어내 교양서이다. 다중지능이라는 정신능력의 이론체계를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깊고, 창조성과 관련된 실제 개인들의 심리적, 사회적, 시대적 조건 모두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넓으며, 영역이 서로 상이한 창조적 거장들을 일곱 명이나 한꺼번에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방대하다. (6)


창조성 소재 모형, 이 모형에 따르면 개인은 내부에 어떤 분야의 대가(大家, master)가 될 만한 소질을 싹으로서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것만으로는 창조성이 발휘되는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우선 그러한 소질을 심화하고 강화시킬 수 있는 적절한 일의 체험 기회(교육, 훈련 등)를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며, 이러한 체험의 과정에서 타인(가족, 친구, 경쟁자, 후원자 등)으로부터 격려와 지원을 받는 의미있는 인간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7)


그는 창조성을 단일능력으로 보는 입장에 반대한다.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창조성이 존재한다고 보지 않고, 창조성에도 종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가드너가 보기에 한 개인 속에 잠재한 창조성의 본질은 지능적 요소와 기질적 요소의 특이한 조합이었다. (8)


‘10년 주기론’ 대체로 10년간의 준비를 거쳐 창조성이 성숙하고, 10년간의 창조성을 발휘하며, 다음 10년간 그 창조성을 다시 다른 분야로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9)


나는 내가 읽고 싶어 하는 스타일의 책을 쓰고자 했다는 점을 밝혀둔다. 전문용어는 되도록 쓰지 않고, 꼭 필요한 시각 자료만을 제시했다. 다루는 주제는 복잡하지만 간단명료하게 쓰고자 했다. 복잡한 주제를 쉽게 다루기 위해 중간 중간에 서술 내용을 요약해 정리했으며, 나름대로 신중하게 고른 곳에 세 개의 짤막한 해설(간주곡, interlude)을 삽입했다. 그리고 누군가 내 생각을 도용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 책의 첫 부분에 내 이론의 요지와 중요한 결론을 기술했다. (19)


제1부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1. 취리히에서 우연한 만남

모든 창조적인 행위는 우선 한 개인과 객관적인 작업 세계의 관계에서 생겨나고, 그 다음 두 번째로 그 개인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서 성숙한다는 점이다. (40)


일찍이 눈부신 솜씨를 발휘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불후의 업적을 남기게 된 '신동'에 대한 훌륭한 연구대상이다. (42)


간디는 그가 몸소 관여해서 폭넓게 검토하고 세심하게 실험하면서 인간의 갈등을 폭력 없이 해결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45)


좀더 인상적인 사실은 몸소 용기 있는 행동을 실천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에게 행동의 귀감이 되었다는 점이다. (46)


이들은 저마다 우수한 지능이 서로 달랐고, 각자의 창조적인 도약 역시 특정 지능의 우수함을 요구하는 해당 분야의 상징과 이미지 및 조작 방식을 정교하게 활용한 성과물이다. (48)


중요한 창조자들은 공통의 역사적 힘과 사건에 노출되었을 뿐 아니라 서로의 활동 내용을 잘 알고 있었고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 받았다. 이들 각자의 노력을 독립적으로 연구하는 것도 그 자체로 의미있는 작업이지만, 특히 현대라는 시대를 공동으로 창조한 이들의 삶에서 비슷한 사건들과 통찰을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의 업적을 연구하면 더욱 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55)


2. 창조성의 연구 방법

창조적인 인물은 유년기의 통찰과 감정, 그리고 경험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면에서 두드러진 모습을 보인다.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거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경우에는 유년기야말로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 실상 창조적인 인물이란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에 품었던 수많은 의문점과 문제의식, 그리고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섬세한 감수성을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가장 선진적인 이해 방식과 '결혼'시키는 참으로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다. (78)


창조적인 도약을 이룬 인물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탐구자이며 혁신가이고 사색가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다수를 따르는 데만 만족하지 않으며, 선택한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80)


반복해서 드러나는 발달상의 특징을 요약하겠다. (1)세상의 일반적인 원리와 (사례마다 다른) 특별한 문제에 대한 유년 시절의 관심, (2)처음 흥미를 느낀 문제를 탐구하다가 이 흥미를 이어받아 특정 분야를 마스터하겠다고 결심, (3)선택한 분야에 정통한 후에 모순적인 요소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요소를 창조, (4)창조자가 신기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단계적(program)으로 탐구해가는 방식, (5)고립의 시기에 주변 사람들이 행하는 격려와 지지 역할 혹은 방해 역할, (6)서서히 상징체계와 언어 혹은 표현 방식을 만들어 가는 모습, (7)관련 비평가들의 첫 반응과 오랜 기간에 걸쳐 이 반응이 변화하는 모습, (8)보통의 중년의 시기에 이뤄내는 좀더 포괄적인 성격의 두 번째 혁신(및 이와 관련된 사건들) (82)


창조적인 인물이란 어떤 분야에서 처음에는 창심하게만 여겨지지만 종국적으로는 특정한 문화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고 작품을 창조하고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을 말한다. (83)


창조적인 인물은 끊임없이 창조성을 추구하며 지속적으로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조정한다. (84)


각각의 창조자들이 모종의 거래나 계약, 다시 말해서 파우스트적인 협정을 맺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들은 이 협정을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오랫동안 발휘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겼다. 대체로 창조자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특히 원만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 (94)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3. 지그문트 프로이트 - 세상에 홀로 맞선 사람

프로이트는가 재능이 매우 뛰어난 아이였고, 주변 사람들이 그런 재능을 알아보았다. (107)


프로이트는 법학을 전공할 생각이었다가, 괴테의 <자연론>에 관한 강의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자연을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 묘사한 세상 만물에 대한 이 위대한 송가(頌歌)는 프로이트가 의학을 공부하고 자연과학도가 되는 촉매 역할을 했다. (108)


젊은 시절부터 프로이트는 자?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중요한 성취를 이루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문제가 있다면, 자신이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 그런 성취를 이룰 것인가였다. (110)


나의 용어로 말하면, 프로이트는 언어 지능과 인성(personal) 지능이 우수했다. 즉, 언어와 인간을 다루는 분야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다. (111)


브로이어와 프로이트는 어떻게 불쾌한 기억이 의식의 배후로 억압되었다가 다시 의식 위로 떠오르게 되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 했다.


이 치료법은 말(言語)을 통해 억압된 감정을 발산하게 함으로써, 처음에는 소산되지 못했던 관념들의 작용력을 제거한다. 또한 그런 관념을 (가벼운 최면 상태에서) 정상 의식으로 끌어들이거나 치료자의 암시를 통해 제거함으로써, 그것을 연상 효과에 의해 교정 (associative correction)하는 것이다. (119)


때로 프로이트는 신경쇠약 직전에까지 이르렀다. 1913년에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당시 나는 고독의 극에 도달해 있었다. 옛 친구는 모두 잃었고 새 친구는 아직 생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는데, 그나마 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오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꿈의 해석』 집필을 막 시작한 참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시기를 살아내고 견뎌내서 나는 궁지와 행복감을 느꼈다.

