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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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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5일 13시 19분 등록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원제: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 조셉 캠벨 Joseph Campbell, 이윤기 옮김)


* 저자에 대하여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내가 읽은 조셉 캠벨의 세 번째 책이다.

  이번에는 한국에 소개된 캠벨의 다른 책들도 찾아보면서 그의 사상에 영향을 끼친 사건들에 대한 자료를 더 찾을 수 있었다.


  캠벨은 전형적인 중산계급의 장남이었고, 그의 가족은 아일랜드계 카톨릭 신자였다. 캠벨이 열다섯 살에 입학해서 3년 후 우등으로 졸업한 프레프 스쿨도 로마 카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였다.

  캠벨은 1921년, 다트머스 칼리지에 진학해 생물학과 수학을 전공했으나 메디치가에 관한 책을 읽고 인문학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콜롬비아 대학에 편입했다. 그곳에서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배우면서 육상 선수로서도 활약하면서 재즈 밴드에서 색스폰을 연주하기도 했다.

  1924년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할 때, 선상에서 인도의 유명한 종교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나서 힌두교와 불교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아서 왕 전설을 연구하여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특별 장학금을 받아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1년간 유학을 했으며 이때 아서왕 권위자 밑에서 로망스어, 중세 프랑스어, 프로방스어, 라틴어 등을 전공하면서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등 새로운 문학의 영향을 받았다.   

  이후 뮌헨 대학에서 산스크리스트와 인도-유럽 어족의 언어들을 공부하고 그곳에서 괴테와 토마스 만의 문학과 프로이트, 융의 사상을 접하게 된다. 또한 뮌헨 시절에 불교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그 무렵부터 캠벨은 카톨릭 교회에서 완전히 멀어졌고 미국에 돌아와 자신이 기독교도가 아니라고 공언했다. 아무리 종교자유국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기독교가 사회 저변을 지배하는 미국에서 자신의 사상을 공언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캠벨은 기독교가 설교하는 자연정복 사상과 배타성(선민사상이나 교파 대립 등)과 제의나 교리에서의 신화적 상징을 문자그대로의 사실로 강요하는 것에 의문을 품었고 이에 대신할 것을 인디언 신화나 고대 신화 및 동양 신화에서 찾았다고 한다.

  후년에 이르러서는 불교에서 그의 이상에 가장 가까운 것을 발견하여 자택 서재에 달마대사의 초상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불교신자는 아니었고 일상생활에서 명상을 통한 자신의 내면 여행을 끝없이 계속했다. 캠벨이 한 종교에 대한 유명한 말이 있다.

  “당신의 신은 나의 신이 아니다. 따라서 내게 그것을 강요하지 말라.” 

   

  1940년부터 콜롬비아 대학의 인도 교수였던 하인리히 침머와 교류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1942년 침머의 소개로 융 학파가 주관하는 종교, 신화, 정신분석학 논문집인 [볼링겐 시리즈]의 편집자가 되었다.


  캠벨이 6세 때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본 웨스턴쇼에서 연방기병대장보다 토벌되는 인디언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후 인디언 문화나 제의를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결국 그의 일생은, 처음에는 그도 몰랐겠지만 하나하나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면서 사건과 사람의 영향을 받으며 천복을 찾아가는 하나의 여정이었던 것이다.

  캠벨이 겪은 모든 사건과 만남은 수많은 신화와 서사시들을 인간의 영혼 안에서 연결하는 그의 사상과 이론이 되었다.   


** 그 외 캠벨의 저서들

  <신의 가면> 까치글방, 1999년부터 2003년까지 한 권씩 발행됨, 이진구/정영목 역

  - ‘원시신화’, ‘동양신화’, ‘서양신화’, ‘창작신화’ 전 4권

원제: The Masks Of GOD

-Primitive Mythology, Oriental Mythology, Occidental Mythology, Creative Mythology

  캠벨은 인류는 인종이나 지역에 관계없이 공통으로 나타나는 동일한 신화적 모티브-신화적 동기 혹은 신화적 주제-를 공유하며 구조적 통일성을 가지는 동시에 지역마다 다른 양식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그의 대작 <신의 가면>은 이러한 그의 사상을 크게 4가지로 구별하여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유럽에서는 인간 이성과 책임적 개인, 레반트 지역에서는 초자연적 계시와 신이 지배하는 하나의 참된 공동체, 인도에서는 위대한 내재적 텅 빈(空) 상태에서의 요가적 통제, 극동에서는 천지의 도와 자발적으로 일치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4가지 전통을 각기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간상으로 프로메테우스, 욥, 눈을 감고 앉은 부처, 눈을 뜨고 소요하는 현자를 제시하였다.

  '원시신화’ (1959년 출간)

  ‘신화의 심리학, 원시 농경인의 신화, 원시 사냥꾼의 신화, 신화의 고고학’을 큰 목차로 하고 있으며, 신화의 탐구는 삶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세계 신화의 기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동양신화’ (1962년 출간)

  ‘동양과 서양의 분리, 인도의 신화-고대 인도, 불교 인도, 인도의 황금 시대, 극동의 신화-중국의 신화, 일본의 신화, 티벳’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서양과 동양의 완전히 대립되는 사상의 차이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동서양으로 갈라졌으며 동양 안에서도 인도와 극동으로 점차 다르게 전개되는 과정을 분석해가고 있다.  

  '서양신화’ (1964년 출간)

  ‘여신의 시대, 영웅들의 시대, 위대한 고전의 시대, 위대한 신앙의 시대’로 구성되어 있다. 이란 고원을 경계로 동양과 서양이 지리적으로 나뉘고 서양에서 유럽과 레반트 지역(동부 지중해 연안)으로 구분되는 과정, 그리고 서양의 예술, 문학, 종교의 뿌리가 되는 기독교 이전의 신화부터 종교개혁의 시기까지의 신화와 종교에 대한 책이다.

  '창작신화’ (1968년 출간)

  ‘고대의 포도나무, 황무지, 길과 생명, 새 포도주’라는 가장 추상적인 목차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세 이후 서양을 중심으로 한 철학, 문학, 종교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신화의 새로운 모습에 대한 책이다. 또한 주어진 신화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가는 현대인들의 새로운 출발을 그리고 있다.  


<신화의 이미지> (주)살림출판사, 2006년, 홍윤희 옮김

 원제: The Mythic Image, 1974년

 100권의 볼링겐 시리즈의 최종 마무리작.

  언어 이상의 힘이 그림에 있음을 알려주고, 이 그림들의 은유와 상징을 통해서 우리가 꿈을 향해 마음껏 상상하도록 유도해 주는 책으로 캠벨이 70세가 되던 해 마무리되었다.

  ‘꿈으로의 세계, 우주 질서에 대한 생각, 연꽃과 장미, 내면의 빛의 변형, 희생, 깨어남’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지만 캠벨의 말처럼 굳이 목차를 따라가지 않아도 마음에 와 닿는 그림부터 보아나가도록 되어있다. 


  <신화의 세계> 까치글방, 1998년 초판 발행, 과학세대 역

원제: Transformations of Myth Through Time (직역: 시간을 통해서 변모하는 신화)

  하퍼&로 출판사, 1990년 간행

  미국 공공방송(PBS)에서 1982년~1984년까지  미국 각지에서 행한 캠벨의 강연을 녹화해서 텔레비전으로 방영한 뒤, 1990년 간행한 캠벨의 강연집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 신석기시대의 신들과 여신들, 이집트/출애굽/오시리스 신화, 영구불변의 동양철학, 불고, 쿤달리니 요가, 티베트 사자의 서, 고대 그리스 신비종교, 아서왕 전설과 서양의 길,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르치팔의 전설 등 동서양을 막론한 다양하고도 유명한 신화와 종교들을 상징과 은유라는 관점으로 해석하고 또 소개한다.

  제인 구달의 침팬지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신화의 기원을 설명하고 있으며, ‘인간의 본성’이라는 키워드로 지역과 문화가 너무도 다른 각각의 이런 신화들을 원소적 관념(세계djsm 곳에서나 같은 이미지와 같은 주제가 되풀이된다는 것)에서 찬찬히 설명한다.

  전체를 차분히 읽지는 못했지만 내가 본 캠벨의 책 중에서 이해가 가장 쉽고 신화에 대한 이야기도 가장 자세히 나온 책이었다.


