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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3일 10시 07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김용옥은 1948년생으로 올해 62세이다. 보성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대만타이완대학교에서 철학 석사, 일본도쿄대학대학원에서 중국철학 석사, 그리고 미국하버드대학교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를 했음에도 아직 배움의 갈증이 남아있는지 1990년에는 원광대학교 한의학과에 입학해 한의학을 공부하기도 한다.

도올 김용옥의 직업을 열거하자면 그는 대학교수이자  철학자,  시나리오작가이며 한의사, 그리고 신문기자이다. 지금까지 내가 파악한 직업만 그렇고 혹시 몇 가지 더 있을 수 있겠다. 그는 이와 같이 스스로를 하나의 틀로 가두지 않고 새로운 시도와 함께 삶에 대해 여러 가지 실험을 행한다. 어쩌면 직업이라는 것은 그에게는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의 개념일 수도 있겠다. 때로는 대학 강단에서, 때로는 TV 모니터에서, 그리고 때로는 책, 신문, 그리고 영화와 연극에서 우리는 그를 만날 수 있다.  

그의 간단한 경력 사항은 다음과 같다.

1982.  - 1986.   고려대 문과대 철학과 교수
1987.  - .        극단<미추> 창단멤버
1996.09 - 1998.06  도올한의원 한의사
.  - 1998.06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중앙대 의대,용인대 철학과 강사
2002.12 - 2004.03  문화일보 편집국 기자
2005.03 - .   순천대 인문학부 석좌교수
2006.10 - .   춘사대상영화제 집행위원장
2007.04 - .   [現] 중앙일보 편집국장석 기자
2007.  - .   [現] 세명대 석좌교수

도올 김용옥을 처음 알게된 것은 많은 이들과 비슷하겠지만 99년 EBS 에서 시작한 <도올 김용옥의 알기쉬운 동양고전-노자와 21세기 강의> 에서였다. 원래부터 동양고전을 좋아하는 애늙은이의 취향(친구들 왈)을 가지고 있는 터라, 30분 남짓한 그의 강의는 20살의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 뒤로는 TV에서 하는 그의 강의를 자주 챙겨보았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시리즈를 다운로드 받아 챙겨보았던 프로그램은 <도올, 인도를 만나다> 라는 불교강의였다. 작년 이맘 때쯤 보기 시작해서 약 두달여 간에 걸쳐 26편의 강의를 들으면서 경영학에만 편중되어 있던 내 독서의 편식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99년에 노자를, 2000년에 공자를, 그리고 2002년에는 싯달타를 이야기하고 2007년에는 요한복음을 이야기했다. 실로 인류 문명사의 중심축에 대한 총체적 접근이다.   

그러나 그는 유명세만큼이나 안티세력도 만만치 않게 가지고 있기로 유명하다. 심지어 그에 대한 비판내용이 책으로까지 엮어질 정도이다. <도올 김용옥 비판_2007년 지음>을 낸 김상태씨는 ‘도올은 한국 인문학계의 황우석’ 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의 비판은 도올이 수많은 저서에서 제대로 된 고전번역서를 펴내라고 한국학계를 향해 사자후를 토했으나 정작 자신이 제시한 기준에 걸맞은 번역서를 하나도 펴내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이 책 <논어한글역주>는 도올 김용옥에게 있어 그의 비판에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도올 김용옥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책의 저술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최근 원고지 1만 장에 이르는 3권짜리 집대성의 <논어한글역주>를 출간하였다. 왜 하필 <논어>인가? 21세기 벽두 오바마가 미 대통령으로서 희망의 사륜(史輪)을 굴리기 시작한 이 시점에 과연 <논어>라는 책이 인류문명의 패러다임과 어떤 관련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인류문명의 패러다임) 전환의 가능성을 <논어> 일서에서 발견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미국의 사상적 핵은 퓨리터니즘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며 <성서>를 도외시할 수가 없다. 미국과 중국의 21세기적 대결은 결국 <성서>와 <논어>의 대결이 될 수밖에 없다. 인류의 21세기는 과연 <성서> 중심 세계를 펼칠 것인가? 아니면 <논어> 중심 세계를 펼칠 것인가?"

"조선사회가 유교의 왕국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논어>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왕국일 수도 있다. 조선왕조에는 <논어>가 읽힌 적이 없다. 오직 주자집주본(朱子集註本) <논어>만 읽혔다.(...)다시 말해서 주자가 해석해 놓은 <논어>만이 읽힌 것이다.

- <중앙일보> 2009.1.21 '도올고함'에서

도올 김용옥은 끊임 없이 한국 사회의 금기 영역에 도전해 온 학자다. 가령 2007년 그는 <요한복음> 강해를 통해 기독교 보수 교리에 맞서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표현해 광범위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발언이 사회적 이슈가 된 사례는 수두룩 하다. 가령 하버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그는 스승 연배의 학자들에게 거침없는 일갈을 날리기도 한다.

"한국의 철학자들은 서양 것 가져다 우려먹는 짓부터 삼가라."
"한국의 사학자들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부터 제대로 번역해 놓고 다른 일을 하라."