“그 외로웠던 시절, 요즘과 같은 압박감이나 분망한 일이 없었던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영과으러운 ‘영웅시대‘처럼 느껴진다. 나의 ’찬란한 고립‘에는 분명 장점도 있었고 매력도 있었다. (127)


프로이트의 이론은 바로 이 개념을 중심축으로 해서 여러 주요 개념들이 유기적인 전체를 이룬 것이다. 그 핵심 개념은 억압(repression)이다. 좀더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하는데, 이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표상(Vorstellung) 들을 의식 아래로 억누르는 심리 과정을 일컫는다. 프로이트 자신도 이 개념의 중요성을 확언한 바 있다. “억압이라는 교의는 정신분석학 이론 전체가 서 있는 주춧돌이다.” 억압 개념은 프로이트 세계관의 핵심이다. (129)


억압이 프로이트 이론 체계의 중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면, 꿈은 억압 과정을 이해하고 그 밖의 정신 생활(psychic life)에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프로이트는 꿈의 힘을 발견한 것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130)


나 같은 사람은 무언가에 열정을 쏟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마침내 한 가지를 찾아냈다.....심리학이다. (132)


그는 당시의 전문 용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던 이론을 사유하고 있었다. 자기 생각의 요점을 부적절하거나 시대에 뒤진 용어로 번역하는 데서 생기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프로이트는 자신만의 언어와 도해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자기가 뜻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135)


꿈의 분석 과정은 프로이트의 외로운 시절에 그에게 힘이 돼 주었다. “내가 내린 결론에 망설임과 의심이 생길 때마다, 아무 뜻도 없고 뒤죽박죽으로 뒤엉킨 꿈을 분석해서 꿈속에서도 논리적이고 뜻이 분명한 심리 과정이 진행된다는 사실을 훌륭하게 밝혀낸다는 것은, 내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는 자신감을 새삼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

꿈은 억압된 소원이 위장 실현되는 과정이며, 예전의 결심이나 혹은 욕망을 마음속에서 지속적으로 처리하는 수단이다. (137)


대체로 꿈은 예전에 품었던 생각에서 자극을 받는데, 꿈 꾼 당사자도 전혀 알지 못했던 생각인 경우가 많다. 이런 꿈 사고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꿈의 ‘외현적 내용(manifest content)'을 꿰뚫어 보고 그 이면의 ’잠재적 내용(latent content)'을 밝혀내야 한다. 꿈의 잠재 내용을 해독하려면 꿈 상징에 관한 완전한 어휘 목록이 필요한데, 물론 배경 지식 없이는 제대로 적용할 수 없는 어휘들이다. 꿈을 형성하는 방어 기제로는 응축(condensation)과 전위, 다양한 종류의 방어막(screen)이 있는데, 꿈의 의미를 제대로 해명하기 위해서는 이들 각각의 방어 기제를 끈기 있게 해소해야 한다. (138)


확실히 가장 많이 쓰여진 주제이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 함직한 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인간의 심리 발달에 중심 역할을 한다는 점이었다. 프로이트는 자기 내부의 깊은 곳에서 부모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발견했다. 이 감정은 아주 어린 유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유아들은 어머니에게는 강한 애정과 사랑과 욕망을 느끼는 반면 아버지에게는 질투와 두려움, 심지어 증오심까지 품는다는 것이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은 어머니와 결혼하고 아버지를 살해하려는 무의식적 욕망으로 전화한다. 처음 이런 감정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느꼈을 때, 프로이트는 광범위한 문학적 소양과 다른 환자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런 감정이 인간의 정서를 깊이 뿌리박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고대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와 중세 헴릿 이야기의 토대가 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해소되지 않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바로 성인 신경증의 뿌리이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 여성의 경우는 ‘엘렉트라 콤플렉스’ - 는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140)


<꿈의 해석>은 프로이트의 지적 재능이 지닌 힘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 책은 프로이트의 문학적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뛰어난 저서이다. 파노라마처럼 인용되는 다양한 전거(典據)들은 프로이트가 과학 저서와 고전 문학뿐만 아니라 당대와 다른 시대의 정치적, 문화적 사건들에 대해 풍부한 식견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145)


"나의 재능에는 한계가 있다. 자연과학이나 수학에는 아무 재능이 없다. 양적인 것에는 아무 소질이 없다.“
프로이트의 과학적 사유는 그 본질이 언어적이며, 공간적 요소는 거의 없고 논리적 요소가 얼마간 담겨 있을 뿐이다. 아마도 이러한 논의 패턴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일 터인데,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해놓고 있다. “나는 공간상의 관계를 시각화하는 능력이 지독하게 부족한 편이라서, 기하학이나 거기서 유래한 학문을 연구하는 일은 내게는 불가능하다.” (145)


프로이트는 자유 연상, 꿈 분석, 치료 개입 등 사람들을 돕는데 실제로 사용되는 실천 기법을 발전시켰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상을 전할 수 잇는 잠재력이 있었다. 프로이트는 치유를 갈망하는 병들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치유법을 알려준 것이다. (153)


매 순간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면서, 자신에게서 나태한 구석이 보이면 스스로를 매섭게 다그쳤다. (160)


나는 창조적인 인물에 관해 연구하면서 ‘10년 규칙’을 발견했다. 즉, 창조적인 인물은 한 분야에서 10년 정도 종사한 후에 혁신적인 도약을 이루어내며, 이후에는 다양한 요인에 따라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161)


프로이트는 특정 지능을 활용하여 창조성의 결정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인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성찰하는 자성 지능을 통해, 그리고 아무도 공감과 이해를 보이지 않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통해 그런 성과를 보였던 것이다. 그런 다음에 프로이트는 에너지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 자신을 적대하는 세상에게 자기 이론의 진실성을 납득시켰다. 처음엔 세상에 매료되었고, 다음엔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처지가 되어 비밀스런 탐구 작업을 계속했으며, 결국 다시 세상에 들어와 다양한 집단의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프로이트는 창조성의 이원적 성격을 새삼 환기시킨다. 특정 분야에서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어 냈고, 덕분에 그 분야는 마침내 다양한 인간 사회의 관심과 가치를 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65)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영원한 아이

아마도 미래의 아인슈타인을 가장 잘 드러낸 물음일 터인데, 열여섯 살에 그는 사람이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조금 나중에는 엘리베이터가 아주 높은 곳에서 자유낙하할 때,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이 지닌 물건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 했다. 그러니까, 물건이 주머니에서 빠지면 바닥에 떨어질지, 아니면 공중에 그대로 떠 있을지가 문제였다.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내놓고 그 해답에 대해 골몰하는 이런 성향은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았다. (168)


"내가 어떻게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보통 어른이라면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생각하느라 길을 멈추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점이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런 문제는 아이 적에 골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지능 발달이 더뎌서 어른이 된 뒤에나 겨우 시간관 공간에 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나는 보통 능력을 가진 아이보다 그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었다. (169/170)


