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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5일 09시 24분 등록

 q  저자에 대하여

오스트리아계 미국인 경영자문가, 교육자, 작가이다. 그의 보수적인 저서는 현대 기업의 철학적·실제적 토대를 제시하고 있다.

1909
11 19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하였다. 빈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1933년 런던에 이주하여 경영평론가가 되었다. 1937년 영국 신문사의 재미통신원으로 도미하여 학자 겸 경영고문으로 활약하였다. 1938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사라로렌스 대학, 베닝턴 대학, 뉴욕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편 1942년에 집필한 『산업인의 미래The Future of Industrial Man(독일에서는 『산업사회의 미래』로 번역)에서 20세기 사회의 발전 과정을 연구했다. 이 저서의 출간으로 드러커는 1943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던 제너럴모터스에서 2년간 경제 분석가로 일하게 되었다. 1946년 이 기간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해 『법인의 개념』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고, 이로써 학문적 분과로서의 경영에 대한 초석을 마련했다. 그 후 드러커는 제너럴일렉트릭, 코카콜라, 시티코프, IBM, 인텔 등의 대기업과 수많은 중소기업, 정부 부처, 국내외의 비영리 단체를 위해 컨설턴트로서 활동했다.

1950
년과 1971년 사이에는 뉴욕 대학 비즈니스 스쿨의 경영학 교수를 역임했고, 1969년에 이 대학에서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총장상을 받았다. 1971년부터 캘리포니아 주 클레어몬트 경영대학원에서 사회학과 경영학을 가르쳤고, 미국과 벨기에, 일본, 스위스, 스페인, 체코 등지의 대학에서 다양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과 1985년 사이에는 클레어몬트 대학의 포모나 칼리지에서 극동 지역 예술을 가르쳤다.

피터 드러커는 사회, 경제, 정치, 경영의 모든 주제를 다룬 뛰어난 저술가로서 30여 권 이상의 저서를 발표했다. 그의 저서는 2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번역되었고 총판매 부수는 600만 권을 넘어섰다. 2002년에는 미국 시민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고 2005 11 11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어떤 평론가들은 드러커의 수많은 저서와 기사를 4가지 범주로 분류하는데 『경제적 인간의 최후 The End of Economic Man(1939), 『새로운 사회 The New Society(1950) 등과 같은 초기 작품은 산업사회의 특성을 논술한 것이다. 2기의 작품은 『법인의 개념 The Concept of the Corporation(1946), 『경영의 실제 The Practice of Management(1954) 등으로 현대의 기업경영에 대한 일반적 개념을 설명한 것이다. 후기 작품들인 제3기 작품은 『미국의 향후 20 America's Next Twenty Years(1957), 『단절의 시대 The Age of Discontimuity(1969), 『기술·경영·사회 Technology, Management and Society(1970) 등으로서 기술변화의 발전 등으로 인한 미래의 영향에 대해 예측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실제적인 회사경영 문제를 다룬 『험난한 시대의 경영 Managing in Turbulent Times(1980)과 『변화하는 경영진의 세계 The Changing World of the Executive(1982, 수필 모음집) 등이 있다.


q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개정판을 내며

§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의 다양성에 매료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름대로 흥미로운 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11]

§ 그가 얼마나 인습에 순종적인지, 또는 얼마나 보수적이지, 아니면 지적으로 능력이 떨어지는지 등과는 상관없이, 일단 그가 자신의 일이나 지식, 흥미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매력적인 존재로 돌변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결국 개별적인 존재다.[11]

§ 이 책은 자신만의 다양성을 가진 개인을 그려나갈 것이다. 나는 인간이 다양성과 다원성을 가지며, 모든 인간은 나름대로 독창성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12]

§ 물론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도 큰 것이 최고가.’라는 말만큼이나 숨이 막히게 만드는 독선이다. 게다가 똑같이 멍청한 생각이다. 사람들은 신의 창조물 속에서 다양성을 봐야 한다. [14]

§ 이 책은 인간에 대한 책이며, 따라서 나 자신을 위해 쓴 책이다. 물론 나 자신에 관한 내용은 없다. 영국에서 출판된 책의 부제목인 내 생애의 다른 사람들이라는 말에 나의 의도가 잘 나타난다. [16]

§ 내 책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더 구상 기간이 길었던 것은 없다. [16]

§ 훌륭한 컬러 사진이 여름 햇살에 반짝이는 초원의 경험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통계수치로는 사람이 무엇을 보고 무엇에 따라 행동하는지 표현할 수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오직 한편의 사회 초상화만이 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17]

§ 이 책에 기술한 인물들은 내게 중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선택됐다. 그들이 내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 들이 속한 사회를 내게 반사하거나 굴절시켜 보여주었던 방식 때문이었다. [19]

프롤로그 ㅣ 한 사람의 구경꾼, 탄생하다

§ 구경꾼은 자신만의 역사가 없다. 그들은 무대 위에 있지만 연극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심지어 관객의 역할도 하지 않는다. 연극과 거기에 참여한 모든 배우의 성공은 관객들의 반응에 달려 있지만, 구경꾼들의 반응은 연극의 성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다만 자기 내면에만 어떤 영향을 미친다. [21]

§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역사가 아니며, 그렇다고 나의 시대이 역사도 아니다. 그보다는 일종의 자서전이다. [21]

§ 여기서는 주로 내가 살아온 삶의 순서에 따라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것은 결코 나 자신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에서 내 경험과 삶, 연구성과들은 단지 부속물에 불과하다. [22]