  <네가 바로 그것이다> 도서출판 해바라기, 2004년, 유진 케네디 엮음, 박경미 옮김

원제: Tat tvam asi (산스크리스트어 : 네가 그것이다)

  캠벨 사후 아내 진 애드먼이 1991년 설립한 조셉 캠벨 재단에서, 캠벨의 강연 내용을 토대로 엮은 ‘조셉 캠벨 전집’ 중 하나이다.

   종교의 은유와 상징 및 종교적 상상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주로 유대-기독교 전통 및 상징에 대해 다룬 책이다. 캠벨이 사후에 반유대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은 부분에 대해 종교의 은유에 대해, 성서의 은유성에 대한 그의 강연을 통해 해명하고자 했던 의도도 있는 듯하다. 제목인 ‘Tat tvam asi’는 조셉 캠벨의 영적 성찰을 모아놓은 책에 자주 인용되는 구절로서 캠벨이 지향한 사상을 명확히 표현해 준다.  

** 옮긴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이윤기에 의해 1985년 평단문화사에서 초판 번역되었고,  1984년 대원문화사에서 <세계의 영웅신화>라는 제목으로 다시 발행된 후, 1999년 민음사에서 다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으로 개역판이 나왔다.

  개역판 역자 후기에서 언급된 것처럼 역자 이윤기가 신화와 종교 분야를 전문적으로 번역하기 전에 초판 번역되었던 이 책을, 10년이 넘는 이 분야에 대한 번역, 출간 후 다시 손을 대어 재출간했다고 한다. 전문 번역자라는 용어도 낯설었던 그때부터 자신의 영역을 찾아온 역자 이윤기는 저자인 조셉 캠벨만큼 우리나라 신화와 종교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

   

*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프롤로그. 원질신화


1. 신화와 꿈

신화의 상징은 영혼의 부단한 생산물인데, 이 하나하나의 상징 속에는 그 바탕의 근원적 힘이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4]


신화는 왜 어느 곳에서 채집된 것이든 그 다양한 의상 아래로는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신화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14]


프로이트와 융과 그 후계자들은 영웅과 신화의 행적이 현대로 계승되었음을 여지없이 증명해 내었기 때문이다. [15]


무의식은 꿈을 통해서, 혹은 벌건 대낮에, 아니면 정신 착란을 이용하여 갖가지 부질없는 몽상과 기이한 상념과 공포와 정신을 어지럽히는 허상을 마음으로 올려보낸다. 인간이라는 왕국에서 우리가 의식이라 부르는, 비교적 깔끔하고 비좁은 처소의 바닥 밑으로는 뜻밖에도 알라딘의 동굴이 뚫려 있다. 여기에는 보물뿐만 아니라 우리로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거나 감히 우리 일상의 삶으로 통합하지 못했던, 불편한 혹은 억압당한 심리적인 힘이 도사리고 있다. [19]


무섭다고 하는 까닭은, 이것이 우리 자신과 우리 가족의 안전을 도모하는 질서의 바탕을 우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의 발견이란, 소망스럽고도 무서운 모험의 영역을 여는 열쇠를 가져다준다는 의미에서 보면 참으로 매력적인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었고,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있고, 우리가 내적으로 지니고 있는 세계의 파멸...... 그러나 파멸이 끝난 다음에는 보다 대담하고, 깨끗하고, 보다 푸짐한 인간적인 삶으로의 눈부신 재건, 이것이 바로 우리 속에 내재하는 신화적 영역에서 오는 이 심란한 밤손님의 유혹이며, 약속이며, 공포인 것이다. [21]


제의의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의식적 삶의 패턴은 물론, 무의식적 삶의 패턴까지 변화를 요구하는 변형의 문턱을 넘게 하려는 데 있다는 사실과, 실제로 그런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원시 사회 생활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른바 통과 제의는 이런 단계의 마음가짐이나, 애착이나, 생활 패턴으로부터 심적으로 단절된다는 의미에서 형식상으로 특이하고 극히 가혹한 단절의 체험이 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22]


신화와 제의의 주요 기능은, 과거에다 묶어두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끊임없는 환상에 대응하여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다. [23]


프로이트는 그의 저작에서 인간이 사는 삶의 순환 주기 중 전반부의 통과와 그 어려움을 강조하고 있는데... 유아기와 사춘기가 이 시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C.G.융은 후반부의 위기를 강조했다. [24]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29]


오직 탄생(낡은 것의 새로운 태어남이 아니, 새로운 것의 탄생)만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 [29]


창조 작업의 회복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보다 높은 차원을 위한 위기가 따르는데, ... 해탈 혹은 물러섬 과정은, 외적인 세계에서 내적인 세계로, 대우주에서 소우주로 그 중심을 옮김으로써, 황무지의 절망에서 내부에 존재하는 영원히 평화로운 영역으로 물러섬으로써 이루어진다. ... 우리가 잠잘 때 들어가는 곳이 바로 이 영역인 것이다. 우리는 이 영역을 평생토록 우리 내부에 간직한다. ... 어른이 되어도 의식할 수 없는 삶의 잠재력, 우리들 자신의 또 한 부분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이 황금의 씨앗은 마르는 법이 없다. 우리가 상실해 버린 이 전체성의 일부라도 나날의 현실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우리의 능력은 놀라운 수준까지 신장될 것이며, 아울러 생기 넘치는 재생의 순간을 체험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는 더 높이 솟아야 한다. [30]


꿈은 인격화한 신화고 신화는 보편화된 꿈이며, 꿈과 신화는 상징적이되, 정신 역학의 동일한 일반적 시각에서 보아 그렇다. 그러나 신화에서는 문제와 해결책이 모든 인류에게 직접 뚜렷이 제시되는 데 견주어, 꿈속에서는 꿈꾸는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33]


영웅은 과거 개인적, 지방의 역사적 제약과 싸워 이것을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정상의 인간적인 형태로 환원시킬 수 있었던 남자나 여자를 일컫는다. [33]


아무리 맹세하고 서원해도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란, 내부의 소명도 외부의 교리도 모르는 사람이다. [37]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39]


2. 비극과 희극

<연민이란,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고통받는 사람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공포는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보이지 않는 원인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40]


시공의 제약이 있는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의 하찮은 논리와 정서적 집착으로 찾아드는 죽음, 우리들이 흙으로 돌아가려 할 때 비로소 온몸을 흔들면서 승리의 찬가를 부르는 보편적 생명에 대한 이러한 재인식, 이 생명을 향한 우리의 가파른 중심 이동, 그리고 <운명에의 사랑>, 즉 필멸의 운명에 대한 사랑, 이런 것들이 비극적 예술의 체험을 구성한다. 그 기쁨, 구원의 황홀은 바로 그 안에 있다. [41]


삶은 모든 것을 채우고,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과 정복되지 않는 힘의 자각으로 다시 생기를 얻는다. [44]


3. 영웅과 신

영웅은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나고 여기에서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영웅은 이 신비로운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45]


4. 세계의 배꼽

신의 화신으로서의 영웅은, 영원의 에너지가 시간성 안으로 흘러드는 배꼽, 즉 세계의 배꼽이기 때문이다. [58]


신화에서는 한 자락의 풀잎도 구제자의 모습을 가릴 수 있고, 이 방랑하는 구도자를 구도자 자신의 가슴에 있는 지성소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다. [62]


제 1부 영웅의 모험


제 1장 출발

1. 영웅에의 소명

지금까지의 삶의 지평은 이제 너무 웃자라, 낡은 개념과 정서 패턴은 몸에 맞지 않는다. 바야흐로 또 하나의 문턱을 넘어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72]


이때, 주인공은 이전에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던 사물이 이제 무가치하게 되어버리는 상황을 경험한다. [77]


2. 소명의 거부

소명에의 거부는, 모험을 부정적이게 한다. [81]


미노스 왕처럼 이 모험의 주인공 역시 초인적인 노력으로 예사롭지 않은 제국을 건설하는 데엔 성공할지 모른다. 그러나 무슨 집을 짓건, 그가 짓는 것은 죽음의 집이다. [81]


주저앉는다고 다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많은 비밀을 여축으로 간직하고 있다. ... 소명의 거부에 따르는 부정적인 상태가 뜻밖의 해방의 원리에 대한 행운의 계시일 수도 있다.