아이의 마음과 창조적인 어른의 마음 사이에 깊은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70)


물리학자 라비아(I. I. Rabi)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리학자들이란 인간 피터팬이다. 그들은 결코 어른이 되지 않으며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있다. 세상 물정에 밝아지면, 호기심을 갖기에는 너무 많이,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된다.” (171)


아인슈타인은 남다른 집중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몇 시간, 심지어 몇 일 동안이나 중단 없이 같은 문제를 숙고할 수 있었다. 그가 관심을 두었던 주제 중에서 수십 년 동안 마음속에 담아 둔 것도 있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서는 음악을 듣거나 요트를 타곤 했지만, 이런 순간에도 사색은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공책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공책에다 적곤 했다. 그는 상대론을 발표한 후에 동료인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에게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에는 빛의 본성에 관해 탐구하고 싶다네”라고 말했는데, 갓 태어난 아이가 처음 내보이는 시각적 행동이 빛에 눈 초점을 맞추는 일이라는 사실이 전혀 우연은 아닐 것이다. (194)


"나 같은 사람에게 발달의 전환점이란, 그저 덧없을 뿐인 개인적 관심사를 서서히 뒤로 하고 사물을 관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관심을 집중한다는 사실에 있다.“ (195)


글이든 말이든 언어의 세계는 나의 사고 기제에서 별 역할을 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생각을 전개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한 심적 요소는, 마음속에 ‘자발적으로’ 생각나고 서로 결합되곤 하는 특정 기호와 다소 명징한 이미니이다. ........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결합과 연상 작용이야말로 생산적인 사고에서 가장 본질적인 측면이 아닌가 싶다. ....... 관습적인 어휘나 다른 기호들은, 위에서 언급한 연상과 결합 작용의 틀이 충분히 잡히고 그것을 자유 자재로 운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나 이차적인 단계로서 애써 찾아야 했던 것이다. (196)


분명 아인슈타인은 과학자로서 프로이트와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 두 사람 모두 포부가 크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대담한 용기를 지녔고 기꺼이 홀로 일어서고자 했으며 논쟁을 반기기까지 했다. (199)


어린 시절의 천재란 주로 명민하고 신속하게 직관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직관과는 다른 이해 능력, 즉 성찰적 지혜(reflective wisdom)라고 부를 만한 능력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속 성숙한다. 이러한 지혜는 보통 링컨이나 간디와 같은 정치 및 종교지도자와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236)


프로이트는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존재하지 않는 분야에서 전혀 새로운 사고 방식을 도입한 과학자로서 살아있는 동안 줄곧 혁신적인 업적을 내놓았다. 반면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혁명적인 과학자로 출발해서, 이미 바탕이 다져진 분야에 기여했다. (246)


깊은 수준에서는 유년기와 연결된 끈이 매우 창조적인 인물들의 생애를 관통한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종종 말했듯이 그가 숙고했던 문제들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제기하는 문제들이고 어른들 대부분은 자라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은 문제들이다. 프로이트가 몰두했던 주제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종류는 아니지만, 어쨌든 아동의 삶을 지배하는 것인긴 하다. 즉, 꿈이나 농담, 성적 놀이와 같은 다양한 현상뿐 아니라 전위와 응축, 대체와 같은 심리 과정이 그렇다는 애기다. 여전히 유년기의 체험과 접촉하는 사람만이 그들이 탐구했던 현상을 파헤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가 개시하는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만이 그토록 체계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탐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247)


5. 파블로 피카소 - 신동과 천재

데이비드 펠드먼이 설명하듯이, 신동이 재능을 보여주어야 하는 영역이란 이미 해당 문화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분야이고 최소한 그 아이의 행동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분야인 것이다. (251)


신동의 출현은 특정 분야에 대한 어떤 문호권의 관심과 지원 이외에도, 언제나 여러 요인들이 ‘우연히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현상이다.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뿐만 아니라,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비상한 재능을 타고 난 신동이라도 장애를 만나게 마련이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나아갈 길을 닦아주고, 다양한 기회를 주고, 주변의 쓴 소리에 대해 아이들 방어해 주면, (현실적 상상만으로든) 좌절하고 실패한 경우에는 아이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설명을 해주고, 기력과 재능을 생산적인 방향에 쏟도록 인도해 주는 어른의 역할이 필요하다. (252)


한 예술가의 초기 작품에서 실험적 시도는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특정 분야에서 다소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존의 관습적인 실행 방법을 그대로 터득하는 젊은이가 낯선 방법을 실험하면서 그 분야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젊은이보다 훨신 많기 때문이다. (258)


마땅히 잘 해내야 하는 일을 잘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기가 강점을 보이는 분야를 맹렬하게 파고들어서 개인적인 좌절감을 극복하고 가족들에게 자기의 진면목을 보이고자 하는 법이다. (259)


신과의 거래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미신적인 성향이 강했던 피카소는 전문 분야에서나 개인적인 삶에서나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느꼈고, 이런 만용에 가까운 힘을 가졌다는 사실에 응분의 죄책감도 느꼈다. 이와 같은 ‘신과의 거래’는 우리가 다루는 일곱 명의 창조적인 인물들의 삶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261)


피카소에겐 현재의 영예에 만족하는 거을 막는 무언가가, 아마도 어린 시절애 형식을 해체하도록 했던 것과 동일한 충동일 터인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화가라는 전문가로서나 사사로운 개인으로서나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마저 새로운 경지에 오르고자 했으며, 전례가 없는 깊이에 도달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와 같은 가차 없는 도전 의지는 이 책에서 다루는 차조적인 거장들 모두의 특징이며, 그들을 그들답게 만드는 특성이다. (278)


아폴리네르는 두 부류의 예술가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자연에 의존하는 ‘모든 걸 한데 모으는(all-put-together)' 스타일의 명인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에 의존하는 성찰적이고 지적인 ’조립가(structure)' 형의 예술가이다. 모차르트가 전자의 전형이라면, 베토벤은 후자의 전형이다. 신동 피카소는 첫 번째 유형을 대표하지만, 두 번째 유형의 예술가로 변신할 수 있었다고 아폴리네르는 주장한다. (279)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도약하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피카소는 대개는 적대적이었던 주변 사람들의 반응으로 인해 길을 잃지는 않았어도 쓰라린 상처를 받았는지 어디론가 그림을 조용히 치워버리고 몇 년 간은 공개하지 않았다. (287)


키가 작고 몸집이 다부진 피카소는 열정에 넘치고 반항적인 기질을 타고 났으며, 스스로 신동임을 알고 있었다. 음악에는 아무 흥미가 없어서 오로지 그림에 살고 그림으로 호흡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88)


거의 반세기가 지난 후에 브라크는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몽마르트에 살면서 거의 매일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다. ..... 피카소와 나는 당시 누구도 말하지 않던 일.....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우리들한테는 참으로 즐거웠던 일에 관해 얘기를 주고받았다. ..... 같은 밧줄에 몸을 묶고 함께 산에 오르는 느낌이었다. ..... 서로의 얘기에 푹 빠져 있었다. (290)


