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2010년 6월 2일 23시 59분 등록

<난중일기(亂中日記)>-이순신 지음 / 노승석 역

 *저자에 대하여*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인종1~선조31)
조선 중기 무신. 자는 여해(汝諧). 본관 덕수(德水). 서울 건천동 출생.
이순신은 28살되던 해에 무인 선발시험인 훈련원별과에 응시했으나, 불행하게도 달리던 말이 거꾸러지는 바람에 실격하였고, 4년 뒤 1576년(선조9) 식년무과에 급제, 권지훈련원봉사가 되어 처음으로 벼슬을 시작했다. 이어서 함경도의 동구비보권관에 보직되었다. 이순신은사대부가의 전통인 충효와 문학에 있어서 뛰어났을 뿐 아니라 시(詩)를 짓는데도 특출하였다. 이듬해 발포수군만호를 거쳐 전원보권관, 훈련원참군 등을 지내고 86년 사복시주부가 되었다. 이어 조산보만호 겸 녹도둔전사의가 되었는데, 이때 호인(胡人)의 침입을 받고 적은 군사로 막아낼 수 없어서 부득이 피하게 되어 이 일의 책임을 물어 해임되었다. 그뒤 전라도 관찰사 이광에게 발탁되어 전라도의 조방장(助防將) 등을 지내고, 89년 유성룡의 추천으로 고사리첨사로 승진, 이어 절충장군으로 만포첨사․진도군수 등을 지내고, 91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그는 왜침을 예상하고 미리부터 군사를 훈련하고 장비를 갖추었으며. 특히 거북선을 제조하는 등 전쟁에 대비하였다. 92년 임잔왜란이 일어나자 진선․협선․포작선을 합쳐 모두 85척의 대선단을 이끌고 출전, 옥포 앞바다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두었다(옥포대첩). 그해 5월 말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으로부터 사천 등지로 왜군이 진출하는 연락을 받고 최초로 거북선을 이끌고 출항, 노량 앞바다에서 왜선 12척을 격파하는 등 그 위력을 과시하였다. 또 당포에서는 일본수군장과 싸워 이기는 등 연전연승을 거두어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자헌대부에 승품되었다. 7월 진내량에 정박하고 있는 일본 수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 학익진(鶴翼陣)을 쳐서 격파하였다(한산도대첩). 이 공으로 다시 정헌대부에 승계되었다. 93년 부산 등지에 있던 일본 수군을 소탕, 남해안 일대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한산도로 진을 옮겼으며, 최초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96년 원균 일파의 상소로 인하여 서울로 압송되어 죽음에 처하기 직전,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목숨을 건지고 도원수 권율의 막하로 들어가 백의종군하였다. 이듬해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적의 유인전술에 빠져 거제 칠천량에서 전멸하자 이순신을 다시 통제사로 기용하게 되었다. 그해 8월 명량에서 12척의 전선으로 10배 이상의 적을 대파하여 다시 제해권을 장악하였고(명량대첩), 98년 퇴각하기 위해 집결한 적선 500여척을 발견, 싸움을 기피하려는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을 설득하여 함께 노량 앞바다에서 섬멸하였다(노량해전). 그러나 이 때 선두에 나서서 군사를 지휘하던 중 왜군의 유탄에 맞아 전사했다.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녹훈되었고, 덕풍부원군에 추봉되었으며, 좌의정에 추증되었고,. 13년(광해군 5)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묘는 충청남도 아산에 있고, 충무의 충렬사, 아산의 현충사 등에 배향되었다. <난중일기>와 시조 등이 전한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충무공 이순신과 발상의 전환(김보승 씀)’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에서는 해전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던 이순신에게 수군을 철폐하고 권율과 군사를 합쳐 육군에 합류하라는 뜻밖의 어명에 수군 철폐를 반대하는 징계를 올렸던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제겐 아직 13척이 남아 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 수근을 폐지한다면 이는 적이 바라는 바로서 적은 호남을 거쳐 쉽게 한강가지 진격할 것입니다. 비록 전선의 수가 적으나 신이 아직 살아 있으므로 감히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 KBS 역사스페셜 1999년 11월 6일 방송 중에서〕라는 부분을 인용하며 그 당신 왜군 333척이 몰려오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고 평가한다. 글쓴이는 이순신은 자신이 믿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조정의 권력자들과 맞서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이루어 냈으며, 이것을 가능하게 한 이순신의 용기와 자질을 ‘발상 전환적 사고’라고 말한다. 이순신은 모든 사람들이 전투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할 때, 그 속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하고 긍정적으로 전투에 있어서도 자신감 있게 임했다. 이순신의 이와 같은 발상의 전환은 배의 성능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정세를 꿰뚫어 보는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이야기한다.
<난중일기>를 읽는 내내 이순신은 과거의 영웅이기에 앞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본받을 만한 리더의 상을 보여주고 있고 생각했다. 불가능을 가능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는 무모한 자신감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계발에서 오는 확신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주장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관철할 수 있는 용기는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을 정립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얻은 자기 발전은 자기 확신으로 전환이 되고 새로운 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이순신이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

p.5 만일 한 시대의 인물이 후대에 길이 기억되어 존경을 받는다면 그는 진정한 인간의 도리를 실천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5 국난 극복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 가며 항상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로 전쟁에 임했으니, 진정한 구국(救國)의 명장(名將)이었다.

p.6 전쟁에 대한 신속 정확한 대비와 파악으로 작전하는 모습에서 충무공의 철저한 유비무환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p.6『난중일기』란 바로 그 당시에 충무공이 전쟁을 몸소 체험하며 기록한 진중(陣中)일기다.