3. 초자연적인 조력

모험을 나선 당사자가 그것을 알고 그 존재를 믿기만 하면 시공을 초월한 안내자는 언제나 나타난다. 소명에 응답했고, 용기 있게 미지의 사건에 대한 체험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영웅은 모든 무의식의 힘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대자연은 항상 위대한 임무를 지원한다. 영웅의 행동이 그 사회가 예비하고 있는 것과 일치될 때, 그는 흡사 역사적 변화의 리듬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96-97]


4. 첫 관문의 통과  

모험이란 기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을 말한다. [111-112]


우리가 오감으로 집착하고 있는 세계의 상징.... 여섯 번째 무기가 명과 형이라는 현상계 너머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원리의 지혜라는 천상적 벼락인 것이다. [119]


태양 문을 통하여 번제의 연기가 피어오르듯이, 영웅은 자아에서 해방되어 세계의 벽을 통과하는 것이다. 자아는 끈끈이 터럭에다 붙여두고 영웅은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120]


5. 고래의 배

이러한 괴수들은, 한 차원 심화된 내적 침묵과 만날 준비가 되지 않는 자들을 지켜주는 관문의 수호자들이다. [123]


제 2장 입문

1. 시련의 길

어쩌면 모험 당사자가 자신의 초인간적 여행 도정의 도처에 자비로운 권능이 있어서 자기를 도와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인지도 모른다. [128]


영웅은 자신의 자존심, 미덕, 아름다움, 삶을 팽개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 적대자에게 절을 하거나 복종한다. 이윽고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143]


2. 여신과의 만남

잠자는 여성은 미인의 본보기 중의 본보기며, 모든 욕망에 대한 응답, 모든 영웅의 지상적, 비지상적 모험의 은혜로운 최종 목표다. [145]


마르자 않는 샘을 지키는 수호여신(은) 영웅에게, 저 중세의 음유시인이나 궁정가인이 말하던 이른바 <온유한 마음>을 요구한다. [156]


여신과의 만남은 사랑의 은혜를 얻기 위해 영웅이 맞는 마지막 재능의 시험단계다. 이 사랑의 은혜는 바로 우리 삶이 누리는 영원성의 그릇과 같다. [157]


3. 유혹자로서의 여성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적인 결혼은 영웅의 삶 전체가 완성되었음을 상징한다. [159]


자신을 순수한 존재, 선의 정수, 부동의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 그는 자유로워진다..... 원래 타성적이고 추악한 존재인 이 육체의 모든 제약을 떨쳐버리라! 육체는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 [162]


4. 아버지와의 화해

대부분의 신화에서 자비와 은혜의 이미지는 정의와 분노로 표현된다. 이렇게 해서 이 정의와 분노 사이에 균형이 생기고, 인간은 파멸을 겪는 대신 어려움을 근근히 이겨나간다. [168]


<화해>즉 <하나되기>란 스스로 만들어낸 두 마리의 괴물(신으로 보이는 용과 죄악)으로 보이는 용을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자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는데 이게 예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사자는 아버지가 자비로우며, 이 자비를 믿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되면 믿음의 중심은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신의 족쇄 바깥으로 이동하고, 믿음의 중심이 이동하면 무섭고 잔인한 측면은 사라진다. [170-171]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이 더 넓은 세계로 나갈 때 마땅히 거쳐가는 입문식의 사제다. [177]


영웅은 자기 몸에 박힌 가시(약점)을 통해 삶을 초월하여, 한순간이나마 그 근원을 투시한다. 그는 여기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와 자기가 화해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192]


욥은, 끔찍한 불가마 안에서 견디는 용기와 전지전능한 신의 성격에 대한 일반적 개념 앞에서 결코 파괴나 굴복당하지 않음으로써, 친구들을 만족시키는 것 이상의 위대한 계시에도 맞설 수 있음을 증명한 영웅이었다. [194]


5. 신격화

티베트, 중국, 일본의 대승불교 - 관세음보살

이분은 존재의 구렁텅이에 빠져 고통받고 있는 모든 지각 있는 중생을 가엾게 여긴다고 해서 관세음보살, 즉 <대자대비로 굽어보시는 주>라고 불린다. [195]


그는 인간으로 이 땅에 살다가 마지막 관문을 넘어서는 순간에 이를 작파해 버리고, 모든 중생이 정각에 이르게 한 연후에야 공에 들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196]


소승 불교(싱가폴, 미얀마, 그리고 샴 지방에 남아있는 불교)는 부처를 인간적인 영웅, 대성인, 그리고 현자로 모신다. 그러나 대승 불교(북방의 불교)에서는 부처를 구세주인 대각자, 우주적인 정각 원리의 화신으로 파악한다. [195-196 각주]


우리 모두가 그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라고 하는 존재, 그의 형상, 혹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희망이다. [197]


<찬양할지라. 거룩하신 이께서 첫 사람을 지어내실 때, 그를 양성으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여성을 다른 형태로 후퇴시켰다는 사실은 완전성에서 이원성으로의 타락을 상징한다. [199]


영원성이 시간성으로 발전하고, 하나가 둘에 이어 다수로 분열하며, 둘의 재결합으로 새 생명의 세대가 나타나는 것이다. [200]


아버지. 어머니적인 모든 <선한>요소는 잡단의 평화로 수렴되고 <악한> 모든 것은 외부로 투사된다. [204]


사랑과 증오의 두 원리가 서로 헤어지는 극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인류의 역사에는 이러한 예가 얼마든지 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자기 마음을 정화하는 대신 세계를 정화하고 싶어진다. [205]


우리가 일단 세계의 원형들에 대한 편협스런 교회적, 종족적, 국가적인 해석의 선입견을 홀가분하게 벗어던지게 되면, 우리가 전수받아야 할 최상의 도리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서슴없이 이웃을 공격하는, 누구에게나 자애스런 아버지의 도리가 아님을 이해하는 게 가능해진다.

구세주가 전해 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듣고, 기뻐하고, 힘써 전파했지만 실천만은 끝내 꺼렸던 복음은 하느님은 사랑이며, 하느님을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받아야 하며, 모든 인류는 예외 없이 그의 아이들임을 가르치고 있다. [207]


불교의 팔정도는, 이치를 올바르게 보는 정견(正見), 정견으로 본 이치를 올바르게 생각하는 정사유(正思惟), 진실한 지혜로 구업(口業)을 닦는 정어(正語), 잘못된 행동이 없게 하는 정업(正業), 정당한 법으로 살아가는 정명(正明), 꾸준히 매진하는 정정진(正精進), 진실한 지혜로 정도를 생각하는 정념(正念), 진실한 지혜로 선정에 드는 정정(正精)이다. [215]


6. 홍익

육체의 불로불사를 구하는 것은 전통적인 가르침을 오해한 데서 기인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눈동자를 크게 해서, 육체와 그 종자인 개성이 더 이상 시야를 가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불로불사는 현실로서 체험된다. <그것이 여기에 있다. 그것이 여기에 있다>의 경지인 것이다. [248]


영원을 알면 이해력이 넓어지고, 이해력이 넓어지면 포용력이 넓어진다. 시야가 넓어지면 귀함을 얻는다. 귀함이란 천상적인 것과 다름아니다. [248]


개인적인 한계를 넘는 고통은 곧 전신의 성숙에 따른 고통이다. 예술, 문학, 신화, 그리고 밀교, 철학과 수련은, 모두 인간이 자기 한계의 지평을 넘고 드넓은 자각의 영역으로 건너게 해주는 가교인 것이다. [249]


제 3장 귀환

1. 귀환의 거부

원질신화의 규준인 완전한 순환 체계는 영웅에게 지혜의 시문, 황금 양털, 혹은 잠자는 미녀를 인간의 왕국으로 데려오는 또 한 번의 수고를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 이 은혜가 사회, 국가, 그 천체 아니면 일만 세계를 재생시키는데 환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253]


2. 불가사의한 탈출

심연의 권능에는, 섣불리 도전하면 안 된다. 동양에서는, 엄격한 지도와 감독 없이 심리적으로 해이해진 상태에서의 요가 수련은 몹시 위험하다고 가르친다. 수련자의 명상은 그 발전 단계에 따라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수련자의 상상력은 데바타(수련자의 수준에 알맞은 신성)에 의해 각급 단계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 정신을 수련한 다음에야 수련자에게는 홀로 초월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순간이 온다. [263]


이자나기 신은 창조의 세계를 넘어 사멸의 세계로 한 발을 들여 놓았기 때문에, 이자나미는 오라버니이자 배우자인 그를 구해 주려 했던 것이었다. 이자나기는,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는 순간 죽음의 실상을 알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생의 의지로 충만해 있던 그는 바위를 들어 그 창조의 세계와 사멸의 세계를 막았다. 그때부터 이 바위는 우리의 눈과 무덤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268-269]