§ 피터, 내가 너를 비난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말거라. 크란츠에 대해서는 네 생각이 옳을지도 몰라. 하지만 네가 좀 특이한 사람이란 것도 확실한 사실이야. 그리고 조금 더 눈치가 있고 좀 더 주의 깊게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지. 스스로 관찰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크게 칭찬받을 만한 것이다. 하지만, 별난 생각을 내세워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행동은 절대로 칭찬받을 만한 일이 아니야. [31]


1
부 사라진 제국 아틀란티스


할머니 ㅣ 인간에 대한 예의를 깨우쳐준 유쾌한 사람

드러커를 다방면에 박식한 르네상스 지식인으로 키운 사람은 그의 할머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머니는 그에게 피아노와 음악, 그리고 사회생활에서의 예의를 가르쳤고, 드러커는 할머니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36]

§ 드러커의 할머니는 똑똑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서 직관적으로 20세기를 이해는 ‘지혜’를 지니고 있었으며, 사물을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난 명쾌한 사람이었다.[36]

§ 그녀는 모든 사람들을 똑 같이 대했다. 똑같이 친근하고 경쾌한 목소리로, 똑같이 구실 예절에 따라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자신이 만나고 있던 상대에게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항상 기억하고 있었는데. 설사 오랫동안 그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도 그러한 일들은 잊는 법이 없었다.[41]

§ “하지만 할아버지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조금도 안 했지. 할아버지는 저녁식사 때는 늘 집에 돌아왔단다. 나는 그저 멍청한 늙은 여편네에 불과했지만, 남자에게는 위장이 성기나 마찬가지라 사실을 알 정도의 머리는 있었지.[45]

§ 할머니가 손녀들에게 해주는 약간 불가사의한 충고도 이야깃거리다. “얘들아, 밖으로 나갈 때는 항상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거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란다. 손녀들 가운데 한 명이 반쯤은 우습고 반쯤은 기분이 상해서 할머니에게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 전 그런 종류의 여자가 아니에요.”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대꾸했다. “네가 어떤 종류의 여자인지는 그때 가서 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지.[51]

§ 그녀는 다름 사람들보다 앞서서 직관적으로 20세기를 이해했다. 또한 관료들이 권력을 장악하면, ‘대중의 종복이라는 공무원이 대중의 주인이 된다는 사실을 할머니는 직관적으로 파악했다.[63]

§ 공동체란 것이 단지 수입이나 서비스나 현대의학의 기적을 분배하기 위한 조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공동체는 인간을 위한 조직이었다.[67]

§ 운전사가 할머니에게 말했다. “제가 병원으로 모셔다 드릴까요? 의사 선생님께 가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 당신은 멍청하고 늙은 여편네를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는구려. 하지만 대신 앰뷸런스를 불러주시는 게 좋겠소. 당신 차에 낯선 여자가 타고 있으면 당신의 명예가 손상될지도 모른다오. 세상 사람들은 말이 많거든. 10분 뒤에 앰뷸런스가 도착했지만 할머니는 관상동맥 출혈과다로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69]

§ 그 칠순 노파가 살아 있다면 그의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겠지. 하지만 노파가 그의 차 안에서 죽었다면 운전사는 이것을 어떻게 해명해야 했을 것인가?[70]

헤메와 게니아 ㅣ 경영의 귀감으로 삼은 괴짜 부부

헤메와 게니아는 독특한 부부다. 헤메는 심술궂고 고집 센 독설가였으나 사물의 핵심을 꿰뜷어보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무뚝뚝하고 신랄하다고 여겼으나 그는 옳다고 믿는 일에 온몸을 바쳐 싸우는 용기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관료제적 국가체제를 이상으로 삼은 그는 관리로서 뛰어난 면모를 보여 오스트리아 금융재정을 책임지는 재정황제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 나는 항상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인간에게 관심이 더 많았고. 관념이란 철학자들이 범주화를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고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내게 흥미롭고 다양성을 가진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관념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발전하고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며 변화를 일으키면서 무엇인가로 바뀐다.[72]

§ 이 뾰족한 인상의 비적 마르고 신랄한 남자는 한편으로 대단히 지관적인 우정을 베풀 줄도 아는 사람이 었다. 어느 때가 무례한 언사를 상쇄할 수 있는 순간인지, 그리고 그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감각적으로 느꼈고, 그런 느낌은 결국 그의 잃었던 애정을 회복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만들었다.[75]

§ 일단 떠나기로 한 사람은 떠나야 해. 떠날 사람은 작별인사 따위는 필요 없는 법이야.[77]

§ 헤메는 자기가 가진 모든 힘을 다 동원해 스스로의 앞길을 가로막기로 했다.[93]

§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지. 다루기 힘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러니까 누군가 겁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 필요하거나 문제가 너무 복잡해서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경우에 그건 전부 헤메의 일이 됐지. 그리고 그는 언제나 기대에 부응했어. 그는 문제의 핵심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기꺼이 불쾌한 상황과 대면할 수 있는 배짱도 있었으니까.[96]

§ 그녀의 눈은 대단히 매력적이어서 진지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의 그것과 같았고, 그 속에는 온갖 종류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놀람, 애정, 상처 등의 감정이 눈부시게 발산됐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은 그 눈동자의 주인을 향해 끌려갈 수 밖에 없었다.[104]