p.7『난중일기』는 충무공이 직접 초서(草書)체로 작성한 것이다.

p.11 위급한 상황에 미리 대비하는 자세, 바로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항상 위기에 대처했기 때문에 수십 차례의 해전에서 혁혁한 진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p.51 방답의 병선(兵船) 군관과 색리들이 병선을 수리하지 않았기에 곤장을 쳤다. 우후(虞侯), 가수(假守, 임시관리)가 제대로 단속하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니 해괴하기 짝이 없다. 자기 한 몸 살찌울 일만 하고 이와 같이 돌보지 않으니 앞일도 알 만하다.

p.52 맏형님 희신(羲臣)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p.52 참으로 장관이었다. 그대로 전선(戰船) 위에 앉아서 우후 이몽구(李夢龜)와 더불어 술을 마시며 새 봄의 정치를 구경하였다.

p.53 북봉(北峰) 봉화대 쌓은 곳에 오르니, 쌓은 곳이 매우 좋아 전혀 무너질 리가 없었다. 이봉수가 부지런히 일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p.54 석공들이 새로 쌓은 해자 구덩이가 많이 무너졌기에, 이들에게 벌을 주고 다시 쌓게 했다.

p.55 비 온 뒤라 산꽃이 활짝 피었는데 빼어난 경치를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p.55 늦게 출발하여 영주에 이르니 좌우의 산꽃과 교외의 봄풀이 마치 그림 같았다.

p.56 녹도로 갔다. 곧장 새로 쌓은 봉두(峰頭) 문루 위에 올라가 보니, 경치의 빼어남이 경내에서 제일이었다. 만호(정운(鄭運))의 애쓴 정성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p.58 승군들이 돌 줍는 일을 성실히 하지 않으므로 우두머리 승려를 잡아다가 곤장을 쳤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는 소식을 들으니 매우 다행이다.

p.66 오시(午時, 정오경)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진을 치고, 여러 장수들과 약속을 하니, 모두 기꺼이 나가 싸울 뜻을 가졌으나, 낙안 군수(신호(申浩))만은 피하려는 뜻을 가진 것 같아 한탄스럽다. 그러나 군법이 있으니, 비록 물러나 피하려 한들 그게 될 법한 일인가.

p.71 새벽에 앉아 꿈을 기억해 보니, 처음에는 흉한 것 같았으나 도리어 길한 것이었다.

p.72 한 모퉁이의 외로운 신하가 북쪽을 바라보며 길이 애통해하니, 간담이 찢어지는 듯합니다.

p.74 백성을 편안케 하고 적을 방어하는 데에 두 가지 모두 유리함을 얻을 수 있다.

p.75 대저 변방의 중진(重鎭)을 한번 잃으면 그 해독은 심장부에까지 미치게 되니, 이것은 실로 이미 경험한 일입니다.

p.75 국가가 호남과는 마치 제(齊)나라의 거(莒), 즉묵(卽墨)과 같은 것이니, 이는 바로 온몸에 폐질(廢疾)이 있는 자가〔기맥만 남아〕구원하기 어려운 다리 하나만을 겨우 간호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p.82 한 놈의 목을 베고 났더니 적의 무리가 크게 꺾여 마침내 뒤따라 나오지 못하였다.

p.90 오직 우리 삼도 수군은 의리를 떨쳐 죽음을 바치려 하지 않는 이가 없건만 기회가 알맞지 않아 뜻한 바람을 펴지 못하였다.

p.90 어제 적을 만나 지휘할 때 교묘히 피하여 머물러 있는 자들이 많았는데, 너무도 통분하였다.

p.91 다만 지난번에 후퇴하여 돌아온 뒤 바로 다시 병사를 징발했지만 민심이 이미 무너져 있기에 세력을 모으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p.93 신의 어리석고 망령된 생각으로는 차라리 우선 군사를 출전시킬 기한을 늦추고 한 번이라도 휴가를 얻게 해준다면 인심이 필시 이러한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p.94 급급한 일에 무릇 혈기가 있는 자는 심력을 다하고자 하지 않음이 없건만, 인심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하겠습니까. 그렇지만 대장의 명령은 오히려 신중히 하여 가볍게 내려선 안 될 것이니, 일이 비록 뒤의 것을 생략할 만큼 급속히 해야 할 것일지라도 인심과 형세를 살피고서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p.95 분함과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고, 득실과 성패가 서로 이같이 멀기만 하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 군사를 일으켜 국가의 치욕을 씻는 것이 지금에 급급한 일이긴 하지만, 오히려 신중히 하여 경솔하게 싸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형세를 살펴보니 근심에 괴로워하며 독해(毒害)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p.96 나라를 위해 힘쓰는 일이 이제 급급한 일이지만 몸의 병이 이렇게 되었으니, 북쪽을 바라보며 길게 탄식할 때면 다만 스스로 눈물을 드리울 뿐입니다.

p.96 군대를 동원할 기한을 늦추고 서서히 의리로써 깨우쳐 취합해야 할 것입니다.

p.100 요즘 이도의 민심을 살펴보면, 한번 징집한다는 소식을 듣기만 해도 모두 달아날 꾀만 낼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p.100 민심의 이산함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무엇으로 통제하여 회합할 수 있겠습니까.

p.102 우러러 그리워함이 간절하여 저의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p.103 저와 같은 이의 한 몸은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지만 나랏일에 있어서는 어떠하겠습니까.

p.104 글로 적기를 생각했으나 바다와 육지에서 매우 바쁘고 또한 쉴 새가 없어서 잊어 둔지 오래였다. 여기서부터 이어 적는다.