그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만큼 꾸밈없이 솔직하다. 그의 이런 성격이 학계의 많은 비판을 불러 일으켰고 종종 퇴출에 가까운 대우를 받기도 하지만 오히려 비제도권에서 활동함이 그로 하여금 더 자유롭고 생산적이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의 박학다식함은 어쩌면 공자의 ‘엔진’ 동작원리와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배움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다른 모든 점을 차지하고서도 그의 ‘새로운 시도’와 ‘끊임없는 배움’의 자세는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저서]

- 우리는 동양학을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세계의 문학,1983.봄
-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민음사,1985
- 여자란 무엇인가,통나무,1986
- 번역의 이론과 실제(역),민족문화,1985-1986
- 노자철학 이것이다,통나무,1989
- 루어투어시앙쯔(공역),통나무,1986
- 중고생을 위한 김용옥선생의 철학강의,통나무,1986
- 아름다움과 추함,통나무,1987
- 이 땅에서 살자꾸나,통나무,1987
- 절차탁마 대기만성,통나무,1987
- 기철학이란 무엇인가,중국학논총,1985
- 기철학산조,통나무,1992
- 길과 얻음,통나무,1989
- 도올 논문집,통나무,1991
-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통나무,1989
- 독기학설,통나무,1990
- 태권도 철학의 구성원리,통나무,1990
- 대화,통나무,1991
- 삼국유사인득,통나무,1992
- 석도화론(역),통나무,1992
- 삼국통일과 한국통일 2권,통나무,1994
- 기옹은 이렇게 말했다,통나무,1994.1
- 도올선생 중용강의,통나무,1995
- 건강하세요 1,통나무,1998
- 화두.혜능과 셰익스피어,통나무,1998
- 이성의 기능(역.해설),통나무,1998
- 금강경강해,통나무,1999
- 도올세설,통나무,1990
- 노자와 21세기(전3권),통나무,2000
- 도올논어(전3권),통나무,2001
- 혜강 최한기와 유교,통나무,2004
- 삼봉 전도전의 건국철학,통나무,2004
-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통나무,2002
- 도올심득 동경대전1(역주),통나무,2004.6
- 앙코르와트.월남가다(상.하),통나무,2005
- 논술과 철학강의 1.2,통나무,2006.8
- 기독교성서의 이해,통나무,2007
- 요한복음강해,통나무,2007
- 도마복음이야기 1,통나무출판사,2008.3
- 큐복음서,통나무출판사,2008.3
- 논어 한글역주(전3권),통나무,2008.12
- 효경 한글역주,통나무,2009.7

[작품]
시나리오
- 새 춘향뎐,1987
- 도바리,1988
- 깜동,1988
- 날개,1988
- 개벽,1990
- 장군의 아들,1990
- 취화선(칸느영화제수상작),2001
- 장승업,2001

연극
- 시간의 그림자,1991
- 天命,1994

음반
- 한대수&도올 광주 라이브,2006.12

희곡
- 그불,1999

기타
- EBS 10부작 다큐멘터리 도올이 본 한국독립운동사 출연.연출.편집,2005.8


2. 내가 저자라면

호두과자와 논어, 붕어빵과 노자

잘 알려졌다시피 <노자>속에는 노자가 없다. 그러나 <논어>속에는 어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공자이다. <논어>는 이름 그대로 사람들간의 논어이기에 당시의 시간과 공간에서 동떨어진 채 존재할 수 없다.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은 반드시 상황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논어의 집필 당시의 상황성에 대한 설명에 200페이지에 달하는 책 지면의 상당량을 할애하고 있다. 이것은 꽤나 흥미로운 논어여행의 시작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그렇다.
논어는 호두과자이다.
그리고 노자는 붕어빵이다.


기나긴 시간 여행을 떠나며

책은 다분히 저자, 김용옥의 필치가 진하게 묻어나 있었다. 책장을 열며 언제쯤 ‘學而詩習之, 不亦說乎?’가 나오나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으나, 정작 논어에 대한 내용은 책의 1/3이 지난 부분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저자는 논어를 역하여 전달하기에 앞서, 왜 우리는 논어에 대해 이해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많은 페이지를 빌어 설명하고 있다.

우선 그 첫 단계로 ‘인류문명전관’이라는 서문을 통해 저자의 인류문명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인류문명의 근원을 그레코, 로만 중심으로 생각하는 모든 역사 기술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편협한 편견의 소산일 뿐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진정한 근원은 동양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인도, 중국)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주장한다. 그는 편협된 인류 문명사의 시각을 버리고 다방면으로 인류 문명을 조망하는 올바른 시각을 가지기를 요구한다. 저자는 유교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동아시아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데 기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중국 고경인 13경을 주석한다고 밝히고 있다. 서문에서 독자들은 ‘공자와 논어’라는 주인공이 등장하기 전에 인류 문명사에 출연한 거의 대부분의 종교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 전개 방식은 저자의 평소 성격 그대로 대담하고 거침없이 이어진다. 종종 이런 표현을 적나라하게 써도 될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의 글은 거름망 없이 여과되는 짙고 투박한 원액의 음료와 같았다. 김용옥이라는 저자는 아마도 ‘학자로서의 체면’보다는 ‘학자로서 내세우는 뜻’이 보다 직접적이고 바르게 전달되는 것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으리라 짐작된다.

두 번째 단계는 논어의 서막 단계로, ‘공자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언급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도 많은 정성을 들여 자료를 모으고 글을 쓴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논어’라는 책 자체가 ‘공자’라는 인물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책이다. 또한 공자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 있어 시대적 정황과 함께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필수적인 것이리라. 본론인 논어가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읽혔던 것은 바로 이 부분, <공자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선이해가 바탕이 되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공자라는 인물이 김용옥이라는 사람의 안경을 빌어 보여지긴 했지만, 그래서 혹시 선입견이 생긴 채로 공자를 바라보게 되었을 수도 있었지만,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었더라면 논어읽기는 단순한 고전학습의 하나로만 여겨졌을 수도 있다. 처음 책을 열 때의 ‘지루함을 이기겠다는 각오’는 어느새 사라지고 ‘공자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감정이입’의 마음이 서서히 자라났다. 더 이상 공자는 구름 위에서 땅 밑을 지긋이 내려보는 성인이 아니었다. 공자라는 인물은 성인은 성인이되 구름 밑에 있는 성인이었다. 아니 그 곳에서 출발한 성인이었다.

