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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7일 11시 22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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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영웅들 Heros of History - 윌 듀런트 Will Durant 지음 / 안인희 옮김 / 황금가지 / 2002>

 

*저자에 대하여*

윌 듀런트(Will Durant)는 매사추세츠 주 노스 애덤스에서 프랑스계 캐나다인으로 태어났다. 그는 1917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얻고 이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1935년부터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철학 교수로 재직했다. 스스로 ‘역사를 쓰는 철학자’라고 칭하는 그는 <역사이야기>,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쓴 11권의 <문명이야기> 등 대중계몽적인 저서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도 듀런트를 세계적인 저술가로서 유명하게 만든 것은 <철학이야기>이다. 이 책을 위해 11년간 준비했고 집필기간도 3년이 넘었는데 출판되자 마자 미국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단 기간 내에 세계의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흥미있고 유익한 철학 입문서로 정평을 얻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 존듀이는 그의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종래의 철학 저술은 너무나 전문적이어서 상당히 교양있는 사람들도 읽기 어려웠다. 그러나 듀랜트는 철학자의 사상을 일반 사람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게 했다.”

윌 듀런트는 생애의 마지막까지, 역사 과목을 위한 경이로운 입문서가 될 <역사속의 영웅들>에 새로운 자료를 첨부하였다. 처음 그는 이 책을 23개의 장으로 구성하려 했지만, 운명은 21개의 장에서 이 책을 끝맺게 하였다. 그가 스물한 번째 장을 완성했을 때 그의 아내 아리엘이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1981년 말 듀런트 자신도 심장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1981년 10월25일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13일 만인 11월7일, 그의 심장도 멈추었다. 이 책을 마지막으로 그의 아흔 여섯 생애를 마감하였다.

 

저자가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자신의 인생론을 담은 책을 쓰는 열정을 지니고 있었고, 그 열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기력이 그때까지도 남아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도 물론 아흔 두 살에 자신이 나이가 들어 작업을 완성할 능력에 대해 두려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한계에서 오는 그런 두려움들을 독자들에게 흥미와 이익을 전달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이겨냈다. 그가 가정을 이루고 자신과 관심사가 같고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와 일생을 함께하여 저작활동을 했다는 것은 부러움을 더하게 한다.

자신이 쌓은 지식을 남에게 과시하려는 목적이 아닌 대중들에게 자신의 앎을 풀어내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였고 실제로도 성과를 내었다는 점 또한 부럽다.

그는 삶과 철학을 같은 맥락으로 인식하고 있던 것 같다. 우리의 삶의 태도를 현실의 특정한 부분을 향해 이끌어가는 광범위한 전망을 철학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철학의 한 부분이 역사인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잘 인식하면 현재의 역사를 잘 다룰 수 있게 되어, 자신의 역사를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고 그것이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데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의 나열이나 공허한 이론이 아닌, 저자 스스로가 경험한 삶의 통찰이 그의 저작들에 모두 녹아있음을 그의 생동감 넘치는 언어를 통해서 알 수가 있다. 이러한 듀런트의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신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내마음에 무찔러드는 글귀*

p.10 내게 있어서 역사란 철학의 한 부분이다. 철학은 광범위한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삶과 현실의 광범위한 전망을-당신의 태도를 현실이나 삶의 특정한 부분을 향해 이끌어가는 광범위한 전망 말이다.

p.10 역사는 시간 속의 사건들을 탐구함으로써 철학적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허락해 주신다면 결론적으로 나는 자신이 역사를 쓰는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p.12 그는 명성보다는 명료성을 위해 싸운 철학자였다. 눈부시고 힘찬 산문으로 글을 썼으며, 또한 인류는 충분한 영감을 받기만 하면 신들과 동일한 위대성의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여겼던 사람이다.

p.13 미래 세대의 도덕적 함양과 이익을 위해 과거의 유산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

p.15 인류 역사는 생물학의 단편(斷片)이다. 인간은 수없이 많은 종들 중의 하나이고,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한 싸움과 살아남기에 가장 적합한 존재들의 경쟁에 종속된다. 심리학, 철학, 정치적 능력 그리고 이상향들은 이 생물학 법칙과 화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p.19 이 복잡한 도덕적 규범은-우리 천성에 맞지 않고 <하지 말라>는 말로 우리의 비위를 거슬리는 것이긴 하지만-오늘날 다시 황폐해지고 있는 다섯 가지 특별한 제도를 통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었던가? 가족, 교회(종교), 학교, 법, 대중의 의견(여론) 등이 이 복잡한 도덕규범의 형성을 도왔다.

p.20 공동체 생활은 이렇게 보호해 주는 사회 질서의 우산 아래에서 확장되었다. 문학이 번성하고 철학이 발전하며 예술과 과학이 성장하고, 역사가들은 국민과 종족들이 남긴 위대한 업적을 기록하였다. 남자와 여자는 천천히 절제, 친절과 예의, 도덕적 양심과 미적 감각 등을 발전시켰다. 이런 것들은 만질 수는 없어도 소중한 우리 유산의 은총이다. 문명이란 문화적 창조를 격려하는 사회 질서다.

p.21 역사상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연속 장면의 한 가지는 이교적인 방종의 시대에 이어 청교도적인 억제와 도덕적 규율의 시대가 뒤따라온다는 것이다.

p.22 여전히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 생명의 흐름을 이끌어온 것은 평범한 가족의 건강함과, 남자들과 여자들의 노동 그리고 사랑이다.

p.22 이 소란스럽고 더러운 강 위에, 부조리함과 고통 한가운데에 진짜 신의 도시가 감추어져 있다. 이 도시에서는 과거의 창조적 정신이 기억과 전통의 기적에 의해 아직도 살아서 작용하고 모습을 다듬고 형태를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거기서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와 함께 철학을 가지고 논다. 셰익스피어가 매일 새로운 보물을 가져온다. 키츠는 아직도 나이팅게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셸리는 서풍(西風)에 실려 떠다닌다. 니체가 거기서 미친 듯 떠들어대며 폭로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빵을 함께 나누자고 우리를 부른다. 이들과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그리고 그들이 가져다준 선물이 인간 종족의 엄청난 유산이다. 씨줄과 날줄로 짜인 역사라는 피륙(천)을 이어가는 황금의 혈통이다.

p.23 우리에게 도전해 오는 악을 향해 눈을 감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용기를 잃지 말고 그들을 가르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업적과 우리가 물려받은 장엄한 유산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묘사한 불행한 왕을 변조해서 우리 여기에 앉아 고귀한 여자들과 위대한 남자들의 용감한 이야기들을 나누기로 하자.

p.26 <사람들은 짐승과 같았다. 몸에 두른 옷이라고는 자신의 가죽뿐이고 날고기를 먹고 어미는 알지만 아비는 알지 못하였다.> 아니면 오늘날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런 것이다. <밍크 코트를 입고 덜 익힌 스테이크를 좋아하고 남자들은 공짜 사랑을 즐겼다.>

p.28 노자에 따르면 올바른 길이란 지적 활동 및 거짓을 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이나 옛날 관습, 사고와 조화를 이루어 고요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p.29 자연이란 자연의 활동성이며 전통적 사건의 흐름이고, 계절과 하늘의 웅대한 행진이며 질서다. 그것은 모든 시내와 바위와 별에 새겨져서 드러나는 <길〔道〕>이다. 그것은 공평하고 인간적이지 않으며 합리적인 사물의 질서다. 우리가 지혜를 지니고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면 행동의 법칙은 바로 이 질서를 따라야 한다. 이 사물의 법칙은 바로 우주의 도(道), 즉 길이며 행동의 법칙은 삶의 도, 즉 길이다. 노자에서 두 질은 하나가 된다. 탄생, 삶, 죽음의 리듬을 지닌 인간의 삶은 우주 리듬의 일부다.

p.29 자연에서 모든 사물은 소리 없이 작용한다. 이들은 존재 속으로 들어오지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 기능을 모두 완수하지만 아무런 요구도 없다. 모든 사물은 똑같이 자기 맡은 바 일을 다하고 물러난다. 사물은 절정에 도달하면 무두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원래 온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휴식, 혹은 사명의 완수를 뜻한다. 이런 귀환은 영원한 법칙이다. 이 법칙을 아는 것이 곧 지혜이다.

p.30 성숙하고 고요한 마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심지어 도(道)와 지혜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지혜란, 말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모범과 경험으로만 전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p.33 그의 기본 철학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널리 교육을 펼쳐서 도덕성과 사회 질서를 회복한다는 것이었다.

p.34 완전성에 대한 권고이며, 인간이 바지 입은 원숭이라는 사실을 잊은 권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독교처럼 이것은 추구할 목표와 올라갈 사다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철학에서 황금률의 하나이다. 곧 개혁은 집(가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p.39 물결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이 기분! / 나는 노란 학을 타고 하늘을 나는 신선보다 행복하고/ 하릴없이 갈매기 뒤를 따르는 하백(河伯)처럼 자유롭다./ 붓을 들어 휘갈기니 다섯 산이 흔들린다./ 시는 완성되었다./ 내 마음껏 웃으니 내 즐거움이 바다보다 쿠구나./ 오 불멸의 시(詩)여!/ 초(楚)나라의 왕궁과 탑들은 언덕에서 무너져 내려도/ 시인 굴원의 노래들은 태양과 달처럼 영원히 빛난다.

p.40 죽음과 양식(樣式)처럼 혁명이 쓰레기를 제거하고 불필요한 것을 도려 낼 것이다. 많은 것들이 죽어야 할 순간에 혁명이 나타난다. 중국은 전에도 이미 여러 번이나 죽었다. 그리고 여러 번이나 다시 태어났다.

p.46 고행을 통해 생겨났을지도 모르는 성스러움을 고행에 대한 자부심이 더럽히고 있었다.

p.48 욕심에 시달리는 우리의 자아는 실제로는 분리된 존재나 힘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강물 위에 이는 순간적인 잔물결이고, 바람에 날리는 운명의 올가미 속에 얽혔다 출어졌다 하는 작은 매듭일 뿐이다. 우리 자신이 전체의 일부라는 것을 본다면, 전체의 틀 안에서 우리 자신을 개선하고 우리의 소망을 바꾼다면, 우리의 개인적인 실망과 패배, 비탄과 고통, 피할 수 없는 죽음 등이 더는 이전처럼 우리를 슬프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무한성의 넓이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의 분리된 자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면 마지막에 우리는 해탈, 곧 이기적이지 않은 평화를 찾을 것이다.

p.50 맞는지 말해주세요, 내 사랑, 이것이 맞는지요.

내 두 눈이 당신 가슴속 어두운 구름을 환하데 비칠 때 폭풍 같은 대답을 해주어요.

내 입술은 첫사랑으로 벌어지는 꽃봉오리처럼 달콤한가요?

사라져버린 여러 5월의 추억이 내 사지에 남아 있나요?

내 발이 건드린 자국으로 대지는 하프처럼 노래를 만들어내나요?

내가 나타난 밤의 눈에서 이슬방울 떨어지고, 아침빛이 내 몸을 휘감을 때 그 빛은 정말로 기쁨을 느끼나요?

당신 사랑이 나를 찾아 수많은 세월 수많은 세계를 떠돈 게 맞나요, 그것이 맞는지요?

당신이 마침내 나를 찾아냈을 때 수많은 세월 품었던 당신의 소망이 내 부드러운 말소리와 내 눈과 입술, 향기로운 머리에서 최고의 평화를 얻었다는 것이?

무한의 신비가 나의 이 작은 이마에 쓰여 있다는 말이 맞나요?