p.105 오늘이 어머니 생신이었으나 이 토벌하는 일 때문에 축수의 잔을 올리지 못하니 평생의 한이 되겠다.

p.108 이날 저녁 달빛은 배어 가득 차고 홀로 앉아 이리저리 뒤척이니, 온갖 근심이 가슴에 치밀었다. 자려 해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닭이 울고서야 선잠이 들었다.

p.109 몸이 몹시 불편하여 베개를 베고 누워 신음하던 중 “명나라 장수가 중도에서 오래 체류하는 것은 반드시 교묘한 계책을 내기 위한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나라를 위한 걱정이 많던 차에 일마다 이와 같으니, 더욱더 탄식이 일고 눈물에 잠겼다.

p.110 여러 장수들이 애서 권하기에 몸이 불편해도 억지로 먼저 고기 맛을 보게 되니, 더욱더 비통하다.

p.112 예단을 전하자, 처음에는 굳이 사양하는 듯하다가 이를 받고는 매우 기뻐하며 재차 감사하다고 했다.

p.115 원 수사가 송 경락이 보낸 화전을 혼자만 쓰려고 꾀하기에 병사의 공문을 통해서 나누어 보내라고 하니, 그는 공문도 내는 것을 심히 못 마땅해 하고 무리한 말만 많이 했다. 가소롭다. 명나라의 배신(陪臣)이 보낸 화공 무기인 화전 천오백서른 개를 나누어 보내지 않고 혼자서 모두 쓰려고 하니 그 잔꾀는 심히 다 말로 할 수가 없다. 저녁에 조붕(趙鵬)이 와서 이야기하였다. 남해 현령 기효근의 배가 내 배 옆에 댔는데, 그 배에 어린 계집을 태우고 남이 알까봐 두려워하였다. 가소롭다. 이처럼 나라가 위급한 때를 당해서도 예쁜 여인을 태우기까지 하니 그 마음 씀이는 무어라 형용할 수 가 없다. 그러나 그 대장이라는 원 수사 또한 이와 같으니, 어찌하겠는가.

p.115 어머니의 편지도 왔는데, 평안하시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

p.119 아침에 왜적을 토벌한다는 공문을 작성하여 영남 수사에게 보냈더니, 정신이 없다고 핑계 대며 대답이 없다.

p.119 아침에 흰 머리카락 여남은 올을 뽑았다. 그런데 흰 머리타락이 난 것을 어찌 꺼리랴만 다만 위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p.122 아침에 아들 회가 들어왔다. 그편에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는 소식을 들으니 매우 다행이다.

p.125 인종(仁宗)의 제삿날이다. 밤기운이 몹시 서늘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조금도 늦춰지지 않고 홀로 뜸 밑에 앉아 있으니,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난다.

p.126 해질 무렵에 김득룡(金得龍)이 와서 진양이 불리하다고 전했다. 놀라움과 걱정스러움을 이길 길이 없다. 그러나 절대 그럴 리 없다. 이는 필시 미친 사람이 잘못 전한 말일 것이다. 초저녁에 원연, 원식(元埴)이 여기에 와서 군중의 일을 극도로 말하니, 참으로 우습다.

p.128 이날 밤은 바다의 달이 밝고 티끌하나 일지 않고 물과 하늘이 일색을 이루었다. 서늘한 바람이 선듯 불어와 홀로 뱃전에 앉았는데, 온갖 근심이 가슴에 치밀었다.

p.128 진양에 관한 일도 도한 헛소문 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양의 일만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닭이 벌써 울었다.

p.133 새벽꿈에 사내아이를 얻었다. 이는 포로로 잡혀간 사내아이를 얻을 징조이다.

p.134 저물녘에 우수사(이억기)가 배에 와서 하는 말이, “방답 첨사(이순신(李純信))가 부모를 뵈러 갈 일로 간청했지만, ‘여러 장수들은 보낼 수 없다’도 대답했다.”고 하였다. 또 원사(원균)가 망령된 말을 하며 나에게 도리에 어긋난 짓을 많이 하더라고 말했다. 모두가 망령된 짓이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아침부터 아들 염의 병도 어떠한지 모르는데다가 적을 소탕하는 일도 늦어지고 마음의 병도 침중하여 밖으로 나가 마음을 풀고자 하였다.

p.135 의논하는 사이에 원 수사가 하는 말은 매번 모순되니, 참으로 가소롭다.

p.135 아침에 맑다가 저물녘에 비가 내렸다. 농사의 기대에 크게 흡족하겠다.

p.136 아침에 아들 회가 들어와서 어머님이 편안하심을 알게 되고, 또 염의 병도 나아진 것을 알게 되니 기쁘고 다행한 일이다.

p.137 몸이 몹시 불편하여 홀로 배의 뜸 아래에 온갖 회포가 다 일어난다.

p.138 이날 밤 달빛은 대낮같고 물결은 비단결 같아 회포를 견디기 어려웠다.

p.138 말하는 사이 원 수사에게 음흉하고 도리에 어긋난 일이 많으니 그의 거짓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p.139 윤간(尹侃)과 조카 이뇌, 해가 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전한다.

p.139 꿈에 적의 형상이 보였다. 그래서 새벽에 각 도의 대장에게 알려서 바깥바다로 나가 진을 치게 하였다.

p.139 원 공이 술을 마시자고 하여 조금 주었더니, 잔뜩 취하여 흉악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함부로 지껄였다. 매우 해괴하였다.

p.139 원 수사가 왔다. 음흉하고 속이는 말을 많이 했다. 몹시 해괴하다.