두 세계의 상호 관계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사소한 실수, 즉 인간의 약점이라는, 사소하나 치명적인 증세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소한 일만 피하면, 모든 것이 잘 풀려나갈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269]


3. 외부로부터의 구조

영웅은 외부의 지원을 빌려 초자연적 모험에서 귀환하는 수가 있다. 말하자면 이 세계가 합세하여 그를 도울 수도 있는 것이다. 외부 세계가 이렇게 하는 것은, 지칠대로 지친 영웅에게, 힘겹게 도달한 지복의 땅을 포기하는 것은 쉬운 노릇이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 옛말마따나 <세상을 버린 자가 이 땅에 다시 돌아오려 하겠는가? ‘거기’에 남아 있으려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269-270]


다시 나타난 여신 뒤에다 친 금줄 <시메나와>는, 빛의 귀환이라는 기적의 자비로움을 상징한다. 이 <시메나와>는 일본 민간 종교의 전통적 상징 중 가장 중요하고 의미심장하고, 또 웅변적인 상징이다. ... 귀환의 문턱에 있는 세계의 원기 회복을 의미한다. [277]


초자연적인 힘은 주인공의 시련에 끝까지 동참하다 마지막 단계에 나타난다. 영웅은 의식을 잃고 무의식의 상태에서 원래 그가 살던 세계로 되살아난다. <불가사의한 도망>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웅은 자아를 지키는 대신 자아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조력자의 은혜로 영웅은 자아를 되찾는다. [280]


외부로부터 구조를 받든, 내적 충동에 따라 살아나든, 신들의 안내를 받든, 영웅에게는 오래 잊고 있던 곳으로 애써 얻은 전리품(홍익)을 가지고 돌아가야 할 단계가 남는다. 뿐만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재생의 영약을 가지고 돌아가 원래 속해있던 사회와 맞서면서 그들의 까다로운 신문과 서릿발 같은 증오와 맞서야 한다. 뭐가 뭔지 영문을 모르는 선한 사람들까지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280]


4. 귀환 관문의 통과

두 세계, 곧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는, 삶과 죽음, 밤과 낮처럼 서로 다르다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영웅은 우리가 아는 세계에서 암흑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 암흑의 세계에서 영웅은 그 모험을 완성할 수도 있고, 거기에 갇힘으로써 우리들로부터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엄청난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영웅의 귀환은, 그 저승에서의 귀환을 말한다. 이승과 저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하나의 세계다. 신화나 상징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바로 이것이다. 신들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잊혀진 부분이다. 기꺼이 이 일을 맡든, 어쩔 수 없어서 맡게 되든, 우리가 영웅의 행위를 이해하자면 이 잊혀진 부분의 탐험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상생활에서 중요하게 보이던 두 세계의 가치나 차이는, 지금까지 전혀 다른 것으로 인식하던 <타자>와 <자아>를 동화시키는 동시에 사라져 버린다. 개인의 개성화 상실의 이 공포는, 자격 미달인 개인에게는 초월적인 경험이라는 만만치 않은 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영웅에 값하는 인간은 대담하게 쳐들어가 마귀할멈이 여신이 되고, 용이 신들의 번견이 되는 것을 목격한다.

그러나 정상 상태로 깨어 있는 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심층에서 솟아난 지혜와, 속세에서 유용한 분별 사이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이 존재한다. 그래서 미덕에서 득실 계산이 파생하고, 그 결과 인간의 존재는 타락한다. 순교는 성자나 하는 것이지만, 범인에게도 그들 나름대로 중요한 것은 있는 법인 바, 이런 것들을 들의 백합처럼 멋대로 자라게 버려둘 수는 없다. 초월의 세계에서 보내진 은총은 하찮은 것으로 취급되어 버리니, 다른 영웅이 나와 말씀을 새롭게 설명할 필요가 절실해진다.

하지만 인류가 약삭빠르면서도 우매했던 몇 천 년 세월을 통해 수십만 번 제대로 가르쳐지기도 했고, 그릇 가르쳐지기도 했던 것을 어떻게 다시 가르친단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영웅의 궁극적인 숙제다. 빛이 있는 세상의 언어로, 언어가 무용한 저 암흑의 세계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2차원의 평면으로 3차원의 형상을 나타낼 것이며, 다차원의 의미를 3차원의 이미지로 나타낼 수 있단 말인가? 한 쌍의 대립물에 대한 정의의 시도가 무의미한데, 어떻게 <그렇다>와 <그렇지 않다>는 말로 이를 나타낼 수 있단 말인가? 오로지 감각의 배타적 증거에만 급급하는 일반인에게 어떻게 저 만유의 근원인 공을 설명한단 말인가?

수많은 실패의 사례가, 이 삶을 확정하는 관문의 통과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증하고 있다. 귀환하는 영웅이 당면하는 첫 번째 문제는, 성취의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체험을 겪은 후에 덧없는 기쁨과 슬픔, 삶의 범용과 소란한 외설스러움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문제다. 왜 그런 세상으로 되돌아와야 할까? 헛된 정열에 소진된 범상한 남자와 여자에게 왜 초월적인 은혜의 체험을 그럴싸한 것, 혹은 흥미로운 것으로 보이게 해야 하는 것일까? ... 사회를 악마에게 넘겨버리고, 저 자신은 천상의 바위굴에서 문을 닫고 은거하는 편이 쉽기는 수비다. 그러나 어느 정신과 산과의가 <시메나와>를 쳐놓고 퇴로를 차단한다 해도, 시간 속에서 영원을 표상하고, 시간 속에서 그 영원을 지각하는 작업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281-282]


덧없는 만남과 헤어짐,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사랑의 고통이 아닌가. 한 영혼이 제 운명을 저주하고, 운명의 장난에 저항할 때 그의 고통은 더욱 고통스러워진다. 위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기에 대응하는 것은 감정이 아닌 힘이다. ... 기억 속에서 자기 영혼의 다른 부분과 만났음을 상기시키는 신비스러운 반지는 영웅이 그것에 다녀간 적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 반지는 또, 일상의 현실을 배반하지 못한다는, 생시의 믿음을 재확인시켜 준다. 이 반지는, 두 세계를 통합하려는 영웅의 희망을 상징한다. ...

그러나 이 운명이 모든 이에게 다 구체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안으로 뛰어들어 이를 체험하고, 반지를 얻어 다시 현실로 귀환한 영웅에게만 가능하다. [294]

  

5. 두 세계의 스승

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말하자면 시간을 초월한 세계인 저승과, 일상적인 세계인 이승을 두루 돌아다니는 자유(그것도 한 세계의 원리로 다른 세계를 오염시키지 않되, 한 세계의 선으로써 다른 세계의 존재를 깨우치면서)는 거장들의 재능에나 어울리는 자유다. [297]


상징이란 의미 소통의 <수레>에 불과하다. 상징은, 그 언급하는 바의 궁극적인 의미, 즉 <진로>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매력적이고 또 인상적이라고 하더라도 상징이란 이해를 돕기 위한 편의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신의 성격, 혹은 일련의 성격을 최종적인 의미로 읽거나 해석하려 해서는 안 된다. 신학자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상징을 투명하게 닦아 우리에게 오는 진리의 빛이 이에 가리지 않게 하는 일이다. [305]


심리적 훈련을 통하여 개인적인 한계, 독특한 습관, 희망, 공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진리를 깨닫고 거듭나는 데 필수적인 자기 적멸에 대한 저항을 버리면, 개인은 위대한 <하나됨>, 즉 <자기 화해>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 야망을 무화시킨 개인은 살려고 바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닥치건 거기에 몸을 맡겨버린다. 말하자면 익명의 인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제 법은 그 안에서 거침새가 없다. [306]


6. 삶의 자유

영웅이 불가사의한 여행을 끝내고 귀환한 결과는, 과연 무엇인가?