말해 주세요, 내 사랑, 이 모든 것이 정녕 맞는 말인가요?

p.59 피라미드에는 야만적으로 원시적인 요소가 있다. 그토록 난폭하게 엄청난 트기를 만들어낸 일과 영원성을 향한 공허한 갈망이 그것이다. 역사에 의해 부풀려진 채 이들 건축물을 위대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마도 구경꾼의 추억과 상상력일 것이다. 분명 사진은 이집트 건축물을 지나치게 고상한 것으로 만들었다. 사진은 흙먼지 말고는 무엇이든 다 잡아낼 수 있고, 대지와 하늘의 고귀한 원경을 이용해 인간이 만든 건축물을 웅장하게 만들 수 있다. 기자의 일몰이 피라미드보다 더 위대하다.

p.70 살아 있는 신성(神性)의 개념으로 모든 사물을 살아나게 만드는 창조적인 힘이다. 태양신의 열기는 생명의 따뜻함이고 사랑의 열정이다.

p.73 이 책의 의도는 문명의 역사를 한정된 지면에 요약해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에 의해 남겨진 사상과 표현의 걸작을 탐구하고 그 예를 살펴보는 것이다.

p.77 유대인들은 뒷날 불운을 겪을 때면 <메시아>를 갈망하였다. 메시아란 다윗의 후손 중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는 말로 그가 다윗 왕이 통치하던 시대의 영광과 행복을 다시 만들어낼 것을 소원한다는 뜻이었다.

p.80 이사야는 괴로워하지만 절망하지는 않는다. 그는 유대인들의 메시아사상의 위안을 보여준다. 미래에 구원자가 나타나 박애와 평화의 시대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위로해 준다.

p.83 이 중 레위기에는 가장 위대하고 가장 대담하고 가장 간결하게 기독교 윤리가 표현되어 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19장 18절)

p.85 우리가 누구기에-순간의 안개 속에 있는 티끌들-우주를 이해하겠는가? 철학은 전체의 빛 속에서 부분을 탐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주 큰 전체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이 그 최조의 교훈이다. 부분과 전체의 조화라는 것은 아마도 건강, 아름다움, 진실, 지혜, 도덕성, 행복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가 될 것이다.

p.86 하느님과 그리고 우주와 화해하라. 또한 사랑으로 너의 삶을 밝게 만들어라.

p.91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은 에고를 가장 많이 넓혀주고, 살아 있고, 평화로운 모든 것들에 대해 마음과 팔을 활짝 여는 일이다. 영혼이 행복하면 그 사랑도 커진다.

p.93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은 어디서 왔는가? 그들은 사방에서 왔다. 서아시아, 에게해의 섬들, 크레타, 이집트, 발칸 반도 그리고 일부는 <스키타이(곧 남부 러시아)>에서 온 사람들이다.

p.95 두 가지 생각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변화가 보편적이라는 것과 에너지는 파괴할 수 없이 영속한다는 생각이었다.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것은 언제나 현재의 존재이기를 중지하고 새로운 다른 것으로 된다. <모든 것은 흘러간다> 그리고 <흐르는 강의 동일한 물속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쉬지 않고 중지하지 않는 <과정>이다.

p.99 <코스모스>란 질서라는 뜻이고, 이것이 피타고라스의 핵심적인 단어이다. 우리의 소망이 질서를 이룬 것 그리고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질서를 이룬 것이 곧 미덕이다. 그리고 국가 안의 질서가 유지되면 그것이 곧 올바른 정부이다.

p.102 그들의 종교는 그들의 애국심이 그렇듯 주로 도시와 조시를 둘러싼 시골에만 미칠 뿐 올림피아 산을 넘어가지는 못하였다. 그들은 동맹 체제를 이루었을 뿐 하나의 국가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통일 페르시아가 도전 하였을 때 그들은 하마터면 자유를 잃어버릴 뻔했다. 각각의 지역적 자유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다.

p.107 <나는 항상 배우는 가운데 나이가 들었다.>

p.111 한 국민의 역사에서 정치 지도력, 예술, 과학, 철학, 문학, 종교, 도덕 등이 책의 여러 페이지에 흩어져서 각기 따로따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색상을 지닌 하나의 직물로 짜여져 나타난 시대였다.

p.113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관습을 인구 과다에 대한 공포심 탓으로 돌렸다. 이것은 아마도 유럽이 동방에서 받아들인 유산의 일부였을 것이다. 이런 관습은 여성을 발전에서 격리시켰다. 시장(아고라), 체육관(김나지움), 레슬링 학교(팔라이스트라) 등에서 보내는 아테네생활은 젊은이들에게 오직 남성적인 생활 방식만을 보여주었다. 미술조차도 페리클레스보다 100년 뒤에 오는 프락시텔레스 이전에는 여성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표현하지 않았다.

p.125 고전적인 것에 경탄하고 낭만적인 것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에우리피데스가 더 좋다.

p.131 황금시대는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더불어 끝났다. 아테네는 몸과 영혼이 다 지쳤고, 한 세대 동안이나 계속된 싸움을 통해 품성이 타락한 것을 느꼈다.

p.132 아낙사고라스는 추방되었고 소크라테스는 사형 당하였지만 철학에 주어진 자극은 다음 60년 동안 아테네를 자극해서 뒷날 여러 세기 동안 유럽에서 번성할 사상 체계를 만들어냈다.

p.132 아테네는 패배의 절망을 딛고 굳건한 힘으로 새로운 부와 문화와 힘을 만들어냈다. 도시국가 아테네의 삶의 가을은 아름다웠다.

p.144 기원전 356년 에페소스에 지어진 아르테미스 여신의 세 번째 신전도 이 일곱 기적에 포함된다. 50년 동안의 작업을 통해 세워진 이 신전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큰 신전이 되었다. 처녀 신은 그곳에서 그리스 사람들에 의해 아르테미스로 숭배되었고, 이어서 로마 사람들에 의해서는 디아나로, 기독교도에 의해서는 성모 마리아로 숭배되었다. 역사는 신문과 마찬가지로 이름과 날짜는 바뀌어도 사건은 언제나 똑같다.

p.147 아테네의 가장 유명한 철학자가 자유에 대해 그토록 할 말리 적게 되었을 때 철학은 새로운 종교를 위해 무르익은 것이고 그리스는 새로운 왕을 위해 무르익었다.

p.148 플라톤과는 더불어 논다면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더불어 일을 해야 한다.

플라톤의 인기 있는 <대화>들은 살아남아 우리를 즐겁게 하고 기술에 관련된 그의 논문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진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기 있는 작품들은 사라지고 오로지 기술에 관련된 논문들만 남아서 그 집중된 가르침의 대가로 힘든 주목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농담 중 하나이다.

p.150 행동의 목적은 행복이지만 행복의 비결은 미덕에 있다. 그리고 최고의 미덕은 지성이다. 이것은 현실, 목표, 수단에 대한 조심스런 관찰이다. 통상적으로 <미덕>이란 두 극단 사이에 있는 황금의 중간(황금률)을 뜻한다.

p.155 정력이란 천재의 절반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통제의 능력이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는 온통 정력이었다.

p.161 로마 사람들의 가장 깊은 경건함과 가장 진지한 숭배는 생명의 어머니이고, 죽은 자들의 고향이며 솟아나는 씨앗 속에 감추어진 마법의 힘인 대지를 향하였다.

p.172 이렇게 합쳐진 고전 세계의 유산이 자라 로마의 도로들과 알프스의 산을 넘어 북유럽으로 건너갔고, 여가 시간이면 당신과 나에게도 넘어와 있다.

p.176 생명은 자유로이 간직하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임시로 빌린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그것을 잘 이용해야 한다. 우리의 힘을 다 쓰고 나면 우리는 잔칫상에서 일어나는 손님처럼 우아하게 감사를 표시하면서 생명의 식탁을 떠나야 한다.

p.176 죽음 자체는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오직 저승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 죽음을 두렵게 만든다. 그러나 저승이란 없다. 지옥은 이승에서 고통을 받는 것으로, 그것은 무지, 정열, 싸움을 좋아함, 욕심에서 온다. 천국은 이승의 <현명한 사람들의 평화로운 신전>에 들어 있다.

p.176 <인간의 진정한 부는 마음의 평화를 지니고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p.179 이 책을 읽는 당신은 깨어 있는 섬세한 정신의 소유자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이야기에서 지난 백 년 동안의 우리 역사와 비슷한 점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호라티우스는 이렇게 표현하였다. <이것은 당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p.187 <그가 유일하게 신경을 쓰는 것은 지혜와 용기에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능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p.189 그는 부지런해서 자신의 비명(碑銘)을 구술해 놓았다. <내게 봉사한 어떤 친구도, 내게 못된 짓을 한 어떤 적도 내가 충분히 보상해 주지 않은 경우란 없다.>

p.195 우리는 카이사르가 처음에는 무자비한 선동가이며 거침없는 난봉꾼이었다가 책임감에 의해 천천히 역사상 가장 신중한 정치가의 한 사람으로 변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의 결점을 보고 좋아하더라도 그가 위대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p.200 기원전 49년 1월 10일에 그는 1개 군단을 거느리고 알프스이남 갈리아의 남쪽 경계선을 이루는 작은 루비콘 강을 건넜다. 그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행군해 가는 도로변의 도시들은 하나씩 그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어떤 도시들은 떼를 이루고 그를 환영하였다. 키케로는 이렇게 썼다. <도시들은 그를 신처럼 환영하였다.>

p.202 그러나 이 위대한 정치가는 허영심을 이기지 못하였다. 승리했을 때 머리에 썼던 월계관을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일상에서도 매일 썼다.

p.212 로마의 평화 시대에 제국의 모든 부분은 상품과 사상을 수출하고, 가장 최근의 유행과 신앙을 수입할 수 있었다.

p.215 삶과 철학을 연구하라. 연구와 이해가 없는 완전한 양식이란 너무 약해서 사용할 수 없는 공허한 빈 그릇과 같다.

p.217 요크에서 바알베크과 카디스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에서 그의 말이 곧 법이 되었던 남자는 평생 겸손하고 단순한 삶을 살았다. 그는 부의 사치와 관직의 보수를 멀리 하고 집안 여자들이 짠 단순한 옷을 걸치고 전에 웅변가 호르텐시우스의 궁전 작은 방에서 잠을 잤다.

p.217 아우구스투스는 겉치레가 없는 사람이어서 어떤 갈리아 사람이 그를 죽이러 왔지만 그가 황제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p.219 <나는 내 맡은 역을 다하였으니 여러분이 손뼉을 쳐서 박수로 나를 무대에서 쫓아내 주시오.>

p.230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는 원로원에 의해 피우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는 옛날 로마 공화국 시절 귀하게 여기던 미덕들을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즉 자식으로서의 헌신, 애국심, 친구들에 대한 성실함, 시간과 지갑의 너그러움 등을 고루 갖추었다.

p.233 다뉴브 강을 따라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이따금 전투가 멎는 틈을 이용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명상록』이라고 알려진 작은 책을 그리스어로 집필하였다. 원래는 <그 자신에게>라는 제목 이었다. 맨 처음의 것과 맨 마지막의 것들에 대해 삶에서 얻은 결론들을 요약하고 있다. 그는 공식적인 로마의 신앙을 잃어버렸고 동방에서 온 새로운 어떤 신앙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질서의 표지와 형태들은 너무나도 많이 보았기에 어떤 신비로운 지적 존재가 우주에 개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든 것은 보편적 이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그는 느꼈다. 그것은 우주 전체에 내재된 논리이다. 각각의 부분은 자신의 소박한 운명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의 평정>(안토니우스의 최후의 암호)이란 <보편적 자연(본성)에 의해 너에게 할당된 것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모든 것은 <나와 조화를 이루고 그대 우주(전체)와 조화를 이룬다. 나에게 있어 그 어떤 것도 너무 빠른 것도 너무 늦은 것도 없으며 그것은 그대 우주(전체)에 적합한 시간이다.>

p.234 정말로 선한 사람은 불행에 대해 면역력이 있다. 어떤 재앙이 덮쳐도 그의 영혼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논리나 배움이 아니라 이해와 받아들임이다.

죽음에 대해서도 그것을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일로 받아들여라.

p.238 우리는 예수 탄생의 장소와 시대를 느끼려 해보아야 한다. 자신들을 흡수한 로마 제국에 대해 그의 나라와 민족이 가졌던 관계, 정복당한 민족의 고통 그리고 종교, 법, 문학, 철학 등의 자랑스런 유산, 해방을 향한 정영적인 희망, 또한 자유와 정의와 영광의 제국이 도래할 것에 대한 그들의 꿈을 느껴야 한다. 이런 요소들 모두가 함께 민감하고 이해심 깊은 정신에 작용해서 목수 아들을 이루었고 그를 십자가형으로 이끌고 갔다.

p.242 그에 대한 믿음이 그들에게 강장제가 된 것이다. 신앙을 가지고 그를 건드리면 약한 사람들은 힘을 얻고 병든 사람들은 나았다. 우리는 강하고 신념을 가진 여자나 남자의 생각과 의지 속에 들어 있는 힘에 대해 어떤 한계도 둘 수 없다.

p.245 그의 업적은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덕성의 윤곽을 드러냈다는 점에 있었다. 그의 윤리 법전은 하느님의 나라가 일찍 다가올 것을 예언하고, 사람들을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덟 가지 복은 겸손, 온화함, 평화를 전례 없이 드높이고 있다. 다른 뺨도 내밀라는 충고, 경제적 공급, 부, 통치 등에 대한 무관심, 결혼보다 독신 생활을 더 높이 여기는 태도, 가족과의 유대를 포기하라는 명령……. 이런 그의 생각은 가족생활이나 사회적 질서를 위한 규칙은 아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아 눈앞에 닥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남자와 여자를 수도원 생활 방식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그 나라에는 법도, 결혼도, 성관계도, 부(富)도, 전쟁도 없다.

p.250 본디오 빌라도는 이 온화한 태도의 설교자가 정말로 국가에 위협이 된다고 여겼을 것 같지는 않다. <네가 유대인의 왕인가?> 그가 물었다. 마태오에 따르면 예수는 <그것은 네 말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요한복음은 예수가 이 말에 이어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다>고 말하였다. <진리란 무엇인가?>하고 총독이 물었다. 복잡하고 시니컬한 로마의 문화와 유대인의 충직한 이상주의 사이에 놓인 깊은 차이를 보여주는 질문이었다. 빌라도는 못마땅해 하면서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p.257 바울로는 <이방인을 향한 사도> 자격으로 전도 여행을 계속하였다. 그는 에베소(에페수스)에서 아테네와 로마까지 복음을 전파하였다. 위대한 종교의 운명은 한 순간이 한 사람 바울로에게 달려 있었다.

p.265 국가와 교회는, 그들 생각에 사람들이 도덕적, 정치적 무정부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법과 도덕의 복합적인 구조를 무너뜨리려 하는 이단자들에 대한 무시무시한 공격에서 서로 힘을 합쳤다. 위기에 몰린 정부는 거의 모든 종교 재판 관청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국가에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의견이나 행동에 대해 종교 재판과 동일한 형벌을 내렸다.

