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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5일 10시 23분 등록
저자에 대해서글쓰기를 중심으로. 

소설가 천명관은 원래 시나리오 작가다. 영화판에서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는데, 소설가로는 화려하게 데뷰했다. 그의 첫 장편, '고래'는 개인적으로 이광수 만큼이나 한국문학에 획을 그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다. '보통 등단할려면, 자기 키 높이만큼 습작을 해야한다고 해요. 그러면서, 저보고 운이 좋다고 하지요. 제 키가 180이에요. 저는 이미 제 키보다 더 높이 원고를 썼습니다. 누구보다 이야기예술에 고민을 했지요'

글쓰기에 대해서 고민한다. 어떻게 이야기를 생성하고, 엮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이리저리 엮으면, 글에서 의미가 나온다. 그 의미를 가지고 살겠다는 것이 글쓰기의 목적이다. 글쓰기의 맛은, 어느 예술과 마찬가지로 결과물이 남는다는 점이다. 디자이너가 박봉에도 불구하고, 밤 세워서 일하는 이유를 아는가? 결과물이 남기 때문이다. '내가 했다'는 증거가 고스란히 남는다. 보통 직장인들은 결과물이 남지 않는다. 그래서, 더 소모된다는 느낌이 든다. 

글쓰기는 편하다.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면, 준비할 것이 많다. 악기를 배우겠다고 해도, 역시 공간과 시간이 따로 필요하다. 반면 글쓰기는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된다. 시간이 따로 필요하긴 하지만, 얍삽하게 근무시간에 쓸 수도 있다. 나는 글을 가게 카운터에서 쓴다. 손님이 오면 음식과 술을 내놓는다. 그리고, 카운터로 와서 글을 쓴다. 쓰다 막히면, 홀을 한바퀴 돈다. 손님들의 식사 모습을 본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보충한다. 글은 항상 자주 막히기 때문에, 산만하다할 정도로 글쓰기와 홀보기를 병행한다. 

인간에게는 예술로서 자신을 표현하는 욕구가 있다. 일개 톱니바퀴로만 살아간다면, 인간은 메마른다. 때문에 글쓰기로 예술하고 싶은 욕구를 그나마 달랠 수 있다.  

캠벨은 신화학자이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에서는 디자이너다. 그는 책을 많이 읽어서,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다. 훌륭한 디자이너나 작곡가는 소스 DB를 구축해놓는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고, 많은 소스를 확보할 수록,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 5년 동안 책만 읽었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야기 소스를 확보했을까? 

그의 책읽기 방법은 중구난방이 아니다. 전작주의라고도 하는데, 한 작가의 책을 다 읽는다. 그 작가가 읽은 책들도 모조리 읽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얻는 것은 두가지라고 예상한다. 

1. 긴 총대
2. 많은 총알

'긴 총대'란 이야기를 엮어내는 구성력이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차이가 무엇인가?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고, 드라마에는 극적 효과가 있다. 예를 들면, '왕이 죽었다. 여왕도 죽었다'라고 하면 다큐다. '왕이 죽어서, 그 슬픔으로 여왕이 죽었다'라고 하면 드라마다. 복선을 깔고, 암시하며, 처음과 끝을 일관하게 관통하는 힘이, 구성력이다. 이런 힘은, 아주 분량이 많은 책을 읽을 때 생긴다. 총대가 길어야 글에 힘발이 생긴다. 

두번째, 총알은 구슬에 해당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속담이 있다. 총알은 '구슬'이다. 레고블럭을 쌓을 때, 블럭이 많을수록 조합할 수 있는 가지수도 많아진다. 

캠벨은 이 두가지를 모두 가졌다. 그는 편집자로서도 활약한다. 캠벨이 신화를 탐닉한 이유는 무엇일까? 부자가 돈을 모으듯이, 그는 이야기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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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신화 입문서다. 대담 형식이라, 그나마 신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빌 모이어스가 캠벨에게 신화를 묻는다. 켐벨은 질문에 답한다. 대중이 궁금해하는 것을 질문하는데, 이를테면 신화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슨 가치가 있느냐이다. 정말이지, 캠벨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다. 신화에  대해서 입에 침이 마르게 이야기하는, 그에게 차마 물어보지 못한 것을 모이어스가 대신 질문해주었다. 

