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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8일 05시 38분 등록

<3: 대비>

10. 만물의 통일성

ü         앞의 다섯 장에서 기술된 정신적 전통들은 여러 세부 사항에서는 비록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 세계관에 있어서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175).

ü         이 모든 전통 속에서 발전되어 온 세계관의 근본적 요소들은 동일하다. 또한 이러한 원리들은 현대 물리학으로부터 도출되는 세계관의 근본적 특색들과 유사하다 (175).

ü         동양적 세계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모든 사물과 사건들의 통일성과 공동의 상호 관계에 대한 깨달음, 곧 세계의 모든 현상을 기본적으로 전일성의 현시로서 체험하는 것이다. 모든 것들이 이 우주 전체의 상호 의존적이며 불가분의 부분들로서, 다시 말하면 동일한 궁극적 실재의 다른 현현으로서 이해된다. 동양의 전통들은 그 자신을 만물에서 나타내며, 만물은 그의 부분들인 이 궁극적이고도 불가분의 실재에 관해 끝없이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힌두교에서는 ’, 불교에서는 법신’, 도교에서는 라고 불린다. 그것은 모든 개념과 범주를 초월하기 때문에 불교도들은 그것을 일어 또한 진여라고도 부른다 (175~6).

n        영혼에 의해 진여로 의미지워지는 것은 만물의 전체적인 전일성, 즉 모든 것을 포용하는 거대한 전체다.

ü         일상적 생활에서는 우리는 이 만물의 통일성을 깨닫지 못하고 세계를 개별적 사물들과 사건들로 나눈다. 물론 이 분할이 우리의 일상적 환경을 다루는 데에는 유용하고 필요하나 그것이 실재의 참 모습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분별하고 범주화하는 지성이 궁리해 낸 하나의 추상이다. 개별적 사물들사건들이라는 우리의 추상적 개념을 자연의 실상이라고 믿는 것은 망상이다. 힌두교도와 불교도들은 이 망상이 마야의 주술에 걸려 잇는 마음에서 생겨난 무명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동양의 신비적 전통들의 주목적은 명상을 통하여 마음을 집중시키고 가라앉혀서 재조정하는 것이다. 명상에 대한 범어 사마디는 글자 뜻대로 하면 정신적 평형을 의미한다. 그것은 조화롭고 평온한 마음가짐을 가리키는데, 그 가운데에서 우주의 기본적 통일성이 체험되는 것이다 (176).

n        청정한 삼매에 들게 되면 우주의 절대적 전일성을 의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얻게 된다.

ü         우주의 근본적인 전일성은 신비적 체험의 중심적 특성일 뿐만 아니라 또한 현대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 중의 하나다. 그것은 원자의 단계에서 나타나게 되었으며, 아원자적 소립자들의 영역에까지 물질을 더 깊이 투시해 들어감에 따라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모든 사물들과 사건들의 통일성은 현대 물리학과 동양 철학에 관한 우리의 대비를 일관하는 하나의 반복되는 주제가 될 것이다. 아원자 물리학의 다양한 모델들을 연구해 감에 따라 그것들이 물질의 구성 요소들과 그에 관련된 근본적 현상들이 모두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 관계적이고, 상호 의존적이라는, 그리고 그것들이 고립된 실체들로서가 아니라 단지 전체의 완전한 부분들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동일한 견해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거듭 표현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177).

ü         다음에 이어질 논의는 이른바 양자론의 코펜하겐 해석이라 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는 1920년대 말기에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에 의해 전개된 것으로 아직도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델이다 (178).

ü         코펜하겐 해석의 출발점은 물리적 세계를 관찰되는 세계 (‘대상’)와 관찰하는 체계로 나누는 것이다. 관찰되는 체계는 원자, 아원자적 소립자, 원자적 작용 등등이 될 수 있다. 관찰하는 체계는 실험 장치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사람이나 몇 명의 관찰자를 포함한 것이다. 그 두 체계가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진다고 하는 사실로부터 이제 커다란 어려움이 발생한다 (178).

