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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일 11시 47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김진애 (金鎭愛)

‘김진에너지’라는 별명처럼, 도시건축 전문가로서 사회와 정치를 넘나드는 적극적 활동과 삶과 인생에 대한 다양한 저술 활동을 통해 세상에 에너지를 전파하는 사람이다.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1년 이화여중고를 졸업하고, 1975년에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였다. 1978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끝낸 뒤 미국 MIT로 유학을 가 1987년 <도시 공간의 민영화: 공공계획과정과 민간영향력>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도시계획 환경설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주) 서울포럼라는 회사를 운영하며 건축도시기획, 디자인개발, 출판이벤트기획을, SF도시건축(주)라는 이름의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부산 수영정보단지 마스타플랜(1996), 지하도시개발구상(1993), 산본 신도시 도시설계(1989), 행정신수도 기본계획(1979)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다. 참여정부의 대통령자문 건설기술ㆍ건축문화선진화위원회 위원장(05-08)으로서 ‘건축기본법’ 제정과 ‘건축도시연구원’ 설립을 주도했고, 행정중심복합도시추진위원회(05-08), 광복60년기념사업위원회 미래와세계분과위원장(05), 대통령자문 세계화추진위원회(95-98),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92-94), 서울시도시계획위원회(95-98)와 건축위원회(02-04) 위원 등의 적극적인 공공 활동을 해왔다.


타임지가 선정한 21세기 세계의 리더 100인 중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선정되었다는 사실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작가로서보다는 건축가로서 더 많은 주목을 받았고 이름을 알렸다. 저술한 책의 목록의 많은 부분 또한 건축과 도시 환경 공학에 관한 책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녀는 단순한 건축가에 머루르지 않고 서울이라는 도시 전반에 대한 고민과 사람과 세계라는 근본적인 주제를 다룸으로써 설득력있는 문장들을 써왔다.


최근에는 자신만의 독특한 남성론과 여성론을 자유분방한 필체로 서술한 <남자 당신은 흥미롭다>와 <여자 우리는 쿨하다>를 출간함으로써 베스트셀러 작가의 대열에 진입했다. 이외에도 <건축은 중요한가> <우리의 주거문화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21세기엔 이런 집에 살고 싶다> <우리도시예찬> <이 집은 누구인가> <김진애의 공간정치 읽기> <매일매일 자라기>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 <나의 테마는 사람, 나의 프로젝트는 세계>,<도시 읽는 CEO>등이 있다.  


저자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글을 쓰는 일은 나를 발견하고, 나를 정리하고, 나를 펼치는 중요한 작업이다. 그만큼 알고 싶고 캐내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들이 나에게는 많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도 쓰지만 또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기도 한다. 글쓰기는 그 어느 작업보다 많은 훈련이 필요하고 끊임없는 재훈련이 필요한 일이라서 좋다. 누구에게나 권한다."



2.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책을 펴내며 - 우리가 살고 싶은 집 이야기

                ..우리는 느끼는 만큼 산다


추억을 더듬는 행위란 삶의 여유이자 뒤를 돌아보는 여유,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유 아니가. 집이란 추억을 만드는 곳이다. 집의 추억은 사람에게 살아 있다는 존재감과 뿌듯함을 안긴다. (8)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이 결코 초라하지만은 않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사는 집에 그렇게 많은 뜻이 담겨 있음을 깨달으면 공연히 행복해진다. 행복은 값의 차이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뜻만큼 커지는 것이다. (8/9)


작은 것 하나라도 자기 집을 스스로 바꿔 보는 행위란 그만큼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된다는 뜻이니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9)


무언가 삶의 의미와 살아 있음을 느낄 때, 어딘지 정다운 느낌을 확인할 때, 뭔가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기대가 부풀 때, 무언가 다른 내일에 대한 희망이 솟을 때 어쩐지 행복해지는 것 아닐까. 행복은 느낌이다. 우리는 느끼는 만큼 사는 것이다. (9)


이 책은 우리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에세이다. ‘집의 감성’을 읽어 보는 책이라 해도 좋다. (9)


삶의 면면이 배어들고 사람의 마음이 표현되고 우리의 정서가 녹아드는 집, 그러한 감성 풍부한 집을 그리고 싶다. (9)


사람들은 대개 집에 대해서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전문가가 모든 해답을 갖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문가란 ‘도와주는 손이자 머리’이고, 가장 좋기로는 ‘도와주는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10)


이 책에 그림은 절약해서 넣었다. 집의 모습에 대한 구체적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집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기 쉽다. 집의 형태는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집의 모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우리 자신의 솔직한 느낌, 솔직한 바람이다. (10)


책의 첫 부분에는 ‘내가 살아 본 집 이야기’를 담았다. 집에 대해 쓴다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본다는 뜻이다. ‘누구나 자신이 살아 본 집에 대한 이야기를 쓸 필요가 있다.’고 같이 공감해 주면 좋겠다. (11)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집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을 새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삶의 아름다움을 찾으며 풍부한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사람 사는 집’을 만들어 가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11)



프롤로그 - 내가 살아 본 집 이야기


추억을 만드는 집

아래층에는 내가 운영하는 회사가 자리 잡아서 직주근접(職侏近接)의 혜택을 톡톡히 누린다. 이 집은 내가 꿈꾸던 모습 중 하나다. (15)


나는 부동산 투자에 대해 긍정적인 편이다. 적절한 시점에 무리도 해야 하고, 귀참ㅎ아도 집을 바꾸어야 하며, 투자 가치가 있는 집을 선택해야 한다고 ‘기꺼이’ 생각한다. 다만, 우선순위는 중요하다. 무작정 집 늘리고 재산 불리기 위해 집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사이사이 짧게 사는 집이라 해도 그것은 여전히 ‘사람 사는 집’이어야 한다. (19)


이 오장동 작은 집에서 나는 삶의 여러 순간을 일찌감치 배웠다. ‘느린 오후’의 나른함도 배웠고, ‘정오의 기상’이라는 나태의 즐거움도 배웠고, ‘깊은 밤 책보기’의 묘미도 배웠고, ‘밤 지새운 새벽’의 그 피곤함과 기대감이 오가는 묘한 맛도 배웠다. (22)


직업상 나는 수많은 집을 보았다. 가본 집도 많지만 직업상 도면과 사진으로 분석하면서 공부도 하였다. 그래도 역시 직접 삶을 체험해 본 집, 말하자면 집주인과 함께 시감을 보내 본 집이 가장 확실하게 감이 온다. 사진이나 비디오나 도면 보기란 아무래도 피상적인 경험이다. 잠깐 가본 집보다는 집주인과 잠시나마 같이 있어 본 집이 더욱 기억에 생생하다. 차를 마시건, 얘기를 하간, 저녁 식사를 하건 인상이 남고, 이왕이면 자보는 것이 더욱 졸다. (41)


그 사람의 내밀한 모습을 만나는 느낌이다. 이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내가 생각하던 그 사람일까, 그동안 모르던 어떤 구석을 알게 될까, 이 사람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까, 은근히 기대가 된다. 사는 집을 보면 확실히 그 사람의 성격을 더욱 잘 알 수 있다. (42)


삶에 대한 힌트를 얻기도 한다. 그야말로 ‘생활의 발견’이다. 사람이란 정말 가지각색인데 그 사는 맛을 자기 집에 표현하며 사는 사람을 보면 살맛이 난다. 요새는 워낙 아파트에 많이 살아서 그런지 내나 비슷해서, 새로운 생활의 모습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덜한 편이다. 똑같은 아파트라하더라도 자기 스타일대로 사는 집에 가면 아주 기분이 좋다. (42)


어디서나 사는 모습, 갖고 있는 가재도구는 그 사람의 성격을 드러내는 만큼 나는 꼭 가보기를 청한다. (42)


나는 꽤 모진 편이다. 업무 시간은 어디까지나 업무 시간이다. 업무 시간 중에 모든 집안 일은 ‘없는 것이 원칙, 용건만 간단히 원칙’이다. 여기에 예외가 있다. ‘가족이 나를 건드릴 수는 없지만 나는 언제나 가족을 건드릴 수 있다’는 나 중심의 독재적 원칙이다.