§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마라. 항상 그들에게 할 일을 지시하라.” 이것이 그녀의 좌우명이었다. “만약 그것이 잘못됐거나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그들은 그 사실을 지적해 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해 주지 않으면, 그들은 행동보다는 연구에 몰두할 것 이다.[119]

§ 결과적으로 게니아는 결코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녀는 관계당국에게 성가신 존재일 게 뻔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접근법을 택했다.[119]

§ 이런 방법은 거의 실패를 모른다. 하지만 실패했다고 해도 대화는 다시 이런 식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잠깐만요. 당신이 말한 사람은 제 친구가 원하는 인물 같군요.[122]

§ 게니아는 감수성이 적었는데, 사실 그녀는 무감수성은 위대한 자질의 근원이기도 했다. 그런 특성 때문에 그녀는 어떤 조롱이나 비평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142]

§ “통계치를 다룰 때는 명심해. 절대로 그것을 신뢰하지 마. 그 통계를 집계한 사람이 네가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어떤 경우에도 통계수치는 의심해 봐야 해. 내가 직접 경험해 본 일이야. 난 거의 12년 동안 오스트리아의 수출현황에 대한 통계를 담당하고 있었어.[140]

엘자와 소피 ㅣ 교육의 길을 제시한 노처녀 자매 선생님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는 드러커의 어린 시절 학교 선생님이다. 이들은 자매였지만 자매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상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미스 엘자는 절대적인 권위의 소유자로, 어린이에게 별다른 관심은 없었지만 담임으로 취임한 날 아이들의 이름을 모조리 외우고 학생들의 성격을 파악하는 완벽한 성격의 교사였다.

반면 미스 소피는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기 좋아하고 아이들을 흥미롭게 만드는 재주를 지닌, 프뢰벨식 교육을 채용한 교사였다. 미스 소피는 아이들에게 깨달음과 학습을 제공하고 미스 엘자는 아이들에게 기술과 비전을 제공했다. 미스 소피가 교사였다면 미스 엘자는 교육자였던 것이다. 이들은 드러커가 교육자의 길로 들어선 후 수업 방식의 기준을 설정하도록 사례를 제공한 사람들이기도 하다.[157]

§ 나를 가르쳤던 분들 가운데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는 선생님은 미스 엘지와 미스 소피가 전부였다.[158]

§ “그리고 너는 네 장점 가운데 하나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게 있는데 그게 뭔지 아니?” 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너는 작문에도 능해. 하지만 별로 연습을 하지 않는 것 같더구나. 너도 동의하니?” 이때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그럼 그것을 목표로 삼자. 일주일에 두 개씩 작문을 해서 제출하렴. 하나는 네가 쓰고 싶은 내용을 마음대로 쓰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주제를 정해 주마.[160]

§ 개를 그리지 마라. 개는 대단히 멍청하단다. 대신 고양이를 그려라. 이 세상에 멍청한 사람을 그린 그림치고 잘 된 초상화가 하나도 없단다.”[173]

§ 목공품 가운데 가장 만들기 어려운 것은 서랍이야. 그것은 물건을 숨기거든미스 엘자는 소크라테스적 문답법을 완벽하게 적용했다면, 미스 소피는 선의 달인이었다.[173]

§ 일반적인 선생들과 그들 사이의 엄청난 차이가, 그들이 가르친 것이 로마사 같은 과목보다 훨씬 흥미로 와서 생긴 차이는 아니라고 나는 확신한다. 지적 수준은 그들이 가르쳤던 과목이 오히려 더 낮았다. 하지만 미스 엘자는 결코 그것을 지루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업도 흥미롭게 이끌어갈 수 있었다. 미스 소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망치로 못을 똑바로 박는 방법을 열정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학생인 내가 결코 그 방법을 습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181]

§ 결국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가 내게 가르친 것은, 교육과 학습이 대단히 수준 높고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교훈이다.[183]

§ 너는 그 두 작품을 정말 잘 연주했다. 하지만 너는 네 귀에 들리는 대로 연주하지 않더구나. 단지 네 귀에 그렇게 들려야 한다는 식으로 연주했지. 그건 진실한 연주자가 아니란다. 그리고 내 귀에 그게 들렸다면 청중들의 귀에도 들릴 거야.”[185]

§ 그러고 나서 슈나벨이 피아노 앞에 앉더니 슈베르트의 안단테를 자신의 귀에 들리는 대로 연주했다. 그러자 릴리는 ‘갑자기’ 차이를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의 얼굴에 깨달음의 미소가 피어났다. 내가 미스 소피의 학생들 얼굴에서 봤던 바로 그 미소 말이다. 그 순간 슈나벨은 연주를 멈추고 말했다. “이제는 네가 연주해 봐라.[186]

§ 나는 음악가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잘 들었던 적이 결코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내가 언제나 성과를 통해 학습을 해왔으며, 효과가 있거나 성과를 거두는 사람을 찾아 그것을 배우는 것이 내게 알맞은 학습방법이란 사실을 갑작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그 동안 나는 실수를 통해서 배운 것이 없었다. 성공만이 내게 가르침을 줄 수 있었다.[186]

§  “신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실수를 저지르게끔 만드셨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실수를 통해 배우려고 하지 마라. 다른 사람이 뭔가를 올바로 했을 때 그것을 보고 배워야 한다.[186, 187]