ü         관찰되는 체계는 양자론에서 확률에 의해 기술된다. 이것은 어떤 시간에 아원자적 소립자가 어디에 있을 것인지, 혹은 원자적 작용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확실히는 결코 예견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란 가능성을 예견하는 것이다 (179).

ü         이러한 통계적 예견들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분명 많은 측정을 요한다 (179).

ü         아원자적 입자들은 일정한 시간에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려는 경향을 나타낸다. 그리고 원자적 사건들은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방식으로 확실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179).

ü         전자의 위치에 관해서는 말할 수 없고 단지 어떤 지역들 내에 있을 경향에 관해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180).

ü         두 종류의 기술- 실험 배치에 대한 고전적 용어와 관찰된 대상에 대한 확률 함수- 사이에 있는 대조는 아직도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는 깊은 형이상학적 문제로 이어진다 (180).

ü         다른 한편, 우리가 입자에 관해서 혹은 어느 다른 관찰된 체계에 대해서 말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처음엔 준비되고 다음엔 측정된 어떤 독립된 물리적 실체를 마음 속에 갖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면 원자 무리학에서 관찰과 관련된 근본적 문제는- 핸리 스탭의 말을 빌리자면 관찰되는 체계는, 관찰되기 위해서는 상호 작용을 하나 정의되기 위해서는 따로 떼어질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182).

ü         관찰되는 대상은 준비의 과정과 측정의 과정 사이에 있는 상호 작용의 표현이다 (183).

ü         이처럼 원자론은 우주의 본질적인 상호 연결성을 드러내 준다. 이는 세계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최소 단위로 분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 닐스 보어의 말을 빌리면 독립된 물질적 입자들이란 추상물로서 그들의 속성은 다른 체계들과의 상호 자굥을 통해서만 정의될 수 있고 관찰될 수 있는 것이다 (183~4).

ü         양자론은 우리로 하여금 우주를 물리적 대상들의 집합으로서가 아니라 통일된 전체의 여러 가지 부분들 사이에 있는 복잡한 관계망으로서 보게 한다. 그런데 이는 동양의 신비가들이 세계를 체험했던 방법으로서, 그들 중의 몇몇은 그 체험을 원자 물리학자들이 쓴 것과 거의 같은 말로 표현하였다 (185).

n        만물은 서로 의존하는 데에서 그 존재와 본성을 얻는 것이지, 그 자체로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ü         원자 물리학자에 의한 다음의 두 진술은 이번엔 자연의 신비적 체험에 관한 기술로서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185).

n        한 소립자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분석 불능의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본질상, 밖으로 다른 것들에 미치는 일련의 관계다.

n        따라서 세계는, 그 안에서 복합적인 사건들이 서로 다른 종류의 연결들과 교체하고 겹쳐지고 종합되어서 전체의 구조를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ü         현대 물리학으로부터 도출되는 상호 연결된 우주적 망이란 상 (이미지)은 동양에서 자연에 대한 신비적 체험을 전달하는 데 널리 쓰여 왔다. 힌두교도들에게 있어서 브라만은 우주적 망을 통일시켜 주는 망사로서 모든 존재의 궁극적 기반이다 (186).

n        그에게서 하늘과 땅과 대기가 엮어지고/ 바람과 목숨 있는 생령이 엮어진 것을/ 하나의 영혼인 그만이 알고 있네

ü         우주적 망의 이미지는 불교에서 한층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승 불교의 주요 경전 가운데 하나인 <화엄경>은 그 핵심 부문에서 이 세계를 완벽한 상호 관계의 망으로서 그리고 있는데, 거기에서 모든 사물들과 사건들은 무한히 복잡한 방식으로 서로 작용을 주고 받고 있다 (186).

