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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1일 11시 05분 등록
일본 게이오대학 문학부에서 한국과 일본의 고시가를 비교연구했다. 삼국유사에 관한 책을 썼기에, 그를 역사학자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정작 그를 삼국유사로 끌어들인 것은 시詩이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에는 향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실제로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일본 유학을 돌아와서, 삼국유사에 대한 책을 냈다. 그는 일본에서 공부하며, 과연 무슨 일을 경험한 것일까?  

일본은 콘텐츠의 나라다. 일본의 출판시장은 우리의 10배가 넘는다. 일본은 인터넷은 발달되어 있지않지만, 기록하고 책으로 공유하는 것은 잘한다. 별의 별 주제로, 책을 만들어낸다. 하나의 주제로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책을 써낸다.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사람도 많고, 읽어주는 사람도 많다. 텍스트를 활성화하는 저변에는 그들이 시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의 시詩라고 하면, 하이쿠가 바로 떠오른다. 하이쿠는 일본 사람들뿐만 아니라, 프랑스 같은 유럽 사람도 좋아한다. 5.7.5의 규칙을 가진 17자의 시다. 몇개 보자. 

허수아비 뱃속에서 
귀뚜라미가 울고있네 (이싸:1763~1827)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모리다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  (바쇼1644~1694) 


한밤중에 잠이 깨니 
물항아리 얼면서 금 가는 소리 (바쇼)


이런식이다. 어떤가? 화투의 그림같지 않은가. 하이쿠는 일본인의 정서다. 최대한 생략하고, 하나만 기형적으로 남기는 문화다. 생략하고, 생략하다 보니 팔이 없는 인형도 있다. 예전 쿄토에 갔을 때, 돌정원을 보다. 질서정연하게 돌이 놓여 있는 모습인데, 작은 공간안에 자연을 축약시켜 놓았다. 생략하고, 상징하고, 작게 만드는 습성은 일본의 산업을 발전시켰다. 지금 보면, 소니의 워크맨은 전자상품이 아니라, 문화 콘텐츠라는 생각도 든다. 스케일이 큰 서양인들이, 작고 오밀조밀한 카세트 플레이어를 보았을 때, 무엇을 느꼈을까?요즘의 멀티미디어 콘텐츠에 비한다면, 한줄짜리 하이쿠는 초라해보인다. 시인 류시화는 일본의 하이쿠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책으로 냈다.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번역하고자, 詩를 오랫동안 입으로 오물오물 거렸다고 한다. 하이쿠는 워크맨이다. 워크맨은 당대 기술의 집약체이다. 하이쿠는 일본문화, 이야기를 집약시켜 놓은 17자짜리 텍스트다. 신화가 인생의 원형을 제시했다면, 하이쿠는 일본 콘텐츠문화의 상징이다. 