"우리가 입체주의를 창시했을 때는 입체주의를 창안하겠다는 의도는 없었고, 그저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293)


화가란 결국 무엇이겠는가? 다른 사람의 소장품에서 본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소장품으로 만들고 싶은 수집가가 아니겠는가, 시작은 이렇게 하더라도 여기서 색다른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307)


피카소는 예술작품이 관람자에게 충격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람자에게 아무런 감정상의 동요도 일으키지 못하고 관람자가 그저 대충 훑어보는 예술작품은 아무 의미가 없다. ...... 관람자가 비록 상상 속에서라도 어떤 반응을 보이고 스스로 창조에 대한 열망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 ..... 관람자를 마비 증상에서 일깨워야 한다.” 피카소는 확신을 갖고 이렇게 말했다. (309)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완성된’ 작품이란 있을 수 없다. 한 작품의 상이한 상태가 있을 뿐이다.” (313)


“예술가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백치(白痴)이다. ...... 정치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심장을 뒤흔드는 정열적이거나 행복한 사건에 민감한 사람이다. ...... 그림은 집 따위를 꾸미는 수단이 아니다. 그림은 적을 공격하고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전쟁의 수단이다.“ (322)


피카소는 난마처럼 뒤얽힌 복잡성과 날카로운 단절로 점철된 삶에서 오히려 기운을 얻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평생에 걸쳐 성장과 발전이  가능한 분야에서 활동했기에 피카소는 새롭고 신선한 경험과 예술적 자극을 얻을 수 있었고, 스스로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통해 끈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324)


6.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 음악가이자 정치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자서전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음악은 그 본질상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는 무력하다.” (334)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에 심취하기는 했지만 음악 신동은 아니었다. 실상 그는 음악 자체보다는 회화나 연극에 더 흥미를 느낀 아이였다. (339)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이 꽤나 고독한 아이였다고 기억한다.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만났다.”고 자서전에 쓰고 있다. (340)


자신의 말대로라면 스트라빈스키는 훌륭한 학생은 아니어서 학급에서 평균 혹은 평균 이하 수준에 머물렀던 것 같다. 하지만 학습 능력에 심각한 장애가 있었던 피카소와도 달라서 그저 정규 교육에 흥미가 없었을 뿐이고 평생 동안 스스로 배워 익히는 방식을 선호했을 뿐이다. (340)


스트라빈스키와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비슷한 교육 철학을 견지했고 엄격한 훈련방식을 선호했다. 훗날 스트라빈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배우든 신참자가 걸어야 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처음에는 학습 과정을 무조건 수요해야 하지만, 이것은 자기만의 표현 방법을 자유롭고 힘차게 추구할 수 있는 수단으로만 삼아야 한다.” (342)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나의 제자이긴 해도, 결국 누구의 추종자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엔 음악 재능이 너무나 탁월하고 독창적인 까닭이다.“ - 림스키 코르사코프 - (342)


비평가들에 따르면, 스트라빈스키의 초기 작품은 별볼일 없는 태작에 불과하다. 여느 창조자와 마찬가지로 스트라빈스키 역시 처음엔 선배들의 언어를 열심히 터득했고,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도 골고루 사숙했다. (343)


전기작가 앙드레 부쿠레슐리프는 이렇게 말한다. “스트라빈스키가 무대 연출에서 차지한 비중을 강조할 수는 없지만, 결국 이런 참여를 통해 그는 이 분야에도 전문가 수준에 이를 수 있었다.” (354)


새롭게 움트고 있지만 아직 분명하게 표현하기 힘든 예술적 이상을 서툴지만 진지하게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상징체계로 전달하고자 했던 시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대중의 평범한 평가 기준에 의해 실패할 수는 있을지언정, 창조자 자신에게는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자신이 그 작품을 통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으며, 무엇을 성취하고자 했는지, 나아가서 그러한 목표를 미래의 작품 속에 가장 훌륭하게 담아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355)


스트라빈스키는 '결혼'의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작곡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대체로 스트라빈스키는 작곡에 착수할 무렵부터 곡의 전모를 분명하게 구상해놓는 편이었다. 피아노 반주를 통해 일찍부터 기본 선율과 리듬을 정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영감으로 멜로디를 구성하는 작곡가가 아니었다. 자신의 음악적 구상을 제대로 표현하고 자신의 마음에 맞는 음악적 효과 및 표현 효과를 내려면 악기 파트와 단편적인 악절을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그에 가장 알맞은 악기 및 기악 앙상블로 실험해 보고, 또 고전 음악이나 민요의 단편적인 악절을 차용하여 멜로디를 구성했다. (378)


처음 10년 동안 해당 분야의 지식과 기법을 완전히 터득하고 이후 대략 10년을 주기로 혁신적인 작품과 새로운 방향 전환을 이룬 작품(이론)을 창조한다는 법칙이 스트라빈스키에게도 적용된다는 얘기다. (379)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을 오랜 전통에 속하는 장인(匠人)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 내가 가진 기질과 재능이라면 차라리 소(小) 바흐로 살아가는 편이 나았다. 가끔 교회와 신을 위해 곡을 쓰면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아가는 삶 말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상에서 만난 온갖 어려움을 이겨냈고 견뎌냈다. 타락한 면이 없지 않은 출판업자나 음악 축제, 음반사, 홍보업계의 오랜 인습(물론 나 역시도 그런 인습에 빠져 있었지만)을 극복해낸 것이다. (387)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의 작곡 행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성찰했다. “창조적인 음악가로서 나는 매일매일 짐을 풀 듯이 내 마음속의 아이디어를 표출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나는 작곡가라는 운명을 타고났고 다른 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작곡을 했다 .... 나는 영감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일을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잘 모를 수도 있다.” (프로이트 역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영감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맞으러 마중 나간다.”) 스트라빈스키는 작곡의 우연성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뜻밖의 참신한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면 메모를 해두고 적절할 때가 적절하게 활용한다.” (388)


7. T.S. 엘리엇 - 경계선에 위치한 거장

신적인 영감을 느낀, 보스톤 거리에서 겪은 ‘결정화 경험’을 통해 그는 시로써 이렇듯 상반되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소외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한 시대의 사려분 별로도 취소할 수 없는 한 순간에의 굴복, 그 엄청난 대담, 이것으로 이것만으로 우리는 존재해 왔다.“라고 쓴 대로 ’무인지경의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410)