ü         우주적 망은 마침내 대승 불교의 일파로서 서기 3세기경 인도에서 기원하여 오늘날 티베트 불교의 주종파를 이루고 있는 탄트라 불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86).

ü         동양의 신비주의에서 이 우주적 상호 연결성에는 언제나 관찰자와 그 의식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점은 원자 물리학도 마찬가지다. 원자의 단계에서, ‘대상들은 준비와 측정의 과정 사이에 있는 상호 작용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이 연쇄 과정의 종국점은 언제나 관찰자의 의식에 놓여 있다 (187).

ü         하이젠베르크는 자연 과학은 자연을 단순히 기술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우리 자신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 작용의 일부다라고 말하였다 (187).

ü         원자 물리학의 결정적인 특성은 어떤 대상의 속성을 관찰하기 위해서 관찰자는 반드시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속성들을 정의하는 데에도 관찰자란 존재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자 물리학에서 우리는 대상 그 자체의 속성에 관해서는 말할 수가 없다. 그것은 대상과 관찰자의 상호 작용이라는 맥락에서만 의미가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질문 방식에 따라 도출된 자연이다.” 관찰자는 그가 어떻게 자기의 측적을 진행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이 조정에 따라 관찰되는 대상의 속성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결정지어진다. 실험상의 배열이 변경되면 이번에는 관찰되는 대상의 속성이 변할 것이다 (187).

ü         원자 물리학에서 과학자는 초연한 객관적 관찰자의 역할을 할 수 없고, 단지 관찰되는 대상의 속성에 그가 영향을 미치는 정도만큼 자신이 관찰하는 바로 그 세계에 개입하게 된다. 존 휠러는 관찰자가 이러한 방식으로 개입하게 되는 것을 양자론의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여기고, ‘관찰자라는 말을 참여자로 대치시킬 것을 제의하였다 (188).

n        양자론은 20센티미터의 판유리 조각을 사이에 두고 관찰자와 안전하게 분리되어 있는 저 바깥에 놓여 있는세계라고 하는 개념을 깨뜨렸는데, 양자론에 관해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 그는 그가 선택한 추정 장치를 설비해야 한다. 그가 위치를 측정할 것인지 운동량을 측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 달려 있다. 어느 하나를 측정하기 위한 장치를 설비한다는 것은 곧 다른 것에 대한 측정 장치를 가로 막고 배제하는 일인 것이다. 더욱이 측정은 전자의 상태를 변화시킨다. 우주는 그 후 결코 동일하지가 않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것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관찰자라는 낡은 말을 지워 없애 버리고 그 자리에 참여자라는 새로운 말을 집어 넣어야 한다. 좀 이상한 의미지만, 우주는 참여하는 우주다.

ü         관찰 대신에 참여라는 생각은 현대 물리학에서는 겨우 최근에야 공식화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신비주의를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잘 알려져 있는 생각이다. 신비적 견식이란 단지 관찰에 의해서만 결코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자기의 존재 전부를 쏟아 넣는 전적인 참여에 의해서만 얻어진다. 따라서 참여자의 개념은 동양적 세계관에 있어서는 결정적인 것이며, 동양의 신비가들은 이 개념을 관찰자와 관찰되는 것, 3주체와 객체가 불가분일 뿐만 아니라 구별조차 할 수 없게 되는 극한까지 밀고 나간다. … 그들은 더 나아가, 깊은 명상 속에서 관찰자와 관찰되는 대상의 구별이 완전히 무너지고 주체와 객체가 통일되고 차별이 없는 전체에로 용해되는 단계에까지 도달하였다. 그리하여 <우파니샤드>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189).

n        이원성이 있는 곳은 말하자면 다른 것을 보고, 하나가 다른 것을 냄새 맡고, 하나가 다른 것을 맛보는 곳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 되는 곳에서는 무엇에 의하여 무엇을 본단 말인가? 무엇에 의하여 무엇을 냄새 맡는다는 것인가? 무엇에 의하며 무엇을 맛본단 말인가?