자유는 안전이 만들어내는 사치품이다.

p.272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혜를 향한 첫 번째 열쇠는 자주 부지런히 질문하는 것이다. ……의심을 통해 우리는 탐구에 이르고, 탐구를 통해 진리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학」에서 그는 오직 기독교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비이성적인 것이라 해서 거부하였다. 그는, 신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주신다고 주장하였다. 이단은 폭력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억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p.273 그녀는 1164년 그와 같은 나이가 되어 그와 비슷한 명성을 얻은 다음 애인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위로해 주시는 성령의 뜰 안의 그의 곁에 묻혔다.

p.275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가 널리 퍼지고 부유해지면서 강해졌다. 또한 세속적 영향력을 높인 것과, 파괴적인 개인주의와 정치적 술수와 회의적 지성에 의해 약해졌다. 교회는 화려함과 영향력을 놓고 대성당들과 힘을 겨루는 대학의 발전에 역동적으로 참여하였다. 교회는 대부분의 교사들을 공급하고 훈련시켰으며, 종교의 의상으로 그들의 권위를 높였다. 그러나 점차 이들 선생들은 믿음과 종교적 경력보다는 지식과 세속적 출세를 추구하게 되었다.

p.275 중세의 영혼은 자라나는 세포처럼 두 가지 역사적 유기체로 발전하였다. 남부 유럽에서는 고전적, 에피쿠로스적, 이교적 르네상스이고, 북부 유럽에서는 초기 기독교적, 스토아적, 청교도적 종교 개혁이다. 중세의 영혼은 이제 두 개의 강력한 문화가 되었다. 그들을 통해 문명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중세의 역사적 업적은 완성되었다.

그 죽음이 곧 그 완성이었다.

p.286 공공사업과 자선사업에 엄청난 기부를 하였기에 민중은 피렌체의 정치에서 그의 간접적인 독재를 말없이 받아들였다.

p.286 역사도 그를 승인해 준다. 그가 넉넉한 돈을 투자해서 많은 학자, 예술가, 시인, 철학자, 등을 후원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재산의 일부를 들여 고전 텍스트를 수집하였다.

p.287 마음을 명랑하게 하는 플라톤의 정신이 기운을 북돋우는 효모처럼 새로 일어서는 유럽 사상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p.295 메디치와 다른 피렌체 집안들이 너그러운 후원을 해준다는 명성에 이끌려 학자들은 피렌체로 몰려들었고, 이 도시를 문학 수업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이런 경쟁의 지적인 유산을 발전시키고 물려주기 위해 로렌초는 오래된 피사 대학과 피렌체에 있는 플라톤 아카데미를 복구하고 더 크게 만들었다.

p.296 그의 열렬한 정신은 탐구를 계속하였다. 문학, 철학, 건축, 음악 그리고 이 모든 분야에서 두드러진 탁월성을 보였다. 폴리치아노는 그를 보고 내면에 자연이 주는 모든 선물을 모아놓은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서술하였다.

p.297 그는 서방의 모든 위대한 종교-유대교, 기독교, 회교-들을 화해시키고 이들을 다시 플라톤과, 플라톤을 아리스토텔레스와 화해시키는 일을 고귀한 의무라고 여겼다. 모든 사람이 그에게 아첨을 하였지만 그는 짧은 생애의 마지막까지 매력적인 온건성을 지켰다. 오직 배움의 정확성과 인간 이성의 힘에 대한 순진한 믿음의 영역에서만 과격성을 띠었다.

p.298 인간은 자기가 되고자 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이것은 신의 최고의 선물이요, 인간이 받은 최고의 놀라운 축복이다. 짐승은 어미의 몸에서 나올 때 제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최고의 정신(천사들)은 시작부터 영원히 지속되도록 만들어진 존재이다. 하느님 아버지는 인간에게만 탄생의 순간부터 모든 가능성과 모든 삶의 씨앗을 주셨다.

p.301 그의 때 이른 죽음 소식이 피렌체에 전해지자 도시 전체가 슬퍼하였고 심지어는 로렌초의 적들까지도 그의 손길이 없어진 지금, 피렌체의 사회 질서 혹은 이탈리아의 평화가 어떻게 유지될까 걱정하였다. 유럽은 그가 위대한 정치가였음을 인정하고 그 시대의 특징적인 성격이 그의 안에서 구현되어 있다고 여겼다. 그는 폭력을 싫어했다는 점을 빼고는 모든 점에서 <르네상스의 인물>이었다.

p.307 그는 너무 빨리 한 가지 일이나 주제에서 다른 것으로 넘어 갔다. 그는 너무 많은 일들에 관심이 있었다. 그에게는 하나의 통합하는 목표, 주도하는 이념이 없었다. 이 <보편인(universal man)>은 빛나는 부분들을 이어 붙여놓은 사람이었다. 그는 너무 많은 능력들을 지녔기에 그들을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p.308 그의 기본 원칙은,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은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그대로 베끼기보다는 자연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 화가여, 보라, 그대가 들판에 나가거든 여러 사물에 주의를 돌리고 차례로 하나씩 자세히 바라보고 별 가치가 없는 것들 중에서 여러 가지를 골라내라.> 물론 화가는 해부학, 원근법, 명암의 배치 따위를 탐구해야 한다. 윤곽선을 예리하게 강조하면 그림은 나무토막처럼 보인다. <언제나 인물이 그 머리를 가슴과 같은 방향으로 향하지 않게 만들라.> 레오나르도 자신의 작품에 나타나는 우아함의 한 가지 비밀이 이것이다.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물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게 만들어라.> 그는「모나리자」를 그릴 때 이 원칙을 잊었던 것일까? 아니면 여주인공의 눈과 입술에서 그 영혼을 읽어내는 우리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것일까?

p.310 예측할 수 없던 3년 동안(1495년-1498년)의 느린 작업 속도 때문에 공작과 수도사들이 안달이 나 있는 동안 레오나르도는 작업을 이었다 끊었다 하면서 계속하였다. 수도원장은(바사리의 말을 믿어도 된다면) 공작에게 가서 레오나르도의 게으름을 불평하면서 그가 어째서 때로는 몇 시간씩 붓질 한 번 안하고 그림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레오나르도는 아무 문제없이 공작에게 설명하였다. 공작은 수도원장에게 설명하지 못하였다.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일은 실행이 아니라 구상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바사리가 덧붙인 말에 따르면) <천재적인 사람들은 일을 가장 적제 할 때 가장 많이 일한다>.

p.317 미술가의 일에서 과학자의 일이 만들어져 나왔다. 그림은 레오나르도에게 해부학, 비율과 원근법, 빛의 구성과 반사, 물감과 오일의 화학 등을 탐구하도록 만들었다.

p.320 그는 르네상스의 어떤 화가 보다 더 자유롭게 그리스도의 초상화를 다루었다. 후광을 빼고, 성모가 자기 어머니의 무릎에 걸터앉게 하고, 아기 예수는 상징적인 양에 올라타려 애쓰게 만들었다. 그는 물질에서 정신을 보았고, 영혼을 믿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영혼은 오로지 물질을 통해 그리고 변경시킬 수 없는 법칙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구절에서는 겸손과 열렬함으로 신에게 말하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신을 자연, 자연의 법칙, <필연성>과 동일시하였다. 마지막까지 신비적인 범신론이 그의 신앙이었다.

p.321 <하루를 잘 보내면 그 잠이 달다. 그렇듯이 인생을 잘 보내면 그 죽음이 달다.>

p.322 그는 <르네상스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토록 강하고 격하던 시대를 대표하기에는 말과 행동이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내성적이고 섬세하였다. 그리고 <보편인>도 아니었다. 그의 다양성 안에는 정치가나 행정가의 자질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와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르네상스 그리고 아마도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풍요로운 사람>이었다. 그의 업적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원천으로부터 한 사람이 왔었다는 것, 그가 인류의 가능성에 대해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해주었다는 사실에 경탄하게 된다.

p.332 한두 가지 잘못을 두고 법석을 떨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교황의 비호를 받는 가운데 젊은 기독교도는 갑자기 모든 이교도들을 한 곳에 모았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의 이해력과 공감을 가지고 그들을 원래의 특성대로 그려놓았다. 신학자들이 그들을 바라보면서 서로 오류의 가능성을 나눌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교황은 두 기록 사이에서 인류의 사색의 협조적인 과정과 창조를 명상할 수가 있었다.

p.340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다른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문명이란 소수의, 소수에 의한, 소수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원래의 정당성을 넘어 과대하게 찬양하는 것이 될 것이다.

p.350 겨우 13개월 동안 로마에서 지낸 다음 하드리아누스는 몸과 영혼이 다 무너져 병들어 죽었다(1523년 9월 14일).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남기고 조용하고 경비가 들지 않는 장례식을 고집하였다. 청교도적인 튜톤 출신 하드라이누스가 이교적인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래서 베드로의 돈을 지불하는 도이칠란트와 소비하는 이탈리아 사이에 다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p.362 베네치아의 삶은 정신보다는 그 무대가 더욱 매력적이다. 이 독재 국가는 유능하였고 역경에서 대단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때로는 잔인하였고 항상 이기적이었다. 이웃 국가들이 그렇듯이 베네치아는 자신을 이탈리아의 일부로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이렇게 분열된 나라에 어떤 정치적 비운이 닥칠 것인지 거의 걱정하지 않았다. 베네치아는 강력한 개성들을 발전시켰다. 자신감이 있고, 예리하고, 욕심 많고, 용감하고, 자부심 강한 인물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충분히 세련된 사람들이어서 화가들을 후원하였고, 이들 화가 들이 그린 초상화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인물이 1백 명 가량은 된다. 베네치아 문화는 피렌체와 비교하면 섬세함과 깊이가 없다. 밀라노와 로도비코 공작과 비교하면 정교함과 우아함이 없다. 그러나 베네치아 문화는 역사상 알려진 것 중에서 가장 색체가 화려하고, 값비싸고, 감각적으로 매혹하는 문화이다.

p.371 우리는 미켈란젤로에게 찬사를 바친다. 길고 고통스런 생애 동안 그는 계속해서 창작하였고, 미술의 모든 주요 영역에서 걸작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이 이른바 살과 피를 찢고 나온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의 정신과 마음에서 터져 나온 것으로 한 가지를 완성한 다음이면 그는 출산의 고통으로 약해진 시간을 견디곤 했다. 그것들이 수십만 번의 망치질과 끌과 붓을 움직여서 형태를 얻은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것들은 불멸의 주민처럼 하나씩 아름다움이나 중요성의 지속적인 형태들 가운데 자기 자리를 차지하였다.

p.371 우리는 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또한 악과 선, 고통과 사랑스러움, 파괴와 숭고함을 뒤섞은 듯이 보이는 우주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아기를 달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거나, 혼돈에 질서를, 사물에 의미를, 형태나 생각에 고귀함을 부여하는 지적인 의지를 보면, 우리는 세계의 이해할 수 없는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삶과 법칙에 아주 가까이 다가간 듯한 느낌을 얻는다.

p.388 교황국이 가장 찬란한 시대 하나를 맞고 있을 때 종교 개혁이 다가왔다. 콘스탄츠 공회의는 세 명의 교황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p.388 로마에 활기를 불어넣어 혼란스럽도록 성직자 천지로, 반항적이라 할 정도로 봉건적으로, 혹은 과격한 대중주의로 바꾸어 놓았다.

p.403 수많은 인자들과 영향들-교회 내부의 것, 지적, 감정적, 경제적, 정치적, 도덕적인 것들- 이 수백 년의 방해와 억압을 견딘 다음 하나의 회오리바람으로 뭉쳐져 야만인이 로마를 정복한 이후로 유럽에 가장 큰 전복을 가져올 참이었다.

p.404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힘의 급류를 형성하였다. 그것은 중세 관습의 딱딱한 표면을 깨고 모든 기준과 제약들을 느슨하게 풀고 유럽을 국민과 종족으로 흩어놓고 전통적인 신앙의 위안과 후원을 점점 더 없애버릴 힘이었다. 그리고 유럽인의 정신적, 도덕적 삶에서 기독교가 지배적인 역할을 해온 일의 종말이 시작된 것이기도 하였다.

p.414 루터는 역사상 거의 전례가 없는 방식으로 이 상황에 대응하였다. 그는 자신의 글을 출판해 줄 사람을 찾아냈다. 라틴어가 아니라 도이치말로 된 문서였다. 곧 <기독교 재산에 대해서 도이치 민족의 기독교 귀족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이다. 물론 당시 도이치 민족은 없었고 오직 도이치 제후국가들 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각 국가는 독립적이었고 각각의 관습, 법, 군대 그리고 자부심 등을 가졌다. 루터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어서 모든 도이치 사람들에게 말을 하였다.