2500년 전의 변화경영가, 공자

나에게는 공자에 대한 오래된 편견이 있었다. 노자가 다양성과 상대성을 중시한 포용력이 있는 인물로 이미지가 그려지는 반면 공자는 하나의 진리와 절대성을 강조하는 강직한 인물로 상상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후대에 생성된 유교의 시발점으로서 바라본 공자였기 때문이었으리라. 즉 유교의 성격을 공자의 이미지와 동일시한 것이다. 그러나 은, 주에 이어진 송, 노에 대한 역사개관, 장자가 희화화한 공자의 모습, 사마천의 공자세가에 등장하는 공자의 모습을 다각도에서 비춰보며 공자라는 사람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나로 시작하는 변화경영’을 추구하게 된 사람인지 깨닫게 되었다

공자는 후세의 문인들이 기록하고, 본인 스스로도 밝힌 바와 같이 비천한 출신이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공자의 아버지인 숙량흘은 武人 출신으로 아들을 낳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다가 (첫째 부인에게는 아홉 딸을 낳고, 둘째 부인에게는 절름발이 아들 하나를 두었다고 함) 70세에 가까운 나이에 셋째 부인을 두게 되고, 그녀가 공자의 어머니인 안씨녀이다. 안씨녀는 당시 17세의 나이였는데 무녀출신이었다고 한다. 즉 武人과 巫女 사이에서 공자는 태어난 것이다.

더불어 그는 송나라(은나라) 출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아이덴티티를 철저히 노나라(주나라)로 규정하려고 노력하였다고 한다. 마음 속에 대립되는 두 가지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던 공자의 ‘과거에 대한 안티체계’가 그를 성장시킨 동력이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잠시 저자의 주장을 살펴보자.

공자의 삶이란 곧 송의 ’개비’적 성격으로부터 노의 ‘비개비’적 성격으로 근원적 전환을 시도하는 모험적 삶이었다. 은이라고 하는 디오니소스적인 세계를 탈피하여 주라고 하는 아폴로적 세계로 진입하려는 근원적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니체가 희랍비극정신을 말하면서 디오니소스적 세계와 아폴로적 세계의 융합을 말했다면 공자야말로 그러한 융합의 구현체였다.

그것은 곧 공자의 삶에서 최초로 우리가 의미론적으로 새롭게 규정하고 있는 성인(Sage)이 구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의 삶은 곧 종교적 성인(개비)으로부터 도덕적 문화적 성인(비개비)에로의 탈바꿈(transformation)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샤만적 충동(shamanic impulse)으로부터 도덕적 인격의 구현(moral incarnation)으로의 도약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자의 삶의 출발은 ‘죽음’이었다. 비천한 삶의 환경 속에서 죽음의 제식과 그 제식에 동반된 시례악(詩禮樂)을 익혔다. 그러나 공자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죽음으로부터 삶으로 탈출하느냐에 있었다. 죽음으로부터 삶으로 탈출하느냐에 있었다. 죽음의 가치를 어떻게 삶의 가치로 전환하느냐? 내가 살아있다고 하는 바로 그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 공자는 철저히 이 현세 속에서의 자기 존재의 가치를 알고 싶어했다. 공자는 그가 어려서부터 익힌 죽음의 세계를 철저히 삶의 세계로 이전시키고 싶어했다. 그것은 곧 자기뿌리와의 결별이었다. 죽음의 가치를 삶의 가치로 전화시키는 그 열쇠는 인간 공자에게 있어서 과연 무엇이었나? 그것이 바로 學(배움)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논어라는 서문의 첫 글자인 것이다. 그가 말하는 학이라는 것은 ‘미지의 세계로의 열음’이다. 끊임없는 대지의 삶의 가능성을 향한 도전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새로움의 수용이다.


즉 공자는 ‘배움’이라는 통로를 통해 ‘죽음의 의례’에서 ‘삶의 의례’로 나아가려 시도했으며, 이는 결국 그 스스로를 비천한 출신에서 고귀한 성인의 경지로 나아가게 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의지’를 통한 ‘배움’의 노력으로써 스스로의 위상을 새로이 할 수 있다는 다분히 사회개혁적인 사상임에 분명하다. 이미 주어진 것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움을 향해 끝없이 도전하고 나아갔던 공자의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로써 나는 공자에 대한 편견에서 제법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는 2500년 전에 살았던 ‘자기변화경영’의 대선배였다.

요새 고전의 맛을 부쩍 알기 시작한 것 같다. 논어를 읽다보니 다른 경전에 대한 욕심이 스물스물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기 시작한다. 고전을 읽으며 참 좋은 것이 예나 지금이나 통하는 인간사의 진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며, 책 속에서 그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다.

아래의 글은 서문 중 <순자>의 권학편에 소개된 글귀인데 마음에 와닿아 적으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정작 <논어>를 읽고 <순자>의 글을 인용하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학문의 자세’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궁극적인 뜻은 모두 통한다는 생각에서 공자도 이를 이해하리라고 생각한다.

지렁이에게는 손톱이라든가 이빨과 같은 날카로운 도구도 없고,
단단한 힘살과 강력한 뼈도 없지만 언제나 땅속에서 위로는 진흙을 먹고
아래로는 황천의 맛있는 물을 먹고 산다.
그것은 오직 마음을 한 군데 쏟기 때문이다
두 길을 동시에 걸어가려고 하는 자는
결국 어느 한 길도 그 목적지에 이를 수 없다.

 

3.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통서 : 인류문명전관

[30] 인류문명의 근원을 그레코, 로만 중심으로 생각하는 모든 역사 기술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편협한 편견의 소산일 뿐이다.