ü         이는 곧 만물의 통일에 대한 궁극적 파악이다. 신비가들이 말하는 대로 이것은 우리의 개별성이 차별 없는 일자에로 용해되어서, 감각의 세계는 초월되고 사물의 개념이 없어진 그러한 의식 상태에 도달된 것이다. 장주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190).

n        몸과 그 부분들과의 나의 연결은 없어졌다. 나의 감각 기관들은 폐기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물질적 형체를 떠나고 나의 지식에 작별을 고하면서, 나는 대통과 하나가 된다. 이를 나는 앉아서 고스란히 잊는 것이라고 부른다.

ü         양자론은 근본적으로 분리된 대상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관찰자의 개념을 참여자로써 대치시키기 시작했으며, 이 세계를 기술하는데 인간의 의식을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까지 깨닫고 있다. 그것은, 그 대부분들이 이 전체와의 연결을 통해서만 정의되는 물리적, 정신적 관계들의 상호 연결된 망으로서 우주를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190).

n        불교도는, 독립적으로 또는 외따로 존재하는 바깥 세계가 있어 그 역동적 힘 속에 자신을 삽입시킨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외적인 세계와 내적인 세계는 동일한 작물의 양면에 불과하다. 그 안에서 모든 힘과 사건들, 의식의 형태와 그 대상물의 실낱들이 서로 연관지어져 하나의 분리될 수 없는 끝없는 망으로 짜여지고 있다.

 

11. 대립의 세계를 넘어서

ü         그들은 (동양 신비가들) 사물들의 개별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이 모든 상이성과 대비점들이 일체를 포용하고 통일체 속에 있는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모든 대조적인 것들의 통일성이라는 것, 특히 대립자들의 통일성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의식으로서는 극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므로 그것은 동양 철학의 가장 난해한 특성 중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동양인의 세계관의 바로 근원에 들어 있는 통찰인 것이다 (193).

ü         대립자란 것은 사고의 영역에 속하는 추상적인 개념들이요 또한 그러한 것으로서, 그것들은 상대적인 것이다. 어떤 하나의 개념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은 바로 그 우리의 행위 때문에 그 개념의 대립자가 생겨난다. 노자는 이르기를 세상에서 미를 모두 아름다운 것이라고만 이해할 때 추가 존재하며, 선을 모두 선한 것이라고만 이해할 때 사악한 것이 존재한다라고 하였다. 신비가는 지성적인 개념의 영역을 초월하며, 그것을 초월하는 가운데 그는 모든 대립적인 것들의 상대성과 양극 관계를 알게 된다. 그는 선과 악, 쾌락과 고통, 생과 사가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절대적인 경험이 아니라 단지 동일한 실재의 양면이라는 것, 즉 단일한 전체의 양극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대립자는 양극적인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하여 하나의 통일체를 보는 것이 동양의 정신적인 전통에 있어서는 인간으로서 최고의 목적 중의 하나라고 여겨진다. <바가바드 기타> 경전 속에는 현세의 대립성을 넘어서, 영원한 진리 속에 안주하라!”라는 크리슈나의 가르침이 있으며, 한편 불교에서도 그와 같은 가르침이 불제자들에게 베풀어졌다. 스즈키 다이세쓰는 이렇게 쓰고 있다 (194).

n        불교의 근본 이상은 지적인 분별과 감정적인 오탁으로 만들어진 이 대립적 세계를 넘어서 정신적인 무분별의 세계를 깨닫는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여실지견 (an absolute point of view)을 성취하는 것이다.