하이쿠는, 와가和歌라는 일본 전통 시에서 파생되었다. 와가는 5.7.5.7.7로서 하이쿠 보다 길다. 뒤에 7.7이 빠진게 하이쿠다. 옛날 우리 선비들이 시를 한수 읊으면, 상대 선비가 그 시를 받아서 완성하는 놀이가 있었다. 일본은 시를 가지고 다양하게 논다. 대표적인 와가 100개를 뽑아서, 암기시합이나, 게임을 하기도 한다. 시는 이야기, 콘텐츠 상품의 기초다. 우리 나라도, 요즘들어 게임과 만화 산업에 투자를 한다. 만화를 그리는 손은 많다. 일본은 만화왕국이지만, 그것을 그린 것은 한국사람들이다. 기술은 있지만, 스토리를 짜는 것은 약하다. 창피하지만, 시나리오 작가를 일본에서 공수해 오는 것이 현실이다. 어려서부터 시와 친하기 때문에 일본은 이야기를 잘 만들어낸다고 하면 비약일까? 이렇게 짧은 시에 이렇게 열광하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을 것이다. 고운기는 일본에서 시를 공부하며, 일본의 시열광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신문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도 한다.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한국이 커지면 커질수록 세계는 우리를 향해 ‘너희는 누구냐’는 질문을 더 자주 던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린 이런 사람이다’라고 얘기해줘야 하는데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 삼국유사만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밖에 나가야 애국자된다고, 우리 텍스트에 대한 열망은 일본에서 더 강해졌을 것이다. 좀더 일본인의 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우리나라에도 시조 백일장이 있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다지 흥미가 없다. 시조라고 하면, 웬지 고리타분하고 촌스러워 보인다. 중학교때 선생님이 그리스의 놀라운 유적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첨성대는 보잘것 없다는 이야기를 한 것을 기억한다. 물론, 그 규모면에서 첨성대와 그리스의 유적이 게임이 되겠는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선생님부터가 우리 문화에 대한 자격지심이 심하다. 콘텐츠가 있어도, 그것을 외국인에게 소개하는 태도는 쭈삣거린다. 한국에 비해, 일본의 시 사랑은 높다. 매주 NHK에서는 시민들이 응모한 하이쿠를 가지고 방송한다. 자기들끼리 먼저 사랑해야 밖에서도 사랑해준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자신을 사랑해야 남도 나를 사랑해준다.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데, 어찌 타인의 사랑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신화가 세계인의 원형이라면, 시는 콘텐츠의 원형이며, 삼국유사는 한국인의 북극성이다. 고운기는 시로 출발했다. 시를 공부하다 보니까, 삼국유사에 빠졌다. 그에게는 사명이 있다. 삼국유사를 통해서 한국인의 '제다움' 찾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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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있는 지식, 시인의 상상력, 영화같은 사진이 잘 어우러졌다. 편집과 디자인에도 공을 들였다. 잘 만들려고, 작정하고 만든 책이다. 현암사라는 출판사를 잘 몰랐는데, 이 책으로 좋은 이미지를 가졌다. 

책을 쓸때는 구성에 대한 생각을 먼저 하기 쉽다. 과연 구성이 중요할까? 콘텐츠의 깊이와 양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구성은 의미가 없다. 김칫국부터 마시기다. 콘텐츠만 확실하다면, 구성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밑천이 바닥났을 때, 구조를 해체한다.  전문가란, 3박 4일간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현장 경험과 이론을 겸비하고, 단행본 한권 분량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전문가다. 

고운기는 삼국유사 전문가다. 700년 전에 쓰인 역사책 한 권으로, 2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한 분야를 통달하고, 책을 쓴다. 본래, 삼국유사는 140여개 조목으로 되어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40개를 나누고 묶는다. 콘텐츠를 꿰뜷고 있기에, 독자에게 배려가 가능하다.앞뒤를 예상하는 사람이 확실하게 상대를 배려한다. 콘텐츠를 분류하고, 순서를 바꾸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길 위험도 있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할 말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성을 이야기할 수 없다. 

전문가의 특징은 '쉽다'는 것이다. 쉽지 않으면, 전문가가 아니다. 쉽게 만드는 것이, 전문가의 주업이다. 혁신을 이룬 사람들은 바보도 한번에 알 수 있게 제품을 만든다. 요즘 유행하는 유투브, 아이폰의 특징이 무엇인가? 쉽고, 단순하다.  고운기는 시인이다. 사료를 근간으로 시인의 상상력을 펼친다. 역사는 어려운데, 그가 작업하면 재미있어진다. 깊이가 있기에 중심을 잃지않는다. 중심을 잡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해도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삼국유사에 '레슬링과, 미워도 다시 한 번, 문희'가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깊고, 방대한 지식을 가진 자의 특권이다. 목차만 보아도 읽고 싶은, 기대감이 생긴다. 목차 자체가 시詩다.

책을 읽으며 한번 더 감탄한다. 삼국유사 책인지, 삼국유사 사진집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사진 자체의 작품성만으로도 뛰어나다. 사진과 텍스트의 균등한 수준이 이 책을 빛낸다. 보통 책의 사진이라고 하면, 생색내는 정도, 혹은 없어도 그다지 상관없는 소품정도다. 양질의 사진이 없었다면 책의 레벨은 몇단계가 떨어졌을 것이다. 깊이있는 텍스트와 사진의 조화가 아름답다. 책에 나온 사진을 중심으로 전시회가 있었다고 하는데, 저자가 사진을 보면서 설명해준다면 갤러리에서 듣는 강연이 된다.