p.139 원 수사가 또 와서 영등포로 가기를 독촉했다. 참으로 음흉하다고 할만하다. 그가 거느린 배 스물다섯 척은 모두 다 내보내고 다만 칠팔 척을 가지고 이런 말을 하니, 그 마음 씀씀이와 일하는 것이 다 이따위다.

p.140 참 우스운 일이다. 기효근의 형편없음은 이미 알고 있는 바다.

p.140 아침에 조카 봉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p.141 종일 홀로 앉아 있으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저녁때 탐후선을 애타게 기다리는데도 오지 않았다. 해가 저무니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나서 창문을 닫지 않고 잤더니, 바람을 많이 쐬어 머리가 몹시 아플 것 같다. 걱정스럽다.

p.142 종일 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홀로 배의 뜸 아래에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난다.

p.143 하나, 지난해부터 변란이 일어난 뒤로 수군이 적과의 접전을 수십 차례나 자주 가졌는데, 큰 바다에서 교전할 때면 저 왜적들은 무너져 파괴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우리는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p.144 지난해 늦가을부터 지금까지 여러 장수들이 명령을 내리는 데 마음을 다했는지의 여부를 기회와 사정에 따라 자세히 살펴보면, 혹은 먼저 진격을 외쳐 서로 다투어 돌진하여 싸우게 되는 때가 되면, 사랑하는 처자를 돌아보고 살기를 탐하여 중도에서 빠지는 자가 있었고, 혹은 공로와 이익을 탐하여 승패를 헤아리지 않고 돌진하다가 적의 손에 걸려들어 마침 나라를 욕되게 하고 몸을 죽게 하는 재앙을 만든 자가 있었다.

p.145 신이 비록 노둔하고 겁이 많지만 몸소 시석을 무릅쓰고 나아가 여러 장수들의 선봉이 되어서 몸을 바쳐 나라에 은혜를 갚으려는데, 지금 만약 기회를 놓친다면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p.147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한 살을 더하게 되니, 이는 난리 중에서도 다행한 일이다.

p.148 아침에 어머니를 뵈려고 배를 타고 바람을 따라 바로 고음천(古音川)에 도착하였다. 어머님께 가서 배알하려 하니 어머님은 아직 주무시고 계셨다. 큰 소리로 부르니 놀라 깨어 일어나셨다. 숨을 가쁘게 쉬시어 살아 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으신 듯 하니 감춰진 눈물이 흘러내릴 뿐이다. 그러나 말씀하시는 데는 착오가 없으셨다.

p.149 아침 식사 후 어머니께 하직을 고하니, “잘 가거라. 부디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야 한다.”라고 분부하여 두세 번 타이르시고, 조금도 헤어지는 심정으로 탄식하지 않으셨다.

p.150 전윤이 말하기를 “수군을 거창(居昌)으로 붙잡아 왔는데, 이 편에 들으니 원수(권율)가 방해하려 한다.”고 했다. 우스운 일이다. 예부터 남의 공을 시기하는 것이 이와 같았으니, 한탄한들 무엇하랴! 여기서 그대로 잤다.

p.150 저녁에 원 수사(원균)도 왔다. ....중략.... 원 수사, 공연수(孔連水), 이극성(李克誠)이 서로 눈독들인 여자들을 모두 다 관계했다고 한다.

p.152 유황을 불러서 암행어사가 붙잡아 간 것을 물으니, 문서가 멋대로 꾸며졌다고 하였다. 매우 놀라운 일이다. 또 격군의 일을 들으니 고을 아전들의 간악한 짓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p.153 어머니의 편지와 아우 여필의 편지가 왔는데,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했다. 천만다행이다.

p.155 새벽꿈에 한쪽 눈이 먼 말을 보았다.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p.156 새벽꿈에 좋은 말을 타고 곧장 바위가 첩첩인 큰 산마루로 올라가니 산봉우리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구불구불 동서로 뻗어 있었다. 봉우리 위의 평평한 곳이 있어 자리를 잡으려고 하다가 깨었다. 그것이 무슨 징후인지 모르겠다. 또 어떤 미인이 홀로 앉아서 손짓을 하는데, 나는 소매를 뿌리치고 응하지 않았다. 우스운 일이다.

p.156 원수(권율)의 회답 공문이 왔는데, 심 유격(沈遊擊, 심유경(沈有敬))이 벌써 화해할 것

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간사한 꾀와 교묘한 계책은 헤아릴 수 없다. 전에도 놈들의 꾀

에 빠졌었는데 또 이처럼 빠져드니 한탄스럽다. 저녁에 날씨가 찌는 듯하여 마치 초여름 같

았다. 이경에 비가 내렸다.

p.158 경상 우수사가 와서 만났다. 술 열 잔에 취하여 말에 광기가 많았으니 우스운 일이다.

p.159 나대용을 원 수사에게 보내에 상의케 하고 전하게 한 말은, “작은 이익을 보고 들이친다면 큰 이익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 아직 가만히 두었다가 다시 적선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고 기회를 엿보아서 무찌르기를 서로 작정하자.”는 것이었다.

p.160 홍양 배의 부정함을 조사해 보니 허술한 점이 많았다.

p.161 암행어사 유몽인은 나라의 위급한 난리는 생각지 않고 다만 눈앞의 임시방편에만 힘쓰고, 남쪽 지방의 억울하다고 변명하는 말만 들으니, 나라를 그르치는 교활하고 간사한 말이 진회(秦檜)가 무목(武穆)을 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나라를 위하는 아픔이 더욱 심하다.

p.176 하루 종일 홀로 빈 정자에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가슴에 치밀어 마음이 어지러웠다.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으랴. 정신이 멍하기가 취중이고 꿈속인 듯, 멍청한 것도 같고 미친 것 같기도 했다.