ü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사실 동양의 모든 신비주의는- 지관, 무사의의 세계에 이르게 되는 절대적인 여실지견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모든 대립적인 것의 통일의 거기에서 하나의 생생한 체험으로서 성취된다. 선시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일절이 있다 (194).

n        수탉은 황혼에 여명을 알리고/ 태양은 한밤중에 빛난다

ü         모든 대립적인 것이 양극적인 것이라는 개념- 즉 광명과 암흑, 득과 실, 선과 악 등이 동일한 현상의 다른 면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동양인의 생활 방식에 있어서 기본적인 원리 중 하나다. 따라서 일체의 대립적인 것은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에 그것들의 투쟁은 결코 어느 한쪽의 완전한 승리로 끝날 수 없고 항상 양자 간의 상호 작용을 표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양에서 덕이 있는 사람이란 선을 위해 분투하고 악을 소멸시키는 불가능한 과업을 떠맡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선과 악 사이에 역동적인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195).

ü         그것은 결코 정적인 동일성이 아니라, 언제나 두 극단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이다. 이 점은 중국의 현인들이 원형적 양극을 상징하는 음과 양으로써 철저하게 강조해 왔던 것이다. 그들은 음과 양의 배후에 놓여 있는 통일체를 라고 부르고, 그것을 음양의 상호 작용을 발생시키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보았다. “지금 어두음이 되게 하고, 또 곧 빛을 나타내 주는 것이 .” (195).

n        저것이것이라는 대립자임을 그만두는 것이 바로 의 본령이다. 오직 이 본령만이 말하자면 하나의 축으로서 가없는 변화에 응답하는 원궤의 중심이다.

ü         모든 남자는 남성적이고 모든 여자는 여성적이라고만 생각하는 고정된 양식을 수립시켰다. 그래서 이러한 고정 관습이 남자에게 지도적인 역할과 많은 사회적인 특권을 부여한 것이다. 또 이러한 태도는….- 남성적인 면, 즉 활동성, 이성적 사고, 경쟁, 공격성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결과를 낳았다. 직관적, 종교적, 신비적, 비의적 혹은 심령적이라는 말로써 묘사될 수 있는 ’, 즉 여성적인 의식 양태는 서양의 남성 지향적 사회에서는 항상 억압을 받아 왔다 (197).

ü         반면, 동양의 신비주의에서는 이 여성적 양태가 계발되었으며, 또한 인간성의 두 국면간에 하나의 통일성이 추구되었다. 노자의 말에 의하면 완전히 깨달은 인간이란 남성적인 것을 알고서도 여전히 여성적인 것을 간직하고 사람이다. 동양의 여러 가지 전통에 있어서는 의식의 남성적인 양태와 여성적인 양태 사이에 역동적인 균형을 이루는 것이 명상의 주요한 목표고, 그것은 예술 작품들 속에서 흔히 예증되어 있다 (197).

ü         /여의 대극성이 탄트라 불교에서는 때때로 성적인 상징의 도움을 받아 설명된다. … 그리고 깨달음의 과정에서 남신과 여신의 황홀한 성적 포옹을 통해서 이 양자의 통일이 표상된다. 동양의 신비주의는, 한 사람 속에 들어 있는 자웅 양태의 이러한 통일은 사고와 언어의 경계가 초월되고 모든 대립성이 역동적 통일체로 나타나는 의식의 보다 높은 경지에서만 체험될 수 있다고 확언하고 있다 (198).

ü         나는 이미 그와 유사한 경지에 현대 물리학이 도달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 비록 소수지만 동양의 신비주의에 대하여 이처럼 매우 가치 있고 고무적인 접근 방법을 찾아내고 있는 젊은 물리학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198).

ü         현대 물리학에서 대립 개념의 소립자들은 붕괴되기도 붕괴되지 않기도 하며, 물질 또한 연속적이기도 비연속적이기도 하며, 힘과 물질은 단지 같은 현상의 서로 다른 양상에 불과하다 (198).