§ 슈나벨의 연습실에서 깨달음의 순간을 가진 이후로 나는 진정으로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을 찾아 다녔다. 그런 사람들을 찾아서 관찰하고 그들의 방식을 즐기기 위해 가끔 나는 내 본연의 길에서 잠시 벗어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 뛰어난 선생이라는 소문을 들을 때마다 그들의 강연장이나 교실에 숨어들어 그들의 수업을 직접 확인하려고 애썼다.[187]

§ ‘선생 관찰’은 오랫동안 내게 커다란 즐거움을 주었다. 나는 이것을 일종의 스포츠 관람처럼 다른 사람 에게도 권할 수 있다. 스포츠처럼 여기에서도 끊임없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나는 아직도 선생 관찰을 멈추지 않고 있다.[187]

§ 학생들을 학습하도록 이끄는 방법을 사용해 가르침을 전수한다.[193]

§ 이런 사람들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시절 미스 엘자가 썼던 방법을 사용한다. 그들은 개개의 학생이 가진 장점을 찾아내고 그들의 장점을 개발하기 위한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를 설정한다. 이 작업을 끝낸 뒤에 비로소 그들은 학생들의 단점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 그런 단점은 학생들이 자신의 장점을 완벽하게 발휘하는 데 제한사항으로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들은 학생들의 성취에 항상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이 자제력을 발휘하고 스스로를 이끌어가게 한다. [193]

§ 이런 선생들은 비난보다 칭찬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매우 드물게 칭찬하기 때문에 칭찬이 학생의 동기를 유발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거나 학생이 스스로 느껴야만 하는 성취감과 만족감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한다.[194]

§ 그들은 효과적 학습을 계획할 뿐 가르치지않는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학생을 만나도 성과를 거들 수 있다. 비록 그들은 많은 학생들을 맡더라도 결국은 학생 개개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방법을 적용하기 때문이다.[192]

§ 마사 힐은 학생들을 며칠 또는 몇 주일 동안 관찰하면서, 학생 각자가 할 수 있는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의 관점에서 그들을 생각했다. 그녀가 각각의 학생에게 적절한 계획을 수립하면 학생이 스스로 그것을 실천했으며, 힐은 진척상황만 감독했다. [196]

§ 그녀는 학생이 이미 잘하고 있는 부분을 더 완벽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도록 강요하고, 또 하고, 또 했다. 그녀는 학생들을 친근하게 대했지만 칭찬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학생의 실력이 좋아질 때마다 언제나 그 사실을 확실하게 표현했다.[197]

§ 미스 소피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미스 엘자는 방법을 갖고 있었다. 미스 소피가 깨달음을 주었다면 미스 엘자는 기술을 제공했다. 미스 소피는 비전을 전달했고, 미스 엘자는 학습을 이끌었다. 미스 소피가 선생이었다면 미스 엘자는 교육자였다.[198]

§  

§ 소크라테스의 시대 이후로 거의 2000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가르침과 학습이 ‘인지적’인지 또는 ‘행동적’ 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여왔다. 그것은 잘못된 논쟁이다. 가르침과 학습은 인지적이며 동시에 행동적 이다. 하지만 그들은 뭔가 특별한 요소를 더 갖고 있다.[200]

§ 그들은 또한 열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선생의 열정에서부터 시작한다. 교육자는 학생들의 깨달음에 같이 도취됨으로써 열정을 얻는다. 학생의 얼굴에 떠오르는 깨달음의 미소는 어떤 마약이나 약물보다 중독성 이 강하다. 교실에 만연된 무시무시하고 학생을 고사시키는 전염병인 교사의 권태감을 치유하는 것이 바로 열정이다(교사의 권태감은 가르침과 학습을 완벽하게 가로막는 장애요인이다). [200]

§ 선생의 열정은 자기 자신에게 있고, 교육자의 열정은 학생들의 내면에 존재한다. 하지만 가르침과 학습은 언제나 열정이고, 그 열정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거나 다른 사람의 열정에 자신이 중독되는 것이다. [201]

§ 진정한 선생과 진정한 교육자에게는 게으르다거나 열등하다거나 멍청한 학생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선생이 잘했거나 능력이 없었을 뿐이다. [201]

프로이트 ㅣ 프로이트에 대한 프로이트적 분석

프로이트는 자기 동정을 혐오하는 아주 냉철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에 대한 세 가지 허상을 만들어내고 스스로 그 허상을 믿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문화와 예술에 창의적인 자극제가 되었다는 점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었으며, 모두들 그 점을 인정하고 있었다.

§ 어린 시절 프로이트는 유복했으며, 젊은 시절에 처음 의사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수입이 좋았다. 또 프로이트가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 히틀러가 그를 망명 보내기 전까지는 인종차별로 고통을 받은 적도 결코 없었다. 오스트리아 의학사에서 프로이트만큼 일찍 공식인정과 학위를 받은 사람도 드물다. 제다가 그는 오스트리아의 엄격한 기준에 따르면 자격이 되지 않는데도 젊은 나이에 그런 인정을 받은 것이었다.[206]

§ 프로이트는 의사가 동정심(실제로는 환자에 대한 인간적 호기심)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가 환자를 인간적으로 대하면 환자는 의사에게 의존하게 되고, 그러면 회복과 치료가 더뎌질 수밖에 없으므로 의사는 고통을 받는 환자를 형제가 아닌 사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13]

§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에 발을 들인 건 당시 퍼지고 있던 계몽시대의 합리주의(이 시대의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는 다름 아닌 현대의 과학적 의학일 것이다)가 감정변화의 동역학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으면서였다. 하지만 그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즉 과학적인 세계관을 저버리지는 못했다.