이런 원칙을 세우는 일은 간단하다. 우선 나는 시간과 싸우기 때문이다. 집중하는 시간ㅇㄹ 어떻게 만드느냐가 일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 또 나는 가족 어느 누구보다도 부담을 더 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식구들이 가사를 분담해 주어도 주부는 집안이 무난하고 푸근하게 돌아가게 하는 책임의 중심에 있다. 그 심리적 부담은 크다. 나 자신을 위해서나 가족을 위해서나 모질 필요가 있다. 주부의 육체적, 정신적, 심리적, 정서적 건강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기적이면서도 또 이타적이기도 한 원칙이다. (50/51)


자신이 세운 원칙을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게 하는 데에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51)


내가 흐트러지면 내가 세운 원칙이 금방 무너져 버리고 그 원칙의 권위가 없어져 버리니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은 난 자신이다. (52)


한 지붕 밑에 일터와 집이 같이 있는 직주근접은 정말 좋다. ‘시간 여유’를 톡톡히 즐기고 ‘공간 여유’도 즐긴다. (53)


가장 좋은 것이라면 역시 ‘정서적인 여유’다. 이 집 어딘가에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한상 있음을 믿고 식구들이 내가 항상 여기에 있음을 믿을 수 있으므로 생기는 마음의 여유다. 중심이 잡힌다. 든든하다. (53)


회사를 꾸리는 사람이라면 집과 일터를 합치라고 권하기도 한다. 다만 서로 지킬 것은 지키고 분명히 할 것은 한다는 ‘모질 정도’의 책임 의식이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책임을 질 수 있어야 나누는 즐거움, 같이하는 즐거움, 여유로움의 즐거움, 너그러움의 즐거움도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53)


집이 나이를 먹는 만큼 가족 상황도 바뀌고 인생에도 변화가 있게 마련이다. ‘언제까지나 이대로 살고 싶다’고 바라지만, 세상은 항상 똑같지 않으며 크고 작은 변화와 함께 집도 변화하게 마련이다. (55)


내가 꼭 살아보고 싶은 집은 어떤 집일까?

가족의 집 소망은 다 다르다. 그렇게 다른 집 소망을 가족끼리 펼치다 보면 새로운 꿈이 생긴다. (63)


살아보고 싶은 집에 대해 꿈을 꾼다는 것은 우리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뜻이다. 어릴 적 살았던 집들의 추억을 떠올리고, 지금 사는 집을 즐기고 불만을 가지면서도, 또 살아보고 싶은 집에 대해서 꿈을 꾼다는 것, 우리가 살아 있는 한 해야 하는 상상의 작업이다. (63)


‘집’이란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다. 사람들이 모여 살 때 집은 집답다. 집다운 집에 살고 싶다. (64)


1. 추억을 만드는 집 - 어떤 기억이 생생하세요?

누구에게나 어릴 적 살던 집에 대한 기억이 있다.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기억은 ‘생각날 듯 말 듯한 기억, 가물가물한 기억’이 아닐까. 선명하게 설명할 수 없어서 오히려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꿈같은 기억’이다. (69)


어릴 적 기억이란 무의식중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왜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어릴 적 생각을 더하는 걸까.


‘밈meme' 일지도 모른다. ’밈'이란 ‘복제 유전자’라는 개념인데, 후천적인 경험들이 쌓이면서 모방을 거쳐 마치 복제하듯 퍼지는 작용을 말한다. 인간의 뇌를 연구하면서 컴퓨터 인공 지능과 결부시켜 새롭게 등장한 생불학적 개념이다.

흥미로운 현상은, 사람이란 모방할 때 이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극과 생각에 따라 창의적인 모방을 하면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밈’이라는 새로움이 있다. 선천적인 DNA야 쉽게 바꿀 수 없지만 ‘밈'이란 우리의 체험에 따라 진화하기 때문에 변화와 조정이 가능하다는 데 매력이 있다. 그래서 사람에게 체험과 자극이란 그렇게 중요한 것이리라.


기억은 사람을 사람이게 만드는 가장 유효한 장치 중 하나다. (71)


입력과 출력에 따라 사람의 기억은 다르게 작용한다. 이것은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기억에 넣고 싶다고 꼭 기억되는 것도 아니고, 떠올리고 싶다고 해서 꼭 떠올려지는 것도 아니다. 의지에 의해서보다는 어떤 체험의 자극에 의해서 입력과 출력이 되느냐가 더 중요하다.


마치 역사에서 모든 사실이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기록되고, 모든 역사들이 다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새로운 사건이 생길 때 특정 기록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자극’이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어떠한 것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가의 판단은 자극에 의해 결정되고, 그만큼 기억에는 ‘우연’이 작용하기도 한다. 물론 우연으로 보이는 필연일지도 모른다.


실제 생활에서 어떤 자극을 받느냐에 따라 우리의 기억은 무척 달라질 것이다. 생생한 자극은 기억으로, 풍부한 자극은 풍부한 기억으로 환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환경이 중요한 것이다. 자극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72)


우리는 추억을 만들기 위해 사는 건지도 모른다. 때로는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통해, 때로는 우리가 쓰는 물건을 통해, 때로는 우리가 사는 집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추억은 우리 가족의 추억으로 전해지고, 우리 자손의 추억으로 전해질 것이다. (72)


추억거리를 묻는 것은 그 추억 자체를 알고 싶다기보다는 추억을 통해 그 사람의 정서와 심리적 성향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서다. 그 단서들을 찾아서 집을 설계하는 데 쓸 수 있다. 그 집에 사는 사람에게 특별한 무엇이 있는 집, 특별한 기억을 자아내는 집, 그런 집이야말로 가장 좋은 집이다. (73)


우리가 사는 일상 환경에 마음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무언 중에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의도적으로 머리에 주입된 것보다 매일매일 반복되고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이거나 사소한 것에 의해서 더 깊은 영향을 받는다. 사소하게 보이는 것이 오히려 깊은 감흥을 주고 사람의 정서 깊숙이 자리 잡는 것이다. 감성 측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어린 시절 자라는 환경애서 얼마나 풍부한 자극을 받느냐에 따라 사람의 감성이 자라는 역량에 상당한 차이가 생긴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몸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79)


모쪼록 집이란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하면 참 좋을 것이다. ‘많은 기억을 만들어내는 집, 그리고 많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집.’ (80)


겉으로 보기와 달리 여러 겹겹, 새록새록 깊은 속을 알게 되는 사람이 매력 있듯이 집 역시 여러 겹겹, 새록새록 깊은 느낌이 배어 나올수록 매력 있는 집이 될 것이다. (80)


기억 속의 그 짐은 꼭 근사하거나 외모가 멋져서가 아니라 어떤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떠오른다. 집의 모습과 함께 그 안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떠오르고, 같이 있던 사람들이 기억나고, 그 대화와 몸짓들이 기억나고, 그 장면을 이루는 빛과 소리와 색깔들이 기억난다. (81)


집이란 다양한 정서가 담긴 곳이다. 외로움, 서러움, 아픔, 두려움, 무서움 같은 것도 있고, 가까움, 아름다움, 소박함, 단출함, 포근함, 고마움, 따뜻함, 친밀감 같은 것도 있다. 집 밖에서의 많은 경험이 집을 통해 걸러지고 적이 소화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진다. (82)


우리 자신은 알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살 수 있고, 더 풍부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그 느낌 때문에 우리 사는 의미가 보다 더해진다. (82)


집은 삶의 흔적이다. (82)


2. 체험 동선 긴 집이 좋은 집 - .. 거니세요!