p.421 나의 양심은 하느님 말씀에 따를 뿐이다. 나는 어느 것도 취소하지 않을 것이고 그럴 수도 없다. 양심에 거슬린다는 것은 옳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멘

p.422 신약성서는 성직자의 세속성. 사도들의 공산주의, 가난하고 억압받은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공감 등을 밝혀주었다. 이런 점에서 신약 성서는 이 시대의 과격파들에게는 진짜로 <공산주의 선언>에 해당하였다.

p.440 에라스무스는 놀라고 슬퍼하면서 유럽이 신학과 전쟁으로 찢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루터 반란의 초기 국면을 후원하였지만 그것이 유럽의 사회적 기둥의 하나인 카톨릭 교회의 붕괴를 가져오려고 했을 때 그로부터 멀어졌다. 그는 루터를 위해 길을 여는데 동참하였다. 그의 <어리석음 예찬>은 당시 유럽을 통해 수천부가 전파되면서 수도사와 신학자들을 비웃었고 루터의 둔중한 폭발을 위한 폭발 지점을 제공하였다.

p.449 테레사의 규칙은 명랑하고 단호하게 사랑하는 것이었다.

p.461-462 카톨릭이 아닌 학생들에 따르면 카톨릭 교회의 경영은 능률과 통합의 모범이 되었다. 어두운 고해실이 도입되어(1547년) 의무화되었다. 사제는 이제 고해자의 미모에 유혹을 받지 않게 되었다. 개신교와 자유 사상의 발전에 위축되는 대신 카톨릭 교회는 젊은이의 마음과 권력의 동맹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예수회의 정신은 -자신만만하고, 명확하고, 정력적이고, 규율이 있는- 군사적인 교회의 정신이 되었다.

p.463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영국은 르네상스(셰익스피어), 종교개혁(엘리자베스), 계몽주의(베이컨) 등이 하나로 합쳐진 천재와 역사가 폭발적으로 집약된 시대였다. 수많은 요인들이 이런 복합적인 결과를 위해 이바지하였다.

p.465 셰익스피어는 삶이 점차 약해지자 용서할 수 없는 고통과 비탄의 연속으로 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신앙을 잃어버린 것을 탄식하였다. 가장 고귀한 영혼이라도 결국은 망가진 꿈이 되고 만다. 이렇듯 신학이 생물학에 패배하는 것에 대한 원망이 그의 가장 위대한 희곡 몇 편을 어둡게 만들어 영국문학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가장 쓰라린 고발이 되었다.

p.466 영어권 세계의 모든 식자들은 셰익스피어가 쓴 37개의 희곡 모두 혹은 일부에 들어 있는 주제와 기쁨에 친숙하다. 그러나 때때로 그의 희곡 작품은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는 거의 잔혹한 시니시즘에 대해서는 거의 놀라움이 표현되지 않았다. 그 문체의 행복한 화려함 가운데로 거의 시니컬한 고통의 외침이 터져 나온다.

p.468 절정에 이른 희곡들에서 망설이는 認定이 나타난다. 이 세계의 악의 한 복판에 축복과 즐거움이 있다. 악당들 한가운데 영웅과 성인들이 있다.

p.472 프란시는 베이컨은 세익스피어와 얼마나 다른가. 감정은 지성에 종속되고 희망에 극복되고, 삶의 흥망성쇠는 미래의 인간 정신의 승리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전망 속에 파묻혔다.

p.479 엘리자베스 여왕은 성인이나 현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격한 기질과 정열을 지닌 여성으로서의 삶을 사랑하였다. 그녀의 국민 모두가 셰익스피어가 생각한 대로 <자기들이 심은 것을 제 집에서 편안히 먹고 즐거운 평화의 노래를 부른> 것은 아니었다. 청교도와 가톨릭 교도들은 상당한 정도까지 박해와 불리함을 겪었다. 그녀의 통치의 지혜는 부분적으로 측근들의 지혜였다. 그녀의 우유부단함은 변화하는 기회 때문이었지만 자주 행운으로 판명되었다. 때로는 이런 우유부단함이 정책상의 약점이 되어 적들의 내분으로 인해 살아남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는 성공적으로 살아남았고, 공정한 수단으로 혹은 정직하지 않은 수단으로 번영을 만들어냈다.

p.481 그는 명예 이외의 모든 것을 다 얻었다. 지위를 추구하면서 베이컨은 이따금 원칙을 희생시켰다.

p.483 정치에서 그는 생각은 자유주의자였으나 행동은 보수주의자였다. 또 다른 일이란 과학과 철학이었고, 이 분야에서 그는 <재능을 한데 모으라는 종을> 울리게 된다. 그리고 당당한 산문으로 이성의 혁명과 약속을 선포한다.

p.483 철학은 이미 오래 전부터 베이컨에게 있어서 비밀의 사랑이며, 가장 행복한 성향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직책으로부터의 피난처였다.

1610년 아이삭 캐소본에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 있다. <깊고도 참된 사색의 도움으로...인간의 삶의 질서를 더 낫게 만드는 것, 이것이 내가 목표로 삼는 일입니다.>

p.486 문학과 철학을 포함한 전체적이고 자유로운 교육을 옹호하고 목적에 대한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면서 아울러 과학적 방법의 증진을 동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p.487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지식은 단순히 뒤범벅이며 소화되지 않는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쉽게 믿는 태도, 수많은 우연 그리고 맨 처음에 흡수된 유치한 관념들로 이루어진 덩어리다.

p.489 베이컨의 생각에서 궁극적 목적은 과학의 방법을 인간 성격에 대한 엄격한 분석과 단호한 개조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정신에 대해 바다에 부는 바람과 같은 작용을 하는 본능과 감정의 연구를 촉구하였다.

p.490 베이컨의 지혜는 세속적이다...그러나 그는 때때로 결정론적 유물론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p.491 학문에 대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문을 도덕성에 종속시켰다. 학문의 확장이 자비심에 아무런 득도 가져오지 못한다면 인간성에는 아무런 이득도 없을 것이라 하였다.

p.492 그의 정치 철학은 이론보다는 상화에 따른 것이다.

p.494 그는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과학의 철학자였다. 그의 관찰의 범위는 무한하였다. 그러나 사변의 영역이 너무 광범위해서 특별한 탐구를 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는 어떤 일을 시도하기는 하였으나 결과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또한 자기 시대 과학의 진보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었다.

p.496 프란시스 베이컨은 그의 시대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이 있는 지식인이었다. 물론 셰익스피어는 상상력과 문학의 기술에서 그보다 뛰어났으며 지각과 사유의 섬세함에서도 그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베이컨의 정신은 탐조등처럼 우주를 돌면서 공간의 모든 구석과 비밀을 호기심에 넘쳐 살펴보고 있다. 르네상스의 즐겁고도 확장된 열광이 그의 안에 고스란히 있었다. 미친 듯이 신세계를 향해 항해해 나갔던 콜럼버스의 흥분과 자부심이 그대로 있었다.

p.498 우리는 프란시스 베이컨을 이성의 시대의 맨 앞에 자리 매김 할 수 잇을 것이다. 그는 후계자들 중의 일부가 그랬던 것처럼 이성을 우상처럼 숭배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실제 경험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사고를 믿지 않았고 소망으로 오염된 결론들을 믿지않았다....그는 모든 과학을 위하여 깃발을 들어올리고 그것을 다음 세기의 가장 열렬한 정신들에게 넘겨주었다.

p.501 여기서 역사는 영웅의 역사이다. 영우이란 역사상 위대한 정치가나 장군만이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와 예술가, 시인까지 포함한다. 이 모든 영웅들은 한결같이 위대함과 더불어 인간적인 약점을 지녔다. 듀런트는 이들의 위대성을 깍아 내리지는 않지만 슬그머니 미소를 띤 채 약점을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역사나 사실을 바라보는 이러한 냉정함이 우리에게는 낯설다. 우리는 서로 모순을 이루는 형용사를 얼른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위대하든 평범하든 상관없이 인간을 오로지 훌륭하게만, 또는 나쁘게만 서술할 수 있겠는가? 위대한 인물이 지녔던 인간적인 약점은 그 인물을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위대성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것이 아니던가? 이들이 지닌 약점을 보면 우리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고 허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위대했으며 마찬가지로 약점투성이인 우리 또한 위대해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p.503 죽기까지 인류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통찰을 계속했던 그 삶의 흔적을 만나고 그 깊은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우리 삶이 참으로 경이롭고 또 노년을 존경하는 마음이 뭉클 솟아난다.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저자의 의도대로 <역사의 예를 통해 가르치는 철학>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가 설정한 역사의 범위는 4대문명을 골고루 아우르고 있어, 그가 균형잡힌 시각으로 인류의 역사를 다루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역사서가 아닌 역사를 주도해간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 구체적인 역사의 전개를 보여주고 그속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철학적 지혜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특별한 점은 그 영웅의 모습이라는 것이 우리가 일반 역사서에서 접할 수 있는 그러한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 역사서에서 영웅의 일대기를 읽으며 ‘역시 영웅이라 다르군’이라는 감탄했다면, 이 책에서 영웅의 이야기를 ‘영웅도 사람이었군’이라는 미소를 자아낸다. 대중을 위해 쓴 역사철학서라는 말이 이 책에 딱 어울린다. 대중들이 책을 읽으며 역사를 이끌어간 영웅들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만나게 되고 영웅도 대중의 한 사람이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도 역사속의 영웅이 될 수 있겠다는 즐거운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지만, 다양한 철학적 이론의 인용, 원전에 의거하여 세심하고 명확하게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맹목적인 역사와 철학에 대한 수용이 아닌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역사철학서로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이야기들을 저자는 맛깔나는 자신의 입담으로 역사속의 영웅들을 인간미 넘치는 대중의 친구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책의 곳곳에 문학작품을 싣고 있는데 역사의 장면에서 영웅들이 노래한 시적인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독자들에게 더욱 친근하고 쉬운 역사철학서로 다가갈 수 있다. 또 영웅들이 시인, 정치인, 철학자 등 다양한 방면의 인간군상들을 보여주고 있어 역사를 이끌어간 사람들이 어느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다양한 개인에 의해서 문명이 발전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덧 나도 역사의 한 장면을 구성하는 개인으로 전체속의 부분이라는 인식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저자는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역사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아테네와 미국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역사란 고루한 과거의 유물이라고 인식되는 데,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우리 삶에서 재연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 과거에 대한 인식을 통해 현재의 양상을 파악하고, 현재의 모습을 애정을 갖고 관찰하면 미래에 전개된 역사에 대해서도 예측할 수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역사적 사실과 철학적 이론을 명확하게 전달하려고 하면서도 지루하고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는 그것들, 사이사이에 자신의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자신만의 언어로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저자와 함께 역사 여행을 한 기분이 들었다. 저자의 글 쓰는 능력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나는 <역사속의 교육자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써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교육사와 교육철학의 부분이 교육학 공부 중에 가장 지루한 부분이다. 그냥 역사적인 사실과 철학적인 이론을 나열한 책들만 가득하다. 그래서 몇 십년 전의 책이나 지금의 책이나 활자모양만 달라졌지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내용 구성을 그대로이다. 과거의 교육이나 현재의 교육은 당연히 유기적으로 관련되어있다. 과거의 교육에 대한 인식을 통해 현재의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지루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과거의 교육자들이 생동감있게 살아숨쉬고 지금의 우리들에게 유쾌하게 자신들의 교육관을 전달하는 방식의 책이다. 교육자들도 학생이었던 시절이 있고 부모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로 일상을 사는 동안에 자신의 교육관을 실천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교육이라는 것을 어렵게 여겨 자신의 교육하는 것도, 자녀를 교육하는 것도 누군가에 맡겨두고 자신은 제3자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독자 자신도 주체가 되어 스스로가 교육자라는 인식을 갖고 교육의 장에서 함께 호흡해야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들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목차>

들어가는 말 : 윌 듀런트가 남긴 마직막 유언

제1장 문명이란 무엇인가

제2장 공자와 추방당한 신선

제3장 붓다에서 인디라 간디까지

제4장 피라미드에서 이크나톤까지

제5장 구약성서와 철학과 시

제6장 페리클래스에 이르는 길

제7장 아테네의 황금시대

제8장 플라톤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제9장 로마 공화국

제10장 로마의 혁명

제11장 로마제국(기원전27년-180년)

제12장 네로와 아우렐리우스

제13장 인간 그리스도

제14장 기독교의 성장

제15장 르네상스 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중심으로

제16장 르네상스 / 로마

제17장 르네상스 Ⅲ/ 베네치아의 일몰

제18장 종교개혁 Ⅰ/ 위클리프와 에라스무스

제19장 종교개혁 Ⅱ(1517년-1555년)/ 루터와 공산주의자들

제20장 카톨릭 종교 개혁(1517년-1563년)

제21장 셰익스피어와 베이컨

옮긴이의 말 귀 있는 이여, 들어보라

 

지음 / 안인희 옮김 / 황금가지 / 2002>

 

*저자에 대하여*

윌 듀런트(Will Durant)는 매사추세츠 주 노스 애덤스에서 프랑스계 캐나다인으로 태어났다. 그는 1917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얻고 이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1935년부터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철학 교수로 재직했다. 스스로 ‘역사를 쓰는 철학자’라고 칭하는 그는 <역사이야기>,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쓴 11권의 <문명이야기> 등 대중계몽적인 저서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도 듀런트를 세계적인 저술가로서 유명하게 만든 것은 <철학이야기>이다. 이 책을 위해 11년간 준비했고 집필기간도 3년이 넘었는데 출판되자 마자 미국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단 기간 내에 세계의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흥미있고 유익한 철학 입문서로 정평을 얻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 존듀이는 그의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종래의 철학 저술은 너무나 전문적이어서 상당히 교양있는 사람들도 읽기 어려웠다. 그러나 듀랜트는 철학자의 사상을 일반 사람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게 했다.”