ü         상대성 이론은 이러한 세계를 기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상대성의 체계에서는 4차원적인 시공 같은 고차원에 들어감으로써, 고전적인 여러 개념들이 초월된다. 공간과 시간 그 자체는 전에는 전혀 다른 두 개의 개념으로 보였지만 상대성 물리학에서는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이 근원적 통일성이 위에서 언급된 대립 개념을 통일하는 기반이 된다. 대립자의 통일은 신비가에 의해 체험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보다 높은 경지’, 즉 고차원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것은 신비가가 체험했던 바와 꼭 마찬가지로 역동적 통일성이다. … 거기서는 물질적 대상들 역시 진행 과정이요, 모든 형상들은 역동적인 모형들로 존재한다 (199).

ü         상대성 물리학의 4차원적인 세계는 힘과 물질이 통일된 세계다. 이곳에서는 물질이 비연속적인 입자들이나 연속된 장으로서 나타날 수 있다 (200).

ü         물리학자들은 4차원의 공간- 시간의 세계를 그들 이론의 추상적인 수학적 형식화를 통해서 경험할 수 있지만, 시각 상상- 다른 모든 사람의 상상처럼-은 감각의 3차원 세계에 한정되어 있다. 우리의 언어와 사고의 패턴은 이런 3차원의 세계에서 계발돼 온 것이기 때문에 상대성 물리학의 4차원적 실재를 다루기에는 극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200).

ü         반면에 동양의 신비가들은 고차원의 실재를 직접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깊은 명상의 경지에서 그들은 일상적 삶의 3차원 세계를 초월할 수 있는데, 이 때 모든 다원적인 것이 하나의 유기적 전체 속으로 통합되는 전혀 다른 실재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신비가들이 이러한 체험을 언어로써 표현하고자 할 때, 물리학자들이 상대성 물리학의 다차원적 실재를 해석하려 할 때 겪는 것과 똑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라마승 고빈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200).

n        고차원적인 경험은 각기 그 중심과 단계가 다른 의식들이 체험을 통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3차원적인 의식의 단계에서 이루어진 어떤 명상의 경험은 도저히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더군다나 그것이 논리의 체계 속에 들어가면 사고 과정에 한계를 부여함으로써 그 표현의 가능성을 더욱 감소시켜 버리게 된다.

ü         상대성 이론의 4차원 세계는현대 물리학에서의 유일한 예는 아니다. 아마도 그러한 모순 개념들을 통합하는 가장 유명한 경우는 원자 물리학에서 입자와 파동의 개념을 통합하는 경우일 것이다 (201).

ü         원자적 단계에서 보면 물질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입자로 나타나기도 하고 파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이 나타나는 양태는 상황에 따라 바뀐다 (201).

ü         물리학자들이 물질은 상호 배척적인 것으로 보이는, 즉 입자들은 또한 파동이고 파동은 또한 입자들이라는 방식으로 그 스스로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시인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렸다 (201).

ü         우리는 원자적 입자가 일정한 장소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렇다고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다. 입자는 확률 모형이므로 여러 장소에 존재하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으며, 그리하여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기이한 종류의 물리적 실재를 표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입자의 상태를 고정된 대립 개념으로서 기술할 수 없다. 입자는 어느 한정된 장소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나타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 위치를 변화하지도 않으며 또 정지된 체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다. 변화한다는 것은 확률 모형이며, 그러므로 일정한 장소에 존재하려는 입자의 경향들이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203).

n        예를 들면, 우리가 전자의 위치가 언제나 동일한가 어떤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아니오라고 대답해야 되며, 전자의 위치가 시간에 따라서 변화하는가 어떤가?”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에도 아니오라고 대답해야 되며, “전자는 정지해 있는가 어떤가?”라고 물었을 때에도 아니오라고 대답해야 된다. 그러면 그것은 운동하고 있는가 어떤가?”라고 물었을 때에도 우리는 역시 아니오라고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ü         동양 신비가들의 실재와 마찬가지로 원자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실재도 대립 개념의 좁은 체계를 초월한다. 그리하여 오펜하이머의 말은 <우파니샤드>의 말을 반복하는 것처럼 들린다 (204).

n        그것은 움직인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멀다, 그리고 그것은 가깝다/ 그것은 이 모든 것 속에 있으며 이 모든 것 밖에 있다.