[36] 인류에 역사에 있어서 선사와 역사의 구분을 문자의 유무로 말하기 때문에 우리는 암암리 인간의 문명을 생각할 때 문자의 중요성을 극대화시킨다. 그러나 문자의 성립과 인간의 언어의 성립이 동시적이라는 터무니없는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고문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거대한 편견은 문자의 수준의 정도에 따라 문명수준의 고하를 운운하는데, 실상 그것은 부차적인 방법상의 문제일 뿐이다. 그 문명의 인식체계의 핵심적 정황을 그것으로 다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문자의 부재로 인하여, 실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고 하여 그들을 미개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39] 어찌 바알(파라오)이 나쁜 하나님이고, 야훼는 좋은 하나님이라는 규정성의 폭력이 가능한가? 인간의 언어에 대한 폭력적 규정은 인간의 사유에 대한 폭력적 규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52] 동방의 사람들이 20세기를 통하여 서방의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 것을 요약하면, 자본주의, 민주주의, 자연과학이라는 세가지 테마로 함축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결론은 이러한 서구문명(+미국)의 위대한 성취를 우리가 따라 잡는다고 해도 결코 인류사회가 더 바람직한 모습으로 발전한다든가, 우리의 삶이 보다 개선된 방향으로 나아가리라는 확실한 보장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상기의 세 가지 테마가 결국 서구문명의 총결이라고 한다면 그 결론은 매우 편협한 그레코 로만 문명의 흐름으로부터 파생된 것이고, 그것은 모두 기독교 문명의 횡포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희랍인의 수학, 유대인의 종교적 광신, 그리고 갈릴레오 이래의 자연과학이 모두, 기독교라는 미신과의 텐션 속에서 오늘날의 모든 제국주의적 문명의 형태에 기여한 것이다.

[56] 이집트문명의 특성은 그 풍요로움으로 인한 배타성의 결여이며, 따라서 삶과 죽음이 연속적으로 이해되고 선과 악의 이원적 대결도 그리 강렬한 실체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이에 비한다면 메소포타미아(수메르) 지역의 신들은 유일신앙을 고집하지는 않지만 보다 공격적이고 배타적이며 전쟁수호신적 성격을 강렬하게 지니며, 특히 선악의 이원적 대결구조가 너무도 선명하다. 그리고 죽음과 삶의 세계가 단절되어 있고 인간세와 초월계가 뚜렷히 이원화 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종교라고 하는 것은 모두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사막문화를 원형으로 하는 것이다. 이집트는 사막지대에 위치하고 있지만 문명의 요람으로서의 나일강 유역은 사막적 성격이 없다. 그것은 농경문화일 뿐이다. 사막에서는 한 텐트 안에서 생활하는 배두윈들의 강렬한 결속력과 배타성, 그리고 초월적 힘에 대한 절대적 숭배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공동체의 수직적 하이어라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러한 하이어라키의 구조는 신과 인간 사이에도 철저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유대교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왔다갔다하면서 그 중간에서 태어난 비교적 후대의 산물이지만 이집트의 영향보다는 역시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이 압도적이다. 최근에 발견된 쿰란공동체 사해문서에 담겨있는 공동체 규약을 보아도 이들이 얼마나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의 영향을 강렬하게 반영하고 있는지 자명하게 드러난다. 선과 악의 대결, 공동체내의 사람과 공동체외의 사람의 구분, 선한 영과 악한 영, 어둠의 자녀와 빛의 자녀, 저주의 시대와 구원의 시대, 종말론적인 최후의 전쟁, 최후의 심판, 메시아 이 모든 어희들이 종교라는 이름하에 인간세에서 펼쳐지고 있는 열악한 형태의 모든 가능성을 구현하고 있다. 이러한 이원론이 후에 요한복음의 ‘빛과 어둠’의 로고스사상으로 발전하고 이것이 재림의 묵시론적 환상과 결합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59] 이집트로부터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페르시아를 거쳐 인더스강 계곡에 거쳐 갠ㅅ지스강역에 이르는 동안 꾸준히 초자연적 세계의 신성은 탈색되어간 것이다. 붓다에게는 더 이상 신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60] 불교에 있어서는 종교란 일종의 심리학에 불과하다. 神理는 心理일 뿐이다. 인간의 마음의 집착을 해소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종교적 재앙은 사라질 수가 있다. 종교적 환상과 신적 실체가 실제로는 정치권력과 결탁되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싯달타의 혁명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이미 인류의 신적 지혜 (Divine wisdom)는 갈 수 있는 궁극에 도달한 것이다. 多가 一로 진화하고, 一이 제로(zero)로 진화한 것이다. 아이코노클라즘(Iconoclasm)을 이야기한다면 싯달타의 아이코노클라즘보다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이고 래디컬한 것은 없다. 이러한 제로의 평명 위에 우리의 주인공 공자는 인문학적 윤리학을 건설하였던 것이다.

[61] 고전이란 古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今에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땅에서 자라나는 나의 우학들이 옛 고전만을 공부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2000년 후에도 읽힐 수 있는 고전을 남겨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67] <순자>의 권학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지렁이에게는 손톱이라든가 이빨과 같은 날카로운 도구도 없고,
단단한 힘살과 강력한 뼈도 없지만 언제나 땅속에서 위로는 진흙을 먹고
아래로는 황천의 맛있는 물을 먹고 산다.
그것은 오직 마음을 한 군데 쏟기 때문이다
두 길을 동시에 걸어가려고 하는 자는
결국 어느 한 길도 그 목적지에 이를 수 없다.

논어의 서막
공자의 생애와 사상

[75] 기억은 과거의 사실이 아닌, 과거 체험의 해석이다. 과거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과거는 선택이며, 해석이며, 상징이다.

[77]<노자>속에는 노자가 없다. 그러나 <논어>속에는 어느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시공의 맥락에 따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논어>는 사람들간의 논어다. <노자>는 시공을 초월해서 존재할 수 있지만 <논어>는 시공의 구체적 맥락 속에서만 일차적으로 의미를 갖는다.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적 의미는 반드시 이러한 시공 속의 맥락을 전제로 할 때만이 발현하는 것이다.