§ 프로이트는 죽는 날까지 정신분석학이 엄격히 과학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마음의 작용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용어로, 또 화학 및 전기적 현상으로, 또 물리학의 법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230]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과학적인 합리성과 비합리적인 내면의 경험이라는 두 세계를 하나의 종합이론에 담으려는 거대한 시도였다. 그것은 계몽시대가 낳은 극단적으로 합리적인 프로이트와, ‘영혼의 어두운 밤’을 꿈꾸는 몽상가이자 시인인 프로이트를 한 개체에 담으려는 거대한 시도였던 것이다. [230]

§ 프로이트는 자신이 위태롭지만 세심하게 잡아놨던 종합의 균형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골상학자나 전기막대를 사용하는 최면술사들처럼 신앙요법 치료사의 마법과 다름없는 방법이나, 18세기 극단적 합리주의자가 낳은 아주 무익한 기제를 가지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하나의 주장에 치료를 위한 과학적 방법과 우주론 모두를 담아야만 했다. [231]

§ 그 균형상태가 얼마나 위태했던 지는 현재 우리가 아는 것과 같다. 그 붕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232]

§ 완공된 건물이 공개되기 전의 준비작업 틀을 프로이트만큼 정교하게 해체한 사상가는 없다. 그는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과 비판자들이 제기하는 물음을 논의하게 되는 그 순간 그것이 무너질 것이라는 사실을 오직 무의식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 방법론에 대한 문제, 결과에 대한 정의와 대조군 실험의 문제, 완전히 신비적인 방법을 비롯해 모든 심리요법의 치료성과가 똑같다는(혹은 비슷하다는) 등을 논의하는 순간 말이다. 그리고 과학적 이론 및 치료법과 인간의 인성 및 철학이라는 신화를 한데 포함하고 있는 정신분석학의 이중적 특성을 논의하는 순간에 말이다. 그는 이런 질문을 무시함으로써만 통합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 그리고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빈 의사들을 무시하기 위해 빈 의사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척해야만 했던 것이다. [233]

§ 현실의 프로이트는 전통적인 허상에 등장하는 프로이트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사람인 것 같다. 허상보다는 현실에서 더욱 위대한 그는 비극적 영웅이기도 하다. 불편한 모든 질문을 무시해 버림으로써만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세계와 영혼의 암흑세계 사이의 통합을 유지할 수 있었던 프로이트의 이론은 종국에는 무너져버리고 말 약한 이론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좀더 매혹적인 이론인 동시에 인간적 감동을 주는 이론이기도 하다. [233]

트라운 트라우네크 ㅣ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회주의자의 고백

국립도서관의 행정담당 부관 장이었던 백작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팸플릿’이라는 소책자를 가명으로 쓴 사회주의자였다. 이 장에서는 전쟁이 불러온 동지들의 죽음을 괴로워하고 아직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심한 죄책감을 느끼는 백작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잃어버린 세대의 잃어버린 꿈에 대한 백작의 쓸쓸한 고백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전쟁의 비극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하게 만든다. [234]

§ 내게 글쓰기 재능이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지만, 과연 내게 연구나 학문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나는 대학에 진학해 학문의 길을 가기 전에 내 능력을 검증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부족한 면이 발견된다면 미련 없이 취업하는 것이다. [251]

§ 나는 그분에게 법철학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가장 어려운 문제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형벌의 이유를 설명하는 문제’라는 것이 삼촌의 답이었다. 그래서 나는 불과 열여섯 살의 나이에 범죄의 형벌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에 대한 명쾌한 내용의 책을 써보겠다고 결심했다.

§ 그래서 나는 매일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 가서 법철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저서를 탐독했다. 내가 사회학자들의 주장을 처음 접했던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깊었고 오랫동안 지워지지도 않았다. [253]

§ 내가 보기에 요점은 형벌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명백하게 형벌은 사회 속에서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에 관한 하나의 사실이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시도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모든 사회에 만연된 현실이었다. 진정 설명이 필요한 것은 범죄의 존재였고, 그것은 내 능력의 한계를 크게 초월하는 분야였다. [254]

§ 오늘날 제1차 세계대전이 얼마나 심각하게 유럽의 지도층을 제거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미국에는 거의 없다). 트라운 트라우네크 백작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몇 년이 더 흐른 뒤에서야 그것을 깨달았을 정도니 말이다. 나는 20대 초반에 커다란 신문사의 편집장이 됐는데, 내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서가 아니라 단순히 내 앞의 세대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 영국의 몰락이 빅토리아 여왕이나 에드워드 7세 시절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것이 요즘의 유행이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한 지도층의 전멸과 생존자의 의욕상실이 가장 중요한 요인임은 틀림없다.