동선 구성 때문에 생기는 한옥과 아파트의 체험 동선은 어떻게 다를까


첫째는 ‘시각 동선’이다. 아파트는 대개 보이는 그대로다. 보이는 게 전부다. 아파트 저  끝의 벽도 보이고 구석도 다 보인다. 시선을 막는 것은 벽 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한옥은 대개 저 끝이 잘 안보이고 시선이 몇 겹의 공간을 거치게 된다. 방문과 담, 방 안, 저 바깥의 또 다른 문이나 창문, 그 바깥의 공간 등 여러 겹으로 눈을 머물게 하는 장치들이 펼쳐진다. 보일 듯 안보일 듯, ‘눈이 머무는 곳’이 다르다. 아파트는 눈을 고정시키고, 한옥은 눈을 흘게 한다고나 할까. 말하자면 아파트는 공간의 시각적 깊이가 얕은 반면, 한옥은 공간의 시각적 깊이가 깊다.


한옥은 아무리 규모가 작더라도, 좁다는 생각은 몰라도 답답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시각적 깊이와 시각의 흐름 덕분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단순하지 않고 여러 공간이 겹쳐 보이면서 여러 요소가 함께 보이기 때문에 ‘무언가 더 있을 듯한 느낌’을 준다. 아무리 작은 한옥이라도 ‘채 나누기’로 되어 있어 바깥과 시각적으로 쉽게 연결되는 것도 한몫한다. 한옥의 이러한 풍부한 시각 동선은 현대 건축에서도 아주 요긴한 설계 단서다. (95/96)


둘째는 ‘청각 동선’이다. 아파트 소리와 한옥의 소리는 무척 다르다. 아파트는 방음이 잘 되어 아예 안 들리거나, 소리가 나면 어디서 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한옥에서는 소리가 잘 들리는 반면 어디서 나는지 금방 감이 오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소리가 공간 사이를 흐르며 감아 돈다.  물론 재료 때문이기도 하다. 콘크리트 벽이 아닌 나무나 한지 등의 자연 소재가 소리를 빨아들인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옥의 공간 구성이 잘 소통되어 소리가 반향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사이를 흐르기 때문이다.


이 차이 때문에 공간의 깊이에 대한 감각이 달라진다. 한옥은 시각적으로뿐만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깊게 느껴지기 때문에 집이 무척 넓게 느껴지는 반면, 아파트는 청각적으로도 얕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97)


셋째는 ‘심리 동선’이다. 아파트는 동선을 정해주는 반면 한옥은 동선을 선택하게 만든다. 이 사실이 사람에게 주는 심리는 무척 다르다. 짜인 대로 살아야 할 때의 심리적 분위기와 곽 짜여 있는 대로가 아니라 무언가 다르게 할 수 있다고 기대할 때의 기분은 무척 다르다. 선택이 가능할 때 생기는 여유 또는 자유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깊은 시각 동선, 깊은 청각 동선과 어울려서 한옥은 사람의 심리를 자유롭고 여유 있게 만든다. (97)


동선이란 사람이 움직이는 선만은 아니다. 사람이 움직이는 선을 따라 많은 일이 생긴다. 움직이면서 사람을 만나고 눈으로 보며 귀도 열어 놓고 냄새도 맡는 등 다른 감각을 발동하면서 다양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98)


동선한옥은 다양한 동선을 길게 만들면서도 사람들이 혼란스럽지 않기에 참으로 명당에 가까운 집 설계가 아닐 수 없다. 한옥에 들어가서 방향을 잃는 법은 없다. 마당이라는 중심성이 확실하고, 또 각 채마다 공간의 힌트들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방문만 뚫린 것이 아니라 마루, 툇마루, 창문, 문, 처마, 단차 등이 여러 장면의 힌트를 주어서 사람들이 감각을 쉽게 가질 수 있게 한다. (103)


집에서 산책하듯 거닐 수 있다면 아주 좋은 집이다.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거닐 수 있게 만들자. 그리고 거닐자. (106)


‘사람과 사람의 보이지 않는 선을 이어주는 것’이 집이다. (106)


3. 구석구석 많은 집 - 비밀 구석, 숨을 구석을 찾아서

‘물건 없애기, 시원한 공간 만들기’란 썩 요긴한 전략이다. 실천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다. 언제나 그렇듯, 버리기란 채우기보다 힘들기 때문이다. (112)


공간감이란 절대적 크기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그 안을 채우는 여러 부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구석의 힘’이다. (113)


집에 대한 가장 인상 깊은 추억은 아마도 ‘자기만의 방’을 가졌을 때가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람이 자기 방을 가졌을 때의 그 행복감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마치 온 세계를 얻은 듯, 나만의 세계를 온전하게 가진 듯한 그 느낌이 참으로 좋았다. 내 맘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 공간이 아무리 작더라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114)


집이란 또 가족에게 그런 구석이다. ‘우리 가족만의 구석’이다. 우리 가족의 세계다. 거친 세상에서 보호받는 곳, 대문만 들어서면 우선 안심이 되는 곳, 어딘지 믿는 구석이 있는 곳, 온전히 우리만의 공간이다. 그래서 내 집 마련의 기쁨이란 온 세계를 얻은 듯한 기쁨인 것이다. “집구석에나 처박혀 있을 걸...” 이 말은 집을 낮춰보는 것이 아니라 집의 편안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114)


‘구석’의 의미는 ‘이야기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만큼 애착이 가고 자꾸 돌보게 되는 것,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게 하는 것이 구석의 묘미다. (114)


집도 사람과 비슷하다. 어딘가 비밀스러운, 은밀한, 내밀한, 무엇이 더 있을 듯한, 새로운 무엇이 더 생길 듯한, 무언가 변화할 듯한 그 무엇이 있을 때 궁금증과 더불어 애착심도 커진다. (115)


아이들은 모름지기 자기들의 비밀 구석을 가져야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많은 비밀을 갖고 있다. 어른들에게는 우스워 보여도 아이들에게는 자못 심각하고 진지하고 아름다운 비밀들이다. ‘책상 밑’도 ‘옷장’도 자신의 비밀 공간으로 만들 만큼 아이들은 상상력이 뛰어나지 않는가.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꿈꾸고 상상을 넓히는 데 아이들 삶의 뜻이 있다. (127/128)


아이들 방은 ‘방에서 자꾸 나가고 싶은 유혹’과 또 ‘방에서 자기 일만을 꾸미고 싶은 유혹’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게 만드는 게 좋다. 유혹 속에 자라면서 유혹을 이기며 크는 아이들, 항상 자신이 선택하는 아이들이 잘 큰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128)


사람 사이에는 ‘친밀 공간’이라는 것이 있다. 친한 대화를 하려면 적절한 거리, 적절한 구성의 ‘대화 공간’이 성립해야 말이 트인다. 말 속에 정이 오간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작은 공간 속에서 정이 쌓인다는 말도 틀림없이 맞을 것이다. (128)