[82] 사마천은 공자를 제후의 대열인 세가에 집어넣었다. 이것은 당대 이미 공자의 위치가 만만치 않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본기:제왕의 역사, 세가:제후의 역사, 열전: 그 외 유명인물사)

[84] <공자세가>야말로 권력의 희생양으로 불알발린 사마천이 분세의 그 마음 속 깊은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권력을 흠모했다가 결국 권력 그 자체를 부정했던 공자라는 인간에 대한 경애감으로 집필한 역작임에 틀림이 없다

[91] <논어>라는 텍스트가 없이도 이미 공자와 그의 집단의 행적과 언론은 전국시대 때 제자백가에 의하여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는 사후에 크게 역사의 표면에 등장하지는 않았을지언정, 역사를 움직여가는 많은 사람들의 의식의 배면에 자리잡고 있었던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였다. 제자백가의 흥기는 기실 이 공자집단이라는 이 에너지에 제동을 걸든가 혹은 철저히 옹호하든가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피어난 것이다. 이들 모두가 논어라는 텍스트를 정확히 인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논어의 많은 사상적 ‘주제’들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92] 사마천의 <공자세가>는 공자에 관하여 최후로 쓰여진 소설의 집대성이다. 그 이전의 모든 단편소설을 묶어 장편으로 편집한 것이다.

[93] <장자> 속에는 공자에 대한 수없는 알레고리가 있다. 그러한 알레고리를 통하여 반사적으로 자기의 사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장자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마구 희화한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초라한 모습으로 무대 위에 올려진다. 그러나 나는 <장자> 속에 그려지고 있는 공자의 소설 속에서 매우 진실한 공자의 상을 본다. 공자는 공자를 디펜드하려는 자들 속엔 존재하지 않는다. 공자는 공자의 비판자들 속에서 그 모습을 선명히 드러낸다. 안회속에는 공자가 보이지 않는다. 공자의 모습은 오히려 자로 속에 있다.

[94] 묵자는 공자를 극렬하게 비판하지만 그 언설을 뒤집고 보면 묵자야말로 공자의 충실한 후계자임이 분명해진다. 묵자가 말하는 “겸애”나 “절용”은 그 이데올로기적 외피를 벗기고 보면 이미 공자의 핵심적 사상에 속하는 것이다. 묵자는 공자의 핵심사상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독자성을 인정받기 위하여 공자를 가차없이 비판한다.

[94] 맹자가 유교(Confucianism)의 적통일지는 모르지만, 공자의 가르침(Teaching of Historical Confucius)에 대해서는 최대 이단일 수도 있다. 맹자에게는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의 공자가 없다. 仁義라는 도덕주의적 사상의 주체로서 추상화 되어있고 논리화 되어 있고 형해화 되어 있다. 맹자에게는 공자는 삶의 예지의 역사적 전승이 아닌, 맹자 자신의 주장의 논리적 근거를 제시해주는 이념일 뿐이다.

[96] <논어>속에는 제자백가의 모든 원형이 숨어있다. <논어>는 결코 유교만의 성전이 아닌 것이다.

[96] 장자가 희화하고 있는 공자의 모습은 공자의 본래 모습이 아니라 바로 맹자계열에 의하여 도덕주의적으로 고착화되어 버린 공자에 대한 모멸감의 분출이다. 공자에게는 본시 유, 도의 구분이 있을 수 없었다. <장자>의 자유분방한 설화문학을 통해서 오히려 우리는 공자의 살아 있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것이다.

[101] 공자의 이름이 구(丘)이다. 공자의 이름은 ‘언덕대가리’, 가장 친근한 우리말로는 ‘짱구’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공짱구’, 아들의 이름은 ‘공잉어(공리鯉)’이다. ‘짱구와 잉어’라는 부자의 이름이야말로 우리가 그 출신의 비천함을 알 수 있는 너무도 명백한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國君의 공경의 대상으로 기술되는 사태는, 후대의 공자인식이 어떻게 왜곡되었는가, 공자가 말년이나 사후에 점한 어떤 위치에 의하여 그 삶의 모든 사건이 유기적으로 일관되게 해석되어야 했던 어떤 권위주의적 인식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104] 공씨 가문의 사람들이 짱구와 잉어, 이런 천한 이름을 소지한 신분의 사람들이다. 게다가 잉어의 아들 자사까지 삼대에 걸쳐 모두 이혼한 불행한 가족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가정 중심의 도덕원리를 표방한 유교의 패러곤들의 실상이 과연 무엇일까?

[105] 나는 세칭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경우, 반드시 그 정체를 폭로하고 그 가면을 벗겨내리고 그 신화적 의미를 깍아내리는 짓을 통해서만, 그들의 실상이 드러나고 실증사학의 정신이 성취된다는 그러한 단순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비신화한의 목적이 저속화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파헤치고 있는 과정은 단 하나의 뚜렷한 목적을 가진다. 공자라는 인간, 그 인간의 삶과의 만남이다.

[108] 논어는 공자가 직접 쓴 책도 아니고 공자의 직전 제자들이 편찬한 것도 아니다. 공자 사후에 오랜 세월에 걸쳐 공자문인들의 다양한 유파에 의하여 성립한 단편들이 집적된 것이다. 어찌 논어만이 공자의 진실한 모습을 전달한다고 호언할 수 있단 말인가? 논어도 공자가 죽은 후 삼사백년 후에나 편집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논어는 유교의 이단서이다. 논너야말로 성인공자의 최대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논어가 유교의 이단이라 함은, 유교를 국가종교로 만드려고 하는 사람들, 유교를 절대적인 권위 체계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논어의 정직하고 비권위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은 이단으로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논어가 성인 공자의 걸림돌이라 함은 공자를 성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논어에 비치는 너무도 인간적이고 변화무쌍한 희노애락의 공자상은 성인화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논어에 있어서처럼 한 인간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펼쳐진 문헌은 고대세계에 그 유례가 없다. 서구문명의 고전을 이루는 대부분의 문헌이 초자연적 설화나 신화적 각색을 탈피하지 못한다. 논어는 인류문명사의 한 축복이다. 
[127] 오늘날 발달한 문자학의 연구는 ‘성聖’이라는 글자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요소는 귀(耳)라는 부수에 있는 것임을 말해준다… 이 모두 소리를 귀로 듣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소리”란 곧 “신의 소리”다. ‘성聖’’이란 곧 ‘신의 소리를 들음’이다. 성인이란 곧 신탁의 소리를 듣는 ‘무당’이란 뚯인 것이다.