§  영국은 젊은 장교들의 사망률이 다른 나라들보다 더 컸는데, 다른 나라의 지도층은 신사도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식 신사도는 약간 무모한 행동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결과 영국에서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교육받은 젊은이의 수가 훨씬 더 부족해졌다.[270]

2부 명멸하는 시대의 사람들

폴라니 가 - 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흥미로운 가족

폴라니의 가족은 드레커가 아는 한 가장 특이한 사람들이자 재능이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가족이었다. 그러니 이들이 정말로 대단한 것은 가족 모두가 19세기를 극복하려는 한 가지 목적에 헌신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모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초월하는 제3의 사회를 탐구했으며, 사회에 대한 구원을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그런 사회를 찾아 낼 수 없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나 개인적으로는 실패한 것이다 드러커는 그들의 실패를 통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들의 실패는 프랑스 혁명 전후부터 줄곧 서양인의 관심을 끌어왔던 절대적인 시민종교에 대한 탐구나 완전한 사회에 대한 탐구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던 것이다.[278]

§ 네 사람 모두 나를 쳐다보며 합창이라도 하듯이 동시에 말했다. “아주 훌륭한 생각이군요. 월급을 자신을 위해 쓰다니! 우리는 그런 소린 생전 처음 들어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아요.”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 카를의 아내인 일로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는 논리적인 사람들이죠. 빈은 헝가리 피난민들로 넘쳐나고 있어요. 공산주의를 피해서 온 사람들과 공산주의에 이어진 백색 테러를 피해서 온 사람들이에요.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지만 카를은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그러니 카를의 월급은 다른 헝가리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우리가 나가서 필요한 돈을 벌어오는 것이 논리적인 일이죠.[285]

§ 마이클 폴리니에게 인간의 존재는 고립된 개인으로서의 존재를 의미한다. 그리고 개인은 논리와 이성보다는 가치와 윤리에 입각해서 행동한다.[295]

크레머 - 키신저를 만든 외교정치 고문

독일의 명민한 정치학도였던 크레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으로 참전했다. 퇴역한 후 미 육군 참모총장의 유럽 담당 정치고문이 되었다. 이때 군 복무중인 카신저를 만났으며 카신저가 정치학 공부를 마치고 하버드의 교수로 취임할 때기지 크레머는 카신저의 친구, 개인교사, 2문의 3역을 맡았다.

크레머는 드러커 자신이 정치적으로 이단자임과 드러커의 진정한 관심이 무엇인지 깨닫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313]

§ 내 관심사는 그의 관심사와 같지 않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나 자신을 알게 된 것이었다. 나 역시 그에게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서론 존경했고 서로 싫어하지 않는 것이 분명한데도 우리의 관계는 순전히 지적인 것에 제한돼 있었다. [331]

§ 그는 사람들을 카리스마로 이끌지 않는다. 카리스마는 언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짜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노력과 헌신으로 이끈다. 모든 것을 자기 손아귀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을 구성한다. 조종이 아닌 성실성으로 지배한다.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정직하다. [339]

헨슈와 셰퍼 - 나치즘이 불러온 개인의 비극

헨슈는 드러커가 <프랑크루르트 게네랄 안차이거>의 금융담당 기자로 일하던 당시 동료 편집자였다. 이후 포악한 나치의 앞잡이 역할을 도맡아 괴물로 불렸다. 가진게 아무것도 없던 헨슈는 권력을 잡으려는 야망 때문에 나치의 중심부로 편입한 인물이다. [342]

§ 악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다. 악행을 하는 사람이 평범할 뿐이다. [363]

§ 악은 극악무도하고 사람은 평범하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악은 헨슈나 셰퍼 같은 사람을 통해 작용한다.[363]

§ 악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지만 인간은 평범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조건으로든 악과 흥정해서는 안 된다. 그 조건은 언제나 악의 조건이지 인간의 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헨슈처럼 악을 자신의 야망에 이용하겠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악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셰퍼처럼 더 나쁜 것을 막기 위해 악과 손을 잡을 때 인간은 또한 악의 도구가 된다.[364]

§ 가장 커다란 죄는 20세기에 새로 나타난 무관심의 죄, 아무도 죽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오래된 찬송가 구절처럼 “그들이 내 주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증언하길 거부한 저명한 생화학자의 죄가 아닐까?[364]

브레일스포드 - 영국의 마지막 반체제자

이후 저명한 저널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는데 역사의 과학적 법칙보다 신념과 도덕을 토대로 한 사회주의자를 지지했다. 형안의 분석가, 굴하지 않는 양심의 소유자로 유명했던 브레일스포드는 스스로를 유용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결국 자신의 양심을 권력에 영합시켰다. 그 결과 지난날의 무게 있는 존재에서 아무 쓸모 없는 존재로 추락하고 말았다.[365]

§ 브레일스포드는 정직성을 의미했다. 독립성을 의미했다. 이기적이지 않음을 의미했다. 특히 당시(늘 그렇듯이) 정치와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던 젊은이와 지성인에게 그는 그런 의미였다.[388]

§ 브레일스포드의 힘은 언제나 그가 양심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그것이 언제나 반대자의 힘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한 일을 원상 복귀시키는 것 역시 반대자의 힘이라는 것을 브레일스포드는 잘 알고 있었다.[390]

프리트베르크 - 19세기의 탁월한 개인금융업자

1934년 드러커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기약 없이 런던으로 갔다. 이때 부친의 부탁으로 옛 친구의 아들에게 뻐국시계를 전해 준 일이 드러커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다 이 일을 계기로 개인금융회사인 프리트베르크사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그는 회사를 운영하던 프리트베르크는 탁월한 은행가이자 중개업자였다. 그는 책을 통해서만 경제를 고부하던 드러커에게 은행업은 사람을 다루는 일이라며 관찰해 볼만한 사람들을 소개시켜주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 소매업계의 일대 혁신자인 헨리아저씨와 재무의 천재 파르붐을 만나게 되었다. 프리트베르크와 이들의 경제활동방식은 드러케에게 영향을 끼쳤다.