영웅이 지난 전장은, 모든 피조물이 다른 피조물의 희생으로 삶을 영위하는 삶의 현장을 상징한다. 자기 삶을 영위하려면 죄악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은 참으로 구역질나는 것이다. 이를 깨달은 영웅은 햄릿이나 아르쥬나처럼, 불가피한 죄악의 거부를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세상의 예외적인 존재로서 자기 입장을 합리화하고 허위적인 자기 이미지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말하자면, 자기는 선한 자를 대표하고 있다고 간주하고, 죄악을 불가피한 것으로 합리화함으로써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부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합리화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 인간과 우주에 대한 본질에 이르기까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신화의 목적은 개인의 의식과 우주적 의지를 화해시킴으로써 생명에 대한 그 같은 무지를 추방하는 데 있다. 이 목적은 덧없는 시간적 현상과,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불멸의 삶과의 진정한 관계를 자각해야 달성이 가능하다. [307-308]


듣는 자들은 자기 내부에 있는 불멸의 존재에게 눈을 돌리고 새로운 것을 까달았다. 탈리에신은 마귀를 두려워했지만, 바로 그 마귀에 의해 삼켜졌고, 그래서 재생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아의 죽음을 통하여 새로운 자아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313]

제 4장 열쇠

전기나 역사나 과학으로 읽힐 때 신화의 명은 거기에서 다한다. 왕성하게 살아 있는 이미지들이 옛날 다른 하늘 아래서 있었던 까마득한 사실들로 전락하는 것이다. 한 문화가 자기네 신화를 이런 식으로 번역할 때 그들의 삶은 고갈되고 그들의 사원은 박물관이 되며, 과거와 미래의 끈은 끊어지고 만다. 이러한 오류는 성경이나, 많은 기독교 의식에 대해서도 자행되어 왔다.

이러한 신화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되살리려면, 이를 현대의 문제에 적용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영감으로 살아 숨쉬던 과거의 형태로부터 암시를 읽어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만이 빈사 상태에 빠진 성화는 그 영원히 인간적인 의미를 다시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319-320]


제 2부 우주 발생적 순환


제 1장 유출

1.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오늘날의 지식인들에게, 신화의 상징체계가 지닌 심리학적 의미를 감지해 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정신분석학자들의 연구가 있은 이후, 신화가 꿈의 내용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꿈이란 정신 역동의 증후라는 사실에는 별 의혹의 여지가 남지 않았다. [325]


신화체계란, 전기나 역사, 그리고 우주론으로 오독되어온 심리학이다. 현대의 심리학자들은 이를 적절한 의미로 재해석하여 오늘날의 세계에, 인간의 특징적 심층에 관한 풍부하고 웅변적인 자료를 장만해 주고 있다. [326]


신화가 꿈과 정확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화와 꿈은 같은 근원(즉 환상이라는 무의식의 샘)에서 유래하고 그 문법도 동일하다. 그러나 이 신화가 수면의 산물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이 양자는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신화의 패턴은 의식적으로 통제된다. 그리고 신화는 전통적인 지혜를 전달하기 위한 강력한 회화적 언어로 기능한다. 특히, 이른바 원시적인 민간 신화 체계의 기능이 바로 이것이다. [326]


우리에게 전승된 신화학적 표상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우리는 이러한 표상들이 무의식의 징후(사실은 모든 인간의 생각과 행동)일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정신적 원리의 통제되고 의도된 진술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정신적 원리는 인간의 육체의 형태 및 신경 구조처럼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인류에게 유전된 것이다. 간단하게 공식화한 이 보편적인 교리는, 이 세계의 가시적인 모든 구성물(사물과 존재)은 편재하는 힘의 결과라고 가르친다. 즉 이 힘은 모든 구성물의 생성 원리이고, 그들이 이 세상에 현현해 있을 동안 그들을 지탱하고, 그들을 채우며, 궁극적으로 그들이 돌아갈 귀소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에서는 에너지라고 부르고, ... 정신분석가들은 심성에 나타나는 이 존재를 <리비도>라고 부른다. [329-330] 


신화는 부수적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현상계 저쪽 세계(공, 폭은 범주를 초월한 존재)로 들어가 적멸에 드는 것이다. ...

말하자면 신들은, 우리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을 깨우며, 우리 마음을 겨냥할 상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천국, 지옥, 신화적 시대, 올림포스 산 및 그밖의 신들의 거처는 모두 무의식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현대의 심리학적 해석 체계의 열쇠는 바로 <형이상학적 영역=무의식>이라는 등식이다. [330-331]


개인의 탄생, 삶, 죽음은 무의식으로의 하강 및 회귀로 볼 수 있다. 영웅은, 살아있을 동안에, 창조 과정 중에는 지각되지 않는 초의식의 요구를 알고 이를 대리하는 자다. [331]


2. 우주의 순환

우주 발생적 순환은, 비현현의 숙면 영역에서 비롯, 꿈을 통하여 깨어나 있는 대낮, 그리고 다시 꿈을 통하여 시간을 초월한 어둠에 이르는 보편적 의식의 통로로 이해되어야 한다. 살아 있는 존재의 일상적 실제 체험이나 살아 있는 우주의 광대한 양상은 같은 것이다. 잠의 심연 속에서는 에너지가 재충전되지만 일을 하다보면 이 에너지는 고갈된다. 우주의 생명도 고갈되면 재생되어야 한다. [339]


보이지 않고, 말할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측정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고, 그릴 수도 없다.

의식 상태에 있는 만물이 공유하는, 자기 인식의 본질.

현상계는 이 안에서 소멸한다.

이는 평화요, 행복이요, <둘이 아닌 것>이다.   [339]


3. 허공에서 - 공간

모든 신화 체계의 기본 원리는, 끝과 시작이 함께 한다는 바로 이 원리다. [342]


우리의 참 존재를, 파멸하는 형상이 아닌 다시 태어나는 불멸의 존재라는 측면에서 보면 신화 체계는 그리 비극적인 것도 아니다. [342]


4. 공간의 내부에서 - 생명

남녀 간의 사랑의 신비에 따르면, 애정의 궁극적인 경험은 곧 이원성이라는 환상의 배후에 <둘은 곧 하나>라는 등식의 깨달음이 있다. 이 자각은, 우주의 만상(인간, 동물, 식물, 심지어는 광물까지도)은 하나라는 자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애정의 체험은 우주적 체험으로 확산되고, 이 자각에 이르게 한 애인은 창조의 거울로 확대된다. 이러한 것을 체험한 남성이나 여성은 쇼펜하우어의 이른바 <도처에 널린 아름다움에 대한 앎>을 손에 넣은 셈이다. 바야흐로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고, 원하는 모습으로 둔갑해서 이 세상을 한유하며>, <오, 놀랍도다, 놀랍도다>로 시작되는 우주적 합일의 노래를 부르는 경지인 것이다. [357]


5. 하나에서 여럿으로

우주 발생 순환의 다음 단계는 하나가 여럿으로 분화하는 단계다. 이 단계와 더불어 창조된 세계에는 분명히 상호 모순적인 존재의 두 양상으로 갈라지는 위기가 온다. [357]


신화는 이 고뇌(시련)를 부정하지 않는다. 신화는 안으로, 뒤로, 그 주변으로 본질적인 평화(천상의 장미)를 거느리고 있다.

이 장미는 십자가에 의해 인류에게 피어나는 장미다. [366]


6. 창조의 민화


제 2장 처녀 잉태

1. 어머니 우주

2. 운명적 모태

우주적 여신은, 여러 가지 가면을 쓴 모습으로 인간에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창조의 결과란 다양하고 복잡한 데다, 창조된 세계의 관점에서 경험할 때면 상호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어머니는 동시에 죽음의 어머니다. 이 어머니는 기근과 질병이라는 추악한 마귀의 가면을 쓴다. [380]


3. 구세주를 낳는 자궁

이제 문제는 인간이 사는 세계다. 열왕의 실제적인 심판과, 천상적 계시는 주사위인 사제들의 가르침에 주눅이 든 나마저 의식의 장은 위축될 대로 위축되어, 인간의 이야기라는 대서사시는 이제 좁아져 오직 가시적이고, 손에 잡히는 존재의 표피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심연을 투시할 전망은 이제 사라졌다. 인간 고뇌의 의미심장한 형상은 이제 보이지도 않는다. 사회는 오류와 재난 속으로 빠져든다. <소자아>는 <대자아>의 재판석을 강탈했다. [389]


고만고만한 마을에서 한 처녀가 태어나는데 이 처녀는, 자기 세대의 오점이 하나도 묻지 않은 순수한 인간으로 자란다. 범용한 남성들 사이에 섞인, 바람의 신부인 우주적 여성의 축소판이다. 원초적인 심연의 휴경지로 남은 그녀의 자궁은, 만반의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일찍이 공을 살찌웠던 근원적인 권능을 부른다. [390]


4. 미혼모의 민화

이 이야기는 처녀 잉태, 아버지를 찾기 위한 여행의 출발, 시련, 아버지와의 화해, 미혼모의 정실 확정 및 입적, 사칭자들이 당황하는 사이에 영웅이 친자로 확인되는 등의, 전형적 영웅의 모티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393]