윌 듀런트는 생애의 마지막까지, 역사 과목을 위한 경이로운 입문서가 될 <역사속의 영웅들>에 새로운 자료를 첨부하였다. 처음 그는 이 책을 23개의 장으로 구성하려 했지만, 운명은 21개의 장에서 이 책을 끝맺게 하였다. 그가 스물한 번째 장을 완성했을 때 그의 아내 아리엘이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1981년 말 듀런트 자신도 심장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1981년 10월25일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13일 만인 11월7일, 그의 심장도 멈추었다. 이 책을 마지막으로 그의 아흔 여섯 생애를 마감하였다.

 

저자가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자신의 인생론을 담은 책을 쓰는 열정을 지니고 있었고, 그 열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기력이 그때까지도 남아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도 물론 아흔 두 살에 자신이 나이가 들어 작업을 완성할 능력에 대해 두려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한계에서 오는 그런 두려움들을 독자들에게 흥미와 이익을 전달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이겨냈다. 그가 가정을 이루고 자신과 관심사가 같고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와 일생을 함께하여 저작활동을 했다는 것은 부러움을 더하게 한다.

자신이 쌓은 지식을 남에게 과시하려는 목적이 아닌 대중들에게 자신의 앎을 풀어내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였고 실제로도 성과를 내었다는 점 또한 부럽다.

그는 삶과 철학을 같은 맥락으로 인식하고 있던 것 같다. 우리의 삶의 태도를 현실의 특정한 부분을 향해 이끌어가는 광범위한 전망을 철학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철학의 한 부분이 역사인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잘 인식하면 현재의 역사를 잘 다룰 수 있게 되어, 자신의 역사를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고 그것이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데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의 나열이나 공허한 이론이 아닌, 저자 스스로가 경험한 삶의 통찰이 그의 저작들에 모두 녹아있음을 그의 생동감 넘치는 언어를 통해서 알 수가 있다. 이러한 듀런트의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신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내마음에 무찔러드는 글귀*

p.10 내게 있어서 역사란 철학의 한 부분이다. 철학은 광범위한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삶과 현실의 광범위한 전망을-당신의 태도를 현실이나 삶의 특정한 부분을 향해 이끌어가는 광범위한 전망 말이다.

p.10 역사는 시간 속의 사건들을 탐구함으로써 철학적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허락해 주신다면 결론적으로 나는 자신이 역사를 쓰는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p.12 그는 명성보다는 명료성을 위해 싸운 철학자였다. 눈부시고 힘찬 산문으로 글을 썼으며, 또한 인류는 충분한 영감을 받기만 하면 신들과 동일한 위대성의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여겼던 사람이다.

p.13 미래 세대의 도덕적 함양과 이익을 위해 과거의 유산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

p.15 인류 역사는 생물학의 단편(斷片)이다. 인간은 수없이 많은 종들 중의 하나이고,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한 싸움과 살아남기에 가장 적합한 존재들의 경쟁에 종속된다. 심리학, 철학, 정치적 능력 그리고 이상향들은 이 생물학 법칙과 화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p.19 이 복잡한 도덕적 규범은-우리 천성에 맞지 않고 <하지 말라>는 말로 우리의 비위를 거슬리는 것이긴 하지만-오늘날 다시 황폐해지고 있는 다섯 가지 특별한 제도를 통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었던가? 가족, 교회(종교), 학교, 법, 대중의 의견(여론) 등이 이 복잡한 도덕규범의 형성을 도왔다.

p.20 공동체 생활은 이렇게 보호해 주는 사회 질서의 우산 아래에서 확장되었다. 문학이 번성하고 철학이 발전하며 예술과 과학이 성장하고, 역사가들은 국민과 종족들이 남긴 위대한 업적을 기록하였다. 남자와 여자는 천천히 절제, 친절과 예의, 도덕적 양심과 미적 감각 등을 발전시켰다. 이런 것들은 만질 수는 없어도 소중한 우리 유산의 은총이다. 문명이란 문화적 창조를 격려하는 사회 질서다.

p.21 역사상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연속 장면의 한 가지는 이교적인 방종의 시대에 이어 청교도적인 억제와 도덕적 규율의 시대가 뒤따라온다는 것이다.

p.22 여전히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 생명의 흐름을 이끌어온 것은 평범한 가족의 건강함과, 남자들과 여자들의 노동 그리고 사랑이다.

p.22 이 소란스럽고 더러운 강 위에, 부조리함과 고통 한가운데에 진짜 신의 도시가 감추어져 있다. 이 도시에서는 과거의 창조적 정신이 기억과 전통의 기적에 의해 아직도 살아서 작용하고 모습을 다듬고 형태를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거기서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와 함께 철학을 가지고 논다. 셰익스피어가 매일 새로운 보물을 가져온다. 키츠는 아직도 나이팅게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셸리는 서풍(西風)에 실려 떠다닌다. 니체가 거기서 미친 듯 떠들어대며 폭로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빵을 함께 나누자고 우리를 부른다. 이들과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그리고 그들이 가져다준 선물이 인간 종족의 엄청난 유산이다. 씨줄과 날줄로 짜인 역사라는 피륙(천)을 이어가는 황금의 혈통이다.

p.23 우리에게 도전해 오는 악을 향해 눈을 감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용기를 잃지 말고 그들을 가르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업적과 우리가 물려받은 장엄한 유산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묘사한 불행한 왕을 변조해서 우리 여기에 앉아 고귀한 여자들과 위대한 남자들의 용감한 이야기들을 나누기로 하자.

p.26 <사람들은 짐승과 같았다. 몸에 두른 옷이라고는 자신의 가죽뿐이고 날고기를 먹고 어미는 알지만 아비는 알지 못하였다.> 아니면 오늘날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런 것이다. <밍크 코트를 입고 덜 익힌 스테이크를 좋아하고 남자들은 공짜 사랑을 즐겼다.>

p.28 노자에 따르면 올바른 길이란 지적 활동 및 거짓을 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이나 옛날 관습, 사고와 조화를 이루어 고요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p.29 자연이란 자연의 활동성이며 전통적 사건의 흐름이고, 계절과 하늘의 웅대한 행진이며 질서다. 그것은 모든 시내와 바위와 별에 새겨져서 드러나는 <길〔道〕>이다. 그것은 공평하고 인간적이지 않으며 합리적인 사물의 질서다. 우리가 지혜를 지니고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면 행동의 법칙은 바로 이 질서를 따라야 한다. 이 사물의 법칙은 바로 우주의 도(道), 즉 길이며 행동의 법칙은 삶의 도, 즉 길이다. 노자에서 두 질은 하나가 된다. 탄생, 삶, 죽음의 리듬을 지닌 인간의 삶은 우주 리듬의 일부다.

p.29 자연에서 모든 사물은 소리 없이 작용한다. 이들은 존재 속으로 들어오지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 기능을 모두 완수하지만 아무런 요구도 없다. 모든 사물은 똑같이 자기 맡은 바 일을 다하고 물러난다. 사물은 절정에 도달하면 무두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원래 온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휴식, 혹은 사명의 완수를 뜻한다. 이런 귀환은 영원한 법칙이다. 이 법칙을 아는 것이 곧 지혜이다.

p.30 성숙하고 고요한 마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심지어 도(道)와 지혜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지혜란, 말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모범과 경험으로만 전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p.33 그의 기본 철학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널리 교육을 펼쳐서 도덕성과 사회 질서를 회복한다는 것이었다.

p.34 완전성에 대한 권고이며, 인간이 바지 입은 원숭이라는 사실을 잊은 권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독교처럼 이것은 추구할 목표와 올라갈 사다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철학에서 황금률의 하나이다. 곧 개혁은 집(가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p.39 물결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이 기분! / 나는 노란 학을 타고 하늘을 나는 신선보다 행복하고/ 하릴없이 갈매기 뒤를 따르는 하백(河伯)처럼 자유롭다./ 붓을 들어 휘갈기니 다섯 산이 흔들린다./ 시는 완성되었다./ 내 마음껏 웃으니 내 즐거움이 바다보다 쿠구나./ 오 불멸의 시(詩)여!/ 초(楚)나라의 왕궁과 탑들은 언덕에서 무너져 내려도/ 시인 굴원의 노래들은 태양과 달처럼 영원히 빛난다.

p.40 죽음과 양식(樣式)처럼 혁명이 쓰레기를 제거하고 불필요한 것을 도려 낼 것이다. 많은 것들이 죽어야 할 순간에 혁명이 나타난다. 중국은 전에도 이미 여러 번이나 죽었다. 그리고 여러 번이나 다시 태어났다.

p.46 고행을 통해 생겨났을지도 모르는 성스러움을 고행에 대한 자부심이 더럽히고 있었다.

p.48 욕심에 시달리는 우리의 자아는 실제로는 분리된 존재나 힘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강물 위에 이는 순간적인 잔물결이고, 바람에 날리는 운명의 올가미 속에 얽혔다 출어졌다 하는 작은 매듭일 뿐이다. 우리 자신이 전체의 일부라는 것을 본다면, 전체의 틀 안에서 우리 자신을 개선하고 우리의 소망을 바꾼다면, 우리의 개인적인 실망과 패배, 비탄과 고통, 피할 수 없는 죽음 등이 더는 이전처럼 우리를 슬프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무한성의 넓이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의 분리된 자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면 마지막에 우리는 해탈, 곧 이기적이지 않은 평화를 찾을 것이다.

p.50 맞는지 말해주세요, 내 사랑, 이것이 맞는지요.

내 두 눈이 당신 가슴속 어두운 구름을 환하데 비칠 때 폭풍 같은 대답을 해주어요.

내 입술은 첫사랑으로 벌어지는 꽃봉오리처럼 달콤한가요?

사라져버린 여러 5월의 추억이 내 사지에 남아 있나요?

내 발이 건드린 자국으로 대지는 하프처럼 노래를 만들어내나요?

내가 나타난 밤의 눈에서 이슬방울 떨어지고, 아침빛이 내 몸을 휘감을 때 그 빛은 정말로 기쁨을 느끼나요?

당신 사랑이 나를 찾아 수많은 세월 수많은 세계를 떠돈 게 맞나요, 그것이 맞는지요?

당신이 마침내 나를 찾아냈을 때 수많은 세월 품었던 당신의 소망이 내 부드러운 말소리와 내 눈과 입술, 향기로운 머리에서 최고의 평화를 얻었다는 것이?

무한의 신비가 나의 이 작은 이마에 쓰여 있다는 말이 맞나요?