[128] 공자가 성인의 후예라는 말은 곧 ‘무당집 자손’이라는 뜻이다.

[129] 우리국악계에 통용되는 말로서 ‘개비’라는 말이 있다. 개비란 그 태생으로부터 국악인의 집안에서 큰 달인들을 말한다. 그런데 개비의 백퍼센트가 무속집안이다. 즉 개비는 모두 ‘성인’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실상 모두 사마천의 기술대로 빈하고 천한 사람들이다. 이 개비들의 큰 특징으로서 우리는 두 측면을 들 수 있다. 그 첫째가 그들은 상례(喪禮, 시킴굿)의 달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둘째가 곧 그들은 가무의 달인이며, 또 탁월한 악사들이라는 것이다.

[131] 성인의 일차적 의미는 바로 이러한 ‘죽음의 세계’와의 관련 속에서 그 구체적 맥락을 잡아야 할 것이다. 논어가 말하는 禮의 핵심이 관혼상제 중에서도 바로 신종추원하는 喪禮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대사회에 있어서의 상례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예는 사회질서의 근간이었고 그 예의 근간은 상례였다. 상례는 삶과 죽음의 교두보였기 때문에 가장 정중하고 가장 화려하게 치루어졌으며 음악과 춤의 전문성이 요구되었다. 그것이 고대문화의 핵이었다.

[132] 송(宋)과 노(魯)는 곧 중국고문명의 쌍벽인 은(殷)과 주(周)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136] 공자는 송나라의 후예다. 공자는 분명 송나라 사람이다. 그러니까 공자는 은나라 사람인 셈이다. 송을 통해 내려오는 은나라 문화전통을 계승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공자는 노나라에서 태어났고 노나라 사람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살았다. 그러니까 공자의 삶의 입각처 자체가 이미 태생부터 매우 미묘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141] 왜 그다지도 유대인들은 천재적인가? 예수로부터 지그문트 프로이드, 칼 맑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춈스키나 아인슈타인, 마르크 샤갈에 이르기까지 왜 이들 민족에서만 집약적으로 천재들이 쏟아지는가? 나는 그 이유는 실로 간단히 설명된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다이애스포라에서 사는 과정을 통하여 어떤 내면적 갈등을 축적해왔으며, 그것은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다면적 성격을 갖는 것이다.

[142] 다이애스포라에서 배출되는 유대인 천재들이라 해서 반드시 유대인의 전통과 인습을 찬양하지는 않는다. 맑스에게 있어서나 프로이드에 있어서나 유대인의 문제는 근원적으로 숭배나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되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맑스나 프로이드에게 있어서 유대인은 궁극적으로 해방의 대상이다.

[143] 공자는 송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아이덴티티를 철저히 노인으로 규정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분열은 곧 자기가 송인이라는, 바로 그 자신의 속성을 거부하는 안티테제의 정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기부정은 성인의 길의 출발이다.

[145] 공자의 삶이란 곧 송의 ’개비’적 성격으로부터 노의 ‘비개비’적 성격으로 근원적 전환을 시도하는 모험적 삶이었다. 은이라고 하는 디오니소스적인 세계를 탈피하여 주라고 하는 아폴로적 세계로 진입하려는 근원적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니체가 희랍비극정신을 말하면서 디오니소스적 세계와 아폴로적 세계의 융합을 말했다면 공자야말로 그러한 융합의 구현체였다.

그것은 곧 공자의 삶에서 최초로 우리가 의미론적으로 새롭게 규정하고 있는 성인(Sage)이 구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의 삶은 곧 종교적 성인(개비)으로부터 도덕적 문화적 성인(비개비)에로의 탈바꿈(transformation)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샤만적 충동(shamanic impulse)으로부터 도덕적 인격의 구현(moral incarnation)으로의 도약을 의미하는 것이다

[155] 공자의 삶의 출발은 ‘죽음’이었다. 비천한 삶의 환경 속에서 죽음의 제식과 그 제식에 동반된 시례악(詩禮樂)을 익혔다. 그러나 공자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죽음으로부터 삶으로 탈출하느냐에 있었다. 죽음으로부터 삶으로 탈출하느냐에 있었다. 죽음의 가치를 어떻게 삶의 가치로 전환하느냐? 내가 살아있다고 하는 바로 그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 공자는 철저히 이 현세 속에서의 자기 존재의 가치를 알고 싶어했다. 공자는 그가 어려서부터 익힌 죽음의 세계를 철저히 삶의 세계로 이전시키고 싶어했다. 그것은 곧 자기뿌리와의 결별이었다. 죽음의 가치를 삶의 가치로 전화시키는 그 열쇠는 인간 공자에게 있어서 과연 무엇이었나? 그것이 바로 學(배움)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논어라는 서문의 첫 글자인 것이다. 그가 말하는 학이라는 것은 ‘미지의 세계로의 열음’이다. 끊임없는 대지의 삶의 가능성을 향한 도전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새로움의 수용이다.