제 3장 영웅의 변모

1. 최초의 영웅과 인간

유출은 이제 그 극점에 이르렀고 의식의 장은 이제 좁아질 대로 좁아졌다. 전에는 사상의 실체가 보였지만 이제는 그 부수 효과만 인류의 눈, 작고 현실적인 동공의 초점 앞에 모일 뿐이다. 따라서 이제 우주 발생적 순환은, 보이지 않게 된 신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갖춘 영웅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다. 세계의 숙명은 바로 이 영웅들을 통해 실현된다. [396]


정열의 절제, 예술의 폭발적인 발달, 경제 구조의 태동, 문화적 기관의 대두를 통한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월우의 화신이나, 운명의 팔괘라는 초월적 지혜가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희망에 따라 행동하는 완전한 인간 정신이었다. 따라서 우주 발생적 주기는, 다가오는 시대의 인군의 전형이 될 인간의 형상을 한 황제의 손으로 넘어갔다. [398]


2. 인간적인 영웅의 어린 시절

이러한 관점은, 영웅이란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운명지워진다는 관점과 일치한다. 이러한 관점은, 영웅의 전기와 그 고유한 성격과의 관계에 문제를 제기한다. 가령 예수는, 엄격한 고행과 명상으로 지혜를 터득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하면, 인간의 모습을 취한 하강한 신이라고 믿어질 수도 있다. 전자의 견해를 따르는 사람은 예수와 같은 초월적 구원을 경험하기 위해 그의 행적을 글자 그대로 흉내내는 수가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견해를 따를 경우, 예수라는 영웅은 글자 그대로 본이 되는 전형이라기보다는 묵상해야 할 하나의 상징이다. 신적인 존재란, 우리 모두의 내부에 있는, 전능한 자아의 계시다. 삶에 대한 묵상은, 따라서 정확한 모방에 이르는 전주곡으로서가 아니라 자기의 내재적인 신성에 대한 명상의 형태여야 한다. 말하자면 <이러저러하게 행동해서 선함을 얻는>것이 아니고 <이를 앎으로써 신이 되는>것이다. [400]


문제의 숙명적인 아기는 기나긴 암흑의 기간을 견디어야 했다. 이 기간은 극히 위험하고, 장애물이 많은 상황이며, 치욕을 당하는 기간이다. 그는 자기 내부로 깊이, 혹은 미지의 세계인 외부로 던져졌다. 어느 경우든 그를 당혹케 하는 것은 미지의 암흑이다. 이곳은 의외의 존재, 자비로운 동시에 심술궂은 존재의 영역이다. [409-410]


3. 전사로서의 영웅

신화적인 영웅은 <이루이진> 사상의 옹호자가 아니라 <이루어지는>사상의 옹호자다. 그의 손에서 살해되는 용은, 현상이라는 괴물 바로 그것이니, 괴물은 쇠사슬 같은 과거의 옹호자다. [422]


4. 애인으로서의 영웅

적과 싸워서 장악하는 주도권, 괴물과 싸워서 획득하는 자유, 폭군의 족쇄에서 풀려난 에너지는 여성으로 상징된다. ...<영웅과 영웅의 상대역인 여성은 곧 하나>이기 때문에, 처녀는 영웅 자신의 <다른 한쪽>이다. 영웅이 세계의 군주라면, 처녀는 세계이며, 영웅이 전사라면 처녀는 명예다. 처녀는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 영웅 자신의 운명의 이미지다. 그러나 영웅이 자기 운명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사상에 현혹될 때, 영웅은 아무리 노력해도 장애물을 극복할 수 없다. [428]


즉 운명 자체가 그에게 힘을 빌려준다. 처녀가 부모를 배신하고 부모의 약점을 일러주는 것이다. 영웅이라는 당당한 존재 앞에서 갖가지 장벽, 족쇄, 깊은 구멍은 차례로 정복된다. 숙명적인 승리자의 눈은 어김없이 상황이라는 요새의 틈을 읽어내고, 그의 주먹은 그 틈을 출입구로 뚫어낼 수 있다.

이 다채로운 쿠훌린의 모험에서 가장 웅변적이고 가장 극적인 것은, 바퀴와 사과가 구르면서 영웅에게 내어주는 보이지 않는 특이한 길이다. 이것은 운명적인 기적의 상징이며 교훈으로 해독되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것에 대한 감상에 현혹되지 않고, 과감하게 자기 본성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자(니체의 말을 빌리면, <스스로 구르는 바퀴>인 사람) 앞으로는 어려움이 비켜나고 뜻밖의 탄탄대로가 나타나는 법이다. [431]


5. 황제로서, 폭군으로서의 영웅

최고의 영웅이란 우주 발생적 순환의 원동력을 추진시키는 영웅이 아니라, 눈을 다시 Em고서 오고 가며 기쁨과 고뇌가 교차되는 세계의 파노라마를 통해 하나의 실재가 다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깨치는 영웅이다. ...

첫 번째 영웅의 특징적인 모험이 신부 (시부는 곧 삶이다)를 얻는 것이라면, 두 번째 영웅의 특징적 모험은 아버지를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이 아버지는 곧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다. [432]


영웅 모험의 목표가 미지의 아버지를 찾는 것일 때, 여기에 등장하는 기본적인 상징 체계는, 시험 및 정체 고백의 상징 체계다. [434]


6. 구세주로서의 영웅

첫 번째 단계에서 아들을 사자가 되어 귀환하지만, 두 번째 단계에서는 <나와 아버지는 결국 하나>라는 통찰과 함께 귀환한다. 이 두 번째의 보다 높은 자각에 이른 영웅은 구세주, 한 차원 높은 의미에서의 이른바 지고한 존재의 화신이다. [437]


영웅의 임무는, 아버지(용, 시험자, 무섭고 잔인한 왕)의 부정적인 측면을 살해하고, 우주의 자양이 될 생명의 에너지를 그 굴레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과업은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서도 성취될 수 있고, 그 의지를 거스르고도 성취될 수 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아니 어쩌면 신이, 그에게 스스로 자식을 위한 제물이 되라는 의지를 시어주었는지도 모른다. [441]


7. 성자로서의 영웅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고, 엄격하게 ‘자아’를 통제하고, 소리와 빛과 맛 같은 색에 집착하지 않고, 애증을 버리고, 고독 안에서 살고, 소식하고, 말과 몸과 마음을 삼가고, 명상과 정신 집중에 전심하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힘쓰고, 이기심과 권세, 자만심과 색용, 분노와 편견을 떨치고, 마음 안에서 정일을 얻고, ‘자아’로부터 자류로워지는 사람, 이런 사람은 능히 불멸의 존재에 값하는 사람이라 일러 무방하다.> [443]


아버지를 찾아가는 신화 패턴에서, 영웅이 가는 곳은 세계의 드러나는 측면이기보다는 드러나지 않는 측면이다. 이곳으로 들어갈 때, 영웅은 보살이 버린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귀환이 있을 수 없다. 이곳은, 이원적인 시각의 모순이 아니라, 불가시적인 존재의 궁극적인 요구가 도사리고 있다. 자아는 여기서 불타 버린다. 산들바람에 나부끼는 마른 잎처럼 육신은 세계를 떠다니되 영혼은 이미 다시없는 천복의 바다로 해소된 뒤다. [443]


8. 영웅의 죽음

말할 필요도 없이 죽음에 겁을 먹는다면 그 영웅은 영웅이 아니다. 영웅은 마땅히 무덤과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 [445]


세존은 지각과 감각의 휴식 상태에서 일어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영역에 들었다.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영역에서 일어난 그는 무의 세계에 들었다. 무의 세계에서 일어난 그는 무한 의식의 영역에 들었다. 무한 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난 그는 네 번째 무아에 들었다. 네 번째 무아에서 일어난 그는 세 번째 무아에 들었다. 세 번째 무아에서 일어난 그는 두 번째 무아에 들었다. 두 번째 무아에서 일어난 그는 첫 번째 무아에 들었다. 첫 번째 무아에서 일어난 그는 두 번째 무아에 들었다. 두 번째 무아에서 일어난 그는 세 번째 무아에 들었다. 세 번째 무아에서 일어난 그는 네 번째 무아에 들었다. 네 번째 무아에서 일어난 그는 곧 열반에 들었다. [457]