말해 주세요, 내 사랑, 이 모든 것이 정녕 맞는 말인가요?

p.59 피라미드에는 야만적으로 원시적인 요소가 있다. 그토록 난폭하게 엄청난 트기를 만들어낸 일과 영원성을 향한 공허한 갈망이 그것이다. 역사에 의해 부풀려진 채 이들 건축물을 위대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마도 구경꾼의 추억과 상상력일 것이다. 분명 사진은 이집트 건축물을 지나치게 고상한 것으로 만들었다. 사진은 흙먼지 말고는 무엇이든 다 잡아낼 수 있고, 대지와 하늘의 고귀한 원경을 이용해 인간이 만든 건축물을 웅장하게 만들 수 있다. 기자의 일몰이 피라미드보다 더 위대하다.

p.70 살아 있는 신성(神性)의 개념으로 모든 사물을 살아나게 만드는 창조적인 힘이다. 태양신의 열기는 생명의 따뜻함이고 사랑의 열정이다.

p.73 이 책의 의도는 문명의 역사를 한정된 지면에 요약해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에 의해 남겨진 사상과 표현의 걸작을 탐구하고 그 예를 살펴보는 것이다.

p.77 유대인들은 뒷날 불운을 겪을 때면 <메시아>를 갈망하였다. 메시아란 다윗의 후손 중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는 말로 그가 다윗 왕이 통치하던 시대의 영광과 행복을 다시 만들어낼 것을 소원한다는 뜻이었다.

p.80 이사야는 괴로워하지만 절망하지는 않는다. 그는 유대인들의 메시아사상의 위안을 보여준다. 미래에 구원자가 나타나 박애와 평화의 시대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위로해 준다.

p.83 이 중 레위기에는 가장 위대하고 가장 대담하고 가장 간결하게 기독교 윤리가 표현되어 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19장 18절)

p.85 우리가 누구기에-순간의 안개 속에 있는 티끌들-우주를 이해하겠는가? 철학은 전체의 빛 속에서 부분을 탐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주 큰 전체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이 그 최조의 교훈이다. 부분과 전체의 조화라는 것은 아마도 건강, 아름다움, 진실, 지혜, 도덕성, 행복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가 될 것이다.

p.86 하느님과 그리고 우주와 화해하라. 또한 사랑으로 너의 삶을 밝게 만들어라.

p.91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은 에고를 가장 많이 넓혀주고, 살아 있고, 평화로운 모든 것들에 대해 마음과 팔을 활짝 여는 일이다. 영혼이 행복하면 그 사랑도 커진다.

p.93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은 어디서 왔는가? 그들은 사방에서 왔다. 서아시아, 에게해의 섬들, 크레타, 이집트, 발칸 반도 그리고 일부는 <스키타이(곧 남부 러시아)>에서 온 사람들이다.

p.95 두 가지 생각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변화가 보편적이라는 것과 에너지는 파괴할 수 없이 영속한다는 생각이었다.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것은 언제나 현재의 존재이기를 중지하고 새로운 다른 것으로 된다. <모든 것은 흘러간다> 그리고 <흐르는 강의 동일한 물속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쉬지 않고 중지하지 않는 <과정>이다.

p.99 <코스모스>란 질서라는 뜻이고, 이것이 피타고라스의 핵심적인 단어이다. 우리의 소망이 질서를 이룬 것 그리고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질서를 이룬 것이 곧 미덕이다. 그리고 국가 안의 질서가 유지되면 그것이 곧 올바른 정부이다.

p.102 그들의 종교는 그들의 애국심이 그렇듯 주로 도시와 조시를 둘러싼 시골에만 미칠 뿐 올림피아 산을 넘어가지는 못하였다. 그들은 동맹 체제를 이루었을 뿐 하나의 국가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통일 페르시아가 도전 하였을 때 그들은 하마터면 자유를 잃어버릴 뻔했다. 각각의 지역적 자유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다.

p.107 <나는 항상 배우는 가운데 나이가 들었다.>

p.111 한 국민의 역사에서 정치 지도력, 예술, 과학, 철학, 문학, 종교, 도덕 등이 책의 여러 페이지에 흩어져서 각기 따로따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색상을 지닌 하나의 직물로 짜여져 나타난 시대였다.

p.113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관습을 인구 과다에 대한 공포심 탓으로 돌렸다. 이것은 아마도 유럽이 동방에서 받아들인 유산의 일부였을 것이다. 이런 관습은 여성을 발전에서 격리시켰다. 시장(아고라), 체육관(김나지움), 레슬링 학교(팔라이스트라) 등에서 보내는 아테네생활은 젊은이들에게 오직 남성적인 생활 방식만을 보여주었다. 미술조차도 페리클레스보다 100년 뒤에 오는 프락시텔레스 이전에는 여성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표현하지 않았다.

p.125 고전적인 것에 경탄하고 낭만적인 것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에우리피데스가 더 좋다.

p.131 황금시대는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더불어 끝났다. 아테네는 몸과 영혼이 다 지쳤고, 한 세대 동안이나 계속된 싸움을 통해 품성이 타락한 것을 느꼈다.

p.132 아낙사고라스는 추방되었고 소크라테스는 사형 당하였지만 철학에 주어진 자극은 다음 60년 동안 아테네를 자극해서 뒷날 여러 세기 동안 유럽에서 번성할 사상 체계를 만들어냈다.

p.132 아테네는 패배의 절망을 딛고 굳건한 힘으로 새로운 부와 문화와 힘을 만들어냈다. 도시국가 아테네의 삶의 가을은 아름다웠다.

p.144 기원전 356년 에페소스에 지어진 아르테미스 여신의 세 번째 신전도 이 일곱 기적에 포함된다. 50년 동안의 작업을 통해 세워진 이 신전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큰 신전이 되었다. 처녀 신은 그곳에서 그리스 사람들에 의해 아르테미스로 숭배되었고, 이어서 로마 사람들에 의해서는 디아나로, 기독교도에 의해서는 성모 마리아로 숭배되었다. 역사는 신문과 마찬가지로 이름과 날짜는 바뀌어도 사건은 언제나 똑같다.

p.147 아테네의 가장 유명한 철학자가 자유에 대해 그토록 할 말리 적게 되었을 때 철학은 새로운 종교를 위해 무르익은 것이고 그리스는 새로운 왕을 위해 무르익었다.

p.148 플라톤과는 더불어 논다면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더불어 일을 해야 한다.

플라톤의 인기 있는 <대화>들은 살아남아 우리를 즐겁게 하고 기술에 관련된 그의 논문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진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기 있는 작품들은 사라지고 오로지 기술에 관련된 논문들만 남아서 그 집중된 가르침의 대가로 힘든 주목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농담 중 하나이다.

p.150 행동의 목적은 행복이지만 행복의 비결은 미덕에 있다. 그리고 최고의 미덕은 지성이다. 이것은 현실, 목표, 수단에 대한 조심스런 관찰이다. 통상적으로 <미덕>이란 두 극단 사이에 있는 황금의 중간(황금률)을 뜻한다.

p.155 정력이란 천재의 절반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통제의 능력이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는 온통 정력이었다.

p.161 로마 사람들의 가장 깊은 경건함과 가장 진지한 숭배는 생명의 어머니이고, 죽은 자들의 고향이며 솟아나는 씨앗 속에 감추어진 마법의 힘인 대지를 향하였다.

p.172 이렇게 합쳐진 고전 세계의 유산이 자라 로마의 도로들과 알프스의 산을 넘어 북유럽으로 건너갔고, 여가 시간이면 당신과 나에게도 넘어와 있다.

p.176 생명은 자유로이 간직하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임시로 빌린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그것을 잘 이용해야 한다. 우리의 힘을 다 쓰고 나면 우리는 잔칫상에서 일어나는 손님처럼 우아하게 감사를 표시하면서 생명의 식탁을 떠나야 한다.

p.176 죽음 자체는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오직 저승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 죽음을 두렵게 만든다. 그러나 저승이란 없다. 지옥은 이승에서 고통을 받는 것으로, 그것은 무지, 정열, 싸움을 좋아함, 욕심에서 온다. 천국은 이승의 <현명한 사람들의 평화로운 신전>에 들어 있다.

p.176 <인간의 진정한 부는 마음의 평화를 지니고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p.179 이 책을 읽는 당신은 깨어 있는 섬세한 정신의 소유자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이야기에서 지난 백 년 동안의 우리 역사와 비슷한 점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호라티우스는 이렇게 표현하였다. <이것은 당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p.187 <그가 유일하게 신경을 쓰는 것은 지혜와 용기에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능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p.189 그는 부지런해서 자신의 비명(碑銘)을 구술해 놓았다. <내게 봉사한 어떤 친구도, 내게 못된 짓을 한 어떤 적도 내가 충분히 보상해 주지 않은 경우란 없다.>

p.195 우리는 카이사르가 처음에는 무자비한 선동가이며 거침없는 난봉꾼이었다가 책임감에 의해 천천히 역사상 가장 신중한 정치가의 한 사람으로 변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의 결점을 보고 좋아하더라도 그가 위대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p.200 기원전 49년 1월 10일에 그는 1개 군단을 거느리고 알프스이남 갈리아의 남쪽 경계선을 이루는 작은 루비콘 강을 건넜다. 그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행군해 가는 도로변의 도시들은 하나씩 그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어떤 도시들은 떼를 이루고 그를 환영하였다. 키케로는 이렇게 썼다. <도시들은 그를 신처럼 환영하였다.>

p.202 그러나 이 위대한 정치가는 허영심을 이기지 못하였다. 승리했을 때 머리에 썼던 월계관을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일상에서도 매일 썼다.

p.212 로마의 평화 시대에 제국의 모든 부분은 상품과 사상을 수출하고, 가장 최근의 유행과 신앙을 수입할 수 있었다.

p.215 삶과 철학을 연구하라. 연구와 이해가 없는 완전한 양식이란 너무 약해서 사용할 수 없는 공허한 빈 그릇과 같다.

p.217 요크에서 바알베크과 카디스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에서 그의 말이 곧 법이 되었던 남자는 평생 겸손하고 단순한 삶을 살았다. 그는 부의 사치와 관직의 보수를 멀리 하고 집안 여자들이 짠 단순한 옷을 걸치고 전에 웅변가 호르텐시우스의 궁전 작은 방에서 잠을 잤다.

p.217 아우구스투스는 겉치레가 없는 사람이어서 어떤 갈리아 사람이 그를 죽이러 왔지만 그가 황제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p.219 <나는 내 맡은 역을 다하였으니 여러분이 손뼉을 쳐서 박수로 나를 무대에서 쫓아내 주시오.>

p.230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는 원로원에 의해 피우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는 옛날 로마 공화국 시절 귀하게 여기던 미덕들을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즉 자식으로서의 헌신, 애국심, 친구들에 대한 성실함, 시간과 지갑의 너그러움 등을 고루 갖추었다.

p.233 다뉴브 강을 따라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이따금 전투가 멎는 틈을 이용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명상록』이라고 알려진 작은 책을 그리스어로 집필하였다. 원래는 <그 자신에게>라는 제목 이었다. 맨 처음의 것과 맨 마지막의 것들에 대해 삶에서 얻은 결론들을 요약하고 있다. 그는 공식적인 로마의 신앙을 잃어버렸고 동방에서 온 새로운 어떤 신앙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질서의 표지와 형태들은 너무나도 많이 보았기에 어떤 신비로운 지적 존재가 우주에 개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든 것은 보편적 이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그는 느꼈다. 그것은 우주 전체에 내재된 논리이다. 각각의 부분은 자신의 소박한 운명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의 평정>(안토니우스의 최후의 암호)이란 <보편적 자연(본성)에 의해 너에게 할당된 것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모든 것은 <나와 조화를 이루고 그대 우주(전체)와 조화를 이룬다. 나에게 있어 그 어떤 것도 너무 빠른 것도 너무 늦은 것도 없으며 그것은 그대 우주(전체)에 적합한 시간이다.>

p.234 정말로 선한 사람은 불행에 대해 면역력이 있다. 어떤 재앙이 덮쳐도 그의 영혼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논리나 배움이 아니라 이해와 받아들임이다.

죽음에 대해서도 그것을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일로 받아들여라.

p.238 우리는 예수 탄생의 장소와 시대를 느끼려 해보아야 한다. 자신들을 흡수한 로마 제국에 대해 그의 나라와 민족이 가졌던 관계, 정복당한 민족의 고통 그리고 종교, 법, 문학, 철학 등의 자랑스런 유산, 해방을 향한 정영적인 희망, 또한 자유와 정의와 영광의 제국이 도래할 것에 대한 그들의 꿈을 느껴야 한다. 이런 요소들 모두가 함께 민감하고 이해심 깊은 정신에 작용해서 목수 아들을 이루었고 그를 십자가형으로 이끌고 갔다.

p.242 그에 대한 믿음이 그들에게 강장제가 된 것이다. 신앙을 가지고 그를 건드리면 약한 사람들은 힘을 얻고 병든 사람들은 나았다. 우리는 강하고 신념을 가진 여자나 남자의 생각과 의지 속에 들어 있는 힘에 대해 어떤 한계도 둘 수 없다.

p.245 그의 업적은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덕성의 윤곽을 드러냈다는 점에 있었다. 그의 윤리 법전은 하느님의 나라가 일찍 다가올 것을 예언하고, 사람들을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덟 가지 복은 겸손, 온화함, 평화를 전례 없이 드높이고 있다. 다른 뺨도 내밀라는 충고, 경제적 공급, 부, 통치 등에 대한 무관심, 결혼보다 독신 생활을 더 높이 여기는 태도, 가족과의 유대를 포기하라는 명령……. 이런 그의 생각은 가족생활이나 사회적 질서를 위한 규칙은 아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아 눈앞에 닥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남자와 여자를 수도원 생활 방식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그 나라에는 법도, 결혼도, 성관계도, 부(富)도, 전쟁도 없다.

p.250 본디오 빌라도는 이 온화한 태도의 설교자가 정말로 국가에 위협이 된다고 여겼을 것 같지는 않다. <네가 유대인의 왕인가?> 그가 물었다. 마태오에 따르면 예수는 <그것은 네 말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요한복음은 예수가 이 말에 이어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다>고 말하였다. <진리란 무엇인가?>하고 총독이 물었다. 복잡하고 시니컬한 로마의 문화와 유대인의 충직한 이상주의 사이에 놓인 깊은 차이를 보여주는 질문이었다. 빌라도는 못마땅해 하면서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p.257 바울로는 <이방인을 향한 사도> 자격으로 전도 여행을 계속하였다. 그는 에베소(에페수스)에서 아테네와 로마까지 복음을 전파하였다. 위대한 종교의 운명은 한 순간이 한 사람 바울로에게 달려 있었다.

p.265 국가와 교회는, 그들 생각에 사람들이 도덕적, 정치적 무정부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법과 도덕의 복합적인 구조를 무너뜨리려 하는 이단자들에 대한 무시무시한 공격에서 서로 힘을 합쳤다. 위기에 몰린 정부는 거의 모든 종교 재판 관청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국가에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의견이나 행동에 대해 종교 재판과 동일한 형벌을 내렸다.