4. 중심 잡힌 집 - .. 마당, 마루, 그리고 부엌

집에는 어디 하나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다. 어디가 중심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구석이 하나같이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심이란 일종의 상징이자, 일종의 구심점이자, 일종의 심장과 같다. (134)


가족들이 많이 쓰고 모이는 공간이란 역시 가장 중요한 중심이다. 그러나 꼭 모이기만 한다고 중심인 것은 아니다. 그곳이 정말 우리 집의 중심이라 느껴질 정도로 그 어떤 성격이 있어야 한다. 마음속에 뿌듯한, 그래서 어쩐지 자랑스럽고 애착이 가는 곳이 마음의 중심이다. (135)


우리네 집의 중심으로 역시 ‘마당’부터 꼽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마당 있는 집이 희귀한 편이지만 우리 옛집의 중심이 마당이었다는 데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으리라. 우리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마당에 대한 기억이 깊이 남아 있다. 어린 세대나 아파트 세대는 비록 마당 있는 집에 살아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TV나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은근히 마당에 대한 간접 체험을 갖게 된다.(135)


한국의 집에서 마당이 차지하는 역할이란 참 컸다. 집이 하나의 소우주라면 마당은 그 소우주의 중심이었다. 철학적으로 표현한다면, 마당은 하늘과 땅과 인간이 만나는 천, 지, 인의 공간‘이다. 그런가 하면 ’무언의 공간‘이자 ’비움의 공간‘이다. 평소에 아무것 없이 비워져 있지만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고 또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은 마당, 한국의 집에서 마당이 없는 집이란 상상할 수도 없었다. (136)


그런데 마당이란 꼭 가족들이 모이는 중심이라 하기는 어렵다. 특별한 행사 때야 하나의 무대처럼 가족뿐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이지만, 평소에 가족들이 모이는 활동 중심은 아니다. 다만 마당은 누구나 거쳐 가지 않을 수 없는 공간이고, 누구나 그 어떤 방식으로 쓰게 되는 공간이다. 마당은 집의 상징적인 중심이다. (137)


‘마당’이란 문화적으로 상징적인 공간이다. 자연과 공존하고 하나의 커뮤니티 공동체로 여겨지는 집의 개념이 강했던 시절에 문화권마다 이름이 다르고 쓰임새도 다르지만, 마당 또는 마당과 같은 공간은 인류의 집에 참 친숙한 공간이다. 그만큼 마당은 집의 중심 역할을 했다. (139)


세월이 바뀐 요즘에 사람들이 떠올리는 집의 중심은 대개 ‘거실’일 것이다. 아파트는 일반 주택이든 거실이라는 말을 쓴다. ‘리빙 룸living room'이라는 영어를 일본의 주택에서 ’거실‘이라는 말로 차용하면서 일반화된 말이다. 미국 주택에서도 ’패밀리 룸‘과 ’리빙 룸‘은 좀 다르다. 리빙 룸이 오히려 응접실 기능을 하고 패밀리 룸은 가족들이 허물없이 뒹구는 공감이다. 유럽 주택의 ’티룸‘, 일본과 중국 주택의 ’다실‘ 등도 우리의 사랑방과 같이 집에서 손님 공간을 따로 만든 것이다. (140)


거실은 핵가족 문화와 아파트 문화의 산물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단란한 핵가족의 활도 중심이다. 우리 아파트는 거실 중심으로 사방에 방이 둘러싼 모양새인데, ‘마당’ 또는 ‘마루’ 공간을 현대식으로 재편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140)


앞으로 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떠오를 중심 공간이라면? 물론 부엌이다. 20세기 집에서 부엌은 이미 상당한 위상으로 격상되었다. (141)


나의 부엌 예찬은 각별하다.

첫째, 우선 그 무엇들이 많아서 좋다.

둘째, ‘물’과 ‘불’이 있어 좋다.

물과 불이 있으면 그 무엇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할 수 있다.

셋째, 무엇을 만들어 내어 좋다. 만드는 작업만큼 즐거운 일이 있으랴.

넷째, 항상 풍성해서 좋다.

아무리 아껴 쓰는 집이라 하더라도 부엌에 만큼은 항상 새 물품이 들어온다.

다섯째, 누구나 들어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좋다.

여섯째, 각종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 좋다.

가족들이 모두 드나드는 만큼 사건도 많고 에피소드도 많이 생겨 즐겁다. (142)


가족이 단합하는 순간이 꼭 필요한데, 먹고 마시기, 더 나아가 같이 요리하기는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최상의 사교 행위다. 가족의 역사는 같이하는 ‘상머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143) 


우리 집만의 근사한 부엌을 만들자.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온갖 가전제품과 화려한 부엌 가구를 설치하는 근사함이 아니라, 자기 가족만의 삶이 풍부해지는 독특한 부엌을 생각해 보자. (146)


우리가 만드는 기계의 노예가 되지 않을 사람의 지혜를 믿는다. 그리고 집에서 공간이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공간의 힘’이란 무척 강하고 끈끈하다. 공간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맺어 주고, 삶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며, 본능적으로 사람의 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149)


집에 중심을 잡는다는 의미란 서로의 방향 감각, 균형 감각, 자리 감각을 갖추는 기본적인 예를 익히는 것이다. 예를 위한 예가 아니라, 서로 간의 예를 지킴으로써 행동거지를 편히 하고 마음을 편히 하기 위해서다. (153)


이 집의 중심은 어디에요? 그 중심은 어떤 공간으로 표현되지만, 실제 집의 중심이란 우리의 마음 깊숙이 자리하는 것일 게다. 자기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가족’이 연상되는 그 어떤 공간이 마음속의 상징으로 필요한 것이다. (153)


다행히도 우리의 집에는 전통적으로 중심적인 상징이 존재했다. ‘마당’이라는, 그 무엇이 일어날 수도 어떠한 것도 담을 수 있는 공간, 비어 있되 채워질 수 있는 중심 공간이었다. 마당을 중심으로 집의 여러 공간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며 격을 갖추었고, 마당의 열린 격조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집, 사람과 자연 사이를 이어주었다.


마당의 공간 개념은 개방적인 미래 공간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설령 마당이 곧이곧대로 현대의 집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공간의 의미만큼은 우리의 집에 되살릴 수 있다. 부엌도 새로운 마당 역할을 할 수 있고, 집에 따라서는 나름대로 복합적인 성격의 마당을 만들 수도 있다. (153)


집의 중심이란 사람을 만든다. (153)


5. 신과 함께 하는 집

집에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라 혼이 너울너울 살고 있고, 모든 장소마다 우리를  지켜 주는 신들이 있다고 믿는 게 훨씬 더 인간적이고 자연스럽지 않을까. 우리를 지켜 주고 우리가 섬겨야 하고 때로는 우리가 다독여 주어야 하는 신들과 함께 산다고 생각하면 좁은 인간세계보다 더 큰 드라마가 집에서 펼쳐지지 않을까. (160)


집은 세 가지로 완성된다.

탄생, 죽음, 그리고 결혼.

이 집에는 탄생도 한 번 있었고 죽음도 한 번 있었지.

이제 결혼식을 치르게 되니,

이 집이 드디어 집으로 완성이 되는 구나.