책을 읽을 때, 편집과 디자인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저자가 산모라면, 편집인과 디자이너는 산파다. 아이가 나오는 과정을 본 적이 있는데, 블랙홀 중앙에 있는 느낌이었다. 모든 힘을 아이가 나오는 것에 집중한다. 시간은 멈추고, 정적을 깨는 것은 아이의 울음소리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애 낳을 수 없다. 출판인이 없다면, 작가는 책을 낼 수 없다. 고교때, 수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점수는 그런대로 나왔다. 수학을 공부한 이유는 수학보다, 수학책이 좋아서다. 내가 공부할 때는 손바닥 보다 조금 큰 사이즈였다. 난 그 쌈박한 사이즈와 볼륨감을 사랑했다. 선생님을 좋아하면, 해당 과목도 잘한다고 한다. 나는 '수학의 정석'이라는 책을 좋아하다보니, 수학을 공부하는 시간이 많았다. 책을 어루만지고, 목적 없이 펼쳐보고 만진다. 책은 눈으로만 읽지 않는다. 독서는 책과의 스킨십이지, 지식입력이 아니다. 

고운기의 '삼국유사'는 원고를 쓰는 노력 만큼이나 편집과 디자인에 공이 들어간 작품이다. 이 책은 읽고 싶기 전에, 만지고 싶다. 무겁지만 않으면 항상 가지고 다니고 싶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종이다. 종이에 따라서 인쇄의 결과도 다르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보이는 것과 종이로 나오는 아웃풋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 차이를 꿰뚫고 있는 사람이 디자인을 했을 것이다. 사진과 텍스트의 배치등, 800페이지의 분량을 생각한다면 작업이라기 보다는, 프로젝트 수준이다.  

비싼데, 내가 아까웠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좋은 책을 대중화하기에는 책값이 비싸다는 의미다. 3만5천원이 아니라, 35만원해도 볼 사람은 본다. 보급판도 나왔지만, 맛 없게 생겼다. 어느 출판사를 보니까, 젊은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히기 위해서, 1년간 책값을 반으로 한다고 광고한다. 이렇게 가격을 조정한다면 출판사가 부담이 된다. 사실 이런 책은 개인과 일개 출판사의 일이 아니다. 나라에서 해야 할 일이다. 얼마나 좋은 의도이고, 결과물인가? 이런 책을 보면,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생각을 할 것이다. 내가 그 위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아쉽다. 사람 인생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나라면 문화부 장관이 되어서 고운기의 삼국유사를 1만원에 보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 선거유세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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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10.05.16 07:37:27 *.160.33.180

인건은 글쓰기 생각 3번 째 조언에 따라 다음 3가지에 대하여 답해 봐라.

1. 하이쿠 이야기와 일본의 콘텐츠 이야기가  네 글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 한 것은 적절한가 ?
2. 고운기라는 사람은 별로 없고, 네 생각이 그를 덮고 있는 것은 객관적인가 ? 
3. 작가 소개와 '내가 저자라면'은  따로 떼어내 접근하도록 주문했는데,  그대가  범벅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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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김인건
2010.05.16 11:39:04 *.88.133.145
선생님 말씀에 지금 다시 보니, 오자도 있고 양채우기에 급급했다는 느낌입니다. 보다 충분히 서치해서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1. 8 :2 정도로 저자에 대한 내용 보다, 저자가 공부했던 배경을 더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일본어를 전공해서인지, 시 이야기가 나오자 반가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배경 지식이 중요하다해도, 저자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하는데, 균형이 무너졌습니다.

2.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저자에 대한 서치를 단단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3. 역시, 초점보다 양에 치우쳤습니다.

요리로 치자면, 짜장면 시켰는데 짬뽕 내온 결과가 되었습니다.
자료조사를 충분히해서, 뼈대를 만들어놓고, 양념을 뿌리는 형식으로 바꾸겠습니다. 코멘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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