p.180 저녁에 겸사복이 유지를 가지고 왔다. 내용은 “수군의 여러 장수들과 경주의 여러 장수들이 서로 협력하지 않으니, 이제부터는 예전의 폐습을 모두 바꾸라.”는 것이었다. 통탄하는 마음 어찌 다하랴. 이는 원균이 술에 취하여 망령된 짓을 했기 때문이다.

p.181 저녁에 종 한경(漢京)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심을 알게 되니, 참으로 기쁘고도 다행이다.

p.182 아침에 아들 울이 본영으로 가는데 이별하는 심회가 그윽하다. 홀로 빈집에 앉았으니 심정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p.182 달빛 아래 같이 이야기할 때 옥피리 소리가 처량했다.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헤어졌다.

p.183 아내의 언문(諺文)편지에는 아들 면이 더위 먹은 증세로 심하게 앓았다고 했다. 마음이 애타고 답답하다.

p.183 탐후선이 들어 왔는데,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한다. 그러나 면은 많이 아프다니 매우 걱정스럽다.

p.185 울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했다.

p.185 원수가 자기가 한말을 뉘우치면서 보냈다고 하니 우스운 일이다.

p.187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았으니, 온갖 근심이 가슴에 치밀었다.

p.188 저녁에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니의 평안하심은 알았으나, 또 면의 병세가 중하다고 하였다. 몹시 애타는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유 상(柳相, 유성룡)이 죽었다는 부음이 순변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는 유 정승을 질투하는 자들이 말을 지어내 훼방하려는 것이리라. 통분함을 이길 수 없다. 이날 저녁에 마음이 몹시도 어지러웠다. 홀로 빈집에 앉았으니, 심회를 스스로 가눌 수 없었다. 걱정에 더욱 번민하니 반이 깊도록 잠들지 못했다. 우 상이 만약 내 생각과 맞지 않는다면 나랏일을 어찌할 것인가.

p.190 조카 분의 편지를 통해, 또 아산 고향의 선산이 아무 탈 없고 가묘도 평안하고, 어머니께서도 편안하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매우 다행이다.

p.191 점심을 올린 뒤에 경상 원 수사가 혼자서 술 한잔을 올리는데, 상은 무척 어지럽건만 먹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우스웠다.

p.193 저녁에 탐후선이 들어왔는데 그 편에 보내온 아들들의 편지를 보니, 어머니께서 편안하시고 면의 병도 나아진다고 한다.

p.195 초하루 자시에 꿈을 꾸니 부안(扶安)의 첩이 아들을 낳았다. 달수를 따져 보니 낳을 달이 아니었으므로 꿈이지만 내쫓아 버렸다.

p.196 탐후선이 들어왔는데, 어머니께서 평안하시고 아들 면은 차츰 나아간다고 하였다.

p.198 원 수사를 몹시 책망하니 원 수사는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p.198 원 수사는 취해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대로 드러누워 오지 않았다.

p.198 외가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p.199 나라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p.200 아침에 아들 울의 편지를 보니, 아내의 병이 위중하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 회를 내보냈다.

p.200 이날 아침 탐후선이 들어 왔는데, 아내의 병세가 매우 위중하다고 했다. 이미 생사가 결정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나랏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른 일에 생각이 미칠 수는 없으나 아들 셋, 딸 하나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다.

p.201 이른 아침에 손을 씻고 조용히 앉아 아내의 병세를 점쳐 보니,

p.202 여러 장수들과 맹세하여 목숨을 걸고 원수를 갚을 뜻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지만, 다만 험한 소굴에 웅거하고 있는 왜적 때문에 가볍게 나아가지 않을 뿐이다. 더욱이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 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p.205 홀로 앉아 간밤의 꿈을 기억해 보니, 바다 가운데 외딴섬이 눈앞으로 달려 와서 멈췄q1`는데, 그 소리가 우레 같아 사방에서는 모두들 놀라 달아나고 나만 홀로 서서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참으로 흔쾌하였다. 이 징조는 곧 왜놈이 화친을 구하다가 스스로 멸망할 상이다. 또 나는 준마를 타고 천천히 가고 있었는데, 이는 임금의 부르심을 받아 올라갈 징조이다.

p.207 새벽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왜적을 칠 일이 길한지 점을 쳤다.

p.208 우수사의 군관 및 경상 우수사의 군관은 그 실수를 약간 꾸짖었지만, 사도의 군관에게는 그 죄를 무겁게 다스렸다.

p.211 새벽꿈에 왜적들이 항복을 청하면서 육혈총통(六穴銃筒) 다섯 자루와 환도를 바쳤다. 말을 전해 준 자는 그 이름이 ‘김서신(金書信)’이라고 하는데, 왜놈들의 항복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한 꿈이었다.

p.216 따뜻하기가 봄날과 같았다. 음양이 질저를 잃은 것 같으니 그야말로 재난이라고 할 만하다. 오늘은 아버님의 제삿날이라 나가지 않고 홀로 방 가운데 앉아 있으니, 애통함을 품은 심정 어찌 말로 다하랴....아들 울의 편지를 보니 어머님의 체후가 예전처럼 평안하시다고 한다. 매우 다행이다.

p.219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추춧돌 같은 인물이 없고 안으로는 계책을 세울 기둥 같은 인재가 없으니 더욱더 배를 만들고 무기를 다스리어 적들을 불리하게 하고 나는 그 편안함을 취하리라.

p.219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움에 백 번 이기고, 나를 알고 적을 모르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질 것이다. 나를 모르고 적도 모르면 매번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할 것이다. 이는 만고의 변함없는 이론이다.