<빨강머리 앤>


참 멋진 말이다. 탄생과 죽음과 결혼이 있어야 집이 완성되다니. 사람이 태어나고 떠나는 곳,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곳, 집의 주인공은 사람이다. (161)


탄생, 죽음, 결혼과 같은 인생 중대지사가 아니더라도 집이 다시 태어나는 순간들이 있다. 절기마다 평소와 다른 특별한 행사들이 벌어질 때다.

옛집에 남다른 품위가 있었던 것은 많은 의식이 집에서 자연스럽게 치러졌기 때문일 것이다. 집이란 일상의 세속적 삶을 영위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사회와 자연과 신이 만나는 처소로 여겨지고, 그러한 순간을 맛보는 의식이 집에서 일어났으니 집에 훨씬 더 숭고한 의미가 담겼을 법하다. (164)


문화라는 것은 아끼며 가꿀 때 비로소 감동적인 순간을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 축제 의식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를 통해 우리가 새삼 정좌한다는 데에 있다. 우리와 세계의 관계를 다시 보고 우리와 가족, 우리와 이웃, 우리와 사회, 우리와 문화의 관계를 다시 보는 것이다. (167)


집에서 맞는 탄생과 죽음과 결혼, 그리고 수많은 명절과 의식과 축제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 집이 세속적인 일상 공간일 뿐 아니라 세속을 뛰어넘는 상징적이고 숭고한 그 무엇을 담는 공간이기를 바란다는 뜻이리라.

사람들은 그 어떤 ‘믿음’, 그 어떤 ‘신화’를 믿고 싶어 하는 것이다. 신화, ‘신의 이야기’가 집에 담긴다면 그 이상 깊은 뜻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본다면 집의 곳곳에 온갖 신이 살면서 지켜준다는  옛사람들의 믿음은 한낱 미신이 아니라 신화다. 자연에 대한 경욀ㄹ 표현한 신 이야기다. 때로는 무섭기 짝이 없는 자연, 때로는 고맙기 짝이 없는 자연에게 의지하고 감사드리면서 자연과의 합일을 구하는 의식이다. (169)


세계 모든 나라에서 민속적인 신화는 깊은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신화는 인간의 문화적 깊이와 다양한 상징을 파악하는 소중한 문화 자원이며, 지금 이 시대의 우리 삶에도 의미를 줄 수 있다. (169)


집이 일상과 세속만이 아니라 신비스러움, 외경심, 비일상성, 판타지도 담을 수 있다면, 진정 집이 담을 수 있는 큰 의미를 이루는 집일 것이다. (175)


6. 여자의 집, 남자의 집

우리 집에 표현된 여성성이라는 것은 사실 ‘고정 관념적인 여성성’이자 ‘화장한 여성성’, ‘시장이 조직하는 여성성’, 즉 ‘상품적 여성성’이기 십상이다. 공간 구성, 부엌의 구성, 부엌 가구, 벽지 선택, 장식 마감은 여성의 취향을 미리 점치는 주택 업체의 선택에 따라 좌우된다. 하물며 가구, 커튼, 발코니 고치기, 가전제품 등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다 여자들이 진정 원해서라기보다는 시장에 나와 있는 것을 그저 선택할 뿐이고,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는 그러한 선택을 은근한 방식으로 부추긴다. 광고를 통해 주입시키고 상품을 파는 것이다. (184)


단순한 것 같은 개인 문제와 가정 문제가 모여 사회 문제의 씨앗을 키우는 것이다. (189)


이 시대 여성들에게 필요한 한 가지를 꼽자면 ‘상업주의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주체성’이다. ‘과도한 소비, 과도한 허영’에 빠지지 않는 것은 주부의 정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빠뜨릴 수 없는 덕목이다. ‘소비의 주체’인 여성이 중심을 잡으면 아이들도 따라서 중심이 잡히고 ‘가족들이 만족할 만큼 돈을 벌어야 남자답다’는 은근한 중압감을 받고 있는 남자들의 부담이 덜어진다. 맞벌이가 아무리 많더라도 남자들이 받는 경제적 중압감이란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고 할 만큼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과도한 상업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행복 만들기의 기초가 마련된다. (191)


“우리 주부가 행복해야 가족들도 행복하다. 우리 여자가 변화해야 남자도 변화시킬 수 있다.” (191)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다. 찾으려 들면 여유를 못 만들 리 없다. 방이나 거실을 크게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공간을 만들기 정 어렵다면 사용 시간의 차이를 두어 공간 사용의 여유를 만들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배려하는 마음’일 것이다. (194)


8. 나 역시, 집 역시 자연 - .. 빗소리, 흙 내음, 눈 소리

기. 눈에 안 보이는 기. 집이 들어설 땅의 맥을 짚는다는 뜻은 바로 땅을 감싸는 기를 짚는다는 뜻이다. 공기는 창문과 문을 통해 흐르지만, 기는 땅과 하늘 사이에 집을 통해 흐른다.


기를 꺾지도 기를 막지도 않는 집, 공기가 사방팔방 곳곳에 통하는 집, 어느 한 군데 막힘이 없는 집, 그런 집이라면 건강 백세다. ‘흐르게’ 하는 것이 요점이다. (237)


집은 빛이 부리는 조화를 담는 곳이다. 빛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집의 모습은 크게 변한다. 빛은 색깔을 바꾼다. 분위기를 바꾼다. 사람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 햇빛이 집 안에 들어오며 펼치는 오묘한 빛의 장난에 따라 집의 색깔은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한다. 완전 투명의 유리도 좋고, 반만 투명한 유리도 좋고, 또는 은은한 빛을 여과시키는 창호지도 좋다. 빛의 조화를 조율하는 커튼, 블라인드, 차양, 덧문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집의 분위기는 완벽하게 달라진다. 빛은 그 자체가 보이는 게 아니라 벽에 반사되고 물체와 만날 때 느껴진다. (239)


집이란 태양과의 관계 맺음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빛뿐 아니라 열을 선사하는 태양과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가 집의 소임 중의 하나다. 냉난방 기술이 엄청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햇볕을 받아들이는 문제는 여전히 집 만드는 지혜의 기본이다. (239)


자연스럽게 사는 것만큼 건강에 좋은 것은 없다.

새삼 ‘환경 친화’나 ‘생태 건축’이란 말이 부각되고, 건강 주택이나 황토 주택 등이 인기를 끌고, 종종 원적외선 제품이나 자연식 제품이 가세하고 있지만, 그 기본을 보면 자연 속에서 숨쉬고 사는 것이 가장 좋다는 사실을, 비단 추상적인 철학만이 아니라 아주 실질적인 생활 방식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게 된 것이다. (242)


사람과 집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보는 철학은 우리의 전통 환경론에서 가장 기초적인 개념이다. 자연 속에서 어떻게 집을 숨 쉬게 만드느냐, 그 집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숨 쉬고 사느냐가 관심사였다. (242)


나는 쉽게 ‘기분 좋은 집이 가장 풍수에 맞는 집’이라고 대답한다. 풍수의 에센스란 바로 ‘기분 좋은 집’이다. 나는 풍수가 자연에 대한 이해와 존경, 자연으로부터의 보호, 자연의 축복을 즐기는 여러 지혜가 그 바탕에 깔려 있고 오랫동안 현장 실험이 쌓여 이루어진 경험 과학이자 환경 철학이고 해석한다. 풍수(풍수), 바람과 물을 다스린다 함은 바로 기를 다스리는 것이므로 기분 좋은 집이 풍수에 맞는 집인 것이다. (243/244)


자연을 느끼는 순간의 아름다움이란 참 묘사하기 어렵다. 자신보다 더 큰 무엇을 느끼는 순간이다. 자신 역시 자연의 한 부분임을 새삼 느끼는 겸허한 순감이다. 자신의 작음을 돌아봄으로써 큰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245)


9. 시간의 갤러리가 되는 집 - .. 이 집은 몇 시에요?