엘리엇은 자신의 위치를 예리하게 분석할 줄도 알았다. 옛 철학 스승은 우즈(J. H. Woods)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중요한 작가가 되는 데는 오직 두 방법이 있습니다. 아주 많은 작품을 써서 온갖 지면에서 제 작품을 볼 수 있게 하거나, 아니면 아주 조금만 쓰는 거지요 ..... 저는 과작(寡作)인지라 많이 써서 유력한 작가가 되기는 글렀습니다 ..... 런던에서는 작은 책자 분량의 시 한 편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 한편 한 편마다 완벽성을 기해야 하고, 그래서 각기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이 유일한 관건일 테지요. 미국과 관련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무래도 고향보다는 여기서 훨씬 더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 생계를 유지하려면 예술하고는 하등 상관없는 직업을 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겠지요. (424)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 피카소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이번에도 역시 창조적인 인물이 자신의 가장 극적인 업적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부모 자식 간이나 동기 간에 버금갈 만큼 매우 친밀한 사이에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430)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정서를 명확히 표현하는 일련의 객관 상황, 사건인데, 해당 정서를 환기하려면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부적인 상(像)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객관적 상관물을 창조할 수 있는 시인이 가장 훌륭한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비상한 감수성과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결합시킬 줄 아는 시인이 없다면, 우리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능력까지도 되화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444)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들은 어느 정도는 세계 전체에 속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만 홀로 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양극을 오가는 모습이야말로 창조자의 생애에 긍정적인 비동시성과 부정적인 비동시성을 동시에 가능케 한 요인일 것이다. (457)


8. 마사 그레이엄 - 무용계에 혁명을 몰로 온 여자

무용은 원초적인 예술 형식, 최초의 인류가 행했던 예술 형식일 것이다. (466)


호스트는 그레이엄에게 모든 방면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레이엄의 후원자이자 공명판 역할을 했던 것인데,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억할에 걸맞은 이상적인 존재였다. (488)


처음 10년은 해당 분야의 기에를 익히는 기간이고, 두 번째 10년은 가장 인상적이고 혁신적인 작품을 창조하는 기간이며, 세 번째 10년은 또 다른 절정의 작품, 그러니까 앞선 시기의 혁신에 기반을 둔 작품이자 그런 혁신을 좀더 명확하고 포괄적으로 해당 분야 전체에 연결시킨 작품을 창조하는 기간이다. (505)


그녀에게 있어 공연이란 삶 자체였고, 자신의 페르소나를 완전히 실현하는 일이었다. (509)


그레이엄의 고전주의 시기는 그레이엄이 저작물에 관심을 많이 쏟은 시기였다. 그녀는 그리스 고전 및 고대를 다룬 많은 저작을 풍부하게 읽었을 뿐 아니라, 신화와 제의, 무의식을 다룬 저서, 특히 프로이트와 융 및 이들 학파의 저서를 탐독했다. (514)


신체-운동 지능은 자립적인 상징체계를 통한(혹인 자립적인 상징 체계로 표기되는) 사유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을 움직여 실험하고 여러 차례 변형하는 과정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무용 역사가 린 개러폴라(Lynn Carafola)는 이렇게 말한다. “그레이엄은 그녀의 몸이었다. 그것(몸)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강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단련시킨 덕분에 그녀는 그녀 자신이 된 것이다. 몸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따라 그녀가 고안할 수 있는 무용의 한계가 규정되며, 몸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있기에 그녀는 연습을 통해 더욱 더 무용 테크닉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 (517)


그레이엄 무용단의 일원이 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레이엄은 훌륭한 무용수가 되기 우해서는 10년이 걸린다고 생각했다. (이는 내가 지금까지 설명한 창조적 도약에 관한 10년 규칙에 적합하다.) “엄정하고 힘든 테크닉, 그러니까 무용 동작의 과학에 따라 신체를 단련해야 하고, 다양한 경험으로 정신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학생은 매일같이 ‘고문’과도 같은 훈련을 받았으며, 점차 근육질의 강건한 몸을 가지게 되었다. (521)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종이에 적는다. 어떤 책에서든 인상적인 구절이다 싶으면 바로 옮겨 적는다. 그리고 출처를 적어둔다. 이렇게 하면 실제 작업을 할 때 모든 과정에 대한 기록을 간직하고 있을 수 있다. 내 무용에 대한 메모는 모두 갖고 있다. 특별한 기호는 쓰지 않는다. 내 생각을 그냥 적어둘 뿐이고, 나는 내가 쓴 글과 동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여기 저기에 설명이 있다. 523p


9. 마하트마 간디 - 신념을 실천한 정치 지도자

소년 간디는 자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보통 이하의 능력밖에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다.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쾌념치 않는다. 지성의 발달에는 한계가 있지만 마음의 성장에는 그런 한계가 없다.” (544)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람들 간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여러모로 역량이나 능력이 부족하고 감정적인 여유도 없고 또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나 세상 경험, 동기 부여에 대한 지식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상회와 정치, 종교, 윤리 분야에서 조숙한 모습을 보이기가 쉽지 않다. (545)


“나는 인도인 정착자들의 힘든 상황을 글로 읽고 귀로 들어서 뿐만 아니라 내 몸으로 직접 체험해서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552)


처음에는 모든 일이 서툴렀다. 배워야 할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공부하고 발견해 가면서 능력을 향상시켰다. 이 과정에서 간디는 필요할 때 자기자신에게 의지하는 훌륭한 능력을 찾아냈다. (554)


그는 매웅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시간을 분 단위로 지켰고 자신이 관장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신중하게 기록했다. (555)


간디와 같은 정치가와 사상의 혁신자들, 특히 자신이 몸소 모범을 보이는 혁신자들의 경우는, 각자의 신조가 명확히 드러나고 그 원칙적인 실행 방침이 결정(結晶)화되는 지점을 많이 지적할 수 있다. (563)


"나는 영국 법을 어겨야 했다. 내가 복종하는 것은 그보다 더 높은 법, 내 양심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영국에 대한 첫 번째 시민 불복종 운동이었다.“ (563)


단식, 간디는 이 새로운 무기의 극적인 성격과 잠재력 그리고 그 단순함을 새삼 깨달았다. (566)


간디의 전기 작가 브라운은 이렇게 말한다. “위대한 공상가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간디 역시 명상적인 천품(天品)과, 활동성 그러니까 열정적으로 활동적인 일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와 능력을 결합했다.” (573)


개인의 자유는 사회에 봉사하는 자유가 되어야 했고, 개인적인 비폭력은 보다 넓은 갈등의 무대에서도 실현되는 비폭력이 되어야 했다. 진리와 지식과 지헤는 공동체 안에서 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575)


마음속에 분노를 품지 말고 상대의 분노를 그대로 감내할 것. 상대의 공격을 앙갚음하지 말 것.(578)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세계의 모든 나라 가운데 인도는 비폭력 저항 방법을 배울 수 있는 한 나라이며 ..... 만약 이 실험이 지금 성공한다면, 압제자들에 대한 아무런 적대감도 없이 자진해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수천명의 남녀가 생길 것이라는 믿음이다.” (581)


모든 일에서 간디는 성찰하고 새로운 생활 방식을 시도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했고 이를 통해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했다. (583)


"단식은 적에 대항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 단식은 오직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이고, 오직 우리 자신의 복리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 단식에는 그 나름의 체계적인 수련법이 있다. 내가 아는 한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585)


간디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584)