제 4장 소멸

1. 소우주의 끝

놀랄 만한 권능을 지닌 막강한 영웅은 바로 우리들 개개인이다. 거울에 비추어볼 수 있는 육체 자체로서가 아니라, 우리들에 내재하는 왕으로서다. 크리슈나는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모든 피조물의 가슴 안에 있는 실재다. 나는 모든 존재의 시작이며, 중간이며, 끝이다.> [458]

     

이 무시무시하고 심오한 여행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 바로 이집트의, <사자의 서>다. 이 세상을 떠난 남자나 여자는 오시리스 신과 동일시되고, 또 실제로 오시리스라고 불리어진다. 이 <사자의 서>는 레와 오시리스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되어, 명계에서 영혼이 염습포에서 풀려나는 신비를 그리기에 이른다. [462-463]


2. 대우주의 끝

개인이라는 창조된 형상이 결국은 소멸되고 말듯이 우주 역시 소멸된다. [468]


에필로그. 신화와 사회


1. 변신 자재자

갖가지 판단은 판단자의 견해에 따라 결정된다. 신화가 무엇이냐는 관점이 아니라, 신화가 어떻게 기능하고 과거에 어떻게 인간에 봉사해 왔으며,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관점에서 검토해 보면, 신화는, 삶 자체가 개인, 종족, 시대의 강박 관념과 요구에 대해 부응하듯이, 신화 자체도 그에 부응할 것으로 비친다. [478]


2. 신화, 제의, 명상의 기능

삶의 양태에서, 개인은 인간의 전체 이미지의 단편이며 일그러진 형상일 수밖에 없다. ...

개인의 전체성은, 개별적인 구성 인자로서가 아닌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만 누릴 수 있다. 개인은 한 구성요서일수 있을 뿐이다. 개인은 이 집단으로부터 삶의 기술, 사유의 바탕인 언어, 삶의 자양인 이상을 빚졌다. 그의 육체를 이루는 유전자도 그 사회의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다. 개인이 실제든, 상상이나 느낌을 통해서든, 그 사회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다는 것은 존재의 근원과의 절연을 의미할 뿐이다.

출생, 세례, 결혼, 장례, 취임 등의 종족적인 제의는, 개인의 삶의 위기 및 행위를 표준적이고 비개인적 형식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479]


이러한 초개인을 수렴하려는 비전의 확대를 통해, 개인은 이전보다 더 고상해지고, 풍부해졌으며, 또 충분히 보호를 받고 있다.

이제 인간의 시야는 넓어졌다. 맡는 역할이 비록 하찮다고 하더라도 개인은 이 인간의 , 아름다운 축제의 이미지(잠재적이긴 하나 필연적으로 그의 내부에 깃들여 있는 이미지)에서 자기 역할이 바로 자기의 본질이었음을 깨닫는다.

사회적인 의미를 통해 개인을 축제를 정상적, 일상의 생존으로 수렴할 것을 배운다. 이로써 개인의 정체가 확인된다. 거꾸로 말하면 무관심과 반항(혹은 도피)는 개인과 사회를 단절시킨다. 사회라는 단위에서 볼 때 그 단위에서 단절된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쓰레기다. 남자든 여자든, 정직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동사를 쓸 자격이 있는 인간이다.

반면에, 입문의식이나 취임식은 개인과 집단은 어쩔 수 없이 하나라는 교훈을 베푼다. [479-480]


그러나 다른 길도 있다. 즉 사회적인 의무와 대중적 제의와는 정반대로 향하는 다른 길이 있는 것이다. 의무의 길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사회에서 추방된 자는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추방은, 탐색 모험의 첫 단계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이 두 가지 길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길은 자기 내부에서 탐색되고 또 발견되어야 한다. [481]


중세의 성자들 및 인도의 요가들의 고행, 헬레니즘 문화의 비의, 고대 동양과 서양의 철학은, 개인의 의식적인 관심을 그 외부적 의상에서 돌리는 기술이다. [482]


이러한 명상을 통해 입문자는 자기의 심층에 이르고, 마침내 그 껍질을 뚫고 엄청난 자각에 이른다. ... 사회와 의무는 분리된다. 자기 자신을 위대한 인간으로 발견한 아무개 씨는 내성적이며 초연한 인간이 된다. ...

그러나 이 단계는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필요한 단계이지 목적은 아닌 것이다. 목표는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를, 즉 본질을, 깨닫는 것이다....

세계라는 것 역시 그 본질이다. 개인의 본질, 세계의 본질...... 이 둘은 하나다. 이 때부터 은거, 은둔은 필요없다. 영웅이 어디를 떠돌든, 그가 무슨 짓을 하건 그는 자기의 본질적 실재에 머문다. 그에겐 세상을 보는, 완전성에 이른 눈이 있기 때문이다. ... 사회적 참여가 결국에는 개인의 내부에 있는 전체를 깨닫게 하듯이 추방으로 인한 유랑이 영웅을 전체에 내재하는 자아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 표적의 중심에 이르면, 이기주의나 이타주의의 문제는 사라진다. 개인은 율법 안에서 자기를 잃고, 우주의 전적인 의미와 동일하게 재생한 것이다. 세계는 그를 위해, 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483]


3. 오늘날의 영웅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개인의 민주적 이상, 동력으로 움직이는 기계의 발명, 과학적인 연구 방법의 발달이 인간의 삶을 변형시킨 나머지 저 유서 깊은,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상징인 우주는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

신화라고 하는 꿈의 집은 이제 무너지고 없다. 마음은 깨어 있는 의식 쪽으로만 열려 있다. [483]


서양 학문의, 하늘에서 땅으로의 하강(17세기 천문학에서 19세기 생물학으로의), 그리고 오늘날의,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 집중(20세기 문화 인류학과 심리학에서의)은, 인간의 경이라는 초점의 놀라운 이동로를 닦았다. 동물의 세계도 아니고, 식물의 세계도 아니고, 천체의 기적도 아닌, 이제는 오직 인간만이 결정적인 수수께끼다. 인간은 아득한 존재와 더불어 끝나야 하고, 이 아득한 존재를 통해 자아는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해야 하며, 이 사회의 이미지 전체가 개선되어야 한다. 인간은 그러나 <내>가 아니 <너>로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종족, 민족, 대륙, 사회적 지위, 혹은 세기의 이상과 세속적 관습도 우리 모두의 내부에 살아있는 불멸의, 놀라운 신적인 존재의 척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감히 소명에 응하여, 우리의 운명을 화해시켜야 하는 존재의 거처를 찾아내는 현대적 인간인 현대의 영웅은 자기가 속한 사회가 자만심과 공포와 자기 합리화된 탐욕과, 신성의 이름으로 용서되는 오해의 허물을 스스로 벗어던지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기다려서도 안 된다.

니체는 <그날이 도래한 듯이 살라>고 하고 있다. 창조적인 영웅을 이끌고 구원하여야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다. 아니 사회를 지키고 구원하여야 할 사람이 바로 창조적 영웅이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는 그 영웅의 족속이 대승을 거두는 그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그가 개인적으로 절망을 느끼고 침묵을 지킬 때 그가 겪는 모진 시련(구세주의 십자가를 지는 일)을 나누어 부담하는 것이다. [487-488]


역자후기

[시인적 본성은 심리학적 관심과 무관하지 않고, 심리학적 관심은 신화에의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 [490]


캠벨은, 무대가 다르고 사건이 다르고 의상이 다르지만, 인간의 무의식이 투사된 영웅, 말하자면 인간의 집단이 그려낸 영웅 신화는 거의 일정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그는, 서로 접촉이 없는 세계 각 문화권의 무수한 영웅 신화와 심층 심리학의 꿈 해석에서 재발견되는 영웅의 상징체계를 분석,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들 가운데서 하나의 영웅, 그러니까 모든 영웅 신화의 본(원형)이 되는 하나의 영웅을 떠올린다.



* 내가 저자라면


** 전체적인 뼈대 & 보완점


  우선 이 책은 목차가 굉장히 자세하다. 이 목차만 보아도 ‘영웅’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그 개인적, 사회적 의미가 전달될 만큼 공들여 목차를 잡은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읽을 때 계속 목차를 참고하면서 영웅의 여정을 따라가고 저자의 집필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또한 다 읽은 후에도 정리하면서 참조가 되어 아주 좋았다.