p.227 촛불을 밝히고 혼자 나랏일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또 팔순의 병드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밤을 세웠다.

p.245 아침에 원수(권율)의 계본과 기, 이씨 두 사람의 공초(죄인의 진술)한 초안을 보니 언수가 근거 없이 망녕되게 고한 일들이 매우 많았다. 반드시 실수에 대한 문책이 일을 것이다. 이와 같은데도 원수의 지위에 눌러앉을 수 있는 것인가. 괴이하다.

p.250 사직의 위엄과 영험에 힘입어 겨우 조그마한 공로를 세웠는데,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뛰어넘어서 분에 넘쳤다. 몸이 장수의 자리에 있으면서 공로는 티끌만틈도 보탬이 되지 못했으며, 입으로는 교서를 외고 있으나, 얼굴에는 군사들에 대한 부끔러움이 있을 뿐이다.

p.256 나라 제삿날(인종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고 홀로 누대에 기대고 있었다. 내일은 돌아가신 부친의 생신이신데, 슬픔과 그리움을 품고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아침 이슬과 같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동량(棟樑)같은 인재가 없고, 박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으니, 종묘사직이 마침내 어떻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마음이 어지러워서 하루 내낸 뒤척거렸다.

p.258 김응서란 어떠한 사람이기에 스스로 회개하여 힘슨다는 말을 들을 수가 없는가. 만약 쓸개 있는 자라면 반드시 자결이라도 할 것이다.

p.265 제찰사가 잇는 곳으로 가 보니 조용히 이야기하는 사이에 그는 백성을 위해서 고통을 덜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았다. 호남 순찰사는 헐뜯어 말하는 기색이 많으니, 한탄스럽다.

p.270 선수사(선거이)와 이별할 때 짧은 시 한 수를 지어 주었다.

< 북방에 갔을 때에 같이 힘써 일했더니

남방에 와서도 생사를 함께 하네

한잔 술 오늘 밤 달빛 아래 나누고 나면

내일은 이별의 슬픈 정만 남으리>

이 시를 비단에 적었다.

p.274 저녁에 달빛을 타고 우수사 경수(이억기)에게 가서 만나고 전별했다.

p.277 김희번이 서울에서 내려와 영의정의 편지와 조보 및 원흉의 답서를 가져와 바치니, 지극히 흉악하고 거짓되어 입으로는 말할 수 없었다. 기망하는 말들은 무엇으로도 형상하기 어려우니 천지 사이에는 이 원흉처럼 흉패하고 망령된 이가 없을 것이다.

p.289 척자점(擲字占)을 쳐 보니 ‘바람이 물결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女風起浪).’는 괘가 나왔다.

p.299 아들이 떠간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어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 답답한 마음을 어찌 다 말하랴. 봄기운이 사람을 괴롭혀 몸이 몹시 노곤하였다.

p.299 아들 면이 잘 갔는지 밤새도록 매우 걱정이 되었다.

p.317 밤이 깊도록 이들을 즐겁게 뛰놀게 한 것은 즐겁게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오랫동안 고생하는 장병들에게 노고를 풀어 주고자 한 계획이었다.

p.329 어두울 무렵 항복해 온 왜인들이 광대놀이를 많이 벌였다. 장수된 자로서 좌시할 일은 아니었지만, 귀순하여 따르는 왜인들이 마당놀이를 간절히 바라기에 금하지 않았다.

p.331 이날 아들 회가 방자(房子, 하인) 수(壽)에게 곤장을 쳤다고 하기에 아들을 뜰 아래로 붙들어다가 잘 타일렀다.

p.332 샘의 줄기가 깊이 들어가 있고 물의 근원도 길었다.

p.356 새벽꿈이 매우 심란하여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덕(德)이를 불러 대강 이야기하고 또 아들 울에게도 말했다. 마음이 몹시 언짢아서 취한 듯 미친 듯 마음을 가눌 수 없으니, 이것이 무슨 징조인가. 병드신 어머니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종을 보내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 오게 했다.

p.356 얼마 후 종 순화(順花)가 배에서 와서 어머니의 부고를 전했다. 달려나가 가슴을 치고 뛰며 슬퍼하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해 보였다. 바로 해암(蟹巖)으로 달려가니 배는 벌써 와 있었다. 길에서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다 적을 수가 없다. 후에 대강 적었다.

p.361 아침에 둘재아들 울의 이름을 열로 고쳤다. 열의 음은 열(悅)이다. 싹이 처음 트거나 초목이 무성하게 자란다는 뜻이니 글자의 뜻이 매우 아름답다.

p.362 오늘은 단오절인데 천리 되는 천애의 땅에 멀리와서 종군(從軍)하여 어머님 장례도 못 모시고 곡하고 우는 것도 마음대로 못 하니, 무슨 죄로 이런 앙갚음을 받는 것인가. 나와 같은 사정은 고금에도 같은 것이 없을 터이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다. 다만 대를 못 만난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p.364 원이 온갖 계략을 꾸며 나를 모함하려 하니 이 또한 운수로다. 뇌물로 실어 보내는 짐이 서울 길을 연잇고 나를 헐뜯는 것이 날로 심하니, 스스로 때를 못 만난 것을 한탄할 따름이다.

p.368 안팎이 모두 바치는 물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죄의 경중을 결정한다니, 아직 결말이 어떻게 날지 모르겠다. 이것이 이른바 “百錢의 돈으로 죽은 혼을 살게 한다”는 것이리라.