세상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많다. 사랑도 그렇고, 존경도 그렇고, 건강도 그렇다. 그 중에서도 정말 둔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시간’이다. 그만큼 시간이란 가장 소중한 것이다. (252)


새집이란 좀 더 편한 시설을 갖출 수 있고 고장 날 걱정도 덜하므로 실용적으로 유리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새집이란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시사한다. (258)


새집처럼 보이지 않고 무언가 시간의 격이 느껴지는 집, 시간의 깊이가 느껴지는 집, 시간의 층이 느껴지는 집, 오랜 시간의 켜가 느껴지는 집이란 그야말로 ‘멋이 담겨 있는 집’이 아닐까. 그러한 ‘시간이 배어 있는 집’의 요건으로 나는 세 가지를 꼽아 본다.


첫째는 항상 거기 있었던 것 같은 집, 항상 거기 있을 것 같은 집이다. 말하자면 거기 있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집이다.


둘째는 쌓인 시간이 느껴지는 집이다. 시간의 오랜 층들이 여기저기 느껴지는 집, 말하자면 그 집의역사를 느낄 수 있는 집, 아름답게 나이 먹어 가는 집이다.


셋째는 시간에 따라 무쌍하게 변화하는 집이다. 말하자면 시간에 따라 여러 다른 모습을 보이며 시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집이다. (259)


유럽의 도시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나는 ‘자연화한 도시 풍경’을 들곤 한다. 사람이 만든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워서 마치 백 년 전, 천 년 전에도 거기 있었던 것 같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 백 년 후 천년 후가 되어도 그 자리에 있을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변하지 않을 듯한 그 느낌’은 깊은 안도감을 준다. ‘오래된 미래’라는 말의느낌이라고 할까. 유럽의 환경을 ‘문화화된 풍경’이라고 표현하는데, ‘사람의 손이 닿았지만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는 뜻이다. (260)


그 땅에 꼭 있어야 할 듯한 집을 짓는 것이 집짓기의 기본이다. 그 땅과 그 주변에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그 자리에 있어야 할 필연을 느끼게 하는 집이란 참 격이 있다. 자연스럽게 자리를 대하는 사람을 보면 멋이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 (260)


시간이 배어 있는 집이란 시간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집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항상 똑같아 보이는 집은 자칫 지루해진다. (263)


시간마다 새로운 집이란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하루의 시간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집, 일주일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집,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집이다. 빛은 가장 직접적이다. 새벽의 여명, 아침의 햇살, 정오의 높은 해, 이른 오후의 기다란 빛, 석양의 어스름, 밤의 캄캄한 빛은 매일매일 시간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빛의 요술을 담는 집은 가장 수준 높은 수준의 설계를 이룬 집이다. (264)


집은 또한 사람의 활동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그 변화하는 활동이 표현된다면 사람 사는 집의 다양한 시간이 느껴질 것이다. (265)


집이란 가족의 역사다. 엄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모님, 증조부님, 또 그 연대를 모를 조상들의 기억을 담고 있는 곳이 집이다. 우리 자신이 이 자리에 있게 된 소이연을 만들어 준 사람들이다. (266)


사진을 이용한 시간의 진열은 집 안에 시간 감각을 첨가하는 아주 쉬운 방식이다. 앨범 속에만 시간을 묻어 둘 것이 아니라 우리 집의 벽, 문, 현관, 복도에 시간을 진열해 보자. 우리는 벽을 너무 밋밋하게 비워 두고, ‘좋은 그림’이 없어서 비워둔다고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은 아니가. 그런데 우리는 좋은 그림을 항상 가지고 있다. 바로 가족의 역사다. 이렇게 가족사진이 이어진다면 근사한 ‘시간의 갤러리’가 될 것이고, 집에 근사한 미술관을 꾸미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267)


집에 시간의 깊이를 더하는 방식으로 시간의 역사가 새겨진 물건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새 물건이 아니라 오래된 시간을 품고 있는 물건들 말이다. 조상이 직접 쓰던 물건이면 더 좋다. 조상의 역사를 이곳 이 시간으로 가져오는 기막힌 묘수다. 내가 살지 못했던 시간을 빌려 옴으로써 지금의 시간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묘법이라고나 할까. (267)


소품의 마력은 참 놀랍다. 사람들에게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아로새겨 주고, 흘러간 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면서 깊은 감동을 준다. 그러한 소품은 대개 몸에 지니거나 손으로 만지거나 눈에 보이기에 더욱 친밀하게 느껴진다. (267)


가족의 역사와 오랜 시간의 역사를 느끼면서 살면 집이 담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만큼 집의 뜻이 깊어진다. 시간만큼 ‘위대한 유산’은 없는 것 같다. (269)


시간의 기록이란 기억의 기록이다. 기억의 깊이란 정감의 깊이다. 시간의 깊이란 멋의 깊이다. 집은 시간의 갤러리다. (270)


시간이 담긴 집, 시간이란 사람에게 가장 귀중한 재산이다. 시간의 폭과 깊이를 집에 담아 보자. (270)


10. 길에서 창문에서 동네에서 보는 집 - .. 얘, 나와 놀자!

나의 생각은 뚜렷한 편이다. 비슷한 사람들만 모여 사는 동네보다는 되도록 다양한 사람이 모여 사는 동네가 좋다고 본다. 다양한 계층이 있되 되도록 겉으로 금방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동네가 바람직하다. (280)


현대 이웃의 좋은 관계를 정의해 보자. ‘첫째는 인사에 어색치 않기, 둘째는 서로 피해 안주기, 셋째는 일 생길 때 도움 청할 수 있기’라면 완벽한 이웃 관계가 아닐까. (283)


적어도 기본 예의는 지키는 이웃이면 도시의 이웃으로 충분조건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가까이 살면서도 적절하게 떨어져 사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도시의 이웃으로서 갖추어야 할 요건이다. 기본 예의를 지키면서 문제가 있을 때 도와주는 이웃이 되는 것, 이것이 도시 이웃의 역할이다. (284)


이웃이란 바로 사람이고 그 사람의 존재가 길에서 느껴질 때 비로소 우리는 같은 사회에서 서로 지켜 주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집의 형태, 특히 모여 사는 형태는 무척 중요하다. (286)


집들이 모여 사는 모습은 그 사회의 모습이다. 모여 사는 모습은 분명 그 사회 사람들의 마음을 나타낸다. 얼마나 믿고 사는 사회인가. 얼마나 정다운 사회인가, 얼마나 이기적이 s사회인가를 집이 모여 사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286)


집은 표정이 있다. 마치 사람과 같다. (288)


집은 사람과 같다. 집은 사회의 기본이다. 집은 아이들의 미래가 자라는 바탕이다. (291)


11. 길들이며 사는 집 - .. 집 고르기, 집짓기, 집 관리하기

‘집 같은 집’의 의미 중 하나는 집을 가꾸고 잘 관리한다는 뜻이다. 집 관리란 그만큼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다. (299)


집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집을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시각이다. 집 역시 태어나고 늙고 도 죽는다. 집도 수명이 있으며 사람 몸처럼 여러 부위가 있다. 어던 부위는 쉽게 노후하고, 어떤 부위는 오래 건강하고, 어떤 부위는 자주 돌봐 주고 갈아 주어야 한다. 집 역시 사람처럼 평소 건강 진단도 해야 한다. (301)