“바푸지(Bapuji. ji는 힌두어로 존경과 친밀함을 뜻함)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 우리 대부분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다르다. 바푸지는 그렇지 않았다 ..... 그는 자신이 믿는 것을 말했고 말한 것을 실천에 옮겼다. 그의 정신과 영혼과 몸은 일치했다.” (589)


간디가 나누었던 가장 중요한 대화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신과의 대화였다. (591)


“정의로써 힘에 대항하는 이번 싸움에서 나는 세상의 공감을 얻고 싶다.” (598)


간디는 창조의 거장이라 말해도 손색이 없다. 그는 여느 창조자와 마찬가지로 그가 선택한 분야(도덕 분야)에서 조숙함을 보였고 그 분야의 거장이 되기 위해 철저하게 노력할 줄 알았다. 신중하게 경계인의 위치를 견지한다거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도 자기만의 시감을 갖는 데도 소홀함이 없었다는 점, 근본적으로 자기본위의 사고방식을 지녔다는 점, 사상이나 인품에 아이같은 요소가 남아 잇다는 점도 모두 창조의 거장다운 표지였다. 여러모로 아이다운 천진성을 지닌 그는 단순하면서도 혁명적인 사상을 지녔다. 어떤 인종이나 민족도 다른 인종이나 민족에 비해 우월하지 못하며, 갈등을 폭력으로 해결해서는 안 되고, 타협은 두 정파를 모두 강화한다는 근본적인 통찰이 그것이다. (609)


이들 창조자 가운데 오직 간디만이 어떤 집단이나 부류에 속한 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성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말을 걸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이력과 재능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뜻이 통하는 그런 이야기와 사상과 존재 방식을 창조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한 분야를 쇄신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새로운 인간의 이야기를 창조하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다. (615)


제3부 창조성의 조건

10.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

본 연구에서는 전통적으로 특이성 중심적 방법과 중심적 방법으로 불리는 이러한 두 입장을 종합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 나는 다양한 분야에서 선택한 일곱 명의 인물을 자세하게 검토하는 동시에 이들 전부 혹은 적어도 대다수에게 해당되는 일반적인 사항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한 입장에서는 일반적인 규칙이 다른 입장에서는 예외적인 사례가 된다. (621)


E.C.라는 약칭으로 부르게 될 전형적인 창조자의 초상

E.C.의 가족은 교육수준이 높지는 않아도 배움과 성취를 높이 평가해서 이런 방면에 대해 자식들에게 거든 기대가 큰 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포부와 사회적 위신을 소중히 여기고 고된 일을 높이 평가하는 전형적인 부르주아 집안이라고 할 수 있다. (622)


청년이 된 E.C.는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활동이 활발한 중심도시로 과감하게 이주한다. 그는 대도시에서 자신과 관심사가 비슷한 젊은 동료들을 놀라울 정도로 빨리 만나게 된다. 그들은 함께 해당 분야의 이곳저곳을 탐사하고, 모임을 결성하고, 선언문을 발표하고, 서로 간에 자극을 주면서 새로운 경지에 오르고자 노력한다. (623)


관심이 가는 문제 영역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해당 분야의 전인미답의 경지로 추동하는 계기가 된다. 이 순간이 바로 가장 긴장된 순간이다.

E.C.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면서 언제나 작업에 몰두하는 편이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말을 빌면, 그는 인생의 완성보다 작품의 완성을 앞세운다. 그는 자신만만하고 잘못된 출발을 시정할 능력이 있으며 자부심과 엄격한 태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실수를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엄청난 에너지와 헌신적인 노력이 있다면 그는 첫 번째 혁신을 이룬 지 10년쯤 후에 두 번째 혁신을 이룰 기회를 맞게 된다. 후속의 혁신적인 작품은 이전보다 근본적이지는 않지만 훨씬 포괄적이고 E.C.의 이전 작품을 긴밀하게 통합한 작품이기가 쉽다. E.C.가 활동하는 분야의 성격에 따라 계속적인 혁신이 가능한지 여부가 결정된다. (과학보다는 예술 분야에서 창조성을 지속적으로 발휘하기가 쉽다.) E.C.는 자신의 창조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신선한 자극을 받고 위대한 도전과 자극적인 발견에 수반되는 몰입 체험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경계인의 위치를 찾거나 비동시성의 긴장도를 높이는 방안을 찾는다. (624)  


창조성의 현저한 특징은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의 결합에 있다. 이런 결합은 성격만이 아니라 사고방식(관념)에서도 나타난다. 아이다운 특성이 순진함과 참신함으로 나타나면 긍적적인 색채를 띠게 되지만, 반대로 이기심과 보복심리로 나타나면 부정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629)


하나는 조상과는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재능과 솜씨가 뛰어났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유년기에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모델을 만났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에는 이처럼 가족의 도움을 받았지만, 여러 면에서 경계인적인 삶이 그들 앞에 기다렸다. (634)


경계인이라는 위치를 창조활동의 지렛대로 삼았다. 그들은 자신의 그런 경계인이라는 위치를 활용하여 작품활동의 내용이나 방식을 결정했고, '기성 체제'에 편입될 위험이 있을 경우에는 언제는 진로를 바꿔서 최소한의 지적인 주변성(경계성)을 유지하려고 했다. (635)


많은 사람들과 편안하게 지내던 시기에서 극도의 고립 속에서 중대한 발견을 이루는 시기를 거쳐 결국 나이가 들면 다시 더 크고 포용적인 세계로 회귀했다. 극도의 고립을 겪는 시기에 한 명 혹은 그 이 상의 사람과 각별한 경계를 맺고 그에게서 도움과 격려를 얻었다는 점이다. (636)


일곱 명의 창조적인 인물들은 물론 분야마다 약간씩 기간은 달라도 대략 10년을 사이에 두고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었다. 인지 심리학 계통의 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한 사람이 어느 분야를 기본적으로 통달하는 데 필요한 기간은 대략 10년 정도이다. 10년의 견습 기간을 거쳐야 중대한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일단 도약을 하게 되면 과거로부터 결정적인 단절을 이룬다. (637)


이어서 창조자는 자신의 혁신적인 도약과 타협을 한다. 혁신에의 열정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후속적인 혁신은 보다 폭이 넓고 종합적인 성격을 갖게 마련이다. 좀더 미묘한 방식으로, 그러니까 해당분야의 과거에서 이루어진 성과 및 다른 사람들이 수행한 업적과 좀더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는 식으로 혁신을 감행하는 것이다.