§  “바로 그거야. 그가 자네의 제안서를 이해하면 그대로 할 걸세. 그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건 자네 제안서가 너무 복잡하다는 뜻이야. 어떤 일이든 반드시 멍청한 사람이 다룰 수 있어야 해. 결국 일은 늘 멍청한 사람들이 하게 마련이거든.[412]

§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주말 내내 그 일에 매달려 있었고, 결과물에 상당히 만족했던 나는 그렇게 물었다. 피노키오를 닮은 코 끝에 반달모양 돋보기를 걸친 그는 딱딱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것까지 일일이 알려주려면 봉급은 왜 주나?[416]

§ “어리석은 고객은 없어. 단지 상인이 게으른 거지. 고객이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어리석다고 말해서는 안 돼. 고객을 ‘재교육’시키려고 해서도 안 돼. 그건 상인이 할 일이 아니거든. 상인이 할 일은 고객을 만족시키고 그들이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것이지. 만일 고객이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 같다면, 밖으로 나가 고객의 입장에서 상점과 상품을 살펴보는 거야. 그러면 그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 단지 그들의 현실이 상인의 현실과 다를 뿐인 거야.[424]

§ “재무제표 따위는 볼 필요도 없다. 난 네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그런 것들은 원하는 대로 조작했으니까. 이번에 그 체인에서 10여 명의 구매자들과 얘기를 해보았다. 그들은 아주 영리하더구나. 하지만 다들 회사를 위해 싸게 구매하고 있었지. 고객을 위해 싸게 구매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잘못된 일이야. 고객을 잃고, 매출을 잃고, 수익을 잃게 된다는 의미다.[427]

§ 나는 좋은 예술가난 좋은 과학자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좋은 상인의 마음은 헨리 아저씨의 마음이 움직이는 식으로 가장 분명하고 가장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일반화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428]

§ 지금 우리는 다시 헨리 아저씨와 찰리 켈스타트가 필요하다. 우리는 너무 멀리 가버렸다. 검증되지 않은 수량화에 의존하고, 경험보다는 가정에 근거한 논쟁을 하고, 대칭적이고 형식적일 뿐인 모델을 만들고, 구체성을 지닌 견고한 현실을 다뤄보지도 않는 채 관념에서 관념으로 움직인다.[430]

§  새뮤얼 존슨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할 때 가장 순수하다.”[448]

3부 순수의 절정기

헨리 루스 ㅣ <타임>, <포춘>, <라이프> 잡지왕국의 제왕

§ 나는 글을 쓰는 일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책을 내는 것은 공격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게다가 내 책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되어 있었다.[474]

§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루스가 권모술수가가 아니라 훨씬 더 흥미로운 인물이라는 것도 깨닫게 됐다. 그는 중국인에 가까웠다. 나는 헨리 루스가 사람을 다루는 방법을 연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중국의 고대 한나라부터 내려온 조직운영방식을 적용했다. 헨리 루스가 잡지를 운영하는 방식대로 마오쩌뚱은 정권과 당을 운영했다. 파벌을 조성하고, 직함과 책임이 있는 사람을 피해 일하고, 하급자들이 자기에게 오도록 장려하지만 상급자에게는 말하지 않게 이르고, 반목과 상호불신과 대파가

앨프레드 슬론 - 절대적 권위로 GM을 이끈 전문경영인

§ 정식교육을 받은 사람이 ‘비실용적’이라고 치부되는 것, 슬론의 세대를 특징짓는 이 같은 선입견은 오늘날 학위취득에만 미친 사람들이 성실히 일하는 젊은이들을 무시하는 편견보다는 덜 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세대가 가지고 있던 편견에 대해 비난하지 않고 GM 기술연구소를 대중에게 알리기를 거부하던 슬론의 태도가 오늘날 가능하면 오랫동안 일하지 않고 여러 개의 학위를 취득하는 데만 열중하는 풍조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가끔씩 해보게 된다.[539]

§ 그 당시 미국 산업계는 그가 이끄는 곳으로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슬론이 GM 기술연구소를 대중화시키는 선례를 세우기만 했더라도 오늘날 우리는 노동과 교육에 있어 좀 더 바람직한 균형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540]

§ 어쨌든 경영학이라는 학문의 주요한 관심사인 조직과 사회적 책임, 개인과 조직의 관계, 최고경영자의 기능과 정책결정 과정, 관리자의 양성, 노사관계, 집단관계, 소비자관계(심지어는 환경까지도) 등이 모두 <<기업의 개념>>에서 다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주제들은 이 책에서 처음으로 다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543]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이 실패하면, 드레이스타트 씨, 당신은 캐딜락에거 직업을 잃게 되겠죠. 캐딜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GM이 있는 한, 내가 이끌고 가는 한, 자기 책임을 다하고, 솔선수범하며, 용기와 상상력이 있는 사람을 위한 자리는 언제나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슬론 씨는 계속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은 캐딜락의 미래를 걱정하세요. 하지만 GM에서의 당신의 미래는 내가 걱정하겠소.’”[577]

§ 그는 자기가 한 약속대로 내 연구를 인정하지도 않았고, 한 번도 그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끝까지 지원해 주고 내가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579]

§ 슬론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혼자 있기를 좋아하지만 난 항상 좋은 친구들을 곁에 두고 싶어하죠. 하지만 나는 직장에서 친구를 만들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어요. 나는 공평해야 하고 누군가를 편애하는 모습조차도 내 비쳐서는 안 돼요. 사람들이 어떻게 업무를 달성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내가 할 일이죠. 그들의 의견과 그들이 자신의 몫을 완수하는 방법을 찬성하느냐 마느냐가 내 임무는 아닙니다.” 그는 특정 인물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늘 그들의 성과에 대해서만 논했다.[588]