[156] 공자의 학은 요새말로는 정치와 교육을 의미한다. 공자에게서 정치는 곧 삶의 예의 정치였다. 공자에게서 교육이란 곧 이 삶의 예를 제자들의 삶에 구현시키는 것이었다. 예는 곧 삶의 질서의 총칭이었다. 공자는 이제 개비적인 삶을 탈피하여 철저히 정치적 삶을 추구하게 된다. 정치적 권력만이 그에게 예약의 실현의 기회를 허용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166] 공자의 집단의 성격은 애초에는 武와 巫의 결합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이러한 武와 巫의 성격 속에서 새로운 文의 요소를 창출했다. 이 새로운 문의 요소야말로 향후의 사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다. 즉 사는 신분적으로 계급적으로 고정된 位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사문의 획득자가 된 것이다. 공자가 새롭게 규정한 사문은 공부에 의하여 획득하는 자는 누구든지 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공자교단이야말로 중국역사에서 최초로 등장한 사의 전문적 집단이다.

[172] 자로가 처음 공자를 만났다. 공자가 말하였다. “그대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자로가 대답했다. “나는 긴 칼을 좋아한다. “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그런 것을 물은 것이 아니다. 단지 그대의 능한 바에다가 학문을 얹히기만 한다면 아무도 그대를 따를 바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자로가 말하였다. “학문이라는 것이 도무지 무슨 도움이 될 것이 있는가?...남산에 푸른 대나무가 있는데 휘어잡지 않아도 스스로 곧고, 그것을 짤라 화살로 쓰면 가죽과녁을 뚫어버린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한다면 뭘 또 배울 것이 있겠는가?”
공자가 타이르며 말했다. “그 대나무 밑둥아리를 잘 다듬어 깃털을 달고, 그 앞머리는 쇠촉을 달아 날카롭게 연마한다면, 그 가죽을 뚫는 것이 더 깊지 않겠는가?”
이에 자로는 무릎꿇고 두 번 절하였다. “삼가 가르침을 받겠나이다.”

[176] 자로의 인생의 출발은 숫탉 꽁지깃털과 산돼지 불알이다. 그런데 그의 삶의 마감은 죽음 앞에 태연히 정좌하고 앉아 갓끈을 매는 모습이다. 숫탉꽁지털에서 갓끈으로의 트란스포메이션, 바로 이것이 공자의 삶의 본질이며, 자로의 삶의 도약이며, 향후 모든 ‘사’의 의미를 규정하는 인류사의 교양의 전범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곧 내가 말하는 武와 巫에서 사문을 창출해낸 공자의 위대성이다.

[189] 공자는 안회를 편애했다. 안회는 두말 할 나위없이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다. 안회의 죽음은 곧 공자의 仁사상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자의 학문의 적통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자의 학문은 안회와 더불어 죽고, 공자라는 인간은 자로와 더불어 죽은 것이다. 결국 공자는 현세에 세속적으로 남긴 바가 없다. 공자와 더불어 모든 것이 단절된 것이다. 향후의 모든 출발은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그것이 곧 공자의 축복이었다. 그것이 오늘의 논어를 보다 잡하고 보다 생생하고 보다 여백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공자의 삶은 미완성교황곡이다.

[190] 정자(程子)의 말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요새 사람들은 책을 읽을 죽을 모른다. 논어를 읽으매, 읽기 전에 ‘이런 놈’이었는데, 읽은 후에도 ‘이런 놈’일 뿐이라면 그 놈은 전혀 논어를 읽은 자가 아니다.

논어는 선이다. 논어는 그냥 읽으면 아니 된다. 바울이 말한 바대로 항상 마음이 새로워지는 (transformed by the renewal of your mind 로마서 12:2) 변화의 체험이 있어야 한다. 논어는 트랜스포메이션인 것이다. 읽기 전에도 이놈이고 읽은 후에도 이놈이라면 전혀 트랜스포메이션이 없는 것이다. 논어는 재즈요, 선이요, 대각이다.

[198] 사서를 육경보다 높인다는 것은 엄청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육경은 ‘선왕지도’라는 개념 속에 포섭되는 문헌이다. 그러나 공자는 소인素人이기 때문에 선왕의 반열에는 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육경보다 사서를 높이게 되면 ‘공자지교’가 실제로 ‘선왕지도’를 능가하게 되고, 공자가 선왕의 지위를 대신하는 것이다. 즉 유교는 선왕지도를 존숭하는 유교가 아니라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유교로 성격전환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왜 이토록 공자를 선왕보다 더 높여야 했을까? 그 배면에는 북송정권이 이민족에게 굴욕적인 패망을 당하면서(정강지변) 주전파들에게는 민족주의적 비분이 솟구쳤고, 따라서 외래사상에 대하여 주체사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강렬한 요구가 솟아났다. 여기 외래사상이라 함은 수당을 통하여 장려한 화엄을 만개시킨 불학을 말하는 것이요, 주체사상이라 함은 선진시대로부터 정립되어 내려오는 유교의 도통을 말하는 것이다. 그 도통의 소이연은 물론 강력한 도덕주의의 회복이다.

[201] 소승유교와 대승유교
유교의 도는 선왕의 제작이 아니라 하늘의 이법을 구현한 것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자느 ㄴ선왕을 뛰어넘는 인물이 된다. 대승적 유교사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자의 도는 결국 하늘의 이치이므로 하늘의 이치를 구현한 모든 인간이 공자가 될 수 있고 요순이 될 수 잇고 선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서 말하는 성불이 여기서는 성인이 된다고 하는 위성으로 탈바꿈되는 것이다. 유학은 위성의 학문이요, 따라서 위인지학(남을 위한 배움)이 아닌 위기지학(나를 위한 배움)이다. 이렇게 되면 나의 본성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져야 하고, 또 보편적 인간에 대한 인식이 심화되어야 한다.

學而第一

[24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워 때에 맞추어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 하는 자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 하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249] 공자가 말하는 學이란 바로 ‘학’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규정하는 과정 그 자체인 것이다. 공자에게 있어서 학이란 ‘무지로부터의 탈출’이며 ‘미지의 새로움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이다.