두 번째 도약 이후에 벌어지는 일은 창조자 개인의 재능과 포부보다는 해당 분야의 성격에 따라 좌우된다. 최근에 생긴 개방적이고 경쟁자가 비교적 적은 분야라면, 활동 여력이 남아 있는 동안 계속해서 혁신적인 업적을 낼 수가 있다. (638)


10년이 지난 후에는 다른 종류의 기회가 생긴다. 관련 분야를 역사적으로 혹은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기 시작할 수도 있다. (639)


우리의 주제와 관련해서 내 눈길을 끈 것은 그들이 매일 창조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640)


각자는 오랫동안 그 분야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그 분야의 특성이 매우 중요하다. (641)


각각의 창조자들은 대체로 한 명 이상의 조언자를 만나게 된다. (648)


창조적인 인물의 특징적인 모습은 창조성의 삼각형에서 어떤 부조화, 혹은 부드러운 연결의 결여를 장점으로 활용할 줄 안다는 점이다. (654)


친밀한 관계 첫째,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두 가지 차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무조건적인 지지로 격려하는 정서적인 차원이 있어야 하고, 혁신적인 도약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 본질에 관해 유용한 조언을 해주는 인지적인 차원이 있어야 한다. (661)


엄마와 아이 혹은 보모와 유아 간의 대화, 혹은 친한 친구들 간의 대화와 같은 어린 시절의 효과적인 소통을 경험하지 못한 창조자는 어른이 되어서도 근본적인 소통을 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년기에 있어서 이런 종류의 지지와 격려는 새로운 업적을 창조한 일과 관련이 있으며, 어린 시절 무엇인가 성취한 일에 보상을 받던 상황이 재연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662)


창조적인 인물들이 자신의 재능을 잃지 않기 위해서 보통 그들은 창조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일환으로 정상적인 인간 관계를 희생했다. 계약의 종류는 다양할지 몰라도 그것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모습에는 일관성이 있다. 이러한 거래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계약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를테면 각각의 인물은 자신의 개인적인 신과 계약을 맺은 것처럼 보였다. (663)


걸출한 인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부각되게 마련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분명 어떤 분야에서고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고 있다.

나는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한,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도약의 성격을 갖는 다양한 창조성은 모든 사회의 모든 창조성 일반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 시대 서양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668)


현대라는 용어는 서양의 20세기를 지배했던 인물과 사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상들을 지칭한다. (670)


포스트모던한 시대의 결정적인 특징은 의도적인 장르 혼용이다. 역사적 선례와 관습에 대한 과감한 무시이며, 모든 진지함에 대한 도전이고, 스타일과 외양 및 정체성의 변화무쌍이며, 혼돈스러운 표면 이면에서 어떤 의미나 구조를 찾는 노력의 포기이고, 창조와 해석의 무한한 자유이다. (687)


가드너는 창조성이란 바로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에서 나온다는 메세지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평생동안 지닐 수 있었기에 이 책에서 다루는 거장들은 그토록 열정적으로 자신의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다는 게 저자가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것 같다. (693)


창조적인 상상력인 더 없이 중요하다. 천재나 거장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사회의 총체적인 문화 역량이 축척되어 있을 때나 뛰어난 개인이 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창조의 거장이 탄생하려면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와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바로 이런 의미일 것이다. (695)


창조성은 단지 한 개인의 탁월한 재능만으로 실현되거나 발휘될 수는 없고, “오직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 그리고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694)



3. 내가 저자라면


하워드 가드너의 <열정과 기질>은 현대를 있게 한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창조적 거장들의 삶을 통해 인간의 심리적 기질과 그들이 처한 주변 환경, 그리고 시대적 특성을 곁들여 창조성의 본질과 조건을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은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각기 다른 분야에서 창조성을 발휘한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엘리엇, 그레이엄, 간디 등 일곱 명의 거장들을 다원적 창조성이라는 일관된 관점으로 바라본다. 저자는 특유의 방대한 자료수집을 바탕으로 각 인물의 삶과 창작 활동을 다각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창조성의 다양한 모습

다중지능 이론으로 유명한 저자는 창조성(창의성, Creativity) 역시 다원적이라고 이야기한다.

프로이트는 언어 지능과 논리 지능이 우수해 어린시절부터 인간의 본성에 남다른 관찰력을 보였고, 주로 언어에 기반해서 사고했으며, 그의 이런 체계는 대부분 일상 언어를 통해 논리적인 명제로 바꾸는 작업으로 나타났다. 동료들이 무시했던 현상, 즉 무의식의 구조와 과정을 연구했고 무의식의 탐구에서 하나의 이론을 구축했다. 아인슈타인은 언어에도 별다른 재능이 없고 인성 문제에 대한 관심도 부족했으나 시간적, 공간적 이미지가 풍부한 사고 실험에 재능이 있어, 그 논리적 타당성과 의미를 탐구하며 상대성 이론 공식에서 하나의 이론 체계를 만들어냈다. 프로이트는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존재하지 않는 분야에 전혀 새로운 사고방식을 도입한 과학자로서 살아있는 동안 줄곧 혁신적인 업적을 내놓았다. 반면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혁명적인 과학자로 출발해서 이미 바탕이 다져진 분야에 기여했다.


피카소처럼 공간 지능과 신체 지능이 우수한 사람도 있었다.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 엘리엇은 저마다의 특정 장르에서 젊은 나이에 해당 분야의 상징체계를 습득하여 새로운 예술작품을 창조하였으며 자신들의 변화하는 예술적 비전을 반영하는 창조물을 축적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자 창조 활동의 본질이었다.


그레이엄과 간디는 둘다 그들의 사상(관념)과 신체로 형성된 공간에서 활동하며 신체적인 외양, 자신들의 몸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그들 창조 활동의 핵심이었다. 간디는 다른 창조자들처럼 한 분야를 쇄신한 어떤 집단이나 분야에 속한 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력과 재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뜻이 통하는 이야기와 사상, 존재방식을 창조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새로운 인간의 이야기를 창조하고 그것을 설득력있게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더욱 어려운 일을 한 간디의 창조적 업적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들 각자는 지능의 전 영역을 골고루 지녔지만 저마다 우수한 지능이 서로 달랐고, 자신의 일을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지능을 두루 활용했다. 각자의 창조적인 도약 역시 특정 지능의 우수함을 요구하는 해당 분야의 상징과 이미지 및 조작 방식을 정교하게 활용한 성과물이었다. 가드너가 보기에 한 개인 속에 잠재한 창조성의 본질은 지능적 요소와 기질적 요소의 특이한 조합이었다.  


조력자들의 도움

각각의 창조자들은 재능이 뛰어났으며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이 먼저 그런 재능을 알아보았고, 그들이 선택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정진하다보니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야하는 다른 인물들을 만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대체로 한명 이상의 조력자를 만나게 된다.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은 위대한 도약의 시기에 고립된 생활을 했지만 주변사람들에게 이론적이고 정서적인 도움을 받았다. 프로이트는 친구 플리스에게서 도움을 받았고, 아인슈타인은 올림피아 아카데미의 친구들에게서, 상대성 이론을 구상하는 데는 친한 친구 베소와 아내 밀레바의 조언이 컸다.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엘리엇 이들은 모두 부르주아 가문에서 태어나 가족이 높이 평가한 예술 장르에서 활약했다. 세 예술가는 젊은 나이에 예술 중심지로 이주했는데,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는 파리로, 엘리엇은 런던으로 갔다. 여기서 그들은 가장 혁신적인 예술가와 지식인 그룹의 중심인물로 부상했고, 그들의 가장 근본적인 예술적 업적은 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그들과 가까운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졌다. 피카소에겐 조르쥬 브라크가 있었고 스트라빈스키에게는 디에길레프 발레단이, 그리고 엘리엇에게는 에즈라 파운드와 비비언 어나리엇이 있었다. 그레이엄에게는 호스트가 허물없는 친구이자 최고의 선생 역할을 했으며 간디에게도 유대가 돈독했던 사라비아 가족, 그를 따르던 충성스런 추종자들이 큰 힘이 되었다.