ü         힘과 물질, 입자와 파동, 운동과 정지, 존재와 비존재- 이것들은 현대 물리학에서는 초월된 대립 개념이거나 혹은 모순 개념들 중의 일부다. 이러한 모든 대립하는 쌍들 중에서 마지막 것이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 여겨지는데, 원자 물리학에 있어서도 역시 우리는 존재와 비존재의 개념까지 초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양자론 가운데에서도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며, 그래서 계속 그 해석 문제를 둘러싼 논의의 중심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존재와 비존재의 개념을 초월하는 것은 동양의 신비주의에 있어서도 가장 곤혹스러운 난제 중의 한다. … 그리하여 아수바고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204~205).

n        그것은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요, 존재와 비존재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존재와 비존재가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ü         대립 개념 너머에 있는 실재에 직면해서 물리학자와 신비가들은 특별한 사유 방법을 채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마음이 고전 논리의 완고한 틀에 고착되어서는 안 되며, 항상 그 생각하는 관점이 살아 움직이고 끊임없이 전환되도록 해야 한다 (205).

ü         라마승 고빈다는 말하기를 동양적 사유 방식은 오히려 명상의 대상 주변을 빙빙 돌면서 구성되는 것이다. … 여러 측면에서, 즉 상이한 여러 관점으로부터 단일 인상을 다져 냄으로써 형성된 다원적 인상이다.” (205).

ü         입자의 운동 상태에 관한 정보는 그 파동의 진동수와 과장에 포함되어 있다 (207).

ü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사이의 불확실한 관계에 대한 정확한 수학적 공식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관계, 혹은 불확정성 원리로서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은 우리는 결코 아원자 세계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아주 정확히는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 한계성은 우리의 측정술이 불완전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리의 한계성 때문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209).

ü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의 불확정성 간의 관계만이 불확정성 원리의 유일한 형태는 아니다. 이와 유사한 관계들은 다른 양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209).

ü         불확정성 원리가 지닌 근본적인 중요성은 그것이 정확한 수학적 공식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전적 개념의 한계성을 표현한다고 하는 것이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아원자 세계는 통일된 전체의 여러 부분들 사이의 거미줄과 같은 관계로서 나타난다. 우리의 일상적인 거시적 경험에서 유래된 고전적 개념들은 이 세계를 기술하기에는 전적으로 적절하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입자와 같은 하나의 개별적인 물리적 실체의 개념을 가지고 출발하는 것은 근본적인 의미를 지니지 못한 하나의 이상화일 뿐이다. 그것은 단지 전체와의 연관 아래서만 규정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연관성들은 확실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확률성인 통계적 성질들이다 (210~211).

ü         우리가 물질적인 대상에 하나의 개념을 부여하려 하면 할수록, 그 다른 개념은 점점 더 불확실하게 된다. 그리고 그 두 개념 사이의 정확한 관계는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주어질 뿐이다 (211).

ü         고전적 개념들의 이러한 방 사이의 관계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닐스 보어는 상보성의 개념을 도입했다 (211).

ü         이러한 상보성의 개념은 물리학자들의 자연에 관한 사고방식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었고, 보어는 그것이 물리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역시 유용한 개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종종 암시해 왔다. 사실상 상보성의 개념은 이미 2,500년 전에 지극히 유용한 것으로 입증된 바 있다. 상보성의 개념은…. 고대 중국 사상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다했다. 중국의 현자들은 음과 양이란 원형적인 양극으로써 이 대립자의 상보성을 표상했으며, 또 모든 자연 현상과 모든 인간 생활의 본질이란 그것들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211).

 

12. 공간- 시간

ü         그렇다면 상대성 이론으로부터 나타난 공간과 시간에 관한 새로운 견해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공간과 시간의 측정은 상대적이라는 발견 위에 기초하고 있다 (219).