p.387 늦게 변의정이라는 사람이 수박 두 덩이를 가지고 왔는데, 그 꼴이 형편없어 어리석고 용렬해 보였다. 궁벽한 촌에 사는 사람이 배우지 못하고 가난을 지켜서 형세상 그렇게 된 것이리라. 이 역시 소복하고 순후한 모습이다.

p.387 아들 열이 떠나가는 데 고될 것을 많이 걱정하여 침묵의 걱정이 그치지 않는다.

p.392 홀로 수루의 마루에 앉았으니 그리운 마음이 어떠하랴. 비통할 따름이다. 이날 밤 꿈에 임금의 명령을 받을 징조가 있었다.

p.397 아침식사를 할 때 당포의 포작이 방목하던 소를 훔쳐 끌고 가면서 헛소문을 퍼뜨리되 “왜적이 왔다. 왜적이 왔다.”고 하였다. 나는 이미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헛소문을 낸 두 사람을 잡아다가 곧 목을 베어 효시하게 하니, 군중의 인심이 크게 안정되었다.

p.401 안위의 배 위에 있는 군사들은 죽기를 각오한 채 마구 쏘아 대고 내가 탄 배의 군관들도 빗발치듯 어지러이 쏘아 대어 적선 두 척을 남김없이 모두 섬멸하였다. 매우 천행한 일이었다. 우리를 에워싸던 적선 서룬 척도 부서지니 모든 적들이 저항하지 못하고 다시는 침범해 오지 못했다.

p.404 아, 슬프도다. 그때가 어느 때인데, 강(綱)은 떠나고자 했는가. 떠나면 또 어디로 가려 했던가. 인신(人臣)이 임금을 섬김에는 죽음만이 있을 뿐이오, 다른 길은 없다.

p410 그 편에 배설의 겁내하던 꼴을 들으니 더해지는 탄식을 참지 못했다. 권세 있는 집안에 아첨이나 하여 감당치 못할 지위에까지 올라가서 국가의 일을 크게 그르쳤건만, 조정에서는 살피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하겠는가.

p.411 몸을 차게 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하여 소주를 마시고 치료하려 했는데, 인사불성이 되어 거의 깨어나지 못할 뻔했다.

p.412 우리의 여러 배들은 겁을 먹고 후퇴하려는 계획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도 동요하는 빛을 띠지 않고 호각을 불고 깃발을 휘두르며 추격하게 하니, 여러 배들은 회피하지 못하고 일시에 적선을 추격하여 갈두까지 나갔다. 그러나 적선이 멀리 도망쳤기에 끝까지 뒤쫓지는 않았다.

p.414 내가 탄 배가 곧바로 앞장서서 지자포를 쏘니 강산이 온통 흔들렸다. 적의 무리들도 범할 수 없음을 알고 네 번이나 나왔다가 물러났다 하면서 화포만 쏘다가 삼경 말에 아주 물러갔다.

p.416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되,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고 하였고, 또 ‘한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재삼 엄중히 약속했다. 이날 밤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가르쳐 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고 하였다.

p.417 나는 배 위에 서서 직접 안위를 부르며 말하기를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고 말하였다. 그러자 안위도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입했다. 또 김응함을 불러서 말하기를 “너는 중군장이 되어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하고 싶지만 적의 형세가 또한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해주마.”라고 하였다.

p.419 이번 일은 실로 天幸이었다.

p.421 아들 회를 보내어 제 어머니도 보고 여러 집안 사람의 생사도 알아오게 하였다. 마음이 몹시 불안하여 편지를 쓸 수 없었다. 병조의 역자가 공문을 가지고 내려왔는데, 아산 고향 집이 이미 적에게 분탕질을 당해 잿더미가 되고 남은 것이 없다고 전하였다.

p.422 저녁에는 따뜻한 기운이 봄과 같아 아지랑이가 하늘에 아른거리고 비 올 징후가 많았다. 초저녁에 달빛이 비단결 같아 홀로 봉창에 앉았으니 회포가 만 갈래였다.

p.424 사경에 꿈을 꾸니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에 가다가 말이 발을 헛디뎌 냇물 가운데로 떨어지긴 했으나 거꾸러지지는 않았는데, 막내 아들 면이 끌어안는 형상이 보이는 듯하다가 깨었다. 이것은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p.424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하는데, 봉함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마음이 조급하고 어지러웠다. 대충 겉봉을 펴서 열이 쓴 글씨를 보니, 겉면에 ‘통곡慟哭’ 두 글자가 씌어 있어 면이 전사했음을 알게 되어,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신고.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듯하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어긋난 이치가 어디 있겠는가.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영특한 기질이 남달라서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두지 않는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이제 내가 세상에 살아 있은들 누구에게 의지할 것인가. 너를 따라 같이 죽어 지하에서 함께 지내고 함께 울고 싶건만, 네 형, 네 누이, 네 어미가 의지할 곳이 없어, 아직은 참고 연명한다마는 내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은 채 부짖어 통곡할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한 해를 지내는 것 같구나. 이날 밤 이경에 비가 내렸다.

p.435 도원수의 군관이 유지를 가지고 왔는데, “이번에 선전관을 통해 들으니, 통제사 이순신이 아직도 權道를 쫓지 않아서 여러 장수들이 민망히 여긴다고 한다. 사사로운 정이야 비록 간절하지만 나라 일이 한창 바쁘고, 옛사람의 말에도 ‘戰陣(전쟁 진터)에서 용맹이 없으면 효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전진에서 용감함은 素饌이나 먹어서 기력이 노곤한 자기 능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예법에도 經(원칙)과 權(방편)이 있으니, 꼭 고정된 법만을 고수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경(卿)은 내 뜻을 깊이 깨달아서 소찬을 먹기를 그만두고 權道(방편)를 따르도록 하라”고 하였다. 유지와 함께 고기반찬을 하사하셨는데, 마음은 더욱 비통하였다.

p.446 나의 임무는 곧 각 장병들이 배를 통솔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느니,......나의 임무는 철수하라고 호령함을 맡는 것이었다.

p.449 왜적은 한산도 기슭을 타고 육지로 올라가 달아났고, 포획한 왜선과 군량은 명나라 군사에게 빼앗기고 빈손으로 와서 보고했다.