이들과 다소 예외적인 인물로 분류될 수 있지만 아인슈타인에게는 스승 역할을 담당해줄 조언자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대중적인 과학서, 전문적인 과학서의 독서를 통해 비교적 간접적인 방법으로 조언을 얻는 방법을 취했다.


창조적 거장, 그들에게는 무조건적인 지지로 격려해주는 정서적인 차원의 조언과 혁신적인 도약을 이루게하는 인지적인 차원의 조언을 해주는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 친구와의 효과적인 소통을 경험한 창조자들은 성년기에 있어서도 이런 종류의 지지와 격려가 그들이 새로운 업적을 창조하는데 영향을 미쳤으며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하면서 창조력을 발휘할 때도 다른 사람의 지지와 격려가 큰 도움이 되었다.


창조성의 10년 주기론

인지 심리학 계통의 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로는 한 사람이 어느 분야를 기본적으로 통달하는 데 필요한 기간은 대략 10년 정도라고 한다. 어느 분야의 전문 지식에 정통하려면, 자기 분야에서 통용되는 지식에 통달하려면, 아무리 열광적으로 몰두했더라도 최소한 10년 정도는 꾸준히 노력해야 하며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10년 정도의 꾸준한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의미있는 도약을 이룰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10년 주기론’이며 대체로 10년간의 준비를 거쳐 창조성이 성숙하고, 10년간 창조성을 발휘하며, 다음 10년간 그 창조성을 다시 다른 분야로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일곱 명의 창조적 인물들 역시 분야마다 약간씩 기간은 달라도 대략 10년을 사이에 두고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었다. 그들은 저마다 생산성과 속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꾸준한 작업과 정력적인 활동으로 새로운 생각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매일매일 창조력을 발휘했다.  


파우스트적 거래와 그들의 열정

창조자들은 평생에 걸친 피나는 연습과 노력으로 정상에 올랐다. 프로이트는 매순간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면서도 자신에게서 나태한 구석이 보이면 스스로를 매섭게 다그쳤고,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엘리엇은 매일같이 작업실에 들어가 거의 홀로, 몇 달 혹은 몇 년 씩이나 걸리는 작품제작에 몰두했다. 그레이엄도 꾸준한 신체단련과 고문과도 같은 훈련을 거듭하며 밤늦게까지 연습하기 일쑤였고 자신을 가혹하게 채찍했을 뿐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지속적인 정진을 요구했다.   


또한 창조적인 인물들은 자신의 재능을 잃지 않기 위해서 파우스트적 계약을 맺었다. 보통 그들은 창조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일환으로서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희생했다. 프로이트와 간디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금욕적인 생활을 했고, 엘리엇은 오랫동안 거의 독신 생활이나 다름없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견뎌냈다. 그레이엄은 친밀한 애정관계를 두려워해 남편과 아이를 원치 않았으며 스트라빈스키와 피카소는 다른 사람들을 매우 냉혹하게 대했다. 이들 가운데 아인슈타인만이 자신의 창조성과 관련하여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인 계약을 맺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역시 다른 사람에게서 거리감을 느끼고 남들과 가까이 지내기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이러한 파우스트적 계약은 대부분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과의 계약이 대부분이었으며 각각의 인물은 신과 계약을 맺은 것처럼 보였다. 이렇듯 각기 계약의 종류는 다양할지 몰라도 그것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모습에는 일관성이 있었다.


창조성이란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

창조성의 현저한 특징은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의 결합에 있다. 아이다운 특성이 순진함과 참신함으로 나타나면 긍적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창조적인 인물은 유년기의 통찰과 감정, 즉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에 품었던 수많은 의문점과 문제의식, 그리고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섬세한 감수성을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가장 선진적인 이해 방식과 결혼시키는 어려운 일을 해내며 이러한 경험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면에서 두드러진 모습을 보인다.


아인슈타인은 호기심과 관습에 대한 반항 등 아이다운 면을 가지고 있어 물리학이라는 전문적인 영역에서 그가 숙고했던 문제들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제기하는 문제들과 닿아 있었다. 피카소에게도 엄청난 소유욕,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통제하려는 유아적인 특성이 있었는데 이는 형태를 조각내고 가장 단순한 형상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그리는 그의 작업에 아동 그림의 특징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스트라빈스키는 어린 시절에 강한 인상을 받았던 가장 단순한 원시적인 리듬과 화성으로 곡을 썼고, 반쯤 벌거벗은 몸을 자랑스레 드러내며 꾸밈없는 태도로 세상에 나와 동등한 위치에서 상대를 대하고 타협을 통해 갱생을 도모한 간디의 혁신적인 사상에도 아이다운 천진성이 담겨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거장들은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평생동안 지닐 수 있었기에 그토록 열정적으로 자신의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다. 창조성이란 바로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저자는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에 남을만한 창조적 거장들은 한 개인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천재나 거장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자 자신, 가족, 동료와 조력자, 사회 등 숱한 요인들의 상호작용으로 진행되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창조성은 단지 한 개인의 탁월한 재능만으로 실현되거나 발휘될 수 없고 “오직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 그리고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역사적으로 두드러진 독창성을 보여준 창조적 인물들이다. 저자인 하워드 가드너도 인간의 내부에는 어떤 분야의 대가가 될만한 소질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했고, 나 역시 인간은 누구나 창조력을 타고난다고 믿는다.


겉으로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간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창조적인 사람들은 한결같이 앞선 사람들의 성취를 기반으로 삼았다. 누구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는 않았고, 창조적 소질을 심화시킬 수 있는 적절한 체험 기회, 가족, 좋은 친구, 동료, 조력자, 책, 사회 등의 도움을 받았다.


창조자들은 투철한 작업의식과 평생에 걸친 피나는 노력과 연습으로 정상에 올랐다. 창조자, 그들을 보아도, 나의 부족한 경험으로도 세상에 쉬운 창조 행위는 없다. 거의 모든 창조 활동은 극도로 힘겨운 작업이고, 고생할 가치가 충분하다해도 힘든 작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창조는 경이로운 작업이며 비록 그 과정이 험하고 고될지언정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빛나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색다르고 낯선 만족감으로 가득한 흥미진진한 삶을 기대하게 하며 특혜받은 삶을 영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설레임을 갖게 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으며 실제로 대부분이 창조 행위를 하며 살고 있다. 우리 안에는 언제나 창조력이 존재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끄집어내느냐하는 것이 아닐까? 누구나 자신의 삶과 일에서 창조적 요소를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창조적 거장, 그들처럼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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