ü         이와 유사하게 동양의 신비가는 시간을 초월하는 속에서 그들은 또한 인과의 세계도 초월한다고 확언한다 (247).

 

13. 역동적인 우주

ü         동양 신비주의의 중요한 목적은 이 세계의 모든 현상들은 동일한 궁극적인 실재가 현현하는 것으로서 경험하려는 것이다 (249).

ü         생명이 없는 돌이나 금속을 확대해서 보았을 때에는 그것들은 활성으로 충만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그것들을 보다 가까이 보면 볼수록 더 생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들 주위에 있는 모든 물질적 대상들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원자들은 갖가지 방식으로 상호 연관을 맺어 엄청나게 다종다양한 분자 구조를 형성하는 바, 그 분자 구조는 경직된 것이나 부동의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의 온도에 따라서, 또는 주변 환경의 열진동에 보조를 맞추어 진동하는 것이다 (256).

ü         현대 물리학은 물질을 부동적이고 비활성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그 율동의 패턴이 분자, 원자, 핵의 구조에 따라서 결정되는 연속적인 율동과 진동 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것은 또한 동양의 신비가가 물질 세계를 보는 방식과 같다 (256).

 

14. 공과 형상

ü         진공이란 완전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그것은 끝없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무수한 입자들을 함유하고 있다 (289).

ü         헌대 물리학의 결과는 중국의 현인 장재의 말을 더욱 확증해 준다 (290).

n        태허가 기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 대 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5. 우주적 무도

ü         우주적 무도라는 이런 은유는 그것의 가장 심오하고 아름다운 표현을 힌두교의 무도 신 시바의 이미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의 여러 화신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널리 민간에 전승되고 있는 인도 신 중의 하나인 시바는 무도자들의 왕으로 나타난다. 힌두교의 신앙에 의하면 모든 생명은 생성과 소멸, 죽음과 재생의 거대한 율동적인 과정의 한 부분이며, 시바의 춤은 끊임없이 윤회를 계속하는 이 영원한 생사의 율동을 상징하는 것이다 (310).

ü         시바의 무도는 생사와 소멸의 우주적인 윤회를 상징할 뿐 아니라 인도의 신비 사상에서 모든 존재의 기본으로 간주되는 생사의 일상적인 율동까지도 상징한다 (311).

 

16. 쿼크 대칭들- 하나의 새로운 공안?

ü         보다 고차원적인 대칭은 불교의 상징에서 사용되는 다음의 모형과 같이 여러 개의 대칭선이 그어질 수 있는 모형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반사만이 대칭에 연관되는 유일한 작용만은 아니다. 만일 하나의 그림을 어떤 각도로 회전시킨 후 그것이 본래의 것과 똑같이 보인다면 그것 역시 대칭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음양 도형이 이런 회전 대칭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319).

 

17. 변역의 모형

ü         이는 또한 불교의 유식학파의 반복되는 주제인데, 그것은 우리가 감지하는 일체의 형상들은 오직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며 그 마음의 투사 혹은 그림자들이다 (348).

n        마음으로부터의 분별 때문에 무수한 사물들이 생겨난다. … 이러한 것들을 사람들은 외적인 세계로서 받아들인다. … 외적인 것으로 나타난 것은 실재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잡다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기실은 마음이요, 말하자면 물질이나 소유물이나 그와 같은 일체의 것은 단지 마음 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18. 상호 관통

ü         우리는 4차원적 시공 세계의 직접적 체험을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어떻게 하나의 단일한 입자가 다른 모든 입자들을 포함하고, 동시에 그것들 각각의 일부분이 되는가를 상상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대승관인 것이다 (374).

n        하나가 다른 모든 것에 맞대여 놓여 있을 때 그 하나는 그것들 모두에 침투되어 있는 것으로서, 또한 동시에 그 자체 속에 그것들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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