§ 슬론은 결정을 내릴 때 사람 수를 세거나 투표를 통해서 하는 적이 거의 없었다. 그는 이해를 통해서 결정을 내렸다.[595]

§ 그들은 항상 ‘공적 책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들 스스로 ‘전문적’인 것에만 제한하려는 고집 때문에 공격을 받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한 사회에서 조직들은(그리고 그 조직을 관리하는 ‘전문인들’ 까지도) 반드시 공공복리를 위한 책임을 져야 한다. [606]

§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전문경영자밖에 없다. 모든 역사는 다원론의 사회가 분쟁과 공공의 복리를 만들어내고 공익을 위해 봉사하기 위한 특별한 ‘관심사’들의 분쟁과 합류에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607]

그 밖의 사람들 - 대공황 시기 미국 사회에 대한 스케치

§ 서로가 도우면서 살아가는 자세는 대공황에 대한 미국인만의 대처법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와 같은 현상이 없었고, 오히려 대공황으로 인해 의심과 무뚝뚝함, 두려움, 질시만 더 깊어졌다.

§ 대공황에 대응하는 미국인의 방식은 자연재해를 극복할 때와 똑같은 방식이었다. 지진이나 홍수, 태풍이 지나간 뒤에 그렇듯이, 공동체는 서로의 간격을 좁히고 각자가 상대방의 구원자가 됐다. 1930년대 미국인들은 대공황을 마치 자연재해를 회상하듯 이야기 했다.[621]

§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선조들께서 한겨울의 눈보라와 한 여름의 모래 폭풍을 견뎌가며 황량한 광야에 농장을 세우셨을 때, 거기에는 국가의 명예를 위한다는 사악하고 어리석은 생각과 군사적 영광이란 허울 좋은 정부의 독재에서 해방돼 진정한 자유인으로 삶을 누리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우리 선조는 한 인간보다 법에 복종하는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여기에 왔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 기도합시다. 선조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미국이 이 마지막 최선의 희망으로 여전히 남기를, 그리고 길고도 헛된 제국의 명단에 또 다른 항목으로 등록되지 않기를 말입니다.”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이전에, 그리고 그 뒤로도 아메리칸 드림을 그렇게 간결하면서도 뚜렷하고 감동적으로 요약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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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자라면

16편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는 것은 익히 알지만 자신의 생애를 돌아 보는 자서전에 주변사람들을 나열하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형식 또한 흥미롭다. 인류의 역사는 개개인의 역사가 모여서 이루어진다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 인물들의 전후 세대에 걸쳐 이야기하며 그들의 생각, 업적, 그들이 존재했던 시대적 흐름과의 맥락을 짚고 있다. 정작 자신의 모습은 살짝 드러낸다. 사람의 이야기라 책장은 잘 넘어갔지만 그 면면이 흐르는 시대적 상황과 학문적, 사회적 반사나 굴절에 대한 이야기는 다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인용구를 위해 줄을 긋기 난해했다
 

그는 자신을 구경꾼이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의미로의 구경꾼이었기에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에 대해 애정으로 그들의 개별적 존재로써 드러내는 특별함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피터 드러커의 시선을 보면서 누구나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을 짚어보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어떻게 기억될지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거라 생각된다.


작가이자 세계적 석학 피커 드레커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의 삶에서 그들의 신념과 삶에 대한 처세에 대해 배울 수는 있지만 어떠한 논평도 하지 못함을 느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배우고 싶고 닮고 싶은 사람은 사회사업가도, 경영인도, 은행가도 아닌 할머니와 자매선생님인 엘자와 소피이다.

할머니는 드리커에게 다방면에 능통한 지식인으로 크는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똑 같은 예절로 모든 사람에게 똑 같이 대한 모습과 할머니가 내포하는 근본 정신도 사람이 중심이라는 데 닿아있다. 사물을 판단하는 지혜는 남다르다. 그 직관적인 능력을 배우고 싶다.


피터 드러커라 만나 초등4년대 만난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 같은 선생님만 교육계에 가득하다면 좋겠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 없으니 공교육이지만 개인의 특성을 이해하며 교육하는 것은 드러커도 지적했듯이 선생의 열정, 선생의 자세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선생으로서의 열정이 부족한 사태에서는, 누구나 진정 자신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더욱 드러커처럼 진정한 스승을 찾아야 한다.


그들은 효과적 학습을 계획할 뿐 가르치지않는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학생을 만나도 성과를 거들 수 있다. 비록 그들은 많은 학생들을 맡더라도 결국은 학생 개개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방법을 적용하기 때문이다.’[192]


그런 단점은 학생들이 자신의 장점을 완벽하게 발휘하는 데 제한사항으로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들은 학생들의 성취에 항상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이 자제력을 발휘하고 스스로를 이끌어가게 한다.[193]


진정한 선생과 진정한 교육자에게는 게으르다거나 열등하다거나 멍청한 학생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선생이 잘했거나 능력이 없었을 뿐이다.’[201]

IP *.12.2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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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10.06 15:16:28 *.206.74.156
가장 닮고 싶은 인물들이 할머니와 두 자매라니. 참으로 너답다.
아이들에게 넌 꼭 가슴따듯한 좋은 수호자가 될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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