자유는 안전이 만들어내는 사치품이다.

p.272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혜를 향한 첫 번째 열쇠는 자주 부지런히 질문하는 것이다. ……의심을 통해 우리는 탐구에 이르고, 탐구를 통해 진리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학」에서 그는 오직 기독교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비이성적인 것이라 해서 거부하였다. 그는, 신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주신다고 주장하였다. 이단은 폭력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억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p.273 그녀는 1164년 그와 같은 나이가 되어 그와 비슷한 명성을 얻은 다음 애인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위로해 주시는 성령의 뜰 안의 그의 곁에 묻혔다.

p.275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가 널리 퍼지고 부유해지면서 강해졌다. 또한 세속적 영향력을 높인 것과, 파괴적인 개인주의와 정치적 술수와 회의적 지성에 의해 약해졌다. 교회는 화려함과 영향력을 놓고 대성당들과 힘을 겨루는 대학의 발전에 역동적으로 참여하였다. 교회는 대부분의 교사들을 공급하고 훈련시켰으며, 종교의 의상으로 그들의 권위를 높였다. 그러나 점차 이들 선생들은 믿음과 종교적 경력보다는 지식과 세속적 출세를 추구하게 되었다.

p.275 중세의 영혼은 자라나는 세포처럼 두 가지 역사적 유기체로 발전하였다. 남부 유럽에서는 고전적, 에피쿠로스적, 이교적 르네상스이고, 북부 유럽에서는 초기 기독교적, 스토아적, 청교도적 종교 개혁이다. 중세의 영혼은 이제 두 개의 강력한 문화가 되었다. 그들을 통해 문명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중세의 역사적 업적은 완성되었다.

그 죽음이 곧 그 완성이었다.

p.286 공공사업과 자선사업에 엄청난 기부를 하였기에 민중은 피렌체의 정치에서 그의 간접적인 독재를 말없이 받아들였다.

p.286 역사도 그를 승인해 준다. 그가 넉넉한 돈을 투자해서 많은 학자, 예술가, 시인, 철학자, 등을 후원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재산의 일부를 들여 고전 텍스트를 수집하였다.

p.287 마음을 명랑하게 하는 플라톤의 정신이 기운을 북돋우는 효모처럼 새로 일어서는 유럽 사상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p.295 메디치와 다른 피렌체 집안들이 너그러운 후원을 해준다는 명성에 이끌려 학자들은 피렌체로 몰려들었고, 이 도시를 문학 수업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이런 경쟁의 지적인 유산을 발전시키고 물려주기 위해 로렌초는 오래된 피사 대학과 피렌체에 있는 플라톤 아카데미를 복구하고 더 크게 만들었다.

p.296 그의 열렬한 정신은 탐구를 계속하였다. 문학, 철학, 건축, 음악 그리고 이 모든 분야에서 두드러진 탁월성을 보였다. 폴리치아노는 그를 보고 내면에 자연이 주는 모든 선물을 모아놓은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서술하였다.

p.297 그는 서방의 모든 위대한 종교-유대교, 기독교, 회교-들을 화해시키고 이들을 다시 플라톤과, 플라톤을 아리스토텔레스와 화해시키는 일을 고귀한 의무라고 여겼다. 모든 사람이 그에게 아첨을 하였지만 그는 짧은 생애의 마지막까지 매력적인 온건성을 지켰다. 오직 배움의 정확성과 인간 이성의 힘에 대한 순진한 믿음의 영역에서만 과격성을 띠었다.

p.298 인간은 자기가 되고자 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이것은 신의 최고의 선물이요, 인간이 받은 최고의 놀라운 축복이다. 짐승은 어미의 몸에서 나올 때 제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최고의 정신(천사들)은 시작부터 영원히 지속되도록 만들어진 존재이다. 하느님 아버지는 인간에게만 탄생의 순간부터 모든 가능성과 모든 삶의 씨앗을 주셨다.

p.301 그의 때 이른 죽음 소식이 피렌체에 전해지자 도시 전체가 슬퍼하였고 심지어는 로렌초의 적들까지도 그의 손길이 없어진 지금, 피렌체의 사회 질서 혹은 이탈리아의 평화가 어떻게 유지될까 걱정하였다. 유럽은 그가 위대한 정치가였음을 인정하고 그 시대의 특징적인 성격이 그의 안에서 구현되어 있다고 여겼다. 그는 폭력을 싫어했다는 점을 빼고는 모든 점에서 <르네상스의 인물>이었다.

p.307 그는 너무 빨리 한 가지 일이나 주제에서 다른 것으로 넘어 갔다. 그는 너무 많은 일들에 관심이 있었다. 그에게는 하나의 통합하는 목표, 주도하는 이념이 없었다. 이 <보편인(universal man)>은 빛나는 부분들을 이어 붙여놓은 사람이었다. 그는 너무 많은 능력들을 지녔기에 그들을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p.308 그의 기본 원칙은,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은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그대로 베끼기보다는 자연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 화가여, 보라, 그대가 들판에 나가거든 여러 사물에 주의를 돌리고 차례로 하나씩 자세히 바라보고 별 가치가 없는 것들 중에서 여러 가지를 골라내라.> 물론 화가는 해부학, 원근법, 명암의 배치 따위를 탐구해야 한다. 윤곽선을 예리하게 강조하면 그림은 나무토막처럼 보인다. <언제나 인물이 그 머리를 가슴과 같은 방향으로 향하지 않게 만들라.> 레오나르도 자신의 작품에 나타나는 우아함의 한 가지 비밀이 이것이다.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물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게 만들어라.> 그는「모나리자」를 그릴 때 이 원칙을 잊었던 것일까? 아니면 여주인공의 눈과 입술에서 그 영혼을 읽어내는 우리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것일까?

p.310 예측할 수 없던 3년 동안(1495년-1498년)의 느린 작업 속도 때문에 공작과 수도사들이 안달이 나 있는 동안 레오나르도는 작업을 이었다 끊었다 하면서 계속하였다. 수도원장은(바사리의 말을 믿어도 된다면) 공작에게 가서 레오나르도의 게으름을 불평하면서 그가 어째서 때로는 몇 시간씩 붓질 한 번 안하고 그림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레오나르도는 아무 문제없이 공작에게 설명하였다. 공작은 수도원장에게 설명하지 못하였다.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일은 실행이 아니라 구상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바사리가 덧붙인 말에 따르면) <천재적인 사람들은 일을 가장 적제 할 때 가장 많이 일한다>.

p.317 미술가의 일에서 과학자의 일이 만들어져 나왔다. 그림은 레오나르도에게 해부학, 비율과 원근법, 빛의 구성과 반사, 물감과 오일의 화학 등을 탐구하도록 만들었다.

p.320 그는 르네상스의 어떤 화가 보다 더 자유롭게 그리스도의 초상화를 다루었다. 후광을 빼고, 성모가 자기 어머니의 무릎에 걸터앉게 하고, 아기 예수는 상징적인 양에 올라타려 애쓰게 만들었다. 그는 물질에서 정신을 보았고, 영혼을 믿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영혼은 오로지 물질을 통해 그리고 변경시킬 수 없는 법칙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구절에서는 겸손과 열렬함으로 신에게 말하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신을 자연, 자연의 법칙, <필연성>과 동일시하였다. 마지막까지 신비적인 범신론이 그의 신앙이었다.

p.321 <하루를 잘 보내면 그 잠이 달다. 그렇듯이 인생을 잘 보내면 그 죽음이 달다.>

p.322 그는 <르네상스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토록 강하고 격하던 시대를 대표하기에는 말과 행동이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내성적이고 섬세하였다. 그리고 <보편인>도 아니었다. 그의 다양성 안에는 정치가나 행정가의 자질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와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르네상스 그리고 아마도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풍요로운 사람>이었다. 그의 업적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원천으로부터 한 사람이 왔었다는 것, 그가 인류의 가능성에 대해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해주었다는 사실에 경탄하게 된다.

p.332 한두 가지 잘못을 두고 법석을 떨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교황의 비호를 받는 가운데 젊은 기독교도는 갑자기 모든 이교도들을 한 곳에 모았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의 이해력과 공감을 가지고 그들을 원래의 특성대로 그려놓았다. 신학자들이 그들을 바라보면서 서로 오류의 가능성을 나눌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교황은 두 기록 사이에서 인류의 사색의 협조적인 과정과 창조를 명상할 수가 있었다.

p.340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다른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문명이란 소수의, 소수에 의한, 소수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원래의 정당성을 넘어 과대하게 찬양하는 것이 될 것이다.

p.350 겨우 13개월 동안 로마에서 지낸 다음 하드리아누스는 몸과 영혼이 다 무너져 병들어 죽었다(1523년 9월 14일).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남기고 조용하고 경비가 들지 않는 장례식을 고집하였다. 청교도적인 튜톤 출신 하드라이누스가 이교적인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래서 베드로의 돈을 지불하는 도이칠란트와 소비하는 이탈리아 사이에 다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p.362 베네치아의 삶은 정신보다는 그 무대가 더욱 매력적이다. 이 독재 국가는 유능하였고 역경에서 대단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때로는 잔인하였고 항상 이기적이었다. 이웃 국가들이 그렇듯이 베네치아는 자신을 이탈리아의 일부로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이렇게 분열된 나라에 어떤 정치적 비운이 닥칠 것인지 거의 걱정하지 않았다. 베네치아는 강력한 개성들을 발전시켰다. 자신감이 있고, 예리하고, 욕심 많고, 용감하고, 자부심 강한 인물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충분히 세련된 사람들이어서 화가들을 후원하였고, 이들 화가 들이 그린 초상화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인물이 1백 명 가량은 된다. 베네치아 문화는 피렌체와 비교하면 섬세함과 깊이가 없다. 밀라노와 로도비코 공작과 비교하면 정교함과 우아함이 없다. 그러나 베네치아 문화는 역사상 알려진 것 중에서 가장 색체가 화려하고, 값비싸고, 감각적으로 매혹하는 문화이다.

p.371 우리는 미켈란젤로에게 찬사를 바친다. 길고 고통스런 생애 동안 그는 계속해서 창작하였고, 미술의 모든 주요 영역에서 걸작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이 이른바 살과 피를 찢고 나온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의 정신과 마음에서 터져 나온 것으로 한 가지를 완성한 다음이면 그는 출산의 고통으로 약해진 시간을 견디곤 했다. 그것들이 수십만 번의 망치질과 끌과 붓을 움직여서 형태를 얻은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것들은 불멸의 주민처럼 하나씩 아름다움이나 중요성의 지속적인 형태들 가운데 자기 자리를 차지하였다.

p.371 우리는 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또한 악과 선, 고통과 사랑스러움, 파괴와 숭고함을 뒤섞은 듯이 보이는 우주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아기를 달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거나, 혼돈에 질서를, 사물에 의미를, 형태나 생각에 고귀함을 부여하는 지적인 의지를 보면, 우리는 세계의 이해할 수 없는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삶과 법칙에 아주 가까이 다가간 듯한 느낌을 얻는다.

p.388 교황국이 가장 찬란한 시대 하나를 맞고 있을 때 종교 개혁이 다가왔다. 콘스탄츠 공회의는 세 명의 교황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p.388 로마에 활기를 불어넣어 혼란스럽도록 성직자 천지로, 반항적이라 할 정도로 봉건적으로, 혹은 과격한 대중주의로 바꾸어 놓았다.

p.403 수많은 인자들과 영향들-교회 내부의 것, 지적, 감정적, 경제적, 정치적, 도덕적인 것들- 이 수백 년의 방해와 억압을 견딘 다음 하나의 회오리바람으로 뭉쳐져 야만인이 로마를 정복한 이후로 유럽에 가장 큰 전복을 가져올 참이었다.

p.404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힘의 급류를 형성하였다. 그것은 중세 관습의 딱딱한 표면을 깨고 모든 기준과 제약들을 느슨하게 풀고 유럽을 국민과 종족으로 흩어놓고 전통적인 신앙의 위안과 후원을 점점 더 없애버릴 힘이었다. 그리고 유럽인의 정신적, 도덕적 삶에서 기독교가 지배적인 역할을 해온 일의 종말이 시작된 것이기도 하였다.

p.414 루터는 역사상 거의 전례가 없는 방식으로 이 상황에 대응하였다. 그는 자신의 글을 출판해 줄 사람을 찾아냈다. 라틴어가 아니라 도이치말로 된 문서였다. 곧 <기독교 재산에 대해서 도이치 민족의 기독교 귀족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이다. 물론 당시 도이치 민족은 없었고 오직 도이치 제후국가들 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각 국가는 독립적이었고 각각의 관습, 법, 군대 그리고 자부심 등을 가졌다. 루터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어서 모든 도이치 사람들에게 말을 하였다.