  자세히 보면 본격적인 영웅담에 들어가기 전 프롤로그에서 장장 65쪽, 4개의 소제목으로 ‘원질신화’, 즉 신화와 영웅의 본형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신화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도 저자가 의도하는 이 책의 주제가 어떤 것인지 사전에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신화와 꿈’에 대해 40여 페이지에 걸쳐서 개인적인 꿈과 집단적 신화의 차이점과 공통점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며 앞으로 펼쳐질 주제에 대한 흥미를 유도하고 있다.

  프롤로그가 긴 것이 도움이 된 독자도 있었겠지만 나의 경우 프롤로그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가 펼쳐지다 갑자기 끊어지는 느낌도 들어서 좀 더 간략하게 핵심과 흥미유발에 집중하는 것이 책의 본문과 연결되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프롤로그에서 거의 3페이지에 걸쳐 이 책의 목차와 구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51~53p), 사실 이 부분은 처음에 읽기 보다는 이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정리하면서 읽는 것이 더 도움이 되었다.


  제 1부 영웅의 모험, 제 2부 우주 발생적 순환으로 크게 구성되어 있는데, 1부 영웅의 모험에서는 출발, 입문, 귀환, 열쇠를 다루고 2부 우주 발생적 순화에서 유출, 처녀의 잉태, 영웅의 변모, 소멸까지를 다루고 있다.

  1부에서는 1,000가지로 대변되는 세계 각지의 영웅 이야기를 다양하게 예를 들면서 하나의 원형, 즉 천 개의 얼굴(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하는)을 가졌지만 결국 인류의 집단 무의식 속에 자리한 하나의 영웅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풍부한 각 신화- 예화를 통해 읽는 이가 각자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

  2부에서 나오는 유출, 처녀잉태, 소멸은 이러한 신화를 통해 신화의 의미와 그 순환적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제3장 영웅의 변모는 1부에서 영웅의 귀환 다음에 들어가는 것도 좋았을 것 같다.


  마지막 에필로그, 신화와 사회에서 특히 신화의 개인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을 설명하면서 그 궁극적인 본질의 일치를 이야기한다. 이런 결론을 통해서 우리는 신화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할 뿐만 아니라 또한 내가 속한 사회의 슬픔에 연민을 함께 하는 ‘보살’로서의 마음과 ‘자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까지 읽고 보니, 그의 사상의 최종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신화의 힘>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게 든다. 이번에는 도저히 여력이 없었지만 꼭 다시 읽고 캠벨의 깊은 사상을 통해 나의 꿈을 찾아가는 빛을 더 환하게 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한 가지 책을 읽으며 내내 아쉬웠던 점은 오타가 많았던 점이다. 심지어는 차례에도 오타가 있었을 뿐 아니라(제 2부 영웅의 모험-> 제 2부 우주 발생적 순환), 중간 중간 오타와 기호의 부실이 책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신장판 6쇄까지 나온 책에서 이런 오타가 수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책의 본질과는 상관없지만 좀 실망스러웠다.  


*** 특히 감동적이었던 장절


우리가 오감으로 집착하고 있는 세계의 상징.... 여섯 번째 무기가 명(名)과 형(形)이라는 현상계 너머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원리의 지혜라는 천상적 벼락인 것이다. [119]

심리적 훈련을 통하여 개인적인 한계, 독특한 습관, 희망, 공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진리를 깨닫고 거듭나는 데 필수적인 자기 적멸에 대한 저항을 버리면, 개인은 위대한 <하나됨>, 즉 <자기 화해>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 야망을 무화시킨 개인은 살려고 바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닥치건 거기에 몸을 맡겨버린다. 말하자면 익명의 인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제 법은 그 안에서 거침새가 없다. [306]

  신화라는 깊고도 심오한 세계에 들어가 자신의 내면과 만나고 인류의 오랜 전통과 무의식에 접하는 길은 결국 자기 자신의 이성과 의식에 의존한 기존의 오감의 세계를 넘어서서 기존의 방법-말과 글-로서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특히 이것은 나의 좁은 인식의 한계와 시야를 인정하고 다름과 새로움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가능한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새로운 출발은 새로운 방식으로 행해져야 하듯, ‘변신’이야말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그동안의 나의 존재와 나의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 위에 새로움을 더하는 것, 그리고 그 다음을 향해 나가는 것이 지금의 길이다.


사회적인 의미를 통해 개인을 축제를 정상적, 일상의 생존으로 수렴할 것을 배운다. 이로써 개인의 정체가 확인된다. 거꾸로 말하면 무관심과 반항(혹은 도피)는 개인과 사회를 단절시킨다. 사회라는 단위에서 볼 때 그 단위에서 단절된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쓰레기다. 남자든 여자든, 정직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동사를 쓸 자격이 있는 인간이다. [480]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의미있다’는 뜻이리라.

  캠벨은 삶은 그 자체로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여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한다.

  태어나서 삶의 역동성과 의외성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바로 의미있는 것이며, 의미있는 삶이야말로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이 된다. 


**** 차례


머리말- 프롤로그 원질신화

  1. 신화와 꿈

  2. 비극과 희극

  3. 영웅과 신

  4. 세계의 배꼽


제 1부 영웅의 모험

제 1장 출발

  1. 영웅에의 소명

  2. 소명의 거부

  3. 초자연적인 조력

  4. 첫 관문의 통과

  5. 고래의 배


제 2장 입문

  1. 시련의 길

  2. 여신과의 만남

  3. 유혹자로서의 여성

  4. 아버지와의 화해

  5. 신격화

  6. 홍익


제 3장 귀환

  1. 귀환의 거부

  2. 불가사의한 탈출

  3. 외부로부터의 구조

  4. 귀환 관문의 통과

  5. 두 세계의 스승

  6. 삶의 자유


제 4장 열쇠


제 2부 우주 발생적 순환

제 1장 유출

  1.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2. 우주의 순환

  3. 허공에서 - 공간

  4. 공간의 내부에서 - 생명

  5. 하나에서 여럿으로

6. 창조의 민화


제 2장 처녀의 잉태

  1. 어머니 우주

  2. 운명적 모태

  3. 구세주를 낳는 자궁

  4. 미혼모의 민화


제 3장 영웅의 변모

  1. 최초의 영웅과 인간

  2. 인간적인 영웅의 어린 시절

  3. 전사로서의 영웅

  4. 애인으로서의 영웅

  5. 황제로서, 폭군으로서의 영웅

  6. 구세주로서의 영웅

  7. 성자로서의 영웅

  8. 영웅의 죽음


제 4장 소멸

  1. 소우주의 끝

  2. 대우주의 끝


에필로그 - 신화와 사회

  1. 변신 자재자

  2. 신화, 제의, 명상의 기능

  3. 오늘날의 영웅


역자후기, 찾아보기

IP *.96.1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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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4.26 17:45:48 *.236.3.241
캠벨의 마지막 책이라고 저자에 대해 집대성을 해 놨네 ㅎㅎ
이러다 캠벨의 책이 갑자기 추가되며 어떡하지 ㅋㅋㅋ
글의 흐름을 면밀히 보려면 책을 빠른 시간내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메모를 꼼꼼히 하든가. 선형처럼

나도 주말이 오기 전에 숙제 끝내고 훌가분한 마음이 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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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6 21:55:50 *.106.7.10
집대성까지야 ^^;;
캠벨 추가 ~ 으윽
캠벨도 좋았긴 한데, 그래도 이제 다른 책 보고파요 ^^
전 주중에 최대한 많이 시간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듯 해요. 오빠들과 상황이 반대니까 ^^
그래도 참 진도내기 쉽지 않네요, 매일 매일 새로운 결심을 하곤 합니다 ㅋㅋㅋ
담주도 화이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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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4.27 03:09:19 *.129.207.200
소개해주신, 책들 욕심이 생기네요. 이왕 캠벨을 들추었으니, 몇개 더 읽어야겠습니다. 신화를 제대로 알면, 글쓰기 소스가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 같습니다. 외국어에서 어휘가 늘어나듯이.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으세요? 알기 쉽고, 친절하게 캠벨을 소개해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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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7 05:12:35 *.106.7.10
집 근처 도서관에 주로 (사실은 가끔) 가요 ^^
다 읽지는 못하고 나의 신화도 찾을 겸 대략 뒤적여보았는데 난 이 책들 중에서 <신화의 세계>가 재미있을 듯 했어요. 다루는 범위도 그 중 달랐고. 그런 의미에서는 신의 가면 시리즈 중 <동양신화>도 좀 새로왔어요.
원시, 서양신화는 우리가 읽은 책들하고 겹치는 부분도 많더라구.
용감한 인건,
많이 도전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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