 

* 내가 저자라면 *

<난중일기>를 읽는 내내 들었던 몇 가지 생각들이 있다. 첫째는 이순신이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다는 것이다. 1주일에 2번 정도 사람을 보내어 어머님의 안위를 묻고 어머니가 평안하다는 소식에 참으로 기뻐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유교 문화권에서 강조하는 孝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둘째는 영웅이라 추앙받는 위대한 정신이 소유자도 결국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일기에서 내내 원균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처음엔 객관적으로 원균의 올바르지 못한 모습에 대해 비판을 했던 것 같은데 점점 원균에 대한 선입견과 감정으로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셋째는 위대한 영웅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철저한 자기 관리의 노력이 바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순신은 활쏘기를 하면서 자신의 체력을 관리하고, 매일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하루를 정리하고, 나라를 위하기 이전에 가족을 위하는 마음을 지니면서 더 큰 애정을 위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자신을 바로 세우고, 자기 가족에 대한 애정을 갖고 표현하는 것을 통해 나아가 나라에서 큰 대의를 이루기 위해 작은 성공의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는 거북선이라는 당시로 첨단 선박을 만든 지식인도 꿈과 점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에 연연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를 읽는 내내 새벽꿈과 그 꿈에 대해 점을 치고 좋은 괘가 나오면 안도하고 나쁜 괘가 나오면 불안해하는 이순신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불길한 느낌의 꿈을 꾸고 난 뒤에 아들이 죽거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사실을 적고 있어서 예감과 직감이라는 감각이 발달해 있으며 그것을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었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다섯째는 이순신이 로맨티스트이자 시인이었던 매력적인 면모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흔한 달빛을 보면서도 감흥을 느끼고 잠못이루며 시를 읊고 하는 모습을 보면 그는 용감한 무인인 동시에 감수성이 발달했던 문인이었다. 여섯째는 이순신의 겸손한 인간됨을 잘 느낄 수 있었다. 몇 번의 공적에 대해 임금이 총애를 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공로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고 군사들의 공로로 돌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일기라는 것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기에 참으로 적합한 도구인데, 그 속에서 발견되는 이순신의 인간됨은 겸손하고 자신의 군사들에게 고마워할 줄 아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다. 일곱째는 일기라는 자신에 대한 기록이 세상에 대한 역사의 기록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역사라고 생각했던 하루의 기록이 모여 당대의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료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이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나의 기록들도 미래에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하루가 더욱 빛나도록 열심히 살고 그에 대한 기록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난중일기> 전문가인 노승석 선생님의 번역서를 일게 되어서 참으로 행운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중간 중간에 같은 내용이 조금씩 다른 표현으로 반복적으로 나오는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을 모두 실어 독자들의 선택에 맡겼겠지만 지나치게 여러 번 반복이 되니 지루하였다. 중요한 것은 <난중일기>의 내용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과 삶의 지혜일 것이다. 형식상의 번역보다는 내용상의 원활한 흐름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IP *.203.200.146

프로필 이미지
우성
2010.06.03 09:27:18 *.30.254.28
연주야..고생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372 북리뷰 14. 백범일지_김구(도진순 주해, 돌베개) [1] 박상현 2010.06.07 3614
2371 14. 백범일지_발췌 맑은 김인건 2010.06.07 3225
2370 6-1. <백범일지> -김구지음 / 도진순 주해 [2] 이은주 2010.06.06 2419
2369 <백범일지- 백범김구자서전> - 김구 지음 / 도진순 주해 낭만 연주 2010.06.06 3493
2368 <백범일지> 김구, 발췌 [3] 박미옥 2010.06.03 2615
» <난중일기(亂中日記)>-이순신 지음 / 노승석 역 [1] 낭만연주 2010.06.02 2692
2366 <난중일기> 이순신 [2] 박미옥 2010.05.31 2778
2365 Review 난중일기 최우성 2010.05.31 2465
2364 5-4 <난중일기> - 이순신 이은주 2010.05.31 2570
2363 13. 난중일기 맑은 김인건 2010.05.31 2868
2362 북리뷰13.<난중일기(亂中日記)>이순신 李舜臣 이선형 2010.05.31 2595
2361 북리뷰 13. 난중일기_이순신 지음(노승석 옮김) 박상현 2010.05.31 3448
2360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2] 백산 2010.05.25 3963
2359 북리뷰 12. <열정과 기질 (Creating Minds)>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1] 이선형 2010.05.25 2467
2358 <열정과 기질 Greating Minds> / 하워드 가드너 [1] 낭만 연주 2010.05.24 2542
2357 Review 열정과 기질 [1] 최우성 2010.05.24 2407
2356 <열정과 기질> Haward Gardner [2] 박미옥 2010.05.24 2493
2355 12. 열정과 기질_저자, 구성 [1] 맑은 김인건 2010.05.24 2608
2354 북리뷰 12. 열정과 기질(Creating Minds)_하워드 가드너 [5] 박상현 2010.05.24 2441
2353 12, 열정과 기질_발췌 [1] 맑은 김인건 2010.05.24 2917