생명체를 보는 시각으로 집을 길들여 보자. 집을 알고, 집을 다루고, 집을 진단하고, 집을 고쳐 보자. 집 관리 잘 하는 집주인들은 아주 고맙다. 집 관리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아무 문제 없게 해주세요”라고 해버리거나, 문제가 생기면 지나치게 긴장하고 귀찮아하거나, 평소 집을 관찰하지 않는 사람은 집주인의 자격이 없다. (301)


집을 고를 때, 집을 지을 때, 집을 고칠 때, 집에 살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다. 집에 대해서만큼은 사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물론 때가 되면 실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전문가 역시 사는 사람의 적절한 판단이 있을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303)


나는 부디 자신의 손으로 집을 고치고 짓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다.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구조적인 안전이나 설비, 전기 등의 부분도 물론 있다. 그러나 집주인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고치고 설치할 수 있는 부분도 무척 많다. (316)


집 고치기, 가구 만들기, 도배하기, 창틀 고치기, 마당 텃밭 만들기 같은 것은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으며 또 재미도 있다. 우리 사회도 자기 손으로 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는 선진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자기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뿌듯한 재미를 붙이는 사람들이 점점 늘기를 바란다. (317)


집을 잘 길들이면 자신이 집에 길들여지기도 한다. 무엇 하나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꼼짝 못하게 될 정도로 집과 자신의 궁합이 척척 맞는다고나 할까. 집과 자기의 궁합을 맞추고 나면 집을 더욱 아끼게 될 것이다. 성읠ㄹ 들일수록 정은 더욱 깊어간다. 우리가 사는 집을 스스로 길들이자. (317)


12. 혼자 있어 보는 집 - .. 정말 집의 주인이세요?

우리 사회에서는 ‘나’보다 ‘우리’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특히 집에 대해서는 ‘우리 집’이라 부른다. (324)


‘소유하는 집주인의 내 집’보다 ‘사는 집주인이 사는 우리 집’이 중요하다. (325)


‘사는 집주인’의 자격은 무엇일까

첫째 자격은 집에 혼자 있어도 몸 편하고 맘 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에 혼자 있으면 무언가 집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족들이 다 나간 후에 혼자 조용한 집에 있는 느낌은 꼭 외로움만이 아니다. 자신이 집 전체를 차지한 듯, 마치 자신만의 천국이 펼쳐지는 듯한 충족감이 있다. 가족들 다 내보내고 집안 치우고 햇살 따뜻한 마루에서 혼자 차 한잔 하는 느낌은 누구나 가끔씩은 맛보아야 하는 행복감이다.


집에 혼자 있을 때 어쩐지 기분 좋게 느끼는 사람이라면 근사한 집주인이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가끔은 일부러라도 집에 혼자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하는 사람이라면 집에 혼자 잇는 행복을 체득한 집주인이다. 아내들이여, 남편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을 미리미리 배려해 주자. 부모여, 아이들이 집에서 자기들만 있는 시간을 가끔씩 배려해 주자. 이런 배려를 해 주어야 남편도 독립적이 되고 아이들도 부쩍 큰다.


둘째 자격이라면 집에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당황하지 않고 해결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셋째 자격 조건이라면, 집에 대해서 자꾸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제안하는 자세다.

예컨대 집은 짓거나 고치거나 할 때 아무 요구 살=항이 없는 가족이라면 문제가 있다. 불편할 때 조금이라도 편리하게 만들고자 제안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집주인 자격이 없다. 관건은 제안만이 아니라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사실 약간의 변화라 하더라도 집에서 변화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의 습관과 가족의 습관을 잘 파악하고 가족 모두에게 맞는 습관을 만들 수 있을 때 사는 집주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넷째 자격이라면, 집에 대해서 자기가 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자기가 맡은 일이 있으면 된다. 집에 대한 참여 의식이다. (328/329) 


집안일이란 끊임없이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 피곤하다. 하나하나 일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쌓아 놓으면 가짓수도 많거니와 하루 이틀 안하고 넘어가면 금방 돌보지 않은 티가 난다. 어느 한 사람에게 심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가족들이 각기 기여해야 한다.

쉬운 일부터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 성향이 다르니 집집마다 가족의 약속을 만드는 것이 좋다. 집안일을 나눈다는 점에서 우리 가족은 모두 사는 집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330)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여러 사람과 살든, 서로 모르는 사람과 살든, 여러 세대가 모여 살든 주체성을 가지고 자기 집을 구려 가야 한다. 집주인으로 사는 것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필요한 덕목이 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준비된 집주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334)


집도 가족의 변화에 따라 쉽게 바꾸어 가며 살 수 있으면 참 좋을 것이다. 자신의 삶의 스타일이 바뀔 때 자신의 집의 모습도 바꿀 수 있는 집주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336)


진정한 집주인이라면 남들이 무어라든 간에 자기에 맞추어 집을 만들고 즐기는 사람임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집에 대해서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하여 다양한 집을 만들어 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337)


우리 사회에서 남의 눈을 의식하고 산다는 것은 참 피곤한 일이다. 사실 모든 집은 달라야 옳다. 사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재미없다는 사실은 너무도 같은 것이 많다는 것이다. ‘집이란 어떠어떠해야 한다’, ‘집에 이것쯤은 꼭 갖추어야 한다’와 같은 고정관념이 우리 사회에는 지나친 편이다. 아파트라 해서 똑같을 이유도 없고, 평면이 같다고 해서 공간을 똑같이 쓰거나 장식이 똑같아지라는 법도 없다. 집에 맞추어 표준화된 인간이 되어야 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우리가 진짜 집주인이 될 수록 우리의 집 모습은 집집마다 달라질 것이고, 우리 가족에 맞는 독특한 집이 되어 갈 것이며, 우리 가족만의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만들어 갈 것이다. (337)


우리 사회에 다양한 집들이 많이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한편에서는 너무너무 잘사는 근사한 집도 있어야 맞다. 옛 사대부들의 잘 지은 집이 지금에 와서 전통 문화의 자산이 되듯이, 지금의 스타일을 잘 살려서 근사하게 잘 만든 집은 이 시대의 문화로서 좋은 자산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반면 대여섯 평 단칸방에 살아도 아무렇지 않아야 옳다. 그렇게 작은 집도 갖출 것 다 갖추며 살 수 있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자기 식으로 선택해서 사는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37)


다만 똑같은 집, 자기 색깔이 없는 집, 그 집만의 맛이 없는 집, 남의 눈을 의식해서 그저 통상적인 방식으로 사는 집, 남들 사는 대로 갖춰 놓고 사는 것만이 목적인 집은 아니라면 좋겠다. 모든 집이 그 집만의 색깔이 느껴지는 집이면 좋겠다. 크기로 삶이 정해지고 값으로 가치가 매겨지지 않는 집다운 집이 되면 좋겠다. (338)


나는 그 천만 개의 집이 다 다르기를, 다 고유의 색깔이 있는 집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 이야기, 집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더욱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자신만의 이야기, 자기가 삶에 대해서 바라는 많은 순간, 가족과 같이 맛보고 싶은 정다운 순간, 자연에 대해서 생각하는 여러 바람이 모든 집에서 가지각색으로 표현되면 좋겠다. (338)


집은 누구인가. 집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338)



3. 내가 저자라면


<이 집은 누구인가> 이 책은 집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생각하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나의 삶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에, 집이라는 공간을 담고 있으나 집에 대한 생각, 삶에 대한 생각을 담았기에, 더 넓게는 우리 삶에 대한 책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이 책은 우리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에세이다. ‘집의 감성’을 읽어 보는 책이라 해도 좋다.