이 책의 목적은, 신화를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기다. 신화가 현대에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설득하기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상당 성과를 올렸다. 모이어스는 대중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저널리스트이다. 둘은 궁합이 맞다. 단점은 이야기가 중구난방이라고 할까. 대담 형식의 책은, 몇개의 대화는 생각이 나는데 전체 무슨 말을 했는지 갈피 잡기가 어렵다. 뒤에 색인이 없는 것도 아쉽다. 각 장마다 서술문으로 요약해주었다면, 좀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용면에서는 고대 신화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현대에서 어떤 신화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추적한다. 생소함에서 친숙함보다는, 친숙함에서 생소함으로 이야기를 나아가는 것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특히, 영화에서 신화를 찾아보는 작업을 한다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내가 저자라면, 전기나 영화, 연극, 광고등에서 신화를 찾아보겠다. 이를테면, 마하트마 간디나, 비틀즈의 존레논의 생을 신화로 분석해 본다. 유명한 사람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인생을 어떻게 신화에 대입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한다면 더 대중성있는 책이 되리라. 영웅 영화는 그 모티프가 신화다. 영화 뿐만 아니라, 드라마가 들어있는 이야기는 모두 신화를 기초로 한다. 보다 더 친숙한 이야기에서, 신화로 발전시키지 않은 것은 아쉽다.

신화는 성장하는 이야기다. 신화속의 영웅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보여줌으로써, 삶의 이정표가 된다. 방황하고, 고민하는 영혼에게 용기를 준다. 신화는 절대적인 방향이다. 우리 삶에 꼭 필요하다. 이런 필요성을 말해주는 책이 더 필요하다.

IP *.160.4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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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4.05 18:47:54 *.30.254.28
인터뷰어로서의 글쓰기와  더불어 비평가적 글쓰기..랄까? 그것 또한 인건이의 강점에 추가해야  겠다...읽으며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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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4.05 23:54:01 *.129.207.200
보이스 레코더는 성능은 좋은데, 사용할 시간이 없더군요. 인터뷰할 때는, 메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8명과 만나 이야기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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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 선
2010.04.05 23:09:40 *.106.7.10
캠벨의 책읽기는 나도 따라 배울 것을 다짐했어,
그게 '전작주의'구나!
인건의 글쓰기가 힘이 있는 것은 아마 인건의 풍부한 데이타베이스 때문이며, 또한 같은 책을 읽고도 그것을 이렇듯 맛깔나게 풀어내는 것은 아마도 인건의 구성력 때문이겠구나!

인건 안의 쏟아나는 예술가적 열정을 글로 많이 많이 풀어내길,
그리고 우리는 그와 함께 많이 배우길.

잘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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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4.06 00:00:13 *.129.207.200
'전작주의자의 꿈'이라는 책 있어요. 책읽는 방법에 대한 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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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4.06 10:34:38 *.236.3.241
영화로 치면 인건이는 교차편집이 많은 글을 쓴다. <타짜>를 만든 최동훈 감독 스탈이랄까.
속도감이 있고 볼거리 읽을거리가 많다. 커다란 롤리팝 사탕을 눈앞에 들이대고 "나 잡아 봐라"
며 도망가고 독자는 팔을 휘저으며 어떡하든 잡아보려 안간힘을 쓴다.

숨이 턱까지 찼을 때 턱~ 하니 비장의 무기를 내미는데 롤리팝이 아니라 닭대가리다.
이것을 아마도 '황당 카타르시스'라 부를 수 있으리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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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4.06 17:27:56 *.129.207.200
상현 형은 보는 눈도 날카로우시네요. 

전, 소설가 김영하, 장정일의 글을 좋아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너무 범세계적이라, 오히려 개성이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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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연주
2010.04.08 00:42:47 *.68.10.114
현재 우리가 살아숨쉬는 곳에서 발견하는 신화...더욱 매력적이겠죠~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나...내가 한문을 가르치는 것이나...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과거의 것을 현재 우리의 삶에 적용시켜보는 즐거움과...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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