[250] 공자의 일생을 통해 추구한 學의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학문(Wissenschaft)이 아닌, 예, 악, 사, 어, 서, 수로 통칭하는 육예를 말한 것이다.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 악이라는 개념이다.

[250] 習은 學과 병치되는 독립된 개념이다. 습(익힌다)이라는 것은, 학이 미지의 세계로의 던짐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실천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실천은 반드시 ‘때’를 갖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時란 ‘때때로(occasionally)’의 뜻이 아니라 ‘때에 맞추어(timely)’의 뜻이다.

[253] 여기서 말하는 ‘붕’이란 우리말의 단순한 ‘친구’가 아니다. 붕이란 고금의 주소가 다 지적하고 있듯이 ‘붕당’이요, ‘동문’이요, ‘동지’다. 그것은 개인적 친구가 아니라 학을 위하여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255] 이 마지막 구문, ‘인부지이불온’을 역설적으로 뒤집는다면, 공자의 인생은 분노와 한에 찬 인생이었다. 알아주는 이 없는 고독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최후의 위안은 바로 자신이 군자요 대인유라고 하는 자부감, 즉 소인으로부터의 탈출의 기쁨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렇게 본다면 이 세 병치되는 탄성처럼 공자의 인생의 토탈리티를 그려내는 명구도 드물 것이다. 공자의 그칠 줄 모르는 호학정신, 붕당을 통한 학단의 형성, 그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덕성의 정도, 그리고 정치적 좌절로 인한 새로운 문명패러다임의 창조와 도약, 이 모든 것이 드러나 있다.

[273] 교언영색에 대한 공자의 혐오감은 바로 불립문자를 외치는 대승불학의 ‘선’의 정신의 조형적 가치관을 형성한 것이다. 동양인들은 ‘말 잘하는 자’를 평가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와 같은 소피스트를 공자는 기피한다.

[274]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명저 트락타투스를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내고 있다
Whereof one cannot speak, thereof one must remain silent.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할 지어다.

[297] 공자 말년의 제자들, 공자의 유랑 장정의 고난에 직접, 간접으로 참여한 적이 없는 어린 세대들은 공자의 인간내면의 핵심적 생각들을 파악할 길이 없었다. 그들에게 공자는 너무도 멀리 있었다. 그들은 이미 신화화 되어버린 공자의 형해만을 쫓고 있었다. 공자의 사상은 안회와 더불어 죽은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증자의 효에 대한 내면적 생각조차 증자의 문인들에 의하여 점점 형식주의적으로 윤색되어갔고 그것은 결국 ‘곡례’스타일의 제식으로 고착화 되어 갔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종교적인 ‘충효’의 사상으로 비약의 전기를 맞는다.

[298] 信이라는 말은 현대인이 기독교의 신앙(Belief)과 결부시켜 해석하는 오류가 많은데, 그것은 반드시 경계되어야 한다. 신은 서양언어의 ‘믿음’이 아니다. 신은 오직 실증성(vertifiability)을 일차적 특성으로 하는 것이며, 실증성이 확보되었을 때만 믿음성(credibility)이 보장되는 것이다. 信은 오직 실증적 사태에 국한되는 것이다. 信은 주로 인간의 ‘言’과 관련되며, 그 언의 실증성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312] 공자께서 말씀하였다.
“젊은이들이여! 들어가서는 효성스럽게 하고, 나와서는 다정하게 하시오. 말을 삼가하되 믿음 있는 말만 하시오. 많은 사람을 널리 사랑하되 인한 자를 가까이 하시오. 이 모든 것을 실천하고 남음이 있으면 곧 문자를 배우시오.”  

[33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무게있게 행동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학문을 해도 견고하지 못하게 된다. 우러나오는 마음과 믿음있는 말을 주로 하며,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삼지 아니하며,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않는다.”

[336] 이 장의 대의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액센트는 역시 ‘과즉물탄개’에 놓여있다. 인간은 허물을 저지르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To err is human, to forgive dinvine’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일, 그것을 용서하는 일은 신의 일)이라는 시인 알렉산더 포프의 유명한 말대로 인간은 ‘허물’을 향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것을 용서하는 것은 신의 사업이 아니다. 용서 그 자체가 나의 실존적 사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유교는 인간을 신에게 떠맡기지 않는다. 잘못은 결국 내가 아는 것이다. 내가 안다면 바로 고쳐야 하는 것이다. 그 고침에 거리낌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허물을 고치기를 거리끼는 인간, 그것이 바로 소인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변의 군상이요, 나의 모습인 것이다. 나의 행위가 나의 존재에 허물됨을 자각하는 순간, 그 허물됨을 고치기를 꺼려한다면 그는 영원히 배움의 길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의 종언이다. 허물이란 고치면 끝나버리는 것을

[401] ‘불환막기지, 구위가지야’(남이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참으로 알려질 수 있기를 구하라)라고 한 뜻과 내면적으로 상통하게 된다. ‘나’의 내면적 실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남이 나를 모른다는 것을 탓하기에 앞서 내가 참으로 알려질 수 있는 내면적 실력을 함양하는데 더 주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구하지 말라! 나에게 알려질 만한 그 무엇이 참으로 내재하고 있는가를 반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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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8 [30]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 인용문 수희향 2009.11.17 2593
2117 [30]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 저자 & 내가 저자라면 [1] 수희향 2009.11.17 2459
2116 운동학습과 제어 [3] 백산 2009.11.16 13717
2115 나의 동양고전 독법-강의(신영복) [2] 書元 이승호 2009.11.15 3258
2114 '니체, 천 개의 눈, 천개의 길' - 고병권 file 희산 2009.11.09 3239
2113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고병권 정야 2009.11.09 2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