(P9)


저자 역시 이 책에서 자신의 집을 추억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삶이 묻어 있는 집의 면면, 그 속에 녹아 있는 감성들을 끄집어냈다. 집이야말로 그 어떠한 건축물보다도 또한 사람이 만드는 그 어떠한 물리적인 실체보다도, 일상생활에서 사람의 감성이 담겨지고, 표현되고, 또 감성에 어필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사람의 무한하고 오묘한 감성을 계발하고 승화시키는 그릇이라는 저자의 생각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음을 느낀다.


작은 것 하나라도 자기 집을 스스로 바꿔 보는 행위란 그만큼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된다는 뜻이니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P9)


집도 가족의 변화에 따라 쉽게 바꾸어 가며 살 수 있으면 참 좋을 것이다. 자신의 삶의 스타일이 바뀔 때 자신의 집의 모습도 바꿀 수 있는 집주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P336)


우리가 사는 집이 맨날 그저 그 모양이라면 그만큼 우리는 우리의 삶에 둔감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우리의 삶을 잘 모르거나 우리가 원하는 삶이, 꿈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거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그럴까? 나의 첫 책은 이러한 의문들에서 비롯되었다. 나의 책은 집에 대한 현장 체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을 좀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우리의 삶을 좀 더 잘 헤아려 보고 우리가 원하는 삶을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집에 대한 나의 열정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는 정말 우리의 집을,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정서가 그것을 원하고 있고 우리의 여력이 그만큼 닿아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나날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은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에 종종 비유되곤 한다.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인 집을 우리가 진정 원하는 삶에 맞게 만들어 가는 일은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모두 필요한 일이다.      


집을 고를 때, 집을 지을 때, 집을 고칠 때, 집에 살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다. 집에 대해서만큼은 사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물론 때가 되면 실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전문가 역시 사는 사람의 적절한 판단이 있을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P303)


사람들은 대개 집에 대해서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전문가가 모든 해답을 갖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문가란 ‘도와주는 손이자 머리’이고, 가장 좋기로는 ‘도와주는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P10)


집꾸미는 일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이 집이 나를 대변해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집, 나의 삶, 나의 스타일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집주인이 자신의 공간, 집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작업을 의뢰받는 디자이너 역시 그 공간을 사랑하기 힘들다. 아무리 전문가라해도 집에 대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찾아내서 만들어주기는 어렵다. 전문가는 방향을 제시하고 길을 잃었을 때 약간의 도움을 주며 손발을 잠시 빌려줄 뿐이다.


나를 표현하는 집, 나의 집을 꾸미는 데 있어서 어느 것이 정답이고 어떤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집주인의 취향과 개성이 드러나면 얼마든지 훌륭한 공간이 될 수 있다. 집꾸밈, 즐겁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발품을 팔고 손때를 묻히는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면 생각보다 많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앞으로의 집은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나를 표현하는 집, 우리 가족을 표현하는 집, 집에 들어가기가 즐겁고 집을 나올 때도 마음이 홀가분한 집, 집 가꾸기가 집 꾸밈이 모든 사람의 즐거운 취미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진짜 집주인이 될 수록 우리의 집 모습은 집집마다 달라질 것이고, 우리 가족에 맞는 독특한 집이 되어 갈 것이며, 우리 가족만의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만들어 갈 것이다. (P337)


다만 똑같은 집, 자기 색깔이 없는 집, 그 집만의 맛이 없는 집, 남의 눈을 의식해서 그저 통상적인 방식으로 사는 집, 남들 사는 대로 갖춰 놓고 사는 것만이 목적인 집은 아니라면 좋겠다. 모든 집이 그 집만의 색깔이 느껴지는 집이면 좋겠다. 크기로 삶이 정해지고 값으로 가치가 매겨지지 않는 집다운 집이 되면 좋겠다. (P338)


나는 그 천만 개의 집이 다 다르기를, 다 고유의 색깔이 있는 집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 이야기, 집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더욱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자신만의 이야기, 자기가 삶에 대해서 바라는 많은 순간, 가족과 같이 맛보고 싶은 정다운 순간, 자연에 대해서 생각하는 여러 바람이 모든 집에서 가지각색으로 표현되면 좋겠다. (P338)


이왕이면 멋있게, 세련되게, 문화적으로 내 이미지를 연출하며 살고 싶은 바램, 옛날 같으면 귀족이나 누릴 수 있었던 생활을 이젠 누구나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렇다고 호화스럽고 사치스럽게 돈쓰는 것만으로는 절대 얻어질 수 없는 품격과 개성,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이 담겨 있는 라이프스타일에 이르는 길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 어느 한 사람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세상에 어느 한 집 똑같은 집이 있을 수 없다. 평수나 아파트 이름이 나의 삶을 결정지을 수는 없다. 똑같은 크기의 집이라도 어떠한 모양을 담아내느냐에는 무한한 답이 존재한다. 자기 취향을, 색깔을 마음껏 표현하며 살고 싶은 멋은 무한히 개발될 수 있다.


자기가 살고 싶은 집을 그려보는 데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보자. 


살아보고 싶은 집에 대해 꿈을 꾼다는 것은 우리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뜻이다. 어릴 적 살았던 집들의 추억을 떠올리고, 지금 사는 집을 즐기고 불만을 가지면서도, 또 살아보고 싶은 집에 대해서 꿈을 꾼다는 것, 우리가 살아 있는 한 해야 하는 상상의 작업이다. (P63)


나의 첫 책을 준비하면서 목차에 담은 에필로그 주제가 ‘내가 꿈꾸는 집’이다. 아직 장담할 수는 없지만 글쎄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집에 대해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그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진다. 나 역시 언젠가는 살게 될, 나만의 집을 상상하며 그리며 살고 있다. 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미래의 집에 대한 꿈이 있기 때문이다.   


집에 대해 쓴다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본다는 뜻이다. ‘누구나 자신이 살아 본 집에 대한 이야기를 쓸 필요가 있다.’고 같이 공감해 주면 좋겠다. (P11)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집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을 새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삶의 아름다움을 찾으며 풍부한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사람 사는 집’을 만들어 가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11)


나의 삶을 담은 나의 집, 내 삶의 이야기가 풍성할수록 살고 싶은 집의 모습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나 역시 나의 책을 읽는 독자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글을 쓰는 일은 나를 발견하고, 나를 정리하고, 나를 펼치는 중요한 작업이다. 그만큼 알고 싶고 캐내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들이 나에게는 많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도 쓰지만 또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기도 한다. 글쓰기는 그 어느 작업보다 많은 훈련이 필요하고 끊임없는 재훈련이 필요한 일이라서 좋다. 누구에게나 권한다."


정말 내 마음에 무찔러 들어와 확 꽂히는 말이다.


집은 누구인가. 집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P338)

집은 누구인가. 집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의 집은 내가 만든다.

IP *.143.134.217

프로필 이미지
정야
2010.02.04 00:29:47 *.12.20.111
너의 책의 컨셉과 매우 일맥상통한 책을 잘 골라 읽었구나. 나도 오랫만에 건축가의 책을 보니 가슴이 설렌다.ㅎㅎ
집에 대한 소유의 집착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 내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열망은 누구에게나 있겠지.
나는 집이, 주변의 건물이 사람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네가 쓰는 책이 관심이 유난히 간다. 이 책도 짬나면 읽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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