p.421 나의 양심은 하느님 말씀에 따를 뿐이다. 나는 어느 것도 취소하지 않을 것이고 그럴 수도 없다. 양심에 거슬린다는 것은 옳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멘

p.422 신약성서는 성직자의 세속성. 사도들의 공산주의, 가난하고 억압받은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공감 등을 밝혀주었다. 이런 점에서 신약 성서는 이 시대의 과격파들에게는 진짜로 <공산주의 선언>에 해당하였다.

p.440 에라스무스는 놀라고 슬퍼하면서 유럽이 신학과 전쟁으로 찢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루터 반란의 초기 국면을 후원하였지만 그것이 유럽의 사회적 기둥의 하나인 카톨릭 교회의 붕괴를 가져오려고 했을 때 그로부터 멀어졌다. 그는 루터를 위해 길을 여는데 동참하였다. 그의 <어리석음 예찬>은 당시 유럽을 통해 수천부가 전파되면서 수도사와 신학자들을 비웃었고 루터의 둔중한 폭발을 위한 폭발 지점을 제공하였다.

p.449 테레사의 규칙은 명랑하고 단호하게 사랑하는 것이었다.

p.461-462 카톨릭이 아닌 학생들에 따르면 카톨릭 교회의 경영은 능률과 통합의 모범이 되었다. 어두운 고해실이 도입되어(1547년) 의무화되었다. 사제는 이제 고해자의 미모에 유혹을 받지 않게 되었다. 개신교와 자유 사상의 발전에 위축되는 대신 카톨릭 교회는 젊은이의 마음과 권력의 동맹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예수회의 정신은 -자신만만하고, 명확하고, 정력적이고, 규율이 있는- 군사적인 교회의 정신이 되었다.

p.463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영국은 르네상스(셰익스피어), 종교개혁(엘리자베스), 계몽주의(베이컨) 등이 하나로 합쳐진 천재와 역사가 폭발적으로 집약된 시대였다. 수많은 요인들이 이런 복합적인 결과를 위해 이바지하였다.

p.465 셰익스피어는 삶이 점차 약해지자 용서할 수 없는 고통과 비탄의 연속으로 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신앙을 잃어버린 것을 탄식하였다. 가장 고귀한 영혼이라도 결국은 망가진 꿈이 되고 만다. 이렇듯 신학이 생물학에 패배하는 것에 대한 원망이 그의 가장 위대한 희곡 몇 편을 어둡게 만들어 영국문학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가장 쓰라린 고발이 되었다.

p.466 영어권 세계의 모든 식자들은 셰익스피어가 쓴 37개의 희곡 모두 혹은 일부에 들어 있는 주제와 기쁨에 친숙하다. 그러나 때때로 그의 희곡 작품은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는 거의 잔혹한 시니시즘에 대해서는 거의 놀라움이 표현되지 않았다. 그 문체의 행복한 화려함 가운데로 거의 시니컬한 고통의 외침이 터져 나온다.

p.468 절정에 이른 희곡들에서 망설이는 認定이 나타난다. 이 세계의 악의 한 복판에 축복과 즐거움이 있다. 악당들 한가운데 영웅과 성인들이 있다.

p.472 프란시는 베이컨은 세익스피어와 얼마나 다른가. 감정은 지성에 종속되고 희망에 극복되고, 삶의 흥망성쇠는 미래의 인간 정신의 승리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전망 속에 파묻혔다.

p.479 엘리자베스 여왕은 성인이나 현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격한 기질과 정열을 지닌 여성으로서의 삶을 사랑하였다. 그녀의 국민 모두가 셰익스피어가 생각한 대로 <자기들이 심은 것을 제 집에서 편안히 먹고 즐거운 평화의 노래를 부른> 것은 아니었다. 청교도와 가톨릭 교도들은 상당한 정도까지 박해와 불리함을 겪었다. 그녀의 통치의 지혜는 부분적으로 측근들의 지혜였다. 그녀의 우유부단함은 변화하는 기회 때문이었지만 자주 행운으로 판명되었다. 때로는 이런 우유부단함이 정책상의 약점이 되어 적들의 내분으로 인해 살아남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는 성공적으로 살아남았고, 공정한 수단으로 혹은 정직하지 않은 수단으로 번영을 만들어냈다.

p.481 그는 명예 이외의 모든 것을 다 얻었다. 지위를 추구하면서 베이컨은 이따금 원칙을 희생시켰다.

p.483 정치에서 그는 생각은 자유주의자였으나 행동은 보수주의자였다. 또 다른 일이란 과학과 철학이었고, 이 분야에서 그는 <재능을 한데 모으라는 종을> 울리게 된다. 그리고 당당한 산문으로 이성의 혁명과 약속을 선포한다.

p.483 철학은 이미 오래 전부터 베이컨에게 있어서 비밀의 사랑이며, 가장 행복한 성향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직책으로부터의 피난처였다.

1610년 아이삭 캐소본에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 있다. <깊고도 참된 사색의 도움으로...인간의 삶의 질서를 더 낫게 만드는 것, 이것이 내가 목표로 삼는 일입니다.>

p.486 문학과 철학을 포함한 전체적이고 자유로운 교육을 옹호하고 목적에 대한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면서 아울러 과학적 방법의 증진을 동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p.487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지식은 단순히 뒤범벅이며 소화되지 않는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쉽게 믿는 태도, 수많은 우연 그리고 맨 처음에 흡수된 유치한 관념들로 이루어진 덩어리다.

p.489 베이컨의 생각에서 궁극적 목적은 과학의 방법을 인간 성격에 대한 엄격한 분석과 단호한 개조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정신에 대해 바다에 부는 바람과 같은 작용을 하는 본능과 감정의 연구를 촉구하였다.

p.490 베이컨의 지혜는 세속적이다...그러나 그는 때때로 결정론적 유물론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p.491 학문에 대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문을 도덕성에 종속시켰다. 학문의 확장이 자비심에 아무런 득도 가져오지 못한다면 인간성에는 아무런 이득도 없을 것이라 하였다.

p.492 그의 정치 철학은 이론보다는 상화에 따른 것이다.

p.494 그는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과학의 철학자였다. 그의 관찰의 범위는 무한하였다. 그러나 사변의 영역이 너무 광범위해서 특별한 탐구를 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는 어떤 일을 시도하기는 하였으나 결과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또한 자기 시대 과학의 진보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었다.

p.496 프란시스 베이컨은 그의 시대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이 있는 지식인이었다. 물론 셰익스피어는 상상력과 문학의 기술에서 그보다 뛰어났으며 지각과 사유의 섬세함에서도 그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베이컨의 정신은 탐조등처럼 우주를 돌면서 공간의 모든 구석과 비밀을 호기심에 넘쳐 살펴보고 있다. 르네상스의 즐겁고도 확장된 열광이 그의 안에 고스란히 있었다. 미친 듯이 신세계를 향해 항해해 나갔던 콜럼버스의 흥분과 자부심이 그대로 있었다.

p.498 우리는 프란시스 베이컨을 이성의 시대의 맨 앞에 자리 매김 할 수 잇을 것이다. 그는 후계자들 중의 일부가 그랬던 것처럼 이성을 우상처럼 숭배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실제 경험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사고를 믿지 않았고 소망으로 오염된 결론들을 믿지않았다....그는 모든 과학을 위하여 깃발을 들어올리고 그것을 다음 세기의 가장 열렬한 정신들에게 넘겨주었다.

p.501 여기서 역사는 영웅의 역사이다. 영우이란 역사상 위대한 정치가나 장군만이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와 예술가, 시인까지 포함한다. 이 모든 영웅들은 한결같이 위대함과 더불어 인간적인 약점을 지녔다. 듀런트는 이들의 위대성을 깍아 내리지는 않지만 슬그머니 미소를 띤 채 약점을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역사나 사실을 바라보는 이러한 냉정함이 우리에게는 낯설다. 우리는 서로 모순을 이루는 형용사를 얼른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위대하든 평범하든 상관없이 인간을 오로지 훌륭하게만, 또는 나쁘게만 서술할 수 있겠는가? 위대한 인물이 지녔던 인간적인 약점은 그 인물을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위대성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것이 아니던가? 이들이 지닌 약점을 보면 우리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고 허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위대했으며 마찬가지로 약점투성이인 우리 또한 위대해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p.503 죽기까지 인류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통찰을 계속했던 그 삶의 흔적을 만나고 그 깊은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우리 삶이 참으로 경이롭고 또 노년을 존경하는 마음이 뭉클 솟아난다.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저자의 의도대로 <역사의 예를 통해 가르치는 철학>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가 설정한 역사의 범위는 4대문명을 골고루 아우르고 있어, 그가 균형잡힌 시각으로 인류의 역사를 다루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역사서가 아닌 역사를 주도해간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 구체적인 역사의 전개를 보여주고 그속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철학적 지혜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특별한 점은 그 영웅의 모습이라는 것이 우리가 일반 역사서에서 접할 수 있는 그러한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 역사서에서 영웅의 일대기를 읽으며 ‘역시 영웅이라 다르군’이라는 감탄했다면, 이 책에서 영웅의 이야기를 ‘영웅도 사람이었군’이라는 미소를 자아낸다. 대중을 위해 쓴 역사철학서라는 말이 이 책에 딱 어울린다. 대중들이 책을 읽으며 역사를 이끌어간 영웅들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만나게 되고 영웅도 대중의 한 사람이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도 역사속의 영웅이 될 수 있겠다는 즐거운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지만, 다양한 철학적 이론의 인용, 원전에 의거하여 세심하고 명확하게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맹목적인 역사와 철학에 대한 수용이 아닌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역사철학서로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이야기들을 저자는 맛깔나는 자신의 입담으로 역사속의 영웅들을 인간미 넘치는 대중의 친구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책의 곳곳에 문학작품을 싣고 있는데 역사의 장면에서 영웅들이 노래한 시적인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독자들에게 더욱 친근하고 쉬운 역사철학서로 다가갈 수 있다. 또 영웅들이 시인, 정치인, 철학자 등 다양한 방면의 인간군상들을 보여주고 있어 역사를 이끌어간 사람들이 어느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다양한 개인에 의해서 문명이 발전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덧 나도 역사의 한 장면을 구성하는 개인으로 전체속의 부분이라는 인식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저자는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역사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아테네와 미국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역사란 고루한 과거의 유물이라고 인식되는 데,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우리 삶에서 재연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 과거에 대한 인식을 통해 현재의 양상을 파악하고, 현재의 모습을 애정을 갖고 관찰하면 미래에 전개된 역사에 대해서도 예측할 수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역사적 사실과 철학적 이론을 명확하게 전달하려고 하면서도 지루하고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는 그것들, 사이사이에 자신의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자신만의 언어로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저자와 함께 역사 여행을 한 기분이 들었다. 저자의 글 쓰는 능력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나는 <역사속의 교육자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써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교육사와 교육철학의 부분이 교육학 공부 중에 가장 지루한 부분이다. 그냥 역사적인 사실과 철학적인 이론을 나열한 책들만 가득하다. 그래서 몇 십년 전의 책이나 지금의 책이나 활자모양만 달라졌지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내용 구성을 그대로이다. 과거의 교육이나 현재의 교육은 당연히 유기적으로 관련되어있다. 과거의 교육에 대한 인식을 통해 현재의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지루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과거의 교육자들이 생동감있게 살아숨쉬고 지금의 우리들에게 유쾌하게 자신들의 교육관을 전달하는 방식의 책이다. 교육자들도 학생이었던 시절이 있고 부모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로 일상을 사는 동안에 자신의 교육관을 실천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교육이라는 것을 어렵게 여겨 자신의 교육하는 것도, 자녀를 교육하는 것도 누군가에 맡겨두고 자신은 제3자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독자 자신도 주체가 되어 스스로가 교육자라는 인식을 갖고 교육의 장에서 함께 호흡해야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들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목차>

들어가는 말 : 윌 듀런트가 남긴 마직막 유언

제1장 문명이란 무엇인가

제2장 공자와 추방당한 신선

제3장 붓다에서 인디라 간디까지

제4장 피라미드에서 이크나톤까지

제5장 구약성서와 철학과 시

제6장 페리클래스에 이르는 길

제7장 아테네의 황금시대

제8장 플라톤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제9장 로마 공화국

제10장 로마의 혁명

제11장 로마제국(기원전27년-180년)

제12장 네로와 아우렐리우스

제13장 인간 그리스도

제14장 기독교의 성장

제15장 르네상스 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중심으로

제16장 르네상스 / 로마

제17장 르네상스 Ⅲ/ 베네치아의 일몰

제18장 종교개혁 Ⅰ/ 위클리프와 에라스무스

제19장 종교개혁 Ⅱ(1517년-1555년)/ 루터와 공산주의자들

제20장 카톨릭 종교 개혁(1517년-1563년)

제21장 셰익스피어와 베이컨

옮긴이의 말 귀 있는 이여, 들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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